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세계사 이해 (책소개)/1.세계사

발밑의 세계사 (2023) - 페르시아전쟁부터 프랑스혁명까지, 역사를 움직인 위대한 지리의 순간

동방박사님 2024. 6. 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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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오늘의 세계를 만든 결정적 사건들의 배후에는
언제나 ‘지리’가 있었다!

지리를 통해 역사의 행간을 밝히는 책. 지형지물, 기후, 자원, 자연재해 등 지리는 시간의 지층 깊은 곳에 묻힌 역사의 동인을 캐내는 강력한 도구다. 즉 지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이라도 새로운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서양과 동양의 탄생부터 현대 지정학 질서의 발단까지, 지난 2000년의 굵은 마디마다 지리의 힘을 포착해낸 이 책에서 독자는 활자 위주의 평면화된 ‘역사 서술’ 대신 발밑에서 생동하는 입체적인 ‘역사 경험’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지리가 허락한 역사

1부 탄생, 충돌, 분열하는 공간: 동서 문명의 기틀을 다진 전쟁들

1장 서구 문명의 근거지, 지중해 세계의 탄생: 페르시아전쟁
오리엔트 세계의 지배자, 페르시아│지중해 세계의 흙과 물│두 세계의 충돌│제1차 페르시아전쟁이 시작되다│지형을 활용해 승리한 마라톤전투│진정한 그리스의 탄생│지정학적 필연, 제2차 페르시아전쟁│기후까지 활용한 아르테미시온해전│300 용사, 협로를 지키고 우회로에 당하다│바다 위에 나무 방벽을 세운 살라미스해전│서구 문명의 영역성과 정체성

2장 중국 통일과 동아시아 문명의 개화: 초한전쟁
관중의 진나라, 양쯔강의 초나라│시대의 풍운아, 항우와 유방│고대 중국의 지정학적 중심지, 관중│관중왕의 명분을 얻고 몸을 낮춘 유방│스스로 변방을 택한 갓 쓴 원숭이, 항우│길을 파악하고 인재를 모으다│승리를 돕고 패배를 만회케 하는 공간의 힘│유방의 특급 작전과 항우의 최후│동아시아 문명의 영역성과 정체성

3장 유럽 문명의 바탕이 된 로마의 굴기: 포에니전쟁과 갈리아전쟁
켈트족과 카르타고가 양분한 땅과 바다│땅과 바다를 잇는 반도국, 로마│바다 대신 땅을 선택한 카르타고의 근시안│코끼리는 왜 알프스산맥을 넘었을까│지정학적 안목으로 지중해의 패자가 된 로마│대륙에 그어지는 전선│통일된 땅, 통일된 힘│유럽의 영역성과 정체성

4장 기후변화와 분열하는 유럽: 훈족의 서진과 서로마제국의 멸망
동아시아를 덮친 기후변화│흉노족의 서진과 훈족의 탄생 비화│제국의 적은 기후변화와 자연재해?│분할 통치라는 묘책, 또는 미봉책│로마 영토 안으로 들어온 최초의 게르만족│동서로 쪼개진 로마│신의 채찍, 신의 재앙, 신의 심판자│서로마제국의 멸망과 분열하는 유럽

2부 교차하는 길: 이슬람 문명과 실크로드

5장 실크로드가 바꾼 중앙아시아의 색: 불교에서 이슬람으로
불교의 땅, 고대 중앙아시아│기후변화에 힘입어 중국을 통일한 당나라│지정학적으로 유일한 선택지, 서진│‘상인의 종교’ 이슬람의 탄생│종교적 열심으로 나선 호랑이 사냥│당나라와 이슬람제국, 실크로드에서 충돌하다│들불처럼 번져가는 반당 정서│탈라스전투와 이슬람 세계로 편입되는 중앙아시아│당나라의 자멸│이슬람 문명의 영역성과 정체성

6장 길을 둘러싼 두 신성함의 대립: 십자군전쟁의 다중스케일적 접근
봉건혁명과 쇠퇴하는 가톨릭교회: 서유럽 스케일│부활을 꿈꾸는 상처 입은 독수리: 동로마제국 스케일│강대한 제국 이면의 분열상: 이슬람 세력 스케일│튀르크족이 빼앗은 그리스도교 세계의 중심: 예루살렘 스케일│성지순롓길이자 무역로이며 군용로가 된 십자군의 길│적의 시체를 먹는 악전고투 끝에 성지를 탈환하다│이슬람 세계라는 바다 위 작은 섬, 십자군 국가│단결하는 이슬람 세계와 계속되는 십자군전쟁│완벽히 그리스도교 세계가 된 서유럽│튀르크족이 차지한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

7장 팍스 몽골리카와 실크로드의 부흥: 기후와 인구로 보는 몽골제국 팽창사
기후변화가 기름 부은 몽골족의 분열│‘전 세계의 군주’ 칭기즈 칸의 탄생│가뭄이 그치고 비가 내리니 말이 살찐다│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거침없는 몽골제국의 팽창│유목과 농경의 영역을 아우르는 세계제국│몽골제국의 분화와 원나라 건국│세계를 잇는 하나의 길│몽골제국은 있어도 몽골문명은 없다│팍스 몽골리카가 새로 그린 세계지도

8장 무너진 동방의 방파제: 오스만제국의 굴기와 동로마제국의 멸망
동서에서 몰아치는 쓰나미│오스만제국의 부흥, 아나톨리아반도를 넘어 발칸반도로│티무르제국 덕분에 기사회생한 동로마제국│콘스탄티노플에 감도는 전운│참수 요새와 오르반의 거포│지리적으로 완벽한 천혜의 요새와 삼중 성벽│동로마제국의 장렬한 최후│흑해를 향해 치달리다│잔해 속에서 움트는 근대의 싹

9장 실크로드의 부활: 티무르제국의 흥망성쇠와 빛나는 유산
팍스 몽골리카의 황혼기│트란스옥시아나를 통일한 티무르│확장, 또 확장하는 제국│명나라를 눈앞에 두고 멈추다│실크로드를 따라 꽃핀 이슬람 르네상스│전 세계로 퍼져나간 티무르제국의 유산│인도반도에서 깃발을 올린 무굴제국│화약과 종교의 힘으로 인도반도를 통일하다│중앙아시아의 영역성과 정체성

3부 민족의 이름으로 그어지는 선: 근대 민족국가의 탄생

10장 한·중·일 지정학의 탄생: 임진왜란의 다중스케일적 접근
신항로 개척으로 세계와 연결되는 동아시아│해금 정책이 키운 밀수 천하: 명나라 스케일│남쪽의 왜 대신 북쪽의 오랑캐에 집중하다: 조선 스케일│전국 통일로 우뚝 선 동아시아의 신흥 강국: 일본 스케일│도요토미의 확고한 야심, 무사들의 불안한 충심│왜구가 아닌 왜군을 맞닥뜨리게 된 조선│동아시아 국제 질서 수호를 위해 참전한 명나라│임진왜란과 기후변화가 앞당긴 멸망: 명나라 스케일│전란의 상처에서 솟아난 근대 민족국가의 씨앗: 조선 스케일│에도막부의 등장과 중앙집권화: 일본 스케일

11장 신의 땅에서 국가의 땅으로: 삼십년전쟁과 베스트팔렌조약
서유럽의 흔들리는 종교 질서│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로 점철된 종교개혁│종교전쟁의 불씨를 품은 분열된 땅, 독일왕국│집시의 땅에서 삼십년전쟁이 시작되다│종교가 중요하지 않은 종교전쟁│독일왕국을 구원한 북방의 사자│개신교도의 마지막 희망이 된 가톨릭 국가│누구도 승리하지 못한 싸움과 베스트팔렌조약│국민, 영토, 주권 개념의 탄생

12장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지정학: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전쟁
프랑스왕국의 기세를 꺾은 칠년전쟁│절대왕정을 뿌리부터 흔드는 계몽주의와 자유주의│북아메리카에서 울려 퍼지는 자유의 외침│〈미국독립선언문〉의 정신│프랑스왕국의 지원과 미국의 승리│인류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국│감옥 문을 열어젖히며 시작된 프랑스혁명│내우외환의 위기에 흔들리는 혁명정부│혁명 정신을 배신한 황제 나폴레옹│혁명 정신을 유럽 곳곳에 전파한 나폴레옹전쟁│근대 민족국가의 탄생

에필로그│신냉전의 역사지리학
 

저자 소개 

저 : 이동민
대구교육대학교를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지리교육과에서 교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진주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이자, SSCI에 등재된 국제적인 학술지 《Journal of Geography》의 편집위원이다. 지리학의 시각으로 지구사, 문명사, 전쟁사를 해석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초한전쟁》(2022 경기도 우수출판물 제작지원 선정), 《기후로 다시 읽는 세계사》가 있고, 역서...

책 속으로

세계사는 이처럼 끊임없이 지리에 영향받아왔다. 위대한 영웅도, 거대한 제국도 영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태평양은 마르지 않고 알프스산맥은 무너지지 않는다. 산맥과 바다, 하천 같은 지형부터 기후와 자원까지, 지리는 역사의 상수다. 과거에서 미래의 실마리를 찾고자 역사를 돌아볼 때 지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 p.9, 「프롤로그│지리가 허락한 역사」중에서

그렇다면 페르시아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또 압도적인 국력을 과시했던 페르시아는 왜 패배했을까. 이에 대해서는 페르시아의 무리한 확장 정책, 아테네의 민주주의와 그리스 중장보병 전술의 우수성 그리고 그리스인들의 용기 등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전에 페르시아전쟁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페르시아가 왜 다른 곳도 아닌 하필 그리스 방향으로 진출하려 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즉 지중해 동쪽의 에게(Aegean)해와 아나톨리아반도의 지리적 위치와 지정학적 특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p.24, 「1장 서구 문명의 근거지, 지중해 세계의 탄생: 페르시아전쟁」중에서

그런데 초한전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양한 인물 간의 관계뿐 아니라, 중국이라는 거대한 공간을 살펴보아야 한다. 유방과 항우의 대두는, 그 직전까지 중국을 다스린 진(秦)나라의 지정학적 상황과 관계가 있다. 또한 ‘금의환향’이라는 고사성어는 항우의 부족한 지정학적 안목을 대변한다. 한편 유방은 고대 중국의 중심지였던 관중을 장악해 항우를 꺾을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 초한전쟁은 ‘한족(漢族)’이나 ‘한자(漢字)’ 등의 용어가 시사하듯 한 왕조의 성립과 함께 ‘중국’이 등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 p.56, 「2장 중국 통일과 동아시아 문명의 개화: 초한전쟁」중에서

이처럼 전쟁이 계속될수록 전황은 카르타고에 유리해지는 듯했다. 그런데도 제1차 포에니전쟁은 카르타고의 패배로 끝났다. 바로 ‘땅’ 때문이었다. 카르타고의 정권을 장악했던 지주 계급은 지중해 대신 북아프리카로 눈을 돌렸다. (…) 땅(북아프리카)에 집중한 카르타고의 지정학적 판단과 바다(지중해)에 집중한 로마의 지정학적 판단의 차이가 전쟁의 판도를 뒤집은 것이었다. 이는 훗날 벌어질 제2차 포에니전쟁의 향방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서구 문명이 지중해를 핵심 영역으로 삼아 꽃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p.91~92, 「3장 유럽 문명의 바탕이 된 로마의 굴기: 포에니전쟁과 갈리아전쟁」중에서

기원전 2세기부터 400여 년간, 즉 흉노족이 한랭한 기후에 시달렸던 때 로마는 살기 좋고 농사짓기 좋은 기후를 누렸다. 이 무렵 유럽에서 만들어진 유물 따위를 조사하면 대기 중 탄소-14의 양이 다른 때보다 현저히 높다. (…) 즉 탄소-14의 양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햇볕이 잘 내리쬈다는 뜻이다. 또한 역시 같은 시기에 생성된 그린란드의 빙핵(氷核)을 살펴보면 염소의 농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 즉 염소 농도가 낮았다는 것은 기온이 높았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기원 전후 로마의 기후는 1년부터 1750년까지의 평균치보다 1도 정도 높을 만큼 온난 습윤했다.
--- p.116, 「4장 기후변화와 분열하는 유럽: 훈족의 서진과 서로마제국의 멸망」중에서

그렇다면 문명 교류의 무대는 왜 하필 중앙아시아였을까. 우선 고대에는 항해술과 조선술이 발달하지 않아 해로를 통한 교류가 제한되었다. 그렇다면 육로를 통해야 할 텐데, 북쪽의 시베리아는 사람들이 오갈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보다 약간 아래의 키질쿰(Kyzylkum)사막과 고비사막 또한 일부 오아시스를 잇는 길 외에는 오가기가 매우 어려웠다. 남쪽의 동남아시아는 열대우림이 우거진 탓에, 그보다 약간 위의 히말라야산맥, 헝돤(??)산맥, 티베트고원은 이동로가 너무 좁고 험준한 탓에 역시 교류가 힘들었다. 반면에 그 사이, 타림(Tarim)분지에서 카스피해로 이어지는 중앙아시아의 광대한 공간은 스텝과 오아시스로 가득해 대규모 상단의 장거리 이동에 어려움이 없었다. (…) 중앙아시아의 톈산(天山)산맥, 파미르(Pamir)고원, 힌두쿠시산맥 등은 매우 험준하지만 중간중간 통로가 있어 이동에 큰 문제가 없었다. 이런 지리적 이유들로 중앙아시아는 이미 기원전부터 문명 교류의 무대가 되었고, 고대 인도 왕조들은 파미르고원과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중앙아시아까지 지배했다.
--- p.136, 「5장 실크로드가 바꾼 중앙아시아의 색: 불교에서 이슬람으로」중에서

1210년대 이후 몽골의 기후가 급격히 변화했다. 태양의 활동이 약해져 기온이 떨어지며, 1211년부터 1215년까지 몽골에는 ‘우기’라 불릴 정도로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 그 덕분에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성하게 풀이 자랐으니, 특히 오아시스 주변은 목축이 가능할 정도였다. 자연스레 몽골인의 경제적·군사적 기반이었던 가축이 급증하면서 인구 부양력도 증가했다. 튼튼하고 강인한 군마가 많아지면서 몽골제국의 기병대는 병사 한 명이 세 마리가 넘는 말을 번갈아 타면서 상식을 뛰어넘는 기동력을 발휘했고, 이는 장거리 원정에서 빛을 발했다. (…) 몽골의 기후변화는 수 세기 전 동돌궐을 파멸시켰지만, 몽골제국에는 축복이었던 셈이다.
--- p.198~199, 「7장 팍스 몽골리카와 실크로드의 부흥: 기후와 인구로 보는 몽골제국 팽창사」중에서

과거의 연구자들은 몽골제국의 분열과 오스만제국의 대두 그리고 신항로 개척으로 실크로드가 결국 몰락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관점은 지나치게 서구 중심주의에 입각한 것으로 비판받고 있다. 무엇보다 몽골제국이 몰락한 뒤에도 그 후예를 주장하는 세력이 중앙아시아와 인도반도에서 거대한 제국을 일으켰다. 이로써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는 18세기까지 동서 교류를 담당할 수 있었다. 그 중심에 티무르제국이 있었다. (…) 중앙아시아를 아우르는 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잔학 행위와는 별개로, 그는 문화와 예술,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 실제로 정복지에서 수준 높은 문화를 꽃피웠다. 이로써 티무르제국은 공통된 종교와 균질한 문화를 향유하는 하나의 지리적 공간으로서 ‘중앙아시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 p.246~247, 「9장 실크로드의 부활: 티무르제국의 흥망성쇠와 빛나는 유산」중에서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쑥대밭이 되었다. 조선을 침공한 일본도, 조선을 지원한 명나라도 상당한 국력을 소모했다. 그런데 각국의 피해 정도와 별개로, 임진왜란은 무엇보다 거대한 스케일의 ‘동아시아 전쟁’이었다. 우선 일본의 진짜 목적은 조선이 아니라 명나라 정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명나라는 조선, 즉 한반도의 지정학적 이점을 내어주지 않고자 대규모 병력을 파견했다. 결국 동아시아 전쟁으로 비화한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전체의 지정학적 변화를 낳았다. 따라서 임진왜란은 조선, 명나라, 일본, 동아시아라는 다양한 스케일을 아우르는 다중스케일적 접근에 따라 해석할 필요가 있다.
--- p.275~276, 「10장 실크로드의 부활: 한·중·일 지정학의 탄생: 임진왜란의 다중스케일적 접근」중에서

그런데 영토주권 개념은 사실 근대의 산물이다. 과거에는 정복 전쟁, 왕위 계승, 영지 상속 등 다양한 이유로 국가의 영토가 바뀌는 일이 적지 않았다. 국가만이 영토를 배타적으로 지배한다는 생각도 옛사람들에게는 생경했다. (…) 영토에 관한 이러한 인식이 달라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영토주권 그리고 이에 토대한 근대 민족국가의 형성 과정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존재한다. 하지만 적어도 서양사를 놓고 본다면, 그 계기는 1648년 체결된 베스트팔렌조약이었다. 그리고 이는 종교개혁이 초래한 삼십년전쟁의 결과물이었다.
--- p.305~306, 「11장 신의 땅에서 국가의 땅으로: 삼십년전쟁과 베스트팔렌조약」중에서

앞 장에서 살펴보았듯 삼십년전쟁과 베스트팔렌조약을 거치며 유럽의 지정학적 질서는 꽤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영토 개념이 뚜렷한 근대 민족국가의 등장은 그 질서를 한층 공고히 했다. 그런 상황에서 유럽 열강은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다툴 새로운 공간으로서 ‘신세계’ 미국에 주목했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그 신세계에서 유럽의 절대주의를 대신할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씨앗이, 유럽의 계몽주의에 영향받아 자라났다는 것이다. 그렇게 맺은 신세계의 열매는 프랑스를 통해 다시 유럽으로 역수입되었다. 한마디로 사상의 지정학 또한 재편되었던 셈인데, 이는 현실에서의 혁명과 전쟁을 통해 유럽의 지정학적 질서를 다시 한번 뒤흔들었다.
--- p.338, 「12장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지정학: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전쟁」중에서

문명이 탄생한 이래 역사와 세계를 재단해온 지정학은, 그 세부적인 사항이 달라졌을 뿐 21세기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냉전이 끝난 뒤 세계가 다툼과 적대를 그만두고 형제처럼, 친구처럼 가까워지리라는 사람들의 바람과 달리, 각지의 국가와 민족 집단 사이에서 영역과 영토를 둘러싼 전쟁과 분쟁이 이어져왔다. 그리고 21세기가 시작된 지 20년도 더 지난 2023년에는, 신냉전이라는 새로운 갈등의 지정학적 질서가 고개를 들고 있다.
--- p.400, 「에필로그│신냉전의 역사지리학」중에서

출판사 리뷰

“지리를 보지 않으면, 역사의 절반을 보지 않는 것!”

지리가 없다면
서양도, 동양도, 수많은 전쟁과 혁명도 없다.
인간보다 더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
2000년 ‘지리사’를 한 권에 담다.


역사는 ‘사람의 이야기(he-story)’로만 정의할 수 없다. 물론 위대한 정복자와 탐험가, 천재들의 활약으로, 또 그들이 세운 나라와 제국, 문명의 흥망성쇠로 역사는 약동한다. 하지만 우리 발밑에 이 모든 이야기의 밑그림이 존재한다. 즉 지난 수천 년간 계속된 인간 활동은 지리가 만든 홈과 틈을 따라 흘러왔다. 그러니 ‘지리사’를 알면 서양사, 동양사, 문명사 등 수많은 역사의 지류를 단번에 꿰뚫을 수 있다. 한마디로 “지리는 역사의 상수다.”

역사지리학자 이동민은 이 책에서 지난 2000년간의 역사를 수놓은 질문들에 지리로 답한다. 페르시아전쟁부터 나폴레옹전쟁까지 12번의 핵심 전쟁은 ‘왜’ 벌어졌을까. 유럽부터 동아시아까지 인류의 7대 활동 무대는 ‘언제’ 등장했을까. 라틴족부터 몽골족까지 이름난 민족들은 ‘어떻게’ 세력을 확장했을까. 이러한 질문들의 실마리는 모두 지리에서, 즉 산맥과 바다, 태양흑점과 기후변화, 심지어 자연재해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지표상의 여러 현상과 단위를 아우르는 ‘다중스케일적 접근(multiscalar approach)’으로 얼핏 분절되어 있는 사건들의 연결 고리를 포착해 역사 해석의 깊이를 더한다.

책은 바로 이 ‘지리적 문해력’으로 가득하다. 세계사의 결정적 분기들을 교과서처럼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낯익은 인물과 사건의 틈바구니에서 새로운 맥을 짚어낸다. 이는 여전히 지리에 둘러싸여 사는 우리에게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상상할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역사라는 거대한 수레바퀴를 돌리는 축으로서, 지리의 영향력은 축소되지 않았다.

“역사의 배경에서 역사의 주체로!”
지리를 품은 역사, 역사가 된 지리


지리라 하면 높디높은 산맥이나 마르지 않는 바다처럼 거대한 자연물을 떠올릴 것이다. 이것들은 움직이지 못한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움직인다. 최근의 예가 러우전쟁이다. 우크라이나는 거칠 것 하나 없는 거대한 평야 지대이자 흑해를 품은 교통의 요지다. 유럽과 러시아라는 두 경쟁 세력이 맞붙는다면, 그곳은 지리적으로 우크라이나일 수밖에 없다. 그런즉 “러우전쟁은 지리가 빚어낸 전쟁”이다(6쪽, 399~400쪽).

놀랍게도 비슷한 일이 유사 이래 반복되어왔다. 수많은 세력이 지리 덕분에 굴기하고, 지리 탓에 멸망했다. 그 결과 세계는 연결되고, 또 분열되었다. 한마디로 “지리는 역사 내내 인류의 삶을 지배해왔다.” 공중의 기후뿐 아니라 땅 위의 지형지물, 땅 밑의 자원 등 지리가 제공하는 여러 렌즈로 역사를 바라본다면, 더욱 깊숙한 이야기와 만나게 된다.

[모든 전쟁은 지리 전쟁이다: 산맥과 바다 그리고 공간]

우리가 종종 잊는 사실이지만, ‘서양’, ‘동양’ 같은 공간은 만들어진 것이다. 기원전 492년 시작된 페르시아전쟁은 그중 서양의 탄생에 크게 이바지했다. 서아시아 일대를 지배한 페르시아가 하필 서쪽으로 진출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페르시아 남쪽의 아라비아반도와 아프리카는 사막뿐이었고, 북쪽의 흑해와 카스피해는 기름진 초원에 꼬인 유목 민족들로 가득했다. 동쪽은 거대한 힌두쿠시산맥 때문에 세상의 끝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이 페르시아의 진출 방향을 결정지었다. 이 외부의 적을 맞아 독자적인 세력들로 쪼개져 있던 그리스가 단일한 ‘영역성’과 ‘정체성’을 형성했다(24~34쪽). 이것이 서양 문명의 뿌리가 되었으니, 이는 훗날 로마로 계승되어 지중해와 유럽 전역에 이식되었다.

한편 동양의 탄생은 기원전 206년의 초한전쟁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진나라 다음으로 천하를 통일한 항우는 자신의 거처를 황해에 면한 서초에 두었다. 변방인 이곳은 사통팔달의 요지이자 농업 생산성이 높은 천하의 중심 중원과 7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다. 반면에 항우의 수하였던 유방은 서초의 정반대편 서쪽 끝에 있는 한에 자리 잡았다. 산맥으로 둘러싸인 한 또한 변방으로 보였으나, 잔도(棧道)를 따라 중원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62~73쪽). 이로써 중원을 선점한 유방이 항우를 꺾고 한나라를 세우며 진정한 천하의 주인이 되었다. 한나라는 한자와 한족의 기원이 되었고, 유교와 도교를 발전시켰으며, 무려 현대 중국까지 이어지는 군현제와 관료제 체제를 완성했다. 결국 서초와 관중의 지리적 차이가 “중국과 동아시아의 형성으로 이어”진 셈이다(81~82쪽).

[제국의 흥망을 결정하다: 기후와 길]

로마제국의 역사는 곧 기후와 길의 역사였다. 유물, 또는 빙하 속에 녹아든 탄소의 양을 조사하면, 기원전 2세기부터 400여 년간 유럽의 기후가 농사에 매우 적합했음이 드러난다. 이는 로마제국의 최전성기와 정확히 일치하니, 높아진 농업 생산성에 힘입어 부국강병의 문을 열었을 것이다. 이 경제력과 군사력이 ‘로마 가도’를 따라 지중해 세계 곳곳에 투사되며 천년제국의 등장을 알렸다. 이러한 관점은 로마제국 굴기의 원인을 뛰어난 정치체제에서 찾는 기존 역사 해석의 빈틈을 메운다(116~118쪽).

비슷한 상황이 13세기에도 반복되었다. 당시 태양 활동의 약화로 몽골고원에는 역사상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그 덕분에 풀이 가득 자라자 몽골족은 말을 잔뜩 길러 힘을 키웠다. 이것이 칭기즈 칸을 중심으로 한 몽골족 통일과 몽골제국 건국의 배경이다(192~199쪽). 곧 금나라를 제압한 몽골제국은 서쪽의 중앙아시아로 말을 몰았다. 지도를 펼쳐 중앙아시아 주변을 살펴보면, 동쪽에는 바다가, 북쪽에는 시베리아가, 남쪽에는 사막이 펼쳐져 있다. 이런 이유로 고대부터 중앙아시아는 동서를 잇는 거의 유일한 육상 교통로였는데, 그 중심에 실크로드가 있었다(135~137쪽). 몽골제국은 이 실크로드를 따라 유례없는 속도로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흑해까지 뻗어나갔다(199~203쪽, 209~214쪽).

[근대 국민국가가 탄생하다: 인간이 그은 경계]

공간과 길 위에서 역사를 써 내려간 여러 세력은 각자의 이익을 놓고 충돌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산맥과 바다, 강과 숲 같은 자연적인 경계에서 벗어나, 인공적인 경계를 긋는 일이 잦아졌다. 이는 수많은 피와 함께, 근대 국민국가(민족국가)의 씨를 뿌렸다.

시작은 유럽이었다. 3세기 이후 로마가 쇠락하며 수많이 세력이 궐기하자 유럽은 갈등과 충돌로 들끓었다(128~131쪽). 이들을 그나마 유럽 문명의 이름 아래 묶어준 것이 기독교였는데, 교권 또한 세속의 경제적·정치적 이익 앞에 힘을 잃기 일쑤였다. 결국 이 모든 갈등이 종교를 명분 삼아 폭발, 1618년 삼십년전쟁이 시작되었다(310~314쪽, 320~323쪽). 이후 30년간 계속된 전쟁에 질린 유럽인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종교와 정치체제를 자유롭게 정하자는 베스트팔렌조약에 합의했고, 서로 간에 새로운 경계를 그었다. 오늘날의 국경선으로 이어지는 이 경계 안에서 주권과 국민(민족) 개념이 뿌리내렸다(329~336쪽).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싹을 틔운 근대 국민국가에 1789년의 프랑스혁명은 확실한 자양분을 제공했다. 이를 계기로 유럽이 왕의 공간(절대주의)에서 국민의 공간(자유주의, 민주주의)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354~358쪽, 369~371쪽). 이로써 공간은 부와 권력뿐 아니라 이념과 주의의 치열한 각축장이 되었으니, 이를 “사상의 지정학”이라 한다(337~338쪽).

“지리의 신은 누구에게 미소 지을 것인가”
역사의 안개를 환히 밝힐 다중스케일적 접근


이처럼 2000년 역사의 어느 페이지를 들춰봐도 그 행간에는 지리가 놓여 있다. 특히 시간이 갈수록 인간 활동과 지리의 접점은 넓어지고 깊어지며 복잡해졌다. 이에 맞춰 지리적 문해력의 수준도 높아져야 하기에, 최근 지리학에서는 다중스케일적 접근이 주목받고 있다. 공간과 길, 경계 등 지리와 관련된 다양한 요소를 한 번에 파악함으로써, 특정 사건과 현상 이면의 맥락을 꿰뚫기 때문이다(109쪽, 162쪽).

가령 1592년의 임진왜란을 다중스케일적 접근으로 살펴보면, 일본의 공격과 조선의 방어라는 영토 전쟁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우선 공간 스케일의 관점에서 보자면, 해양 세력(일본)은 고립을 피하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대륙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대륙 세력(명나라)은 기존 질서에 새로운 축이 더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 이때 반도 세력(조선)은 지리적 특성상 둘 사이의 완충 지대, 또는 분쟁 지대가 된다. 실제로 당시 일본은 한반도를 지나 중국을 거쳐 인도반도까지 가닿길 바랐다. 이런 점에서 임진왜란은 ‘조일전쟁’이 아닌 ‘동아시아 전쟁’이었다(288~298쪽). 여기에 길의 관점을 추가한다면, 신항로 개척으로 유럽과 연결된 명나라와 일본 사이의 ‘경제 전쟁’이기도 했다(276~280쪽, 284~288쪽). 이로써 임진왜란은 동아시아사뿐 아니라 세계사의 거대한 물결에 합류한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상황은 400여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은 한반도를 사이에 둔 채 충돌하고 있고, 크고 작은 무역 분쟁이 마치 전초전처럼 치러지고 있다. 각 세력의 수를 깊이 읽어낼 지리적 문해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오늘의 세계는 왜, 또 어떻게 움직이는가. 역사를 “좋은 예제” 삼아 지리의 힘을 포착한 이 책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