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섬인가? 대마도는 우리와 같은 생활문화권안에 있는섬이다,
대마도는 우리나라와 일본사이에 있고, 부산이 반히 내다보이는 섬이다
"크기는 사백여리 이섬은 남북의 길이가82km 폭이18km 면적이 710평방 킬로미터 가 되고 한국 쪽으로 배를 깔고 남북으로 길게누우면 새우 모양의 섬이다. 우리제주도의 1848평방킬로미터 의 40%이고 거제도보다는 큰섬이다.
일본에서는 좌도, 용미대도에 이어 세번째 큰섬이다. 총인구는 4만 2천명 이며 이즈하라 (嚴原)에 17,000명이 살고 있다. 어업과 수산양업으로 취업인구의 30%가 여기에 속한다. 본 섬 두개와 98개의 작은섬 (유인도5개)으로 되어 있다. 인구가 가장 많을 때에는 7만명이 넘기도 했으나 인구는 줄고 있다. 인구가 줄고 있다는것은 젊은이가 빠져나가는 이유중의 하나는 이곳이 대학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부산에서 부정기선으로 개통된것은 1999년 7월14일 이고 정상적인 정기선이 개통된것은 2000년 4월1일 그전에는 서울이나 부산에서 비행기로 후쿠오카로가서 일본국내선공항으로 이동하여 후쿠오카에서 비행기를 타거나 이즈하라에 가는 길뿐이었다.
옛날 대마도는 원래부터 자급자족이 어려운 섬이 이었다. 사는곳이 척박하고 크기는 고작 4백여리이고 토지는 산이 많고 험할뿐아니라 나무가 많아 길이 겨우 짐승이나 다닐 정도이다. 집은 천여호 있으나 쓸만한 밭이 없어 해산물로 생게를 유지하는데 , 주로 배를 타고 남과 북 (우리나라 남해안과 큐슈)에 곡물을 구하러 다녔다" 고 중국의 사서 위지왜인전에서 전하였다.
역사에서는 " 삼도 왜구라 하여 대마도, 잇기,오도지방.토호나 어민들의 선단을 조직하여 한반도 연안을 중심으로 식량과 인간을 약탈 자행하였다. 잡아간 사람은 나가사끼를 통하여 노에로 팔아 넘기기도 하였다."고려는 대책을 부심하다가 망했다고 할정도롤 심각한 사정이었다" 라고 기록 되어 있다.
결국 견디다가 못한 조선에서는 대마도주와 타협하여 이들의 횡포를 막아주는 대가로 일정한 무역선을 인정하고 삼포(부산포) 염포(울산) 제포9마산)을 개항 하였다. 또 일정액의 급여를 주고 조선의 한 지역의 관리로 사령장을 준적도 있었다. 지금도세 가문에서는 가보로 잘 보관하고 있기도하다.
식량의 자급자족이 거의 불가능한 처지의 섬인 대마도는 도요토미가 일으킨 임진왠란이 그들에게는 어려운 시련이었다. 5천명의 남자를 징집하여 최일선에 참전했다가 3천명이나 죽어 돌아오지 못하는 등의 시련돠 조선침략의 병참기지로 사용하는 이곳의 사정은 인적 물적자원을 수탈, 검탈 당하고 배도한 모두 공출을 당하여 해적질 마저도 해 먹을 수 없는 사황에 처하게 된다. 이런상황을 "아메노모리 호슈" 선생은 "갓난아이에 젖줄이 끊어진 형국이라고 표현 했을 정도이다.
'20.일본중부,동북.섬 <여행지> > 3.대마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와다즈미진자 (12/27) (0) | 2012.12.29 |
---|---|
만관교 (0) | 2012.12.29 |
미우다해수욕장 (0) | 2012.12.29 |
한국전망대 (12/27) (0) | 2012.12.29 |
대마도 현해탄 (2012.1.19) (0) | 2012.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