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사회학 연구 (독서)/6.아나키즘

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

동방박사님 2022. 12. 14.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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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고 인권을 억압하는 절대권력, 즉 국가와 정부에 대항해 싸웠던 서구의 아나키스트들과는 달리 개인보다는 사회문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동아시아 3국의 아나키즘을 살펴본다. 한국, 중국,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추적해 서구적 근대와 동아시아 전통의 교차점에서 빚어진 독특한 양상들을 짚어보며 아나키즘이 현재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새롭게 연구해 본다.

목차

1. 일본 : 천황제와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 그리고 노동 운동
마르크시스트에서 아나키스트로 - 고토쿠 슈스이
동아시아 혁명가들의 사상 교류
'대역 사건'과 고토쿠 슈스이의 죽음
일본 아나키스트 운동의 재생 - 오스기 사카에

2. 중국 : 군국제와 군벌정부에 대한 저항 그리고 신문화운동
정치혁명에서 사회혁명으로
'중국식' 아나키즘과 '과학적' 아나키즘
중국 아나키스트의 초상 - 스푸
스푸의 학생들과 신문화운동

3. 한국 : 민족해방운동으로서의 아나키즘
민족주의와 아나키즘 사이에서
신채호는 아나키스트인가
한인 아나키스트들의 민족해방운동

4. 아나, 볼 논쟁과 아나키스트 운동의 쇠퇴
동아시아의 아나키즘, 봀셰비즘 논쟁
동아시아 아나키스트 운동의 쇠퇴
 

저자 소개

저자 : 조세현
1965년 대전 출생.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중국사를 공부하던 중 중국 아나키스트에 흥미를 가지고 석사논문 주제로 중국의 아나키스트 그룹 가운데 하나인 '신세기'파에 대해 쓰게 되었다. 중국 유학에서 '청말 민국초 아나키스트의 문화사상'이라는 논문으로 베이징 사범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광운대, 방송통신대 등에서 강의를 하면서 포스트 닥 연구비 지원을 받아 중국 사회당이란 정...
 

책 속으로

파리의 아나키스트들은 군국주의와 조국주의에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의식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그들이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인 것은 중국의 혁명 문제였다. 그들이 받아들인 프랑스의 아나키즘 이론 가운데 정치와 경제 논리는 대부분 직수입된 것으로 중국 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다소 설득력이 부족했던 반면, 문화사상은 매우 독창적인 것이었다. 사실 과학주의에 기반한 반전통의 급진적 문화론은 신세기파의한 가지 특색이다. 이것은 공화주의자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점이기도 했다.

신세기파는 종교란 일종의 미신이며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아나키즘에 입각한 교육을 통해 종교의 가치체계를 대체할 새로운 도덕체계를 갖추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전통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족을 '만악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봉건 가족제도의 지주인 예교와 삼강윤리를 가혹하게 비판했다. 심지어 공자를 중심으로 하는 유교 문화에대한 혁명을 주장했다. 그들은 절대적 권위를 누리던 공자에 대해 근대 중국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비판의 포문을 연 사람들이 되었다. 신세기파는 중국인의 가장 큰 결함은 전통문화에 대한 과대망상에 있다고 생각했다.
---p. 76
이른바 정부라는 것은 인민의 대표기구가 아니라 소수 특권층이 조직한 단체에 불과하며, 그들이 자신에게 이로운 법률을 마음대로 제정해 사회를 운영하고 이를 국가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란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기관일 뿐이며, 정상적인 사회를 파괴하는 근본원인이라고 보았다.
--- p.74

출판사 리뷰

 
최근 들어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런 흐름은 아나키즘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에서부터 아나키즘과 사회운동을 접목시키는 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책세상 문고 '우리시대 29' 『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는 오늘날 이러한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과 맥을 같이하되, 환경, 공동체, 반자본주의 운동 등 범인류적 사회운동으로서의 아나키즘이 아니라 역사상의 아나키즘, 더욱이 동아시아 세 나라, 일본·중국·한국의 아나키즘에 한정해, 국가와 민족의 수동적 운명을 거부해온 '반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주로 동양의 아나키스트들의 사상과 삶을 통해 근대 동양, 특히 일본, 중국, 한국 동아시아 3국의 역사 속에 태동되고 움직였던 아나키즘 운동을 집중 소개하고 있다. "나의 자유는 최고의 자유"라고 선언했던 푸르동, "파괴는 새로운 창조"라 했던 바쿠닌, "민중은 권력에 쉽게 굴복하지만 그렇다고 권력을 숭배하지는 않는다"며 민중을 깊이 사랑했던 크로포트킨 등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서양 아나키스트들의 삶은 한결같이 매우 열정적이다. 저자는 이러한 모습을 동아시아의 아나키스트들에게서도 찾아 우리의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어한다.

일본의 고토쿠 슈스이, 오스기 사카에, 중국의 스푸(師復), 류스페이, 한국의 신채호, 박열 등 서양의 그네들에 못지않게 열정적인 삶을 살다 간 동양의 아나키스트들이 추구한 사상과 행동이 갖는 중요성을 짚어봄으로써 근대화 과정에서 아니키즘이란 결코 시대의 이단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요구된 사상이라는 점, 아나키즘의 광범한 수용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동아시아 근대 사회 내부의 절박한 시대적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실마리를 찾게 한다.

일본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고토쿠 슈스이는 1900년대에, 스푸는 1910년대에, 한국의 신채호는 1920년대에 주로 활동한 인물들로, 저자는 대략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로 이 세 사람을 등장시켜 글을 전개시킨다. 초기에 마르크시즘을 수용했다가 아나르코 생디칼리즘에 영향을 받은 고토쿠 슈스이는 군국죽의와 애국주의를 동전의 앞뒷면으로 보아 함께 부정했고, 세계주의에 기초하여 민족과 국가를 초월하는 보편적 인류애를 주장했다.

중국인에게 아나키즘 수용은 이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혁명이론의 전진을 의미했다. 즉 종족주의에 기초해 만주족 정권인 청 왕조를 타도하는 정치혁명에서, 사회주의에 기초해 전제왕조와 군주제를 전복하려는 사회혁명으로 나아간 것이다. 스푸는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전형적인 아나키스트라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일본의 아나키즘과 러시아의 허무주의의 영향을 받은 그는 폭탄을 제조하여 주요 인물 암살을 감행하는 등 매우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고, 정치문제보다는 도덕문제에 주력하여 봉건적인 가족제도의 해체를 주장하는 등 도덕혁명론을 주장했다. 저자는 스푸의 사상이 청말 아나키즘과 신문화 시기의 아나키즘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식민지로서의 근대 한국의 아나키즘은 민족해방이라는 숙명적인 과제 아래 민족해방운동의 한 수단으로 아나키즘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시작부터 색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론가들은 한국의 아나키즘은 민족주의적 색채가 매우 강해 민족주의의 바탕에서 태어나 민족주의 때문에 사망했다고까지 평가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서양의 아나키즘 이론의 잣대만으로 동아시아 아나키스트 운동을 평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한국의 근대적 상황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이 바로 신채호로, 그는 중국, 일본의 아나키스트들과의 다양한 접촉을 통해 아나키즘을 받아들여 조선식 아나키즘을 주장하며 민족 주체성을 강조했다. 또한 의열단의 폭력투쟁을 이론화한 직접행동 강령 <조선혁명선언>을 통해 자신의 아나키즘 사상의 단면을 보인다.

각 나라별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의 아나키즘은 서양과 기본정신에서는 일치한다. 즉 동아시아의 아나키스트들은 민족주의자나 볼셰비키처럼 일부 엘리트의 지도나 일부 정치집단의 음모에 의해 이상사회를 달성할 수 없으며, 오직 민중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서만 혁명이 성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따라서 그들은 선거를 통한 혁명이나 공산당과 같은 전위조직을 부정하고, 오직 민중 스스로가 테러와 총파업, 혹은 교육운동이나 이상촌 건설과 같은 방법을 통해 사회를 변혁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시아의 아나키스트들이 민족주의의 고양과 국민국가의 건설이라는 시대조류에 맞서 민족과 국가를 넘어선 동아시아 민중연대를 주장한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비록 현실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안과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원리원칙을 고집한 것이 운동의 패인으로 종종 지적되지만, 그래도 그들이 제시한 이상주의적 전망은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던진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아직도 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