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의 발발과 전개
북한의 김일성은 1949년부터 소련의 스탈린에게 대한민국 침략을 승인해달라고 요청하였고, 결국1950년 3월 스탈린, 5월 중공의 마오쩌뚱에게 남침에 대한 동의와 지원약속을 얻게 되었다. 1950년 6월25일 새벽4시 북한은 38도선 전역에서 전면적인 남침을 개시하였다. 북한의 전력은 전차 242대, 각종 포 3천여문, 전투기 84대, 병력 약 19만명에 달했지만 대한민국 국군은 단 한대의 전차나 전투기도 갖고 있지 못하였고, 병력도 10만명에 불과하였다. 게다가 국군의 농번기를 맞아 6월24일 비상 경계령을 해제하여 많은 장병이 휴가,외출,외박을 나간 상황이었다.
이렇게 전력의 역부족과 기습적인 침략으로 대한민국 국군은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기는 등 개전 1개월여 만에 낙동강 방어선까지 후퇴하였다. 하지만 유엔군의 참전과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전세는 반전 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을 수복하고 38선을 넘어 평양, 원산을 탈환하였고, 결국 압록강까지 북진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로써 중공군의 개입과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들의 북한 지원으로 6.25전쟁은 자유진영 대 공산지영의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이후 한반도 중앙에서 밀리고 밀리는 전투가 진행되었으며, 1951년 7월부터 정전회담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회담은 쉽게 타결되지 못하였고, 2년여 간의 시간을 끌다가 결국 1953년7월27일 정전에 반대하는 대한민국의 대표가 빠진 채로 북한군, 중공군 그리고 유엔군 대표가 정전협정을 맺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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