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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20세기에 나타난 냉전과 탈식민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세계사적 흐름을 교차함으로써 그간 간과되었던 현대사의 여러 지점을 재발굴하고, 재조명하고, 재해석한다.
여기에는 미 제국의 기원에서부터 유럽 제국주의의 인종과 젠더, 영 제국의 탈식민, 소련과 냉전 사이의 관계, 한국전쟁의 국제사, 전쟁 포로의 의미, 민족해방의 언어적 재현, 근대화론의 이상과 현실, 제3세계의 국민국가 건설, 식량과 인구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포함된다. 냉전과 탈식민을 교차시키려는 노력은 다른 어떤 곳보다 한국에서 더욱 절실하게 요구된다. 분단된 국가에서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에 둘러싸인 이곳은 20세기 내내 냉전과 탈식민의 과정이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도 격렬하게 전개되었던 현장이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지난 세기 일어난 저 두 과정의 상호작용이 낳은 결과물이다.
우리의 이번 프로젝트가 냉전과 탈식민에 관한 국내 현대사 연구자들 사이의 더욱 활발한 대화를 여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원한다.
목차
1장 자유, 진보, 제국-율리시스 S. 그랜트의 월드 투어로 본 미국의 초상 _하아랑 21
머리말 5
1. 머리말: 내전 이후의 미국과 세계 21
2. 영국: 자유와 민주주의의 초상 27
3. 식민지들: 진보와 반제국의 초상 33
4. 중국과 일본: 제국의 초상 37
5. 맺음말: 제국주의에 맞선 제국 43
2장 ‘검은 치욕’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라인 지역 점령에 투입된 프랑스군 식민지 병사들을 둘러싼 인종과 젠더의 담론 _정재현 47
1. 머리말 47
2. 프랑스군의 식민지 병사와 연합군의 라인 지역 점령 51
3. 프랑스군의 식민지 병사에 대한 비난과 점령 지역의 현실 55
4. ‘검은 치욕’을 규탄하는 국제적 운동 62
5. 독일 사회의 ‘검은 치욕’ 담론 68
6. 맺음말 75
3장 영 제국 경영의 마지막 통치 카드-‘식민지 개발 및 복지법’, 1929-1945 _신동경 79
1. 머리말: 해외 개발의 역사 79
2. 본국의 이익을 위한 식민지 개발 83
3. 제국 해체를 내다보는 식민지 개발 및 복지 사업 94
4. 맺음말: 탈식민화 시기의 개발이라는 식민화 104
4장 냉전사와 소련 연구 _노덕경 109
1. 머리말 109
2. 과거 냉전 연구 112
3. 소련 냉전사 연구의 현재 116
4. 맺음말 131
5장 북한의 한국전쟁 계획 수립과 소련의 역할 _정병준 133
1. 머리말 133
2. 소련의 대남 무력공격 승인과 무장 지원 139
3. 북한의 개전 전략과 공격 계획의 수립 149
4. 맺음말 163
6장 한국전쟁 정전 협상과 미국의 포로 ‘자원송환(自願送還)’ 정책_David Cheng Chang 169
1. 머리말 169
2. 정전 협상 제1-3 의제에 대한 신속한 합의 176
3. 일대일 교환: 미국 측의 기존 입장 180
4. 미군의 자원송환 방안에 대한 애치슨의 거부 183
5. 트루먼, 두 차례에 걸쳐 전원교환을 거부하다 187
6. 정전 협상에서 전쟁 포로 의제로 진입하다 195
7. 미국의 공식적인 자원송환 제안 201
8. 미군, 자원송환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전환하다 205
9. 조사단, 트루먼 대통령과 최종 결정을 내리기 위해 일본과 한국을 방문하다 213
10. 맺음말 219
7장 1950년대 세계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남한에서의 젠더적 재현 양상 _김도민 223
1. 머리말: 탈식민과 냉전 그리고 젠더 223
2. 신문, ‘투사(鬪士)’에서 ‘희생자’로 226
3. 시(詩), ‘탈식민-냉전-젠더’의 합작품 239
4. 맺음말: 민족해방운동을 재현하는 역사적 문법과 기억정치 250
8장 오만과 타협-W. W. 로스토와 근대화론의 변화 _김일년 253
1. 머리말: 오만의 기원 253
2. 근대화와 제국주의 258
3. 유연한 협상가 264
4. 타협의 덫 270
5. 맺음말: 권력의 역설 277
9장 “베트남 이전에 라오스가 있었다”-라오스의 인도차이나전쟁과 민족국가 건설, 1945-1975 _현시내 281
1. 머리말: 라오스 내전은 누구에 의한, 그리고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는가 281
2. 세 명의 왕자와 라오스 내전의 기원, 1945-1960 286
3.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반공 민족국가 건설, 1961-1963 295
4. 미 중앙정보부의 라오스 비밀작전과 공습, 1960-1975 302
5. 탈식민화로부터 민족국가 건설까지, 1945-1975 311
6. 맺음말: 비밀이 아니었던 전쟁 316
10장 곡물 대탈취-1973년 미국-소비에트 곡물 거래와 국제 식량 체계의 위기 _이동규 321
1. 머리말 321
2. 냉전과 식량: 풍요와 결핍, 1940-1972 326
3. 곡물 대탈취: 한 편의 서부극 334
4. 냉전질서와 국제 식량 체계의 위기 342
5. 맺음말 347
· 참고문헌 349
· 찾아보기 376
저자 소개
저 : 김일년
김일년은 서양 현대사를 전공한 역사가로 20세기 미국의 정치사와 지성사, 외교사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친 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Ohio State University, OSU)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진보 진영이 유럽과 동아시아의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 민주주의자들과 교류하는 양상을 추적했다. Diplomati...
저 : 김도민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졸업 후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현대사를 전공하며, 남북관계사·한미관계사·냉전사·구술사 등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승만 정권 시기 한미 관계, 민주주의, 선거 등에 관심을 가지고 박사 논문을 구상 중이다. 「1948~50년 주한 미대사관의 설치와 정무 활동」(2012), 「1950년대 중후반 남·북한의 ‘중립국’ 외교의 전개와 성격」, 「미군정기 아동노동법규와...
출판사 리뷰
냉전과 탈식민의 격동이 빚어낸 20세기 세계사를 새롭게 읽다
『냉전과 탈식민의 세계사』는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초반부의 3개 장은 20세기 전반까지 제국과 식민주의에 관련한 새로운 담론과 현상이 나타나는 양상을 분석한다.
먼저 하아랑의 글 「자유, 진보, 제국: 율리시스 S. 그랜트의 월드 투어로 본 미국의 초상」은 제국으로서 미국이 지니는 역설의 기원을 19세기 중반 남북전쟁 직후의 세계사적 맥락에서 관찰한다. 이 글은 특히 1870년대 미국의 전직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S. Grant)의 월드 투어에 대한 세계 각지의 지도자와 인민들의 다양한 반응을 분석하면서, 이 시기 미국이 자유와 진보, 제국이라는 모순적인 이미지를 한꺼번에 담지하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사람들은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미국을 자유의 수호자로 찬양하거나, 눈부신 진보를 성취한 성공적 독립국의 모델로 추종했고, 때로는 위협적이거나 또는 모방해야 할 제국으로 간주했다.
그랜트 역시 타국의 눈에 비친 미국의 초상을 바라보면서 향후 미국이 세계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에 대해 인식했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다름 아닌 자유와 진보를 외치는 제국, 이른바 “제국주의에 맞서는 제국”이라는 형용모순이었다.
두 번째, 정재현의 「‘검은 치욕’: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라인 지역 점령에 투입된 프랑스군 식민지 병사들을 둘러싼 인종과 젠더의 담론」은 제국주의의 절정기였던 1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인종과 젠더, 민족이 서로 얽히는 과정을 추적한다. 전쟁 후 독일 점령에 투입된 프랑스 식민지 출신 병사들은 독일 여성을 성폭행한다는 비난을 받았고, 이에 독일 민족주의자들은 물론 사회주의자, 평화주의자, 여성운동가를 포함한 유럽 각지의 세력이 순수한 “백인종 여성”에게 가해진 야만적 “검은 치욕”에 항의했다. 민족, 평화, 여성, 국제 연대, 반제국주의 등 다양한 이상이 표출되었으나 이 모든 외침의 근저에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백인 우위의 인종주의가 깔려 있었다. 이를 통해 정재현은 제국과 국민국가가 만났을 때 젠더와 인종 담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 준다. 인종주의는 여성의 성을 규율하는 데 동원되었고, 반대로 가부장제는 흑인의 사악함과 열등함을 증명하는 수사를 제공했다.
이 책의 세 번째 장은 신동경의 「영 제국 경영의 마지막 통치 카드: ‘식민지 개발 및 복지법’, 1929-1945」이다. 이 글은 제국의 황혼기 동안 영국이 제안했던 일련의 “식민지 개발 및 복지법”을 검토하면서, 제국의 “마지막 통치 카드”가 영국의 탈식민 과정에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1929년을 시작으로 영국은 식민지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형태의 “위로부터의 개발” 사업을 벌였다. 이는 물론 이기적인 의도에서 출발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국과 식민지 사이의 지속적인 교류를 유지하는 발판을 놓았다. 이를 통해 영국은 제국 해체 이후 영연방 성립이라는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탈식민 과정을 걸을 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에 대해 신동경은 “탈식민화의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것에 그치는 대신, 그 역설적 과정이 보여 준 현실주의와 그것이 만들어 낸 실질적 결과물에 주목하자고 제안한다.
네 번째 장인 노경덕의 「냉전사와 소련 연구」는 소련사 전문가의 관점에서 최신 냉전사 연구 동향을 큰 틀에서 관찰함으로써 『냉전과 탈식민의 세계사』의 전체적인 구조에서 중심축을 이룬다. 노경덕은 최근 국제학계의 소련 냉전사 연구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한다. 우선 냉전의 종식 이후 구소련 자료가 개방됨으로써 문서고 중심의 실증 연구를 통해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던 여러 논쟁점을 실증적으로 탐구하는 흐름이 있다. 다음으로, 새로운 냉전사 연구는 냉전을 단순한 미국과 소련 사이의 경쟁으로 파악하는 대신, 과거 주변부로 취급되었던 제3세계 국가들의 세계사적 역할에 주의를 기울인다. 마지막으로, 최근의 소련 냉전사 연구는 냉전을 문화적 국제 관계로 파악하고,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여러 국가 사이의 문화 경쟁과 교류에 초점을 맞춘다. 노경덕이 잘 논의하고 있듯이, 이 세 가지 연구 경향은 모두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서고, 제3세계, 문화는 냉전과 탈식민의 교차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들을 제공한다.
이어지는 3개의 장에서는 시선을 우리 내부로 돌려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 한국이 냉전과 탈식민을 어떻게 경험했는지 관찰한다.
다섯 번째 장인 「북한의 한국전쟁 계획 수립과 소련의 역할」에서 정병준은 풍성한 사료를 동원해 한국전쟁의 준비와 전개에 있어서 북한과 소련의 역할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이 문제에 관해 정병준은 다음과 같은 새로운 해석들을 제시한다. 첫째, 한국전쟁은 시종일관 김일성과 박헌영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의 주도로 진행되었다. 둘째, 북한 지도부는 주도권을 지녔지만, 한국전쟁의 국제적 성격으로 인해 최종 결정권은 모스크바에 있었다. 셋째, 최종 결정권자로서 스탈린은 김일성의 개전 허가 요구를 구체적으로 검토했다. 넷째, 스탈린이 개전 전에 제시했던 “도발 받은 정의의 반공격전” 개념은 북한의 전쟁 수행에 있어서 기초를 이루었다. 다섯째, 스탈린은 미국과의 충돌 가능성을 우려했고, 따라서 그의 결정권 행사는 소극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스탈린의 태도로 인해 소련은 전쟁 발발 이후 결정권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한국전쟁은 북한 지도부의 주도와 스탈린의 결정으로 시작되었으나, 소련의 방어적 태도로 인해 향후 북한은 소련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주성을 더욱 중시하게 되었다.
여섯 번째 장은 데이비드 챙 창(David Cheng Chang)의 「한국전쟁 정전 협상과 미국의 포로 ‘자원송환(自願送還)’ 정책」이다. 이 글에서 창은 한국전쟁이 미국에서 왜 “잊힌 전쟁(forgotten war)”이 되었는지 질문한 뒤, 그 답을 전쟁 포로(POW)에 대한 “자원송환(voluntary repatriation)” 정책에서 찾았다. 그에 따르면 한국전쟁은 두 가지 양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950년 6월 개전부터 대략 1년의 기간이 “영토전쟁”에 해당한다면, 1951년 7월 정전 협상이 시작된 뒤 이어진 2년간의 후반부는 “포로전쟁”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포로 송환 문제를 놓고, 중국과 북한 측이 “전원교환”을 요구했던 반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 대표단은 자원송환, 즉 포로에게 그들의 의사에 따른 망명 기회를 제공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이 원칙은 명백히 제네바 협약을 위반하는 것이었고, 정전 협상을 교착상태로 빠뜨렸다. 그런데도 당시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도덕의 기치를 내세워 자원송환의 원칙을 고수했다. 그 결과 15개월이 넘는 전쟁의 후반부 동안 양측의 영토 변화는 거의 없었고, 수많은 인명 피해만 남겼을 뿐이었다.
일곱 번째 장인 김도민의 「1950년대 세계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남한에서의 젠더적 재현 양상」은 냉전이 시작되던 시기 남한의 시인들이 세계 각지의 탈식민 운동을 어떻게 재해석했는지 추적한다. 그에 따르면, 당시 남한은 자유 진영의 언론을 통해 세상과 소통했고, 그 결과 그곳에서 베트남혁명, 알제리혁명, 이집트혁명, 헝가리혁명 등에 관한 정보는 냉전의 프리즘을 통해 굴절된 채로 수용되었다. 여기에 더해 젠더 차별적 시각이 부각되었는데, 남한의 시인들은 능동적인 여성 투사들을 연약하고 수동적인 소녀로 형상화했다. 이 젠더적 재현에서 냉전과 탈식민은 모두 가부장적 질서를 강화하는 쪽으로 작동했다. 냉전의 맥락에서 공산주의의 잔혹함이 강조되고, 탈식민의 맥락에서 반제국주의의 외침이 커질수록, 남한 문인들의 마음속에서 여성과 남성은 젠더 차별적 질서에 따라 더욱 선명하게 구획되었던 것이다. 결국, 냉전 초기 세계 민족해방운동을 다루는 남한의 시는 “탈식민-냉전-젠더의 합작품”이었던 것이다.
『냉전과 탈식민의 세계사』의 마지막 3개 장에서는 시야를 다시 외부로 돌려 세계 여러 지역에서 냉전과 탈식민의 흐름이 서로 충돌하고 교섭하는 양상을 다각도로 관찰한다.
여덟 번째 장인 김일년의 「오만과 타협: W. W. 로스토와 근대화론의 변화」는 냉전 시기 미국이 탈식민 국가들을 대상으로 제시했던 근대화론의 명암을 분석한다. W. W. 로스토 로 대표되는 근대화론은 흔히 미국의 베트남전쟁을 야기한 실패한 이론으로 평가된다. 그것은 경제성장을 세계 모든 저개발 지역이 안고 있는 각양각색의 문제를 해결할 만병통치약으로 제시했고, 후진국들에 미국식 자본주의의 발자취를 추종하라고 강요했다. 베트남전쟁은 이러한 오만한 생각이 낳은 응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김일년은 로스토의 단선적이고 강압적인 형태의 근대화론은 사실 그의 이론적 유연성과 정치적 현실주의,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권력과 맺은 타협이 낳은 결과물이었다고 주장한다. 로스토가 1950년대 출판한 초기 저작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탈식민을 향한 외침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의 변화는 아이젠하워 정부와 관계를 맺는 과정을 통해 진행되었다. 그 변화의 끝에 미국식 자본주의의 보편성과 미국의 힘을 맹신하는 광신도가 탄생했다. 이 글은 로스토의 변화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 보여 줄 것이다.
아홉 번째 장인 현시내의 「“베트남 이전에 라오스가 있었다”: 라오스의 인도차이나전쟁과 민족국가건설, 1945-1975」는 다국적 문서고의 사료들과 구술사 인터뷰를 광범위하게 활용하여 냉전이라는 프레임에 가려진 라오스 내전의 탈식민적 성격을 재발견한다. 라오스 내전은 냉전의 질서만큼이나 그들의 역사적 경험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러한 내부의 요소가 케네디 대통령 재임기 동안 미국이 전개했던 다양한 형태의 개입과 만나면서 내전의 형태로 폭발했다. 여기서 현시내는 몽학자들의 연구와 참전군인 및 피해자들의 증언을 비교 분석하여 몽 공동체와 태국군이 미국 편에서 라오스 내전에 개입했던 동기와 그 결과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 그녀는 라오스 내전이 지니는 민족국가 건설의 성격이 냉전과 탈식민이 중첩되는 동남아시아의 상황에서 라오스가 한편으로는 미국과 다른 한편으로는 태국을 비롯한 주변국과 맺은 복잡한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냉전과 탈식민의 세계사』의 마지막 장은 이동규의 「곡물 대탈취: 1973년 미국-소비에트 곡물 거래와 국제 식량 체계의 위기」이다. 이 글은 1970년대 초반의 세계적 식량 위기 과정에서 발생했던 하나의 사건, 소위 “소련의 곡물 대탈취”를 세밀하게 추적함으로써, 1960년대에서 1970년대로 이어지는 국제 관계의 변화를 식량이라는 생태학적 주제를 중심으로 재해석한다. 1973년 소련은 미국 회사로부터 대량의 곡물을 보조금이 적용된 가격으로 구매했다. 이때 미국의 닉슨 행정부는 잉여농산물 판매를 통해 소련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한편, 동시에 미국 식량에 대한 소련의 종속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이 다수의 기업과 개별 계약을 통해 일을 진행했기 때문에, 미국의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곡물이 유출되었다. 이에 미국 곡물 가격이 남북전쟁 이후 최고치를 경신하게 되었고, 국제적으로도 식량 위기를 심화시켰다. 이동규의 글은 식량과 농업, 자본주의 등의 요소가 냉전의 프레임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양상을 세심하게 조명한다.
이화여대 사학과 구성원들은 국내 역사학계의 여러 훌륭한 연구가 우리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연구 가운데 일부가 『냉전과 탈식민의 세계사』에 수록되었다. 우리는 이 책이 궁극적으로 세계사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물론 그러한 전환은 한 편의 연구서가 담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과 더 깊은 연구, 더 넓은 협력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각 장이 잘 보여 주는 것처럼, 변화는 이미 여러 측면에서 일어나고 있다. 『냉전과 탈식민의 세계사』의 출판이 20세기 세계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국내 다양한 분야의 역사학자들 사이의 소통을 증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37458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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