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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영국 정치 초엘리트들과의 인터뷰, 인물 관찰,
옥스퍼드에서의 경험이 담긴 르포르타주
영국 권력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한 지도
외투를 껴입은 보수주의자들의 막을 한 꺼풀씩 벗겨내다
타임스 최고의 책, 선데이타임스 베스트셀러
영국을 면밀히 관찰하고 사람이라면 옥스퍼드에 렌즈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나아가 영국은 오랫동안 세계를 제패한 제국이었고 스스로는 지금도 그런 의식을 다분히 갖고 있으니, 세계사의 톱니바퀴 중 주요 부분이 맞물리는 원리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역시나 옥스퍼드로 눈길을 주어야 한다. 옥스퍼드가 천재들을 배출하는 곳은 아니더라도, 2010년 이후 연속으로 다섯 명의 총리를 배출한 것을 보면 유권자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그곳에 있다. 보수당 총리 보리스 존슨은 재임 시절에 비판과 조롱을 사기도 했지만, 그의 옥스퍼드 동문들은 그를 이렇게 묘사한다. “존슨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너무 재미있고, 따뜻하고 매력적이었다.”
정치와 권력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희화화된 모습으로 이미지화되기에 우리는 일상에서 그들을 간단히 무시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견고하다. 고딕풍의 성처럼 단단하고, 수백 년간 갤러리에 걸려 있는 태피스트리처럼 선조들과 동시대 인맥의 실가닥을 교차해 튼튼하고 품위 있게 직조되어 있다. 옥스퍼드에서 배태된 수많은 인물은 역사적 분위기를 풍기고 성처럼 천장이 높으며 수백 년 된 그릇과 컵을 쓰는, 현대적이지 않은 분위기에서 성장했고 그런 데 익숙하다. 모던한 것들이 침투하려 할 때마다 그들은 고전문학의 경구들로 맞서며 탁월한 선조들의 피를 자랑했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와 오랜 세월 흘러왔던 선조들의 피는 묽어졌고, 고전의 경구들은 과학과 경제학의 시대에 자꾸만 현실에 엇박자를 내기 시작했다.
『옥스퍼드 초엘리트』를 가장 좁혀서 설명해보면 이렇다. 저자가 옥스퍼드대학 동문인 보리스 존슨, 대니얼 해넌, 제이컵 리스모그 등이 영국을 지배하는 위치에 오르자, 자신의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이 초엘리트 그룹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 과정을 면밀히 파헤치는 르포르타주다.
프랑스의 에나르크, 미국의 하버드, 한국의 서울대 등 다른 나라에서도 권력 카르텔은 엘리트를 중심으로 형성되지 않는가, 라고 반문할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의 엘리트 집단은 다르다. 이튼과 같은 사립 기숙학교 출신들은 십대 때부터 인맥을 형성해 옥스퍼드에 입학한다. 상류층 부모를 둔 옥스퍼드생들은 중산층 출신의 동기생들을 이방인 취급한다. 또 옥스퍼드생들은 3년간의 짧은 학부생활 중 공부는 최소한으로 하고 일찍이 정치 감각을 익혀 의회 진출을 위한 발판으로 삼는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을 일컫는 ‘노력파’나 ‘공붓벌레’라는 단어는 옥스퍼드생들이 가장 치욕적이라고 여긴다. ‘노력하지 않는 우월성’이 이들이 평생 몸에 걸치고 다니는 외투다.
옥스퍼드는 수백 년 동안 흔들림 없는 권력의 아성이었다. 하지만 2016년 6월 24일 영국의 브렉시트가 결정되자 유럽 탈퇴의 심층 원인으로 지목된 옥스퍼드 그룹은 그 실체가 더 이상 수면 아래에 감춰져 있을 수 없었다. 저자는 브렉시트파의 집단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이 책의 목적 가운데 하나라고 밝히면서, ‘브렉시트는 옥스퍼드에서 부화되었다’고 말한다.
옥스퍼드에서의 경험이 담긴 르포르타주
영국 권력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한 지도
외투를 껴입은 보수주의자들의 막을 한 꺼풀씩 벗겨내다
타임스 최고의 책, 선데이타임스 베스트셀러
영국을 면밀히 관찰하고 사람이라면 옥스퍼드에 렌즈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나아가 영국은 오랫동안 세계를 제패한 제국이었고 스스로는 지금도 그런 의식을 다분히 갖고 있으니, 세계사의 톱니바퀴 중 주요 부분이 맞물리는 원리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역시나 옥스퍼드로 눈길을 주어야 한다. 옥스퍼드가 천재들을 배출하는 곳은 아니더라도, 2010년 이후 연속으로 다섯 명의 총리를 배출한 것을 보면 유권자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그곳에 있다. 보수당 총리 보리스 존슨은 재임 시절에 비판과 조롱을 사기도 했지만, 그의 옥스퍼드 동문들은 그를 이렇게 묘사한다. “존슨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너무 재미있고, 따뜻하고 매력적이었다.”
정치와 권력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희화화된 모습으로 이미지화되기에 우리는 일상에서 그들을 간단히 무시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견고하다. 고딕풍의 성처럼 단단하고, 수백 년간 갤러리에 걸려 있는 태피스트리처럼 선조들과 동시대 인맥의 실가닥을 교차해 튼튼하고 품위 있게 직조되어 있다. 옥스퍼드에서 배태된 수많은 인물은 역사적 분위기를 풍기고 성처럼 천장이 높으며 수백 년 된 그릇과 컵을 쓰는, 현대적이지 않은 분위기에서 성장했고 그런 데 익숙하다. 모던한 것들이 침투하려 할 때마다 그들은 고전문학의 경구들로 맞서며 탁월한 선조들의 피를 자랑했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와 오랜 세월 흘러왔던 선조들의 피는 묽어졌고, 고전의 경구들은 과학과 경제학의 시대에 자꾸만 현실에 엇박자를 내기 시작했다.
『옥스퍼드 초엘리트』를 가장 좁혀서 설명해보면 이렇다. 저자가 옥스퍼드대학 동문인 보리스 존슨, 대니얼 해넌, 제이컵 리스모그 등이 영국을 지배하는 위치에 오르자, 자신의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이 초엘리트 그룹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 과정을 면밀히 파헤치는 르포르타주다.
프랑스의 에나르크, 미국의 하버드, 한국의 서울대 등 다른 나라에서도 권력 카르텔은 엘리트를 중심으로 형성되지 않는가, 라고 반문할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의 엘리트 집단은 다르다. 이튼과 같은 사립 기숙학교 출신들은 십대 때부터 인맥을 형성해 옥스퍼드에 입학한다. 상류층 부모를 둔 옥스퍼드생들은 중산층 출신의 동기생들을 이방인 취급한다. 또 옥스퍼드생들은 3년간의 짧은 학부생활 중 공부는 최소한으로 하고 일찍이 정치 감각을 익혀 의회 진출을 위한 발판으로 삼는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을 일컫는 ‘노력파’나 ‘공붓벌레’라는 단어는 옥스퍼드생들이 가장 치욕적이라고 여긴다. ‘노력하지 않는 우월성’이 이들이 평생 몸에 걸치고 다니는 외투다.
옥스퍼드는 수백 년 동안 흔들림 없는 권력의 아성이었다. 하지만 2016년 6월 24일 영국의 브렉시트가 결정되자 유럽 탈퇴의 심층 원인으로 지목된 옥스퍼드 그룹은 그 실체가 더 이상 수면 아래에 감춰져 있을 수 없었다. 저자는 브렉시트파의 집단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이 책의 목적 가운데 하나라고 밝히면서, ‘브렉시트는 옥스퍼드에서 부화되었다’고 말한다.
목차
서론: 옥스퍼드의 귀족정치
1. 엘리트들
2. 계급 전쟁
3. 얕은 지식
4. 룰 브레이커
5. 아이들의 의회, 옥스퍼드 유니언
6. 토론의 달인, 보리스 존슨
7. 꼭두각시, 추종자 그리고 희생자
8. 옥스퍼드 유니언과 노동당 학생회
9. 브렉시트의 탄생
10. 비극을 모르는 세대
11. 그들의 현재
12. 우리의 의회
13.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
14. 브렉시트와 옥스퍼드 유니언
15. 한 표 부탁드립니다!
16. 패거리 정치와 팬데믹
17. 상류층이 사라진 옥스퍼드 귀족정치
18. 무엇을 해야 할까?
1. 엘리트들
2. 계급 전쟁
3. 얕은 지식
4. 룰 브레이커
5. 아이들의 의회, 옥스퍼드 유니언
6. 토론의 달인, 보리스 존슨
7. 꼭두각시, 추종자 그리고 희생자
8. 옥스퍼드 유니언과 노동당 학생회
9. 브렉시트의 탄생
10. 비극을 모르는 세대
11. 그들의 현재
12. 우리의 의회
13.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
14. 브렉시트와 옥스퍼드 유니언
15. 한 표 부탁드립니다!
16. 패거리 정치와 팬데믹
17. 상류층이 사라진 옥스퍼드 귀족정치
18. 무엇을 해야 할까?
옥스퍼드는 중요한 독립 변수였다. 다른 대학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는, 지난 25년간의 영국 정치에서 옥스퍼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만약 존슨, 고브, 해넌, 도미닉 커밍스, 리스모그가 열일곱 살에 옥스퍼드로부터 입학을 거절당했다면 브렉시트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p.17
일필휘지로 명쾌하게 글을 쓰는 학생들은 강한 확신이 없는 주제에 대해서도 논쟁할 수 있다. 때론 모든 문서를 다 읽고 복잡한 뉘앙스까지 고민하는 진지한 학자들보다 더 나았다. 내가 옥스퍼드에서 흡수한 에세이 문체는 신문사의 칼럼니스트로서 경력을 쌓는 데 이상적인 준비 과정이 됐다. (…) 나는 얕은 지식으로도 글을 쓰고 이야기하며 밥을 벌어 먹고사는 방법을 옥스퍼드에서 너무 잘 배웠다.
--- p.34~35
칼리지의 학부생 휴게실에서 회의할 때 여학생이 발언하고자 하면, 남학생들이 ‘우리에게 네 가슴을 보여줘!’라고 연호하는 것이 관례였다. (…) 동성애 차별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전통들에 대한 불평은 유머 감각이 없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 p.40
대부분의 아이는 가정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지만, 기숙학교 학생들은 학교에서 외모와 성적으로 평가받으며 성장한다. 이들에게 성공은 평생 걸치는 외투가 된다.
--- p.51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현재 영국 엘리트들의 전공을 보면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영국에서 수학과 과학은 오랫동안 ‘상류층에 맞지 않는non-U’ 전공이었다. 조지 오웰은 그의 기숙학교 시절을 이렇게 서술했다. “어떤 형태로든 과학은 배우지 않았다. 정말로 너무 무관심해서 자연사에 관한 관심조차 꺾일 지경이었다.”
--- p.58
그 시절 옥스퍼드에서 관료 양성을 위한 핵심적인 전공은 철학, 정치, 경제였다. 3년의 학부 과정에서 수박 겉핥기식이 아닌 전공이 없었지만, 철학·정치·경제PPE 전공은 학생들의 시간을 세 과목으로 분산시켜 몇 배나 더 심각했다(학생 대부분이 1학년 이후에 한 과목은 포기했다). 철학·정치·경제를 전공했던 어떤 동창은 이렇게 말했다. ‘재무부에서 일하고 있지만, 전공 가운데 경제 부분은 너무 부족한 점이 많아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 p.60~61
존슨은 자신이 연기하는 대로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는 자기비하를 자기 홍보의 형태로 바꿨다. 많은 유별난 영국인처럼, 그의 정신없는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은 계급을 대변했다. 나는 확고한 특권적인 위치에 있기에 규범은 마음대로 어겨도 된다는 식이다.
--- p.93
세상에 대한 영국의 무관심은 그로부터 20년 후 캐머런과 존슨의 세대가 되었을 때 그 절정에 달했다. 이들은 삶 속에서 비극적인 경험을 한 적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300년 동안 혁명, 독재, 기근, 내전, 침략, 경제 붕괴를 겪지 않은 국가의 가장 운 좋은 세대, 그중에서도 가장 큰 특권을 가진 계급의 구성원들이었다. 아일랜드를 비롯해 대영제국 곳곳에서는 계속해서 비극이 일어났지만, 이들 영국 내부의 지배계급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고 마치 무대 밖의 소음처럼 멀리 떨어진 일들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동안 수많은 전사자를 낳은 귀족계급이 겪은 비극은 시간이 지나면서 영광으로 재탄생했다.
--- p.161
존슨-캐머런 세대는 20대 초반에 이미 영국의 권력을 장악할 계획을 들고 런던으로 입성했다. 런던에 가면 초입부터 어렴풋이 목적지인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멀찍이 보였다. 이들은 이 궁전과 비슷하게 생긴 건물들에서 성장했으며, 의회 건물은 그들의 본가처럼 중세 고딕 양식을 본떠 지어진 사립학교 졸업생들의 동문회 같은 곳이었다. 고브처럼 중산층 출신이라면 그러한 분위기를 자기 집처럼 친숙하게 느끼는 법을 별도로 익혀야만 했다.
--- p.167~168
그러나 사립학교 출신 보수당원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운명이 정치에 있다고 믿었다. 영국 보수당은 선거의 승리를 마구 찍어내는 서구 세계에서 최고의 성능을 가진 기계 같았으며, 바로 그들이 이 기계를 직접 운행하고 있었다. 이제 더는 상류층이 총리에 선출되는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최상위권의 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아도니스는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이튼 출신은 사실 보수당의 최고위원회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전술상 무대 뒤로 후퇴했을 뿐이다. 내가 그들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을 때조차 무려 61명의 이튼 출신이 대처와 메이저 정부에서 장관직을 역임했다.”
--- p.169
캐머런이 옥스퍼드에서 갈고닦은 능력은 그가 총리로서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총리 관저에서 일했던 직원에 따르면 그는 블레어 총리처럼 이전에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주제에 대한 브리핑을 몇 분 안에 소화한 다음 국제 정상회의나 양자 회담에 가서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있었다. (…) 언변이 좋은 이튼-옥스퍼드 졸업생들은 근대 역사에서 일관되게 영국의 지배계급이 어떤 사람들인지 보여주는 완벽한 예시와도 같았다.
--- p.192~193
존슨은 보수당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노령층, 지방의 영국인들에게, 소위 먹힐 수 있는 완벽한 구성을 갖추고 있었다. 이튼은 ‘지도자’, 옥스퍼드는 ‘두뇌’, 익살스러움은 ‘영국인’, 그리고 우스터식 화법은 ‘잃어버린 영국의 황금기’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두 번째 선거에서 더 향상된 선거운동으로 유니언 회장 자리를 쟁취했던 것처럼 총리 자리도 쟁취했다. 2019년 7월 24일, 그는 1955년 이후 다섯 번째 이튼-옥스퍼드 출신의 보수당 총리가 되었다.
--- p.17
일필휘지로 명쾌하게 글을 쓰는 학생들은 강한 확신이 없는 주제에 대해서도 논쟁할 수 있다. 때론 모든 문서를 다 읽고 복잡한 뉘앙스까지 고민하는 진지한 학자들보다 더 나았다. 내가 옥스퍼드에서 흡수한 에세이 문체는 신문사의 칼럼니스트로서 경력을 쌓는 데 이상적인 준비 과정이 됐다. (…) 나는 얕은 지식으로도 글을 쓰고 이야기하며 밥을 벌어 먹고사는 방법을 옥스퍼드에서 너무 잘 배웠다.
--- p.34~35
칼리지의 학부생 휴게실에서 회의할 때 여학생이 발언하고자 하면, 남학생들이 ‘우리에게 네 가슴을 보여줘!’라고 연호하는 것이 관례였다. (…) 동성애 차별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전통들에 대한 불평은 유머 감각이 없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 p.40
대부분의 아이는 가정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지만, 기숙학교 학생들은 학교에서 외모와 성적으로 평가받으며 성장한다. 이들에게 성공은 평생 걸치는 외투가 된다.
--- p.51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현재 영국 엘리트들의 전공을 보면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영국에서 수학과 과학은 오랫동안 ‘상류층에 맞지 않는non-U’ 전공이었다. 조지 오웰은 그의 기숙학교 시절을 이렇게 서술했다. “어떤 형태로든 과학은 배우지 않았다. 정말로 너무 무관심해서 자연사에 관한 관심조차 꺾일 지경이었다.”
--- p.58
그 시절 옥스퍼드에서 관료 양성을 위한 핵심적인 전공은 철학, 정치, 경제였다. 3년의 학부 과정에서 수박 겉핥기식이 아닌 전공이 없었지만, 철학·정치·경제PPE 전공은 학생들의 시간을 세 과목으로 분산시켜 몇 배나 더 심각했다(학생 대부분이 1학년 이후에 한 과목은 포기했다). 철학·정치·경제를 전공했던 어떤 동창은 이렇게 말했다. ‘재무부에서 일하고 있지만, 전공 가운데 경제 부분은 너무 부족한 점이 많아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 p.60~61
존슨은 자신이 연기하는 대로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는 자기비하를 자기 홍보의 형태로 바꿨다. 많은 유별난 영국인처럼, 그의 정신없는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은 계급을 대변했다. 나는 확고한 특권적인 위치에 있기에 규범은 마음대로 어겨도 된다는 식이다.
--- p.93
세상에 대한 영국의 무관심은 그로부터 20년 후 캐머런과 존슨의 세대가 되었을 때 그 절정에 달했다. 이들은 삶 속에서 비극적인 경험을 한 적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300년 동안 혁명, 독재, 기근, 내전, 침략, 경제 붕괴를 겪지 않은 국가의 가장 운 좋은 세대, 그중에서도 가장 큰 특권을 가진 계급의 구성원들이었다. 아일랜드를 비롯해 대영제국 곳곳에서는 계속해서 비극이 일어났지만, 이들 영국 내부의 지배계급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고 마치 무대 밖의 소음처럼 멀리 떨어진 일들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동안 수많은 전사자를 낳은 귀족계급이 겪은 비극은 시간이 지나면서 영광으로 재탄생했다.
--- p.161
존슨-캐머런 세대는 20대 초반에 이미 영국의 권력을 장악할 계획을 들고 런던으로 입성했다. 런던에 가면 초입부터 어렴풋이 목적지인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멀찍이 보였다. 이들은 이 궁전과 비슷하게 생긴 건물들에서 성장했으며, 의회 건물은 그들의 본가처럼 중세 고딕 양식을 본떠 지어진 사립학교 졸업생들의 동문회 같은 곳이었다. 고브처럼 중산층 출신이라면 그러한 분위기를 자기 집처럼 친숙하게 느끼는 법을 별도로 익혀야만 했다.
--- p.167~168
그러나 사립학교 출신 보수당원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운명이 정치에 있다고 믿었다. 영국 보수당은 선거의 승리를 마구 찍어내는 서구 세계에서 최고의 성능을 가진 기계 같았으며, 바로 그들이 이 기계를 직접 운행하고 있었다. 이제 더는 상류층이 총리에 선출되는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최상위권의 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아도니스는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이튼 출신은 사실 보수당의 최고위원회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전술상 무대 뒤로 후퇴했을 뿐이다. 내가 그들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을 때조차 무려 61명의 이튼 출신이 대처와 메이저 정부에서 장관직을 역임했다.”
--- p.169
캐머런이 옥스퍼드에서 갈고닦은 능력은 그가 총리로서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총리 관저에서 일했던 직원에 따르면 그는 블레어 총리처럼 이전에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주제에 대한 브리핑을 몇 분 안에 소화한 다음 국제 정상회의나 양자 회담에 가서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있었다. (…) 언변이 좋은 이튼-옥스퍼드 졸업생들은 근대 역사에서 일관되게 영국의 지배계급이 어떤 사람들인지 보여주는 완벽한 예시와도 같았다.
--- p.192~193
존슨은 보수당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노령층, 지방의 영국인들에게, 소위 먹힐 수 있는 완벽한 구성을 갖추고 있었다. 이튼은 ‘지도자’, 옥스퍼드는 ‘두뇌’, 익살스러움은 ‘영국인’, 그리고 우스터식 화법은 ‘잃어버린 영국의 황금기’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두 번째 선거에서 더 향상된 선거운동으로 유니언 회장 자리를 쟁취했던 것처럼 총리 자리도 쟁취했다. 2019년 7월 24일, 그는 1955년 이후 다섯 번째 이튼-옥스퍼드 출신의 보수당 총리가 되었다.
--- p.220~221
출판사 리뷰
옥스퍼드에서 익히는 상류층 감각
촌철살인 글쓰기와 말투, 고전 인용은 어떻게 활용되나
원래 브렉시트는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란으로 시작되었다. 더 정확히는 엘리트들이 주도한 반反엘리트주의 반란이었다. 옥스퍼드 출신인 언론 권력 루퍼트 머독이 반엘리트주의자로 가장한 뒤 브렉시트를 지원했고, 이를 등에 업은 졸업생들이 다른 옥스퍼드 졸업생 집단에 대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비옥스퍼드 출신인 대다수의 국민은 엘리트들의 브렉시트 운동에 국가의 미래를 기꺼이 맡겼다.
영국 국민은 어떻게 이런 전략에 넘어가게 됐을까? 당시 브렉시트 운동을 승리로 이끈 인물은 보리스 존슨과 마이클 고브였는데, 특히 존슨의 경력, 말투, 자신감, 고전을 인용하는 습관은 국민의 신뢰를 얻었다. 수사학적 언변, 촌철살인의 치고 빠지는 글쓰기, 타고난 지배자의 감각은 영국 지배계급의 핵심 자질이다(자기 자신을 지도자라고 여기는 것도 ‘리더의 능력’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전후 영국 총리 가운데 명문 학교에서 교육받지 못한 캘러헌, 메이저, 고든 브라운만이 총리 직위를 힘겨워했다). 존슨은 사립학교인 이튼에서 독특하게도, 논리를 무시함으로써 더 나은 논리를 가진 상대방을 제압하는 방법을 배웠다. 또한 옥스퍼드에서는 신중하게 타이밍을 맞춘 농담, 계산된 저음의 목소리, 인신공격성 농담으로 선거와 토론에서 이기는 비법을 터득했다.
옥스퍼드 출신들의 경력을 통계 수치로 한번 살펴보자. 1940년부터 현재 리시 수낵까지 영국의 총리는 총 17명이다. 이 중 13명이 옥스퍼드 출신이다(케임브리지 출신은 한 명도 없다). 2010년 이후로 한정해 보자면, 총리는 다섯 번 연속 옥스퍼드 출신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옥스퍼드에서 관료 양성을 위한 핵심 전공인 철학·정치·경제를 택했다. 3년의 학부 과정 동안 세 과목을 전공한다는 것은 넓고 얕게 배운다(옥스퍼드식 ‘지대넓얕’)는 뜻이다. 저자가 옥스퍼드에 재학 중일 때 실시되었던 한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은 일주일에 겨우 20시간만 공부했다.
옥스퍼드대학 내 동아리 ‘옥스퍼드 유니언’은 보수적인 학생들의 모임이었다. 이들은 대학원 진학에는 관심이 없었다. 1959년 옥스퍼드에 모습을 드러낸 스티븐 호킹은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이들은 회색분자로 간주”됐는데, 이건 학내에서 애용되는 “옥스퍼드 단어들 가운데서도 가장 모욕적이었다”고 말했다. 보리스 존슨을 포함한 그의 사남매는 모두 옥스퍼드를 졸업했는데, 그중 존슨의 막냇동생 조 존슨이 최우수 등급을 받자 가족들은 이를 두고 무척 애석해했다. 잘 놀고, 인맥을 쌓고, 얕은 지식으로 순발력을 발휘하는 옥스퍼드 출신들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내 주류 세력은 문과생들이었다. 이 책에서 실세들을 언급할 때마다 전공을 나란히 병기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실용적인 학문을 공부한 이들은 인정받거나 눈에 띄거나 하지 못했다. 수학과 과학은 이 학교에서 “상류층에 맞지 않는” 전공으로 불렸는데, 이런 학문 풍토는 영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숫자는 역사적으로 영국의 지배계급에게 도전 거리였다. 이를테면 더글러스 흄 총리는 예산 심의 과정에서 자신이 성냥개비를 사용했음을 시인한 바 있다. 또 영국의 지도자들은 원자력 에너지, 기후변화, 코로나19와 같은 이슈에 맞닥뜨려 과학적 자문 결과를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2016년에 의원들 중 브렉시트를 지지했던 이들의 대부분은 고전문학 전공자였다. 하원에서는 8명의 고전문학 전공자 가운데 6명이 유럽연합 탈퇴에 투표했다.
1980년대에 특권층이 옥스퍼드에 입학할 때 고전문학은 가장 쉬운 주 전공이었다. 보리스 존슨이 입학하기 2년 전인 1981년, 옥스퍼드에 지원하는 학생의 4분의 3이 고전문학을 전공하길 원했다. 현대적인 옥스퍼드는 영국 국정을 관장하는 정치인과 관료, 경제를 담당하는 변호사와 회계사 그리고 언론인들을 전문적으로 배출해왔다. 이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16년 동안의 학창 시절에 과학과 수학을 건너뛰었고 오로지 경제학만 깊지 않게 배웠다.
옥스퍼드 출신 핵심 인물들 인터뷰
권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보리스 존슨, 마이클 고브, 대니얼 해넌, 도미닉 커밍스, 제이컵 리스모그. 이들은 옥스퍼드 5인방이다. 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옥스퍼드에 다녔던 저자는 청소년 시절을 해외 여러 나라에서 보냈기에 내부자와 외부자의 시각 모두를 겸비하고 있다.
이 책의 진가는 핵심 계층과의 인터뷰에 있다. 옥스퍼드 졸업생이자 현재 영국의 정계와 언론계에서 종사하는 인터뷰 대상자들은 어리석었던 자신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거나 혹은 여전한 특권의식을 내비치기도 한다. 또한 저자는 옥스퍼드 재학 시절에 경험했던 것들을 기억에서 끄집어내 기자의 날카로운 정신으로 재구조화한다. 이렇게 짜인 이야기는 흥미로운 데다 그가 내리는 결론들은 확실한 근거를 지닌다.
상류층 권력은 옥스퍼드 안에서도 세밀하게 다른 결을 드러낸다. 가령 보리스 존슨 총리는 학창 시절부터 눈에 띄고 유머 감각이 있는 데다 전형적인 리더 스타일로 유명했다. 그는 언제나 또래들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는 이튼-옥스퍼드의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열심히 인맥을 쌓았다. 반면 존슨보다 먼저 총리가 된 데이비드 캐머런은 그런 데 시간을 쓰지 않았다. 그는 여왕의 먼 친척뻘이어서 여기저기 분주히 뛰어다니며 노력할 필요가 없는 진짜 상류층이었다. 캐머런의 말투, 자신감, 큰 키, 혈색 좋은 건강한 인상은 그가 이튼 출신임을 강력하게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저자는 “옥스퍼드에서 인맥 쌓기는 존슨과 같이 벼락출세한 집안에서나 하는 일이었다”면서 진짜와 아류를 구별해낸다. 존슨의 아버지 스탠리는 세계은행의 관료이자 유럽연합집행위원이었지만, 셔번의 이름 없는 기숙학교를 다녔기에 보리스 존슨은 중상류층에서 최상류층으로 올라가는 데 자신의 일생을 바쳐야만 했다.
이 책에서는 흙수저들도 명암 대비가 뚜렷하게 가감 없이 묘사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번째 탄핵 심판에서 트럼프에 반대 증언을 한 핵심 증인인 피오나 힐은 원래 옥스퍼드의 허트퍼드칼리지에 지원했다. 하지만 그는 사립학교 출신들에 비해 배경지식이 달렸고, 면접 날 한 여학생이 발을 걸어 코피가 났으며, 엄마가 손수 떠준 옷을 입고 가 창피만 당했다. 결국 힐은 세인트앤드루스에 입학했다. 그녀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내 말투와 옷차림을 보고 웃었다. 이것은 내가 겪었던 가장 끔찍하고 창피한 경험이었다.” 옥스퍼드에서 흙수저들은 키나 몸집이 작고, 여드름이 나고, 후드티 차림으로 학교 정원을 종종거리며 다녔다. 반면 사립기숙학교 출신들은 “아름답고 유서 깊은 건물에서 교육받는 데 익숙”했다. 그들에게 높은 천장에 수백 년 이상 된 고색창연한 빅토리아풍 건물은 독특한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미래 정치에도 영향을 끼쳤다. 사실 건축은 상류층과 하류층을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유산이었다.
이 책은 반세기 전부터 옥스퍼드를 중심으로 결성된 그룹이 어떻게 현재의 영국 정치를 만들어내고 펼쳐왔는지에 대해 짧고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옥스퍼드 엘리트들의 넓고 얕은 지식과 화려한 언변은 두텁고 흔들리지 않는 자신들만의 권력을 구축해왔다. 현재 영국 정치의 정점에 있는 고집스럽게 근친상간적인 옥스퍼드 네트워크의 규모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독자라도 이 책을 읽으면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2016년 국민투표에서 철학·정치·경제를 전공한 의원의 95퍼센트가 유럽연합 잔류에 투표했다. 여기에는 데이비드 캐머런, 제러미 헌트 리즈 트러스 등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 대부분은 현대적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로 국가 운영에 필요한 적합한 지식을 얻기 위해 전공을 선택한 이들이다. 철학·정치·경제 전공자들 가운데 드물게 유럽 탈퇴를 지지한 사람으로는 리시 수낵 그리고 1950년대 옥스퍼드대학 신문 『처웰』의 총무부장이었던 루퍼트 머독이 있다. 반면 브렉시트를 주도했던 모든 옥스퍼드 출신 보수당원들은 고지식한 과목들을 전공했다. 보리스 존슨은 고전문학, 리스모그와 해넌은 역사학 그리고 커밍스는 고대사와 현대사를 전공했다. 브렉시트 찬성 운동에 80만 파운드를 기부한 헤지펀드 매니저 크리스핀 오디는 역사와 경제학을 전공했다. 마이클 고브는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주로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이런 전공이 주는 함의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Chums, 즉 ‘동료’라는 뜻으로, 옥스퍼드(그리고 사립 이튼) 출신들이 영국의 최상위층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회에 얼마나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드러낸다.
대단한 책이다. 쿠퍼가 그려낸 매력적인 그림은 영국을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몹시 타락한 지배층이 존재하는 나라로 묘사한다. 그리고 이러한 진단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_『타임스』
촌철살인 글쓰기와 말투, 고전 인용은 어떻게 활용되나
원래 브렉시트는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란으로 시작되었다. 더 정확히는 엘리트들이 주도한 반反엘리트주의 반란이었다. 옥스퍼드 출신인 언론 권력 루퍼트 머독이 반엘리트주의자로 가장한 뒤 브렉시트를 지원했고, 이를 등에 업은 졸업생들이 다른 옥스퍼드 졸업생 집단에 대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비옥스퍼드 출신인 대다수의 국민은 엘리트들의 브렉시트 운동에 국가의 미래를 기꺼이 맡겼다.
영국 국민은 어떻게 이런 전략에 넘어가게 됐을까? 당시 브렉시트 운동을 승리로 이끈 인물은 보리스 존슨과 마이클 고브였는데, 특히 존슨의 경력, 말투, 자신감, 고전을 인용하는 습관은 국민의 신뢰를 얻었다. 수사학적 언변, 촌철살인의 치고 빠지는 글쓰기, 타고난 지배자의 감각은 영국 지배계급의 핵심 자질이다(자기 자신을 지도자라고 여기는 것도 ‘리더의 능력’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전후 영국 총리 가운데 명문 학교에서 교육받지 못한 캘러헌, 메이저, 고든 브라운만이 총리 직위를 힘겨워했다). 존슨은 사립학교인 이튼에서 독특하게도, 논리를 무시함으로써 더 나은 논리를 가진 상대방을 제압하는 방법을 배웠다. 또한 옥스퍼드에서는 신중하게 타이밍을 맞춘 농담, 계산된 저음의 목소리, 인신공격성 농담으로 선거와 토론에서 이기는 비법을 터득했다.
옥스퍼드 출신들의 경력을 통계 수치로 한번 살펴보자. 1940년부터 현재 리시 수낵까지 영국의 총리는 총 17명이다. 이 중 13명이 옥스퍼드 출신이다(케임브리지 출신은 한 명도 없다). 2010년 이후로 한정해 보자면, 총리는 다섯 번 연속 옥스퍼드 출신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옥스퍼드에서 관료 양성을 위한 핵심 전공인 철학·정치·경제를 택했다. 3년의 학부 과정 동안 세 과목을 전공한다는 것은 넓고 얕게 배운다(옥스퍼드식 ‘지대넓얕’)는 뜻이다. 저자가 옥스퍼드에 재학 중일 때 실시되었던 한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은 일주일에 겨우 20시간만 공부했다.
옥스퍼드대학 내 동아리 ‘옥스퍼드 유니언’은 보수적인 학생들의 모임이었다. 이들은 대학원 진학에는 관심이 없었다. 1959년 옥스퍼드에 모습을 드러낸 스티븐 호킹은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이들은 회색분자로 간주”됐는데, 이건 학내에서 애용되는 “옥스퍼드 단어들 가운데서도 가장 모욕적이었다”고 말했다. 보리스 존슨을 포함한 그의 사남매는 모두 옥스퍼드를 졸업했는데, 그중 존슨의 막냇동생 조 존슨이 최우수 등급을 받자 가족들은 이를 두고 무척 애석해했다. 잘 놀고, 인맥을 쌓고, 얕은 지식으로 순발력을 발휘하는 옥스퍼드 출신들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내 주류 세력은 문과생들이었다. 이 책에서 실세들을 언급할 때마다 전공을 나란히 병기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실용적인 학문을 공부한 이들은 인정받거나 눈에 띄거나 하지 못했다. 수학과 과학은 이 학교에서 “상류층에 맞지 않는” 전공으로 불렸는데, 이런 학문 풍토는 영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숫자는 역사적으로 영국의 지배계급에게 도전 거리였다. 이를테면 더글러스 흄 총리는 예산 심의 과정에서 자신이 성냥개비를 사용했음을 시인한 바 있다. 또 영국의 지도자들은 원자력 에너지, 기후변화, 코로나19와 같은 이슈에 맞닥뜨려 과학적 자문 결과를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2016년에 의원들 중 브렉시트를 지지했던 이들의 대부분은 고전문학 전공자였다. 하원에서는 8명의 고전문학 전공자 가운데 6명이 유럽연합 탈퇴에 투표했다.
1980년대에 특권층이 옥스퍼드에 입학할 때 고전문학은 가장 쉬운 주 전공이었다. 보리스 존슨이 입학하기 2년 전인 1981년, 옥스퍼드에 지원하는 학생의 4분의 3이 고전문학을 전공하길 원했다. 현대적인 옥스퍼드는 영국 국정을 관장하는 정치인과 관료, 경제를 담당하는 변호사와 회계사 그리고 언론인들을 전문적으로 배출해왔다. 이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16년 동안의 학창 시절에 과학과 수학을 건너뛰었고 오로지 경제학만 깊지 않게 배웠다.
옥스퍼드 출신 핵심 인물들 인터뷰
권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보리스 존슨, 마이클 고브, 대니얼 해넌, 도미닉 커밍스, 제이컵 리스모그. 이들은 옥스퍼드 5인방이다. 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옥스퍼드에 다녔던 저자는 청소년 시절을 해외 여러 나라에서 보냈기에 내부자와 외부자의 시각 모두를 겸비하고 있다.
이 책의 진가는 핵심 계층과의 인터뷰에 있다. 옥스퍼드 졸업생이자 현재 영국의 정계와 언론계에서 종사하는 인터뷰 대상자들은 어리석었던 자신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거나 혹은 여전한 특권의식을 내비치기도 한다. 또한 저자는 옥스퍼드 재학 시절에 경험했던 것들을 기억에서 끄집어내 기자의 날카로운 정신으로 재구조화한다. 이렇게 짜인 이야기는 흥미로운 데다 그가 내리는 결론들은 확실한 근거를 지닌다.
상류층 권력은 옥스퍼드 안에서도 세밀하게 다른 결을 드러낸다. 가령 보리스 존슨 총리는 학창 시절부터 눈에 띄고 유머 감각이 있는 데다 전형적인 리더 스타일로 유명했다. 그는 언제나 또래들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는 이튼-옥스퍼드의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열심히 인맥을 쌓았다. 반면 존슨보다 먼저 총리가 된 데이비드 캐머런은 그런 데 시간을 쓰지 않았다. 그는 여왕의 먼 친척뻘이어서 여기저기 분주히 뛰어다니며 노력할 필요가 없는 진짜 상류층이었다. 캐머런의 말투, 자신감, 큰 키, 혈색 좋은 건강한 인상은 그가 이튼 출신임을 강력하게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저자는 “옥스퍼드에서 인맥 쌓기는 존슨과 같이 벼락출세한 집안에서나 하는 일이었다”면서 진짜와 아류를 구별해낸다. 존슨의 아버지 스탠리는 세계은행의 관료이자 유럽연합집행위원이었지만, 셔번의 이름 없는 기숙학교를 다녔기에 보리스 존슨은 중상류층에서 최상류층으로 올라가는 데 자신의 일생을 바쳐야만 했다.
이 책에서는 흙수저들도 명암 대비가 뚜렷하게 가감 없이 묘사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번째 탄핵 심판에서 트럼프에 반대 증언을 한 핵심 증인인 피오나 힐은 원래 옥스퍼드의 허트퍼드칼리지에 지원했다. 하지만 그는 사립학교 출신들에 비해 배경지식이 달렸고, 면접 날 한 여학생이 발을 걸어 코피가 났으며, 엄마가 손수 떠준 옷을 입고 가 창피만 당했다. 결국 힐은 세인트앤드루스에 입학했다. 그녀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내 말투와 옷차림을 보고 웃었다. 이것은 내가 겪었던 가장 끔찍하고 창피한 경험이었다.” 옥스퍼드에서 흙수저들은 키나 몸집이 작고, 여드름이 나고, 후드티 차림으로 학교 정원을 종종거리며 다녔다. 반면 사립기숙학교 출신들은 “아름답고 유서 깊은 건물에서 교육받는 데 익숙”했다. 그들에게 높은 천장에 수백 년 이상 된 고색창연한 빅토리아풍 건물은 독특한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미래 정치에도 영향을 끼쳤다. 사실 건축은 상류층과 하류층을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유산이었다.
이 책은 반세기 전부터 옥스퍼드를 중심으로 결성된 그룹이 어떻게 현재의 영국 정치를 만들어내고 펼쳐왔는지에 대해 짧고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옥스퍼드 엘리트들의 넓고 얕은 지식과 화려한 언변은 두텁고 흔들리지 않는 자신들만의 권력을 구축해왔다. 현재 영국 정치의 정점에 있는 고집스럽게 근친상간적인 옥스퍼드 네트워크의 규모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독자라도 이 책을 읽으면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2016년 국민투표에서 철학·정치·경제를 전공한 의원의 95퍼센트가 유럽연합 잔류에 투표했다. 여기에는 데이비드 캐머런, 제러미 헌트 리즈 트러스 등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 대부분은 현대적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로 국가 운영에 필요한 적합한 지식을 얻기 위해 전공을 선택한 이들이다. 철학·정치·경제 전공자들 가운데 드물게 유럽 탈퇴를 지지한 사람으로는 리시 수낵 그리고 1950년대 옥스퍼드대학 신문 『처웰』의 총무부장이었던 루퍼트 머독이 있다. 반면 브렉시트를 주도했던 모든 옥스퍼드 출신 보수당원들은 고지식한 과목들을 전공했다. 보리스 존슨은 고전문학, 리스모그와 해넌은 역사학 그리고 커밍스는 고대사와 현대사를 전공했다. 브렉시트 찬성 운동에 80만 파운드를 기부한 헤지펀드 매니저 크리스핀 오디는 역사와 경제학을 전공했다. 마이클 고브는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주로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이런 전공이 주는 함의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Chums, 즉 ‘동료’라는 뜻으로, 옥스퍼드(그리고 사립 이튼) 출신들이 영국의 최상위층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회에 얼마나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드러낸다.
대단한 책이다. 쿠퍼가 그려낸 매력적인 그림은 영국을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몹시 타락한 지배층이 존재하는 나라로 묘사한다. 그리고 이러한 진단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_『타임스』
추천평
은밀한 담합으로 이어진 명문대학의 동문 네트워크가 영국 정계를 장악하고, 결국 브렉시트까지 만들어낼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한 쿠퍼의 날카로운 분석은 놀랍기 그지없다. 당신이 영국 현대 정치의 정점에서 군림하고 있는 강력한 옥스퍼드 네트워크의 실체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여전히 그는 당신에게 놀랄 만큼 새로운 사실들을 들려준다.
- 팀 애덤스 (『가디언』)
- 팀 애덤스 (『가디언』)
이 책은 아주 우아한 에세이다. 저자는 카르텔의 구성원이었던 사람이 직접 작성한 것처럼 1980~1990년대 초 영국을 장악한 옥스퍼드 보수당의 엘리트 구성원들을 세밀하게 해부한다. 이러한 작업은 지적·문화적으로 감탄할 만큼 매력적인데 현실은 이 작은 책 한 권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빛과 그림자를 지니고 있다.
- 아그네스 포리에이 (『파이낸셜타임스』)
- 아그네스 포리에이 (『파이낸셜타임스』)
쿠퍼는 이야기를 적절한 속도로 풀어간다. 글의 구성은 세심하고, 결론은 신중하며 그 근거는 확실하다.
- 조 윌리엄스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
- 조 윌리엄스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
쿠퍼는 이 책에서 엘리트들의 습관, 약점, 때로는 악행까지 이야기한다. 이 책은 요즘 외부인들이 잘 모르는 엘리트 집단을 파헤쳐 미래의 지도자가 될 이들의 프로필을 작성하고, 세렝게티 초원의 포식자와 먹이를 관찰하는 자연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옥스퍼드를 해부한다.
- 데이비드 시걸 (『뉴욕타임스』)
- 데이비드 시걸 (『뉴욕타임스』)
이 책은 고등 교육을 받은 보수당 간부들이 어떻게 권력을 장악하고 궁극적으로 브렉시트를 선동하는 데 성공했는지를 그려내고 있다. 매우 세밀하고도 비판적인 시각을 통해 보수당 간부들을 해부하며 그들의 악행을 고발한다. 저자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로 대표되는 영국의 엘리트 교육이 가진 지배력이 결국 일반 영국인들의 삶에 악영향을 준다고 판단한다.
- 패트릭 프레인 (『아이리시타임스』)
- 패트릭 프레인 (『아이리시타임스』)
불꽃놀이처럼 현란한 책.
- 린 바버 (『스펙테이터』)
- 린 바버 (『스펙테이터』)
매우 정밀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우울한 책이다.
- 매슈 사이드 (『선데이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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