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전쟁교훈여행 (2010~) (여행지) 190

철원 미육군 공병부대 전적비

미육군 공병부대 전적비 한국전쟁당시 미 육군 공병은 최선봉에서 적과 싸우며 기동부대의 전진로와 보급로를 건설하고, 후퇴 시에는 아군의 안전한 철수를 위해 장애물을 설치하며 가장 늦게 전장을 떠나는 방패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한탄강 일대의 험준한 산악과 단애로 형성된 하천은 공병의 임무수행을 매우 어렵게 하였다.그러나 전통에 빛나는 미 공병부대는 성공적으로 모든 임무를 수행하여 공격부대 작전을 성공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대한민국국민이 미 육군공병을 잊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피와 땀으로 건설한 교량과 도로를 통해 수많은 피난민이 남에서 자유를 얻었고, 특히 전후까지 그들을 우리에게 장비와 기술을 제공하여 한국의 전후 복구와 경제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한탄강 일대의 험준한..

철원경찰서지 터

철원경찰서지 소재지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 청사의 정확한 건립연대는 모르겠으나, 일제 식민 통치기구에 의해 간행된 "철원읍지"에 의하면 1937년 당시 경찰본서 인원은 36명 이었으며 철원역전 주재소를 비롯하여 관내 10개주재소와 1개의 출장소가 설립되어 있으며, 주재소마다 4명의 경찰력을 배치하여, 일제 식민통치의 전위기구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광복 후 일본이 물러간 자리에는 소련군이 주둔하여 사령부로 사용하였으며, 이후 인공치하에 서는 군내무서로 사용되었다. 6.25전쟁 당시 노동당사와 더불어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었으나 후에 완전히 현재 그 터만 남아있다.

철원 노동당사

철원 노동당사 (등록문화제 제22호) 이 건물은 1945년 8.15해방후 븍한이 공산독재정권 강화와 주민통제를 목적으로 건립하고 6.25전쟁까지 사용된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서 악명을 떨치던 곳이다. 북한은 이 건물을 지을때 성금이라는 구실로 1개 리당 쌀 200가마씩 착취 하였으며, 인력과 장비를 강제 동원하는 한편, 건물의 내부작업 때는 비밀유지를 위하여 공산당원 이외에는 동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멘트와 벽돌조적만으로 지어진 무철근 3층 건물로써 당시 이건물 일대는 인구3만명이 살았던 철원읍 시가지 이었으나 6.25전란으로 모두 파괴되었고 유일하게 노동당사 건물만 남아 있다. 여기저기 포탄자국과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는 노동당사는 6.25전쟁의 아픔과 비극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대표적인 건물이..

최악의 지옥섬 (하시마탄광)

최악의 지옥섬 (하시마탄광) 섬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외관상으로는 극도의 황량함이 섬 전체를 감돌고 있다.보통 섬을 둘러싸고 자라는 울창한 숲이 이 주변에는 없다. 모래갈린 해변 조차 볼수 가 없었다.수목이 자라지 않는 불모의섬 오직 시멘트로 싸바른 10m높이의 방파제가 섬과 바다의 경계를 두루고 있어 자연이 아닌 인공섬의 분위기를 물씬 퐁겼다. 섬전체가 탄광으로 개발된곳 , 바다속 지하 곳곳으로 수백 미터씩 갱도를 파내려간 전형적인 해저 탄광이다. 미쓰비시 광업은 다카시마 탄광에이어 1890년 하시마탄광을 인수 했다. 이곳 석탄은 순탄 발열량이 높고 유황과 인의 함유량이 적은 최고급탄으로 , 주로 제철이나 선박용으로 쓰였다가 . 일제가 전쟁에 광분하면서 하시마탄광은 채탄량을 증가시키라는 심한 압박을 받았..

미쯔비시 나가사키조선소

자이언트 캔틸레버크레인 지금도 가동되고 있는 일본 최초의 전동크레인 . 자이언트캔틸레버 크레인은 조선업의 형성기였던 미스비시 합자회사 시대에 조선소 공장 설비의 전자화에 맞춰 동형으로는 일본에서 최초로 건설된 전동크레인 입니다. 이 크레인은 영국 애필비사가 제조한 것으로 전동 모터로 구동되는 당시로써 최신식 크레인 이었습니다. 원동기와 보일러 등의 대형기계를 선박에 싣거나 내리는 데 사용하기위해 1909년에 조선소의 기계공장 부근의 아쿠노우라 안벽에 설치되었습니다. 이후 자이언트 캔틸레버 크레인 1961년에 공장 확보공사로 인해 해체된후 미즈노우라 안벽 (현재의위치)으로 이전 되었습니다. 지금도 가동되고 있는 이 크레인은 기계공장에서 제조한 증기 원동기와 대형 선박용 플로펠라의 선적용으로 사용되고 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