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기독교세계사(2024~) [해설서]/3.성서(구약)이해

[웹북] 창조론의 이해

동방박사님 2024. 8. 2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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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그림

신학적 창조의 의미 / 창조론하나님창세기욤 / 창조론 관련 설화 / 창조 신화천지창조아담에덴 동산선악을 알리는 나무금단의 열매대홍수 신화노아의 방주아브라함의 번제물야곱 설화요셉 족장설화

과학과의 관계

과학과 종교의 관계창조론에 대한 반론진화에 대한 이슬람교의 관점 / 과학과 충돌하지 않는 창조론 / 유신진화론 열린 진화계획된 진화인도된 진화선아담인류론골격 해석간격 창조론바이오로고스(영어판) / 사이비과학적 시각의 창조론(창조설) / 젊은 지구 창조론(창조과학)오랜 지구 창조론점진적 창조론지적 설계창조연대 /관련 사건들 / 스콥스 재판스티브 프로젝트키츠밀러 대 도버 교육구 재판(영어판)교과서 진화론 삭제 사건 

이슬람교

수니파의 다섯 기둥 / 시아파의 열 기둥 / 주요 인물 / 경전과 율법 / 이슬람 교파 / 성지 / 행사 / 종교지도자

창조론(創造論, 영어: Creationism)은 아브라함 계열 설화나 신화, 신앙에 바탕하여 인간, 생명, 지구, 우주 등 만물이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신학 사상이다. 이 창조는 완전한 무()에서의 창조일 수도 있으며, 이전부터 있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 기존의 물질을 사용한 이차적인 창조를 포함한 것일 수도 있다. 연기론이나 이기론 등과 같이 만물 생성의 근본 원리에 관한 형이상학적 또는 종교적 논제의 한 부류로서 연구되기도 한다.

과학의 발전이 가로막혔던 과거 기독교 문화권 등에서 세상의 창조가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졌으나, 인본주의 철학이 등장하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였고, 현대에는 과학의 발달로 입자물리학, 지질학, 고고학, 고생물학, 진화학, 유전학, 분자진화와 합성생물학, 인공생명, 빅뱅이론을 위시한 천체물리학, 기타 자연의 기원 및 역사와 관련이 있는 과학 등과 모순되는 점이 많고 실증되지 못하기에 현대에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신학과 형이상학적 영역에만 국한된다.

또한 신앙적 측면의 창조에 대한 의미 부여도 각기 다른데, 근본주의 기독교에서처럼 모든 것이 처음부터 완전한 없음에서 창조신에 의해 완전한 현재 상태의 창조로 형성되어 유지된다는 관점의 시각과, 오늘날 사실로 밝혀진 진화(점점 바뀌는 현상) 등의 현대과학적 사실들을 적극 수용하여 '진화적 유신론'이라는 관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많은 종교에서 창조에 관한 표현은 해당 종교의 핵심적인 교리에 연관되는 경우가 많으며, 현대에는 교리 중 창조에 대한 해석을 과학적 사실과 비교하는 것이 아닌 신학적, 철학적으로 비교하는 시각이 본바탕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이 문서에서는 창조에 대한 의미부여의 시각을 다룬 부분으로 구분하여, '좁은 의미의 창조론'로 따로 묶어 다룬다.

좁은 의미의 창조론

일반적으로 창조론의 해석 방식에 따라 과학과 충돌이 거의 없는 유신진화론적인 접근과 과학이라 내세우며 과학 등의 학문을 부정하는 창조과학, 지적설계 등의 사이비과학적인 접근으로 나뉜다. 과학의 발달로 진화가 직접 관찰이 되는 자연 현상으로 밝혀지고, 다양한 화학진화에 의한 생명의 기원이 입증되면서,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등의 근본주의권에서만 유사과학적 시각(젊은 지구 창조론/오랜 지구 창조론), 대부분의 복음주의와 자유주의 계열에서는 과학과 충돌이 거의 없는 시각(유신진화론, 선아담인류론)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역사

과학이 발달하기 전의 서구에서는 평평한 지구, 천동설과 마찬가지로 성경이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로 여기는 시각이 대부분이었고, 이에 따라서 창조론은 우주와 지구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역사로도 보여졌다. 하지만 과학의 발달로 지구가 평평하지 않음이 알려지고,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확증되면서 성경을 과학 책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많은 의구심들이 있었다.

1859년 다윈과 월리스에 의해 전해진 "진화"라는 현상은 자연선택에 따라 환경에 적응한 일부 개체가 자연에서 살아남고, 선택된 변이 형질이 후대에 유전된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당시 다윈은 지구에 사는 수많은 종()이 공통 조상들로부터의 거듭된 분화의 결과물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으며, 이것을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라는 뜻으로 잘못 해석한 일부 종교 지도자들이 종교에 대한 모독과 신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여 분노를 표출했기에 과학과 종교의 대립 구도가 나타나기도 했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는 이후 진화가 화석, 분자 계통도, 형질의 상동/상사, 종분화 실험 등으로 입증되며, 수많은 반증 시도를 통과하여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되면서,[2] 종교계 내에서도 과학적 사실인 진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었다. 다윈이 제창한 진화론은 집단유전학, 발생학과 결합하여 더 체계적인 진화생물학이 되었으며, 진화는 동물 행동과 같이 더 복잡한 생물 형질의 자연적인 생성을 이해하는 관점이 제공되는 현대 생물학의 주요 개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과학이 발달하고 진화생물학이 과학적인 사실로 인정됨에 따라, 창조론을 절대적인 진리로 주장하는 가장 큰 집단인 기독교계는 두 가지의 서로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첫째는 진화생물학 자체에 대한 부정이다. 극보수주의적 근본주의 계파에서 주로 펼치는 주장으로, 성경 문자주의에 입각해 비과학적인 근거들로 진화생물학을 공격하고, 사이비과학인 젊은 지구 창조론과 창조과학, 지적설계 등을 주장하는 등 반지성주의적 운동을 펼친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에 비판 및 반론을 펼친다. 둘째는 진화생물학의 인정이다. 대부분의 기독교인 자유주의와 복음주의 계파에서 이러한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유신진화론이라 불리는 신학 이론을 발전시켰다.

과학과 충돌이 적은 창조론

현대에는 생명의 진화와 우주의 생성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받아들이지만, 그 이면에 신의 개입이 존재한다는 방식으로 믿는 경우가 복음주의를 비롯한 신학적 해석의 정석적 방법으로 채택되어, 성서에 적혀 있는 내용 그대로를 과학적 진실로 받아들이기 전에, 성경의 창조는 비유와 은유이기 때문에 신앙의 차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진화가 직접 관찰 가능해진 현대에는 과학과 충돌이 적어 가장 알맞는 창조론의 형태로 인정받고 있다.

골격 해석

창조론은 과학적인 연구 결과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 뿐만 아니라, 창조가 기록된 창세기 1-3장의 기록을 어떻게 신학적으로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를 젊은 지구 창조론을 주장하는 근본주의는 문자적 해석의 결과이다. 반면 오랜 지구 창조론 등 과학 이론을 존중하는 복음주의계열의 경우 이를 문학적 상징적 언어로 해석하는 골격 해석 등 다양한 신학적 해석을 제시한다.

유신진화론

이 부분의 본문은 유신진화론입니다.

유신진화론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지구와 생명의 역사를 대부분 수용하고, 이 모든 과정이 신의 섭리에 의한 창조의 과정이라고 해석하는 이론이다. 과학과의 갈등 요소가 적으며, 신학적으로도 충실한 해석이기에, 기존 창조론의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고, 국제적으로 많은 기독교 계통 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창조론 진화론 논쟁에 있어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유신진화론을 기독교 창조론이 아닌 진화론의 한 형태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과학적 진화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유신진화론"이라는 단어에서 가치 중립적인 과학 이론인 진화이론이 마치 유신론과 무신론으로 나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나타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진화적 유신론", "진화창조론"과 같은 단어들이 유신진화론에 대해 좀 더 제대로 이해하는 단어가 될 수 있다.

유신진화론의 사상적 뿌리는 일부 교부들의 6기간적 견해, 아리우스주의에 뿌리를 둔 유니테리언, 범신론적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을 수용한 스콜라 철학 및 퀴비에의 다중격변설, 자연발생설과 근세의 세속적 인본주의 및 율리우스 벨하우젠의 문서가설, 베르그송의 생의 철학 등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영향을 받아 19세기말부터 기독교는 물론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내부로 유신론적 진화 사상은 급속히 확산되었다.

유신진화론의 공통된 주장은 다음과 같이 종합할 수 있다.

신이 창조의 주체이나 진화를 통하여 만물을 만들었다. 따라서 지금도 신이 만든 자연 법칙에 따라 창조는 계속되고 있다. 신은 창조 사역에 개별적으로 관여하지 않으며, 모든 자연계의 작용은 자연법칙에 따라 일어난다.

최초의 인류가 탄생하기 전(Pre-Adamic Age) 긴 지질 연대가 있었다. 그 지질 시대에 살았던 생물들이 그 해당되는 지층 속에 묻히면서 무기질과 치환된 것이 오늘날의 화석이다.

신이 한 유인원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현생 인류를 만들었다.

창세기는 창조에 대한 과학적 기록이 아닌 문학의 장르이다.

유신진화론은 전 NIH학장이었던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가 설립한 바이오로고스(BioLogos)를 통해 과학과 신학의 조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널리 보급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진화와 창조의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분리론과 조화론으로 구분되며, 진화의 방식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열린 진화, 계획된 진화, 인도된 진화로 구분된다.

분리론

중립적 입장으로 과학자들의 대부분은 이 시각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과학적 발견과 신학적 믿음의 철저한 분리를 통해 진화라는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이되, 창조는 이와는 분리되는 형이상학적인 부분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일반적으로 열린 진화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조화론

바이오로고스를 비롯해 많은 신학자들이 이 시각을 갖고 있으며, 진화를 창조의 한 방식으로 보아 진화의 과정에 대한 연구에 신학자들 역시 참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계획된 진화와 인도된 진화가 여기에 해당한다.

창조설

창조과학

창조를 이미 증명된 과학이론인 진화론과 대립시키면서 과학 이론의 범주로 올려놓기 위한 일련의 사이비과학적 시도들을 특별히 지칭할 때 과학계에서는 창조설(-)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기독교와 유대교의 창세기 경전과 이슬람교의 꾸란에서는 세상의 기원에 대해 묘사하면서 유일신이 세상을 창조하였다고 적고 있으나, 그 방법에 대해 제대로 서술되어 있지는 않다. 이를 과학으로 증명하려는 유사과학적 시도가 제7일 안식교를 중심으로 기독교계와 이슬람교계 등 아브라함계 종교권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스스로 창조과학이라 일컫는 부류는 통일교의 진화반대 주장을 답습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과학 이론과 종교적 믿음이라는 전혀 다른 가치 체계를 같은 위치에 놓고 비교한다는 점에서 오해의 이유가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현재 진화는 그 현상이 직접 관찰되어 과학이론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진화론의 부정은 종교적 근거나 왜곡된 근거만을 제시한다. 또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창조론을 학교 정규 교과 과정에 반영하는 문제가 재판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일부 창조론자들은 창조론에 대한 반론에도 불구하고 네스호의 괴물 사건(루머로 밝혀짐), 1977년 일본 원양어선이 뉴질랜드에서 건졌다는 수장룡(돌묵상어 사체인 즈이요마루 소동) 등이 발견되었다며 과학적 사례라고 주장하나 과학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젊은 지구 창조론

젊은 지구 창조론은 성경 기독교의 극보수주의세력이 문자주의적(축자영감설) 해석을 토대로 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4] 지구의 나이가 6,000~10,000년이라고 주장하며, (하나의 신령)에 의해 최초의 6일 동안 모든 창조가 이루어졌다는 주장이다. 창조과학 역시 상당 부분 이 젊은 지구 창조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젊은 지구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학계가 진화론을 비롯한 다양한 주유 과학 이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맹목적이거나 왜곡된 사실에 근거한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창조과학 지지자들은 창조과학의 체계가 명백하게 과학성의 부재를 가진 편협한 종교적 사이비과학임에도 불구하고, 유사종교나 이단종파가 아닌 참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주류 종교계와 학계는 과학적인 방법을 따르지 않는 창조과학을 인정하지 않는다. 소위 창조과학자라고 불리는 자들은 학문적 규범을 무시하거나 지키지 않으며, 과학이라고 주장하면서 사실상 과학적 방법에 의한 연구는 하지 않고, 실제 과학의 이론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을 아무런 과학적 근거없이 궤변이나 역설 등으로 공격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과학에 초자연적인 속성의 창조를 강제로 끼워넣으며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가짜라는 루머, 다윈의 유언 조작 등 각종 거짓 근거를 동원하여 사람들을 현혹한다. 이들은 자신들끼리는 과학적으로 혁혁한 업적을 세우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주류 학계에 논문을 낸 바가 없고 실제로 학문 발전에 기여했다고 인정받지 못한다. 또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창조론을 학교 정규 교과 과정에 반영하는 문제가 재판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오랜 지구 창조론

오랜 지구 창조론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지구와 우주의 나이를 인정하고, 긴 시간에 걸쳐서 개개의 생명체들이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창세기의 창조가 문자적인 6일에 이루어져 있다고 해석하지 않고, -연대 이론(day-age theory)등의 설명과 같이 오랜 시간이 걸려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한다. 또는 간격론(gap theory)으로 제시된 것과 같이 창조는 6일간에 이루어졌지만, 그 전에 긴 시간이 존재했던 것으로 설명하여 과학적으로 밝혀진 지구의 나이와의 갈등을 해소하기도 한다. 이 이론은 과학계의 많은 이론들을 수용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 하지만, 창세기의 해석에 있어서 문자적 해석과 상징적 해석을 함께 사용한다는 것에서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또한 역시 명백하게 관찰 가능한 현상인 진화와 이를 연구하는 진화학의 과학적인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에 과학계와의 갈등은 여전히 안고 있다.

점진적 창조론

점진적 창조론은 신이 수억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를 창조했다는 종교적 믿음이다. 오래된 지구 창조론의 한 형태로서, 그것은 지구의 나이에 대한 주류 지질학적, 우주론적 추정, 소진화와 같은 생물학의 일부 교리, 고고학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창조는 모든 "종류"의 식물과 동물이 수백만 년 동안 지속되는 단계적으로 나타나는 빠른 폭발로 일어났다. 폭발 뒤에는 새로운 도착을 수용하기 위해 정체 또는 평형 기간이 뒤따른다. 이러한 폭발은 신의 개입에 의해 신이 새로운 유형의 유기체를 창조한 사례를 나타낸다. 고고학적 기록에서 볼 때, 점진적 창조론은 "종은 조상의 꾸준한 변형에 의해 점진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꺼번에 나타나 "온전히 형성된" 상태로 나타난다.

이 견해는 대진화를 거부하며, 생물학적으로 지지할 수 없고 화석 기록에 의해 지지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마지막 보편적 공통 조상으로부터의 공통 후손이라는 개념을 거부한다. 따라서 대진화에 대한 증거는 거짓이라고 주장되지만, 소진화는 창조주가 환경적 적응과 생존을 위해 유전학의 구조로 설계한 유전적 매개변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지자들은 그것을 문자적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중간 지점으로 본다. 휴 로스(Hugh Ross)가 설립한 '믿어야 할 이유(Reasons To Believe)'와 같은 단체들은 이러한 창조론을 조장하고 있다.

점진적 창조론은 창세기의 창조 설사에 대한 해석학적 접근, 예를 들어 시대 창조론이나 틀/은유적/시적 관점과 함께 주장될 수 있다.

지적설계

창조론의 주체인 신에 관한 설명을 제외한 창조론이자 유사과학이다. 통일교가 주도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2005년 말경 키츠밀러 소송 사건에서는 지적 설계론의 완패였다. E. 존스 3세는 판결문에서 "지적 설계론은 과학이 아니며, 나아가 지적 설계설은 창조론, 따라서 그 종교적인 조상들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했다. 이 재판에서 지적설계를 주장하던 마이클 베히에 대항하는 측은 베히가 인용한 편모 관련 논문의 저자들을 직접 불렀으며, 그들은 이곳에서 베히가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창조과학

일부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이 신봉하는 사이비과학으로서 기존의 창세기의 해석에 기반한 창조론적 믿음을 참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행위이다. 창조과학이 주장하는 것 중에 인용오류나 궤변, 전제조건 왜곡 등으로 과학적 사실과 일치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으며, 창조론으로서 신앙도 아니라고 스스로 주장하므로 이는 사이비 종교보다 사이비과학 항목으로 분류한다. 과학계에서는 창조과학의 주장을 정설이나 이론으로 인정할 수 없지만, 종교계에서도 신흥 종파의 차용, 신앙 붕괴나 이단 갈등 발생, 장기간 지속으로 인한 뜻하지 않은 부정적인 역효과 현상 초래 등의 우려로 거리를 두거나 배척하기도 한다.

기독교적 창조론

성경적 특징

일반적으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론은 성경 해석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있다

무로부터(ex nihilo) 창조 : 이 창조는 이미 존재하던 무엇을 사용하여 창조한 게 아니다. 바울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나님(4:17)"이라 하였으며, 고후 4:6"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는 구절이 있다.

전 포괄적 본질성 : 세계 어느 한 부분이 창조된 후 나머지 것들이 다른 것에서 기원하도록 한 것이 아니며, 모든 실체가 본질적으로 신의 창조를 통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이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1)''천지''존재하는 모든 것'으로 해석한 결과이다.

사역 : 창조는 삼위일체 신, 즉 성부, 성자, 성령의 사역이다. 구약성경에서 이 특징은 삼위일체의 개념이 분명하지 않을 때이므로 잘 드러나지 않으나, 신약성경에서는 보다 명확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예로 고전 8:6'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라는 구절이 있다. 성령의 활동은 모호한데, 1:2, 26:13 등의 구절을 성령 활동의 근거로 해석할 수 있다.

창조의 자발성 : 창조는 오직 신의 자발적 의지에 의해 선하고 충분한 이유로 이루어진 것이다. 창조의 목적은 신의 영광이며, 창조된 세계는 신의 뜻을 수행하여 신을 영화롭게 한다.

신학적 의미

기독교적인 창조론은 기독교 신학에서 다음과 같은 신학적 의미를 갖는다.

다원론의 거부 : 신 이외의 모든 존재자는 신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된 것이므로, 신 이외의 어떤 다른 궁극적 원리가 되는 실체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거부된다.

신이 이룬 창조의 독특성 : 신의 창조는 인간의 창조와는 다른 독특성을 가진다. 인간의 물적 창조 행위는 어떤 재료를 변형시킴으로 이루어지며, 이는 재료의 한계 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또한 인간이 어떤 개념을 창조할 때도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작성 및 표현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의 창조는 신 외의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한받지 않는 것이며, 이에 주어진 유일한 한계는 신의 본성 및 신의 선택 뿐이다. '창조'라는 단어는 '무에서 유로'의 개념이며, 인간은 단지 '조합' 혹은 '생산'만이 가능하다.

본질적 악의 거부 : 선한 신에 의해 창조된 어떤 것도 본질적으로 악하지 않다. 창세기에서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언급이 반복되며(1:10, 12, 18, 21, 25), 창조 후에는 신이 창조물을 보고 '심히 좋았더라(1:31)'라는 언급을 한다. , 창조된 처음의 피조 세계 안에는 악한 것이 없었으며, 모두 선한 것들 뿐이었다.

인간의 책임 : 물질 세계가 본질적으로 악한 것이 아니므로, 인간은 물질 세계의 악한 영역을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악한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다. 인간의 죄는 자유를 누리는 가운데 발생한 것이며, 이는 온전히 죄를 짓는 이의 책임이다.

성육신의 가능성 : 성자가 성육신을 통해 지상에 나타났다는 것은 물질 세계가 본질적으로 악하지 않다는 근거가 된다.

금욕주의의 거부 : 금욕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육체적 본성이 어느 정도 악해야 한다. 그러나 물질 세계에 속하는 육체는 본질적으로 악한 것이 아니므로, 금욕주의는 정당화할 수 없다. 구원과 영성은 물질적인 영역을 회피하지 않고, 그런 것을 거룩하게 함으로써 발견되는 것이다.

유출적 일원론의 거부 : 기독교적 창조는 무로부터의 창조이므로, 물질 세계는 신의 본성에서 유출된 것, 즉 신의 실체에서 분리된 신의 일부가 아니다. 피조물은 신의 실체와 확실히 구분되며, 신에 의존적이고 유한한 것이다. 어떤 피조물이나 피조물들의 연합도 신과 동등하게 될 수 없다. 이러한 특성은 피조물의 본질적인 한계가 되며, 우상숭배를 배격할 근거가 된다.

이슬람교적 창조론

창조의 대상

이슬람교에서는 꾸란에 의거하여 모든 존재의 근원을 알라, 즉 신으로 본다. 꾸란에 따르면 신은 인간과 우주를 창조(khalq)했으며, 인간들에게 다른 피조물을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신은 천사(43:19), (55:15 - 진은 연기 없는 불로 창조), 하늘과 땅(14:19), 태양과 달, 낮과 밤(41:37), 천둥(13:3), 나무, 과일, 곡식과 향기로운 꽃(55:10~12), 수중 생물(24:45) 등의 창조주이다.

이론적 쟁점

이슬람교 신학에서 다루는 창조론에서 생기는 이론적 쟁점은 다양하다. 예를 들어, 꾸란에서 '알라'를 배타적인 창조주로 취급하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수라 13:16의 다음과 같은 구절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알라와 다른 '샤리크'(동반자, 우상)에게도 창조의 능력이 있다는 듯한 언급이 있다. 일반적으로 꾸란에서 창조의 능력은 알라(유일신)에게만 귀속되나, 이 구절만이 예외이다.

일러가로되 천지의 주님이 누구이뇨, 일러가로되 하나님이라, 일러가로되 스스로를 위하여 유용함도 해악도 없는 그분 아닌 다른 것을 보호자로 택하였느뇨, 일러가로되 장님과 보는 자가 같을 수 있으며, 암흑과 빛이 같을 수 있느뇨, 또한 그들은 그들이 만든 우상을 그분이 창조한 것처럼 숭배하여 창조된 것이 그들에게 혼돈됨인가, 일러가로되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였으며, 그분은 홀로 전능하심이라 - 사우디 국왕역 성 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 수라 13:16.

말하라. 하늘들과 땅의 주님은 누구인가? 말하라. 알라 말하라. 왜 너희들이 그 분(알라)이 아닌 (다른) 보호자를 취했니? 그들 자신에게 유익과 해로움도 주지 못한다. 말하라. 시각 장애자가 시각 정상인과 동등하냐? 또는 깜깜한 어둠이 빛과 동등하니? 또는 그들이 알라의 슈라카(동반자들, 샤리크의 복수)를 만들어 알라가 창조한 것과 유사한 것을 슈라카가 창조한 것이 알라의 것과 구별이 안 된다는 말인가? 말하라. 알라는 만물의 창조주이다. 그 분은 한 분이시다. - 공일주, 꾸란의 이해,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10, 122쪽에서 재인용.

그러나 이는 정통 교리를 따르는 한 심각한 쟁점이 되지는 않는다. 신 자체의 존재론, 또 이에 의거해 신이 이룬 창조의 특성과 꾸란의 존재를 어떻게 신학적으로 설명할 것이냐가 보다 중요한 쟁점이 되는데, 이에 대해 어떠한 의견을 개진하느냐에 따라 신학의 학파가 무으타질라파, 아슈아리파, 마투리디파 등으로 다양하게 갈리게 되었다.

힌두교적 창조론 / 리그 베다의 근거

힌두교 문헌에서는 여러 가지 창조에 대한 언급이 발견된다. 이는 주로 리그 베다에서 볼 수 있는데,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러한 베다의 언급을 근거로 힌두교의 육파 철학이 세계의 창조 문제를 논한다.

일신교적 창조론

초기 리그 베다 문헌에서는 건조(建造) 또는 출산을 본뜬 원시적인 우주의 창조론을 담고 있지만, 명확한 창조신의 이름은 드러나지 않는다.

후기 문헌에서는 보다 분명한 언급이 보인다. 10:8에서는 우주의 창조신을 '비슈바카르만'이라 언급하며, 이 신은 천지를 창조할 때 집을 짓듯이 양팔로 부채질하여 접합시켰다고 한다.

반면 '브리하스파티'(기도의 주인)를 창조신으로 하는 찬가(10:72)에서는 브리하스파티가 대장장이처럼 만물을 단조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찬가에서 '()는 무()에서 생기지 않는다.'라는 언급이 있는데, 이 구절은 이후 철학적으로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여기의 ''는 비존재라기보다는 혼돈 상태를 가리킨다.

태초에 가없이 넓은 물이 있고, 이 안에서 '히란야가르바'(황금의 태아)가 잉태되어 창조신이 태어났다는 설이 있다.(10:21) 여기서는 창조신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는다. '프라자파티'(조물주)가 거론되지만, 이는 후대에 덧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리그 베다의 내용 중 가장 추상적인 창조론은 우주 개벽의 찬가(10:129)에서 전개된다. 이 찬가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태초에 무()도 없고 유()도 없었다. 공계(空界)도 없었으며 그를 뒤덮는 하늘도 없었다' 이 찬가는 우주의 발생 원인을 중성(中性)의 근본 원리인 절대의 유일자에게로 돌린다.

범신론적 창조론

10:90'푸루샤 숙타'(원시 찬가)는 범신론적이다. 원시의 인간 '푸루샤(Purusha)'는 천 개의 머리, 천 개의 눈, 천 개의 발을 가졌으며, 신들이 푸루샤를 희생시켜 야즈나를 지냈을 때 거기서 말, , 산양, 양 등이 태어났고, 푸루샤의 마음에서는 달이, 눈에서는 태양이, 입에서 인드라와 아그니가, 숨결에서 바람이, 배꼽에서 공계(空界), 머리에서 천계(天界), 양 발에서 대지, 귀에서 방위(方位)가 생겼다고 한다. 이러한 찬가는 거인 해체 신화의 한 예이다.

힌두교의 근거

트리무르티 창조론

오늘날 대다수의 힌두교 종파에서는 태초에는 트리무르티(브라흐마, 비슈누, 시바)만 존재했으며, 이 중 창조의 신인 브라흐마에 의해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믿는다.

창조의 철학적 해명

육파 철학

조로아스터교적 창조론

조로아스터교에서의 창조 과정 묘사는 기독교 및 이슬람교와 유사하게 전개된다. 하늘, , , 식물, 동물, 인간을 6단계로 365일에 걸쳐 창조되었다고 하는데, 선신(善神) 아후라 마즈다와 악신(惡神) 아흐리만의 대립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선신이 땅 위에 인간들의 16개 국가를 창조하자 악신은 그에 대항하는 것을 만들었다고 한다. 선신이 최초로 좋은 나라 '하르야나 와에자프'(동 이란)를 만들자 악신은 뱀과 겨울을, 다른 나라 '니사야'를 만들자 불신(不信)의 죄를, '할라와이티'를 만들자 죽은 자를 묻는 죄를, '카쿠라'를 만들자 죽은 자를 태우는 죄를, 일곱 강()의 지방을 만들자 월경(月經)과 혹서(酷暑)를 창조하였다. 선신이 인간들을 위한 나라를 만들 때마다 악신은 방해물을 만들어 그 나라의 번영을 방해하는 자로 묘사되는 것이다.

과학계의 입장

창조론은 과학 이론이 아니기 때문에 주류 과학계는 사실로 이미 명백히 밝혀진 진화를 더 탐구해가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일부 창조론자들이 비과학적인 근거로 진화론을 공격할 때, 과학적인 근거들로 이를 반박하는 방식으로 입장을 표명한다. 기독교 창조론은 그 존재 여부에 대해 과학적·논리적 반증이 불가능한 특정 종교의 설계자가 존재함을 기본 전제로 하기 때문에, 기독교 창조론은 과학 이론이 아니라 형이상학 이론으로 간주된다.

이미 명백히 사실로 밝혀진 생물학적 진화와는 별개로 생명 출현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인 화학진화의 모델들은 1952년도에 스탠리 밀러의 실험에 의해 유기물 생성이 연구된 직후, 그 당시에는 그 후 그러한 유기물들로부터 생명현상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엄청난 문제라고 생각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리보자임의 발견으로 RNA월드라는 모델에 기반한 연구가 진행되고, 인공 세포의 형성 등이 이루어져 화학진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역시 창조론자 일부는 유신론의 일부로 인식하기도 한다. 생물의 진화에서 발견되는 매 세대마다 증가하는 유전정보를 통해 분자적 복잡성이 대부분 설명이 됨으로써, 이러한 복잡성을 통해, 화학진화나 진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당히 역사가 깊은 신학적 관점이자 진화를 비롯한 과학적 사실들을 수용하는 유신진화론 역시 현대의 게놈 프로젝트 등의 과학적 발견과 관찰 등을 통해 진화가 사실로 증명되고, 화학진화의 과정들이 하나하나 밝혀감에 따라 창조론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고 보기에 과학계와의 마찰은 줄어들고 있다.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

미국

종파의 교리, 신학적 입장과 관계없이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에 대한 통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창조론 부흥기였던 1963년 캘리포니아 북부 교인들에 대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진화를 반대하는 사람은 25%(개신교 30%, 가톨릭 28%)였고,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의 비율은 종파별로 다음과 같았다. 안식교회, 하나님의 성회, 나사렛 교회는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의 비율은 높으나, 전체 미국 내 인구 수는 적은 편이었다.

종파 비율(%)

자유주의 개신교(회중파, 감리교, 성공회, 사도교회) 11

중도파 개신교(장로교회, 미국 루터교, 미국 침례교회) 29

하나님의 교회 57

미주리 노회 루터교 64

남침례교회 72

그리스도의 교회 78

나사렛 교회 80

하나님의 성회 91

7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94

1980미국 교육위원회 저널(Amercian School Board Journal)에 따르면 2/3이 공립학교에서 창조론 역시 교육해야 한다고 했다. 19%는 진화 교육을 없애야 한다고 했고, 48%는 둘 다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1986년에는 미국변호사협회(American Bar Association)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변호사들의 2/3이 공립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치는 게 미국 수정헌법 1(종교에 관련된 조항이 포함됨)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1991년 미국 전역에 대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47%는 최근의 특별 창조에 대해 믿는다고 하였고, 40%는 유신진화론을 선호한다고 하였다. 흑인들, 여성들,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창조론을 더 잘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2005년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53%의 미국인들이 "하나님이 인간을 성경에서 정확히 묘사하는 방식대로 현재의 형태로 창조하셨다"고 믿는다고 했다. 또한 조사 결과는 65.5%의 미국인들이 창조론이 결정적이거나 있을 법한 사실로 본다고 하였다. 같은 해 뉴스위크에서 한 조사에 따르면 80%의 미국인들이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는다고 한다.  [Sources Wikipedia]

책소개

기독교와 과학의 관계라는 해묵은 숙제는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기독교와 과학은 일치, 협력, 갈등, 대립 모델 중 어디에 속하는 관계일까? 이 숙제에 도전하기 위핸 책이 나왔다. 김정형의 『창조론』은 “과학 시대 창조 신앙”이라는 부제가 말하듯,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을 진지하게 고려하면서, 그중에서도 진화론 중심의 생명과학과 대화하는 가운데, 기독교 전통의 창조 신앙에 토대한 창조론을 현대인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재구성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 점에서 본서의 과제는 이중적이라고 하겠다. 우선 저자는 우주와 지구의 생성, 생명의 발생과 자연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어 창조 신앙을 설명하려는 기독교 내의 모든 시도를 ‘창조설’로 명명한다. 아울러 성서문자주의적 창조설, 창조과학의 창조설, 점진적 창조설, 유신진화론적 창조설 등 다양한 창조설이 기독교 안에 혼재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동시에 이러한 다양한 창조설을 넘어 성서의 본래적 메시지와 기독교 전통에 충실한 ‘창조론’으로 나아갈 것을 제안한다. 저자가 이러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현대의 과학적 발견을 둘러싸고 기독교 내부에서 불필요한 대립과 논쟁을 일삼는 것을 지양하고 무엇보다도 과학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소통하는 과제에 최우선의 중요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첫 번째 과제는 두 번째 과제, 즉 현대 과학의 세계관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는 현대인을 염두에 두고 현대 과학을 품는 창조론을 현대적 언어로 재구성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저자가 제시하는 첫 번째 과제와 두 번째 과제는 일견 상충하는 것처럼 보인다. 성서와 기독교 전통에 충실한 창조론이 어떻게 현대 과학의 언어를 통해 표현될 수 있을까? 여기서 저자는 성서적·전통적 창조론에 충실한 기독교인이라면 응당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을 배척해야만 할 것이라는 통념을 비껴가면서, 도리어 본서를 통해 현대 과학이 기독교 신앙과 공명할 뿐 아니라 기독교의 창조 신앙을 풍성케 하는 자원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려고 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본서는 잘 짜인 치밀한 논증을 전개하는데, 본서를 구성하는 논증의 전체 구조는 소박한 창조 신앙에서 출발하여, 현대 과학과의 대화를 통한 비판적 심화의 과정을 거친 후, 결국 기독교 본래의 창조론으로 복귀하면서도 동시에 현대 과학을 품는 성숙한 창조 신앙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따르고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제1부 땅 고르기: 열린 마음으로
제1장 창조론자, 과학에 마음을 열다
제2장 오해를 바로잡다
제3장 창조와 진화-다양한 스펙트럼

제2부 모퉁잇돌 놓기: 창조론의 핵심 진리
제4장 신·구약성서의 창조론
제5장 기독교 전통의 창조론

제3부 옥석 고르기: 생명과학과 대화하다
제6장 생명의 신비
제7장 생명의 역사
제8장 종의 기원
제9장 진화론
제10장 세계관 혁명
제11장 도전과 응답

제4부 돌담 쌓기: 과학을 품은 창조론자들
제12장 19세기 신학자들
제13장 테야르 드 샤르댕
제14장 아서 피콕의 자연주의적 창조론
제15장 판넨베르크의 종말론적 창조론
제16장 회고와 전망

제5부 지붕 잇기: 과학 시대 창조 신앙
제17장 과학을 품는 성숙한 신앙
제18장 자연의 역사와 계속적 창조
제19장 창조의 목적과 인간의 운명

맺는말

부록: 진화론은 무신론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저자 소개 

저 : 김정형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2010년 국제과학종교학회(ISSR)에서 주최한 존 폴킹혼 80세 기념 국제논문대회에서 공동 대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미국 버클리 연합신학대학원(GTU)에서 “기독교 종말론과 과학적 우주론 간의 대화”를 주제로 논문을 제출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잠실 소재 주님의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겼으며, 지금은 장로회신학대학교 연구지원처 조교수로 일...

책 속으로

본서의 주제는 창조론이다. 여기서 창조론은 기독교의 전통 교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창조에 관한 교리(the doctrine of creation)를 말한다. 본서에서 나는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곧 과학 시대를 진지하게 고려하면서 전통적 창조론의 확장을 추구하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본서는 과학 시대의 창조 신앙을 다룬다. 특별히 자연과학의 다양한 분과 중에서 생명과학과 대화하는 가운데 창조 교리를 풍성하게 발전시킬 계기를 제시하고자 한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그렇다면 진화론의 수용을 신앙의 타협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도대체 무슨 근거에서 그런 비판을 제기하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다시 성서문자주의자들과 창조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창조설을 만난다. 그들이 생각하는 정통 신앙의 근본에는 성서가 신앙과 구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역사와 과학 등 모든 면에서 무오하다고 보는 경직된 성서 영감설이 자리하고 있다.
--- 제2장 “오해를 바로잡다” 중에서

과학 시대의 창조 신앙은 한편으로는 과학을 하나님에 관한 진리의 한 영역으로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일부 과학자들의 무신론적·환원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배격하는 이중적 접근 방식을 취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는 확고한 신념 아래 과학과 신학 간의 갈등과 배척을 조장하는 모든 시도를 극복하는 한편, 창조주 하나님과 창조세계 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와 자연과학의 방법론적 근본 한계를 강조하면서 과학의 탐구 영역을 벗어나 있는 창조론의 고유 영역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 제3장 “창조와 진화 - 다양한 스펙트럼” 중에서

우리는 구약성서의 창조 신앙이 단순히 태초의 우주 기원에 대한 사변적 관심을 훌쩍 넘어서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략] 신약성서의 신앙이 전반적으로 묵시적 종말론의 영향 아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것은 창조론에 대해서도 동일하다. [···] 요컨대 신약성서의 창조론은 구약성서의 창조론과 마찬가지로 태초의 창조를 전제하지만 지금도 계속되는 하나님의 보존과 섭리, 장차 완성될 새 창조 등 현재와 미래에 있어 하나님의 창조 활동에 더 큰 강조점을 두고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 제4장 “신·구약 성서의 창조론” 중에서


다윈이 제시한 진화 개념은 생명 현상의 독특한 특징과 역동적 역사를 가장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생물학적 개념으로 발전했다. 진화는 현대 생명과학의 기저에 놓여 있는 가장 포괄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현대 생명과학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화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 제10장 “세계관 혁명” 중에서

진화론은 과학이고 무신론은 형이상학이므로 진화론은 무신론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변증 논리만 고집하는 것은 자칫 진화론이 제기하는 정당한 신학적 문제마저 흐릿하게 만들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한다. 진화론이 하나님의 창조 행위 및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기존의 이해에 의문을 제기한 이상, 우리는 생명의 기원 및 진화의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계속 창조 행위의 구체적인 방식을 포함하여 하나님과 세계의 역동적 관계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 제11장 “도전과 응답” 중에서

자연주의적 진화신학을 대표하는 피콕은 과학이 밝혀낸 자연적 과정의 규칙성과 닫힌 인과관계의 그물망을 강조하면서, [···] 자연 과정 안에서 그 과정을 통해 활동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 곧 자연주의적·내재주의적·범재신론적 사고를 발전시킨다. 반면에 종말론적 진화신학을 대표하는 판넨베르크는 성서의 실재 이해에서 출발해서, 자연 과정이 지닌 우발성과 미래를 향한 개방성을 강조하면서, [···] 종말론적 미래의 인력 혹은 역행적 능력으로서 하나님의 활동에 대한 종말론적 이해를 제안한다.
--- 제16장 “회고와 전망” 중에서

현대 과학이 제시하는 세계관은 대체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복음의 핵심과 직접적 상관이 없는 현대 과학의 세계관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달하고 수용하는 일에 장애물이 될 이유가 없다. 현대 과학의 세계관을 당연시하는 다음세대는 오히려 과학적 세계관을 매개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새롭고 더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본질적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 비본질적 영역에서는 성육신적 적응 곧 눈높이 맞춤 전략이 필요할 때도 있다.
--- 제17장 “과학을 품는 성숙한 신앙” 중에서

현대 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인과적으로 폐쇄되지 않은 열린 체계로서 우주의 새로운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 이러한 개방적이고 통전적인 우주관은 자연과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활동 혹은 섭리에 관하여 새로운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닫힌 우주를 상정하는 근대 과학의 세계관 안에서는 하나님의 활동과 인간의 자유를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없었지만, 열린 우주를 받아들이는 현대 과학의 세계관 안에서는 하나님의 활동 및 인간의 자유 가 과학적 논의와 모순되지 않으면서 이해 가능한 주제가 되었다.
--- 제18장 “자연의 역사와 계속적 창조” 중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성서의 증언은 인간이 하나님께 (배타적인 의미는 아니라 할지라도) 매우 특별한 존재임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역사가 하나님의 창조세계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프로젝트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믿는 기독교의 확신은 인류의 미래를 향한 희망의 근거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긍정은 하나님이 인간 역사가 허무하게 끝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며, 선하신 하나님이 인간 역사를 궁극적으로 완성시키실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 제19장 “창조의 목적과 인간의 운명” 중에서

출판사 리뷰

전체적인 조망을 염두에 두고 본서의 각부와 각장의 내용을 소개하자면, “땅 고르기: 열린 마음으로”라는 제목이 붙은 제1부에서는 저자가 겪어온 신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자전적 내러티브를 통해 소개하고(1장), 저자의 기본 전제(기독교 신앙과 진화론을 중심으로 한 현대 과학이 서로 공명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반하는 근본주의 내지 회의주의적 입장에 따른 여러 질문에 대해 예비적 답변을 제시한다(2장). 이를 통해 저자가 의도하는 것은 기독교의 창조론과 현대 과학이 서로 갈등을 빚고 있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기독교 신학이 진화론을 대하는 방식에도 여러 선택지가 있을 수 있음을 밝힘으로써(3장) 다음 단계의 여정을 위한 복선을 놓으려는 것이다. 제2부에서는 신·구약 성서(4장)와 기독교 전통(5장)에 대한 고찰을 통해 현대 과학의 탐구 영역 너머에 자리한 기독교 고유의 창조론이 지닌 핵심 진리를 제시한다. 이 과정은 마치 현대 과학과의 대화라는 먼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기독교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 반드시 필요한 신앙의 기본 진리를 확인하는 재고조사 내지 필수적인 여행 짐 꾸리기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3부에 들어서서, 저자는 현대 생명과학과의 대화를 본격적으로 취급한다. 이를 위해 우선 현대 과학이 밝혀낸 생명 현상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언급한 후에(6장), 지구상에 최초의 생명이 출현한 이후, 다양한 진화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약 500-700만 년 전에 포유류 영장목 유인원류로부터 인류가 출현하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7장). 이어지는 장에서는 ??종의 기원??으로 대표되는 다윈의 진화론이 여러 비판을 극복한 현대적 종합을 거쳐 신다윈주의로 확립되고(8장), 거기에 유전학, 분자생물학 등의 연구 성과가 결합하면서 생명 현상의 특징과 역사를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으로 자리 잡게 되었음을 밝힌다(9장). 요컨대 현대 진화론은 단지 생물학적 개념으로서 하나의 가설이 아니라, 천동설을 중심으로 한 17세기 과학 혁명에 비견되는, 아니 기독교에 던지는 파장과 도전에 있어 훨씬 더 지대하고 심원한 일종의 세계관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10장). 따라서 저자는 진화론을 필두로 한 현대 과학적 세계관이 제기하는 중요한 도전에 대해 기독교 신학은 진지하고도 책임적인 응답을 제시해야 함을 역설한다(11장).

“돌담 쌓기: 과학을 품은 창조론자들”이란 제목의 제4부는 저자의 고유한 신학적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전에 비슷한 경로를 거쳐 갔던 20세기 신학자들의 여행기를 참고하면서 21세기 과학 시대의 창조 신앙을 위한 좌표를 설정하는 단계라고 하겠다. 먼저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19세기 신학계의 다양한 반응을 소개(12장)한 후에, 20세기 벽두에 등장하여 과학적 세계상(진화론)과 신학적 세계관(기독교)을 종합하는 데 선구적 초석을 놓은 프랑스의 예수회 신학자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1881-1955)의 번뜩이는 통찰을 재음미한다(13장). 비록 테야르의 진화 이해가 시대적 한계로 인한 결함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의 역동적인 우주관과 시종일관 종말론적으로 정향된 신학이 오늘날의 창조적 신학 작업을 위해서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신다윈주의 확립 이후, 20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신학자들을 다루는데, 먼저는 과학적 자연주의에 입각해진화의 역사를 창발의 과정으로 간주하면서도, 그 자연 과정을 하나님의 활동으로 이해하는 영국 성공회 신학자 아서 피콕(Arthur Peacocke, 1924-2006)의 자연주의적 유신론을 소개한다(14장). 피콕과 마찬가지로 진화론을 품는 창조론자에 속하지만, 종말론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관점에서 자연 과정이 지닌 우발성과 미래를 향한 개방성을 강조하는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 1928-2014)의 종말론적 진화신학은 피콕의 자연주의적 진화신학과는 결을 달리한다(15장). 저자는 러셀(R. J. Russell)과 마찬가지로 피콕과 판넨베르크의 신학적 차이를 상호 배타적이 아닌 상호 보완적 관계 속으로 수렴할 수 있다고 보면서도, 이 둘의 신학적 정향을 견주어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활동에 대한 성서의 실재 이해에서 출발한 판넨베르크의 종말론적 진화신학이 기독교 신학의 근본 규범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나타난 창조세계의 종말론적 완성이라는 비전에 비추어볼 때 더 전망 있는 신학적 접근이라고 평가한다(16장).

마지막 제5부는 저자가 지금까지 수행해온 기초 및 조적(벽돌쌓기) 작업에 토대하여 신학적 건축을 완성하는 단계다. 그리고 그 완성작의 이름은 ‘과학 시대에 바람직한 포괄적이고 균형 잡힌 창조 신앙’이다. 먼저는 저자는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과는 직접 상관이 없지만, 그것을 매개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 풍성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한다(17장). 현대 과학은 단지 기독교 신앙을 전달하는 효과적인 매개 내지 수단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 자연 세계의 예측불가능성·개방성·유연성을 강조하는 현대 과학의 열린 패러다임은 신학으로 하여금 자연과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활동 내지 섭리에 관한 새로운 이해로 나아가도록 촉구한다. 특히 이에 공명하는 ‘비간섭적이고 객관적인 하나님의 활동’(NIODA)의 모델은 신학적 사고에서 오랫동안 난제로 여겨지던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의지 간의 모순을 해결하고,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 간의 통합을 가능케 하는 비전을 제시한다(18장). 하지만 최근 인지신경과학의 발전을 통해 제시되는 현대과학의 인간 이해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인간관에 새로운 도전을 제기하는 것과 더불어 장차 인간의 멸종을 예견하는 천체 물리학의 우주 미래 전망은 보편적 부활 신앙에 근거한 기독교적 희망과 배치된다(19장). 저자는 다만 저자는 기독교의 성육신 신앙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창조세계 내에서 인간의 의의를 재정립함과 아울러 삼위일체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 가시는 창조의 완성이라는 기독교적인 확신을 천명하는 가운데 미래에 대한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어놓으면서, 과학 시대의 창조 신앙이라는 엄청난(?) 기획을 마무리한다.

끝으로 첨언하자면,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면서 가장 염두에 둔 독자들은 “과학 시대를 살아가면서 신앙과 과학의 갈등 때문에 여전히 고민 중에 있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서 본서는 현대 과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한 당위성을 기독교 신앙과 어떻게 조화시킬는지에 대해 여전히 확신하지 못하는 구도자들을 위한 유용한 안내서 내지 믿음직한 길잡이로서 기획된 것이다. 저자가 짜놓은 창조 신앙의 지붕 아래에서 보호와 휴식과 위로를 경험하는 가운데 영적·지적 자양을 적절히 섭취하기를 원하는 과학 시대의 창조적 신앙인이라면 ??창조론: 과학 시대 창조 신앙??을 필히 읽어야 할 것이다.

추천평

저자는 현대 과학의 토대 위에서 창조세계의 중심이 사람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이며 그 하나님이 사람으로 성육신하셨다는 점에서 인간의 특별함을 설파한다. 본서는 창조 신앙에 대한 이해의 토대를 다지고 그 폭을 넓혀주는 가운데, 창조에 대한 기원 논쟁이 아니라 어떻게 창조 신앙을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 김근주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교수)
이 책은 진화론이냐 창조 신앙이냐를 따지는 해묵은 논쟁을 종식시킬 만한 설득력 있는 변증서다. 저자는 이제까지 나타난 여러 창조가설과 기독교의 창조론을 구분하여 기독교의 창조론이 지닌 외연과 깊이를 잘 드러내준다. 기독교를 공격하는 대적자들의 손에 있는 무기를 빼앗아 적들의 논리를 반박하는 학문적 글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 김회권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김정형 교수의 『창조론』은 그 부제인 “과학시대 창조신앙”이 말해주듯, 현대의 우주론과 생명과학의 맥락을 염두에 두고서 창조 신앙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설득력 있게 기술한다. 본서가 취급하는 주제의 폭과 깊이는 과학 시대의 창조 신앙을 모색하며 사유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만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 박영식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창조의 신학』 저자)
김정형의 『창조론』은 과학 시대의 신앙 및 신앙과 과학의 관계에 대해 궁금증과 고민을 지닌 사람들에게 주는 반가운 선물이다. 그것도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낸 것이 아닌, 손으로 한 땀 한 땀 정성 들인 한정품과 같은 귀한 선물이다.
- 신재식 (호남신학대학교 교수)
이 책은 창조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창조설(creationism)이 아니라 성서와 과학을 바탕으로 바람직하고 균형 잡힌 신학적 이해를 추구하는 창조신학(doctrine of creation)을 담고 있다. 창조론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 좋은 영양분을 공급할 반가운 책을 독자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김정형의 『창조론』은 오늘날의 과학적 세계관과의 대화를 통해 성서와 기독교 전통의 창조론을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재구성하고, 더 나아가 창조론의 신학적 의미를 확장하려고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현대 과학이 기독교 신앙과 공명할 뿐 아니라 그것을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요청하고픈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열린 마음이다.
- 윤철호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과학 시대의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사랑하며 그 복음이 과학 시대에도 여전히 창조와 구속과 종말의 복음으로 역사할 것을 믿는 사람이라면 김정형의 『창조론』을 반드시 읽어야 할 것이다.
- 전성민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
본서는 생명과학의 진화론을 상세히 취급하면서 이 진화론을 현대 과학 시대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이론으로 제시한다. 아울러 이러한 진화론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사를 포괄하는 창조사적 창조론을 전개하는 점이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신학과 과학’을 연구하는 신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성도들에게도 『창조론』의 일독(一讀)을 권하는 바이다.
- 최승언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 명예교수)
한국교회에는 바로 이런 책이 필요했다. 창조냐 진화냐, 창조과학이냐 창조신학이냐를 따지는 이분법적 논의의 와중에 말 못할 고민에 쌓여 있던 많은 신앙인에게 김정형의 『창조론』은 해갈이 될 만한 단비 같은 책이다. 신앙과 과학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홍국평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연합신학대학원 교수)
 

책소개

앞서 발간된 『성경에 있는 과학적 사실들』이 입문서라고 한다면 이 책은 심화서라고 할 수 있다. 몇몇 중복된 주제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여졌다. 성경과 최근 과학적 연구결과를 토대로 누구나 궁금해 하는 몇 가지 과학적 논제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성경에 나타난 과학적 지식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 지식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거듭 이야기한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사실은 오래전부터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진화론자들과 비 기독교인들에게 도전을 주고 창조주의 존재와 그 능력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잠들어 있던 복음전도의 열정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성경과 과학적 사실들을 이야기 하지만 사실은 일종의 전도핸드북이다.

목차

번역을 마치고 / 4
들어가는 글 / 6

제1장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지구 / 19
제2장 셀 수 없이 많은 별들 / 47
제3장 피 속에 생명이 있다. / 68
제4장 지구는 둥글다. / 79
제5장 해양과학 / 97
제6장 물의 순환 / 116
제7장 열역학 제1법칙 / 126
제8장 노아 방주의 크기 / 141
제9장 전염병 예방과 격리 / 147
제10장 공룡 / 156
제11장 대기오염과 과학 / 180
제12장 과학과 악의 문제 / 187
제13장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변명 10가지 / 194

책을 마치며 / 201

저자 소개

 
컴포트는 리빙워터스선교회의 창립자이자 CEO이다. 일찍이 연예인으로 활동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변화되어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으며, 유튜브에 올려진 수많은 동영상으로 세계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Hell’s Best Kept Secret』, 『The Evidence Bible』을 포함한 80여 권을 저술한 역량있는 작가이며, 특히 본서는 100만 권 이상 팔린 대형 베스트셀러이다. 그의 책들은 무...

역 : 임금선

창작 장편소설 「대자보의 노래」 출간 이후 지금까지 글쓰기와 영문 번역 일을 하고 있다. 고려대학교에서 영어교육학과를 전공했으며, <그리스도인의 전신갑주>시리즈 <나눔이 주는 아주 특별한 선물> <기도해 보라는 뻔한 대답 말고> 등 20여 권의 단행본을 번역했고, <어린이를 위한 평생감사> <보행도시>등이 있으며, 현재 프리랜서 영문 번역 작가와 집필가로 일하고 있다.

책 속으로

성경은 과연 사실인가
성경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경이롭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왜냐하면 성경은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에게 경고하기 때문이다. 믿는 사람들로서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이 사실을 다른 사람도 믿을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전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열 가지 주요한 과학적 사실을 통해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책이라는 것을 입증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소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도전한다. 그들 자신은 물론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성경이 정말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인지 직접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복음은 과연 하나님이 보내신 것일까? 갈수록 어두워지는 이 불안한 세상에서 소망과 쉼을 얻을 뿐 아니라 내세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할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복음이다. 복음이란 “기쁜 소식(good news)”을 의미한다.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지구
우리가 우주에 떠 있는 거대한 공 모양의 바위 위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표현이다. 우리는 우주에 떠 있으면서도 원을 그리며 광대한 우주 속에서 돌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 여행시대의 도래와 함께 우리는 전보다 많은 해답을 얻었지만, 그것들은 더 많은 질문을 안겨줄 뿐이다. 어떻게 지구가 자전을 하는지, 왜 자전을 하는지, 무엇이 자전을 하게 하는지, 어떻게 공전을 하며, 언제부터 공전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지구가 우주에 떠 있을 수 있는지, 우주란 무엇인지, 이 모든 것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세상의 과학은 어떻게, 무엇이, 언제, 어디서, 왜에 대한 답을 찾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누가”라는 질문에서는 몇 가지 이유로 멈춘다. 왜 “누가”라는 질문을 생략하는 걸까. 만일 우리의 사실을 규명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누가”라는 질문이 불편하더라도 추적해야 한다.

돌아보기
1.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려주는 성경구절은 무엇이며,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말해보십시오.
2. 지구가 평평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어떻게 입증했습니까
4. 만일 당신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다면 왜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까
5.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어디에서 영감을 얻어 세계를 항해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까

셀 수 없는 많은 별들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동물은 실존, 또 삶과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인간은 “반짝 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빛나네!”라고 노래하며 별이 암시하는 불멸을 갈망한다. 약 2,500여 년 전에 기록된 예레미야서는 별들이 너무 많아 수를 셀 수 없다고 말한다. 맑은 날엔 육안으로 3,000개의 별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망원경의 등장으로 시야가 확대되면서 전에는 보이지 않던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1600년대 초 갈릴레오는 자신이 직접만든 망원경으로 약 30.000개의 별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별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과학은 천천히 성경을 따라잡고 있다. 유럽 우주기구에 따르면, 천문학자들은 은하수에만 1억 개의 별이 존재한다고 추정한다. 그뿐아니라 수많은 은하계에 수백만 개의 별이 존재한다.

은하수(Milky Way)는 지구와 태양이 속한 우리 은하계이다. 별들을 육안으로는 일일이 다 볼 수 없기 때문에 유백색을 띤 “은하”라고 부른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계가 우주의 모든 별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은하계는 수십 억 개의 은하계 가운데 하나이며, 각 은하계 안에는 수십 억 개의 별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우주의 광대함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그 누구도 우주의 무한 광대함을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수십 억 광년이라는단위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

[먼데이]지에 발표된 한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천문학자들이 지구에서 90억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별을 발견했다고 한다. “90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초신성도 아니고 감마선 폭발도 아닌 하나의 안정된 별 하나를 처음으로 발견했다.”라고 UC 버클리의 천문학교수이며 이 연구의 부책임자인 알렉스 필리펜코는 말했다. “이 별은 초신성 외에 우리가 지금까지 연구해온 별들보다 적어도 100배나 멀리 떨어져 있다”라고 이 연구의 책임자인 미네소타 대학의 패트릭 켈리는 말했다.

해양과학
매튜 모리는 해양학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그는 (약 2,800년 전에 쓰임)시편 8장 8절의 “바닷길”이라는 표현에 주목했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께서 바다에 길이 있다고 말씀하셨다면 나는 그 길을 찾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모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이 길들을 줄곧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는 대륙간 난류와 한류를 발견했다. 해양학에 관한 그의 생생한 저서는 해양학의 기본서로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출간되고 있다. 모리는 1806년 버지니아주 스포칠베이니아 카운티에서 태어났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새기고 실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모리 역시 그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다. 그 결과 그는 미국의 위대한 창조과학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평생 창조와 창조주, 과학과 성경의 관계에서 그가 발견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 했다.

매튜 모리는 시간을 내서 오랜 항해일지들을 연구했고, 그것을 사용하여 해풍과 해류에 관한 도표를 작성했다. 해류의 속도와 방향을 연구하기 위해 그는 “해류병(drift bottles: 특정 지점의 경도와 위도와 날짜를 명시한 종이쪽지를 넣어 밀봉한 병으로 약간의 무게감이 있음.-옮긴이)으로 알려진 병들을 방류했다. 이 병들은 바다 표면 바로 밑에 잠기기 때문에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병이 병에는 누구든지 해안에서 간 이 병을 발견하면 습득한 장소와 일시를 기입하여 다시 방류해달라고 부탁하는 문구가 명시되어 있다. 각 병의 위치와 날짜를 조사한 후, 모리는 해류, 즉 “바닷길”를 도표로 작성할 수 있었고, 이것은 항법학에 큰 도움이 되었다.

공룡
“왜 성경은 공룡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회의론자들의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성경은 비과학적이고 케케묵은 책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말이다. “이 거대한 동물에 관한 증거가 명백한데도 언급조차 안합니다. 공룡 뼈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성경이 아무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다음 성경구절에서 하나님은 이 거대한 동물을 “배헤못”이라고 부르셨다.

“베헤못을 보아라. 내가 너를 만든 것처럼, 그것도 내가 만들었다. 그것이 소처럼 풀을 뜯지만, 허리에서 나오는 저 억센 힘과, 배에서 뻗쳐나오는 저 놀라운 기운을 보아라. 꼬리는 백향목처럼 뻗고, 넓적다리는 힘줄로 단단하게 감쌌다. 뼈대는 놋처럼 강하고, 갈비뼈는 쇠빗장과 같다. 그것은, 내가 만든 피조물 가운데서 으뜸가는 것, 내 무기를 들고 다니라고 만든 것이다. ...” (욥기 40:15-9, 새번역)

앨런 스틸은 창조저널(Journal of Creation )에서 이렇게 말한다. “베헤못”(욥기 40:15 참조)은 사실 히브리어로 “짐승”이란 단어의 복수형이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주석가와 번역가가 이 단어를 ‘강조복수형’ 또는 ‘장엄복수형(*존재의 위대함이나 초월성을 표현하는 관용적 용법)’으로 보는 데에 동의하기 때문에 “거대한 동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례는 실제로 ‘장엄 복수형’의 형태이지만 항상 단수동사와 함께 사용되는“엘로힘(구약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하나님의 이름)”과 유사하다.

또한 베헤못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가운데서 으뜸”이라는 19절의 표현은 (가장 덩치가 크지는 않더라도)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아주 큰 것 중에 하나임을 암시한다. 일부 성경주석가들은 이 단어가 코끼리나 하마와 같은 동물을 언급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거대한 동물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 꼬리가 거대한 나무만 하다는 것이다. 하마나 코끼리는 이 묘사에 들어맞지 않는다. 둘 다 꼬리 크기가 나뭇가지 정도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이 거대한 동물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컸다.
-식물을 먹었다.(초식동물)
-엉덩이와 배에 큰 힘을 지니고 있었다.
-꼬리는 큰 나무와 같았다.
-뼈가 매우 강했다.
-뼈대가 쇠막대기 같았다.

“그것의 힘은 허리에 있고 그 뚝심은 배의 힘줄(*킹 제임스 버전 영어성경은 “the navel of his belly 배의 배꼽”로 표현함.)을 인용하고, 공룡은 알에서 부화하는 것으로 여겨지니 배꼽이 있지 않다면서 욥기 40장에서 언급된 동물이 공룡을 뜻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주장은 또 다른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즉 공룡이 먼저인가 아니면 공룡 알이 먼저인가? 만일 알이 먼저라고 한다면, 그 알은 수정된 알인가? 당연히 수정된 알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룡이 태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수정된 알은 공룡의 암컷과 수컷의 산물이다. 그래야 그 알에서 같은 류의 새끼가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논쟁은 성경적 창조모델의 경우와 매우 흡사하다.

과학과 악의 문제
유명한 무신론자 샘 해리스는 말했다. “신은 재앙을 멈추기 위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 또 관심도 없습니다.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신은 무능력하고, 악한 상상속의 존재입니다. 자유롭게 선택하십시오, 그러나 현명한 선택을 하십시오.”

아마도 이 언변이 뛰어난 무신론자는 고통의 문제에 대한 이 유명한 답변에 았어서는 철두철미하고 신중하게 임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거론하고 답변은 제한하는 것은 지적논쟁에 있어서 불공평하다. 그의 모든 답변은 이것 아니면 저것 식으로 극히 제한적이다. 해리스는 몇 가지 검증되지 않은 이유를 들어 이해가 불가할 정도로 복잡한 DNA와 우주를 만든 창조자를 무력하고, 쓸모가 없어진 존재로 그린다. 아니면 그 창조주가 인류를 도울 수 있으면서도 책임을 떠맡지 않는 악한 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해리스는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없다, 그는 무신론자이기 때문이다. 무신론자인 그에겐 비판할 신도 없고 도덕성에 대한 절대불변의 기준도 없다. 그에게 인생은 단지 역사상 특정 시간에 사회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에겐 선 또는 악을 판단할 만한 그 어떤 기준도 없기 때문에 궁극적인 악이나 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을 악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말이 논리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 ‘제 3의 선택’은 하나님은 상상 속의 존재라는 것이다. 이것은 해리스가 받아들인 선택이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은 당신을 바보로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무(nothing)’가 ‘모든 것(everything)’을 창조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이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것을 선택으로 볼 수 없다. 이것은 터무니 없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가지 주장에 대해서도 열려 있어야 한다. 만일 사이코패스가 십여 명의 어린 소녀들을 강간하고 죽였다면 이사건에 대해 판사는 어떠한 도덕적 책무(obligation)를 지게 할까?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려면 그를 마음 편히 감옥에 앉아 있게 하는 것도 과분하다고 해야 하는가? 절대 아니다. 그는 처형을 기다리는 동안 최소한의 쉼을 누려야 한다. 판사의 유일한 도덕적 의무는 정의가 행해지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이 범죄자는 재판관이 자신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관심도 없으며, 아예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재판관이 정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고 내리는 판단이다. 그들은 재판관은 내키지 않더라도 범죄자를 도울 의무가 있다고 멋대로 생각함으로써 재판관의 특성을 평가 절하한다. 재판관이 극악무도한 범죄자에게 행할 것은 오직 정의이다. 갱생의 의지가 없는 인류는 어리석게도 인간의 본성은 추켜세우고, 하나님의 본성을 무참하게 갈가리 찢는다. 무신론자로서 샘 해리스는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시중을 들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야말로 우상숭배의 산물이다. 그는 성경의 빛을 거부한다, 그리고 자신의 어둠으로 하나님에 대한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창조주를 정의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 (시편 89:14)

그분은 우주의 심판관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죄 값으로 처형을 기다리는 극악한 범죄자들이다. 성경은 하나님은 거룩함으로 타오르는 불이며, 악한 인간에 대해 진노로 가득차 있으며, 모든 인간에게 사형선고를 내리셨다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죄를 지었으므로 죽는다. 죽음은 하나님이 얼마나 죄에 대해 엄격한지를 보여주는 최종 증거이다. 그분에겐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야할 의무가 없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의무는 정의이며, 그 정의는 심판의 날에 완벽하게 행해질 것이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라! 하나님은 심판자로서의 옷을 벗고 범죄자를 대신했다. 그로인해 죄인은 자유롭게 되었다.
--- 본문 중에서

출처: https://japan114.tistory.com/9007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 since 2010:티스토리]

 

 

 

책소개

앞서 발간된 『성경에 있는 과학적 사실들』이 입문서라고 한다면 이 책은 심화서라고 할 수 있다. 몇몇 중복된 주제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여졌다. 성경과 최근 과학적 연구결과를 토대로 누구나 궁금해 하는 몇 가지 과학적 논제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성경에 나타난 과학적 지식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 지식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거듭 이야기한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사실은 오래전부터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진화론자들과 비 기독교인들에게 도전을 주고 창조주의 존재와 그 능력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잠들어 있던 복음전도의 열정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성경과 과학적 사실들을 이야기 하지만 사실은 일종의 전도핸드북이다.

목차

번역을 마치고 / 4
들어가는 글 / 6

제1장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지구 / 19
제2장 셀 수 없이 많은 별들 / 47
제3장 피 속에 생명이 있다. / 68
제4장 지구는 둥글다. / 79
제5장 해양과학 / 97
제6장 물의 순환 / 116
제7장 열역학 제1법칙 / 126
제8장 노아 방주의 크기 / 141
제9장 전염병 예방과 격리 / 147
제10장 공룡 / 156
제11장 대기오염과 과학 / 180
제12장 과학과 악의 문제 / 187
제13장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변명 10가지 / 194

책을 마치며 / 201

저자 소개

 
컴포트는 리빙워터스선교회의 창립자이자 CEO이다. 일찍이 연예인으로 활동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변화되어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으며, 유튜브에 올려진 수많은 동영상으로 세계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Hell’s Best Kept Secret』, 『The Evidence Bible』을 포함한 80여 권을 저술한 역량있는 작가이며, 특히 본서는 100만 권 이상 팔린 대형 베스트셀러이다. 그의 책들은 무...

역 : 임금선창작 장편소설 「대자보의 노래」 출간 이후 지금까지 글쓰기와 영문 번역 일을 하고 있다. 고려대학교에서 영어교육학과를 전공했으며, <그리스도인의 전신갑주>시리즈 <나눔이 주는 아주 특별한 선물> <기도해 보라는 뻔한 대답 말고> 등 20여 권의 단행본을 번역했고, <어린이를 위한 평생감사> <보행도시>등이 있으며, 현재 프리랜서 영문 번역 작가와 집필가로 일하고 있다.

책 속으로

성경은 과연 사실인가
성경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경이롭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왜냐하면 성경은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에게 경고하기 때문이다. 믿는 사람들로서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이 사실을 다른 사람도 믿을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전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열 가지 주요한 과학적 사실을 통해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책이라는 것을 입증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소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도전한다. 그들 자신은 물론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성경이 정말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인지 직접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복음은 과연 하나님이 보내신 것일까? 갈수록 어두워지는 이 불안한 세상에서 소망과 쉼을 얻을 뿐 아니라 내세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할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복음이다. 복음이란 “기쁜 소식(good news)”을 의미한다.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지구
우리가 우주에 떠 있는 거대한 공 모양의 바위 위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표현이다. 우리는 우주에 떠 있으면서도 원을 그리며 광대한 우주 속에서 돌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 여행시대의 도래와 함께 우리는 전보다 많은 해답을 얻었지만, 그것들은 더 많은 질문을 안겨줄 뿐이다. 어떻게 지구가 자전을 하는지, 왜 자전을 하는지, 무엇이 자전을 하게 하는지, 어떻게 공전을 하며, 언제부터 공전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지구가 우주에 떠 있을 수 있는지, 우주란 무엇인지, 이 모든 것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세상의 과학은 어떻게, 무엇이, 언제, 어디서, 왜에 대한 답을 찾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누가”라는 질문에서는 몇 가지 이유로 멈춘다. 왜 “누가”라는 질문을 생략하는 걸까. 만일 우리의 사실을 규명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누가”라는 질문이 불편하더라도 추적해야 한다.

돌아보기
1.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려주는 성경구절은 무엇이며,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말해보십시오.
2. 지구가 평평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어떻게 입증했습니까
4. 만일 당신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다면 왜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까
5.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어디에서 영감을 얻어 세계를 항해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까

셀 수 없는 많은 별들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동물은 실존, 또 삶과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인간은 “반짝 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빛나네!”라고 노래하며 별이 암시하는 불멸을 갈망한다. 약 2,500여 년 전에 기록된 예레미야서는 별들이 너무 많아 수를 셀 수 없다고 말한다. 맑은 날엔 육안으로 3,000개의 별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망원경의 등장으로 시야가 확대되면서 전에는 보이지 않던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1600년대 초 갈릴레오는 자신이 직접만든 망원경으로 약 30.000개의 별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별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과학은 천천히 성경을 따라잡고 있다. 유럽 우주기구에 따르면, 천문학자들은 은하수에만 1억 개의 별이 존재한다고 추정한다. 그뿐아니라 수많은 은하계에 수백만 개의 별이 존재한다.

은하수(Milky Way)는 지구와 태양이 속한 우리 은하계이다. 별들을 육안으로는 일일이 다 볼 수 없기 때문에 유백색을 띤 “은하”라고 부른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계가 우주의 모든 별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은하계는 수십 억 개의 은하계 가운데 하나이며, 각 은하계 안에는 수십 억 개의 별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우주의 광대함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그 누구도 우주의 무한 광대함을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수십 억 광년이라는단위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

[먼데이]지에 발표된 한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천문학자들이 지구에서 90억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별을 발견했다고 한다. “90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초신성도 아니고 감마선 폭발도 아닌 하나의 안정된 별 하나를 처음으로 발견했다.”라고 UC 버클리의 천문학교수이며 이 연구의 부책임자인 알렉스 필리펜코는 말했다. “이 별은 초신성 외에 우리가 지금까지 연구해온 별들보다 적어도 100배나 멀리 떨어져 있다”라고 이 연구의 책임자인 미네소타 대학의 패트릭 켈리는 말했다.

해양과학
매튜 모리는 해양학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그는 (약 2,800년 전에 쓰임)시편 8장 8절의 “바닷길”이라는 표현에 주목했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께서 바다에 길이 있다고 말씀하셨다면 나는 그 길을 찾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모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이 길들을 줄곧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는 대륙간 난류와 한류를 발견했다. 해양학에 관한 그의 생생한 저서는 해양학의 기본서로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출간되고 있다. 모리는 1806년 버지니아주 스포칠베이니아 카운티에서 태어났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새기고 실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모리 역시 그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다. 그 결과 그는 미국의 위대한 창조과학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평생 창조와 창조주, 과학과 성경의 관계에서 그가 발견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 했다.

매튜 모리는 시간을 내서 오랜 항해일지들을 연구했고, 그것을 사용하여 해풍과 해류에 관한 도표를 작성했다. 해류의 속도와 방향을 연구하기 위해 그는 “해류병(drift bottles: 특정 지점의 경도와 위도와 날짜를 명시한 종이쪽지를 넣어 밀봉한 병으로 약간의 무게감이 있음.-옮긴이)으로 알려진 병들을 방류했다. 이 병들은 바다 표면 바로 밑에 잠기기 때문에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병이 병에는 누구든지 해안에서 간 이 병을 발견하면 습득한 장소와 일시를 기입하여 다시 방류해달라고 부탁하는 문구가 명시되어 있다. 각 병의 위치와 날짜를 조사한 후, 모리는 해류, 즉 “바닷길”를 도표로 작성할 수 있었고, 이것은 항법학에 큰 도움이 되었다.

공룡
“왜 성경은 공룡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회의론자들의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성경은 비과학적이고 케케묵은 책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말이다. “이 거대한 동물에 관한 증거가 명백한데도 언급조차 안합니다. 공룡 뼈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성경이 아무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다음 성경구절에서 하나님은 이 거대한 동물을 “배헤못”이라고 부르셨다.

“베헤못을 보아라. 내가 너를 만든 것처럼, 그것도 내가 만들었다. 그것이 소처럼 풀을 뜯지만, 허리에서 나오는 저 억센 힘과, 배에서 뻗쳐나오는 저 놀라운 기운을 보아라. 꼬리는 백향목처럼 뻗고, 넓적다리는 힘줄로 단단하게 감쌌다. 뼈대는 놋처럼 강하고, 갈비뼈는 쇠빗장과 같다. 그것은, 내가 만든 피조물 가운데서 으뜸가는 것, 내 무기를 들고 다니라고 만든 것이다. ...” (욥기 40:15-9, 새번역)

앨런 스틸은 창조저널(Journal of Creation )에서 이렇게 말한다. “베헤못”(욥기 40:15 참조)은 사실 히브리어로 “짐승”이란 단어의 복수형이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주석가와 번역가가 이 단어를 ‘강조복수형’ 또는 ‘장엄복수형(*존재의 위대함이나 초월성을 표현하는 관용적 용법)’으로 보는 데에 동의하기 때문에 “거대한 동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례는 실제로 ‘장엄 복수형’의 형태이지만 항상 단수동사와 함께 사용되는“엘로힘(구약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하나님의 이름)”과 유사하다.

또한 베헤못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가운데서 으뜸”이라는 19절의 표현은 (가장 덩치가 크지는 않더라도)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아주 큰 것 중에 하나임을 암시한다. 일부 성경주석가들은 이 단어가 코끼리나 하마와 같은 동물을 언급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거대한 동물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 꼬리가 거대한 나무만 하다는 것이다. 하마나 코끼리는 이 묘사에 들어맞지 않는다. 둘 다 꼬리 크기가 나뭇가지 정도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이 거대한 동물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컸다.
-식물을 먹었다.(초식동물)
-엉덩이와 배에 큰 힘을 지니고 있었다.
-꼬리는 큰 나무와 같았다.
-뼈가 매우 강했다.
-뼈대가 쇠막대기 같았다.

“그것의 힘은 허리에 있고 그 뚝심은 배의 힘줄(*킹 제임스 버전 영어성경은 “the navel of his belly 배의 배꼽”로 표현함.)을 인용하고, 공룡은 알에서 부화하는 것으로 여겨지니 배꼽이 있지 않다면서 욥기 40장에서 언급된 동물이 공룡을 뜻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주장은 또 다른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즉 공룡이 먼저인가 아니면 공룡 알이 먼저인가? 만일 알이 먼저라고 한다면, 그 알은 수정된 알인가? 당연히 수정된 알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룡이 태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수정된 알은 공룡의 암컷과 수컷의 산물이다. 그래야 그 알에서 같은 류의 새끼가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논쟁은 성경적 창조모델의 경우와 매우 흡사하다.

과학과 악의 문제
유명한 무신론자 샘 해리스는 말했다. “신은 재앙을 멈추기 위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 또 관심도 없습니다.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신은 무능력하고, 악한 상상속의 존재입니다. 자유롭게 선택하십시오, 그러나 현명한 선택을 하십시오.”

아마도 이 언변이 뛰어난 무신론자는 고통의 문제에 대한 이 유명한 답변에 았어서는 철두철미하고 신중하게 임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거론하고 답변은 제한하는 것은 지적논쟁에 있어서 불공평하다. 그의 모든 답변은 이것 아니면 저것 식으로 극히 제한적이다. 해리스는 몇 가지 검증되지 않은 이유를 들어 이해가 불가할 정도로 복잡한 DNA와 우주를 만든 창조자를 무력하고, 쓸모가 없어진 존재로 그린다. 아니면 그 창조주가 인류를 도울 수 있으면서도 책임을 떠맡지 않는 악한 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해리스는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없다, 그는 무신론자이기 때문이다. 무신론자인 그에겐 비판할 신도 없고 도덕성에 대한 절대불변의 기준도 없다. 그에게 인생은 단지 역사상 특정 시간에 사회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에겐 선 또는 악을 판단할 만한 그 어떤 기준도 없기 때문에 궁극적인 악이나 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을 악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말이 논리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 ‘제 3의 선택’은 하나님은 상상 속의 존재라는 것이다. 이것은 해리스가 받아들인 선택이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은 당신을 바보로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무(nothing)’가 ‘모든 것(everything)’을 창조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이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것을 선택으로 볼 수 없다. 이것은 터무니 없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가지 주장에 대해서도 열려 있어야 한다. 만일 사이코패스가 십여 명의 어린 소녀들을 강간하고 죽였다면 이사건에 대해 판사는 어떠한 도덕적 책무(obligation)를 지게 할까?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려면 그를 마음 편히 감옥에 앉아 있게 하는 것도 과분하다고 해야 하는가? 절대 아니다. 그는 처형을 기다리는 동안 최소한의 쉼을 누려야 한다. 판사의 유일한 도덕적 의무는 정의가 행해지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이 범죄자는 재판관이 자신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관심도 없으며, 아예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재판관이 정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고 내리는 판단이다. 그들은 재판관은 내키지 않더라도 범죄자를 도울 의무가 있다고 멋대로 생각함으로써 재판관의 특성을 평가 절하한다. 재판관이 극악무도한 범죄자에게 행할 것은 오직 정의이다. 갱생의 의지가 없는 인류는 어리석게도 인간의 본성은 추켜세우고, 하나님의 본성을 무참하게 갈가리 찢는다. 무신론자로서 샘 해리스는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시중을 들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야말로 우상숭배의 산물이다. 그는 성경의 빛을 거부한다, 그리고 자신의 어둠으로 하나님에 대한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창조주를 정의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 (시편 89:14)

그분은 우주의 심판관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죄 값으로 처형을 기다리는 극악한 범죄자들이다. 성경은 하나님은 거룩함으로 타오르는 불이며, 악한 인간에 대해 진노로 가득차 있으며, 모든 인간에게 사형선고를 내리셨다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죄를 지었으므로 죽는다. 죽음은 하나님이 얼마나 죄에 대해 엄격한지를 보여주는 최종 증거이다. 그분에겐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야할 의무가 없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의무는 정의이며, 그 정의는 심판의 날에 완벽하게 행해질 것이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라! 하나님은 심판자로서의 옷을 벗고 범죄자를 대신했다. 그로인해 죄인은 자유롭게 되었다.
--- 본문 중에서

출처: https://japan114.tistory.com/9007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 since 2010:티스토리]

 

책소개

하나님은 세상을 어떻게 만드셨는가?
학문적이면서 신실한 창조론 논쟁이 펼쳐진다!

“창조를 깊이 이해하기 위한 모두의 필독서!”

우종학, 양승훈, 박영식, 송인규, 이정규, 트렘퍼 롱맨 3세, 제럴드 라우 추천


이 책은 창조에 관한 견해가 다른 창조론자들 세 그룹이 한데 모여 10년간 나눈 긴 대화의 기록이다. 젊은 지구 창조론을 표방하는 남침례회 신학교 교수들이 진행을 이끌고, 오랜 지구 창조론자들(믿어야 할 이유, RTB)과 진화적 창조론자들(바이오로고스)이 대화에 참여한다. 총 11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대화 주제는 창조-진화 문제에 있어서 핵심 이슈들, 곧 성경의 무오성, 아담과 하와에 관한 입장, 자연의 악 문제, 생물학적 진화, 지질학적 증거, 공통 조상 등을 다룬다. 이 대화의 주된 목표는 서로의 핵심 입장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 합의점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입장을 정확하고 너그럽게 표현하는 것을 배우는 데 있다. 독자는 유력한 단체들이 제시하는 기원에 관한 두 입장을 배움으로써 젊은 지구 창조론과 무신 진화론이라는 극단적인 두 견해 사이에 얼마나 다른 입장들이 풍성하게 존재하는지 알 수 있다. 나아가 목회자와 교사들은 이 책을 통해 성도들과 학생들에게 기원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을 설명할 준비를 할 수 있다.

목차

감사의 글

서론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1장 경계들 각 단체를 정의하는 견해는 무엇인가?
2장 성경 해석 성경 권위의 본질은 무엇인가?
3장 최초의 부부 아담과 하와에 관한 가능한 입장은 무엇인가?
4장 죽음, 포식, 고통 ‘자연의 악’은 악한가?
5장 하나님의 행동 하나님은 자연계와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시는가?
6장 과학적 방법 방법론적 자연주의 혹은 자연신학?
7장 생물학적 진화 생물학적 진화란 무엇인가?
그것이 생명의 역사를 설명해 주는가?
8장 지질학적 증거 지구의 자연사와 생명의 기원은 무엇인가?
9장 화석 증거 호미니드는 누구였는가?
10장 생물학적 증거 유전학은 공통 조상을 가리키는가?
11장 인류학적 증거 인간은 어떻게 독특한가?
결론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해설
참고 도서
기고자들

저자 소개

해설 : 송인규
 
건국대학교에서 축산학, 총신대 신학대학원과 미국 캘빈 신학교에서 신학, 시라큐스 대학교에서 철학(Ph.D.)을 공부했다. 한국 IVF 총무를 역임했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으며 은퇴 후 한국교회탐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예배당 중심의 기독교를 탈피하라』 『고립된 성』 『세 마리 여우 길들이기』 『새로 쓴 기독교, 세계, 관』(이상 IVP), 『아는 만큼 누리는 예배...

편 : 케네스 키슬리 (Kenneth Keathley)

사우스이스턴 침례신학교 신학 수석교수로, 같은 대학에서 제시 헨들리 신학 의장과 러스 부시 신앙과문화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Mark Rooker와 공저한 『40 Questions About Creation and Evolution과 Salvation and Sovereignty: A Molinist Approach』 등이 있다.
 
편 : 짐 스텀프 (J. B. Stump)
 
바이오로고스 선임 편집자다. 보스턴 대학교에서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철학 교수와 행정관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Kathryn Applegate와 공동 편집, IVP), 『Science and Religion: An Introduction to the Issues』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이 책의 주된 목적은, 창조론을 주장하는 두 단체가 서로 강력하게 의견의 불일치를 보이면서도 여전히 서로를 기독교적 사랑과 존경, 상대방 입장의 장점을 기꺼이 진지하게 생각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대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두 단체와 남침례회 소속 진행자들 모두는, 이 대화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분열시킬 듯 위협하고 있는 여러 논쟁들과 관련해 어떻게 다정하게 화해를 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모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서론」중에서

적어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 동서문화사)이 출간된 이후 그리스도인들은 과학과 신학의 관계?혹은 관계의 결여?를 이해하는 방식과 관련해 일종의 지도 역할을 해 왔다. 근래에는 복음주의자들 중에서 특별히 기독교와 과학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다양한 단체들이 나타났다. 바이오로고스와 RTB는 기독교와 과학 사이에 존재하는 조화를 보여 주고자 하는 단체들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지고 가장 존경받는 그룹에 속해 있다.
---「1장 경계들 각 단체를 정의하는 견해는 무엇인가?」중에서

바이오로고스와 RTB는 자연이라는 책과 성경이라는 책 모두를 신성한 계시를 위한 적절한 도구로 인정한다. 그러나 바이오로고스는 보다 비일치주의적인 그들의 성경 읽기 방식 때문에 그 두 책이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즉 성경이라는 책은 신학적 진리를 드러내고, 자연이라는 책은 과학적 진리를 드러낸다고 믿는다. 월튼의 견해에 의하면, 성경의 주된 의미는 원래의 고대 저자가 그것을 통해 의미하고자 의도했던 것이다. 유연한 일치주의적 해석학에 대한 샘플즈의 긍정은 성경의 신적 저자가 그것의 인간 저자들에 의해 이해되지 않았던 의미들을 성경 본문에 끼워 넣었을 수 있다고 단언하도록 이끈다.
---「2장 성경 해석 성경 권위의 본질은 무엇인가?」중에서

오늘날 진화와 관련된 상황은 갈릴레오의 상황과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몇 가지 유사성이 있다. 우리는 인간이 동물과 공통 조상을 공유한다는 것과 우리 모두가 한 쌍의 유일한 부부로부터 유래하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키는, 서로를 보강하는 수많은 증거들이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과학적 자료와 과학적 합의의 힘은 누군가에게 성경에 대한 그의 해석을 바꾸도록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전통적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시나리오나 RTB 시나리오에 대해 중대하고 새로운 신학적 도전을 제기한다. 바이오로고스 공동체에 속한 학자들은 아담과 하와에 관한 여러 진화적 시나리오들에 신학적 문제는 거의 없는 반면 진보를 위한 보다 큰 기회가 존재한다고 결론지었다.
---「3장 최초의 부부 아담과 하와에 관한 가능한 입장은 무엇인가?」중에서

타락 이전이든 이후든 하나님의 매우 선한 창조 안에 본질적으로 악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더럽히는 일을 많이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다. 욥과 요셉, 다니엘이 경험했던 악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인간의 악한 의도와 행위를 더 큰 선으로 바꾸기 위해 일하셨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실 것이다(롬 8:28). 하나님은 이런 전환을 극대화하기 위해 우주와 지구, 그 안의 모든 생명을 신중하게 설계하셨다. 이 맥락에서 그분은 자신을 예배하는 자들이 인간의 악과 자연적 사건들의 결과 때문에 고통을 당해 온 이들에게 연민을 보이고 도움을 주기를 기대하신다. 또한 그분은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신다.
---「4장 죽음, 포식, 고통 ‘자연의 악’은 악한가?」중에서

바이오로고스에 속한 우리는 자연계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부인함으로써 하나님을 위한 역할을 보존하려는 시도는 일을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우리는 창조 세계 전반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과학이 자연을 설명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설명에서 나타나는 틈들이 하나님의 솜씨를 보여 준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설계자의 표시가 아주 정확하게는 작동하지 않는 하자가 있는 시스템에서 발견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우리는 자연의 내적 작용을 밝히는 과학자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이들이라고 믿는다.
---「5장 하나님의 행동 하나님은 자연계와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시는가?」중에서

대개 하나님은 그분의 일상적인 섭리를 통해 창조 세계와 상호 작용을 하신다. 일상적인 섭리는 과학적 작업의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 또한 그것은 우리가 목격하는 대다수의 물리적 현상들이 물리학의 법칙 안에서 적절한 설명을 발견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유연한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효율적인 접근법을 제공한다. RTB는 과학에 대한 유연한 방법론적 자연주의 접근법의 타당성을 긍정하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참되게 파악하는 일에서 모든 자연신학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인정한다. 또한 RTB는 대개 성경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상황화할 필요성을 인정한다.
---「6장 과학적 방법 방법론적 자연주의 혹은 자연신학?」중에서

바이오로고스에 속한 다른 이들은 이런 것들을 조금씩 달리 표현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활동(우리가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생명 창조의 지속적 과정에서 발생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어야 할 과학적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할 만한 타당한 신학적 혹은 성경적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쉽게 생명의 역사에 관한 진화적 이해 속으로 통합될 수 있다.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진화가 취해 온 방향이 (그것이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방해를 받은 경우를 제외하고) 하나님의 뜻 바깥에 있지 않았으며, 이미 발생한 모든 일과 앞으로 발생할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허락되었다는 것이다. 진화론에 그것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생명의 과정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완전히 일치하는 방식으로 성립되었다.
---「7장 생물학적 진화 생물학적 진화란 무엇인가? 그것이 생명의 역사를 설명해 주는가?」중에서

지구의 천문학적·물리학적·지질학적 역사를 피상적으로 조사해 보더라도, 하나님이 우주 안에서 그의 창조 사역의 정점인 인간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부여하신 사명을 완수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자원을 얻게 하시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는 모습이 드러난다. 하나님이 지구와 그 안에 속한 인간을 위한 생명체를 준비하시는 일에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시고 그토록 깊은 관심을 가지셨다면, 그분은 모든 인간의 삶에는 얼마나 더 관심을 가지시고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실까?

우리는(RTB) 모두 전도와 선교와 사역에 적극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에 기적적인 방식으로 거듭해서 개입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증언해 왔다. 이 경험은 초월적 기적, 초자연적 개입, 그리고 그분이 그것을 사용해 시공간이라는 차원, 물리학의 법칙들, 우주와 그것의 모든 물리적 구성 요소의 특성들을 확립하셨던 정교한 설계 등을 통해 자신이 지으신 자연 영역의 모든 부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불리시는 분과 잘 들어맞는다.
---「8장 지질학적 증거 지구의 자연사와 생명의 기원은 무엇인가?」중에서

많은 이들이 유전자 자료가 명확하게 인류의 진화적 기원과 역사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RTB) 방법론적 자연주의의 제약이 완화된다면, 공유된 유전적 특징들을 공통 조상이 아니라 공통 설계에 대한 증거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분자인류학의 자료들은 인류의 기원에 대한 전통적인 성경적 관점을 과학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10장 생물학적 증거 유전학은 공통 조상을 가리키는가?」중에서

바이오로고스와 RTB는 모두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 때문에 인간의 독특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바이오로고스는 RTB보다 동물의 왕국과 인간 사이에서 높은 연속성을 본다. 바이오로고스와 RTB는 고인류학의 연구를 진지하게 다룬다. 그러나 바이오로고스는 인간의 발달을 진화적 틀 안에서 이해하고, RTB는 그렇지 않다. 슐로스와 라나 모두 동일한 고인류학적 증거를 조사하지만, 그들은 그 증거로부터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바이오로고스는 RTB보다 네안데르탈인과 인간 사이에서 보다 높은 연관성을 본다.
---「11장 인류학적 증거 인간은 어떻게 독특한가?」중에서

우리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RTB는 선교와 교리적 입장에 초점을 맞추는 전도 사역이다. 바이오로고스는 그것의 사역을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인 청중에게 맞추고 보다 넓은 교리적 입장을 갖고 있다. 이런 서로 다른 강조점과 접근법은 그 두 단체의 차이점들 중 일부를 설명해 준다.

그러나 이 책은 RTB와 바이오로고스 사이의 다른 차이가 겉보기보다 더 깊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 모든 불일치에 대한 완벽한 해소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 단체의 구성원들은 다른 단체에 속한 이들을 향한 참된 애정과 이해를 갖고 있다. 양측 모두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 그리고 선교에 대한 의식을 일관되게 드러냈다. 영광스럽게도 나는 두 단체의 사람들 모두와 함께 일할 기회를 얻었다.
---「결론」중에서

출판사 리뷰

과학과 신앙의 접점에서 성숙한 대화가 가능한가?
오랜 지구 창조론자들(RTB)과
진화적 창조론자들(바이오로고스)이
10년간 나눈, 거침없으나 따뜻한 대화의 기록!

논쟁이 아닌 ‘대화’를 시작하다


과학과 신학의 주요한 쟁점들에는 동의하지 않으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공유하는 세 그룹을 한데 모아 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서로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는 일이 가능할까? 다른 이를 공격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입장을 제시하는 일은 어떨까? 토론에서 이기려 하기보다 겸손하게 배우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가능할까? 과도하게 양극단으로 치닫는 오늘의 문화 속에서 그런 대화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보기 드문 성숙한 대화가 세 그룹 사이에서 시작되었다. 오랜 지구 창조론자들(믿어야 할 이유, RTB)과 진화적 창조론자들(바이오로고스)이 대화 상대자로 참여하고, 이들 대화의 중재자 겸 청중으로 젊은 지구 창조론을 표방하는 남침례회 신학교 교수들이 나섰다. 이들은 하나의 공통점―교회의 하나됨을 요구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연구하는 일에 대한 열정―덕분에 이들의 차이점에 관한 대화에 필요한 공동의 기반을 찾을 수 있었다.

평신도 독자가 과학-신앙 문제를 확인하고 이 대화를 통해 유익을 얻도록 돕는다

이 책은 전통적인 두 견해 사이의 논쟁이 아니다. 두 단체 모두가 다루는 과학-신앙 문제들의 범위와 각각의 창조 모델에 내포된 과학과 신학 문제들의 전문적 성격을 감안하면, 어느 한쪽 모델을 옹호하는 데도 책 한 권으로는 모자랄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견해를 상세히 다루는 책들은 이미 출간되어 있다.

오히려 이 책의 목적은, 평신도 독자가 과학-신앙 문제들을 확인하고, 두 단체가 지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며, 그들 대화의 본질과 그들이 그 대화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자신과 교회 전체가 어떻게 그 대화를 통해 유익을 얻을 수 있는지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다.

내용의 전개 방식에 있어서 유례없이 독보적인 특징을 선보인다

대화는 총 11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화의 주제는 창조-진화 문제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이슈들을 포함한다. 성경의 무오성, 아담과 하와에 관한 입장, 자연의 악 문제, 자연계에 대한 하나님의 상호작용, 과학적 방법론, 생물학적 진화, 지질학적 증거, 화석 증거, 공통 조상, 인류학적 증거를 다룬다. 대화는 진행자인 남침례회 신학교 교수들이 이 주제들에 관한 두 단체의 입장을 묻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에 RTB(믿어야 할 이유)와 바이오로고스가 각각 답변을 하면 교수들이 추가 질문을 던져 답변의 내용을 발전시키는 형태로 진행된다. 추가 답변이 끝나면 교수들은 신학적 논평으로 대화를 마무리한다.

이 대화를 통해 독자는 RTB(오래된 지구 창조론)와 바이오로고스(진화적 창조론)의 입장을 비교하면서 그 차이점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두 단체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진화론의 수용 여부와 성경 및 과학에 대한 상이한 접근 방법이다. 바이오로고스는, 모든 과학적 내용의 진리는 과학 자체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보고 성경은 그런 과학적 진리가 갖는 종교적·철학적 의미나 관점을 제공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RTB는 성경의 몇몇 본문들이 미래의 역사적 사건과 과학적 발견들을 예측하는 기능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차이점들뿐 아니라 두 창조론의 최근 동향과 발전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인간의 능력과 매우 가깝다고 여겨져 진화의 증거로 빈번히 대두되는 네안데르탈인의 능력에 대한 근래의 증거들(2016년)을 제시한다.

대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대화를 통해 우리가 얻는 유익은 무엇인가?

이 대화의 주된 목표는 서로의 핵심적 입장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 합의점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입장을 정확하고 너그럽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독자는 유력한 단체들이 제시하는 기원에 관한 두 입장에 대해 배움으로써 젊은 지구 창조론과 무신 진화론이라는 두 개의 극단적인 견해들 사이에 얼마나 풍성한 다른 입장들이 존재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목회자와 교사들은 성도들과 학생들에게 기원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을 설명할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대화는 단지 견해와 주장에 관한 것 훨씬 이상이다. 대화의 참여자들은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의견을 완전히 달리하면서도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는 법, 곧 교회 안에서의 일치를 위한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르는 법에 관한 모델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할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양극화되고 거친 의견 차이로 가득 찬 세상에 대해 강력한 증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주요 독자

-창조에 대한 바른 가르침을 추구하는 교회학교 교사 및 신학생, 목회자
-기원 논쟁의 다양한 관점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싶은 그리스도인
-과학 및 과학 교육 분야에 종사하는 그리스도인
 

추천평

아주 흥미로운 책이다. 내용도 그렇지만, 대화의 동기와 전개 면에서도 유익하고 배울 점이 많다. 창조와 진화, 신학과 과학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그룹의 사람들이 단순히 논박하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의 견해를 보다 명료화하기 위해 함께 논의의 장을 펼쳤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젊은 지구 창조론’과 ‘오랜 지구 창조론’, ‘진화적 창조론’은 오늘날 한국교회 내에서 창조와 진화와 관련해서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이론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서로 대화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은…각각의 주제마다 흥미로운 긴장이 감도는 답변이 제시되어 있다. 학생들과 함께 읽고 진지하게 토론하고 싶은 책이다.
- 박영식(서울신학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창조의 신학』 저자)

우주, 지구, 생명, 생물, 인간의 기원과 관련하여 매우 드물고도 유익한 책이 등장했다! 넓게는 과학과 신앙의 문제요 좁게는 창조-진화의 이슈를 다룬 책이지만, 저술의 취지와 내용의 전개 방식에 있어서 유례없이 독보적인 특징을 선보인다. 이 책은 오랜 지구 창조론을 대표하는 RTB와 진화적 창조론을 대표하는 바이오로고스 두 단체 사이의 대화와 토의 결과인데, 이 두 단체의 대화에 젊은 지구 창조론 입장을 가진 남침례회 신학교 교수들이 중재 역할을 하며 대화를 이끌어 간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이 책은 진화와 창조에 관한 주제 및 이슈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큰 깨달음과 통찰력을 선사한다. 물론 이 책의 유익은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생각과 견해가 서로 다른 그리스도인들끼리 어떻게 건설적으로 교류할지―진술은 명확하고 날카롭게 그러나 태도는 겸허하고 평화롭게―도 능란히 가르쳐 주는 책이다.
- 송인규(한국교회탐구센터 소장, 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던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겉으로는 오랜 지구 창조론과 진화적 창조론의 논쟁으로 보이지만 진화론, 젊은 지구 창조론(창조과학), 지적 설계, 성경 무오, 성경 해석, 과학주의, 역사적 아담, 악의 문제, 공통 조상 등 과학과 기독교의 관계를 다룰 때 등장하는 대부분의 주요 개념들을 다룬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기본적으로 같은 신앙 고백과 성경관을 지닌 복음주의 진영의 학자들이 어떻게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할 수 있는지(엡 4:15)에 대한 좋은 모범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 교회는 젊은 지구 창조론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지적 영토를 잃어버렸다. 이 책이 실토회복(失土回復)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 믿는다.
- 양승훈(에스와티니 기독의과대학교 총장, 『인류의 기원과 역사적 아담』 저자)

과학과 신앙의 접점에서 성숙한 대화가 가능할까? 그 가능성을 보여 준 이 책이 무척 반갑다. 겸손하나 날카롭고 학문적이나 신실한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창조에 대한 두 가지 입장인 ‘진화적 창조론’과 ‘오랜 지구 창조론’의 견해가 차례로 드러난다. 이 책은 신앙을 의심하거나 반과학적 주장으로 점철된 소모적인 논쟁 대신에, 성경과 인류의 기원, 진화와 자연신학의 주요 이슈들에 대해 깊이 있는 논점과 통찰을 제공한다. 그런 면에서 창조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한 모두의 필독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희미한 스케치로 남아 있는 창조의 그림을 보다 선명하고 세련되게 그려 갈 수 있을 것이다.
- 우종학(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과학과신학의대화 대표)

이 책은 세 가지 점에서 아주 유익하다. 첫째, 과학에 관해서라면 공포를 가지고 있는 나 같은 문과생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게 잘 쓰였다. 둘째, 창조에 관해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대표적인 두 견해를 명료하게 파악하고 차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쓰였다(특히 1장을 보라. 1장만 봐도 얻는 것이 많을 것이다!). 셋째, 이렇듯 갈등이 첨예한 문제에 대한 좋은 대화의 실례를 볼 수 있다.

이 중에 가장 좋은 점은, 어려운 개념들이 등장해도 그 개념들에 대한 깔끔한 설명이 등장하고, 궁금한 점이 생길 때마다 대신 물어봐 주는 남침례회 신학교의 진행자들 덕분에 학구적인 책을 읽는 느낌보다는 대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뿐 아니라, 창조의 신비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아주 유익한 책이다!
- 이정규(시광교회 담임목사, 『예수님의 기도학교』 저자)

믿어야 할 이유(RTB)와 바이오로고스(BioLogs)의 이 대화는 크게 칭찬받을 만하며, 여러 이유로 중요하기도 하다. 첫째, 대화의 어조가 평화적이고 우아하며 겸손하다. 둘째, 대화 참여자들이 상대 참여자들의 기독교적 진실성을 신뢰한다. 셋째, 대화 참여자들이 과학적 발견에 비추어 성경 해석의 의미를 놓고 논쟁할 때 성경의 권위를 진지하게 다룬다. 넷째, 대화의 진행자로 참여하고 있는 남침례회 신학자들이 양편 당사자에게 명확함과 추가적인 정교함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효과적으로 이끌면서 초점을 잡아 나간다.

마지막으로, 이 대화는 오랜 지구 창조론을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를 당연한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대화가 젊은 지구 창조론 대 오랜 지구 창조론에 대한 논쟁을 넘어서 기독교 공동체가 주목할 필요가 있는 보다 긴급한 문제들로 나아가게 한다.
- 폴 코판(팜 비치 애틀랜틱 대학교 철학 및 윤리학 석좌교수)

기원, 특히 인간 기원의 문제는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 이 책에서 바이오로고스와 RTB 두 단체는 그들 사이의 심각한 차이에도 서로를 존중하며 의견을 주고받는 일의 모범을 만들었다. 그 결과, 중요하고 시의적절한 주제에 관한 지적이고 탁월한 논의가 완성되었다.
- 트렘퍼 롱맨 3세(웨스트몬트 대학 성경학 교수)

이 책에는 기원 논쟁을 훨씬 넘어서는 문화적 의미가 있다. 심각한 견해차를 지닌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해 동안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고자 애쓰면서 함께 예배하는 쪽을 택했다. 분노로 가득 찬 분열이라는 특징을 지닌 사회에서 이 책이 기록하고 있는 화해를 위한 고된 작업은 진귀하고 아름다우며 우리 모두에게 본보기가 된다.
- 조수아 스와미다스(워싱턴 대학교 의과대학 조교수)

이 책은 상반된 견해를 가진 두 집단이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대화를 나누는 시민 담론의 모델을 제공한다. 창조와 진화 논쟁에 관심이 있는 누구라도 이 책에 제시된 다양한 입장들의 공통 특징인 관대함과 명료함을 통해 유익을 얻을 것이다.
- 데니스 알렉산더(페러데이 과학과종교연구소 명예소장)

케네스 키슬리, 짐 스텀프, 조 아귀에가 엮은 이 책은 ‘과학과 신학의 핵심 쟁점들에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나 예수에 대한 사랑을 공유하고 있는 세 집단’을 함께 모은 ‘선례가 없는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이 책이 특별히 성공적인 이유는, 세계적 수준의 지성인들이 이 논쟁을 통해 그동안 교회와 학계를 그토록 분열시켜 왔던 과학과 신앙의 문제에 대해 신선하리만큼 객관적이고 학문적인 개요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에세이와 인터뷰들은 기원 연구에 관심을 가진 누구에게나 적절하고 신중하게 연구된 자료들을 제공하는 한편, 신학적이고 과학적인 상이점과 일치점을 분명하게 전해 준다. 대학 총장이자 정통 기독교 신앙을 지닌 사람으로서 나는 이 책의 출간이 신앙 공동체와 학계 모두를 위한 의미 있는 한 걸음이 되리라고 믿는다.
- 카를로스 캄포(애슐랜드 대학교 총장)

이 대화는 아주 분명히 귀 기울여 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은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할 줄 아는 서로 다른 입장을 지닌 이들이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해 분명하게 그리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한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스럽다. 그와 동시에 이 책은 매우 불만족스러운데, 그것은 좋은 의미에서 그러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나의 가정들이 도전을 받고 나의 지평이 확장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 책을 읽은 후에 나는 이전과는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대화의 진행자를 포함해 모든 참여자가 탁월한 일을 해냈다.
- 존 잭 콜린스(커버넌트 신학교 구약학 교수)

이 책의 주장들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문헌의 광대함과 과학적이고 신학적인 배경의 깊이를 고려한다면, 어쩌면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신자들은 어떻게 과학과 신앙을 화해시키는지를 오해하는 일은 불가피할 것이다.…이 책이 가치가 있는 것은 지식에 대한 기여 때문이 아니다. 이 책에서 다뤄지는 모든 개념은 다른 곳에서도 출간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책의 중요성은 이해에 대한 공헌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가 어떻게 창조 세계의 나머지와 관계하고 하나님과 관계하는가 하는 중요한 문제에 관한 건설적인 대화의 한 예를 제공한다.
- 제럴드 라우(『한눈에 보는 기원 논쟁』 저자)

출처: https://japan114.tistory.com/12284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 since 2010:티스토리]

 

책소개

자연과 신에 관한 우리의 신념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어떻게 해서 우리는 과학과 종교에 대해 지금처럼
생각하게 되었는가?

17세기 갈릴레이, 19세기 다윈, 20세기 스코프스 재판까지
과학과 종교 간 오랜 갈등의 본질은 주도권 쟁탈이었다

현대인은 흔히 말한다. 과학은 ‘앎’에, 종교는 ‘믿음’에 복무한다고. 과학은 합리적이고 진보적이어서 인류를 발전으로 이끄는 반면, 종교는 맹목적이고 보수적이어서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고 많은 이는 생각한다. 하지만 애초에 과학과 종교는 모두 ‘앎’에 대한 좀더 깊은 숙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밤하늘에 뜬 달과 별을 올려다보며 그 운행의 물리적 메커니즘을 궁금해하는 이가 있는 반면, 그 조화로운 사이클의 장엄함과 광막함에 경외감을 품는 이도 있다.

그 앎에 대한 추구의 결실은 각기 달랐다. 과학은 물리 현상의 이면에 있는 실제의 원리를 탐측하며 거듭 갱신해온 최신의 메커니즘을, 종교는 저 복잡하고 정교한 우주를 만들고 관장해온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존재의 신성과 그 성서적 교리를 결실로 맺었다. 그런데 두 영역은 공통적으로 역사와 문화, 다시 말해 앎을 찾기 위한 오랜 시도와 협업 과정을 통해 오늘과 같은 발전을 이뤄냈다. 이 책은 이러한 과학과 종교 각각의 발생과 성취를 긍정하는 바탕 위에서, 양측이 빚어온 갈등의 양상과 그 쟁점을 차근차근 짚어보며, 몇 가지 역사적 논쟁 현장을 아울러 살핀다.

목차

1. 과학과 종교의 논쟁에서 실제로 쟁점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2. 갈릴레이와 과학철학
3. 신은 자연 속에서 행동할까
4. 다윈과 진화
5. 창조론과 지적설계
6. 마음과 도덕

머리말/ 감사의 말/ 참고문헌/ 독서안내/ 역자 후기/ 도판 목록

저자 소개

저자 : 토머스 딕슨(Thomas Dixon)
퀸 메리 런던 대학의 역사학 부교수. 국제과학종교학회 회원이며 현대지성사 전문가다. 〈타임스 문예부록Times Literary Supplement〉에 글을 썼고, 심리학의 역사와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철학에 관한 책을 펴냈다. 2009년에 본서로 영국 과학사학회 딩글상(Dingle Prize)을 수상한 바 있다.
역자 : 김명주
성균관대 생물학과와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을 졸업했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옮긴 책으로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1만 년의 폭발』 『다윈 평전』 『생명 최초의 30억 년』 『공룡 오디세이』 『아인슈타인과 별빛여행』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진화 이야기』 『해답은 DNA』 등이 있다.

책 속으로

현대과학의 관찰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종교적 경험도 앎을 찾는 공동의 시도와 그것을 위한 오랜 협업 과정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종교의 경우, 당신의 망막에 닿는 빛과 신의 영광에 대한 당신의 생각들을 매개하는 것은, 특정한 성서의 오랜 역사와, 그 성서에 대해 인간사회들이 연속적으로 시도해온 독해와 해석이다. 그리고 과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공동의 노력에서 얻은 한 가지 교훈은 사물이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는 것이다. 종교의 스승들은 과학의 스승들만큼이나, 관찰된 것 뒤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 그들의 불안정한 직관과 믿음을 뒤집어놓을지도 모르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 p.23

역사가들은, 과학과 종교의 충돌로 기억되는 갈릴레이 사건이 실제로는 지식을 생산하고 전파하는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오래된 정치적 질문과 관련된 분쟁이었음을 밝혀냈다. 로마에서 반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고, 30년전쟁으로 유럽의 프로테스탄트 세력과 가톨릭 세력이 서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서로 경쟁하는 지식의 원천들에 대한 질문을 그 자신의 해석과 추론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갈릴레이의 주장은 극도로 건방진 태도이자 교회의 권위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 보였다.
--- p.58

인간이 ‘창조의 정점이자 완성’이 아니라 ‘개선된 유인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뿐 아니라 신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윌버포스는 지적했다. 옥스퍼드 회합에서 윌버포스는 발언의 막바지에, 1000명에 가까운 군중 사이에 앉아 있던 다윈의 가장 충실한 옹호자 토머스 헉슬리를 돌아보며, 그의 원숭이 조상이 할머니 쪽인지 할아버지 쪽인지 물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헉슬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엄숙한 과학 토론에서 지적 능력과 영향력을 헛소리나 지껄여대는 데 이용하는 사람을 할아버지로 갖느니 차라리 원숭이를 할아버지로 갖는 편이 낫다고 답했다. --- p.123~124

많은 창조론자들은 진화와 관련한 특정한 과학적 결과들을 거부하는 반면, 과학의 성공을 흠모하면서 그 성공을 모방하고 심지어는 도용하려고 시도한다. 모리스와 창조과학자들이 근본주의적 반진화를 대안적 과학으로 포장한 이유 중 하나는, 공립학교에서 진화과학의 대안으로 창조론을 가르치게 하려는 자신들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 p.152

동성애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개념이 형성되면서 동성애가 의학적 질병으로 분류되었다. 그 결과 동성애는 비난하기보다는 동정해야 하는 자연적 상태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질병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법이 바뀐 1960년대 영국에 널리 퍼져 있었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을 정의하고 강화하는 종교와 의학의 시도들이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은, 오늘날 동성애가 치료받아야 하는 질병이라는 생각을 여전히 고수하는 소수의 조직들이 바로 종교집단이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 p.199

출판사 리뷰

자연과 신에 관한 우리의 신념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어떻게 해서 우리는 과학과 종교에 대해 지금처럼
생각하게 되었는가?

17세기 갈릴레이, 19세기 다윈, 20세기 스코프스 재판까지
과학과 종교 간 오랜 갈등의 본질은 주도권 쟁탈이었다

앎을 향해 나아간 인류의 두 갈래 길, 과학과 종교
현대인은 흔히 말한다. 과학은 ‘앎’에, 종교는 ‘믿음’에 복무한다고. 과학은 합리적이고 진보적이어서 인류를 발전으로 이끄는 반면, 종교는 맹목적이고 보수적이어서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고 많은 이는 생각한다. 하지만 애초에 과학과 종교는 모두 ‘앎’에 대한 좀더 깊은 숙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밤하늘에 뜬 달과 별을 올려다보며 그 운행의 물리적 메커니즘을 궁금해하는 이가 있는 반면, 그 조화로운 사이클의 장엄함과 광막함에 경외감을 품는 이도 있다.
그 앎에 대한 추구의 결실은 각기 달랐다. 과학은 물리 현상의 이면에 있는 실제의 원리를 탐측하며 거듭 갱신해온 최신의 메커니즘을, 종교는 저 복잡하고 정교한 우주를 만들고 관장해온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존재의 신성과 그 성서적 교리를 결실로 맺었다. 그런데 두 영역은 공통적으로 역사와 문화, 다시 말해 앎을 찾기 위한 오랜 시도와 협업 과정을 통해 오늘과 같은 발전을 이뤄냈다. 이 책은 이러한 과학과 종교 각각의 발생과 성취를 긍정하는 바탕 위에서, 양측이 빚어온 갈등의 양상과 그 쟁점을 차근차근 짚어보며, 몇 가지 역사적 논쟁 현장을 아울러 살핀다.

과학과 종교 간 갈등의 본질은 사회 주도권 쟁탈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제목 그대로 ‘과학과 종교’다. 양측은 근대 이후 수 세기에 걸쳐 우주의 원리에 관한 해석을 두고 논리 다툼을 벌여왔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운명의 짝패와도 같이 한 덩어리의 인문학적 연구 대상이 되었다. 이 기간에 과학은 이전 시기에 종교가 쥐고 있던 정치적·사회적 주도권의 상당 부분을 빼앗아온 양상을 보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로 ‘정치적·사회적 주도권’이다. 과학이나 정치나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은, 세계에 대한 해석에서 자신들의 가치가 단연 타당함을 주장하고, 이를 통해 당대 사회에 자신들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 책 저자는 “당대에 발생하는 사상들 간의 대결은 훨씬 더 크고 깊은 곳에 있는 구조들의 가시적인 말단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이 책 전체에 걸쳐 추구하는 목표가 “어떻게 해서 우리가 과학과 종교에 대해 지금처럼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는 것, 지식에 대한 어떤 선입관들이 개입되어 있는지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지적 논쟁들에서 언외 의제를 만들어내는 정치적·윤리적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임을 밝힌다.

종교 진영의 주도권 틀어쥐기

중세까지 종교가 단단히 틀어쥐고 있던 정치적·사회적 주도권은, 근대기에 접어들며 이성과 합리의 기치가 굳건해지면서 점차 과학 쪽으로 기울어왔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과학이 종교에 판정승한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특히 과학적 ‘합리성’이 대다수 인류에게 그야말로 합리적인 가치로 인준되면서, 애초 종교 쪽에서는 절대 수용 불가의 영역이었던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서도 그 ‘합리성’과 ‘타당성’을 일부 인정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정치적·사회적 주도권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것이어서, 종교는 그들이 용인한 과학적 합리성의 가치를 교묘하게 비틀어 그들의 새로운 교리 해석에 활용하기 시작한다. 신앙을 가진 과학자들은 그들의 연구 분야에서 명쾌히 설명해내기 힘든 지점들을 가리키며, 그런 부분들에 바로 ‘신의 섭리’가 투영되어 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양자물리학 등 최신의 과학이 보여주는 사뭇 기이하고 불확정적인 면모를, 신이 행동할 수 있는 모종의 ‘틈새’로 이용하려는 끼워맞추기식 논리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학이 합리라는 새 시대의 무기를 통해 세계의 해석에서 우위를 점하기 전까지, 종교 진영은 그들의 아성에 도전하는 과학의 의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제지한 바 있다. 저자는 과학과 종교가 주도권 싸움을 벌인 대표적 현장으로서 아래의 세 가지 역사적 장면을 제시한다.

#1 _1633년 갈릴레이 재판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이 우주에 관한 정확한 기술이리라 짐작한 갈릴레이는, 당대에 새로 개발된 망원경을 활용해 천체를 상세하게 관측한다. 이를 바탕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이 사실임을 확인하고 그 내용을 정리해 책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추기경 마페오 바르베리니가 평소 그의 연구에 대해 지지와 찬사를 보내온 데 고무된 갈릴레이는, 1632년에 호기롭게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라는 제목의 책을 펴낸다. 그러나 교황 우르바누스 8세로 취임한 마페오 바르베리니는 갈릴레이의 기대와 달리, 이단적 학설을 주창했다며 그에게 유죄판결을 내린다. 관찰과 추론을 통해 자연세계를 관찰한 행위 자체가 죄는 아니었다. 종교개혁 시기에 접어들며 보수적 색채를 강화하던 당대 로마가톨릭 사회에서 교회 교리를 거스르는 역린의 죄를 그는 범한 것이었다.

#2 _1860년, 다윈을 둘러싼 헉슬리와 윌버포스의 논쟁

1831년 비글호에 승선해 5년에 걸쳐 남아메리카 해안을 샅샅이 훑은 다윈은 동식물을 비롯해 온갖 자연물을 탐구하며 탁월한 자연학자로 성장한다.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문헌에 영감을 받으며 자신의 연구를 정리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핵심으로 한 저서 『종의 기원』을 1859년에 발표한다. 이듬해인 1860년 옥스퍼드에서 열린 학술토론 현장에서 주교 새뮤얼 윌버포스는 다윈주의를 신에 대한 모욕이라 비판하며 다윈과 토머스 헉슬리 등을 조롱했다. 이 사건은 본질적으로, 영국의 과학과 종교 제도를 둘러싼 사회적 이익집단들 간의 충돌이었다. 약 20년 후인 1879년, 다윈의 장례식에서 영국국교회는 그의 진화론을 사실상 승인했다. 그러나 이때도 교회는 성서와의 충돌, 인간의 자유의지나 도덕, 영혼 등의 개념과의 양립 불가능을 이유로 진화론에 대한 의심을 버리지 않았다. 갈릴레이로부터 두 세기가 지났지만, 종교의 패권은 여전히 상당했다.

#3 _1925년 스코프스 재판, 그리고 오늘

다윈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과학과 종교 간 논쟁은 특히 진화에 대한 논쟁으로 집중되어왔다. 1925년 미국에서 열린 이른바 ‘스코프스 재판’은, 창조론을 부정하고 진화론을 가르친 한 교사를 가운데 두고 벌어진 사회 세력 간의 주도권 싸움이었다. 교사 스코프스는 유죄판결을 받았고, 이후 한동안 미국의 학교 대부분은 과학 교과과정에 진화론을 넣지 않았다. 그러나 약 40년 후인 1968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국교 지정 금지를 명문화한 미국헌법 수정조항 제1조에 따라 반진화법이 위헌임을 분명히했다. 이후 종교 진영은 ‘지적설계’나 ‘창조과학’의 개념을 등장시키며 반격을 꾀하고 있으나, 헌법 수정조항 제1조에 대한 대법원의 확고한 신념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갈등은 공립학교 교과과정을 둘러싼, 역시나 ‘통제’에 대한 주도권 다툼이다.

주도권을 쥔 현대 과학에도 허점은 있다

이처럼 종교의 탄압 혹은 방해에 맞서온 과학 진영은, 현대에 이르러 세상을 분석하고 설명해내는 데 있어 월등한 우위를 점하며 확고한 논리적 승리를 거둔 것 같았다. 그러나 종교 고유의 영역으로 여겨져온 ‘마음’과 ‘도덕’의 분석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의외로 허술한 면모를 노출하고 있다. 그 예로, 이른바 ‘진화윤리학’이 보이는 한계를 들 수 있다. 인간의 양심과 도덕 감정이 진화의 산물이라며 과학의 잣대를 강조하는 이 학문은, 인류가 진화에 의해 특정한 자연적 본능들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러한 본능들을 따르는 것이 옳은가라는 윤리적 질문에 맞닥뜨려서는 한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다. 폭력, 절도, 간통을 범하게 만드는 본능들도 나름의 진화적 기원이 있을 테니 말이다.
또한 과학이 제기하는 현대의 윤리, 혹은 미래에 대한 경고는, 지난날 종교가 사람들에게 행했던 ‘통제’의 논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과거에 종교의 선지자들은 회개하지 않으면 신이 분노해 대재앙을 내리리라는 경고를 내리곤 했는데, 의학을 비롯한 현대의 과학은 이와 비슷하게, 부도덕한 성적 탐닉, 탐식, 탐욕을 멈추지 않으면 성병, 비만, 지구온난화로 인한 궤멸적 자연재해 등을 겪게 되리라고 경고하고 있다. 내용은 바뀌었지만 본질적인 구조는 똑같다. 과학이 제시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 예측을 받아, 정책 입안자와 정치 지도자들은 시민들에게 위협 아닌 위협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추천사
딕슨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과학과 종교의 관계’라는 복잡한 쟁점을 이해하는 데에 과학의 역사가 도움을 줄 수 있음을 광범위한 사례를 통해 멋지게 입증한다. 이 책은 명료하고 간결한 문체, 탄탄한 논증, 비전문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가독성을 갖추고 있다. 과학사 분야나 학계 밖의 독자들에게도 매력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_2009년 영국 과학사학회 딩글상(Dingle Prize) 선정의 변
 
출처: https://japan114.tistory.com/12026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 since 2010: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