48.동양철학의 이해 (책소개)/1.동양철학사상

무문관참구 : 불교수행, 아침 죽은 먹었는가? 그럼, 발우나 씻게나

동방박사님 2021. 12. 19.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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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무문관 참구』는 900여 회에 달하는 수행을 통해서 저자들이 체험한 바를 중심으로 썼다. 실천적 체험을 바탕으로 머리 굴림이나 알음알이에 빠지지 않고 공안을 공안답게 올바로 참구할 수 있게 이끄는 내용과 구성이 되도록 했다.

서울대, 도쿄대 출신의 두 불교학자가 그 잘나가던 대학 강단을 과감히 내팽개친 지 10년이다. 10년이 지난 두 선생의 눈빛은 더 이상 강의하던 그 눈빛이 아니다. 7년 전 맨발로 누빈 세계 각국의 선방(禪房) 풍경과 치열한 수행 체험을 담아 책을 냈다면, 이번에 출간한 『무문관 참구』는 두 저자의 수행성과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책이다. 어찌 보면 한 때 불교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두 저자에 대한 지난 10년간의 성적표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들은 "참다운 대자유를 공유하기 위해서" 목마른 불자와 수행을 원하는 이들이게 다사다난한 섬 생활과 힘겨운 참선 수행의 과정을 글로 남겼다. 두 저자가 화두를 들고 치열하게 수행한 결과는 실천적 수행을 간절히 바라는 이들에게 어둠 속의 등불이 될 것이다.

목차

서문_아침 죽은 먹었는가? 그럼, 발우나 씻게나
추천사_미야모토 다이호오 방장 스님
읽기 전에_본서 『무문관 참구』의 특징
해설_간화선 수행의 교과서, 『무문관』

무문의 자서

제1칙 조주구자
제2칙 백장야호
제3칙 구지수지
제4칙 호자무수
제5칙 향엄상수
제6칙 세존염화
제7칙 조주세발
제8칙 해중조차
제9칙 대통지승
제10칙 청세고빈
.
.
.
제40칙 적도정병
제41칙 달마안심
제42칙 여자출정
제43칙 수산죽비
제44칙 파초주장
제45칙 타시아수
제46칙 간두진보
제47칙 도솔삼관
제48칙 건봉일로

황룡삼관

색인
『무문관』불조 법계표
 

저자 소개

저 : 장휘옥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화학과를 나왔다. 같은 과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과학보다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학사 편입해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이후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과학 연구과에서 화엄사상으로 석사·박사학위를 맏은 뒤, 동국대학교 사회교육원 교수로 재직했다. 일본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연구원, 한국불교학회 이사, 원효학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정토학회 이사를 역임했다. 『불교학개론 강의실 1,2』, 『해동고승전 연구』, 『정토불교의 세계』 등 10여 권의 책을 썼으며, 『화엄경 이야기』, 『대승기신론 이야기』, 『중국불교사』 등 여러 권의 책을 번역했다.
 
저자 : 김사업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대기업에 입사했으나 어렸을 적부터 가졌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을 회피할 수 없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학사 편입하여, 같은 과에서 유식사상을 세부 전공으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일본에 유학하여 교토대학 대학원 문화연구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동국대학교 사회교육원 교수로 재직했다. 공저 『길을 걷는 자, 너는 누구냐』가 있다.
 
 

책 속으로

방장: ‘무’를 보았느냐?
김 : 보는 자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습니다.
방장: 설명은 필요 없다. 보았으면 본 것을 그대로 보여라.
자, 어떻게 보이더냐?
김 : …….
방장: ‘무’가 되는 것은 자신을 잊은 듯한 기분이 되는 게 아니다.
하물며 그 기분을 설명하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한 점 남김 없이 ‘무’에 죽어라. --- p.42

“입을 열면 곧바로 진리를 놓치고, 입을 다물어도 또한 잃는다. 입을 열지 않거나 다물지 않아도, 십만 팔 천 리.” 이것은 ‘사구를 여의고 백비를 끊었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대승의 법은 입을 열어 말로 표현하는 순간 놓쳐 버린다.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어도 잃어 버린다. 어떻게 하더라도 모두 다 틀린다. 설법은 스스로 설법이라 하지 않는다. 입을 열 때 연다 하지 않고, 다물 때 다문다고 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의도하면 그만큼 멀어진다. 눈이 있는 자는 보고, 귀가 있는 자는 들을 것이다. --- pp.221-222

남전이 승의 질문에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다.”라 외친 것을 평해서 무문은 “자기의 재산을 깡그리 탕진한다. 빈털터리 그 모습이 실로 꼴불견이다.”라고 한다. 남전이 ‘자기의 재산을 깡그리 탕진한다’는데, 그 탕진한 ‘재산’이란 무엇을 말할까? 원래 무일물(無一物)인데 재산을 숨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무일물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재산을 탕진해도 파산이란 없다.
이렇게 재산을 모두 탕진하여 한 푼도 남지 않은 남전을 향해 무문은 “빈털터리 그 모습이 실로 꼴불견”이라고 욕을 퍼붓는다. 그러나 실은 ‘설하려 해도 설할 수 없는 법’ 그 자체를 사는 무일물(無一物)의 남전에게 최대의 찬사를 보내고 있다. 빈털터리 그 모습, 정말 멋있소! --- pp.234-235

공안은 한 칙만으로도 충분하다. 깨달음에 둘이 있을 리 없으니까. 다만 철저하고 분명하게 꿰뚫을 것을 요할 뿐이다. --- p.257

일이 있으면 그냥 훌쩍 손을 움직인다. 이것 말고 또 무엇이 있는가? 진짜·가짜가 어디 있으며, 그 둘을 구분할 필요는 어디 있는가? 진망(眞妄)의 덫에서 벗어나 어떤 분별도 끼어들 틈이 없는 경지에 이르면 마음만의 천녀도 육체만의 천녀도, 진짜도 가짜도 흔적이 없다. 다만 그것 그대로일 뿐이다. 괴이한 것을 보고 괴이하게 여기지 않으면 그 괴이함은 저절로 사라진다. 유령의 정체를 자세히 알고 보니 마른 억새풀이더라.
“어느 것이 진짜인가?” 이것은 법연이나 무문이 제자들의 투철한 선적 경지를 촉구하기 위해 제시한 것이지만, 아울러 오늘 우리에게도 살아 있는 수행을 재촉하는 질문이다. 자, 진짜·가짜를 떠나 있음을 살아 있는 사실로 보여 보라! --- p.288

달빛에 감싸인 계곡과 산은 하나인가, 둘인가? 같은가, 다른가? 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똑같은 달빛이다. 하나라고도 둘이라고도 할 수 없다. 누가 두 천녀가 합쳐져서 하나가 되었다고 하는가? 원래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온 천하는 각각 다른 모습의 천녀인 것을. 모두가 진짜의 한때의 모습이라면 진짜라는 것도 삿갓 위에 삿갓을 쓴 격이다. ‘진짜’라고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다. 심안을 가진 자에게는 모든 것이 그대로 진실이다. 서면 선 자리가 진리의 한복판이고, 앉으면 앉은 자리가 그대로 우주의 중심이다. --- p.291

이조(二祖)가 눈 위에 서서 팔을 자르고 말한다. “제 마음이 편하지 못합니다. 부디 편하게 해 주십시오.” 이것은 천오백년 전의 혜가 혼자만의 원(願)이 아니다. 고금을 통해 목숨을 건 수행자 모두의 절규이다. (…중략…) ‘안심(安心)’은 본래의 편안함이다. 마음을 안심시키는 것이 아니다. 본래의 편안함은 잃어버린 적이 없어 새삼스레 찾을 필요도 없는 진실한 자기 모습이다. 지옥에서도 극락에서도, 손해를 보아도 큰 병에 걸려도 편안하다. 일체를 방하했는데 무엇을 상대로 안·불안(安不安)이 있겠는가. 오직 편안할 뿐이다. 혜가가 달마에게 구한 것은 단순히 마음을 진정시키는 방법이나 원리가 아니었다. 가장 본래적인, 있는 그대로의 마음에 눈뜨는 것이었다. --- p.329

[무문관] 48칙이 험난해서 참구하고 참구해도 뚫을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라. 이것이야말로 천하의 공부인들에게 깊은 원한을 품게 하여 어떻게 해서라도 이 관문을 뚫어 대자유를 얻게 할 것이다. 원망하고 또 원망해서 원망이 없어질 때, 온 천지는 청풍(淸風)으로 뒤덮일 것이다. 종수는 이 ‘사무치는 한(恨)’을 발판으로 대오하여 천하를 밝히라고 제자들을 질타 격려한다.
--- p.389
 

출판사 리뷰

10년 전,
두 선생은 수행을 위해
잘나가던 동국대학교 강단을 떠나
외딴 섬 오곡도로 들어갔다.
이후 900여 회의 독참을 해가며
치열한 선(禪) 수행에 매진해 왔다.


한때 불교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장휘옥 · 김사업 저자가 그동안의 수행을 바탕으로 7년만에 새 책을 출간했다. 그것도 900여 회의 독참으로 다져진 실천적 수행을 바탕으로 『무문관』을 참구했다. 서울대, 도쿄대 출신의 두 불교학자가 그 잘나가던 대학 강단을 과감히 내팽개친 지 10년이다. 10년이 지난 두 선생의 눈빛은 더 이상 강의하던 그 눈빛이 아니다. 7년 전 맨발로 누빈 세계 각국의 선방(禪房) 풍경과 치열한 수행 체험을 담아 책을 냈다면, 이번에 출간한 『무문관 참구』는 두 저자의 수행성과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책이다. 어찌 보면 지난 10년간의 성적표라고 감히 말할 수도 있겠다.

장휘옥 · 김사업 저자의 신간인 『무문관 참구』는 집필 기간만 2년이 넘는 대장정을 헤쳐 온 책이다. 1인 10역을 해도 항상 손이 모자라는 다사다난한 섬 생활과 힘겨운 참선 수행, 그리고 절대 빼먹지 않는 예불 시간, 어떻게 보면 안거에 들어간 스님보다 더 빡빡한 오곡도다. 그 가운데 어떻게 시간을 쪼개어 원고를 작업했을 지 상상하면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왜 그러한 힘든 고통을 사서 했을까? 두 저자는 말한다.

“참다운 대자유를 공유하기 위해서.”

두 저자는 간화선의 정로(正路)는 찬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참구해 참다운 대자유를 얻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두 저자가 말하는 참다운 대자유는 무엇일까? 책 속에 그 답이 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세계 선방 여행
그리고
목숨을 걸고 한 수행


“수행하다 죽으면
절에서 장례를 치러줄 테니 걱정할 것 없다.
목숨 걸고 수행해라.”

두 저자는 불교를 공부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스스로 부처님 말씀과 실제 자신의 행동에 괴리가 있음을 발견했다. 스스로는 불교 교리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데, 정신적인 자유는 오히려 더 멀어지는 것 같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에 깊이 침착했다. 결국 10년 전 두 저자는 의기투합해 강단을 떠나 수행자의 삶을 살기로 했다. 두 저자가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해 수많은 선방을 찾아다녔는데, 이것은 그들이 얼마나 그 문제에 치열했음을 보여준다.

혹독한 추위가 몰려와도 불기 한 점 없는 선방에서 하루 15시간 동안 좌선을 하는 일본 임제종의 고가쿠지(向嶽寺)선원. 그곳에서 두 저자는 화두를 들고 치열하게 수행했다. 그들의 깨달음이 『무문관 참구』에 그대로 녹아 있다. 전에 출간했던 책이 구법여행이었다면, 이번에 출간된 『무문관 참구』는 두 저자가 7년 동안 외진 오곡도에서 처절한 수행을 통해 얻은 알맹이들이다. 현재 목마른 불자나 수행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피부로, 가슴으로, 와 닫는 살 떨리는 내용들이다. 실천적으로 수행을 하는 이들은 이 책의 진가를 알아볼 것이다. 또한 선 수행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어둠 속의 등불마냥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무문관 참구』의 특징

1. 900여 회의 독참
공안 참구의 핵심은 기존의 모든 알음알이(분별심)에서 벗어나서 공안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머리로 공안을 짜맞추려 해서는 세월만 허비한다. 그러나 보통은 머리 굴리는 습관에 오랫동안 젖어 있었기 때문에 공안을 머리로 풀어낸다. 일단 머리로 어떤 해답을 찾았으면 그 답이 옳든 그르든 상관없이 그 답에 묶여서 더 이상 공안 참구에 진척이 없다.

선의 본고장 중국 선종에는 정기적으로 스승과 일 대 일로 만나 공안에 대해 자신의 경지를 보이고 점검 받는 ‘독참(獨參)’이라는 전통적인 제도가 있었다. 독참은 청규(淸規)에도 그 규정이 상세히 나오며, 입실(入室) 이라고도 한다. 독참 때에는 선문답(禪問答)이 오고 가는데, 두 저자 역시 매일 같이 방장스님과 독참했다. 독참에서 공안 참구만 점검받는 것이 아니다. 두 선생이 의기소침에 빠져있으면 스승은 분심을 불러일으켜 수행에 매진하도록 한다. 또 자기도 모르게 타성에 젖어있거나 심신의 편안함만 즐기고 있으면 스승은 죽비로 사정없이 후려쳐서 진정한 수행의 길을 걷게 한다.

공동 필자인 두 사람은 2003년부터 지금까지 일본 임제종 14 대본산 가운데 하나인 고오가쿠지(向嶽寺)의 안거 집중수행(한국에서는 용맹정진이라 하고 일본에서는 攝心이라고 한다)에 일 년에 세 번 내지 네 번은 반드시 참가하고, 때로는 안거 기간 중 장기간 체재하면서 미야모토 다이호오(宮本大峰) 방장 스님의 독참 지도를 받아왔다. 안거 중에 매달 일주일씩 행하는 집중수행(攝心), 즉 용맹정진 기간에는 독참이 하루 4, 5회씩 있고, 평상시에는 매일 1, 2회의 독참이 있으니, 지금까지 두 저자는 각자 총 900여 회의 독참 지도를 받은 셈이다.

『무문관 참구』는 900여 회에 달하는 독참을 통해서 두 저자가 체험한 바를 중심으로 썼다. 이 책은 체험을 바탕으로 머리 굴림이나 알음알이에 빠지지 않고 공안을 공안답게 올바로 참구할 수 있게 이끄는 내용과 구성이 되도록 온 힘을 쏟았다. 그 일환으로 김사업 저자가 『무문관』의 공안을 참구하면서 방장 스님과 독참 때 주고받은 실제의 문답 중,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각 칙 마지막 ‘입실’ 항목에 인용해 놓았다. 입실에서 ‘김’은 김사업 저자를 가리킨다. 이는 실질적인 수행을 하는 이들에게 큰 길잡이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 선종 전래의 제창(提唱) 형식
『무문관』의 본칙, 평어, 송 각각에 대해 선종 전통 방식으로 제창(提唱)했다. 제창은 방장이나 조실이 조사어록이나 고칙(古則)에서 선의 요체를 학인들에게 제기하고 참구심을 격발시키는 것으로, 단순한 강의나 설법이 아니다. 선을 지도하는 아주 중요하고 효율적인 방식이지만 안타깝게도 근래 우리나라에서 제창 형식으로 출간된 책은 드물다.

일반 강의에서는 의심의 여운이 남지 않도록 완벽히 잘 설명하는 것이 좋은 강의이다. 그러나 선에서 개별 공안에 대한 강의식 설명은 ‘죽은 말(死句)’일 뿐이다. 설명을 듣고 머리로만 공안을 이해하면 공안 참구에 더 이상 진척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서에서는 이론적 설명이 필요할 경우라도 제창의 전통에 따라 최소한으로만 했다.

3. 전통적인 공안의 제시
공안(화두) 하나를 완벽히 뚫으면 1,700공안이 즉석에서 다 뚫린다. 하지만 좀처럼 그렇게 되기는 어렵다. 이 공안을 뚫었다 싶어도 저 공안에는 막혀 버린다. 그만큼 자신의 선적(禪的) 경지가 미숙하다는 것이다. 이것이『무문관』·『벽암록』·『임제록』 등에 나오는 공안들을 뚫어나가면서 백련천단(百鍊千鍛)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독참 제도가 없다면 여러 공안을 뚫어나가는 수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책에서 ‘뚫어야 할 공안’이라고 밝힌 화두는 임의로 설정한 것이 아니다. 일본 임제종에서 수백 년간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적인 참구 공안이다. 그리고 저자들이 독참을 통해 수행하면서 실제로 뚫은 공안이기도 하다. 『무문관』·『벽암록』등의 공안집에서 ‘뚫어야 할 공안’은 한 칙에 하나만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러 개가 있다.『무문관』제2칙 "백장야호"의 경우는 여섯 개나 된다.

4. 심혈을 기울인 원문 번역
원문에 대한 정확한 번역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번역을 통해 원의(原義)가 제대로 드러나야 다른 후속 작업들이 올바른 방향을 잡는다. 『무문관』과 같은 공안집을 번역할 때는 번역에 필요한 제반 지식과 기법 이외에 그 공안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선적 안목의 유무에 따라 번역은 여러 가지로 달라질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무문관』 원문은 『대정신수대장경』권48에 수록된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을 저본으로 하되, 저본에서 발견된 소수의 오자와 탈자는 히라타 타카시(平田高士)의『무문관(無門關)』(선의 어록 18, 筑摩 書房, 1981 초판 제4쇄) 등을 참조하여 수정해 놓았다.

원문 번역을 위해 국내외에서 출간된 『무문관』에 관한 저술은 거의 모두 참고했는데, 번역과 용어 풀이에서 여러 문제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객(知客, 선원에서 내빈을 접대하는 직책)’을 ‘객승’이라 풀이하는 초보적인 오류부터, 한 번 잘못된 오역이 여러 책에 걸쳐 두고두고 답습되는 것까지 다양했다. 또한 공안 참구의 체험 없이 문자 해석에만 매달렸기 때문에 생긴 실수도 적지 않았다. 저자들은 이런 점들을 확인하면서 번역과 용어 풀이의 정확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 책에서는 『무문관』의 서문과 후서는 필요한 부분만 다루었다. 서문 중에서는 무문의 자서만 뽑아서 번역하고, 후서에서는 공안 참구로 이용하는 황룡삼관만 번역·제창했다.

5. 현재형 서술
선의 정신과 공안 참구의 핵심이 잘 드러나도록 현재형 서술을 고집했다. 선은 지금 이 순간을 100퍼센트로 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순간을 싫다 좋다 등으로 쪼개지 않고 이 순간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공안도 자신의 생각에 맞추어 복잡하게 쪼개지 말고, 이 순간의 내가 공안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공안 참구의 핵심이다.

공안 속의 등장인물을 나와 관계없는 먼 옛날 사람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바로 이 순간의 내가 그 상황의 그가 되어 공안 속의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안은 생명 없는 옛날이야기나 문학작품으로 끝나 버린다. 공안과 지금의 나 사이에 간격이 생기는 순간, 공안은 이미 대상화되어 그 자체가 되는 것에서 벗어나고 만다.

이런 이유로 본칙과 평어, 송을 모두 현재형으로 번역했고, 제창도 현재형으로 했다. 공안 속의 말? 행동은 지금 내가 하는 것이고, 평어와 송과 제창은 바로 지금 나의 일(己事)이니 당연히 현재형이 될 수 밖에 없다. 현재형이 생소할지 모르나 익숙해져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이 순간 이 자리의 자기를 이탈하면 선은 없다.

6. 선에는 칭찬이 없다
선적(禪的) 긴장감과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존칭과 겸손한 표현보다는 실제 수행 현장에서 사용되는 직설적인 말을 많이 사용했다. 선에는 칭찬이 없다. ‘억하(抑下)의 탁상(托上)’이라 하여 폄하하는 말이 오히려 칭찬인 경우가 많다. 선에서 가장 훌륭한 스승은 깨달음을 위해 제자에게 원한을 살 정도로 비수를 꽂는 스승이다.

7. 공안 참구서에 맞는 편집
공안을 참구하는 데 적절하도록 편집했다. 본칙(本則)과 평어(評語), 송(頌), 그리고 이들 각각에 대한 제창(提唱) 부분은 모두 좌우 2단 편집으로 했다. 원문 대조의 편의를 위해 한쪽 단에는 우리말 번역을, 바로 옆 단에는 한문 원문과 용어 풀이를 실었다. 특히 제창의 경우는 읽는 데 맥이 끊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용어 풀이는 따로 Ep어서 그 용어가 나오는 옆 단에 배치시켜 독자의 집중력과 가독성을 높이도록 정리했다.

그리고 각 칙의 끝부분에는 독참 때 방장 스님과 김사업 저자가 나누었던 실제의 문답을 ‘입실’이라는 제목으로 실었다. 또한 각 칙에 등장하는 중심 인물의 행장과 그 밖의 필요한 사항도 함께 정리해 독자의 편의를 도왔다.

“두 저자가 생각하는 불교란?”
불교가 우리 생활과 동떨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와 상관없는 불교,
곧 죽은 불교입니다.
불교의 생명은
바로 이 순간의 삶을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