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한일관계사 연구 (책소개)/1.조선통신사 53

19세기 조선의 대일 역지통신 연구

책소개 이 책에서 Ⅰ장은 역지통신을 밝히기 위해 이전 시기의 통신사에 관한 검토를 하였다. 기존의 통신사와 역지를 비교하기 위해서이다. 먼저 통신사와 문위행에 주목했다. 통신사와 문위행은 목적지가 에도와 대마도로 달랐다. 필자는 에도 통신사의 강조는 대마도에 대한 역사적인 인식과 관련성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대마도 인식까지 함께 살펴보았다. 다음은 에도통신의 목적을 조선과 일본 입장에서 고찰하였다. 그리고 에도통신을 둘러싼 조선과 일본의 개혁논의도 언급하였다. 국내 자료는 연대기 자료를 중심으로 검토하였고, 일본 자료는 아라이 하쿠세키의『朝鮮聘使後議』, 아메노모리 호슈의 『信使停止之覺書』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하쿠세키의 역지통신을 ‘고이코’의 관점에서 고찰했다. 목차 序 論 1. 문제 제기 2. 역지통..

조선전기 한일관계, 약탈과 공존

목차 ■ 프롤로그 제1편 왜구와 왜관 제1장 고려시대 강원지역에 대한 왜구의 침탈과 대응 제2장 조선전기 서울의 東平館과 倭人 제3장 웅천읍성과 제포왜관 제2편 일본의 표상 제1장 대마도의 朝·日 양속 관계 제2장 조선시대 行實圖에 나타난 일본의 표상 제3장 조선시대 日本天皇觀의 유형적 고찰 제3편 조선과 유구 제1장 朝·琉 교린체제의 구조와 특징 제2장 歷代案을 통해 본 조선과 유구 제3장 朝鮮·琉球關係 史料에 대하여 ■ 찾아보기

임진왜란에서 조선통신사의 길로

책소개 2018년 한일문화교류기금의 국제학술회의 주제는 ‘壬辰倭亂에서 朝鮮通信使의 길로-전쟁의 상처와 치유, 그리고 화해-’였다. 조선인들에게 불구대천의 원수로 각인된 대일인식을 만들어 낸 임진왜란, 그 참상과 상처, 그리고 화해와 협력의 朝鮮通信使라는 사절단이 이 시대에 주는 역사적 의미와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 학술대회의 목적은 임진왜란과 그 이후 200년간의 한일관계사를 재조명하여 작금의 한일관계의 갈등을 풀어가는 해법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한일관계에 외교적 경험이 풍부한 신각수 전 주일대사의 기조강연, [조선통신사를 통해 본 한일관계의 과거와 현재]를 들었다. 이어서 제1부에서 명지대 한명기교수의 [임진왜란, 전쟁의 역사적 의미], 강원대 손승철..

통신사를 따라 일본 에도시대를 가다

책소개 조선시대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된 ‘통신사’들에 대한 얘기다. 특히 1592년 발생해 7년간 참화를 빚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 에도시대에 파견된 사신들에 대한 얘기다. 지금까지 통신사는 ‘조선통신사’의 이름으로 여러 곳에서 출간되어 왔지만, 일본학자나 재일사학자의 저서 혹은 한일간 공동연구의 결과물이 번역되어 나온 것이고, 모두 학술서의 범주에 있어, 일반독자들이 ‘통신사’ 하면 공부하는 사람들이 연구하는 주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에도시대의 기행문’을 연구하였으며, 일문과 교수로 재직하는 지금도 에도시대에 관심을 가지고 통신사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저자는, 통신사에 대한 관심이 학자층에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 책의 집필 동기로 들고 있다. 목차 책을 내면서 들어가는 ..

조선의 최고외교관 이예

책소개 세종의 치세를 만든 이예의 삶과 외교 리더십 우리나라가 특별히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거나, 영토가 넓은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대국들 사이에서 수천년을 생존해 온 것은 역대 왕조에서 지속해온 "실용외교"가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강대국 사이에서의 '불리한' 지리적 위치를 사대교린이라는 외교 정책으로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한 점에서 우리는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이예: 조선 최고의 외교관』에서는 이 '사대교린' 외교 정책을 가장 뛰어나게 추진한 세종 시대의 외교에 대한 연구와 답사의 결과물이다. 이예는 세종대 1400년부터 1443년까지 40여 차례가 넘게 매년 한 차례씩 현해탄을 건너가 667명의 포로를 송환해오는 등 대일 외교의 중심적인 활약을 한 인물이다. 이 책은 크게 이예가..

초량왜관

책소개 초량왜관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한다. 부산포에는 470년 동안 왜관이 존재했었다. 그중 후반기인 1678년(숙종 4) 새띠벌 초량에 왜관을 설치한 이후 200여 년을 이어왔다. 왜관, 그중에서도 초량왜관을 논하지 않고 부산의 역사를 살펴보기란 사실상 불가능할 만큼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초량왜관은 빼앗긴 것도, 수탈당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조선의 제도와 법령으로 왜인을 다스리고, 그들을 교화함으로써 일본을 사이좋은 이웃나라로 만든 공간이다. 왜인들에게 교역을 허락하고, 그들과 문화를 교류하면서 200년 동안 조·일 두 나라의 평화를 이뤄냈다. 초량왜관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화평 비용으로 왜인들에게 빌려준 것이다. 이 책에서는 간략하게 왜관의 역사를 기술하고 조선 시대 후반기에 설치된..

조선통신사 일본견문록

책소개 재일역사학자 강재언이 조선시대에 일본을 다녀간 조선통신사들의 기행문을 통해서 조선과 일본의 교류사를 정리하고 양국이 어떤 미래를 열어가야 할지를 조망한 책이다. 경제적 풍요와 열린 사고를 바탕으로 다양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려 애쓰는 당시 일본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해외 유출이 금지된 조선의 서적까지도 발행하고, 통신사의 방일을 유교에 관한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계기로 활용한 일본인의 모습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일본의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 후기로 갈수록 통신사를 조공사절로 격하시키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진구황후가 원정한 이후 한국은 일본에 복종하여 조공을 바쳤다는 조공국사관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저자는 당시의 시대상과 함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묘하게 변해가는..

일본으로간 조선 선비들

소개 조선통신사란 무엇인가, 그들은 왜 일본으로 갔나? 조선통신사란 조선 후기, 17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 일본에 파견되었던 사신(使臣)이자 문화사절단을 뜻한다. 1607~1811년 모두 열두 번의 사행이 있었다. 참여한 인원은 평균 470명가량이었고, 기간은 1년 정도 걸렸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 정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새로 건립한 막부(幕府, 바후쿠)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조선에 사행을 요청했다. 일본을 찾은 조선 사신의 행차는 도쿠가와 막부의 위상 과시와 민심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계산이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이 임진왜란을 복수하기 위해 일본을 침략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퍼져 있었기에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라도 조선과의 관계 회복이 절실했던..

조선통신사의 길에서 오늘을 묻다

책소개 현황파악조차 안 된 조선통신사 관련 국내 유산을 발로 뛰며 1차적으로 정리한 보고서다. 조선통신사의 노정은 국내노정과 일본노정으로 나뉘는데, 국내 노정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하행(下行) 노정과 일본에서 돌아온 사행이 부산을 출발하여 서울에 이르는 상행(上行) 노정으로 이루어진다. 서울에서 출발한 조선통신사 행렬은 충주를 거쳐 문경새재를 넘어 영천, 경주, 울산을 지나 동래로 들어와서는 일본으로 향하는 배를 띄울 때까지 머물렀다. 일본에 들어가 에도에서 관백에게 국서를 전달한 뒤 다시 대마도를 거쳐 부산으로 들어온 사신은 사행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한양으로 바삐 길을 나서는데, 이때는 “갈 때는 좌도(左道)를 거치고 올 때는 우도(右道)를 거친다”(『춘관지(春官志)』)는 원칙에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