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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조선을 거쳐 대한민국이 되기까지!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역사가 시작된다
조선 왕조 500년부터 격동의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시간을 학습하고 기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역사가 어려운 이들을 위해 『교과서가 쉬워지는 이야기 한국사 : 조선-근현대』는 현직 교사의 필체로 우리 역사를 쉽고 유익하게 옮겨냈다. 태조부터 시작해 순종으로 완성된 조선의 기록과 광복 그리고 전쟁, 분단이라는 이름으로 쓰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외우지 않고도 머릿속에 깊이 기억될 역사가 있다. 일반적인 책에서는 생략된 이야기도 등장해 전체 내용을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부분도 바로잡아 주기도 한다. 우리의 조상들이 써 내려온 자랑스러운 과거와 현재를 만나보자.
목차
들어가는 글 5
1장 조선의 시작
세계사 이야기
한양 도읍 1394년ㆍ14 │ 정도전 사망 1398년ㆍ18 │ 제1차 왕자의 난 1398년ㆍ20 │ 정종 즉위 1399년ㆍ22 │ 제2차 왕자의 난 1400년ㆍ23 │ 태종 즉위 1400년ㆍ27 │ 조사의의 난 1402년 ㆍ30 │ 조선 팔도 확정 1413년ㆍ32 │ 세종대왕 즉위 1418년ㆍ36 │ 집현전 개편 1420년ㆍ42 │ 교린ㆍ45 │ 훈민정음과 불교ㆍ48 │ 공법 실행 1446년ㆍ52 │ 문종 즉위 1450년ㆍ56 │ 단종 즉위 1452년ㆍ58 │ 계유정난 1453년ㆍ60 │ 이징옥의 난 1453년ㆍ62 │ 세조 즉위 1455년ㆍ64 │ 관학파와 훈구파ㆍ67 │ 단종 복위 운동 1456년ㆍ68 │ 단종 사망 1457년ㆍ70 │ 이시애의 난 1467년ㆍ73 │ 성종 즉위 1470년ㆍ76 │ 《경국대전》 반포 1470년ㆍ79 │ 사림파ㆍ83
역사 속의 역사 │ 조선의 계급제도ㆍ17, 조선의 통치제도 / 조선의 품계ㆍ25,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제작 1402년ㆍ29, 창덕궁 창건 1405년ㆍ31, 사대ㆍ34, 경연ㆍ43, 《삼강행실도》 편찬 1434년ㆍ47, 세종대왕의 신하들ㆍ51, 〈몽유도원도〉 완성 1447년ㆍ54, 김시습의 《금오신화》ㆍ72, 조선 전기의 군사와 통신 / 조선백자ㆍ74, 창경궁 명명 1484년 / 한명회 사망 1487년ㆍ81
2장 네 번의 사화
세계사 이야기
연산군 즉위 1495년ㆍ88 │ 무오사화 1498년ㆍ91 │ 갑자사화 1504년ㆍ94 │ 중종반정 1506년ㆍ96 │ 삼포왜란 1510년ㆍ99 │ 조광조 출사 1515년ㆍ100 │ 기묘사화 1519년ㆍ102 │ 인종 즉위 1544년ㆍ106 │ 을사사화 1545년ㆍ107 │ 을묘왜변 1555년ㆍ111 │ 사단칠정논변 1558년ㆍ 113 │ 문정왕후 사망 1565년ㆍ116 │ 선조 즉위 1567년ㆍ118 │ 당쟁의 시작 1574년ㆍ119 │ 니탕개의 난 1583년ㆍ123 │ 녹둔도 전투 1588년ㆍ125
역사 속의 역사 │ 홍길동 체포 1500년ㆍ93, 《설공찬전》ㆍ98, 신사임당ㆍ105, 서원ㆍ110, 이황ㆍ112, 임꺽정 사망 1562년ㆍ115, 이이ㆍ122
3장 전쟁과 영웅의 출전
세계사 이야기
임진왜란 1592년ㆍ133 │ 일본의 진격 1592년 4월ㆍ135 │ 선조의 도망 1592년 6월ㆍ139 │ 이순신의 출전ㆍ141 │ 한산도 대첩 1592년 7월ㆍ144 │ 웅치전투와 이치전투 1492년 7월ㆍ147 │ 금산 전투 1592년 7월ㆍ149 │ 진주 대첩 1592년 10월ㆍ152 │ 성주성 탈환 1593년 1월ㆍ155 │ 평양성 탈환 1593년 1월ㆍ157 │ 행주대첩 1593년 2월ㆍ160 │ 제2차 진주성 전투 1593년 6월ㆍ162 │ 이몽학의 난 1596년ㆍ164 │ 칠천량 해전 1597년 7월ㆍ165 │ 남원 전투 1597년 8월ㆍ168 │ 명량해전 1597년 9월ㆍ170 │ 왜성 공략ㆍ174 │ 노량해전 1598년 11월ㆍ176 │ 사명당 일본 방문 1604년ㆍ182
역사 속의 역사 │ 한석봉 / 임진왜란의 영향ㆍ179, 사명당 / 조선통신사ㆍ184
4장 혼돈과 투쟁의 시기
세계사 이야기
광해군 즉위 1608년ㆍ189 │ 대동법 1608년ㆍ190 │ 《동의보감》 완성 1610년ㆍ192 │ 궁궐 중건 및 신축ㆍ194 │ 계축옥사 1613년ㆍ196 │ 인조반정 1623년ㆍ199 │ 이괄의 난 1624년ㆍ201 │ 정묘호란 1627년ㆍ204 │ 병자호란 1636년ㆍ209 │ 남한산성 공방전ㆍ212 │ 강화도 방어전 1637년 1월ㆍ213 │ 삼전도의 굴욕 1637년ㆍ214 │ 명나라 멸망 1644년ㆍ217 │ 소현세자 사망 1645년ㆍ218 │ 김자점 사형 1651년ㆍ221 │ 효종의 즉위와 북벌론 1649년ㆍ223 │ 현종 즉위 1659년ㆍ225 │ 예송논쟁 1659년,1674년ㆍ226 │ 경신대기근 1670년ㆍ228 │ 숙종의 즉위 1674년ㆍ230 │ 환국 정치ㆍ231 │ 당파의 분화ㆍ233
역사 속의 역사 │ 《난설헌집》 출간 1608년ㆍ195, 허균 사형 1618년ㆍ198, 박연의 귀화 1627년 / 조선 후기의 불교 건축ㆍ208, 속환ㆍ216, 대동법 확대 / 신분제의 혼란ㆍ224, 《하멜 표류기》ㆍ228, 상평통보 유통 1678년 / 안용복과 울릉도ㆍ236
5장 끝을 향해 가는 조선
세계사 이야기
경종 즉위 1720년ㆍ240 │ 영조 즉위 1724년ㆍ242 │ 정미환국 1727년ㆍ242 │ 이인좌의 난1728년ㆍ244 │ 임오화변 1762년ㆍ249 │ 정조 즉위 1776년ㆍ251 │ 신해박해 1791년ㆍ254 │ 수원화성 건설 1794년ㆍ255 │ 실학ㆍ258
역사 속의 역사 │ 탕평책ㆍ243, 암행어사 / 금주령 1756년 / 조선 후기의 회화ㆍ246, 《대전통편》 편찬 1785년 / 장용영 설치 1788년ㆍ253, 김만덕ㆍ257, 박지원 / 문체반정 / 서민 문화의 발달ㆍ262
6장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세계사 이야기
신유박해 1801년ㆍ271 │ 병인갱화 1806년ㆍ273 │ 삼정의 문란ㆍ274 │ 홍경래의 난 1811년ㆍ276 │ 효명세자 사망 1830년ㆍ278 │ 헌종 즉위 1834년ㆍ282 │ 철종 즉위 1849년ㆍ283 │ 〈대동여지도〉 제작 1861년ㆍ284 │ 임술농민봉기 1862년ㆍ286 │ 동학ㆍ288 │ 고종 즉위 1864년ㆍ289 │ 흥선대원군의 섭정ㆍ290 │ 제너럴 셔먼호 사건 1866년ㆍ291 │ 병인박해 1866년ㆍ293 │ 병인양요 1866년ㆍ294 │ 경복궁 중건 완료 1867년ㆍ296 │ 신미양요 1871년ㆍ297 │ 대원군 실각 1873년ㆍ300 │ 명성황후ㆍ301 │ 운요호 사건 1875년ㆍ302 │ 강화도 조약 1876년ㆍ303 │ 시찰단 파견ㆍ305 │ 별기군 창설 1881년ㆍ307 │ 임오군란 1882년ㆍ308 │ 갑신정변 1884년 ㆍ312 │ 동학농민혁명 1894년ㆍ314 │ 갑오개혁 1894년ㆍ319 │ 청일전쟁 1894년ㆍ321 │ 우금치 전투 1894년ㆍ323 │ 2차 갑오개혁ㆍ324 │ 을미사변 1895년ㆍ325 │ 을미개혁과 을미의병 1895년ㆍ327 │ 아관파천 1896년ㆍ329 │ 독립협회ㆍ331 │ 대한제국 건국과 광무개혁 1897년 ㆍ335 │ 러일전쟁 1904년ㆍ337 │ 을사늑약 1905년ㆍ341 │ 신민회 설립 1907년ㆍ343 │ 헤이그 특사 1907년ㆍ346 │ 정미 7조약 1907년ㆍ347 │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909년ㆍ350 │ 경술국치 1910년ㆍ352
역사 속의 역사 │ 정약용과 정약전ㆍ272, 세도정치 / 김정희ㆍ280, 오페르트 도굴 사건 1868년
ㆍ297, 방곡령 1889년ㆍ305, 학교의 설립ㆍ311, 대원군, 고종 그리고 명성황후ㆍ320, 《대한매일신보》 / 국채보상운동 1907년ㆍ345, 스티븐스 저격 사건 1908년ㆍ349
7장 일제강점기와 광복, 격동의 현대사
세계사 이야기
무단통치 1910년ㆍ357 │ 토지조사사업 1910년ㆍ357 │ 3·1 운동 1919년ㆍ360 │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 1919년ㆍ364 │ 독립군ㆍ368 │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1920년ㆍ370 │ 의열단 ㆍ374 │ 산미증식 계획과 물산장려운동ㆍ375 │ 소작쟁의와 노동쟁의ㆍ375 │ 6·10 만세 운동 1926년ㆍ379 │ 신간회 창설 1927년ㆍ380 │ 광주 학생 항일 운동 1929년ㆍ381 │ 한인애국단 창단 1931년ㆍ385 │ 이봉창ㆍ386 │ 윤봉길ㆍ388 │ 민족 말살 통치기 1936년ㆍ391 │ 국가총동원법 1938년ㆍ393 │ 조선의용대 1938년ㆍ394 │ 광복군 1940년ㆍ395 │ 광복 1945년ㆍ396 │ 38선ㆍ398 │ 미군정ㆍ400 │ 제1공화국 출범 1948년ㆍ402 │ 한국전쟁 발발 1950년 6월ㆍ406 │ UN의 참전 1950년 7월ㆍ409 │ 인천 상륙 작전 1950년 9월ㆍ410 │ 중공군 참전 1951년 10월ㆍ413 │ 휴전 1953년 7월ㆍ418 │ 발췌개헌 1952년 7월ㆍ420 │ 사사오입 개헌 1954년 11월 ㆍ422 │ 4·19 혁명 1960년ㆍ423 │ 제2공화국 1960년 6월 15일ㆍ425 │ 5·16 군사정변 1961년ㆍ426 │ 제3공화국ㆍ428
역사 속의 역사 │ 조선총독부 청사 / 주시경과 한글ㆍ358, 민족대표 33인 / 유관순ㆍ362, 박은식
/ 안창호 / 신채호ㆍ366, 문화통치 / 안창남과 엄복동ㆍ372, 어린이날 제정 1923년 / 〈사의 찬미〉와 〈아리랑〉ㆍ377, 일장기 말소 사건 1936년ㆍ392, 조선의 3대 천재ㆍ405, 보도연맹 학살 사건ㆍ408, 빨치산과 팔만대장경ㆍ412, 국민방위군 사건ㆍ417
나가는 글 430
저자 소개
저 : 강태형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교대를 졸업하고, 현재 호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초등학교 교사이다.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쉽고 재미있게 여러 개념과 원리를 가르칠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하는 선생님이다.
교육·학문 분야 파워블로거이기도 한 저자는 독자들이 책을 통해 사회에 흥미를 느낄 뿐 아니라 사회현상에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보는 탐구자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책 속으로
태조 이성계는 새나라를 세우고는 명나라에게 ‘조선’과 ‘화령’ 중 하나를 국호로 선택해달라고 사신을 보냅니다.
명나라에서는 ‘조선’을 낙점하였고 이 때부터 단군조선은 고조선이라 불리게 됩니다.
화령은 1960년 다시 한 번 역사에 등장합니다.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하야한 후 윤보선 전 대통령은 경무대였던 대통령 집무실의 이름을 변경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때 새로 변경할 이름으로 ‘화령대’와 ‘청와대’의 두 가지 안을 제시됩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본관의 청기와 지붕에서 의미를 딴 ‘청와대’를 선택하였고 윤석열 대통령이 집무실을 이전한 이후에도 여전히 청와대로 불리고 있습니다.
--- p.14
새로운 수도 건설을 주도하고 결정한 것도 정도전입니다.
궁과 성벽의 배치, 설계부터 완공까지, 경복궁의 전각이나 문 등의 이름도 대부분 정도전이 정했습니다.
또한 국정 제도 전반을 개혁하고, 사병을 폐지하고 의흥삼군부를 설치하여 군권을 장악하고 군대를 통솔합니다.
--- p.19
이방원과 함께 정몽주를 숙청했으며, 공양왕을 협박한 것도 이방과입니다.
또한 그는 이성계 가문의 친위대인 가별초의 수장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에 이방원이라고 해도 형을 제치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방과는 왕위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방원이 즉위를 재촉하자 ‘네가 해라’며 사양하지만 계속 재촉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왕위에 오릅니다.
이방과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이방원을 세자로 책봉합니다. 주위에서 아들이 아니라 동생이니 세제로 책봉해야 한다고 하자 “오늘부터 동생을 아들로 삼겠다!”라며 그냥 밀어붙입니다.
왕이 된 후에도 정치는 모두 이방원에게 맡기고 자신은 격구나 사냥을 즐기며 살아갑니다.
--- p.22
조선의 제4대 왕이 죽자 신하들은 문이라는 무난한 묘호를 올립니다.
그러자 왕이 된 아들이 우리 아버지의 업적이 겨우 문이라는 묘호 밖에 못받냐며 세로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조선의 제 4대 왕은 세종이 됩니다. 그리고 문이라는 묘호는 아들이 받게 됩니다.
--- p.36
세종대왕은 경연을 오히려 왕권강화의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세종대왕 스스로가 학문의 깊이가 너무 깊다보니 오히려 신하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됩니다.
세종의 경우 즉위기간 동안 1898회나 경연을 했습니다.
이쯤 되면 신하들이 경연하기가 싫었을 것 같습니다.
--- p.43
수양대군은 도성 사대문과 주요 군 시설 등 요충지를 확보한 뒤 이미 장악한 경복궁으로 들어갑니다
. 궁에서 수양대군은 동부승지 최항을 만났고, 조정 신료들의 명부를 내놓으라고 협박합니다.
수양대군의 손을 거쳐 한명회에게 넘어간 명부는 그대로 살생부가 됩니다.
--- p.61
그런데 이 많은 희생자 중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응부, 유성원이 사육신으로 불리게 된 것은 《육신전》이라는 소설 때문입니다. 생육신 중 한 사람인 남효온의 소설 《육신전》에서 죽은 여섯 신하라는 의미의 사육신이라고 불렀습니다.
--- p.69
연산군은 반정으로 폐위되어 묘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왕자가 아니라 세자이기 때문에 군호도 없었습니다만 폐위가 되면서 단종처럼 왕에서 군으로 강등되어 연산군이 됩니다. 또한 연산군의 치적을 기록한 책은 실록이 아니라 일기라고 불리게 됩니다.
--- p.88
그런데 연산군이 조선시대 최악의 폭군으로 역사에 남겨지자, 홍길동은 의적으로 잘못 알려집니다.
이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소설 《홍길동전》이 지어졌는데 역사 인물 홍길동만큼이나 수수께끼인 책입니다.
책의 원본은 없고 이본만 남아있기에 원본이 한문으로 쓰였는지 한글로 쓰였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작가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현재까지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연산군 대 사람인 허균입니다.
--- p.94
반정 당일 반정군은 진성대군을 호위하려고 집을 에워쌉니다.
진성대군은 군사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 지레 짐작하고 자살하려 합니다.
이때, 부인 신씨가 “군사의 말머리가 우리 집을 향해 있으면 우리를 죽이러 온 것이고, 말머리가 궁궐을 향해 있으면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온 것”이라며 남편을 말립니다.
진성대군이 알아보니 말머리가 궁궐을 향해 있었고 진성대군은 자살할 생각을 버립니다.
--- p.96-97
조선과 중국(특히 송과 명)에서 정치적 사상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이루어진 당파 집단을 붕당이라 하고 이들이 함께 하는 정치를 붕당정치라 합니다.
오늘날의 정당과 정당정치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 p.119
조선 수군은 학익진을 펼쳐 전방향으로 탄망을 형성하는데 이를 교차사격이라 합니다.
이 전술은 1차 세계대전때 공식적으로 명명되었으니 조선 수군은 300년이나 앞선 전술을 구사한 셈입니다.
특히 배에 지붕을 씌우고 쇠못을 박아 적군의 접근이 불가능한데다가 엄청난 화력을 보유한 거북선은 적군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사신이었습니다.
--- p.143
반면에 한산도 대첩의 소식은 의병 활동의 촉매가 되어 여기저기서 의병군이 활약하게 되고, 전라도, 충청도, 황해도 등 주요 곡창 지대를 지켜냄으로써 관군과 의병에게 식량을 보급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반격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8월 24일 이순신 장군은 적의 본거지가 되어버린 부산을 향해 4차 출전에 나섭니다. 부산으로 향하는 길에 일본군과 5번의 교전이 있었지만 모두 격파하고 부산에서 일본 전함 100여 척을 모두 수몰시킵니다.
--- p.146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는 부대를 둘로 나누고 교대로 공격하는 전술을 구사하여 장애물 지대를 통과합니다. 이에 대항하여 조선군은 목책에 접근하는 일본군에게 화포와 화살, 돌까지 퍼부으며 방어합니다.
권율은 숨어있는 병사를 발견하면 그 병사의 군모에 몰래 표시를 한 다음 일본군의 공격이 잠시 주춤할 때 그 병사를 잡아 목을 베었다고 합니다.
--- p.148
마침내 이치전투에서 권율과 전투를 벌였던 7군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꾀를 써서 몰래 서북쪽으로 침투합니다. 조선군과 일본군은 백병전을 개시합니다.
하지만 수적으로 불리했던 조선군은 밀리게 되고 결국 화살이 다 떨어져 돌멩이를 던져가며 싸우는 지경에 이릅니다.
바로 그때 충청 수사 정걸이 배 2척에 1만 개가 넘는 화살을 싣고 한강을 거슬러 옵니다.
이를 본 일본군들은 이순신이 구원온 것으로 착각하고는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기 시작하면서 행주 대첩은 조선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 p.162
9월 16일 이순신은 13척의 배(배설의 12척+전라 우수사 김억추의 1척)로 명랑(울돌목)에서 도도 다카토라와 와키자카 야스하루, 구루지마 미치후사 등이 이끄는 133척의 일본군을 맞이합니다.
이순신이 명랑을 선택한 이유는 명랑이 좁은 해로이기 때문입니다.
적선이 아무리 많아도 해로가 좁아서 실제 교전에서는 서너척의 배들끼리만 교전할 수 있습니다.
학익진과 반대로 소수의 전함으로 다수의 전함을 상대할 최적의 전술입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은 조선의 지리를 잘 모르는 일본군은 절대로 알 수 없는 비장의 패를 숨겨둡니다.
--- p.172
그런데 사실 도쿠가와가 보낸 편지에는 “사죄한다”라는 내용이 없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에 출병하지 않았으니 사죄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입장에서는 일본이 침략한 것이니 일본의 지배자가 사죄해야한다고 여겼습니다.
이 편지를 전달하던 대마도주는 국서에 사죄한다는 내용을 슬그머니 위조해서 보냅니다.
대마도주는 조선에서 “사죄한다니 받아주겠다”라는 답신이 오자 이것도 위조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보냅니다.
참으로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지만 결과는 좋았습니다.
--- p.183
1609년 먼저 중건된 창덕궁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광해군은 정릉동 행궁을 경운궁으로 승격시켜 계속 거처합니다.
정릉동 행궁은 임진왜란 때 도망쳤다가 환도한 선조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이 모두 불타버려 지낼 곳이 없자 월산대군의 저택을 개·보수해 임시 궁궐인 행궁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경운궁은 대한제국 시절 고종에게 왕위를 물려받은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고종의 장수를 비는 뜻으로 덕수궁으로 불리게 됩니다.
--- p.194
그런데 청나라는 항복이 아니라 삼전도로 와서 삼궤구고두례를 올리라고 요구합니다.
삼궤구고두례는 3번 무릎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인사로 황제를 알현하는 신하는 예외없이 해야하는 인사일 뿐입니다. 청나라로서는 많이 봐준 것입니다.
삼전도는 한양과 남한산성을 이어 주던 나루로 현재 서울 송파구 삼전동입니다.
인조와 세자는 1월 30일 성문을 열고 삼전도에 설치된 수항단에서 홍타이지에게 갓에 철릭 차림으로 삼궤구고두의 항복 의식을 치릅니다. 청나라와 조선은 다음과 같은 강화 조약을 체결합니다.
--- p.215
지금 같은 고춧가루를 이용한 김치는 경신대기근 때부터입니다.
당시에는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들었는데, 기근으로 나무들이 말라버려 땔감의 가격이 치솟자 소금 가격도 치솟게 됩니다. 백성들은 소금값을 아끼려고 대용품으로 고춧가루를 이용하게 됩니다.
--- p.230
1762년(영조 38년) 5월 13일 세자를 부릅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 세자는 애걸복걸하며 살려달라고 빕니다.
그러자 영조는 곡식을 담아 두는 뒤주를 가져와서 안에 들어가라고 명령합니다.
혹시라도 마음이 풀리면 살려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세자는 들어갔지만 영조는 끝내 뒤주를 열지 않았고 세자는 8일 만에 사망합니다.
--- p.250
왕실에서는 이원범을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강화도로 갑니다.
이원범은 한양에서 관리들이 왔다는 소리를 듣자 대경실색하여 형과 함께 산으로 도망칩니다.
할아버지와 큰형이 역모로 몰려 죽었기 때문에 이번엔 자신을 잡으러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의정 정원용과 강화도 주민들이 설득을 하자 그제서야 산에서 나와 한양으로 가서 즉위를 하니 곧 철종입니다.
--- p.283
당시 평안 감사 박규수는 중군 이현익을 보내 돌아가라고 하지만 제너럴 셔먼호는 도리어 이현익을 잡아가두고 통상을 요구합니다.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평양 백성과 조선군은 배를 포위하고 활과 화승총을 쏘아대고 돌멩이까지 던지며 위협합니다.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낀 제너럴 셔먼호는 도망치려고 하지만 이때는 대동강 수위가 낮아져 배가 옴짝달싹도 못하게 됩니다.
평안 감사 박규수는 기름과 짚을 가득 실은 목선에 불을 질러 제너럴 셔먼호쪽으로 보내 불태워 버립니다.
제너럴 셔먼호의 선장과 선원들은 분노한 평양 백성들에게 맞아 죽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서양과의 무력 충돌 사건입니다.
--- p.292
재불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는 외규장각 의궤를 찾는 것을 목표로 프랑스로 떠납니다. 1
967년 프랑스국립도서관 사서가 된 그는 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별관에서 마침내 의궤를 찾아냅니다.
1985년 박병선 박사는 외규장각 도서 191종 297책의 목록을 소개하는 《조선조의 의궤》를 발간합니다. (그 사이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도 찾아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줄기차게 의궤 반환을 요구하지만 프랑스는 자기 나라의 공공재산이라는 이유로 반환요청을 거부합니다.
--- p.295
조선군은 총알이 떨어지자 칼과 창을 휘두르며 저항했고 칼과 창이 부러지자 돌멩이를 던지고 그마저도 없으면 맨주먹 붉은 피로 미군을 막아냅니다.
하지만 이길 수 없자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떨다가 항복하기를 거부하고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합니다.
--- p.298-299
이 사건을 러시아(아라사) 공사관으로 파천했다고 하여 아관파천이라고 하는데, 이는 친일파들이 만들어 낸 잘못된 표현입니다.
파천이란 ‘임금이 난리 때문에 수도를 떠나는 일’입니다.
고종은 수도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관망명’이라고 해야 올바른 표현입니다.
--- p.329-330
출판사 리뷰
친일파 출신 독립운동가도 있다?
교과서를 통으로 이해하게 하는 소설 같은 우리 역사
‘태정태세문단세...’
역사를 공부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자동으로 나오는 문장이죠.
하지만 27명의 많은 왕이 기록한 500년이나 되는 조선왕조는 간단하게 배우고 익히기에는 매우 어려운 기록이기도 합니다.
많고 많은 전쟁과 조정 내에서 벌어진 네 글자로 이름 붙여진 무수한 사건들을 알아야 하고, 왕들의 이름도 끝에 ‘조’가 붙는지 ‘종’이 붙는지 마저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죠.
이런 복잡함을 《교과서가 쉬워지는 이야기 한국사: 조선-근현대》에서는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쉽게 풀어냈습니다.
왕들의 탄생부터 즉위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세한 이야기로 읽다 보면 사건이나 그 시대의 유명한 인물의 업적이 저절로 기억되며 어려웠던 조선의 역사부터 어렵지 않게 다가옵니다
. 뿐만 아니라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과 한국전쟁, 분단이 이루어진 이후의 현대사까지도 한 권에서 만나볼 수 있어 역사 공부를 간단하게 끝낼 수 있답니다.
더불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역사와 잘못 알고 있던 정보까지 바로잡아 주는 유익한 글들로 가득 채웠습니다.
이를테면, 조선 시대 홍길동은 의적이 아니었고 임진왜란의 숨은 공신은 어머니가 떡을 썰 때 글을 썼던 한석봉이었으며, 경신대기근으로 인해 하얗던 김치가 빨갛게 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또한 고종의 아관파천은 친일파들이 붙인 잘못된 표현이고 폭탄을 던진 이봉창은 처음엔 친일파였다가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유관순은 친일파에 의해 부각되었다는 주장도 합니다.
이렇게 교과서가 미처 싣지 못한 이야기는 역사 자체에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학생들은 물론 역사에 관심이 높은 어른들에게도 새롭고 유익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본문 1장에서는 태조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을 다루면서 나라의 기틀이 다져지는 조선 전기의 내용을 풀고 있습니다. 2장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네 번의 사화를 주제로 전개되며 3장에서는 임진왜란과 함께 이순신 장군의 전투 내용을 담기도 했습니다.
4장에서는 반정과 전쟁 등 혼돈과 투쟁의 시기를 풀어내며, 5장에서는 조선 후기의 사건들을 다루었습니다. 6장에서는 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나며 조선에서 대한제국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마지막 7장에서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6·25 전쟁까지 격동의 현대사를 이야기합니다.
추천평
한국사 교육과정을 빠짐없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 책입니다.
학생뿐 아니라 교사들도 반드시 소장해야 할 책이며, 역사소설이나 사극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도 꼭 소장하고 틈틈이 읽어야 하는 권장도서라고 생각합니다.
- 허관태 (교사역사연구모임 ‘흐노니’ 회장 및 순천북초등학교 교장)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시작으로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역사에 흥미를 찾을 수 있게 합니다.
- 양형욱 (무안초등학교 교장)
탁월한 안목으로 쓰인, 소설보다 흥미로운 청소년을 위한 역사책!
- 이준호 (네이버 블로그 ‘히스토리의 역사산책’ 운영자)
초등학생도 이해할 정도로 쉽지만, 역사교육과에서 교재로 써도 될 만큼 깊이가 있는 책입니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한국사 전문가가 됩니다.
- 강민 (전북대 역사교육과 학생)
교과서보다 자세한 내용이 더 많이 담겨있고, 어렵지 않은 설명들로 이해가 쉽고 유익합니다. 재미와 지식을 동시에 잡을 수 있어 학생들의 역사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 순천승평중학교 학생 (순천승평중학교 학생)
역사는 암기과목이 아닙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역사가 얼마나 흥미진진한 학문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 윤승우 (광양용강중학교 학생)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5649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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