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기독교역사 (연구>책소개)/4.한국(세계)선교역사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회의 여성·의료 선교사 선교학 관점의 선교 활동 연구 (2022)

동방박사님 2023. 5. 23. 06:54
728x90

책소개

2022년은 미국 남장로교가 1892년에 한국으로 파송한 7인의 개척선교사들이 입국한 지 130년이 되는 해이다. 첫 한국 입국자는 여성 선교사 데이비스로 1892년 10월 17일에 제물포에 도착했고, 뒤이어 6명의 선교사가 도착했다. 이 책은 그들이 한국에서 펼친 선교 활동을 되짚어본 책이다. 일제강점기하에서 지난한 생활을 하던 한국 민중 사이로 어떻게 다가가 선교 활동을 했으며 한국인과 한국 사회를 도왔는지 살펴보았다. 이들은 모두 신앙의 순수성을 바탕으로 복음을 전하며 예수의 제자도를 실천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각자의 특징에 따라 확연하게 다른 선교사적 모습을 보였다. 자문화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한국인들의 친구가 되어 환영받았던 데이비스 선교사, 여성 교육을 주도했던 마요셉빈 선교사, 그리스도의 복음을 일상 삶으로 증언하며 가난한 한국인들을 섬기고 특히 불우한 여성들과 삶을 나누었던 서서평 선교사, 질병을 연구하고 의료 교육과 병원 자립을 도모하며 섬김의 정신을 실천했던 패터슨 의료 선교사, 순천의 안력산병원에서 가난한 환자들을 무료 진료하며 ‘작은 예수’로 불렸던 의사 선교사 로저스 등이다. 이러한 초기 선교사들의 자기희생적 삶은 오늘날 점점 희석되어 가는 선교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는 동시에 섬김의 정신이 부족한 한국교회의 반선교적 현실에 조그만 울림을 던진다. 또한 이 책은 전 세계에 흩어져 복음을 전하는 한국 선교사들에게 초기 한국의 외국인 선교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목차

머리말

1장 _ “우리 선교사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람”: 해리슨 부인 선교사(Mrs. Linnie F. Davis Harrison, 1892~1903)

I. 서론
II. 데이비스의 신앙 배경과 한국 입국 첫 선교사
1. 남장로교의 해외선교 정책과 여성 선교사 파송 및 한국선교회의 규정
2. 데이비스의 신앙 환경과 성장 및 교육
3. 한국 입국 첫 선교사 리니 데이비스: 주미 공사 이채연의 부인과 동행 입국
III. 해리슨 부인 선교사의 한국 선교 활동: 여성과 어린이 사역
1. 서울에서 삶과 사역(1892~1896)
2. 군산 구암 시절의 선교(1896~1898)
3. 전주에서 해리슨 부인 선교사의 활동(1899~1903)
IV. 데이비스 해리슨 부인 선교사의 선교적 특징: 동일화 선교 관점
1. 선교사의 정체성과 동일화
2. 복음 전도를 위한 언어적 동일화와 사회적 동일화
3. 정치적 동일화와 복음 전도
4. 복음 전도를 위한 종교 교육적 동일화
5. 자기 희생적 삶과 통전적 동일화 선교: 제일 아름다운 선교사
V. 결론

2장 _ 전북 여성 성경 교육의 기획과 실천자: 마요셉빈 선교사(매커첸 부인, Mrs. Josephine Hounshell McCutchen, 1902~1940)

I. 서론
II. 호남의 역사적 · 종교적 상황과 하운셀 선교사의 선교 사역
1. 근대 시기 호남의 시대적 상황과 미국의 해외선교 운동
2. 남감리교 여자 선교사 하운셀: 1902년 조선 입국
3. 1903년 원산부흥회와 하운셀 선교사 사역(1903~1907)
III. 메커첸 부인(마요셉빈)의 복음 전도 사역(1909~1939)
1. 복음 전도 사역
2. 시골 교회의 복음 전도 사역과 사경회(성경 교육) 실시
3. 전주남문교회 사역과 장로교여전도회의 기도 생활
IV. 마요셉빈과 선교회의 여자 성경 교육
1. 선교회의 여자 성경 교육과 마요셉빈
2. 여자성경반과 여자성경학원 및 여자성경학교의 교과 운영과 발전
3. 여성 성경 교육 선교사 마요셉빈의 사역
V. 결론

3장 _ 식민주의 시대 정치적 동일화 선교 비교 연구: 슬레서(Mary Slessor, 1847~1915)와 서서평(E. J. Shepping, 1912~1934)

I. 서론
II. 메리 슬레서의 정치적 동일화 선교
1.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칼라바 지역 선교 상황
2. 선교 준비와 칼라바와 오코용 남부 지역의 선교 사역
3. 정치적 동일화 선교: 오코용 북부, 아로추쿠 및 오뇽 계곡 선교
III. 엘리자베스 셰핑의 동일화 선교: 일제강점기 시기 한국 선교
1. 일제의 한국 식민정책과 미국 선교사들의 선교 정책
2. 엘리자베스 셰핑의 생애와 선교 활동
3. 정치적 동일화 선교
IV. 비교: 슬레서와 셰핑의 선교 활동과 정치적 동일화 선교
V. 결론

4장 _ 섬김의 영성으로 주변부 사람들과 함께하는 변혁 선교: 서서평 선교사(Elisabeth Johanna Shepping, 1912~1934)

I. 서론
II. 생명 죽임 상황: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시기 조선 여성의 삶
1. 개화기(1876~1910)의 조선 여성의 생활 문화
2. 1910~1920년대 일제강점기 체제와 여성의 사회경제적 생활
3. 1910~1920년대 전라도의 여성 억압적 가부장제 문화: 여성 선교사들의 경험
III. 서서평 선교사의 섬김의 영성과 주변부 변혁 선교: 생명 살림의 하나님 나라 선교
1. 선교사 서서평의 주변부성과 자발적 주변부 사람으로 선교하기
2. 자발적 주변부성의 영성: 성공이 아니라 섬김
3. 주변부 사람들에 대한 선교와 협력적 하나님 나라 선교
IV. 서서평 선교사의 주변부 선교와 21세기 주변부 선교 신학
1. 현대 선교신학에서 주변부 선교: 현장 실천성과 그리스도인의 영성의 결합
2. 주변부 사람들의 주체적 변혁 실천: TTL의 현장 중심 선교와 서서평의 변혁 선교
3. 그리스도인의 개인 영성적 접근: CTC 문건과 서서평의 영성적 선교
V. 결론: 하나님 나라 선교의 동역자로서 한국교회의 주변부 선교

5장 _ 자기 희생적 삶과 정신을 실천하다가 스프루 병으로 순직한 의료 선교사 : 제이콥 패터슨 의료 선교사(Jacob Bruce Patterson, M.D.)

I. 서론
II. 군산선교부의 초기 의료 선교(1896~1910)
1. 한국선교회의 초기 선교 정책
2. 군산선교부 개설과 의료 선교 시작: 알레산드로 드루(유대모, Alessandro Damer Drew)
3. 군산선교부의 의료 선교 특성화
III. 군산 의료 선교의 융성기(1910~1925): 패터슨의 의료 선교
1. 한국선교회의 연례회의록 검토(1910~1925)
2. 패터슨의 군산 예수병원 의료 선교 동역자들과 보조인들
3. 패터슨의 의료 선교의 특징
IV. 결론

6장 _ 무료 시술을 실시한 의사 선교사가 ‘작은 예수’로 불림 : 제임스 로저스 의료 선교사(James McLean Rogers M.D.)

I. 서론
II. 순천 안력산병원 건축과 로저스 선교사의 자선적 의료 선교 준비
1. 전남 동부 지역의 사회경제적 상황(1910~1940)
2. 순천선교부의 병원 건축과 초기 선교(1913~1918)
3. 로저스의 선교 준비 교육과 인적 사항
III. 의사 선교사 로저스의 자선적 의료 선교 활동과 지역사회 의료 선교
1. 로저스의 자선적 의료 선교 활동: 전반기(1918~1929)
2. 로저스의 의료 선교 활동: 자선 의료 선교 활동의 성숙기(1930~1940)
3. 안력산병원의 의료 선교: 통계
IV. 로저스의 자선적 의료 선교 활동의 특징
1. 군산 예수병원의 패터슨과 순천 안력산병원의 로저스 비교
2. 자선적 의료 선교와 복음 전도 및 병원 자립
3. 새로운 의료 선교적 접근: 긴급 구조, 의료 계몽 및 육 · 영 구원의 통전 선교
V. 결론: 오늘날 한국교회와 선교에 주는 함의

7장 _ 자생적 신앙 공동체로 시작한 순천선교부의 개설 배경사 연구(1892~1912)

I. 서론
II. 식민주의 세력의 각축장인 구한말 조선과 일제강점기 상황(1867~1912)
III. 전남 동부 지역의 지리적 환경과 최초의 복음 전도 선교사
1. 전남 동부 지역 험산 준령의 지리적 환경과 선교사들의 현장 접근의 험난성
2. 전남 동부 지역에서 복음 전도를 행한 최초의 선교사: 레이놀즈?벨?피터스?
3. 1898년 순천 장터에서 최의덕(Lewis B. Tate) 목사가 복음을 전하였는가?
IV. 전남 동부 지역 토착 한국인들의 자생적 기독교 신앙 공동체의 형성과 확산
1. 지원근과 조상학의 초기 사역: 전남 서부 지역의 기독교 공동체 형성과 확산에 기여
2. 전남 동부 지역의 자생적 기독교 신앙 공동체
3. 광주선교부 소속 선교사들의 동부 지역 접근과 순천선교부 개설 참여
V. 결론: 1913년 4월 순천선교부 개설과 교회 성장 및 역사적 문화적 의미

8장 _ 한국선교회의 광주선교부와 순천선교부의 산업 활동 선교 연구(1907~1937)

I. 서론
II. 미국남장로교 한국선교회의 산업 활동 선교 정책(1907~1937)
1. 남장로교한국선교회의 산업 활동의 사회적 · 경제적 배경
2. 기독교 남녀학교 교육과정으로서 산업 활동 - 회의록 분석
3. 여자성경학교와 일반 여성 산업학교와 벤스 부인
III. 한국선교회의 5개 선교부의 산업 활동 선교와 특징
1. 회의록에 나타난 연도별 선교부별 산업 인력 양성 현황(1922~1937)
2. 각 선교부별 산업 활동 담당자 임명과 산업 활동 선교
3. 한국선교회의 산업 활동 선교의 특징
4. 모범 사례: 순천선교부 매산학교의 활동과 광주선교부의 여성 산업 활동 분석
IV. 결론: 오늘날 한국교회의 타 문화권 산업 활동 선교에 주는 함의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 : 임희모 (Hee-Mo Yim)
 
한일장신대학교 명예교수(선교학), 평화생명교회 은퇴목사, 서서평연구회 회장 서울대학교(B. A.), 미국 루이빌 장로회신학대학원(M. A. R.),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M. Th.), 독일 에어랑엔대학교(Dr. Theol.)에서 수학했고, 1995년부터 한일장신대학교에서 통전적 선교학과 에큐메닉스를 강의했다. 그동안 한국선교신학회 회장과 예장(통합, PCK)의 선교연구위원장을 역임했고...

책 속으로

데이비스 일행은 20일에 군산에 도착하였고, 계속하여 목포와 나주를 관찰하고, 광주를 거쳐 내륙을 통해 다시 군산에 이르렀다. 그녀는 전킨과 드루가 이미 자리 잡은 군산에서 육로로 4.5마일(7km), 해로로 2마일(3.2km) 떨어진 구암(궁말)에 집을 구하였다. 작은 시골 마을인 구암에 자리한 데이비스의 초가집은 강변 위에 있어서 경치는 아름다웠다. 생활면에서 서울과 군산은 완전히 달랐고 사람들과 인심도 달랐다. 군산에서 예배는 전킨의 사랑방에서 드렸다. 예배를 드릴 때 2~3가지 색깔의 깃발을 달아서 여성 예배, 어린이 예배 등을 구별했다. 주간에는 대개 2~3번의 집회가 있었다.
---「“우리 선교사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람”: 해리슨 부인 선교사」중에서

무엇보다도 마요셉빈은 여자 성경 교육에 헌신하였다. 1909년부터 여자성경학원, 1918년부터 선교회여자성경학교, 1925년부터 한예정성경학교, 1937년부터 특별여자성경학원 등에서 책임자나 교장으로 헌신하였다. 마요셉빈의 성경 교육적 영향은 전주를 넘어 남장로교 선교 지역의 모든 여성에게 확산되었다.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진리인 성경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며, 성령의 능력으로 기도 생활에 힘쓰도록 열심히 가르치고 도왔다.
---「전북 여성 성경 교육의 기획과 실천자: 마요셉빈 선교사」중에서

식민주의 시대에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동남 지방의 에코용과 에뇽 골짜기에서 선교한 슬레서와 한국에서 선교한 셰핑은 현지 주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이들은 정치적 동일화 선교를 하였으나 접근에 있어서 차이를 드러냈다. 전자는 1892년부터 영국의 부영사로서 원주민과 동일화를 이루어 원주민을 대상으로 재판을 하여 사회 악습 근절 등 문명화 선교했다. 후자는 가난한 소녀와 여성들과 정치적 동일화를 이루어 성경 교육, 조선간호부회 활동, 여성 산업 활동, 공창 폐지 운동 등을 시민사회단체들과 더불어 행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드러냈다.
---「식민주의 시대 정치적 동일화 선교 비교 연구: 슬레서와 서서평」중에서

서서평은 1915년에 스프루(Sprue)에 감염되었다. 그는 이 병으로 인하여 먹은 음식의 양도 적었지만 이를 소화시키지 못하여 언제나 배고프고 허기지고 쉽게 피곤을 느껴 자주 침대에서 드러누웠다. 서로득 선교사 부인과 제주도 선교 여행을 갔을 때 서서평은 너무나 지치고 기력이 쇠진하여 침상에 누워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임종 전 4달 동안 아파 누워있을 때 서서평은 학생들을 자기의 집으로 불러 [거실의] 침상에서 가르쳤다.” 이렇듯이 서서평의 삶의 상당 부분이 집과 거실과 침상에서 이루어졌다. 주변부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이들을 가르치고 자립시키기 위하여 서서평은 성공이 아니라 섬김의 영성을 실천하며 살았다. 이 섬김의 영성은 서서평의 생활 공간인 거실에서 시작되어 주변인들을 자립하게 하여 여성의 인격과 주체성을 살리는 선교를 이끌었다.
---「섬김의 영성으로 주변부 사람들과 함께하는 변혁 선교: 서서평 선교사」중에서

패터슨은 연구하는 의사 선교사였다. 그는 수많은 의학책과 자료들을 구입하고, 장비들도 개인적으로 구입하여 연구하고 발표하고 의료 시술에 활용하였다. 1912년 한국의료 선교사협회(Korea Medical Missionary Association)의 연례회의에서 논문을 발표했다. 제목은 “외과 수술과 세균학”(Bacteriology of Surgical Work)이었다. 그는 실제로 외과 수술에 있어서 실험실 보조자들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이들을 특별 전문가로 교육하여 박테리아 수의 많고 적음 등을 보고토록 하여 수술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었다. 1916년 4월 26~27일에 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연례학술대회에서 그는 “한국 부인에게 자주 발견되는 방광질누관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처럼 그는 한국 의료와 질병 상황을 세심하게 연구하고 이를 의료 시술로 접목함으로써 한국 의료 발전에 기여하였다. 그는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1910~ 1920년대에 가장 유능한 외과 의사로 군산 예수병원의 명성을 높였다.
---「자기 희생적 삶과 정신을 실천하다가 스프루 병으로 순직한 의료 선교사: 제이콥 패터슨 의료 선교사」중에서

“어느 날 아침 우리는 총 25명의 환자 중 21명을 무료로 치료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비율이 맞지 않는 경우지만, 우리는 병원비를 지불할 돈이 없는 가난한 내원 환자 누구도 돌려보내서는 안 되는 규정을 만들었다. 재정 사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료 환자로 여길 수 있는 수많은 사람을 치료한다. 한국의 일용근로자들은 정말이지 하루 벌어 겨우 하루를 생존한다. 좀 더 나쁜 경우 이들은 병이 들면 수입이 끊기고 그러면 이들은 굶주리고 병이 들어 (병원 문턱도 밟아 보지 못하고) 죽는다. 집은커녕 방 한 칸도 없이 심하게 중병을 앓는 수많은 한국인을 우리가 치료한다. 병원 접근을 할 수 없다면 이 불행한 사람들은 길바닥에 나앉아서 (운이 좋으면) 살아나거나 아니면 죽는다.” 로저스의 이러한 자선적 의료 선교는 순천 중심의 전남 동부의 가난한 농촌사회의 질병 상황에서 구상되었다. 가난하여 굶주리고 실직하고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빈농 병자들에게 자선을 베풀어 무료로 치료하고 복음을 전하여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다.
---「무료 시술을 실시한 의사 선교사가 ‘작은 예수’로 불림: 제임스 로저스 의료 선교사」중에서

전남 동부 지역의 산악 지대를 다니며 순회 전도를 할 때 부딪치는 지리적 환경은 선교사에게 고통의 길을 걷게 했다. 이러한 자연적 지형과 지리 환경에서 광주선교부의 오웬 선교사는 1907년 전남 서남부 지역 순회에 집중하면서 또한 전남 동부 지역(곡성, 동복, 구례, 순천, 광양, 여수, 돌산, 흥양)을 공식적으로 순회 전도하였다. 그는 서남부 지역인 장흥을 순회하다가 광주에서 1909년 4월 3일 순직하였다. 오웬의 서거 후 1909년 프레스턴과 코이트 선교사는 그의 업적을 살피고 순천이 선교부의 위치로 적절한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광주에서 순천에 이르는 길을 걸었다. 이들의 몸은 무척 지쳤다. 코이트 선교사는 특히 프레스턴 선교사가 지치고 피곤하여 건강을 해칠까 염려했다. 산간 내륙인 광주에서 다른 산악 지역인 순천에 이르는 100km의 길은 산악 지역을 주로 관통하는 노선으로 5~6개의 험산 준령을 넘어야 했다. 2주간의 순회를 마치고 광주로 복귀하는 여정 내내 이들의 몸은 심하게 고통을 느꼈다. 이들은 동부 지역 교회를 돌보고 전도하기 위해서는 순천에 선교부를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자생적 신앙 공동체로 시작한 순천선교부의 개설 배경사 연구(1892~1912)」중에서

과거 한국에서 진행한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산업 활동 선교와 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개화 초기에 입국한 이들 선교사는 한국교회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미션학교를 세우고, 성경 교육과 기독교 인문 교육을 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당시 절대적 빈곤 상황에 있는 가난한 학생들을 위하여 한국선교회는 산업부를 만들어 자조 정신을 가르쳤다. 학생들은 산업 활동을 함으로써 학비나 기숙사 생활비를 벌었고, 더 나아가 노동의 가치를 배우고, 장래의 직업을 준비하였다. 여성들에게는 바느질 일감과 자수 일자리(직업)를 제공하여 남성 지배적 사회로부터 사회적 해방을 누리게 했다.
---「한국선교회의 광주선교부와 순천선교부의 산업 활동 선교 연구(1907~1937)」중에서
 

출판사 리뷰

2022년은 미국남장로교 해외선교실행위원회가 공식적으로 1892년에 파송한 7인의 개척선교사들이 한국에 입국한 지 130년이 되는 해다. 이들 중 여성 선교사 데이비스(Miss Linnie F. Davis)가 1892년 10월 17일에 제물포에 도착함으로써 남장로교가 파송한 선교사로서 첫 한국 입국자가 되었다. 뒤이어 6명의 선교사, 즉 레이놀즈 부부(Rev. William Davis Reynolds & Mrs. Patsy Bolling Reynolds)와 전킨 부부(Rev. William McCleery Junkin & Mrs. Mary Leyburn Junkin)와 테이트 오누이(Rev. Lewis Boyd Tate & Miss Mattie Samuel Tate) 등이 11월 3일 제물포에 도착하고, 다음날 서울에 입성하였다. 입국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남성 선교사 3인이 미국남장로교 한국선교회(이하 한국선교회)를 설립하였다. 레이놀즈가 회장을, 전킨은 서기를, 회계는 테이트가 맡았다.

2022년은 또한 남장로교 여성 선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하고 교육함으로써 한국교회와 사회 발전에 기여한 한일장신대학교의 개교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 학교의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한일장신대학교에서 선교학을 공부한 동문들과 재학생들이 세계의 여러 선교 현장에서 활동하는 동문 선교사들을 초청하여 9월 22~23일에 선교대회를 개최한다. 이에 맞추어 본 필자가 그동안 몇 학술지에 기고한 남장로교 선교사들에 관한 연구논문 중에서 신앙사적으로, 선교학적으로 중요한 몇 개를 뽑아 책으로 출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