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20세기 물리학의 가장 수수께끼 같은 거인을
새로운 기록 자료와 독점 인터뷰로 만난다!
“페르미가 사망한 이후 출간된 전기 중에서 가장 철저하다!” _뉴욕타임스
이탈리아계 미국인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의 평전. “페르미보다 더 많은 장소와 개념에 이름이 붙은 물리학자는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물리학에서 그의 업적과 유산은 광범위하고 절대적이다. 하지만 페르미에 관한 전기는 많지 않은데, 그가 남긴 기록이 전부 물리학에 관한 것뿐이라 개인적이고 내적인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전기 작가들이 그의 삶을 들여다보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저자 데이비드 N. 슈워츠는 많지 않은 기존의 자료에 더해 새로 알려진 사실들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엔리코 페르미를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시기순으로 총 4부에 걸쳐 로마 출신의 어린 소년이 물리학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았던 마지막 사람’, 즉 페르미가 된 과정이 펼쳐진다. ‘물리학의 교황’으로 불렸지만 그는 또한 남편이었고, 아버지였고, 동료였고, 친구였다. 그리고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태어난 시대의 포로였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페르미의 과학적 업적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과 더불어 20세기 물리학의 가장 수수께끼 같은 거인의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서문 / 16
들어가는 글 / 21
1부 페르미 되기
1 신동 / 39
2 피사 / 61
3 독일과 네덜란드 / 74
4 양자 돌파구 / 91
5 도마뱀 사냥 / 102
2부 로마 시절
6 가정생활 / 113
7 로마 학파 / 135
8 베타선 / 154
9 금붕어 연못 / 169
10 마약 같은 물리학 / 192
11 노벨상 / 206
3부 맨해튼 프로젝트
12 신세계 / 219
13 원자 쪼개기 / 228
14 해군을 만나다 / 241
15 최초의 원자로 / 256
16 시카고로 가다 / 267
17 “우리가 요리하고 있어!” / 290
18 제논-135 / 305
19 메사에서 / 327
20 성스럽지 않은 삼위일체 / 355
4부 시카고 시절
21 시카고로 돌아오다 / 375
22 대중의 시선에서 / 408
23 특허 싸움 / 430
24 빛나는 교사, 사랑받는 스승 / 442
25 해외여행 / 454
26 집에서의 죽음 / 462
27 페르미의 유산 / 476
감사의 글 / 498
인용 출처 / 506
주 / 508
참고문헌 / 555
찾아보기 / 579
책 속으로
나는 독자들이 이 책에서 온전한 인간에 초점을 맞춘 서사를 발견하기를 바란다. 그의 동료들이 말했듯이 페르미는 “언제나 물리학, 온전히 물리학”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유혹이 있다. 이 말도 일면 진실이지만, 그는 또한 남편이었고, 아버지였고, 동료였고, 친구였다. 그는 20세기의 몇몇 가장 중요한 사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삶의 드라마는 이 모든 면을 들여다보아야만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_19쪽
잘 발달된 개념적 도구를 사용해서 어려운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페르미의 능력의 이면에는 무엇이 중요한지 파악하는 탁월한 감각과 딱 필요한 만큼 빠르고 간단한 해결책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었다. 전자에 의해 그는 동시대의 수많은 학자 위에 우뚝 섰다. 후자에 의해 때로는 게으르다고, 때로는 복잡한 수학을 두려워한다는 오해를 받았다. 그는 게으르지도 않았고 두려움도 없었다. _30쪽
그가 확률과 통계에 집착한 한 가지 가능한 이유로 형의 죽음이 가져온 충격을 들 수 있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 결코 일어날 것 같지 않았지만 일어났고, 재앙적 결과를 낳았다. 이 경험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사건을 이해하고, 한계를 정하고, 가능한 범위 안에서 준비하려고 하는 욕구를 일깨웠을 수 있다. 줄리오가 죽었을 때, 죽을 가능성이 낮았지만 죽었던 것이다. 페르미는 이 상흔에서 특정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이해할 필요성을 느끼고, 그 가능성을 이해할 때 사건을 예측하고 대비하고 더 나아가 결과에 개입할 더 나은 위치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듯하다. 물론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확률에 관한 연구가 그의 경력 전체를 관통하며, 그의 가장 중요한 기여의 근원이었다는 점이다. _83쪽
그는 분명히 무솔리니의 편에 서서 자기 이름과 과학적 명성을 새로운 파시스트 정부에 기꺼이 빌려주려고 했다. 그는 이탈리아 물리학을 위해 이탈리아 정부의 연구비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코르비노도 파시스트는 아니었지만 똑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페르미는 명예를 추구하면서도 여러 가지 직무와 행사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왕립 아카데미를 위해 보내는 시간은 로마 대학교 물리학과에서 일할 시간을 줄여서 얻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우선순위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 페르미와 파시스트 정권 간에는 불안한 공생 관계가 형성되었다. 그는 물리학의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쉽게 받아들였지만 개인적으로 보수적이었고, 정권이 폭력을 거침없이 휘두르는데도 불구하고 무솔리니가 이탈리아에 가져온 안정성을 어느 정도 인정했는지도 모른다. 페르미는 게임을 했고, 정권이 후원하는 훌륭한 과학의 예로 선전에 동원되었다. 그 대가로 그의 연구는 아무 방해 없이 지원을 받았다. 분명히 이것은 악마와의 거래였지만 페르미의 목적을 충족시켰다. _152쪽
가까운 친구들 중에서 떠난다는 결심을 가장 심하게 반대한 사람은 바로 지네스트라였다. 그녀는 페르미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과 동료들을 버린다고 생각했다. 1938년 12월 6일에 로마 테르미니 역에 모여서 작별 인사를 할 때 지네스트라는 참혹함과 분노가 섞인 목소리를 냈다. 라우라는 15년이 지난 다음에도 이 순간을 생생하게 회상했다. 지네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엔리코가 떠나는 것은 그와 함께 공부하려고 모여서 그를 믿고 따르는 젊은이들에 대한 배신이야.” 지네스트라의 남편은 스승이자 친구를 재빨리 지켜주었다. “파시즘의 잘못이지 페르미의 잘못이 아니야.” _212쪽
오펜하이머가 “당신은 쉬는 날 누가 되고 싶은가?”라는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한 사람이 이름을 대고, 다른 사람들이 그 선택의 의미를 분석하는, 일종의 아마추어 정신분석 같은 게임이었다. 놀랍게도 오펜하이머는 페르미를 선택했다. 방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아무도 그에게 질문하지 못했다. 오펜하이머 자신이 이 게임을 선택했고, 그런 다음에 페르미를 꼽았다. 그의 깊은 곳에 페르미와 동일시하고 싶은 알 수 없는 욕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_319쪽
페르미는 기계공에게 연마사를 이용해서 중성자 거울을 연마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워진 기계공은 페르미에게 자기가 작업을 제대로 했는지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페르미는 “내가 그 거울을 들었을 때 내 속눈썹이 보이면 충분하다”고 대답했다. 노벨상을 받은 실험물리학자가 고정밀 기기에 요구한 기준으로는 너무나 소박하지만, 거칠어도 통하면 그만이라는 페르미 특유의 사고방식이 잘 드러난다. _387쪽
페르미가 8개월 전에 “어떤 면으로 보아도 필연적으로 사악하다”고 말한 무기의 개발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페르미는 이 결정에 대해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애국자로 보이고 싶었을 수도 있고,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핵융합 무기 개발에 참여하는 것이 자기의 의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_416쪽
페르미는 오펜하이머에게 자기가 싫어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또한 오펜하이머의 혐의에 근거가 없다고 믿었고, 대응하는 것이 자기 의무라고 생각했다. 1949년 10월에 오펜하이머가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했다고 공격을 받았지만, 페르미는 오펜하이머와 견해가 같았을 뿐만 아니라 그 의견을 더 강하게 표명했다. 페르미는 텔러를 잘 알았고, 개인적으로 그를 좋아했고, 지적인 스파링 파트너로 그와 맞서기를 즐겼지만, 텔러가 추진하는 로스앨러모스에 대한 공격은 싫어했다. 그는 오펜하이머를 위해 증인으로 나서기로 약속했고, 오펜하이머가 개리슨을 통해 여비를 부담하겠다고 제안하자 품위 있게 거절했다. _425쪽
주제가 얼마나 복잡하건, 그는 천천히 설명하면서 재능이 떨어지는 학생들도 따라올 수 있게 했다. 그러면서도 뛰어난 학생에게는 문제를 분해해서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본질적인 요소를 찾아 한 단계 한 단계 풀이를 향해 나아가는 페르미 특유의 방법을 감상할 기회를 주었다.
밸런타인 텔레그디가 쓴 페르미의 시카고 시절에 관한 뛰어난 에세이에 따르면 페르미가 교과 과정 강의 준비에 강박적이었고, 큰 종이에 모든 강의 내용을 정리했다고 한다. 그는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절대로 짜증을 내지 않았다. 텔레그디에 따르면 “그 반대로, 페르미는 설명을 다시 해야 하면 즐거움을 한 번 더 누리는 것 같았다." _443~444쪽
그는 물리학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 물리학 연구에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정치적 신념도 기꺼이 타협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 가정생활도 기꺼이 뒤로 미뤄서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다. 그의 죽음이 연구하면서 노출된 방사선 때문이라는 가정을 받아들인다면, 그는 자기 생명까지 바친 것이다.
타고난 능력과 튼튼한 기초에 대한 자신감, 어떤 문제든 풀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 중요한 연구를 알아보는 본능, 다른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능력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 세계가 작동하는 핵심적인 방식에서 확률과 우연의 역할에 대한 매료, 과학에 기꺼이 몸을 던진다는 각오, 이 모든 것이 페르미가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했고,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그의 능력에 기여했다. 그러나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과학자도 그들이 태어난 시대의 포로이다.
출판사 리뷰
20세기 물리학의 가장 수수께끼 같은 거인을
새로운 기록 자료와 독점 인터뷰로 만난다!
철저한 조사와 애정으로 그려낸 한 천재의 초상화
개인적인 생각을 거의 남기지 않았던 천재 물리학자를
복합적이고 매력적인 인물로 되살려낸 평전
이탈리아계 미국인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의 평전. ”페르미보다 더 많은 장소와 개념에 이름이 붙은 물리학자는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물리학에서 그의 업적과 유산은 광범위하고 절대적이다. 스핀이 반정수인 입자를 일컫는 페르미온, 그러한 입자를 계산하는 방법인 페르미-디랙 통계, 페르미온들이 절대 0도에서 가지는 최대 에너지인 페르미 에너지, 페르미 에너지의 개념을 물질 속에서 표현하는 페르미 준위 등등 양자역학과 통계역학, 응집물리학, 핵물리학, 입자물리학을 망라하고 있다. 그뿐인가.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가속기가 있던 미국의 국립 연구소 페르미랩, NASA에서 2008년 발사한 페르미 감마선 우주 망원경, 시카고 대학교의 엔리코 페르미 연구소, 원자번호 100번인 원소 페르뮴, 미국 정부가 수여하는 과학 분야의 가장 중요한 상 중 하나인 엔리코 페르미상 등 그를 기리기 위해 이름을 붙인 대상도 많다. 물리학의 범위를 넘어서 외계인의 존재 가능성을 논의할 때면 나오는 ‘페르미 역설’이나, 페르미가 문제를 푸는 방식에서 비롯되어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 유명회사의 면접에도 이용되는 ‘페르미 해법’, 혹은 ‘페르미 질문법’ 등에도 페르미의 이름이 등장한다.
하지만 페르미의 삶에 관해서는 대중에게 알려진 것이 많지 않은데, 그가 남긴 기록이 전부 물리학에 관한 것뿐이라 개인적이고 내적인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르미에 관한 주요 전기도 그의 아내가 쓴 것(1954년)과 아주 친했던 제자가 쓴 것(1970년)이 전부라고 할 만큼 적었다. 저자 데이비드 N. 슈워츠는 페르미의 제자가 될 뻔했던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한 편의 글에 흥미를 느끼고, 많지 않은 기존의 자료에 더해 1970년 이후 새로 알려진 사실들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4년에 걸친 집필 끝에 엔리코 페르미를 복잡하고도 매력적인 인물로 되살려냈다. 시기순으로 총 4부에 걸쳐 로마 출신의 어린 소년이 물리학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았던 마지막 사람’, 즉 페르미가 된 과정이 펼쳐진다. ‘물리학의 교황’으로 불렸지만 그는 또한 남편이었고, 아버지였고, 동료였고, 친구였다. 그리고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태어난 시대의 포로였다.
“이 엔리코 페르미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파시스트인가요? 이 사람 뭡니까?”
맨해튼 프로젝트의 핵심에서 일하는 이탈리아 파시스트 당원
“그는 아내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이탈리아를 떠났다고 한다. 그는 노벨상 수상자이다. 그의 동료들은 그를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그의 지성에 크게 감탄한다. 그는 의심할 바 없이 파시스트다. 비밀에 관련된 일에 그를 고용하려면 훨씬 더 신중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비밀 사업에는 이 사람을 고용하지 말 것을 권장한다.”(270쪽)
1940년 8월 13일 자로 기록된 페르미에 대한 FBI의 최초 보고서 내용이다. 페르미는 1938년 노벨상 수상을 위해 스톡홀름으로 출국하게 된 것을 기회로 삼아 파시스트 이탈리아를 떠나 미국으로 이주한다. 그런 페르미가 한동안 적국인 신분이었다는 것은 맨해튼 프로젝트 전체에서 가장 이상한 이야기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가장 민감하고 비밀스러운 군사 프로젝트에 이탈리아 국적의 파시스트 당원인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당시 클라우스 푹스 같은 스파이가 활동하기도 했고, 전후에도 맨해튼 프로젝트의 또 다른 주역인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소련의 스파이로 몰아 청문회까지 열었던 사실을 생각해보면 FBI가 페르미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페르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지만, 프로젝트에서 점점 더 중요성이 커진 군 장교들은 페르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시기에 페르미 부부는 자기들이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집 지하실 바닥을 파서 현금이 든 깡통을 묻어놓기도 했다. 다행히 이후 그의 충성심이 심각하게 문제된 적은 없었지만, 새로운 조국에서 느꼈을 심리적 불안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책은 이렇게 건조한 기록밖에 남아 있지 않은 페르미의 주변을 샅샅이 훑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모습에 조명을 비춘다. 예를 들어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한 연구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일련의 행동들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그는 핵분열 폭탄의 가능성을 의심했고,(13장) 1939년 3월에 군대에게 핵무기의 가능성을 소극적으로 설명했으며,(14장) 1945년 초에는 폭탄 설계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초기 중성자 공급 장치’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매달렸다.(19장)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급행열차가 종착역에 도착하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한 페르미가 나름대로 열차를 세우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이후 수소폭탄 개발을 둘러싼 일련의 보고서에서 페르미는 “어떤 면으로 보아도 필연적으로 사악하다”며 개발을 명시적으로 반대했지만, 8개월 후에는 그 무기 개발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는 그의 전후 활동 중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대목인데, 그 이유는 여전히 수수께끼이지만 저자 데이비드 N. 슈워츠가 그려내는 페르미의 모습은 이 결정이,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그렇게 순전히 과학적인 호기심만으로 이루어졌을 것 같지는 않다는 인상을 준다.(22장)
이론과 실험, 교육에서도 독보적이었던 마지막 사람
그리고 죽음과 유산
페르미가 물리학 이론과 실험 모두에 뛰어났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페르미의 제자 제프리 추는 그를 “모든 것을 아는 마지막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론과 실험에 모두 뛰어날 뿐만 아니라 당대의 물리학에 관한 모든 것, 천체물리학에서 지구물리학까지, 입자물리학에서 응집물질물리학까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에는 물론이고 그가 살았던 시절에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이 책은 여기에 더해 페르미의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부각한다. 특히 전후 시절을 그린 4부 ‘시카고 시절’에는 교육자로서 페르미의 탁월함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가르치는 일을 진정으로 즐겼는데, 전쟁이 끝난 뒤에 시카고 대학교에서 그가 맡은 강의 수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전쟁 전부터 이름을 날렸고, 전후에는 더 유명해져서 마음만 먹으면 강의 의무를 최소한으로 질 수 있었는데도, 페르미는 학기마다 반드시 두세 강좌를 맡았다. 그는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절대로 짜증을 내지 않았고 오히려 한 번 더 설명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이처럼 모든 학생을 존중하고 그들의 열정을 이끌어냈기에 페르미는 ‘가장 사랑받는 물리학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어떤 물리학자도 죽은 뒤에 페르미처럼 애정 어린 헌정물을 받지 못했다. 시카고 외곽의 아르곤 연구소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추억을 담은 두 장짜리 레코드 〈페르미에게 사랑으로〉와 캐나다 공영방송사 CBC에서 마음을 듬뿍 담아 제작한 다큐멘터리 〈엔리코 페르미의 세계〉에 견줄 만한 다른 물리학자에 대한 헌정물을 찾는 것은 정말로 헛된 일이다.”(24쪽)
페르미의 죽음과 이 이후의 이야기도 묘한 여운을 남긴다. 페르미의 동료였던 헝가리 출신의 수학자 스타니스와프 울람은 1954년 여름 파리에서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한다. 바로 몇 달 전에 있었던 오펜하이머 청문회 사건과 더불어 물리학계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페르미는 두 번이나 이렇게 이야기했다. “모르지, 나는 저 위에서 보게 될 거야.” 페르미는 이제 53세밖에 되지 않았고, 그다지 종교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그때 이미 자기가 오래 살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병원에서 위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두 달간 투병하다가 1954년 11월 28일 새벽에 사망했다. 여러 사람의 회고와 기록을 통해 저자가 보여주는, 죽음에 대한 페르미의 태도는 보는 사람을 절로 숙연하게 한다. “페르미는 드문 평정심으로 자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대개는 현실적이고 얼마간 비관적이었던 평소의 인생관 속에서 받아들였다. 페르미에게는 과학이 종교의 기능을 완전히 대신했다. 그는 살았던 것과 똑같이 죽었으며, 죽은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형이상학적이거나 종교적인 사색을 할 필요가 없었다. 페르미로서는 자기의 삶은 그의 비범한 정신이 꺼지는 순간에 끝나지만, 그의 업적은 계속 살아 있으리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충분했다.“(469쪽) 그가 떠난 뒤 이어지는 가족들과 동료들, 제자들의 모습,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그의 과학적 유산들을 읽고 나면, 당신은 분명히 엔리코 페르미를 한번 만나보고 싶어질 것이다.
페르미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일화 몇 가지를 소개한다.
트리니티 테스트에서의 간단한 실험: 1945년 7월 16일,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 '트리니티' 현장에 이상한 남자가 있었다. 폭발 직후 그는 수를 세면서 시간을 재기 시작했고, 주머니에서 종잇조각 한 줌을 꺼냈다. 머리 위로 팔을 뻗어 종잇조각을 든 채 시간을 재다가 폭발의 충격파가 도달하는 순간 떨어뜨렸다. 종잇조각이 날아간 거리를 측정하고 그는 폭탄의 파괴력이 TNT 10킬로톤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실제 폭발력인 18킬로톤과 꽤 근사한 수치였다. 그 자리에는 내로라하는 물리학자 여럿이 있었지만 누구도 이런 실험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래, 내가 기다리고 있었지.”: 페르미의 제자 중 나중에 엔리코 페르미상을 받은 아서 로즌펠드가 대학생 시절 기초 시험에서 1등을 하면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런데 페르미는 나중에 로즌펠드에게 시험 답안에 틀린 부분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사기가 꺾인 로즌펠드는 페르미에게 논문 지도교수가 되어줄 수 있는지 물었다. 페르미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내가 기다리고 있었지.” 60년이 지난 뒤에도 로즌펠드는 페르미의 대답을 인생의 정점으로 기억한다.
“절대로 필요 이상으로 정교하게 만들지 마라.”: 페르미의 딸 넬라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페르미가 만든 목재 가구는 기능적이지만 투박하고 멋이 없었는데, 아내가 보기 흉하다고 투덜대며 나가버리자 넬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절대로 필요 이상으로 더 정밀하게 만들지 마라.” 거칠어도 통하면 그만이라는 페르미 특유의 사고방식이 잘 드러난다.
페르미의 삶에 대한 다른 설명들이 있지만, 데이비드 N. 슈워츠가 그려낸 이 새로운 초상화는 1954년 페르미가 사망한 이후 출간된 전기 중에서 가장 철저하다. _〈뉴욕타임스〉
개인적인 생각을 거의 남기지 않았던 페르미라는 거인의 좀 더 일상적인 면들, 다시 말해 그의 두려움, 자만심, 인간적인 실수들을 잘 보여준다. _〈피직스 월드〉
페르미의 통찰력이 지닌 미적 아름다움을 세부 사항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 솜씨 좋게 전달한다. _〈이코노미스트〉
초기 원자 시대의 가장 수수께끼 같은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에게 밝은 빛을 비추는 이 우아한 서사에 경외심이 든다. 기록 보관소를 모두 뒤져서 만든, 뛰어난 과학자의 비극적으로 짧은 생애에 대한 가장 깊은 전기적 설명. _카이 버드(작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공저자)
엔리코 페르미보다 더 많은 장소와 개념에 이름이 붙은 물리학자는 없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20세기 물리학의 중심인물인 페르미는 상상력, 탁월함, 자신만의 스타일로 유명했다. 이 포괄적인 전기는 독특한 과학 인물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세부 사항의 보물창고다. _션 캐럴(이론물리학자, 《빅 픽쳐》 저자)
올해 읽은 가장 훌륭한 전기. 과학, 역사, 인물을 힘들이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결합한다. 엔리코 페르미는 20세기의 가장 매혹적인 인물 중 하나로, 지적 총명함이 너무나 인간적인 껍데기에 갇혀 있는 사람이었다. 데이비드 N. 슈워츠의 이 해석에서, 페르미는 완전히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_게리 슈타인가르트(작가, 《망할 놈의 나라 압수르디스탄》 저자)
‘모든 것을 알았던 마지막 사람’이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슈워츠의 이 놀라운 책에는 페르미가 가장 똑똑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일화로 넘쳐난다. 슈워츠는 가족, 동료, 의미에 집중한다. 당신이 찾던 새롭고 눈을 뗄 수 없는 전기. _조지 처치(유전학자)
페르미의 업적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설명과 더불어 그의 성격에 관한 신선한 통찰이 담겨 있다. 저자의 스타일은 영웅 숭배라는 거즈를 잘라내어 외려 페르미의 위상을 드높인다. 매우 인간적이었던 특별한 물리학자의 매력적인 초상. _〈네이처〉
매혹적이고 명료하다. 오늘날에도 AI와 유전자편집, 다중우주 이론의 연구, 골디락스 행성의 탐색, 우주여행의 새로운 동력원 개발에 땀 흘리는 과학자들이 있다. 이들에게도 언젠가 이들의 이야기를 대신 해줄, 슈워츠처럼 재능 있는 전기 작가가 나타나길 바란다. _리처드 앨런 클라크(미국 전 정부 관리, 《모든 적들에 맞서》 저자)
이 책은 완전하고 철저하며, 잘 읽힌다. 또한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은 역사적 문제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만든다. 민감한 주제들을 포함시킨 저자의 결정을 높이 평가한다. _이탈리아 물리학회
페르미는 이론, 실험, 교육에서 모두 독보적으로 탁월했다. ‘갈릴레오 이후 가장 위대한 이탈리아 과학자’에 관해 철저하게 조사하여 애정을 담아 확신에 차고 균형 잡힌 목소리로 완성한 초상화_. 〈퍼블리셔스위클리〉
슈워츠는 처음부터 페르미의 과학적 창의성과 성취가 그를 둘러싼 환경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 파악해야 그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 목표를 훌륭하게 달성했다. 20세기 물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_〈미국 물리학 저널〉
연구 중독자 페르미가 이토록 매혹적이고 복잡한 인물이었음을 드러낸 것은 저자 데이비드 N. 슈워츠의 탁월함 덕분이다. _〈스펙테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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