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동양철학의 이해 (책소개)/1.동양철학사상

임제록 (임제 의현) : 불교수행자의 선어록(禪語錄)

동방박사님 2021. 12. 19.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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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임제록(臨濟錄)』은 선어록(禪語錄)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책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선어록의 백미’라고 불렸다. 게다가 그 문장이 직설적이며 명료하기 때문에 선(禪)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나 전문 선 수행자에게 더없는 필독서이다.

이번에 민족사에서 간행한 석지현 역주·해설본 『임제록』은 중국 임제종과 조동종(묵조선) 계열의 대표적 공안송고평창집인 『벽암록』(전5권)과 『종용록』(전5권)을 역주·해설한 저자의 내공이 집약되어 있다. 뛰어난 언어감각을 지닌 시인으로 선시(禪詩)와 선어(禪語)를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전념해 온 저자는 독자들이 『임제록』의 요점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구어체 스타일로 명쾌하게 번역했고, 해설과 주(註)를 덧붙였다.
또한 [『임제록』에서 인용하고 있는 경전과 어록, 언구(言句) 목록]을 정리하여 수록했다. 이것만으로도 선(禪)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목차

- 일러두기………………………………………………… 004
- 머리말…………………………………………………… 005

1_ 임제는 누구인가………………………………… 011
1. 시대적 배경……………………………………… 011
2. 생애………………………………………………… 012
3. 사상………………………………………………… 014
4. 후세에 끼친 영향………………………………… 019
5. 『임제록』의 문체(文體)…………………………… 021

2_ 서문[序]……………………………………………… 022
3_ 법문[上堂]…………………………………………… 028
4_ 가르침[示衆]………………………………………… 063
5_ 선문답[勘辨]………………………………………… 238
6_ 수행록[行錄]………………………………………… 293
7_ 탑기(塔記)…………………………………………… 356

- 『임제록』에서 인용하고 있는 경전과 어록, 언구(言句) 목록……… 362

- 참고문헌………………………………………………… 370

- 찾아보기………………………………………………… 371
 

저자 소개 

저 : 석지현
 
13세 때 충남 부여 고란사로 출가.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詩) 부문에 당선되어 승려시인으로서 명성을 떨쳤다. 1973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그 후 명상에 심취하여, 인도, 네팔, 미국, 예루살렘, 티베트 등지를 오랫동안 방랑했다.
이 ‘방랑의 시절’ 동안 인도의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네팔의 히말라야, 부탄의 산길, 예루살렘의 불타는 사막을 여행했다. 미국에서 5년 동안 살면서 전 세계의 종교 지도자들을 만났다.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이슬람 수피의 가르침도 인상적이었고, 다람살라에서 만난 달라이 라마의 소탈함과 따스한 자비심에 큰 감동을 받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수행과 글쓰기에 필요한 자양분을 얻을 수 있었다. 불교 경전과 힌두교, 티베트 불교, 선어록 등을 망라하여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만행 덕분이다.
편·저·역서로는 『禪詩』, 『禪詩감상사전』(전 2권), 『벽암록』(전 5권), 『종용록』(전 5권), 『법구경』, 『바가바드 기따』, 『우파니샤드』, 『반야심경』, 『숫타니파타』, 『불교를 찾아서』, 『선으로 가는 길』, 『왕초보 불교 박사 되다』, 『제일로 아파하는 마음에-관음경 강의』, 『행복한 마음 휴식』 등 다수가 있다.
 

책 속으로

【 12-4 】


[ 번역 ]
수행자 여러분, 지금 내 눈앞에서 홀로 밝으며 분명하게 내 설법을 듣는 자, 바로 이 사람(그대 자신)은 어느 곳에서든 막히지 않고 시방을 관통하며 삼계에서 자재롭다. 그리고 이 모든 차별 경계에 들어가지만 경계가 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다. 그는 삽시간에 이 모든 세계[法界]에 들어가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에게 설법하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에게 설법하며, 아라한을 만나면 아라한에게 설법하고, 아귀를 만나면 아귀에게 설법한다. 그는 이처럼 이 모든 곳에 노닐면서 중생을 교화하나 일찍이 이 한 생각[本來心]을 떠나지 않았나니, 가는 곳마다 청정해서 그 빛이 시방을 꿰뚫으며 이 모든 존재가 평등해서 마치 하나와 같다.

[ 해설 ]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영원하지 않다’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나 자신(본래 자기)은 불멸의 존재다. 여기에서 시간과 공간이 나왔고, 부처와 마구니가 나왔다. 온갖 종교와 철학과 예술이 흘러나왔다. 깨닫는다는 것은 바로 이 ‘나 자신’을 깨닫는 것이다. ‘지금 여기’ 있으면서 이 우주에 충만해 있으며, 까마득한 과거와 먼 미래를 관통하면서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것, 그러나 찾아보면 아무 흔적도 없는 것, 그러면서도 저 태양보다 밝고 어둠보다 더 어두운 것, 이것이 바로 ‘나 자신’이다. 수행은 결국 이 ‘나 자신’을 나 자신이 탐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의문을 푸는 블랙홀의 열쇠가 바로 여기 있으므로…….

[ 원문 ]
道流여 ?今目前 孤明歷歷地 聽者는 此人處處不滯하야 通貫十方하고 三界自在라 入一切境差別이나 不能回換이니 一刹那間에 透入法界하야 逢佛說佛하며 逢祖說祖하고 逢羅漢 說羅漢하며 逢餓鬼 說餓鬼하나니 向一切處에 游履國土하야 ?化衆生이나 未曾離一念이니 隨處?淨하야 光透十方하며 萬法一如라

[ 주(註) ]
○ 처처불체(處處不滯): 어느 곳에서든 걸림이 없다.
○ 불능회환(不能回換): (일체의 경계에) 영향을 받지 않다.
○ 일찰나(一刹那): 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
○ 유리(游履): 노닐다. 방문하다.
○ 국토(國土): 영역.
○ 일념(一念): 여기에서는 ‘본래의 마음[本來心].’
○ 만법일여(萬法一如): 모든 사물(과 존재, 萬法)은 인연의 힘[緣起, 상호의존]에 의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근원은 결국 ‘같다[一如]’는 뜻.
---pp.103~104


【 13-38 】

[ 번역 ]
“수행자 여러분, 그대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법(法, 존재)이 태어나고 마음이 소멸하면 갖가지 법도 소멸한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만법(萬法, 모든 존재)에게도 잘못이 없다. 이 세상[世間]에서도 이 세상을 초월한 영역[出世間]에서도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으며 나타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다. 설령 여기 무엇인가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모두 명칭과 언어일 뿐이다. 어린 아기를 유인하는 임시방편의 약일 뿐이며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명칭과 언어[名句]일 뿐이다. 이 명구(名句)가 스스로 ‘나는 명구다’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니 그대 지금 내 눈 앞에서 소소영령(昭昭靈靈 )하며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듣는 바로 그것(그대 자신)이 이 모든 명구를 만들었다. 대덕 여러분, 5무간업(五無間業)을 지어야만 비로소 해탈을 얻을 수 있다.”

[ 해설 ]
벗이여, 끌려가는 자가 되지 말라. 이 사기꾼들의 온갖 감언이설에 끌려가지 말라. 이 종교를 빙자한 사기꾼들의 술수에 놀아나지 말라.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못났으면 못난 대로 지금 그대 자신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기 잘못된 것, 더 얻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해탈이니 깨달음이니 영원이니 신(神)이니……. 이런 명칭들은 단지 언어일 뿐이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선전문구일 뿐이다. 있다면 여기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그대 자신이 있을 뿐이다. 그대 자신이야말로 이 모든 언어와 명칭의 발원지다.

[ 원문 ]
道流여 爾欲得作佛이면 莫隨萬物하라 心生種種法生하며 心滅種種法滅이라 一心不生하면 萬法無咎라 世與出世에 無佛無法이며 亦不現前이며 亦不曾失이라 設有者라도 皆是名言章句니 接引小兒施 設藥病이며 表顯名句라 且名句 不自名句며 還是爾 目前昭昭靈靈 鑒覺聞知 照燭底가 安一切名句라 大德이여 造五無間業하면 方得解脫이니라

[ 주(註) ]
○ 소아(小兒): 어린아이.
○ 표현명구(表顯名句): 언어의 표현.
○ 환시이(還是爾): 그대야말로 ~이다.
○ 소소영령(昭昭靈靈 ): 밝고 신령스러움. 본성(本性)을 뜻함.
○ 감각문지(鑒覺聞知): 견문각지(見聞覺知). 눈으로 보고[見], 귀로 듣고[聞], 깨달아[覺] 아는 것[知].
○ 5무간업(五無間業): 극악무도한 다섯 가지 죄업 ①아버지를 죽임, ②어머니를 해침, ③부처님 몸에 피를 냄, ④수행승단을 파괴함, ⑤불상을 부수고 경전을 태움.

---pp.217~219
 

출판사 리뷰

선어록의 백미, 선(禪) 수행의 필독서, 임제록!
석지현 역주 · 해설본으로 읽자!

1. 『임제록』은 어떤 책인가?

『임제록』은 당나라의 선승(禪僧)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의 가르침을 그가 입적 후 제자인 삼성혜연(三聖慧然)이 편집한 것으로서, 현존하는 것은 임제 선사가 입적한 후 254년이 지난 1120년(북송의 선화 2년)에 원각종연(圓覺宗演)이 중각(重刻)한 것이다.
『임제록』은 중국 선의 정점에 있는 조사선의 경지를 드러낸 선어록이다. 올바른 견해, 반야지혜, 정안, 정법안을 갖출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임제록』의 초점이다. 그것을 『임제록』에서는 ‘진정견해(眞正見解)’라는 말로 강조하고 있다. 즉 참으로 바른 견해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안을 갖추지 못한다면 선수행이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어록의 백미인 『임제록』을 읽지 않고는 선어록의 진수를 맛보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제록의 원본은 다음의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1. 상당(上堂): 법당에 올라가서 하는 설법
2. 시중(示衆): 대중에 대한 설법
3. 감변(勘辨): 스승과 제자간의 선문답 상량(禪問答商量)
4. 행록(行錄): 행장 기록
5. 탑기(塔記): 석탑에 기록한 비문.

역자는 서문에서 『임제록』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정신은,
첫째, 개념과 언어로부터의 해방[不立文字]이라고 파악했다.
『임제록』에서는 이 모든 개념과 언어는 ‘옷[衣]’에 불과하다(13-30)고 했다. 옷은 계절이 바뀌면 수시로 갈아입는다.
둘째, 주체적인 삶[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고 파악했다.
『임제록』에서 말하는 주체적인 삶은 무엇인가? “어느 상황에 처하든 주체적이 되라[隨處作主]. 그러면 상황은 절대로 그대를 잡아 흔들지 못할 것이다[立處皆眞]”(12-1). 개념의 집착으로부터 해방과 주체적인 삶은 자신의 견해가 확립되었을 때 가능하다.
이와 같이 『임제록』은 진정 견해(眞正 見解)와 수처작주(隨處作主), 즉 정안과 주체적인 삶, 이 두 가지를 갖출 것을 강조한 선어록이다.

임제 선사는 매우 준엄한 선풍(禪風)으로 많은 제자를 양성했고, 후세에 큰 영향을 끼친 공안(公案)도 많다. 그 대표적인 것이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다. 어디를 가든지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면 현재 서 있는 그곳이 곧 모두 진실한 곳이 된다는 뜻이다. 또 ‘무위진인(無位眞人, 아무런 속박 없는 참사람)’도 임제 선사의 법문을 대표하는 명구이고, ‘살불살조(殺佛殺祖,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인다)’도 유명한 명구이다.


2. 석지현 역주·해설본 『임제록』의 특징과 장점

『임제록』은 문어체(文語體, 문장체)가 아닌 구어체(口語體, 대화체)로 쓰였다. 구어체는 대화가 주류를 이루는 살아 있는 인간의 언어이고, 개념화되지 않은 언어이기 때문에 선어록은 모두 구어체로 기술되었다. 구어체에는 특히 옛 시대의 속어(俗語)가 많이 나온다. 속어란 그 당시 일반 서민들이 생활 속에서 사용하던 말(대화체)이다. 그러나 그 시대가 지나가면 그 시대에 사용하던 속어는 그대로 사장(死藏)되어 후대 사람들은 그 의미를 전혀 알 수가 없다. 그 당시에는 누구나 아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사전에조차 없는 말들이 대부분이다. 『임제록』에 유독 옛 시대의 난해한 속어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임제록』이 구어체로 쓰였기 때문이다.
석지현 역주·해설본 『임제록』은 중국 임제종과 조동종(묵조선) 계열의 대표적 공안송고평창집인 『벽암록』(전5권)과 『종용록』(전5권)을 역주·해설한 저자의 내공을 집약하고 있다. 뛰어난 언어감각을 지닌 시인으로 선시(禪詩)와 선어(禪語)를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전념해 온 저자의 내공으로 구어체로 이루어진 『임제록』을 생생하게 번역해 낸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본문을 ‘1-1’에서 ‘59-2’까지 단락으로 나누어 [번역], [해설], [원문], [주(註)] 순으로 『임제록』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이로써 독자들이 단락별로 『임제록』의 요점을 파악할 수 있도록 친절히 안내한다. 한문으로 쓰인 원문이 부담스러운 사람은 [번역]과 [해설]만으로도 『임제록』의 요점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원문에 대한 자세한 주(註)는 선(禪)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의 백미는 저자의 혜안이 돋보이는 [해설]이고, 구어체 스타일의 명쾌한 [번역]도 여느 번역본과 다른 이 책만의 가장 큰 장점이다.
임제 선사는 『임제록』에서 『장자(莊子)』 등을 비롯하여 많은 경전과 선어록에 나오는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종수는 무려 50여 종이나 된다. 임제 선사는 언어를 부정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경전과 어록의 언구들을 총동원한 셈이다. 석지현 역주·해설본 『임제록』에서는 [『임제록』에서 인용하고 있는 경전과 어록, 언구(言句) 목록]을 정리하여 수록했다. 이것만으로도 선(禪)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3. 임제 의현 선사에 대하여

임제의 법명(法名, 僧名)은 의현(義玄), 속성(俗姓)은 형(邢) 씨, 조주(曹州) 남화(南華)에서 태어났다. 젊은 날에 출가해서 폭넓게 전통적인 불교경전을 공부했다. 하지만 그의 출가 당시의 나이와 스승이 누구였는지는 알 수 없다. 임제의 고향인 조주 남화는 지금의 산동성 연주부(?州府)로서 황하 하류의 남쪽 지방이다. 이곳은 임제와 동시대에 활약했던 선승 조주종심(趙州從?)의 고향과도 가까웠다. 그는 특히 법화(法華), 화엄(華嚴), 유마(維摩), 능가(楞伽), 능엄(楞嚴) 등의 경전과 유가(瑜伽), 유식(唯識), 화엄합론(華嚴合論), 대승성업론(大乘成業論), 법원의림장(法苑義林章) 등의 불교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의 출가와 득도(得度: 具足戒를 받고 정식 승려가 됨)를 통례에 따라 20세 무렵으로 친다면 827년에서 835년(원화 연간)에 해당하는데, 이때 청량징관(淸凉澄觀: 738~838)과 규봉종밀(圭峰宗密: 780~841)의 화엄학(華嚴學)이 전성기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학문이 단지 약 처방전이며 일종의 선전 문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간파하였다. 이후 책을 덮어 버리고 구도행각을 시작하여 황벽(黃檗: ?~850)을 찾아갔다. 하남에서 태어난 임제가 무슨 이유로 머나먼 강남으로 황벽을 찾아갔는지는 알 수 없다. 그 당시 황벽은 홍주자사(洪州刺史)인 배휴(裵休: 797~870)의 후원으로 홍주 고안현(高安縣)에 황벽선원을 열고 많은 수행자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이때가 회창년(841~846)에서 대중연초(大中年初: 847)에 해당하는데, 당시 임제는 황벽 밑에서 오로지 수행정진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주도명(睦州道明: 당시 황벽선원의 수좌)의 권유에 따라 황벽의 방장실 문을 두드렸다. “불법의 핵심이 무엇입니까?”를 세 번 묻고 세 번 얻어맞은 다음 대우에게 가서 크게 깨달았다. 이때의 극적인 순간의 기록은 수행록[行錄 38-1·2·3·4]에 자세히 실려 있다.
임제가 깨달은 시기는 회창의 법난이 한창 단행되고 있을 때였다. 임제는 당의 중앙정부와 대치상태에 있던 하북 진주지방으로 올라가 교화를 펴기 시작했다. 당시 이 지역의 실권자였던 부주(府主) 왕상시(王常侍)의 적극적인 후원이 있었는데, 이 왕상시는 『임제록』 처음(上堂 1-1)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하북의 진주 임제원에서 교화를 펼치는 장면은 모두 수행록[行錄 39-1에서 57-2까지]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때 임제의 교화를 도왔던 인물 가운데 중요한 사람은 반산(盤山)에서 온 광승(狂僧) 보화(普化)였다. 반산은 진주(鎭州) 북부지방으로서 도교(道敎)의 영장(靈場)이었는데, 보화의 자유분방한 역할에서 우리는 무위자연적인 삶을 추구하던 신선도자(神仙道者)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보화의 이러한 초인적인 행동은 기성불교의 권위에 맞서는 자유로운 인간상으로서 임제가 제창한 신불교(新佛敎)의 전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임제의 법을 이은 제자는 삼성혜연(三聖慧然)을 위시해서 21명 또는 24명이 있었다고 한다. 임제는 당(唐) 함통(咸通) 8년(867년) 정월 1일에 입적했는데 수행록[行錄 58]에는 그때의 장면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간화선(看話禪)을 제창했던 대혜종고(大慧宗?)는 임제를 평하여 이렇게 말했다.
“만일 승이 되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도둑의 괴수가 되었을 것이다.”
(?老 謂臨濟 若不爲僧 必作一渠魁)-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26


4. 『임제록』이 후세에 끼친 영향

『임제록』은 선어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인류가 남긴 가장 극렬한 반역의 서(書)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임제는 그의 가르침[示衆 13-5]에서 성불(成佛)도 부정하고 좌선도 부정하고 여타의 수행 일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 ‘불경(佛經)은 똥을 닦는 휴지 조각’(13-9)이요, ‘부처는 똥통’(13-41)이라고 외치고 있다. 역대의 선승들 가운데 이처럼 저항적이고 처절했던 사람은 임제 앞에도 없었고, 임제 뒤에도 없었다.
임제가 살았던 당말(唐末)은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매우 극심한 격동기였다. 이 격동의 한 가운데서 그것도 혁명가들의 집결지였던 하북 지방에서 임제가 부르짖었던 ‘반역의 외침’은 후대의 선승들에게 실로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임제가 입적하자 임제 자신은 원치 않았지만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서 임제의 가르침은 임제종(臨濟宗)이라는 선풍(禪風)으로 정비되었다. 이보다 조금 앞서는 위산영우(?山靈祐: 771~853)와 앙산혜적(仰山慧寂: 807~883)에 의해서 위앙종(?仰宗)이 확립되었다. 또한 임제의 선풍이 정비되던 것과 거의 동시대에는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와 조산본적(曹山本寂: 840~901)에 의해서 조동종(曹洞宗)이 확립되었다.
당이 멸망하고 오대(五代)가 되자 운문문언(雲門文偃: 846~949)에 의해서 운문종(雲門宗)이, 그리고 잇달아 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에 의해서 법안종(法眼宗)이 확립되었다. 이렇게 확립된 다섯 개의 선풍[五宗家風]은 송대(宋代)로 들어서면서 난숙기를 맞이했고 중국문화 전반에까지 침투해 들어갔다.
그러나 시대가 지남에 따라 이 다섯 개의 선풍은 임제종과 조동종으로 흡수되고 통합되었다. 맨 처음 위앙종이 소멸했고, 두 번째로 법안종이 소멸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운문종이 임제종에 흡수되어 버리고 말았다. 남송(南宋) 말(末)에는 남은 두 개의 종파에서 각각 한 사람씩 거장이 나왔다. 조동종에서는 천동정각(天童正覺: 1091~1157)이 출현하여 묵조선(?照禪: 좌선 수행을 강조하는 선 수행방식)을 대성시켰고, 임제종 양기파(楊岐派)에서는 대혜종고(大慧宗?: 1089~1163)가 나와서 간화선(看話禪: 깨달음을 강조하는 선 수행방식) 운동을 전개했다.
남송 이후[元·明·淸]에는 임제종과 조동종, 이 두 개의 흐름만이 남아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 임제의 선풍(임제종) 가운데 대혜종고가 주장한 간화선의 태풍 영향권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