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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서양의학 도입의 상징인 제중원(광혜원)이 설립과 발전 과정을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설명하고 있다. 또한 알렌을 비롯한 의료선교사들이 개화기 한국 사회에서 서양의학의 정립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서양의학의 도입 과정을 설명하는 책에 머무르지 않는다. 제중원의 변화, 발전 과정을 풍부한 사진과 세밀한 역사 연구를 통해 설명함으로써 당시 우리나라 의료 상황을 이해하는 좋은 방편이 되기도 한다. 책 말미에는 제중원에 얽힌 일화도 싣고 있어 책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목차
제1장 제중원 설립 이전 서양의학과의 접촉
조선의 전통적인 의료 체계
국교확대 이전 서양의학과의 접촉
국교확대와 서양의학에 대한 괌심 고조
미국의 해외 전도
제2장 제중원의 설립
알렌의 입국과 갑신정변
병원설립안의 제출과 제중원의 개원
재동 제중원의 규모와 의학적 기능
제3장 알렌과 헤론 시기의 제중원
진료활동
의학교육
선교사
전도사업
제중원의 이전
제4장 에비슨 시기의 제중원
빈튼 시기의 제중원
에비슨 입국
제중원의 선교부 이관
제중원의 의료 활동과 운영
제중원의학교
전도
세브란스병원으로의 도약
제중원에 얽힌 일화
맺음말
조선의 전통적인 의료 체계
국교확대 이전 서양의학과의 접촉
국교확대와 서양의학에 대한 괌심 고조
미국의 해외 전도
제2장 제중원의 설립
알렌의 입국과 갑신정변
병원설립안의 제출과 제중원의 개원
재동 제중원의 규모와 의학적 기능
제3장 알렌과 헤론 시기의 제중원
진료활동
의학교육
선교사
전도사업
제중원의 이전
제4장 에비슨 시기의 제중원
빈튼 시기의 제중원
에비슨 입국
제중원의 선교부 이관
제중원의 의료 활동과 운영
제중원의학교
전도
세브란스병원으로의 도약
제중원에 얽힌 일화
맺음말
책 속으로
병원설립안에 표현된 대로 병원 내에 의학교를 설립하고자 하는 것이 원래의 의도였다. 물론 이 일이 즉시 시작될 수는 없었지만, 개원 1년이 다 되어 갈 즈음 병원이 매우 성공적이었기에, 우리는 병원의 영향력과 기회를 증대시킬 방법과 비용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장 적절한 '방법'은 의학교를 개교하는 것이었다. 그 '비용'은 조선정부에 요청하였다. 국민을 위한 우리들의 의료활동에 항상 인자하신 국왕은 즉시 칙령을 내려 병원에 인접한 가옥을 매입하고 이곳에 교사를 꾸미도록 하였다. 기구 및 제반 설비를 위한 경비와 새롭고 완전한 외과 기구 구입을 위한 경비가 즉시 하사되었다.
--- p.92
거기서 아기들의 심장과 눈을 잘라내어, 외국 관리와 선교사들의 요리상에 진미로 바쳐진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병원 부근에는 커다란 소요가 있었다. 자기 아이를 데리고 가던 한 사람은 아기를 훔쳐 가는 것으로 오인 받아 아무런 죄 없이 죽임을 당하였다. 성난 군중들은 병원을 에워쌌다. 나의 가마꾼들은 나를 다시 병원에 데려다 주기만 하면 죽게 될 것이라는 협박을 받았다. 내가 다음날 말을 타고 병원에 가겠다고 우긴 것이 아주 어리석게 느껴지지만, 그때만 해도 동양은 나에게 아주 낯선 곳이었고, 또 최소한 경험 면에서 볼 때에도 나는 무척 어렸었다. 언더우드는 나를 혼자가게 내버려 둘 수 없다 하여 나와 동행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 아마 우리 가마꾼들이 우리들이 마술을 부린다는 이야기를 퍼뜨려, 그들은 우리와 싸우는 것이 아주 위험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 p.203
출판사 리뷰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에 얽힌 100년 논쟁
국립서울대학교 병원과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사이에는 어느 쪽이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의 전통을 이어받았는지를 두고 그동안 논쟁이 벌어져 왔다. 양측 모두 광혜원을 기원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그 뒤의 변화·발전 과정을 설명하는 데서는 서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광혜원(1885년) → 내부(오늘날의 행정자치부) 소속 병원 (1899년) → 광제원(1900년) → 대한의원(1907년) → 조선총독부 의원(1910년) → 국립서울대학교 부속병원(1946년)'으로 이어진다는 주장과 '광혜원(1885년) → 제중원(개원 2주 후 개칭) → 세브란스병원(1900년)'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의 주장이 이렇게 대립하고 있는 까닭은 광혜원이 출범할 때 재정 및 병원 운영은 조선 정부가 맡고, 진료는 알렌이 맡는 방식으로 이원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제중원』을 통해 최초의 근대식 병원의 기원 두고 벌어진 논쟁에 한 걸음 다가가 본다.
개화기의 서양의학
전통적인 한의학이 지배하고 있던 우리나라에 서양의학이 도입된 것은 1876년 일본과의 국교확대를 시작으로 여러 나라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이후였다. 그러나 서양의학을 수용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의료 선교사의 내한이었다. 1870년대 말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한 조선에 대한 미국의 기독교 선교는 각 교파별로 활발하게 준비되었고, 이들은 선교를 위한 수단으로 의료와 교육을 앞세웠다.
미국 북장로회는 1884년 의료선교사로 헤론, 알렌 등을 첫 선교사로 임명하여 조선선교를 시작했다. 이들은 조선에 거류하는 최초의 서양인 의사로서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제중원의 설립 배경
알렌이 내한하고 3개월이 지난 1884년 12월 갑신정변이 일어났다. 사건의 전말은 우정국 개설 축하 만찬이 열리고 있던 중 민비의 조카이며 당시 실력자였던 민영익이 자상을 입은 것이다. 이때 알렌이 왕진 요청을 받아 그를 치료했다. 민영익은 3개월 정도의 치료로 완쾌되었고, 이 일을 계기로 알렌은 자연스레 왕실과 가까워졌다.
알렌은 환자들의 치료 및 서양 의술의 전수를 위한 병원을 설립할 것을 조선정부에 공식적으로 제안한다. 역설적이게도 병원 건물로는 갑신정변에 참여했다가 정변 실패로 참살 당한 후 거의 폐허가 된 홍영식의 집이 선정됐다. 이 집은 환자 40명 가량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병원으로 개조됐다. 드디어 조선 정부와 미국 북장로회가 합작 운영하는 서양식 병원이 출범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병원의 명칭을 '널리 은혜를 베푸는 집'이란 뜻의 "광혜원"이라 했다가, 얼마 뒤 '사람을 구제하는 집'이란 의미의 "제중원"으로 개칭했다.
제중원의 활동
갑오개혁이 한창이던 시기에, 여러 개혁 작업 진행에 필요한 재정이 턱없이 부족했던 조선정부가 제중원의 운영권을 미국 선교부에 완전히 넘김으로써 마침내 제중원은 민간병원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제중원 의사들은 전염병의 구료(救療) 사업에도 관여했는데, 1886년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에는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열성적으로 방역활동을 펼치기도 했으며, 특히 종두 접종에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여성 진료에 있어서도 부녀과를 설립하는 등 활발한 진료활동을 펼쳤다.
의학교육
1886년 3월 경쟁을 거쳐 학생을 선발하고 제중원 의학당을 개교했다. 이는 우리나라 의학교육의 효시였으며, 교수로는 알렌, 헤론 및 언더우드가 있었다. 이후 김필순, 홍석후, 홍종은 등 조선인 의학생들은 에비슨의 지도로 거의 전과목에 걸쳐 우리말로 된 의학교과서를 편찬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곳을 통해 배출된 졸업생들에게는 우리나라 최초의 의술 개업 인허장이 수여됐다. 즉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진 의학교육에 국가적인 공인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세브란스병원 설립
에비슨은 제중원을 여러 교파가 참여하는 연합병원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는 이 일이 선교사들의 결집과 의료사업을 효율적으로 진행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1900년 뉴욕에서 열린 만국선교대회에 참석하여 '의료선교에서의 우의'라는 내용의 강연을 했고 이 연설에 감동한 클리블랜드의 부호 세브란스가 병원 건립기금으로 1만 달러를 희사했다.
그러나 병원 설립은 평양의 선교사들의 반대와 조선정부의 비협조 때문에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1903년 말에는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건축자재 값이 폭등해 시공자가 계약을 포기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세브란스가 추가 비용을 기꺼이 부담하면서 문제는 해결되었고, 마침내 조선 최초의 현대식 종합병원이 문을 열었다. 병원 이름은 기증자 이름을 따서 '세브란스기념병원'으로 정해졌고 정식 개원식은 그 해 11월 16일 열렸다. 병원 이름은 바뀌었지만 민중들은 여전히 이 병원을 제중원이라고 불렀다. 건물과 위치가 바뀌었어도 제중원의 역할과 성격은 세브란스병원으로 계승되었던 것이다.
개화기의 서양의학
전통적인 한의학이 지배하고 있던 우리나라에 서양의학이 도입된 것은 1876년 일본과의 국교확대를 시작으로 여러 나라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이후였다. 그러나 서양의학을 수용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의료 선교사의 내한이었다. 1870년대 말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한 조선에 대한 미국의 기독교 선교는 각 교파별로 활발하게 준비되었고, 이들은 선교를 위한 수단으로 의료와 교육을 앞세웠다.
미국 북장로회는 1884년 의료선교사로 헤론, 알렌 등을 첫 선교사로 임명하여 조선선교를 시작했다. 이들은 조선에 거류하는 최초의 서양인 의사로서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제중원의 설립 배경
알렌이 내한하고 3개월이 지난 1884년 12월 갑신정변이 일어났다. 사건의 전말은 우정국 개설 축하 만찬이 열리고 있던 중 민비의 조카이며 당시 실력자였던 민영익이 자상을 입은 것이다. 이때 알렌이 왕진 요청을 받아 그를 치료했다. 민영익은 3개월 정도의 치료로 완쾌되었고, 이 일을 계기로 알렌은 자연스레 왕실과 가까워졌다.
알렌은 환자들의 치료 및 서양 의술의 전수를 위한 병원을 설립할 것을 조선정부에 공식적으로 제안한다. 역설적이게도 병원 건물로는 갑신정변에 참여했다가 정변 실패로 참살 당한 후 거의 폐허가 된 홍영식의 집이 선정됐다. 이 집은 환자 40명 가량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병원으로 개조됐다. 드디어 조선 정부와 미국 북장로회가 합작 운영하는 서양식 병원이 출범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병원의 명칭을 '널리 은혜를 베푸는 집'이란 뜻의 "광혜원"이라 했다가, 얼마 뒤 '사람을 구제하는 집'이란 의미의 "제중원"으로 개칭했다.
제중원의 활동
갑오개혁이 한창이던 시기에, 여러 개혁 작업 진행에 필요한 재정이 턱없이 부족했던 조선정부가 제중원의 운영권을 미국 선교부에 완전히 넘김으로써 마침내 제중원은 민간병원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제중원 의사들은 전염병의 구료(救療) 사업에도 관여했는데, 1886년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에는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열성적으로 방역활동을 펼치기도 했으며, 특히 종두 접종에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여성 진료에 있어서도 부녀과를 설립하는 등 활발한 진료활동을 펼쳤다.
의학교육
1886년 3월 경쟁을 거쳐 학생을 선발하고 제중원 의학당을 개교했다. 이는 우리나라 의학교육의 효시였으며, 교수로는 알렌, 헤론 및 언더우드가 있었다. 이후 김필순, 홍석후, 홍종은 등 조선인 의학생들은 에비슨의 지도로 거의 전과목에 걸쳐 우리말로 된 의학교과서를 편찬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곳을 통해 배출된 졸업생들에게는 우리나라 최초의 의술 개업 인허장이 수여됐다. 즉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진 의학교육에 국가적인 공인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세브란스병원 설립
에비슨은 제중원을 여러 교파가 참여하는 연합병원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는 이 일이 선교사들의 결집과 의료사업을 효율적으로 진행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1900년 뉴욕에서 열린 만국선교대회에 참석하여 '의료선교에서의 우의'라는 내용의 강연을 했고 이 연설에 감동한 클리블랜드의 부호 세브란스가 병원 건립기금으로 1만 달러를 희사했다.
그러나 병원 설립은 평양의 선교사들의 반대와 조선정부의 비협조 때문에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1903년 말에는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건축자재 값이 폭등해 시공자가 계약을 포기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세브란스가 추가 비용을 기꺼이 부담하면서 문제는 해결되었고, 마침내 조선 최초의 현대식 종합병원이 문을 열었다. 병원 이름은 기증자 이름을 따서 '세브란스기념병원'으로 정해졌고 정식 개원식은 그 해 11월 16일 열렸다. 병원 이름은 바뀌었지만 민중들은 여전히 이 병원을 제중원이라고 불렀다. 건물과 위치가 바뀌었어도 제중원의 역할과 성격은 세브란스병원으로 계승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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