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한일관계사 연구 (책소개) 396

재일 한국인의 역사

책소개 재일 한국인의 역사가 형성된 기점을 1905년 을사조약때부터라고 한다면 거의 1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재일 한국인의 역사에 대해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잇는 책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 책은 재일 한국인의 부모가 자녀들에게 가르치기에 참고가 될 수 있으리라는 취지에서 쓰여진 '재일 한국인의 역사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본서는 재일 한국인을 전체적으로 포괄하여 객관적인 역사 사실을 전하고자 하였다. 즉 사실 중심의 태도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해방 전과 해방 후의 재일 한국인의 역사와 사회에 대하여 정밀하게 서술하였다. 목차 머리말-재일 한국인의 역사를 전하기 위하여 역사 교과서 재일 한국인의 역사 읽기-김인덕(성균관 대학교 동아시아 학술원)..

일본 속의 백제 구다라

책소개 일본 속에 남아있는 백제 문화의 영향을 살펴보고 있다. 목차 머리말 - 구다라나이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다 - 고대에 오사카로 진출했던 백제인들의 생생한 모습 고대 백제인 터전 오사카 중심지 '남백제초등학교'의 오늘 백제인 대화백으로 이름났던 구다라노 가와나리 고대 왜왕실의 백제인 장관 사케노키미의 터전 오사카 시내 한복판의 '백제대교''백제왕신사' 일본 왕실에서 세운 구다라스의 '백제사 사적공원' 부여 왕흥사 터 발굴 문화재와 일본 아스카 백제 불교 - '백제옷'입었던 왜왕실의 만조백관 성왕 때 건너간 백제 재봉사 백제 왕족이 일본에 전한 견우 직녀의'7월7석' 전설 오사카 땅의 광대한 구다라스 터전 - 백제 부여의 구드래, "구다라는 큰나라" 오사카 심장부 난바와 백제 "일본인의 조상은 한반..

전란기 대마도

목차 백촌강전투와 대마도|이근우 고려 말의 왜구와 대마도|이영 1419년 대마도 정벌의 의도와 성과|이규철 삼포왜란의 발생원인과 대마도|심민정 임진왜란과 강화교섭 - 쓰시마번과 고니시 유키나가를 중심으로|이계황 러일전쟁과 대마 - 황궁의 대화재와 '대마도해전'의 성격을 중심으로|이민원 태평양전쟁과 대마도|김윤미 참고문헌

부산과 대마도 2천년

책소개 부산에서 보는 대마도, 대마도에서 보는 부산은 오랜 한일관계사 속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제라고 할 수 있다. 흔히 한일관계사라는 용어를 쓰지만, 특별한 시기를 제외하면 그 핵심은 부산 혹은 경남지역과 대마도의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과 대마도의 관계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일관계사를 논의한다는 것은 성급한 일이라고 해도 지난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바로 부산과 대마도의 오랜 관계를 조망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목차 제1장 대마도와 고대한일관계사 정효윤 제2장 통일신라시대의 對馬島 이근우 제3장 고려말,조선 전기의 왜구와 대마도 이 영 제4장 조선 전기의 부산과 대마도 하우봉 제5장 조선 후기 부산과 대마도 鄭成一 제6장 幕末ㆍ明治 초기 對馬州 정치사 개관 현명철

대마도의 진실

책소개 “대마도는 원래 우리 땅이다!” 지리학적 관점에서 고찰한 대마도 본격 이해서 우리나라에서 배를 타고 1시간 3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외국 땅이 있다. 바로 지금의 일본 땅, 대마도이다. 일본 본토보다 한반도와 더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마도에는 실제로 일본인보다 한국인 방문객이 훨씬 많다. 한국 사람들이 이처럼 대마도를 많이 찾는 이유는 우리의 역사가 대마도에 고스란히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상고 시대부터 대마도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고, 대륙에서 해양으로 전파되는 문물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였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징검다리 역할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삼국 시대 이래로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 속한 우리의 영토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

통신사를 따라 일본 에도시대를 가다

책소개 조선시대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된 ‘통신사’들에 대한 얘기다. 특히 1592년 발생해 7년간 참화를 빚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 에도시대에 파견된 사신들에 대한 얘기다. 지금까지 통신사는 ‘조선통신사’의 이름으로 여러 곳에서 출간되어 왔지만, 일본학자나 재일사학자의 저서 혹은 한일간 공동연구의 결과물이 번역되어 나온 것이고, 모두 학술서의 범주에 있어, 일반독자들이 ‘통신사’ 하면 공부하는 사람들이 연구하는 주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에도시대의 기행문’을 연구하였으며, 일문과 교수로 재직하는 지금도 에도시대에 관심을 가지고 통신사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저자는, 통신사에 대한 관심이 학자층에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 책의 집필 동기로 들고 있다. 목차 책을 내면서 들어가는 ..

조선의 최고외교관 이예

책소개 세종의 치세를 만든 이예의 삶과 외교 리더십 우리나라가 특별히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거나, 영토가 넓은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대국들 사이에서 수천년을 생존해 온 것은 역대 왕조에서 지속해온 "실용외교"가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강대국 사이에서의 '불리한' 지리적 위치를 사대교린이라는 외교 정책으로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한 점에서 우리는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이예: 조선 최고의 외교관』에서는 이 '사대교린' 외교 정책을 가장 뛰어나게 추진한 세종 시대의 외교에 대한 연구와 답사의 결과물이다. 이예는 세종대 1400년부터 1443년까지 40여 차례가 넘게 매년 한 차례씩 현해탄을 건너가 667명의 포로를 송환해오는 등 대일 외교의 중심적인 활약을 한 인물이다. 이 책은 크게 이예가..

초량왜관

책소개 초량왜관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한다. 부산포에는 470년 동안 왜관이 존재했었다. 그중 후반기인 1678년(숙종 4) 새띠벌 초량에 왜관을 설치한 이후 200여 년을 이어왔다. 왜관, 그중에서도 초량왜관을 논하지 않고 부산의 역사를 살펴보기란 사실상 불가능할 만큼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초량왜관은 빼앗긴 것도, 수탈당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조선의 제도와 법령으로 왜인을 다스리고, 그들을 교화함으로써 일본을 사이좋은 이웃나라로 만든 공간이다. 왜인들에게 교역을 허락하고, 그들과 문화를 교류하면서 200년 동안 조·일 두 나라의 평화를 이뤄냈다. 초량왜관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화평 비용으로 왜인들에게 빌려준 것이다. 이 책에서는 간략하게 왜관의 역사를 기술하고 조선 시대 후반기에 설치된..

조선통신사 일본견문록

책소개 재일역사학자 강재언이 조선시대에 일본을 다녀간 조선통신사들의 기행문을 통해서 조선과 일본의 교류사를 정리하고 양국이 어떤 미래를 열어가야 할지를 조망한 책이다. 경제적 풍요와 열린 사고를 바탕으로 다양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려 애쓰는 당시 일본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해외 유출이 금지된 조선의 서적까지도 발행하고, 통신사의 방일을 유교에 관한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계기로 활용한 일본인의 모습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일본의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 후기로 갈수록 통신사를 조공사절로 격하시키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진구황후가 원정한 이후 한국은 일본에 복종하여 조공을 바쳤다는 조공국사관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저자는 당시의 시대상과 함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묘하게 변해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