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땅 굴
제3땅굴 1974년 9월5일 북한 귀순자 김부성씨가 남측 비무장지대 내의 커다란 미루나무를 보고 땅굴을 측량한 측량기사라고 아군에게 제보를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남침 예상 방향을 찿아 직경 7.5cm의 PAV파이프 시추공 107개를 2m간격으로 물을 채워 설치하였습니다. 3년이 지난 1978년6월10일 한 시추공에서 폭팔음과함께 물이 솟아오르는 것을 목격하고 주변에 5개의 시추공을 추가로 설치하던 중 적이 파내려온 남침용 땅굴을 관통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보시는 터널은 남침용 터널을 찿기위해 3개월간 공사하여 만든 터널로 300m를 내려가시면 적 갱도를 만나개 됩니다.
제3땅굴은 총길이 1,635m, 지하73m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2m 폭 2m의 둥근아치형 땅굴입니다.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북으로 1,200m. 남으로는 435m 파내려오다 관통위치에서 발견되었으며.현재265m만 도보로 견학 할수 있으며 265m 지점부터 군사분계선까지는 차단벽 설치하여 더 이상 견학을 할 수 없습니다.
남침용 땅굴이라는 근거는
첫째, 땅굴의 경사가 북쪽으로 약3도가량 기울어져 있어 북쪽으로 배수가 되도록 하였으며,
둘째, 암반을 폭파하기 위한 다이너마이트 장전공이 남으로 향해 있고,
셋째 , 땅굴암벽의 검은색의 석탄칠은 에전부터 있었던 자연동굴로 위장하기 위하여 칠하였으나 이 지역은 석탄이 조금도 나지 않은 지역으로 거짓임이 드러나 분명한 남침용 땅굴로 판명되었다.
한국전쟁의 휴전협정에 따라 유엔군과 공산군의 장성급장교로 구성된 군사정전 위원회의 본부구역으로 세계역사상 가장 긴 휴전을 관리하는 장소이다. 원래 휴전예비회담은 1951년 7월8일 개성에 열렸으나 회담장소의 중립성에 문제가 있어 도로변에 초가4채뿐인 널문리로 옮겼다.판문점은 널문리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비롯된 무덤이다. 여기서 천막을 치고 무려 765회에 달하는 회담을 진행하여 1953년 7월27일 10시에 휴전협정을 조인하기에 이르렀다. 휴전회담이 끝난후에 협정조인을 위해 목조건물을 마을 부근에 지었는데 이곳에 두번째 판문점 회담장소이다. 두장소는 현재 판문점 회담장에서 약800km비무장 지대에 있다.오늘날 판문점의 위치는 서울 서북쪽 48km 지점에 있다. 규모는 동서 1km, 남북0.8km의 타원형 구역으로 한복판에 휴전선이 지난다. 처음에는 천막으로 시작되었지만 휴전이 점차 장기화됨에 따라 군사정전위원회의를 위한 건물을 세웠다. 80년대에 들어 남북대화가 잦아지자 이를 위한 건물도 갖추면서 냉전과 화해가 공존하는 지역이 되었다.
6.25전쟁 전투현장 알림판
이곳은 6.25전쟁 당시 국군1사단이 초기전투 (1950.6.25~1950.6.27), 신정공세 (1.4후퇴 1951.1.1~1951.1.4) 중공군 5차 (4월) 공세를 막기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으로 2009~2015년까지 육군제1군단에서 전사자 유해발굴을 실시한 결과 호국용사 41위 (노상리 77고지 22위, 하포리 일월봉3위. 임진각1위, 양평산4위, 율곡리10위, 장곡리1위)의 유해와 유품 5,000여 점을 발굴한 지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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