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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윤봉길, 동북아에 평화를 묻다』는 매헌 윤봉길의 출생과 의거, 순국의 과정을 돌아보고 동북아 평화 교류의 매개로써 그의 의거를 자리매김하는 책이다. 매헌은 충절의 고장 충남 덕산에서 태어나 농민운동가로 활약하다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홍커우 공원에서의 의거를 성공시키고 일본 가나자와에서 순국한 후 동북아 평화와 공존공영의 상징으로 부활하고 있다. 이 책은 특히 중국에서 거주 중인 저자들이 의거 및 순국 90주년을 맞이하여 그간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칭다오와 상하이 각지의 윤봉길 의사 유적지를 일일이 답사하며 중국 망명기의 윤봉길 의사의 삶을 입체적으로 복원해 낸 책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
목차
추천사 7
표사 11
저자의 말 15
1부 윤봉길의 행적을 따라서 17
가장 멋있는 독립운동가, 윤봉길 19
제1장 장부가 길을 나서매 살아 돌아오지 않으리 21
‘윤두더지’ 윤진형 황무지를 일구다 21
‘살가지[狸]’ 라 불린 소년, 윤봉길 24
인정 없는 이 놈의 눈에 눈물 돋게 하는 어머니 25
독립만세운동을 목격하다 28
식민지 교육을 그만 두고 한학(漢學)을 배우다 30
나의 영원한 사람 35
개[犬]도 아니 먹는 똥을 누는 사람이 되어 38
농민 계몽과 농촌 개혁 운동에 나서다 41
조직적인 농민 운동을 전개하다 46
기사년 일기를 쓰다 48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53
제2장 남의 주머니에 돈이 들었는지 똥이 들었는지 67
낯설고 물선 이국 타향에서 67
목적지 온 것만은 무상 기뻤다 69
대한독립의 희망지, 상하이 근대 백 년 74
별 하나의 김구와 별 하나의 임정과 78
대한민국, 여기서 탄생하다 85
낮에는 모자공장, 밤에는 상하이영어학교 94
자전거는 임정을 싣고 100
‘혁명주의자’ 안창호 108
제3장 필부도 뜻이 있으면 수많은 군대를 이길 수 있다 113
승전보를 띄워 미친 듯이 도발하다 113
마치 이봉창처럼 118
꽃다운 나이에 삶은 시들어도 125
흉중에 일점 번민이 없어지고 마음이 편해집니다 133
낮은 목소리, 됐어 145
자유를 위해서라면 내 그대마저 바치리 153
날이 밝는 것이 지루하다 160
루쉰의 침묵 177
김구의 침묵, 이화림 183
녹두꽃 죽창에 달고 188
평화로 가는 길, 무라이의 안경 192
아무래도 매헌은, 가장 멋진 독립운동가 201
2부 윤봉길을 기념하여 203
제4장 윤봉길, 백세(百世)의 향기를 전하다 205
얄미울 정도로 차분한 ‘중요한 위탁물’ 205
이상의 꽃을 피우고 강의한 사랑의 길을 가다 208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 깃털보다 가벼운 암장 213
마음의 색동옷을 입고 눈물로 맞아 들이다 216
화해와 평화의 마중물, 순국비와 암장지적비를 세우다 220
제5장 윤봉길, 평화의 길을 만들다 225
월진회 100년사 225
청년 윤봉길, 동북아 평화 축제를 말하다. 231
윤봉길과 안중근, 100년의 대화 238
미래 윤봉길, 영웅을 찾아내자 243
애국의 길, 평화의 길을 가다 244
제6장 중국인 마음속의 윤봉길 249
상하이 루쉰공원魯迅公園 원장 오강吳剛 251
대한민국임시정부 항저우유적지기념관 조성주趙盛姝 관장 253
류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일투쟁 활동 진열관 온기주溫其洲 주임 255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구지진열관 이선자李鮮子 부관장 256
뤼순일아감옥구지박물관 주상령周祥令 초대 관장 257
뤼순일아감옥구지박물관旅順日俄監獄舊址博物館 장지성張志成 관장 260
부록 261
-윤봉길 의사 일생과 선양 261
-방문 지역 탐방 정보 267
참고문헌 273
표사 11
저자의 말 15
1부 윤봉길의 행적을 따라서 17
가장 멋있는 독립운동가, 윤봉길 19
제1장 장부가 길을 나서매 살아 돌아오지 않으리 21
‘윤두더지’ 윤진형 황무지를 일구다 21
‘살가지[狸]’ 라 불린 소년, 윤봉길 24
인정 없는 이 놈의 눈에 눈물 돋게 하는 어머니 25
독립만세운동을 목격하다 28
식민지 교육을 그만 두고 한학(漢學)을 배우다 30
나의 영원한 사람 35
개[犬]도 아니 먹는 똥을 누는 사람이 되어 38
농민 계몽과 농촌 개혁 운동에 나서다 41
조직적인 농민 운동을 전개하다 46
기사년 일기를 쓰다 48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53
제2장 남의 주머니에 돈이 들었는지 똥이 들었는지 67
낯설고 물선 이국 타향에서 67
목적지 온 것만은 무상 기뻤다 69
대한독립의 희망지, 상하이 근대 백 년 74
별 하나의 김구와 별 하나의 임정과 78
대한민국, 여기서 탄생하다 85
낮에는 모자공장, 밤에는 상하이영어학교 94
자전거는 임정을 싣고 100
‘혁명주의자’ 안창호 108
제3장 필부도 뜻이 있으면 수많은 군대를 이길 수 있다 113
승전보를 띄워 미친 듯이 도발하다 113
마치 이봉창처럼 118
꽃다운 나이에 삶은 시들어도 125
흉중에 일점 번민이 없어지고 마음이 편해집니다 133
낮은 목소리, 됐어 145
자유를 위해서라면 내 그대마저 바치리 153
날이 밝는 것이 지루하다 160
루쉰의 침묵 177
김구의 침묵, 이화림 183
녹두꽃 죽창에 달고 188
평화로 가는 길, 무라이의 안경 192
아무래도 매헌은, 가장 멋진 독립운동가 201
2부 윤봉길을 기념하여 203
제4장 윤봉길, 백세(百世)의 향기를 전하다 205
얄미울 정도로 차분한 ‘중요한 위탁물’ 205
이상의 꽃을 피우고 강의한 사랑의 길을 가다 208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 깃털보다 가벼운 암장 213
마음의 색동옷을 입고 눈물로 맞아 들이다 216
화해와 평화의 마중물, 순국비와 암장지적비를 세우다 220
제5장 윤봉길, 평화의 길을 만들다 225
월진회 100년사 225
청년 윤봉길, 동북아 평화 축제를 말하다. 231
윤봉길과 안중근, 100년의 대화 238
미래 윤봉길, 영웅을 찾아내자 243
애국의 길, 평화의 길을 가다 244
제6장 중국인 마음속의 윤봉길 249
상하이 루쉰공원魯迅公園 원장 오강吳剛 251
대한민국임시정부 항저우유적지기념관 조성주趙盛姝 관장 253
류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일투쟁 활동 진열관 온기주溫其洲 주임 255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구지진열관 이선자李鮮子 부관장 256
뤼순일아감옥구지박물관 주상령周祥令 초대 관장 257
뤼순일아감옥구지박물관旅順日俄監獄舊址博物館 장지성張志成 관장 260
부록 261
-윤봉길 의사 일생과 선양 261
-방문 지역 탐방 정보 267
참고문헌 273
책 속으로
윤봉길, 동북아에 평화를 묻다
금년은 윤봉길 의사 탄신 114년이자, 상하이 의거 90주년이다. 윤봉길 의사께서 그토록 염원하시었던 대한독립, 광복도 77년이 되었다. 윤봉길 의사의 고귀한 순국으로 우리나라도 근대화, 민주화를 넘어 제4차 산업혁명을 선 도하는 중심 국가가 되었다. K-문화가 세계를 선도하는 모습을 보면 새삼 선열들의 희생으로 이룬 대한민국에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매헌 윤봉길 의사. ‘살신성인’, ‘의열 투쟁’, ‘계몽운동가’, ‘독립운동가’, ‘의인’ 등 다양한 호칭으로 평가를 받는다. 지행합일의 농촌계몽운동가였던 의사는 조국이 일제에 의하여 유린되는 것을 목도하고 23살의 나이에 독립을 쟁 취하려는 일념으로 압록강을 건넜다. 그리고 살아서는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셨다. 해방된 조국에 유골이 되어 현해탄을 넘어 돌아오셨다.
저자들은 윤봉길 상하이 의거 90주년을 맞이하여 그분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고자 했다. 중국에 거주하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윤봉길 의사의 중국 궤적이 중심이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시기에 그나마 상 하이 윤봉길 유적지는 찬찬히 다닐 수 있었던 것이 천운이었다. 애석하게도 가볼 수 없는 선천과 신의주는 마음에 품는다. 윤봉길 의사의 흔적을 오롯이 찾아가는 것은 자유와 평화를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대한민국의 과업이라 할 것이다.
이 책은 현장을 사랑하고, 현장이 답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의 경험을 기록한 것이다. 책이나 논문을 들고 찾아가는 현장엔 늘 새로운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중국인의 마음속에 윤봉길 의사를 찾는 데에도 지면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였다. 또한 윤봉길 의사 선양의 측면에서 월진회의 과거와 미래, 윤봉길 정신 계승과 동북아 평 화 등도 기술하였다. ...
이 책을 윤봉길 의사 영전에 올린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윤봉길 의사의 영혼이 몸에 스며드는 듯한 느낌에 휩싸인 때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는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과도한 서술이 있으리라 여겨진다. 독자 여러분들이 너그럽게 보시고, 가감하면서 읽어주시길 바랄 따름이다. 졸저를 쓰는 과정에서 선행 연구자의 자료를 상당 부분 활 용하였다. 앞서 길을 밝혀주신 노고에 감사드리며 행여 잘못이 있으면 여지없이 나무라주시기를 청한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금년은 윤봉길 의사 탄신 114년이자, 상하이 의거 90주년이다. 윤봉길 의사께서 그토록 염원하시었던 대한독립, 광복도 77년이 되었다. 윤봉길 의사의 고귀한 순국으로 우리나라도 근대화, 민주화를 넘어 제4차 산업혁명을 선 도하는 중심 국가가 되었다. K-문화가 세계를 선도하는 모습을 보면 새삼 선열들의 희생으로 이룬 대한민국에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매헌 윤봉길 의사. ‘살신성인’, ‘의열 투쟁’, ‘계몽운동가’, ‘독립운동가’, ‘의인’ 등 다양한 호칭으로 평가를 받는다. 지행합일의 농촌계몽운동가였던 의사는 조국이 일제에 의하여 유린되는 것을 목도하고 23살의 나이에 독립을 쟁 취하려는 일념으로 압록강을 건넜다. 그리고 살아서는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셨다. 해방된 조국에 유골이 되어 현해탄을 넘어 돌아오셨다.
저자들은 윤봉길 상하이 의거 90주년을 맞이하여 그분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고자 했다. 중국에 거주하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윤봉길 의사의 중국 궤적이 중심이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시기에 그나마 상 하이 윤봉길 유적지는 찬찬히 다닐 수 있었던 것이 천운이었다. 애석하게도 가볼 수 없는 선천과 신의주는 마음에 품는다. 윤봉길 의사의 흔적을 오롯이 찾아가는 것은 자유와 평화를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대한민국의 과업이라 할 것이다.
이 책은 현장을 사랑하고, 현장이 답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의 경험을 기록한 것이다. 책이나 논문을 들고 찾아가는 현장엔 늘 새로운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중국인의 마음속에 윤봉길 의사를 찾는 데에도 지면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였다. 또한 윤봉길 의사 선양의 측면에서 월진회의 과거와 미래, 윤봉길 정신 계승과 동북아 평 화 등도 기술하였다. ...
이 책을 윤봉길 의사 영전에 올린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윤봉길 의사의 영혼이 몸에 스며드는 듯한 느낌에 휩싸인 때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는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과도한 서술이 있으리라 여겨진다. 독자 여러분들이 너그럽게 보시고, 가감하면서 읽어주시길 바랄 따름이다. 졸저를 쓰는 과정에서 선행 연구자의 자료를 상당 부분 활 용하였다. 앞서 길을 밝혀주신 노고에 감사드리며 행여 잘못이 있으면 여지없이 나무라주시기를 청한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저자의 말」중에서
출판사 리뷰
1장은 윤봉길의 조부가 덕산에 정착했을 때부터 윤봉길이 중국으로 망명하기 직전까지의 생애를 다루었다. 한학을 배우고 서당을 열어 생계를 잇다가 야학을 세우고 본격적인 농촌계몽운동에 뛰어들던 청년 윤봉길의 삶이 잘 소개되어 있다. 유족의 도움으로 윤봉길 의사의 제적등본이 학계 최초로 공개되는 점은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본명은 봉길이며, 후에 호적 정리하며 항렬을 따 우의禹儀라 하였다. 자字는 용기鏞起이며, 호號는 매헌梅軒이다. (본문)
2장은 1930년 봄 중국 망명길에 올라 칭다오 중원세탁소 점원을 거쳐 1931년 봄 상해에 도착한 이후 약 일 년여 간의 삶의 궤적을 다루고 있다. 경성역에서 기차를 타고 신의주로 가다가 검문에 걸린 이야기, 칭다오의 일본인 세탁소에서 점원으로 일한 이야기, 상하이 도착한 항구 위치, 상하이 임시정부를 찾아 김구를 만난 이야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기 장소, 모자를 만드는 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하던 시기의 모습 등이 비교적 자세하게 담겨 있다.
두 번째 날이었다. 애초에 우리가 이곳을 답사하기로 결정한 것은 木之內 誠이 편저한 책 『상하이 역사 가이드 맵』에서 ‘大韓民國臨時政府所在地[初期]’라는 글자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초기 대한민국임시정부 소재지’라니,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주소나 확인하자고 찾아간 곳이었는데, 그곳엔 떡하니 「대한민국임시정부탄생지구지」 팻말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학계에서는 그간 임시정부가 수립된 1차 임시의정원 회의 개최 장소는 아직 확인이 되지 않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었다. (본문)
3장에서는 1932년 4월 29일 홍커우 공원 의거 전후의 매헌의 발자취를 비교적 촘촘히 따라가 보고 있다. 일본인 밀집 지역이었던 홍커우 지역의 야채 장수에서 한인애국단 전사가 되고, 홍커우 공원(현재의 루쉰 공원) 거사를 성공시킨 후 양수푸 헌병대 군사령부 감옥에 수감되기 까지, 상하이에서 매헌의 삶을 복기해볼 수 있는 곳들을 두루 소개하고 있다. 저자들은 김해산 거주지, 홍커우 마켓, 루신 공원 내에서 의거지로 추정되는 3곳에 대한 증언, 강남기계제조총국, 일본해군특별육전대사령부 구지, 복민의원 등 상하이 곳곳에 산재한 윤봉길 의사 관련 유적지들을 꼼꼼히 답사하고 기록으로 남겼는데, 무엇보다도 그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양수푸 헌병대 감옥, 곧 상하이 일본헌병사령부구지 건물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 점은 상하이에서 매헌을 기리고 선양하는 일의 시야가 더욱 넓어질 필요가 있음을 제기하고 있다.
아무래도 루쉰 공원을 답사하는 필자 일행의 최대 관심은 의거 현장이 어디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정낙 선생은 세 가지 장소를 꼽아 주셨다. (본문)
방삼단지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50여 년 되어 보이는 나무 뒤에 3층짜리 건물이 보인다. 이곳이 일본헌병사령부구지日本憲兵司令部舊地이다. 건물에 특별한 표지가 작게 붙어 있다. ‘특호特?’이다. 특호라는 말은 상하이에서 거의 보기 어렵다. (본문)
또한 저자들은 당시 홍커우 공원에서 지근 거리에 거주하고 있었으면서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윤봉길 의거, 나아가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은 루쉰에 대해서도 비판의 시선을 보낸다.
오늘날 루쉰 공원으로 이름을 바꾼 홍커우 공원 안에는 매헌이 찾은 ‘죽을 자리’와 루쉰의 무덤이 한자리에 있다. 이 아이러니한 현실 앞에서 루쉰의 침묵이 못내 안타깝기만 하다. (본문)
4장은 1932년 11월 일본 오사카로 끌려가 12월 19일 가나자와에서 순국하시고, 해방 후 유해 봉환 및 순국기념비와 암장지적비 건립이 이루어진 사실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특히 윤봉길 의사 순국 및 유해 수습, 봉환 과정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오전 9시 30분경부터 유골을 수습하고 수습한 유골을 알콜로 세척했다. 201조각의 뼈를 수집하였다. 내가 해부학 교실에서 배운 바로는 208조각의 인체의 뼈가 정상이라고 한다. 7조각이 부족했다. 7조각이 미수집 된 것이다. 미수습 된 유골 7개는 손뼈 등이 고문으로 상하여 13년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소나무 뿌리 속에서 없어진 것이다. (본문)
5장은 매헌의 농촌계몽운동과 평화 사상을 이어가고 있는 (사)매헌 윤봉길 월진회의 100년사를 고찰한다. 덕산에서 열리는 매헌 윤봉길 평화축제를 매개로 한국, 일본, 중국, 몽골 등 동북아 각국이 평화교류를 하는 모습을 알리고 있다. 또한 윤봉길 의사와 안중근 의사를 비교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6장은 중국 각지의 항일독립운동 기념관에서 보직을 맡았던 중국인들이 윤봉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글을 모은 것이다.
몽골에서 ‘윤봉길 의사 길’을 명명하는 사업이 추진되기도 했었다. 2008년 월진회가 몽골 아르항가이를 방문하여 동북아 평화를 위해 의거한 윤봉길 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윤봉길로尹奉吉路’ 명명을 요청하자, 아르항가이 의회가 만장일치로 의결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2010년 체체를렉 시가 윤봉길 거리 명명을 의결하여, “대한민국의 민족의 영웅인 윤봉길의 길로 명명한다.”라고 의결한 문서를 월진회가 수령하기도 했다. 체체를렉 시청 앞 800미터가 ‘윤봉길로’로 명명된 것이다. 그러나 아쉬움이 있다. (본문)
중국에서 일본 고관이 사살된 것은 두 번이다. 한 번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주살한 것이며, 두 번째는 윤봉길이 일본 육군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를 사살한 것이다. 두 명 다 조선의 방랑 의사였다. 조선 사람이 중국 땅에서 이런 장거를 한 것은 일본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그들이 중국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항상 생각한다. (본문)
우리는 세계평화와 한·중 우의를 위하여 영웅이신 윤봉길 의사를 영원히 기억하고 기념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본문)
본명은 봉길이며, 후에 호적 정리하며 항렬을 따 우의禹儀라 하였다. 자字는 용기鏞起이며, 호號는 매헌梅軒이다. (본문)
2장은 1930년 봄 중국 망명길에 올라 칭다오 중원세탁소 점원을 거쳐 1931년 봄 상해에 도착한 이후 약 일 년여 간의 삶의 궤적을 다루고 있다. 경성역에서 기차를 타고 신의주로 가다가 검문에 걸린 이야기, 칭다오의 일본인 세탁소에서 점원으로 일한 이야기, 상하이 도착한 항구 위치, 상하이 임시정부를 찾아 김구를 만난 이야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기 장소, 모자를 만드는 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하던 시기의 모습 등이 비교적 자세하게 담겨 있다.
두 번째 날이었다. 애초에 우리가 이곳을 답사하기로 결정한 것은 木之內 誠이 편저한 책 『상하이 역사 가이드 맵』에서 ‘大韓民國臨時政府所在地[初期]’라는 글자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초기 대한민국임시정부 소재지’라니,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주소나 확인하자고 찾아간 곳이었는데, 그곳엔 떡하니 「대한민국임시정부탄생지구지」 팻말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학계에서는 그간 임시정부가 수립된 1차 임시의정원 회의 개최 장소는 아직 확인이 되지 않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었다. (본문)
3장에서는 1932년 4월 29일 홍커우 공원 의거 전후의 매헌의 발자취를 비교적 촘촘히 따라가 보고 있다. 일본인 밀집 지역이었던 홍커우 지역의 야채 장수에서 한인애국단 전사가 되고, 홍커우 공원(현재의 루쉰 공원) 거사를 성공시킨 후 양수푸 헌병대 군사령부 감옥에 수감되기 까지, 상하이에서 매헌의 삶을 복기해볼 수 있는 곳들을 두루 소개하고 있다. 저자들은 김해산 거주지, 홍커우 마켓, 루신 공원 내에서 의거지로 추정되는 3곳에 대한 증언, 강남기계제조총국, 일본해군특별육전대사령부 구지, 복민의원 등 상하이 곳곳에 산재한 윤봉길 의사 관련 유적지들을 꼼꼼히 답사하고 기록으로 남겼는데, 무엇보다도 그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양수푸 헌병대 감옥, 곧 상하이 일본헌병사령부구지 건물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 점은 상하이에서 매헌을 기리고 선양하는 일의 시야가 더욱 넓어질 필요가 있음을 제기하고 있다.
아무래도 루쉰 공원을 답사하는 필자 일행의 최대 관심은 의거 현장이 어디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정낙 선생은 세 가지 장소를 꼽아 주셨다. (본문)
방삼단지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50여 년 되어 보이는 나무 뒤에 3층짜리 건물이 보인다. 이곳이 일본헌병사령부구지日本憲兵司令部舊地이다. 건물에 특별한 표지가 작게 붙어 있다. ‘특호特?’이다. 특호라는 말은 상하이에서 거의 보기 어렵다. (본문)
또한 저자들은 당시 홍커우 공원에서 지근 거리에 거주하고 있었으면서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윤봉길 의거, 나아가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은 루쉰에 대해서도 비판의 시선을 보낸다.
오늘날 루쉰 공원으로 이름을 바꾼 홍커우 공원 안에는 매헌이 찾은 ‘죽을 자리’와 루쉰의 무덤이 한자리에 있다. 이 아이러니한 현실 앞에서 루쉰의 침묵이 못내 안타깝기만 하다. (본문)
4장은 1932년 11월 일본 오사카로 끌려가 12월 19일 가나자와에서 순국하시고, 해방 후 유해 봉환 및 순국기념비와 암장지적비 건립이 이루어진 사실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특히 윤봉길 의사 순국 및 유해 수습, 봉환 과정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오전 9시 30분경부터 유골을 수습하고 수습한 유골을 알콜로 세척했다. 201조각의 뼈를 수집하였다. 내가 해부학 교실에서 배운 바로는 208조각의 인체의 뼈가 정상이라고 한다. 7조각이 부족했다. 7조각이 미수집 된 것이다. 미수습 된 유골 7개는 손뼈 등이 고문으로 상하여 13년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소나무 뿌리 속에서 없어진 것이다. (본문)
5장은 매헌의 농촌계몽운동과 평화 사상을 이어가고 있는 (사)매헌 윤봉길 월진회의 100년사를 고찰한다. 덕산에서 열리는 매헌 윤봉길 평화축제를 매개로 한국, 일본, 중국, 몽골 등 동북아 각국이 평화교류를 하는 모습을 알리고 있다. 또한 윤봉길 의사와 안중근 의사를 비교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6장은 중국 각지의 항일독립운동 기념관에서 보직을 맡았던 중국인들이 윤봉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글을 모은 것이다.
몽골에서 ‘윤봉길 의사 길’을 명명하는 사업이 추진되기도 했었다. 2008년 월진회가 몽골 아르항가이를 방문하여 동북아 평화를 위해 의거한 윤봉길 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윤봉길로尹奉吉路’ 명명을 요청하자, 아르항가이 의회가 만장일치로 의결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2010년 체체를렉 시가 윤봉길 거리 명명을 의결하여, “대한민국의 민족의 영웅인 윤봉길의 길로 명명한다.”라고 의결한 문서를 월진회가 수령하기도 했다. 체체를렉 시청 앞 800미터가 ‘윤봉길로’로 명명된 것이다. 그러나 아쉬움이 있다. (본문)
중국에서 일본 고관이 사살된 것은 두 번이다. 한 번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주살한 것이며, 두 번째는 윤봉길이 일본 육군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를 사살한 것이다. 두 명 다 조선의 방랑 의사였다. 조선 사람이 중국 땅에서 이런 장거를 한 것은 일본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그들이 중국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항상 생각한다. (본문)
우리는 세계평화와 한·중 우의를 위하여 영웅이신 윤봉길 의사를 영원히 기억하고 기념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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