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대한민국명소 (2006~) <여행지>/1.서울시 관광 113

5.한성백제박물관 제3전시실 - 삼국의 각축 / 2024-05-29

한성백제박물관  소재지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성대로 71  / 개관일 2012년 4월 30일한성백제박물관(漢城百濟博物館, Seoul Baekje Museum)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에 있는 서울시립박물관이다. 올림픽공원 내부에 있으며, 지하3층과 지상2층으로 나뉘어 있다. 상설전시는 서울의 선사·고대문화를 중심으로 백제 탄생 이전과 탄생 후 멸망까지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 공간은 지하 2층부터 지상 1층까지이다.건립 배경 및 목적서울은 678년의 백제 역사 중 493년 간 백제의 수도였으며, 현재 서울에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군 등 백제 한성기의 핵심 유적들이 곳곳에 남아있고, 출토된 유물만도 수만 여점에 이른다. 이러한 유적과 유물을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하여 관광자원..

4.한성백제박물관 제2전시실 (3) - 백제, 동아시아를 품다 / 2024-05-29

한성백제박물관  소재지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성대로 71  / 개관일 2012년 4월 30일한성백제박물관(漢城百濟博物館, Seoul Baekje Museum)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에 있는 서울시립박물관이다. 올림픽공원 내부에 있으며, 지하3층과 지상2층으로 나뉘어 있다. 상설전시는 서울의 선사·고대문화를 중심으로 백제 탄생 이전과 탄생 후 멸망까지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 공간은 지하 2층부터 지상 1층까지이다.건립 배경 및 목적서울은 678년의 백제 역사 중 493년 간 백제의 수도였으며, 현재 서울에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군 등 백제 한성기의 핵심 유적들이 곳곳에 남아있고, 출토된 유물만도 수만 여점에 이른다. 이러한 유적과 유물을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하여 관광자원..

3.한성백제박물관 제2전시실 (2) - 백제인의 삶 / 2024-05-29

한성백제박물관  소재지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성대로 71  / 개관일 2012년 4월 30일한성백제박물관(漢城百濟博物館, Seoul Baekje Museum)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에 있는 서울시립박물관이다. 올림픽공원 내부에 있으며, 지하3층과 지상2층으로 나뉘어 있다. 상설전시는 서울의 선사·고대문화를 중심으로 백제 탄생 이전과 탄생 후 멸망까지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 공간은 지하 2층부터 지상 1층까지이다.건립 배경 및 목적서울은 678년의 백제 역사 중 493년 간 백제의 수도였으며, 현재 서울에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군 등 백제 한성기의 핵심 유적들이 곳곳에 남아있고, 출토된 유물만도 수만 여점에 이른다. 이러한 유적과 유물을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하여 관광자원..

2.한성백제박물관 제2전시실 (1) - 백제의 꿈, 한강에서 꽃피다.(왕도 한성) / 2024-05-29

한성백제박물관  소재지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성대로 71  / 개관일 2012년 4월 30일한성백제박물관(漢城百濟博物館, Seoul Baekje Museum)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에 있는 서울시립박물관이다. 올림픽공원 내부에 있으며, 지하3층과 지상2층으로 나뉘어 있다. 상설전시는 서울의 선사·고대문화를 중심으로 백제 탄생 이전과 탄생 후 멸망까지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 공간은 지하 2층부터 지상 1층까지이다.건립 배경 및 목적서울은 678년의 백제 역사 중 493년 간 백제의 수도였으며, 현재 서울에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군 등 백제 한성기의 핵심 유적들이 곳곳에 남아있고, 출토된 유물만도 수만 여점에 이른다. 이러한 유적과 유물을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하여 관광자원..

1.한성백제박물관 제1전시실 - 서울의 선사문화, 백제의 여명 / 2024-05-29

한성백제박물관  소재지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성대로 71  / 개관일 2012년 4월 30일한성백제박물관(漢城百濟博物館, Seoul Baekje Museum)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에 있는 서울시립박물관이다. 올림픽공원 내부에 있으며, 지하3층과 지상2층으로 나뉘어 있다. 상설전시는 서울의 선사·고대문화를 중심으로 백제 탄생 이전과 탄생 후 멸망까지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 공간은 지하 2층부터 지상 1층까지이다.건립 배경 및 목적서울은 678년의 백제 역사 중 493년 간 백제의 수도였으며, 현재 서울에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군 등 백제 한성기의 핵심 유적들이 곳곳에 남아있고, 출토된 유물만도 수만 여점에 이른다. 이러한 유적과 유물을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하여 관광자원..

근현대사 인물산책 (함태영.차미리사 집중탐구) / 2024-03-13

함태영 (咸台永) 1949년의 함태영 /대한민국의 제3대 부통령/임기 1952년 8월 15일 ~ 1956년 8월 14일/출생일 1872년 10월 22일/출생지 조선 함경도 무산군 무산읍/거주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사망일 1964년 10월 24일(92세)/사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1가 396번지/(고혈압과 노환의 합병증으로 병사)/국적 대한민국 학력 한성법관양성소 졸업/주오 대학 정치학과 1년 중퇴/평양신학교 졸업/경력 한국신학대학교 재단 이사장 독립촉성중앙회 최고위원/자유당 상임고문/정당 무소속/본관 강릉/부모 함우택(부), 원주 변씨 부인(모)/배우자 밀양 손씨 부인(사별)/전주 최씨 부인(재혼)/고숙원(삼혼)/자녀 아들 함병철, 함병승, 함병창, 함병서, 함병욱, 함병소, 함병춘,..

골목길투어 부암동 일대 (2024-03-06)

창의문 彰義門 시대 1396년 (태조5년) . 창의문은 인왕산과 백악산이 만나는 곳에 있는 문이다. 사소문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에 지어진 문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문루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741년(영조17)에 다시 세운 것으로, 문루를 새로 지으면서 인조반정 때 반정군이 이 문으로 도성에 들어온 것을 기념하기위해 공신들의 이름을 새긴 현판을 문루에 걸어 놓았다. 이 문 부근의 경치가 개경(開京)의 승경지(勝景地)인 자하동과 비슷하다고 하여 자하문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창의문 彰義門 서울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四大門), 그 사이에 4소문(四小門)을 두었는데 창의문은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의 북소문(北小門)으로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 는 뜻이 있다. 그러나 창의문은 북소문..

윤동주 문학관 (2024-03-06)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1945년 2월 16일)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시인, 작가이다. 본관은 파평(坡平), 아호는 해환(海煥)이다. 1917년 12월 30일 동간도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함경북도 청진시 포항동 76번지이다. 명동촌은 동간도의 척박한 땅이었지만 1899년 함경도 출신의 김약연, 김하규, 문병규 등이 140여 명의 식솔을 이끌고 동간도로 집단 이주한 후 윤동주의 조부인 윤하현 등이 합류하면서 '동방을 밝히는 곳(明東村)'이라는 뜻을 지닌 동간도 최대의 한인촌을 형성했다. 명동학교(明東學校)에서 수학하였고, 광명중학교와 서울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를 졸업하였다. 연희전문학교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

윤동주 문학관 (윤동주생애 : 동영상 캡처) 2024-03-06

생애 초반 윤동주의 증조부인 윤재옥은 함경북도 종성군 동풍면 상장포에 거주하다가 1886년 길림성 자동으로 이주하였으며, 독실한 장로교회 장로인 할아버지 윤하현 장로는 명동촌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아버지 윤영석은 1910년 명동학교의 설립자인 김약연의 누이동생인 김용과 결혼하고 명동학교에서 교사로 교편을 잡았다. 19세기 말 조선인들이 간도로 대거 이주하게 된 것은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에 기근이 심해지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서였다. 그런데 간혹 미국의 청교도처럼 종교적인 이유에서 새로운 촌락 공동체를 건설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구세동(救世洞)·영생동(永生洞)·낙원동(樂園洞)·명신동(明信洞)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와 달리 유교를 신봉한 김약연은 처음에는 맹자의 정치철학에 입각하여 '신(信)·식(..

청와대 사수: 정종수 경사 순적비 & 최규식 경무관 (2024- 03-06)

정종수 경사 대한민국의 전 경찰공무원이다. 생애 1935년 7월 17일 경상북도 상주군(現 상주시) 중동면 회상리에서 아버지 정진성(鄭陳成)과 어머니 전암분(全岩分) 사이에서 3대 독자로 태어났다. 1954년 상주공립농잠중학교(現 경북대학교 상주캠퍼스)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1960년 12월 21일 경찰공무원에 입직했다. 재직 중에 유도 초단을 취득했으며, 서울특별시 경찰국 기동대를 거쳐 1967년 1월 서울종로경찰서 수사2계 폭력반에 배치돼 형사(순경)로 근무 중이었다. 1968년 1.21 사태 당시, 그는 서울종로경찰서 관할 자하문검문소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1월 21일 밤 10시 10분에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검정동(現 종로구 부암동) 세검정고개에서 서울종로경찰서장이던 故 최규식 경무관, 박..

서울 문래창작촌 (2024-03-14)

자생적 예술마을 : 문래창작촌 문래동에는 1941년 오백채마을 (영단주택단지)이 생기고 60년대부터 이곳에 철공단지가 조성되어 80년대까지 철강산업의 호황기를 누렸지만 90년대 이후 금속제조업의 침체로 문을 닫는 철공소가 늘어났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작업 공간이 필요한 예술인들이 문래로 유입되면서 활력을 되찾았다. 문래역 일대는 철공소 옆에 예술가들의 공방과 전시품, 레트로 감성의 카폐와 식당이 함께 존재한다. 도보관광을 통해 천천히 숨은 작품 찾기를 시작해보자.

삼각산옥천암(보도각 백불) 홍제천홍지문. 세검정터. (2024-02-03)

홍제천(弘濟川)은 북한산에서 발원하여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대문구 마포구의 일부 또는 전지역을 포함해 흐르다가 한강의 하류로 흘러드는 지방하천이다. 1974년 지방 2급 하천(현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고, 1983년과 1988년에 각각 하천 정비 기본계획을 수립해 1999년 2월 현재 18.94km에 달하는 유역의 하천 개수가 완료되었다. 평균 너비는 50m이다. 조선시대에 이 하천 연안에 중국의 사신이나 관리가 묵어 가던 홍제원(弘濟院)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으며, 같은 유래로 홍제원천(弘濟院川)이라고도 한다. 모래가 많이 쌓여 물이 모래 밑으로 흘렀다고 해서 모래내 또는 사천(沙川)으로도 불리며,세검정 인근의 상류 부근에서 세검천(洗劍川)이라고도 불린다. [출처: 위키백과] 이 불상은 옥..

친일파 이완용의 저택으로 추정되는 집 / (구)우당기념관

이완용 전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은 대한제국의 관료이다. 을사조약, 기유각서, 정미 7조약, 한일 병합 조약을 체결하여 을사오적을 포함한 주요 친일파, 매국노로 평가된다. 본관은 우봉, 자는 경덕, 호는 일당이다. 창씨명은 리노이에 간요이며, 작위는 후작이다 출생:1858년 7월 17일,낙생면 /사망 정보:1926년 2월 12일,서울특별시 옥인동/자녀:이항구,이승구/묘지:익산시 낭산리 국적:대한제국/ 부모:이호석/이전 담당 공직: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1910년–1910년) 우당기념관 소재지: 서울시 종로구 신교동 6-22 / 우당기념사업회 우당기념관은 중국으로 망명하여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우당 이회영 선생 및 형제 (건영, 석영,철영,시영, 호영)그리고 그들과 뜻을 같이한 애국열사 동지들을..

2023-04-30 성공회,구세군,고종의길,서울시청,청계천.

서울주교좌 성당은 주교의 의자(주교좌)가 있는 곳으로 대한성공회와 서울 모든 교회의 중심입니다. 서울주교좌 성당은 바쁜 도심 속에 마련된 거룩한 장소입니다. 한국근현대서 함께하며 예언자의 자취가 새겨진 곳입니다. 언제라고 바라보몀 경건하고, 누구라도 들어오면 편안하고 따뜻합니다. 영혼이 쉼을 얻고, 몸과 마음이 치유됩니다. 이 성당은 이땅에서 이 백성을 위한 선교의 중심으로, 민족의식을 일깨우며, 전례를 드리고. 미래건축의 모범이 되게 하자는 염원을 담아 아더 딕슨 (A.Dixson)의 설계로 1926년에 건축하였습니다. 초기 성당은 원래 설게에서 축소한 형태로 건립되었다사, 1996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공했습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에 한국 전통무늬기법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건물로 991.7제곱미터 면적에..

민영환 자결터. 3.1운동기념비. 승동교회. 탑골공원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순국지사 충정공 민영환(閔泳煥)이 1905년 11월 30일 을사조약에 항거하여 자결 순국한 장소. 민영환이 자결한 곳은 조계사 경내에 있는 자택이었다는 설과 의관 이완식의 집이었다는 설로 나뉜다. 현재는 이완식의 집이라는 것이 국사편찬위원회의 고증을 거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시종무관 어담(魚潭)과 김우현 목사, 민병진의 회고에 따르면, 민영환의 집에 민영환의 어머니와 가족이 있었기에 자결 장소를 청지기였던 이완식의 집으로 택했으며, 그의 유해가 이완식의 집에서 발견된 뒤 본저(本邸)로 옮겨졌기 때문에 자결한 당시 모습을 하인 한 사람과 청지기 식구만 목격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종로 하나투어빌딩 앞 이완식의 집 터에 김충현이 글씨를 쓰고 백문기가 조각한 추모 조형물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