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역사문화기행 (2006~) <여행지>/3.조선왕실궁궐 40

3.창덕궁 (낙선재) / 2024 -09-11 (수)

낙선재(樂善齋)는 헌종 13년(1847년)에 중건된 창덕궁의 건물로, 이 일대에는 숙종, 정조, 헌종 때에 지어진 소박한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낙선재는 창덕궁[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의 동남쪽과 창경궁이 연결되는 부근에 자리 잡고 있는데, 궁궐지(宮闕志)에는 창경궁에 속한 건물로 기록되어 있다. 승정원일기와 낙선재 상량문(上樑文)에는 헌종 13년(1847년)에 낙선당 옛터에 건물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낙선재는 헌종이 후궁이었던 경빈 김씨를 위해 지은 것으로 헌종은 낙선재에서 경빈김씨는 석복헌에 머물렀다고 지내진다. 여기서 낙선재의 의미는 선한일을 즐겨한다는 의미이고 석복헌은 복을 준다는 뜻으로 후사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한다. 1926년 순종이 승하하자, 계후인 순정효황후(윤황후)가 이..

2.창덕궁 (내전: 희정당.대조전.동궁.후원입구)

선정전(宣政殿)은 임금의 일상적인 집무 공간으로 쓰인 곳으로, 인정전 바로 동쪽에서 인정전과 나란히 남향하고 있다. 임금은 여기서 신하들과 나랏일을 의논하고 학문을 토론하며, 신하나 유생, 종친을 불러 시험을 치르기도 하였으며, 중국과 일본의 사신을 만나기도 하였다. 또 왕비나 왕족들과 크고 작은 연회를 열기도 하였다. 선정전은 인조 반정 때 불에 탄 뒤 인경궁의 편전인 광정전을 옮겨 지은 전각으로, 지붕은 푸른색 유리 기와를 덮었는데, 궁궐에 유일하게 현존하는 청기와 지붕이다.인정전과 같이 의식을 위한 공간을 '정전'이라 하고, 선정전처럼 일상 업무를 위한 공간을 편전(便殿)이라 하였다. 정전인 인정전에 비하여 선정전은 건물이나 마당의 규모가 매우 작다. 다만 지붕을 청기와로 덮어 다른 건물과 구분했을..

1.창덕궁 (입구.외전: 돈화문.금천교.진선문.인정문)

돈화문(敦化門)은 창덕궁의 정문이다. 조선 태종 12년(1412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지금의 돈화문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선조 40년(1607년)에 재건하여 광해군 원년에 완공한 것이다. 이때의 모습이 현재까지 남아있어, 돈화문은 현존하는 궁궐 정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으로 유일하게 정면이 5칸 규모로 되어 있다. 1963년에 대한민국의 보물 제383호로 지정되었다. 돈화문은 궁궐의 정문이나 창덕궁 서남쪽 모서리에 있는데, 그 이유는 산자락에 자리잡은 창덕궁의 지리적 특수성 때문이다.궁궐 정면에는 북악의 매봉이 연결되어 있고, 이곳에는 조선의 가장 신성한 공간인 종묘가 있어 창덕궁의 정문이 들어설 수 없었다.또 정궁인 경복궁과 위치상 가까우며, 예부터 대문에서 내당이 직접 보이지 않도록 배치하..

환구단

환구단 정문 대한제국(1897~1910)초기 원구단 시설을 건설하면서 그 정문으로 지었다. 원구단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시설로,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당시 황궁은 경운궁(지금의 덕수궁) 맞은편 남별궁터에 세웠다. 원구단의 전체 시설은 제를 올리는 원구단과 천신의 위패를 모시는 황궁우 그리고 그 주변 시설로 어재실, 향대청, 석고각 등을 갖추었으나 현재 황궁우 그리고 그 주변시설로 엊실, 향대청, 석고각 등을 갖추었으나 현재 황궁우와 석고각 안에 돌복만 남아있다. 정문은 원래 황궁우 남족 지금의 조선호텔 출입국가 있는 소공로변에 있었는데, 1960년대 말 철거된 뒤 오랫동안 소재를 알지 못했다. 2007년 강북구 우이동에 있는 그린파크호텔을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호텔정문으로 사용하..

경복궁 (경회루)

경복궁 (경회루) 국보 제224호 경회루는 왕이 신하들에게 큰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그밖에 과거시험이라든가 기우제 등이 실행되기도 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으나 태종 12년 (1412년)에 연못을 새로 만들고 누각도 크게 지었다. 지금의 경회루는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고종 4년 (1867년) 중건한 것이다. 사정 전일원 (思政殿)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더불어 일상 업무를 보던 곳으로,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가정책 토론 등 각종 회의가 매일 같이 열렸다. 1867년 다시 지어진 사정전은 공식 업무공간으로 마루만 깔려 있지만, 좌우의 만춘전(萬春殿)과 천추전 (千秋殿)은 비공식 업무공간으로서 온돌방을 두어 왕과 신하들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사정전 앞의 행각에 ..

경복궁 (근정전)

경복궁 (근정전) 국보 제223호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正殿)으로 근정(勤政)이란 이름에는 천하의 일부터 잘 다스리라는 뜻이 담겨 있다. 경복궁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물로 가장 화려하고 권위가 있어 왕의 위엄을 드러내는 곳이기도 하다. 왕의 즉위식이나 문무백관의 조회, 과거 및 외국 사절의 접견 등 국가의 공식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오늘날 근정전은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고종 4년(1867)년에 중건한 것이다.

서오릉 (왕릉제실)

재실 齋室 재실은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하여 능참봉(陵參奉)이 상주하던 곳으로, 제례시에는 제관들이 머무르면서 제사에 관련된 전반적인 준비를 하던 공간들이다. 능참봉의 집무실인 재실, 향을 보관하고 축문을 준비하는 안향청 (安香廳)과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祭器庫) 제물을 전시하는 전사청(典祀廳)과 그의 부속 공간인 행랑체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재실은 기본적으로 능 하나에 재실이 하나식 별도로 지어졌으나 현재 서오릉에는 명릉(明陵) 재실의 일부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재실 (齋室) :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담당하던 종 9품 능참봉이 쓰던 건물 행랑(行廊)채 - 행각(行閣) : 대문, 부엌, 마굿간, 창고 등이 있던 곳

조선왕궁 수문장 교대식

수문장 교대의식의 역사 조선시대 수문장제도는 왕권의 강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국가방위와 같은 개념이었다. 수문장제도는 조선의 8대 임금 예종이 즉위하던 해 (1469년)에 처음으로 수문장이 배정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9대 임금 성종 시절에 제도화를 거친 후 경국대전에 수문장제도 운영규정이 수록되면서 제 모습을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