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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2023)

동방박사님 2023. 11. 16.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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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폭력은 도처에 있다. ‘남의 신체를 물리적으로 훼손하는 힘.’ 사전이 정의하는 폭력의 의미 너머로 그 외연이 확장되고 있는 오늘날을 감안하면 폭력이 자리하지 않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 둘만이 존재하는 은밀한 곳에서 벌어지는 데이트 폭력이나 은연하고 비밀하게 상대의 의식을 잠식해 가는 가스라이팅까지. 폭력의 부피가 커진 만큼 우리의 문제의식이 가닿는 곳도 넓어져야 한다.

폭력은 차이로부터 시작되고, 차이란 공포이자 어김없는 불안의 요소이다. 물리적 힘만이 폭력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므로 폭력을 흔하디흔한 기삿거리 하나쯤으로 치부하고 말기에는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당신이 둔감한 축에 속한다면 은폐된 형태를 띤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사실도 멋모른 채 가해자들 틈바구니에서 거짓행복을 누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가 되어 누군가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었는데도 마냥 껄껄거리고 있다거나. 폭력은 도처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게 자리한 곳이 내가 아니라는 보장도 없다.

저자 변광배 교수는 이 책에서 11명의 현대 사상가를 선정하여, 저마다의 폭력론을 이들 주요 저작을 중심으로 살핀다. 벤야민을 한 축으로 하여 아감벤, 데리다, 지젝을 다루고, 사르트르와 파농, 사르트르와 아렌트 등 그 맥락이 닿는 것끼리 묶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저자의 친절하고 현장감 넘치는 강의투 문체와 함께 여러 사상가를 따라가다 보면 폭력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차 례

제1강 르네 지라르의 폭력론: 『폭력과 성스러움』을 중심으로
1.1. 시작하며
1.2. 지라르의 생애와 저작
1.3. 폭력의 기원: 모방적 욕망과 욕망의 삼각형
1.4. 차이의 소멸과 폭력의 출현
1.5. 모방 폭력의 회오리와 공동체의 위기
1.6. 희생양 메커니즘
1.7. 희생제의와 성스러움
1.8. 희생제의의 위기
1.9. 희생양 메커니즘의 폭로
1.10. 희생양 메커니즘의 무효화 선언 및 그 대안

제2강 사르트르의 폭력론: 『존재와 무』와 『변증법적 이성비판』을 중심으로
2.1. 시작하며
2.2. 사르트르의 생애와 저작
2.3. 나와 타자의 시선 투쟁
2.4. 나와 타자의 구체적 관계들
2.5. 실천적-타성태
2.6. 집렬체와 융화집단의 형성
2.7. 융화집단, 서약집단, 조직화된 집단 및 제도화된 집단
2.8. 진보적 폭력을 둘러싼 논쟁

제3강 파농의 폭력론: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을 중심으로
3.1. 시작하며
3.2. 파농의 생애와 저작
3.3.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의 서문
3.4. 폭력: 새로운 시작을 위한 최후 수단
3.5. 보론

제4강 아렌트의 폭력론: 『전체주의의 기원』과 『폭력론』을 중심으로
4.1. 시작하며
4.2. 『전체주의의 기원』의 주변
1) 아렌트 열풍
2) 아렌트의 생애와 저작
3) 『전체주의의 기원』의 구성과 기술의 특징
4.3. 전체주의의 장치들
1) 총체적 지배
2) 잉여존재
3) 폭민
4) 이데올로기, 선전 및 테러
4.4. 아렌트의 『폭력론』
1) 『폭력론』의 주변
2) 권력의 대립항으로서의 폭력

제5강 소렐의 폭력론: 『폭력에 대한 성찰』을 중심으로
5.1. 시작하며
5.2. 소렐의 생애와 사상, 저작
5.3. 『폭력에 대한 성찰』의 주변
1) 집필 배경
2) 구성과 의도
5.4. 소렐의 폭력론
1) 폭력의 의미
2) 혁명적 생디칼리슴 또는 총파업의 신화

제6강 벤야민의 폭력론: 「폭력비판을 위하여」를 중심으로
6.1. 시작하며
6.2. 벤야민의 생애와 저작
6.3. 벤야민의 폭력론
1) 「폭력비판을 위하여」: 예비적 고찰
2) 「폭력비판을 위하여」의 과제
3) 폭력의 구분

제7강 데리다의 폭력론: 『법의 힘』을 중심으로
7.1. 시작하며
7.2. 데리다의 생애와 저작
7.3. 『법의 힘』: 예비적 고찰
1) 구성
2) 서지사항
3) 배경
7.4. 벤야민의 「폭력비판을 위하여』에 대한 데리다의 해체적 독해
1) 이중의 어려움
2) 해체와 정의(正義)
3) 데리다의 벤야민 비판

제8강 아감벤의 폭력론: 『호모 사케르』와 『예외상태』를 중심으로
8.1. 시작하며
8.2. 아감벤의 생애와 저작
8.3. 벤야민의 「폭력비판을 위하여」에 대한 아감벤의 견해 또는 데리다와의 비교
1) 데리다: 법-폭력의 단절 불가능성 또는 법의 재정립
2) 아감벤: 법과 폭력 관계의 단절 또는 법의 탈정립

제9강 지젝의 폭력론: 『폭력이란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9.1. 시작하며
9.2. 지젝의 생애와 저작
9.3. 지젝의 폭력론
1) 『폭력이란 무엇인가』의 구성
2) 『폭력이란 무엇인가』의 의도
3) 우회로들의 풍경
4) 여섯 번째 우회로의 풍경

제10강 갈퉁의 폭력론: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중심으로
10.1. 시작하며
10.2. 갈퉁의 생애와 저작
10.3. 갈퉁의 폭력론
1)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의 구성
2) 갈퉁의 폭력론

제11강 한병철의 폭력론: 『폭력의 위상학』을 중심으로
11.1. 시작하며
11.2. 한병철의 생애와 저작
11.3. 한병철의 폭력론
1) 『폭력의 위상학』의 구성
2) 폭력의 위상학적 변화
3) 긍정성의 폭력 또는 정신질환
4) 시스템적 폭력

강의를 마치며: 저자 후기를 대신하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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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다시 말해 이 사회에 만연한 폭력, 집단 전체의 폭력, 집단 구성원들 간의 폭력을 하나의 희생물에 완전히 집중시키고, 전이(轉移)시킨 다음에, 이렇게 해서 폭력이 집중된 이 희생물을 사회 밖으로 축출하거나 없앤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사회는 다시 질서를 회복하고, 안정을 되찾으면서 만연한 폭력으로 인한 위기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한 사회에서 희생물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일종의 ‘대체하는 폭력(violence de rechange)’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대체하는 폭력은 다른 폭력을 정화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폭력을 폭력으로 치유하는 것입니다.
--- p.48

물론 나는 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나름의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나는 나를 착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고 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타자가 나를 바라보면서 착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규정한다면, 나는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지게 되고 맙니다. 그리고 나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타자가 나를 바라보면서 나에게 부여하는 이미지가 너무 다르다면, 나는 아마 사회생활을 하는 데 커다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신이 부재한다고 여겨지는 세계에서 타자가 나를 바라보면서 나에게 부여하는 나의 외부는 나라는 존재의 핵심을 건드린다는 점입니다.
--- p.80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에서 파농은 기존폭력을 구성하는 이 세 가지 층위를 통해 식민지의 폭력적 상황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난 뒤,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파농은 폭력을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제시합니다. 이런 폭력은 기존폭력에 맞선다는 의미에서 대항폭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파농에게서 폭력, 즉 대항폭력 없이 탈식민화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 p.125

아렌트는 이 영역 중에서 폭력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영역을 정치 영역으로 봅니다. 단순하게 말해 ‘정치’란 ‘권력(power)’를 획득해서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통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폭력에 의존하지 않고 권력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 정치는 그런 이상과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정치적 의식이 성숙하지 못한 곳에서는 폭력이 오히려 정치의 변수(變數)가 아니라 상수(常數)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폭력으로 권력을 장악한 세력은 그 권력을 유지하고 또 확장하기 위해 또 다른 폭력적 정치 행위에 의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 p.167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폭력의 찬미자, 폭력을 미화한 자 등과 같이 달갑지 않은 수식어가 따라붙곤 하는 소렐의 유일한 관심사는 모든 인간의 자유가 보장되고, 모든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의 정립 가능성에 대한 모색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렐이 정통 마르크스주의, 개량적 마르크스주의, 혁명적 생디칼리슴, 극우파에 대한 동조, 반유대주의, 러시아 혁명에 대한 동조, 파시즘에 대한 동조 등 여러 국면을 거친 것은 사실입니다. 그로 인해 ‘수수께끼 같은 인물’ ‘사상의 카멜레온’ 등과 같은 칭호로 불리고 있기는 합니다.
--- p.226

벤야민은 이런 신적 폭력을 『성서』 「민수기」에 나오는 고라의 일화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벤야민은 「민수기」 16장에서 신 야훼가 고라의 무리를 심판하는 것을 대표적인 신적 폭력의 예라고 주장합니다. 고라는 모세의 사촌이었는데, 무리를 지어 모세의 지도력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고라는 모세에게 모든 영광이 돌아가는 것을 질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에 대한 반기는 곧 그에게 권위를 준 야훼에 대한 반역입니다. 모세가 야훼의 공정한 심판을 요청하게 됩니다. 그러자 땅이 갈라지고 불길이 솟아 고라의 일당이 한꺼번에 말살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신적 폭력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목숨을 구한 니오베와는 달리 고라는 땅의 갈라진 틈에 빠지고 그의 가족과 그가 속한 무리는 거기에 묻혀 버렸다는 점입니다.
--- p.253

복잡하고 난해하지요? 요약, 정리해 보겠습니다. 법은 정의의 구현을 내세웁니다. 법의 존재이유는 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은 정의가 아닙니다. 법과 정의는 엄연히 구분됩니다. 벤야민과 데리다는 이 점에서는 일치합니다. 또한 데리다는 법의 기저에 폭력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 즉 기입되어 있다는 사실 역시 받아들입니다. 문제는 벤야민의 경우에 정의는 법질서 내에서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법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폭력에 호소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법 안에 뭔가 썩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벤야민은 법을 통한 정의의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의는 법의 외부로부터 올 수밖에 없다고 보았습니다. 곧 정의는 법 외부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적 폭력입니다.
--- p.282-283

더군다나 아감벤은 벤야민의 「역사 개념에 대하여」의 8번 테제를 빌려 피억압자들의 눈으로 보면 예외상태가 상례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통치(gouvernement)’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이른바 ‘상시(常時) 감시’ 체계가 그것입니다. 주권자는 그가 통치하는 모든 영역, 모든 공간을 예외상태화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면서 그 영역, 그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잠재적인 호모 사케르로 간주합니다. 즉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틀어쥐는 것입니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생명정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p.306

하지만 지젝은 이런 언어가 폭력, 그것도 상징적 폭력의 한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언어를 통해 어떤 사물을 지칭하는 것은 그 사물을 억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장미꽃’이라는 단어를 보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장미꽃이 있습니다(상상계). 그런데 인간은 이 모든 장미꽃을 장미꽃이라는 단 하나의 기호로 규정해 버립니다. 즉 상징화하는 것입니다(상징계). 그렇게 되면 모든 장미꽃은 장미꽃이라는 기호에 의해 그것들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고유성, 유일무이성, 개별성 등이 증발되어 버립니다. 다시 말해 장미꽃이라는 기호는 장미꽃 하나하나의 있는 그대로의 고유한 모습(실재계)을 사상(捨象)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 p.328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갈퉁의 직접적-구조적-문화적 폭력 개념과 소극적-적극적 평화 개념이 많은 평화 연구자에게서 인정받고 있는 것은 그의 도덕적 영향력과 평화 문제에 대한 열정적인 활동과 개입 덕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불의, 불공정, 불평등, 억압, 폭력, 지배하에 있는 구체적 현실을 도외시하고 그 극복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않는다면 평화학은 그 존재이유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평화학 정립을 위한 갈퉁의 오랜 노력이 자리하며 그의 폭력론에 주목해 볼 필요성이 자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p.368

한병철은 이 같은 근대의 훈육사회 또는 규율사회에 이어 현대사회에서의 폭력의 위상학적 변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현대사회를 성과사회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그 구성원들을 성과주체로 명명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그들은 이제 서로 물리쳐야 할 타자-적이 아니라 동일한 자들이 됩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관심은 오직 자기에게 집중되며, 그 목표는 자신의 존재를 최대한 실현하고 또 자신의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됩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적 체계에서 ‘무엇을 하지 말라’, 또는 ‘무엇을 해야만 한다’라는 금지나 명령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구호 아래, 각자의 성과와 업적을 될 수 있는 대로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경주하게 된다는 것이 한병철의 주장입니다. 요컨대 긍정성이 관건이 됩니다.
--- p.384
 

출판사 리뷰

도처에 존재하는 폭력,
당신도 그 예외일 수 없기에


폭력은 도처에 있다. ‘남의 신체를 물리적으로 훼손하는 힘.’ 사전이 정의하는 폭력의 의미 너머로 그 외연이 확장되고 있는 오늘날을 감안하면 폭력이 자리하지 않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 “널 나처럼 사랑하니까.” 둘만이 존재하는 은밀한 곳에서 벌어지는 데이트 폭력이나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지….” 은연하고 비밀하게 상대의 의식을 잠식해 가는 가스라이팅까지. 폭력의 부피가 커진 만큼 우리의 문제의식이 가닿는 곳도 넓어져야 한다. 폭력은 차이로부터 시작되고, 차이란 공포이자 어김없는 불안의 요소이다. “쟤 봐라, 좀 다른데.” 괄시와 수군거림. 물리적 힘만이 폭력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므로 폭력을 흔하디흔한 기삿거리 하나쯤으로 치부하고 말기에는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당신이 둔감한 축에 속한다면 은폐된 형태를 띤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사실도 멋모른 채 가해자들 틈바구니에서 거짓행복을 누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가 되어 누군가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었는데도 마냥 껄껄거리고 있다거나. 폭력은 도처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게 자리한 곳이 내가 아니라는 보장도 없다.

독자의 이해를 배려한 구성,
친절하고 현장감 있는 강의투 문체로
독자의 몰입을 자아내다


이 책의 토대는 저자 변광배 교수가 2021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철학아카데미에서 진행했던 강의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11명의 현대 사상가를 선정하여, 저마다의 폭력론을 이들 주요 저작을 중심으로 살핀다. 이 책의 구성은 앞으로 진행될 논의를 각 장의 시작부에서 간단하게 언급한 다음, 곧 다루게 될 사상가의 생애를 두루 설명하는 방식을 취했다. 뒤이어 그 중요한 저작들을 소개하는데, 국내에 번역이 이루어져 통용되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분하여 해당 사상가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해당 영역에서 지식의 확장으로 이어지게 하는 데 일조했다. 이처럼 본론에 앞서 친절한 해제와 사상가의 생애를 비롯한 주요 저작이 등장하는 덕에 설령 해당 사상가를 한번도 접하지 못한 독자라고 하더라도 내용을 이해해 나가는 데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거기다 벤야민을 한 축으로 하여 아감벤, 데리다, 지젝을 다루고, 사르트르와 파농, 사르트르와 아렌트를 다루는 등 그 맥락이 닿는 것끼리 묶어 낯선 개념들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상에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다. 저자 변광배 교수의 친절하고 현장감 넘치는 강의투 문체와 함께 여러 사상가의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폭력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꾀할 수 있다.

큰 폭력을 막기 위한 작은 폭력,
고대신화에서 나타나는 희생양 메커니즘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 이론’에 따르면 주체는 중개자를 통해 대상을 욕망한다. 유명세를 지닌 연예인이 상품 가치에 영향을 주는 경우로 보자면 연예인이 중개자가, 상품이 대상이 되는 식이다. 그러니까 주체는 연예인을 통해 상품을 욕망한다. 그런데 중개자와 주체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차이(질서)에 소멸이 생긴다. 서로의 사이가 두터울수록 동일한 목표를 놓고 벌이는 경쟁은 다툼으로 변모하기 십상이다. 둘은 짝패 관계가 되고 이 대목에서 폭력이 발생한다. 폭력에 깃든 모방 특성 때문에 여기저기서 폭력이 들끓자 공동체는 위험에 빠지고 희생양(scapegoat)이 필요해진다. 여기에는 공동체에 속하면서도 완전히 속하지는 않은 경계적, 주변적 존재, 복수나 발설의 위험이 없는 약자가 마침맞다. 약자는 희생되고 집단 내 긴장은 완화되며 희생된 약자는 성화(聖化)된다. 그리고 이것은 반복된다. 이는 여러 신화 텍스트에서 드러나는 희생양 메커니즘이다. 이와 비슷한 듯 보이면서도 명확히 구분되고, 폭력의 해결책으로서 제시되고 있는 것이 성경이며 예수의 수난이다. 이 책 1강에서 만나볼 수 있다.

폭력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개인 차원의 폭력, 집단 차원의 폭력을 넘나드는
사상가들의 빛나는 사유


1강 르네 지라르의 폭력론에서는 모방 욕망과 욕망의 삼각형 개념을 비롯해 차이의 소멸이 어떻게 희생양 매커니즘와 연결되는지, 신화 속 희생양 메커니즘이 성경 속 예수의 희생과 어떻게 다른지를 규명한다. 2강 사르트르의 폭력론에서는 『존재와 무』를 통해 서로를 객체화시키는 시선 투쟁을, 『변증법적 이성비판』으로 실천적-타성태가 집렬체, 융화집단을 거쳐 어떻게 서약집단, 그 이상으로 나아가는지를 밝힌다. 3강 파농의 폭력론에서는 파농이 제시한 기존폭력의 세 가지 층위를 비롯해 대항폭력에 의해 이루어질 탈식민지화된 세계를 짚어 보고, 파농의 폭력론과 사르트르의 폭력론의 공통점 및 차이점을 살펴 본다. 4강 한나 아렌트의 폭력론에서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바탕으로 총체적 지배, 잉여존재, 폭민 개념 및 권력의 대립항으로서의 폭력 개념을 알아본 뒤 폭력을 긍정한 파농, 소렐, 사르트르 등을 향한 아렌트의 비판을 짚어 본다. 5강 소렐의 폭력론에서는 소렐이 생각한 폭력의 의미와 총파업의 신화를, 6강 벤야민의 폭력론에서는 신적 폭력과 신화적 폭력, 법정립적 폭력과 법보존적 폭력의 특징을 살펴본다. 7강 데리다의 폭력론에서는 그의 저작 『법의 힘』을 살펴보고, 벤야민의 신적 폭력 개념을 해체하는 데리다의 비판에 주목한다. 8강 아감벤의 폭력론에서는 예외 상태와 호모사케르 개념을 알아본다, 9강 지젝의 폭력론에서는 주관적 폭력과 객관적 폭력, 객관적 폭력 내 시스템적 폭력과 상징적 폭력을 살피고 폭력에 대한 지젝 나름의 대안을 밝힌다. 10강 갈퉁의 폭력론에서는 갈퉁의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에 대해 짚어 보고, 직접적 폭력, 구조적 폭력, 문화적 폭력을 살핀다. 마지막으로 11강 한병철의 폭력론에서는 그의 긍정성의 폭력과 시스템적 폭력에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