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필드가 전한 3.1운동
스코필드는 34번째 민족대표로 일컬어질 정도로 3.1운동에 큰 역할을 하였다. 세브란스의전 교수였던 스코필드는 같은 병원에 근무하던 이갑성에게 3월1일에 만세운동사진을 찍어 해외에 알려달라고 부탁받았다.
그날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만세운동의 현장을 누비며 사진을 촬영하였고 글을 써서 해외에 알리기 시작하였다. 4월에는 제암리 학살 사건의 현장을 기록하고 잔학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세게의 주목을 끌었다. 5월에는 영자신문 서울프레스 Seoul Press 를 통해 서대문형무소 수감자 들에 대한 고문을 중지 할것을 호소하였고, 조선총독과 정무총감을 만나 비인도적인 만행을 중지하도록 요청하였다.
1932년 (사)호랑이 스코필드 기념사업회
테일러가 전한 3.1운동
미국 AP통신사 임시특파원인 테일러는 스코필드와 함께 전세계에 3.1운동을 알렸다.상업과 광산업에 종사하던 그는 1919년 2월28일 세브란스병원에서 아들의 출생을 맞이하였는데, 이때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였다. 이후 그는 고종국장을 촬영하였으며 3.1운동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였다. 또한 스코필드와함게 제암리 학살사건을 조사하여 영자신문[재팬 어드타이저 The Japan Advertiser]에 일본의 잔악성을 전하였다. 1920년 민족대표 48인의 재판과정도 직접 취재해 외국에 전달 하였다.
1910년대
엘버트W. 테일러가 장모에게 보내는 편지
1919년 3월7일
어머니 보세요. 다 잘 지내고 잇습니다.
오늘로부터 일 주일 전에 전보를 드려서 이들이 태어났고,
또 메리가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중략)
지우너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연합통신사의 한국통신원으로 임명되엇습니다. 최근까지도 이일로 매우 바빠서 먼저는 정부 관료들에게 연락하고 도 최근 사망한 한국의 마지막 왕의 국장에 참여하였으며, 그리고 한국의 독립운동을 살피고 그헤 대해 기사를 썼습니다. 장례식에 대해 지역신문에 실린 기사를 첨부해 보내드려요.
사랑하는 아들 브루스 드림
시베리아횡단열차로 이동중인 망명중대 / 주한체코대사관
체코슬로바키아 덴니크 제331호
경성 어는 한 의사의 순국 /2019 박건웅
한국독립운동지혈사 /1946 박은식 덕포진교육박물관
1920년 박은식이 상하이에서 편찬한 독립운동사 개설서이다. 그는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사료편찬회에서 한일관계사 편찬을 담당하여 9일[한일관계사료집] 4책을 간행하였으며, 이 때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저술한 책이다. 3.1운동기 일제의 탄압과 만행사례,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상황을 서술하고 3.1운동의 통계표와 일제 만행과 참상 조사표 등을 수록하고 있다.
3.1운동
해방이후 이응노가 그린 3.1운동 그림이다. 당시 이응노는 정우성, 이우태, 김영기 등과 단구미술원을 조직해 왜색청산을 통한 한국미술의 정통성 희복 운동을 벌였다. 1946년 3월1일 해방울 처음 맞이한 3.1운동 기념일을 기념하여 단구미술원에서는 3.1운동을 주제로 한 첫 번째 전시회를 개최하였는데, 그때 출품된 ,투쟁. 이라는 그림으로 추정되고 있다.
'08.역사기억여행 (2010~) <여행지> > 3.삼일운동기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립운동 (0) | 2019.04.26 |
---|---|
황제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 (0) | 2019.04.26 |
일제의 탄압 (0) | 2019.04.09 |
조선독립신문 발행 (0) | 2019.04.09 |
평양만세운동 (0) | 2019.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