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펜젤러 (1858~1902)
아펜젤러는 감리교 최초의 선교사로서 한국 감리교의 초석을 놓았다.
아펜젤러는 결혼한 지 두 달 만인 1885년 한국에 들어와 첫 사업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의 학교를 열었다. 이 학교는 고종으로 부터 "배재학당"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 안에 협성회라는 토론회를 조직하고 독립협회의 서재필, 윤치호 등을 강사로 초청해서 학생들에게 민주주의 의식과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다. 또 아펜젤러는 1885년 10월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인 정동교회를 개척했다. 그리고 1897년 12월 26일 성탄 주일에는 한국 최초로 붉은 벽돌로 지은 벧엘예배당을 봉헌했다.
아펜젤러는 출판 분야와 성서번역 분야에서도 두드러진 공헌을 하였다. 그는 배재학당 안에 삼문출판사라는 인쇄소를 만들고, 기독교 소책자들과 독립신문 등 일반신문도 인쇄하였으며, 언더우드, 스트랜턴과 더불어 성경 번역위원회를 최초로 조직해서 한글성경번역에도 상당한 공헌을 하였다. 아펜젤러는 1902년 목포에서 열리는 성경 번역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가던 중 배가 출몰하여서 순직하였다. 이 때 아펜젤러의 나이는 44살 이었다. 한국에 27살 때 들어왔으니 17년 동안 선교사로 일한 것이다. 그의 자녀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국에서 교육선교사로 헌신하였다. 아들 헨리 닷지 아펜젤러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배재학당의 교장과 이사장으로 일하였다. 딸 알리스 레베카 아펜젤러도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이화학당을 이화여자전문학교로 승격시키고 교장으로 일했다.
양화진에는 아들 부부와 딸이 잠들어 있으며, 배재학당에서 세운 아펜젤러 선교사 기념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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