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문학의 이해 (책소개)/3.한국문학

무영탑 (현진건 장편소설)

동방박사님 2022. 2. 1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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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문학을 권하다《무영탑》에는 [청소년문학]의 편집주간을 맡고 있으며 소설과 동화, 시를 넘나들며 작품활동을 하는 박상률 작가가 쓴 ‘소설로 만난 작가 현진건과의 아련한 추억’에 관한 글이 담겨 있어 문학작품 읽기의 즐거움에 동참하길 권한다. 1938년 7월 20일부터 이듬해 2월 7일까지 [동아일보]에 총 164회로 연재됐던 《무영탑》은 뛰어난 예술작품인 석가탑과 다보탑의 제작 과정, 지고지순한 남녀 간의 사랑, 국선도파와 당학파의 갈등으로 인해 생겨난 여러 사건을 특유의 유려한 문체로 풀어낸 현진건의 후기 대표작이다.

목차

비 내리는 겨울을 좋아하던 시절에 읽은 책_ 박상률

무영탑

현진건 연보

저자 소개

저 : 현진건 (玄鎭健, 빙허(憑虛))
 
호는 빙허(憑虛). 일제 당시 현실을 아이러니적 수법으로 고발하고 역사소설로 민족혼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던 소설가. 1900년 8월 8일 대구에서 대구 우체국장이었던 경운의 4남으로 태어났으며 호는 빙허(憑虛)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운 뒤, 1912년 일본 세이조중학에 입학, 1915년 이순득과 혼인했다. 1918년에는 상하이에 있는 둘째 형을 찾아갔고, 그곳의 호강대학에 입학했으나 중퇴한 뒤 귀국한다. 일본 도쿄...

책 속으로

pp. 42~43
얼마 만에 아상 노장을 따라 젊은 석수는 나타났다. 꾸미지 않은 옷매무새며 오래 손질을 않은 탓으로 까치집같이 헝클어졌으되 윤나는 검은 머리며 두루미처럼 멀쑥하게 여윈 몸피를 얼른 보는 순간 주만의 가슴은 웬일인지 찡하고 울린다. 그는 이런 자리는 난생처음이라 어찌할 줄을 모르고 먼발치에서 머뭇거릴 제 왕은 가까이 오라는 분부를 내리셨다.
그는 몇 걸음 더 다가들어 와서 어색하게 허리를 굽히는데 그 고개는 땅에 닿을 듯이 숙였다.
“얼굴을 들어라.”
젊은 석수는 한참 망설이다가 분부대로 머리를 들었다. 번듯한 이맛전, 쭉 일어선 콧대, 열에 뜬 것 같은 붉은 입술, 더구나 가을 호수를 생각게 하는 맑고 깊숙한 눈자위, 제아무리 천하명공이라 하더라도 한낱 시골뜨기 석수장이로 이렇게 청수한 풍채와 씩씩한 품위가 있을 줄은 몰랐다. 젊은이 축의 곁눈질하는 눈초리에는 흠모의 빛이 역력히 움직였다. 주만은 그의 얼굴과 풍골에 다보탑의 공교롭고 아름다운 점과 석가탑의 굵고 빼어난 맛이 쩍말없이 어우러진 듯하였다.

pp. 218~219
“나는 아사달 님과 부부가 되는 것도 원치 않아요. 그야 의엿한 부부가 될 수가 있을 말로야…….”
하다가 주만은 코 안으로 흘러드는 빗물을 풀어내었다.
“그야 애당초에 안 되기로 정해놓은 노릇. 나는 차라리 아사달 님의 제자가 될 터예요. 겨누와 정을 매만져드리는 제자가 될 터예요. 십 년을 배우고 이십 년을 배우면 설마 그 놀라우신 재주의 만분지일이야 못 배울까…….”
“이찬 댁의 귀동따님이 석수장이의 제자가 되다니 안 될 말씀, 안 될 말씀.”
하고 아사달은 고개를 흔든다.
“왜 안 돼요. 안 될 까닭이 무엡니까! 삼단 같은 머리를 끊어버리고 불제자도 되려든. 나무로 깎고 구리로 새겨 맨든 부처님의 제자도 되려든. 살아 있는 이를 왜 스승으로 못 섬길까. 눈앞에 보여주는 재주를 왜 못 배울까…….”
“제발 마음을 돌려주십시오. 이 아사달이 빕니다.”
아사달은 머리를 푹 수그렸다.
“아무리 아사달 님이 빌어도 내 마음은 돌리지 못합니다. 동해에서 뜨는 해가 서악에서 떠도 한번 먹은 내 뜻은 꺾지를 못합니다.”
“괴롭습니다. 이 아사달이 괴롭습니다. 제발, 제발…….”
“괴롭다면 내가 괴롭지 아사달 님이야 왜 괴로워요? 여제자 하나 데리는 게 그렇게 괴로워요?”
“제발 그러지 말아주십시오. 부모님께서 정혼하신 자리로 떳떳이 시집을 가주십시오. 그러고 그 좋은 부귀와 영화를 누려주십시오.”

pp. 395~396
“오늘만 해도 처음 왔기에 망정이지, 두 번만 왔드래도 벌써 십 리 밖으로 끌어 내치는 거란 말이야. 여자의 더러운 몸이란 멀리 비치기만 해도 부정을 타는 거요. 그 탑이 꼭 다 된 것을 보고 오란 말이오.”
아사녀도 악이 아니 날 수 없었다.
“제가 어디서 그 탑이 다 되고 안 된 것을 보고 온단 말씀예요. 온, 그 탑 그림자라도 보아야 알 것 아녜요.”
“그림자라도 보아야…….”
하고 문지기는 말책을 잡았으나, 아무리 언변 좋은 그로도 여기는 말이 막히었던지
“그림자, 흥, 그림자…….”
하며 몇 번을 곱삶다가 문득
“오 옳지, 되었다, 되어.”
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자기 깐에는 신기한 생각이 언뜻 떠오른 모양이었다.
“여보, 아주먼네, 그러면 좋은 수가 있소. 여기서 훤하게 내다보이는 저 길이 있지 않소?”
하고 아주 친절스럽게 아사녀에게 언덕배기 한복판으로 뚫린 흰길을 가리켜 보였다.
“저 길로 자꾸만 내려간단 말이오. 한 십 리만 가면 거기 그림자못이란 어마어마하게 큰 못이 있소. 그 못에는 이 세상에 어느 물건치고 아니 비치는 게 없단 말이오. 지금 아사달이가 짓는 석가탑 그림자도 뚜렷이 비칠 거란 말이거든. 자 그 연못에 가서 기다려보오.”
하고 어떠냐 하는 듯이 문지기는 배를 쑥 내어밀며 아사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이 생판으로 거짓말은 아니었다. 과연 거기는 둘레가 십 리에 가까운 크나큰 못이 있고, 물이 거울같이 맑아서 모든 그림자가 잘 비친다 하여 그림자 못이라는 이름까지 얻은 것이다.

pp. 629~630
아사달의 머리는 점점 어지러워졌다. 아사녀와 주만의 환영도 흔들린다. 회술레를 돌리듯 핑핑 돌다가 소용돌이치는 물결 속에서 쪼각쪼각 부서지는 달그림자가 이내 한데로 합하듯이, 두 환영은 마침내 하나로 어우러지고 말았다. 아사달의 캄캄하던 머릿속도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하나로 녹아들어 버린 아사녀와 주만의 두 얼굴은 다시금 거룩한 부처님의 모양으로 변하였다. 아사달은 눈을 번쩍 떴다. 설레던 가슴이 가을 물같이 맑아지자, 그 돌얼굴은 세 번째 제 원불로 변하였다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한국문학을 권하다 시리즈]는 누구나 제목 정도는 알고 있으나 대개는 읽지 않은, 위대한 한국문학을 즐겁게 소개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즐겁고 친절한 전집’을 위해 총서 각 권에는 현재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0명의 작가들이 “내 생애 첫 한국문학”이라는 주제로 쓴 각 작품에 대한 인상기, 혹은 기성작가를 추억하며 쓴 오마주 작품을 어려운 해설 대신 수록하였고, 오래전에 절판되어 현재 단행본으로는 만날 수 없는 작품들까지도 발굴해 묶어 국내 한국문학 총서 중 최다 작품을 수록하였다.

한국문학을 권하다《무영탑》에는 [청소년문학]의 편집주간을 맡고 있으며 소설과 동화, 시를 넘나들며 작품활동을 하는 박상률 작가가 쓴 ‘소설로 만난 작가 현진건과의 아련한 추억’에 관한 글이 담겨 있어 문학작품 읽기의 즐거움에 동참하길 권한다.
1938년 7월 20일부터 이듬해 2월 7일까지 [동아일보]에 총 164회로 연재됐던 《무영탑》은 뛰어난 예술작품인 석가탑과 다보탑의 제작 과정, 지고지순한 남녀 간의 사랑, 국선도파와 당학파의 갈등으로 인해 생겨난 여러 사건을 특유의 유려한 문체로 풀어낸 현진건의 후기 대표작이다. 연재 당시 큰 인기를 끌기도 한 작품이다. 2014년 수능시험에《무영탑》 관련 문제가 출제되었다. 교과서에 나오지도 않은 이 소설이 문제로 출제된 것은 현진건 작품의 중요성과 완성도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무영탑》은 단편 위주로 작품활동을 해온 현진건의 몇 안 되는 장편소설이자 유일하게 완결을 본 역사소설이다. 빙허憑虛 현진건 하면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단편 [운수 좋은 날]로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진 작가이다. 이외에도 [빈처] [술 권하는 사회] 등의 단편이 유명하다. 빈틈없이 조화된 구성과 박진감 넘치는 표현, 리얼리즘 기법에 입각한 작품세계를 구축해 염상섭과 함께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개척자로 불리며, 김동인과 더불어 단편 문학의 기틀을 굳건히 했다는 평을 듣는다.
현진건은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거친 저명한 언론인이자 손기정 선수의 올림픽 마라톤 우승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운, 이른바 ‘일장기 말살사건’(동아일보)으로 투옥되어 모진 고문을 받기도 한 애국지사이기도 하다. 이 사건 후 한동안 붓을 놓았던 작가는 장편소설로 방향을 바꿔 1939년 [동아일보]에 《무영탑》을 연재한다.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 그림자못(영지)과 백제 출신 석공 아사달 아사녀에 얽힌 설화를 아름답게 그려낸 이 소설은 비록 일제의 검열 때문에 사랑과 예술을 대표적인 주제로 내세웠지만 그 이면에서는 당나라 문화의 유입으로 인해 신라의 국풍이 훼손되는 모습을 일제치하에 비유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다. 또 당시 유행했던 역사소설이 왕이나 귀족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몰락을 그렸던 데 반해, 석수장이라는 평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예술혼과 민중을 주체로 썼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1957년 신상옥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애플북스의 [한국문학을 권하다 시리즈]는 그동안 전체 원고가 아닌 편집본으로 출간되었거나 잡지에만 소개되어 단행본으로 출간된 적 없는 작품들까지 최대한 모아 총서로 묶었다. 현재 발간된 한국문학 전집 중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수록한 전집이라 하겠다. 종이책은 물론 전자책으로도 함께 제작되어 각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대학교의 도서관은 물론 기업 자료실에도 꼭 필요한 책이다.

《무영탑》은 백제 출신 석수장이 아사달이 당시 신라 서울 서라벌에 있는 절 불국사에 두 개의 탑을 세우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다보탑을 2년에 걸쳐 완성하고 이제 석가탑에 정성을 쏟던 아사달은 사월 초파일, 왕이 불국사에 행차하는데 따라온 일행 중 한 명인 구슬아기 주만을 만나게 된다. 주만은 한눈에 아사달에게 빠져들었고 아사달은 고향에 아내가 있다며 뿌리치려 하지만 외로운 마음과 주만의 지고한 순정에 차츰 마음이 기울고 만다. 그러나 사실상 주만은 신라 고위 귀족의 딸로 둘의 사랑은 신분의 차이로 인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주만은 제자로라도 따라가겠다며 석가탑이 완성되면 함께 떠나게 해달라고 아사달에게 부탁한다. 그때 아사녀는 아사달의 스승이기도 한 아버지가 죽자 주위 남자들의 시달림을 피해 여자 혼자 몸으로 온갖 고초를 겪으며 남편을 찾아 서라벌로 향하고 있었다. 불국사에 다다른 아사녀는 문지기에게 아사달을 찾아왔다고 이야기하나 신성한 불사에 여자가 가까이하면 안 된다며 십 리 밖 그림자못에 탑이 완성되면 비칠 테니 거기서 기다리라는 말만 듣게 된다. 아사녀는 그림자못에서 기다리다 아사달이 석가탑을 완성한 그 날, 자신을 첩으로 팔아넘기려는 노파의 마수를 피해 못에 빠져 죽는다. 아사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사달은 비통함에 사로잡혀 그림자못 옆의 돌에 아사녀를 새기기 시작한다. 주만이 찾아와 도망가자고 해도 듣지 못하고 아사달은 계속 조각을 하고 결국 주만은 아버지에게 잡혀 화형당할 지경에 처한다. 아사달은 아사녀와 주만의 얼굴이 녹아들어 부처님의 모양으로 변한 조각을 남기고 아사녀의 뒤를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