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국제평화 연구 (박사전공>책소개)/2.외교국제정치

평화의 경제적 결과 (2024)

동방박사님 2024. 11. 28. 06:27
728x90

책소개
전쟁이 끝나면 정치가 시작된다

징벌적인 전후 처리의 파국을 예언했던, 그리고
지금 벌어지는 전쟁 이후의 세계를 그리게 해주는 불멸의 고전

★★‘케인스의 경제학’에 천착한 박만섭 고려대 명예교수의 밀도 높은 번역★★
★★케인스의 라이벌 조지프 슘페터가 인정한, 통찰력과 용기를 두루 보여준 명저★★

『평화의 경제적 결과(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는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1883~1946)가 제1차세계대전의 종전 협상 결과인 베르사유조약의 문제점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려고 쓴 책이다.

 케인스는 참혹한 대전쟁에서 발생한 피해를 최대한 복구하는 동시에 교류가 단절된 국가의 국민들이 다시금 연결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케인스의 전망은 당장의 정치적 이익을 앞세우고 비전을 관철시키지 못하는 정치인들로 인해 좌절되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승전국은 패전국 독일이 감당할 수 없는 징벌적인 배상을 요구했는데,

이는 독일 국민에게 모멸감을 안기고 경제 체계를 재기 불능 상태로 만들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더 큰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지한 케인스는 이 책을 통해 세계 전체가 다시 번영하려면 모두 적개심을 덮고 교류를 지속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케인스의 경고는 독일에 히틀러와 나치당이 대두하고 제2차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실현되고 말았다.

갈수록 세계화의 문이 좁아지고 각종 보복이 횡행하는 지금, 『평화의 경제적 결과』는 인류가 벌인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꼭 읽어야 할 현대의 고전이다.

목차
옮긴이의 말
서문

제1장 서론
제2장 전쟁 전의 유럽
제3장 파리평화회의
제4장 평화조약
제5장 배상
제6장 조약 후의 유럽
제7장 처방

저자 소개
저 : 존 M. 케인스 (John Maynard Keynes) 
영국 케임브리지셔 출생으로 이튼고등학교를 거쳐 케임브리지대학의 킹스칼리지에 입학, ‘Apostles’그룹에 가입하여 젊은 윤리학자 G.E.무어의 영향을 받았다. 

1905년 대학 졸업 후 공무원이 되어 1908년까지 인도부(印度部) 및 재무부(財務部)에 근무하였다.

 1909년 케임브리지대학교 강사 겸 회계관이 되었다. 

1911~1945년 영국의 대표적 경제잡지 「이코노믹 저널 Economic Journal」의 편집...

역 : 박만섭
박만섭은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와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리즈 대학교에서 7년간 교수로 재직했으며, 1998년부터 고려대학교에서 교육과 연구에 임하고 있다. 

이단 경제학, 좀 더 특정적으로 말해, 스라피언 경제학과 포스트케인시언 경제학의 관점에서 경제학의 여러 문제들을 연구한다. 

특히 스라파의 생산가격 이론 체계와 케인스의 유효수요...

책 속으로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울린 총성이 세계대전의 시발점이었던 것처럼, 이토록 불안정한 시기에 중국-타이완 관계, 그리고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이 비극적 폭발의 촉매제로 작동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절대적이지 않아 보인다.

현 시점에서 『평화의 경제적 결과』는 책의 발간 100주년 기념 논문집의 편집자가 말한 대로 “예지(豫知)의 경고”로 작동할 수 있다.

우리가 다시 이 책에 주목해야 할 이유이고, 지금 번역을 출간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파리는 악몽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소름 끼치도록 병적이었다. 

경박한 풍경 위로 금방이라도 파국이 엄습할 것 같은 느낌이 솟아올랐다. 

거대한 사건 앞에서 허무감과 왜소함의 느낌이 사람들에게 닥쳐왔다. 

내려지는 결정의 중요성과 비현실성이 서로 교차했다. 

경솔함, 맹목성, 오만함, 외부로부터 들려오는 혼란한 울부짖음. 고대 비극의 모든 요소가 그곳에 있었다. 

실제로 마치 극장처럼 웅장한 장식으로 꾸며진 프랑스의 정부 회의장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한결같은 용모와 변함없는 표정을 지닌 윌슨 대통령과 클레망소 수상의 비범한 얼굴은 과연 그것이 진짜 사람의 얼굴인지 아니면 어떤 이상한 연극이나 인형극에 나오는 희비극적 가면은 아닌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 「제1장. 서론」 중에서

“전쟁은 유럽의 생명을 모두 위험에 빠뜨릴 정도로 이 체계를 흔들어놓았다.

 유럽 대륙의 매우 큰 지역이 병들고 죽어가고 있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사용할 수 있는 생계 수단에 비해 그 수가 너무 많았고, 경제조직은 파괴되었으며, 운송 체계는 망가졌고, 식량 공급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파리평화회의의 임무는 약속을 존중하고 정의를 충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사람들의 삶을 다시 세우고 상처를 보듬는 것도 그들의 임무였다. 

이 임무들은 신중함을 따라, 그와 동시에 고대 사람들의 지혜가 전쟁의 승자에게 인정한 것 같은 관대함을 따라 지켜져야 할 것이었다.”
--- 「제2장. 전쟁 전의 유럽」 중에서

“따라서 결국 클레망소는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정도에서 벗어나고 불가능해 보였던 제안, 즉 독일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는 제안을 성사시켰다. 

만일 윌슨 대통령이 그토록 양심적이지만 않았다면, 만일 그가 자신이 하던 일을 자신에게서 숨기지만 않았다면, 마지막 순간에라도 그는 잃었던 입지를 회복하고 상당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틀 속에 갇혀있었다. …… 

평화회의의 마지막 장면에서 대통령은 완고함과 타협에 대한 거부의 대명사로 각인되었다.”
--- 「제3장. 파리평화회의」 중에서

“이 딜레마의 진정한 형태는 한편에는 독일 산업이, 다른 한편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자리 잡고 있는 문제로 나타날 것이다. 

석탄의 양도가 독일 산업을 파괴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석탄이 양도되지 않는다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산업이 위험에 빠질 것이라는 점도 똑같이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 특히 발생한 피해의 대부분이 궁극적으로 이제 패전국이 되어버린 국가의 사악한 행위로 인한 것일 때, 조약에 따른 여러 권한을 지닌 승전국들의 편을 들어줘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런 감정과 권한이 지혜에 따른 정도(正道)를 벗어나 일을 주도하도록 허락된다면, 그것이 중부 유럽의 사회적·경제적 삶에 끼칠 영향은 너무 강력해서 원래 의도한 한계 안에서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 「제4장. 평화조약」 중에서

“독일을 한 세대에 걸쳐 노예 상태로 격하하고, 수백만 인간의 삶을 퇴화시키며, 한 나라의 모든 국민에게서 행복을 박탈하는 정책은 혐오스럽고 가증스러운 정책이다. …… 

어떤 사람은 그것을 정의의 이름으로 설교한다. 인간 역사의 위대한 사건에서, 국가들의 뒤얽힌 운명이 풀어헤쳐지는 과정에서 정의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간단하다면, 적국의 어린이들에게 그들 부모나 통치자가 저지른 잘못의 벌을 받게 하는 권한이 종교나 자연적 도덕의 이름으로 국가에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 「제5장. 배상」 중에서

“경제적 궁핍은 쉬운 단계를 거쳐 진행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인내하며 견디는 한 외부 세계는 궁핍 속 사람들에게 그리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신체적 효율성과 질병에 대한 저항성이 점차 낮아지지만 삶은 어떻게든 진행된다. 

그러나 드디어 인간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르고, 절망과 광기의 구호가 무력감으로 고통받는 자들을 일깨워 뒤흔들어놓는다. 

이 무력감이야말로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이 몸을 일으키고, 관습의 굴레는 풀려버린다. 사상은 최고의 권력을 지닌다. 

사람들은 희망·환상·복수 그 어떤 것이든 공중에서 들려오는 그것들의 지시에 귀를 기울인다.”
--- 「제6장. 조약 후의 유럽」 중에서

“내가 이 책을 쓰고 있는 1919년의 가을에 우리는 우리의 운이 다한 계절에 와 있다. 

지난 5년 동안 있었던 격심한 힘의 행사, 공포, 고통에 대한 반작용이 최고조에 이르러 있다. 

우리 자신의 물질적 안락이라는 눈앞의 문제를 넘어 느끼고 배려하는 힘은 일시적으로나마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우리 자신이 직접 겪는 일 바깥에서 아무리 큰 사건이 일어나고 아무리 끔찍한 일이 예상되어도 그것이 우리를 움직이게 할 수 없다. …… 

우리는 이미 인내의 끝을 넘어서 있다. 몸과 마음을 쉬어야 한다. 

지금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한평생에서 인간 영혼의 보편적 요소가 지금처럼 그토록 희미하게 불빛을 낸 적은 없었다.”
--- 「제7장. 처방」 중에서

“케인스에게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던 조지프 슘페터가 케인스의 경제이론에 비판적이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슘페터도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 대해서는 존경과 인정의 평가를 내놓았다. 

케인스가 1936년에 그의 대표작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을 쓰지 않았더라도 그는 “여전히 『평화의 경제적 결과』를 쓴 저자로, 

같은 통찰력을 지녔으나 용기는 상대적으로 덜한 사람 혹은 같은 용기를 지녔으나 통찰력은 상대적으로 덜한 사람이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일약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저자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 「옮긴이 해제」 중에서

출판사 리뷰
1.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그의 시대
─ 현대 거시경제학의 토대를 놓은 경제학자이자 국제경제 체제를 수립한 전략가
─ 세계가 제1차세계대전의 참혹에서 회복될 방법을 궁구하다

『평화의 경제적 결과』를 쓴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현대 거시경제학의 토대를 놓은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케임브리지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이튼칼리지와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에서 공부한 전형적인 영국 엘리트였다. 

학교 선생으로 살기보다 국가에 봉직하기를 원했던 케인스는 1914년 제1차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영국 재무성의 자문으로 위촉되었고,

 1915년에는 정식으로 재무성 관료가 되었다. 

1919년 1월 파리평화회의의 영국 재무성 대표단의 일원이 된 케인스는 그해 6월 대표단에서 사퇴한 뒤 『평화의 경제적 결과』를 비롯해 여러 저작을 출간했다. 

평화의 경제적 결과』를 논외로 하고 케인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책을 꼽는다면 1936년에 출간한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이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한 유효수요 이론은 재건을 위한 경제학 이론이자 사회 안정을 위한 재정정책의 기반이 되어 오늘날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달했던 1944년 6월 브레턴우즈 회의에서 영국 대표단 수장으로 활약한 케인스는 국제부흥개발은행(현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을 창설, 오늘날 브레턴우즈 체제라 불리는 국제경제 체제를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이처럼 현대, 특히 제2차세계대전 직후의 체제를 만드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미친 케인스는 

1919년 당시에도 파리평화회의의 영국 재무성 대표이자 재무 장관 대행으로서 다른 승전국 대표단과 협상을 벌이고 수상에게 의견을 제시하는 책임을 맡았다. 

1914년 7월부터 1918년 11월까지 지속된 제1차세계대전은 ‘모든 전쟁을 끝내는 전쟁’ 또는 ‘대전쟁’이라 불릴 만큼 유럽에 전례 없는 충격을 줬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제국이 연합국으로, 독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오스만제국이 동맹국으로 뭉쳐 격돌한 이 전쟁에서 수천만 명이 죽고 다쳤으며 

각종 전쟁범죄와 참호전, 독가스전을 겪은 생존자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렸다. 

그 와중에 러시아에서는 1917년에 혁명이 연달아 일어나 황제가 폐위되고 노동자 대중의 지지를 받은 볼셰비키가 집권했다. 

독일과 강화를 선언한 혁명 러시아는 1918년부터 내전에 돌입했고, 그해 11월 독일에서도 혁명이 일어나 황제가 망명, 결국 독일 역시 연합국 쪽에 강화를 제안했다.

파리평화회의는 러시아 내전이 한창이고 독일 정부가 1919년 1월 노동자들의 봉기를 잔혹하게 진압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에 열렸다. 

케인스가 보기에 이런 상황에서 평화회의는 피폐해진 모든 나라의 경제를 복구하는 것에 주력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케인스의 기대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2. 세계를 다시 한번 불태울 ‘평화의 경제적 결과’ 완전 분석
─ 세계의 안정보다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앞선 파리평화회의의 생생한 민낯
─ “레몬 씨가 으깨지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독일을 쥐어짤” 베르사유조약의 위험성을 경고하다

평화회의에 지칠 대로 지친 케인스는 1919년 6월 5일 영국 수상에게 “이 악몽 같은 장소에서 빠져나가고자 합니다. 제가 여기서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 

전투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337쪽).”라는 메모를 남기며 대표단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그해 12월 평화회의의 실태를 알리고 베르사유조약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분석한 『평화의 경제적 결과』를 출간했다.

케인스가 평화회의에서 목도한 장면은 그를 절망감에 몰아넣었다. 

평화회의에서 주축은 프랑스의 조르주 클레망소 수상, 영국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수상,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 이탈리아의 비토리오 오를란도 수상이었다.

‘4인방(Big Four)’이라 불리는 이들 지도자는 승전국 대표로서 패전국에 적절한 책임을 묻고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대중 앞에서 공언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저마다 속셈이 달랐다. 클레망소 수상은 독일이 다시는 프랑스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약화시키겠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내세웠다.

로이드 조지 수상은 총선을 앞두고 카이저(독일제국 황제)를 재판에 회부하겠다며 경제 대책보다 표심 수습에 열중했다.

전쟁 막바지에 참전을 결정했고 이후 18개 조항을 내세우며 독일에 공정한 대우를 약속했던 윌슨 대통령은 클레망소와 로이드 조지의 주장에 휩쓸려버렸다.

오를란도 수상 역시 자국의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게 최우선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당사자이기도 한 케인스는 이들 4인방과 평화회의의 면면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평화회의를 통해 유럽과 전 세계의 안정을 추구해야 할 정치가들은 보복심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편승하고 그들의 증오를 부추겼으며 필요하면 언제든지 결정을 번복했다. 

잿더미가 된 유럽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으로 큰 기대를 받았던 윌슨 대통령은 실제로는 “장로교 목사(73쪽)” 같은 인물로서 “자기 외부에 있다는 의미에서 주위 환경에 무감각했을 뿐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무관심(72쪽)”했기에, “자기 근방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거의 영매처럼 빈틈없는 섬세함을 보인 로이드 조지 수상(72쪽)”을 당해낼 수 없었다. 

한편 “한구석에서 혼자 조용히, 예의 회색 장갑을 끼고 비단 의자에 마치 왕처럼 앉아있(61쪽)”는 클레망소 수상은 모든 문제를 “프랑스와 독일의 차원에서(67쪽)” 볼 뿐 “인류가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는 기대나 희망이 전혀 없(67쪽)”는 구시대의 노인으로서 평화회의를 좌지우지했다. 

여기에 독일 대표단이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킬 여지는 거의 없었다.

최종적으로 작성된 베르사유조약은 독일의 경제 체계를 사실상 파괴하는 쪽으로 마무리되었다. 

조약은 독일의 주된 탄광 지역을 프랑스에 양도하고 연합국에만 최혜국 대우를 적용하는 등 독일의 해외무역과 제조업, 수송 및 관세 제도를 약화시키는 데 방점이 찍혀있었다. 

여기에 배상금은 독일 국민의 어깨를 심하게 짓누르는 방향으로 정해졌다. 연합국이 전쟁으로 입은 피해액을 계산하는 데 있어 자국민에게 지급해야 할 별거 수당과 연금까지 적용함에 따라, 

독일은 80억 파운드의 배상금을 30년에 걸쳐 갚아야 했다. 영국의 어느 선동가가 말했던 것처럼 이와 같은 전후 처리는 “레몬 씨가 으깨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독일을 쥐어짤(179쪽)” 것이었다. 

케인스의 눈에 평화회의와 조약의 결과, 즉 ‘평화의 경제적 결과’는 다시금 유럽을 불태울 도화선이 되기에 충분했다.

“따라서 결국 클레망소는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정도에서 벗어나고 불가능해 보였던 제안, 즉 독일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는 제안을 성사시켰다. 

만일 윌슨 대통령이 그토록 양심적이지만 않았다면, 만일 그가 자신이 하던 일을 자신에게서 숨기지만 않았다면, 마지막 순간에라도 그는 잃었던 입지를 회복하고 상당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틀 속에 갇혀있었다. …… 평화회의의 마지막 장면에서 대통령은 완고함과 타협에 대한 거부의 대명사로 각인되었다.”
- 〈제3장. 파리평화회의〉, 86쪽

“독일을 한 세대에 걸쳐 노예 상태로 격하하고, 수백만 인간의 삶을 퇴화시키며, 한 나라의 모든 국민에게서 행복을 박탈하는 정책은 혐오스럽고 가증스러운 정책이다. …… 

어떤 사람은 그것을 정의의 이름으로 설교한다. 인간 역사의 위대한 사건에서, 국가들의 뒤얽힌 운명이 풀어헤쳐지는 과정에서 정의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간단하다면, 적국의 어린이들에게 그들 부모나 통치자가 저지른 잘못의 벌을 받게 하는 권한이 종교나 자연적 도덕의 이름으로 국가에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 〈제5장. 배상〉, 253쪽

3. 진정한 평화를 원한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현대의 고전
─ ‘케인스의 경제학’을 깊이 연구한 박만섭 교수의 탁월한 번역
─ 전쟁으로 토막 난 세계를 치유할 방법은 연결과 교류에 있다!

이후 역사의 흐름은 잘 알려져 있다. 

바이마르공화국으로 불리는 당시 독일은 생존을 위해 소비에트연방과 경제 교류를 시작했고, 독일령에서 타국령으로 바뀐 지역은 다양한 인종 구성과 각국의 이해관계가 포개지며 불안정한 상태에 놓였다. 

연합국 측이 배상금을 부분적으로 줄이긴 했어도, 배상에 따른 경제적 부담은 독일 국민을 짓눌렀고 1929년 대공황이 본격화되면서 파시즘이 대두했다. 

1933년 반유대주의와 민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히틀러와 나치당이 집권하면서 독일은 전쟁과 학살의 길을 걸었다. 

1939년 8월 독일이 폴란드를 전면 침공하면서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케인스가 이 책에서 우려했던 파국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이 책을 번역한 박만섭 고려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케인스주의와 통화주의가 거시경제학의 권좌를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싸우던 1970년대 말, 이 둘과 근본적으로 차별되는 진정한 ‘케인스의 경제학’을 배우려 한 경제학도로서 학자의 여정을 시작했다. 

고려대, 케임브리지대, 맨체스터대에서 경제학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옮긴이는 케인스주의 경제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케인스의 여러 저작과 그의 생애를 다룬 책을 섭렵해 번역의 밀도를 크게 높였다. 

케인스의 생생한 문체를 최대한 살리려 힘쓴 번역, 시대상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통계도 상세하게 제시하는 역주, 여기에 케인스의 경제학을 진중하게 공부하는 학자로서 쓴 깊이 있는 해설이 이 책을 다각도로 읽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평화의 경제적 결과』가 출간된 지 105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새롭게 출간하는 이유는 거대하고 참혹한 전쟁을 더는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한다. 

이 책은 출간 당시 숱하게 비판받았고,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케인스의 주장과 현실 사이에 나타난 괴리 등을 문제 삼는 이들이 끊이지 않을 만큼 논쟁적인 저작이다. 

보복심에 차 있는 이들의 눈에 이 책은 적의 편에 서서 아군을 겨누는 창으로 보였다. 

반대편에 있는 이들은 자신들이 단순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이기도 함을 변호한 방패로 여겼다. 

그러나 케인스가 강조하는 바는 어느 편에 서는 것이 정의인가에 있지 않다

하나로 연결된 세계가 전쟁으로 토막 났을 때 이를 치유할 방법 또한 연결과 교류에 있음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 케인스의 주장이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영원해 보이는 지금, 독자들은 이 책에서 진정한 평화를 위해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케인스에게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던 조지프 슘페터가 케인스의 경제이론에 비판적이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슘페터도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 대해서는 존경과 인정의 평가를 내놓았다. 

케인스가 1936년에 그의 대표작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을 쓰지 않았더라도 그는 “여전히 『평화의 경제적 결과』를 쓴 저자로, 

같은 통찰력을 지녔으나 용기는 상대적으로 덜한 사람 혹은 같은 용기를 지녔으나 통찰력은 상대적으로 덜한 사람이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일약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저자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 〈옮긴이 해제〉, 355쪽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울린 총성이 세계대전의 시발점이었던 것처럼, 이토록 불안정한 시기에 중국-타이완 관계, 

그리고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이 비극적 폭발의 촉매제로 작동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절대적이지 않아 보인다. 

현 시점에서 『평화의 경제적 결과』는 책의 발간 100주년 기념 논문집의 편집자가 말한 대로 “예지(豫知)의 경고”로 작동할 수 있다. 

우리가 다시 이 책에 주목해야 할 이유이고, 지금 번역을 출간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 〈옮긴이의 말〉, 12쪽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39626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