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문학의 이해 (독서>책소개)/2.전쟁문학

6.제5 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동방박사님 2022. 1. 10. 07:34
728x90

 

책소개

전보문 형식으로 쓴 정신분열성 소설. 이 책의 원제는 제목 그대로 ‘제5도살장(Slaughterhouse-Five)’이다. 나치독일은 적군 가운데서도 특히 러시아인들을 사람 이하로 봤는지 러시아 포로들을 대량 살육할 목적으로 대단위 수용소를 짓는데, 포로가 된 주인공 빌리 일행이 임시로 그곳에 거처한다. 독일군 감시자는 그곳의 주소를“슐라흐토프-퓐프”, 즉 다섯번째 도살장이라고 일러준다.
저자는 도입부에 자기소개 겸 이 소설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 아주 오래전 미국 보병대의 낙오병으로서, 전쟁포로로서 엘베 강변의 피렌체라는 독일 드레스덴 대공습 현장에서 살아남아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은 비행접시를 통해 보내오는 행성 트랄파마도어의 전보문 형식으로 쓴 정신분열성 소설이다.”

이 책이 출간된 1960년대 후반 미국사회는 진보를 향한 열정과 암울이 교차하는 시대였다. 맥카시 선풍이 한바탕 회오리 친 뒤끝의 한편에선 자유와 인권의 기치가 내걸렸고, 다른 한편에선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무기경쟁이 무한대를 향하는 듯 보였다. 케네디 형제가 암살되고, 루터 킹 목사가 살해되고, 1968년 미국은 제2차 대전에서 투하된 것보다 더 많은 폭발력을 베트남에 쏟아부어‘마초’근성을 유감없이 드러낸 그런 시대였다. 이런 갈증과 갈등의 시기에 새로운 문화에 목말라 하던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커트 보네거트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의 대표작 『제5도살장』은 선풍이 불어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많은 매체들이 찬사를 쏟아냈다. 20년 가까이 무명의 SF작가로 연명하던 저자를 미국문단에서 주목받는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이 바로 이 『제5도살장』이었다.
 

저자 소개

저 : 커트 보니것 (Kurt Vonnegut)
 
1922년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의 독일계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인디애나폴리스의 쇼트리지고등학교에 다니며 교지 [데일리 에코] 편집자로 활동했다. 이후 코넬대학교에 진학하며 보니것 자신은 아버지처럼 건축을 공부하거나 인류학을 전공하고 싶어했으나, 집안의 반대로 생화학을 택한 후 전공 공부보다는 대학 신문 [코넬 데일리 선]에서 일하며 글을 쓰는 데 더 열중했다.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좋지 않은 ...

저자 : 커트 보네거트 Kurt Vonnegut

1922년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출생. 코넬 대학, 카네기 대학, 시카고 대학 등에서 수학하고 1965년부터는 아이오와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연합군 폭격에 의한 드레스덴의 파멸을 목격하기도 했다. 100여 편의 단편과 《고양이 요람》 《제5도살장》 《타임퀘이크》 등의 장편이 있다.
역자 : 박웅희
1985년 전남대학교를 나와 출판사 편집자로 일한 바 있으며, 현재는 기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는 『아시모프의 바이블, 구약편』『아시모프의 바이블, 신약편』『담배, 돈을 피워라』『떠오르는 태양』『컴플렉스, 걸림돌인가 디딤돌인가』『갈라파고스』『70일간의 미술여행』등이 있다.
 
 

책 속으로

내 아내와 나는 젖살이 다 빠져버렸다. 그 시절에 우리는 야위었다. 친구로 사귄 사람들도 야윈 재향군인 부부가 많았다. 내 생각에, 스케넥터디에서 가장 괜찮은 재향군인들, 가장 친절하고 재미있는 재향군인들, 전쟁을 가장 싫어하는 재향군인들은 실제로 싸워본 사람들이었다. --- p.21

나는 내 아들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대량 학살에 가담해서는 안 되고, 적이 대량 학살당했다는 소식에 만족감이나 쾌감을 느껴서도 안 된다고 늘 가르친다. 또한 대량 학살 무기를 만드는 회사의 일은 하지 말라고,그리고 그런 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멸감을 표하라고 늘 가르친다. --- p.31

트랄파마도어의 생물에게는 우주가 수많은 밝은 작은 점들로 보이지 않는다고 빌리 필그림은 말한다. 그 생물들은 각각의 천체가 있던 곳과 운행해가는 곳을 동시에 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하늘이 미세하고 빛나는면발이 그득한 스파게티로 보인다. 트랄파마도어 인들에게는 인간도 두 발 달린 짐승으로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커다란 노래기로 보인다. “한쪽 끝에는 아이들 다리가 달리고 반대쪽 끝에는 늙은이들 다리가 달린 노래기”로 보인다고 한다. --- p.106

빌리가 한 말 가운데에도 트랄파마도어 인들이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이 많았다. 그들은 그의 시간 개념을 상상할 수 없었다. 빌리는 설명하기를 포기했다. 돔 밖의 안내원이 요령껏 설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안내원은 관객들에게 아주 청명한 날 사막 저편의 산맥을 보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고 권했다. 그들은 산꼭대기나 새나 구름, 혹은 그들 바로 앞에 있는 돌을 볼 수도 있고, 심지어 그들 뒤쪽의 협곡을 들여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과 같은 자리에 있는 가엾은 지구인은 머리에 절대 벗을 수 없는 강철 구체를 쓰고 있다. 거기에는 밖을 볼 수 있는 구멍이 딱 하나 있는데, 그 구멍에는 2미터짜리 파이프가 용접되어 있다. (…) 그는 또한 철로 위에 있는 무개화차에 볼트로 고정되어 있는 강철 격자에 묶여 있어서 고개를 돌리거나 파이프를 만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곤 파이프 끝의 작은 점뿐이다. 그는 자신이 무개화차에 타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고, 자신이 처한 상황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 그 무개화차는 가끔은 기어가고 가끔은 급속도로 달리며 자주 멈춘다. 그런 식으로 오르막길을 가고 내리막길을 가고 굽은 길을 돌고 곧은 길을 달린다. 가엾은 그는 파이프를 통해 무엇을 보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저게 인생이야.” --- p.137~8

동물원 관객 중에 누군가가 해설자를 통해 지금까지 트랄파마도어에서 배운 것 중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빌리의 대답은 이랬다.
“한 행성의 주민이 어떻게 이렇게 평화롭게 살 수 있는지요! 아시다시피, 나는 태초 이래 무의미한 살육에 열중해온 행성에서 왔습니다. 내 나라 사람들이 급수탑에 넣고 산 채로 삶아 죽인 여학생들의 시체를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당시 자기들이 절대 악과 싸우고 있다는 긍지에 차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빌리는 드레스덴에서 삶아져 죽은 시체들을 보았다.
“그뿐입니까? 나는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 삶아져 죽은 여학생들의 오빠와 아버지들이 살육한 인간들의 지방으로 만든 촛불로 밤을 밝혔습니다. 지구인들은 우주의 골칫거리가 분명합니다. 다른 행성들이 지금은 무사하더라도 곧 지구 때문에 위험에 빠지게 될 겁니다. 그러니 내게 비결을 좀 가르쳐주세요. 내가 지구로 가져가서 모두를 구원할 수 있게요. 어떻게 한 행성이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까?”
빌리는 자기가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트랄파마도어 인들이 작은 손을 쥐어 눈을 가리는것을 보고는 당혹했다. 이제까지 경험에 비추어 그 몸짓이 무슨 뜻인지는 분명했다. 그가 바보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p.138~9

“그렇다면--”하고 빌리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구에서 전쟁을 예방한다는 생각도 어리석은 거군요.”
“물론이오.”
“하지만 이 행성은 평화롭잖아요?”
“오늘은 그렇소. 다른 날들은 당신이 보았거나 읽은 어떤 전쟁보다 잔혹한 전쟁을 벌이지. 우리가 전쟁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보지 않을 뿐이오. 무시해버리는 거지. 우리는 영원토록 즐거운 순간들만 보며 지내요. 오늘 동물원에서처럼. 이 순간은 정말 멋지지 않소?”
“멋집니다.”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지구인들도 그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거요. 끔직한 시간은 외면해 버리고 좋은 시간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오.” --- p.140~1

뒷방에는‘미성년자 불가’라는 게시문이 붙어 있었다. 거기서는 핍쇼를 보여주었다. 젊은 남녀가 벌거벗고 나오는 영화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 서점은 다섯 쌍둥이같이 닮은 남자들 다섯이서 지키고 있었다. (…) 그들은 종이와 셀룰로이드로 된 창녀집을 운영해서 돈을 벌고 있었다. 그들은 발기되어 있지 않았다. 빌리 필그림도 그랬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발기되어 있었다. 그곳은 사랑과 아기들에 관한 것들이 지천인 웃기는 가게였다. --- p.234

그중 한 사람은 애퍼매톡스(1865년 남군이 북군에게 항복한 곳) 이후 1백년이 지났고 어떤 버지니아 인이《엉클 톰스 캐빈》도 쓴 만큼 이젠 소설을 파묻을 때라고 말했다. 또다른 사람은 요즘 사람들은 글을 잘 읽지 못해 머릿속에서 인쇄된 내용을 흥미진진한 장면으로 바꾸지 못하므로 작가들은 노먼 메일러(권력구조의 허상을 고발하고 반전 분위기를 전세계로 확산시킨 미국 작가)처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기가 쓴 것을 대중 앞에서 실연하라는 것이었다. 진행자는 현대 사회에서 소설의 역할이 무엇으로 생각하는지 말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 비평가는 이렇게 말했다.
“벽이 전부 흰색인 방 안에 약간의 채색을 가미하는 거지요.”
다른 비평가는 이렇게 말했다.
“입 빠구리를 예술적으로 묘사하는 거죠.”
또 다른 비평가는 이렇게 말했다.
“기업 중견 간부들의 아내들에게 다음번에 무엇을 살지와 프랑스 식당에서 어떻게 처신할지를 가르쳐 주는 겁니다.” --- p.240
.
 

줄거리

1922년 뉴욕주 일리엄에서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난 주인공 빌리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유럽의 벨기에 전선에 투입된다. 변변찮은 전투도 하지 못한 채 대오에서 낙오한 빌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독일군 포로가 된다. 그 와중에 일거에 13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독일의 문화도시 드레스덴의 대폭격 현장에서‘우연히’살아남아 귀환하게 되고, 검안사로서 안정된 생활을 꾸리던 중 비행기 추락사고를 겪게 된다. 유럽의 전장에서부터‘현재’와 미래로 종작없이 시간여행을 하고, 딸의 결혼식 날 트랄파마도어라는 행성에서 온 우주인들에게 납치되어 그들의 4차원적 시간관을 배우고 돌아와 지구인들에게 그 새로운 세계관을 전파하기 위해 괴이쩍은 행동을 벌인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