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의 세상에서
평등을 외치는 당신을 위한 안내서
혐오와 차별은 잡초처럼 자란다. 조금만 신경 쓰지 않으면 온 사회에 무성해진다. 사람들은 때로 아주 작은 차별은 무시해도 되고, 심지어 다수에게 유리한 차별은 합리적인 차등이라고 이야기하며,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나 시정조치를 역차별이라고 공격하기도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심각한 혐오주의자나 차별주의자가 아니다. 바로 나, 당신, 우리일 수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평범한 우리 모두가 ‘선량한 차별주의자’일 수 있다고 말하는 도발적인 책이다. 저자인 김지혜 교수(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는 차별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직접 찾아가는 현장활동가이자, 통계학·사회복지학·법학을 넘나드는 통합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국내의 열악한 혐오·차별 문제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는 데 전념해온 연구자다. 현장과 밀착한 인권·혐오문제 연구를 진행해온 연구자답게 이번 책에서 쉽고 재미있는 대중적 글쓰기를 선보인다. 인간 심리에 대한 국내외의 최신 연구, 현장에서 기록한 생생한 사례, 학생들과 꾸준히 진행해온 토론수업과 전문가들의 학술포럼에서의 다양한 논쟁을 버무려 우리 일상에 숨겨진 혐오와 차별의 순간들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은밀하고 사소하며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일들 속에서 ‘선량한’ 우리가 놓치고 있던 ‘차별과 혐오의 순간’을 날카롭게 포착해내는 이 책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선량한 마음만으로 평등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조직해가자고 제안한다. 차별을 당하면서도 작은 문제제기조차 해보지 못한 사람들부터 소위 프로불편러까지, 차별과 혐오의 시대에 지친 현대인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목차
1부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탄생
1장 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2장 우리는 한곳에만 서 있는 게 아니다
3장 새는 새장을 보지 못한다
2부 차별은 어떻게 지워지는가
4장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는 이유
5장 어떤 차별은 공정하다는 생각
6장 쫓겨나는 사람들
7장 “내 눈에는 안 보였으면 좋겠어”
3부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들의 자세
8장 평등은 변화의 두려움을 딛고 온다
9장 모두를 위한 평등
10장 차별금지법에 대하여
에필로그 우리들
감사의 말
주
참고문헌
저자 소개
‘선량한 차별주의자’입니다
“장애인이 버스를 타면 시간이 더 걸리니까 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장애인의 시외버스 탑승에 대한 토의 수업에서 한 학생이 한 말이다. 일부러 장애인을 차별하기 위해 한 말은 아닐 테다. 그렇다면 어떻게 장애인이 돈을 더 내야 공정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된 질서 속에서 바라보면 버스의 계단을 오르지 못하는 것은 장애인의 결함이고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다. 애초에 비장애인에게 유리한 속도와 효율성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이미 편향된 것임을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저자는 이처럼 우리가 차별을 보지 못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는 이유를 1부에서 중점적으로 다룬다. 먼저 모든 사람은 가진 조건이 다르기에, 각자의 위치에서 아무리 공정하게 판단하려 한들 편향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우리가 보지 못하는 차별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특권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특권은 나에게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구조물이나 제도가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되는 그때 발견할 수 있다. 시외버스 좌석에 앉아서 자신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외버스에는 휠체어 리프트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차표를 사도 버스를 탈 수가 없다. 타인은 갖지 못하고 나는 가진 어떤 것, 여기서는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특권이다.
그에 더해 저자는 우리가 때에 따라 특권을 가진 다수자가 되기도 하고, 차별받는 소수자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 개인이 어떤 점에서 소수자라고 해서 늘 차별을 받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런 교차성은 차별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더욱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다. 최근 예멘 난민 수용 논란이 일었을 때, 예멘의 성차별적 문화를 이유로 더 거세게 난민 수용에 반대한 이들이 ‘소수자’인 여성이었다는 점을 예로 들며, 차별에 대한 논의를 더욱 다각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아이러니하게도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조차 차별적인 질서에 맞추어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불평등을 유지시키면서, 차별은 고착되고 구조의 일부가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저자의 날카롭고 다각적인 문제제기를 따라가다보면, 아무리 선량한 시민이라도 차별을 전혀 하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차별은 어떻게
지워지는가
우리 사회의 차별감수성은 10~20년 전에 비하면 놀랄 만큼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적어도 관념적으로는 평등을 지향하고 차별에 반대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선량한 시민들은 차별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지 않고, 평등이라는 원칙을 도덕적으로 옳고 정의로운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물으면 어떤 차별은 합리적이라고, 또 어떤 차별은 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2부에서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차별이 지워지거나 ‘공정함’으로 둔갑되는 메커니즘을 살핀다.
예를 들어보자. 코미디 프로그램의 ‘바보’ 캐릭터가 장애인 비하라는 문제제기를 하자 왜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덤비냐고 말한다. 학생 성적별로 수준에 맞춘 교육을 제공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학급을 우열반으로 나누는 것이 학생들에게 좋은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노키즈존’ 논란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사업주에게는 손님을 거절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저자는 차별에 대한 이런 논란들을 차근차근 해부하며 역으로 질문을 던지고, 인간 심리와 사회현상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이론을 소개하면서 독자가 자연스럽게 평등과 차별을 탐구해볼 수 있게 한다. 애초에 ‘바보’ 캐릭터는 왜 웃긴지, 비하적 농담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없는지 되묻는다. 우열반 편성처럼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한다는 ‘능력주의’ 원칙은 얼핏 객관적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획일적인 평가기준으로 ‘승자’가 모든 기회를 독식하고 패자는 박탈감과 배제를 감수하도록 만드는 것은 아닌지 질문한다. ‘노키즈존’이 사업주의 정당한 권리라면 ‘노장애인존’도 괜찮은가? 사업주가 손님에게 예의를 지켜달라고 요구해도 된다고 해서 어떤 손님이 이를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예 특정 ‘집단’ 전체를 거부해도 괜찮은 걸까? 토론 수업에 참여한 듯 생생한 질문과 대답들을 차근차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우리도 몰랐던 차별적인 생각이 우리 안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기울어진 세상에서
평등을 외치다!
1부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만들어지는 이유를 살피고 2부에서 차별이 숨겨지는 작동원리를 짚었다면, 3부에서는 이러한 차별과 혐오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를 살핀다. 각종 논쟁과 실험을 풍부하게 제시하며,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한걸음의 대안부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폭넓게 살핀다. 집회·시위·시민불복종처럼 차별에 도전하는 노력들이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느껴지는 충돌과 긴장을 다룸으로써, 우리 사회가 소수자의 목소리에 어떻게 귀를 기울여야 할지 생각해본다. 나아가서 ‘모두를 위한 화장실’ 논쟁을 시작으로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보편적이면서도 다양한 평등의 원칙은 가능한지, 그 원칙에 어떻게 합의할 수 있을지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쟁의 의미를 평등을 실현하는 해법의 하나로서 짚는다.
당신은 차별이 보이는가? 노예제 시대에는 노예를 자연스럽게 여겼고, 여성에게 투표권이 없는 시대에는 그것이 당연해 보였다. 우리의 생각은 시야에 갇힌다. 그래서 의심이 필요하다. 세상은 정말 평등한가? 내 삶은 정말 차별과 상관없는가? 시야를 확장하기 위한 성찰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그 성찰의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자연스러워 보이는 사회질서를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며 차별에 가담하게 될 것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내 시야가 미치지 못한 사각지대를 발견할 기회를 제공한다.
모두가 평등을 바라지만, 선량한 마음만으로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우리들은 서로에게 차별의 경험을 이야기해주고 경청함으로써 은폐되거나 익숙해져서 보이지 않는 불평등을 감지하고 싸울 수 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평등도 저절로 오지 않는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이 남기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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