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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여성에게 근대란 어떤 시대였나
그들의 사회적 성취 이면에 가려진 여성으로서의 삶과 의식
한국 근대 사회의 형성과 여성의 변화를 주제로 한 『근대 여성 12인, 나를 말하다』는 근대 개화기에서 일제 강점기 초반에 태어나 1920~3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내고 해방 이후까지 한국 근대 여성사의 한 획을 그은 여성 12인의 개인적 기록(자서전, 전기, 일기, 편지, 인터뷰 등)을 연구 대상으로 한다. 이들은 교육과 종교, 언론, 독립운동, 여성운동, 사회사업과 예술 활동 등 다방면에 걸쳐 사회적 성취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다수 동시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제나 현모양처와 같은 근대적 억압하에서 딸이자 아내, 어머니라는 여성으로서의 삶에 순응 또는 저항함으로써 격동의 근대 한국 사회를 헤쳐 나왔다.
그들의 사회적 성취 이면에 가려진 여성으로서의 삶과 의식
한국 근대 사회의 형성과 여성의 변화를 주제로 한 『근대 여성 12인, 나를 말하다』는 근대 개화기에서 일제 강점기 초반에 태어나 1920~3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내고 해방 이후까지 한국 근대 여성사의 한 획을 그은 여성 12인의 개인적 기록(자서전, 전기, 일기, 편지, 인터뷰 등)을 연구 대상으로 한다. 이들은 교육과 종교, 언론, 독립운동, 여성운동, 사회사업과 예술 활동 등 다방면에 걸쳐 사회적 성취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다수 동시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제나 현모양처와 같은 근대적 억압하에서 딸이자 아내, 어머니라는 여성으로서의 삶에 순응 또는 저항함으로써 격동의 근대 한국 사회를 헤쳐 나왔다.
목차
머리말
제1장 주체로서 여성의 글쓰기
제2장 근대 여성의 시대상
교육 / 근대화와 기독교 / 민족 이산과 초민족주의 / 삶의 전기와 결단
제3장 여성의식과 젠더
제4장 민족과 자아정체성
제5장 사랑과 결혼
제6장 가족과 모성
제7장 맺음말
참고문헌
제1장 주체로서 여성의 글쓰기
제2장 근대 여성의 시대상
교육 / 근대화와 기독교 / 민족 이산과 초민족주의 / 삶의 전기와 결단
제3장 여성의식과 젠더
제4장 민족과 자아정체성
제5장 사랑과 결혼
제6장 가족과 모성
제7장 맺음말
참고문헌
책 속으로
이 책이 전기·자서전을 주요 분석 대상으로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것이 인간과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데 가장 유용한 수단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세계와 자각, 결단, 그리고 행위 등을 드러내며, 이는 인간이 맞닥트린 시대와 사회 조건들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실행, 회고되고 또 미래에 투사된다. 이러한 점에서 그것은 특정 시대의 사회 배경과 현실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접근 수단을 제공한다.
--- p.23 「제1장 “주체로서 여성의 글쓰기」 중에서
모국임에도 불구하고 “적지에 잠입해 들어왔다가 탈출해 나가는 기분”으로 돌아온 정정화의 이 ‘작은 모험’은 “상해 망명 사회에서 제법 화제가 되었고, 나중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듬해인 1921년 늦은 봄 두 번째로 본국에 ‘밀파’된 그녀의 여정은 이후 1931년 초에 이르기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이어졌다.
--- p.89 「제2장 “근대 여성의 시대상”」 중에서
나중에 필여가 필례로, 총각이 은희로, 삼식이 메리로, 그리고 길네가 기옥으로 되었듯이 여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제대로 불리지도 못했다. 신애균의 경우도 어릴 적에 ‘쌍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차호여학교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이름을 얻었다. 이름이 없기는 신애균만이 아니라 다른 여자아이들도 마찬가지여서 남학교에서 와서 가르치던 교사가 신입생들의 이름을 모두 새로 지어주면서 신애균도 오빠들 이름의 끝 자를 따라 ‘아주 쉽게’ 애균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그녀는 “50명가량 학생의 이름은 재미난 것도 있고 우스꽝스러운 것도 많았다”고 회고한다. 어린아이가 보기에도 재미나거나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표현할 만큼 여성의 이름은 하찮게 여겨지고 무시되어 온 것이다.
--- pp.121-122 「제3장 “여성의식과 젠더”」 중에서
최승희는 일제 강점기의 전시 동원과 전후 냉전 체제가 공고화되기 이전의 시점에서 한국과 일본, 중국, 북한의 여러 나라에 걸치는 초국적 생활을 영위했다. 이러한 점에서 그녀는 친일과 항일, 반공과 친공이 교차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예술을 매개로 그러한 구분을 넘나들면서 때로는 그것을 넘어서는 삶을 살았다. 이러한 점에서 최승희는 단순한 민족주의의 차원을 넘어서서 초민족주의 혹은 세계주의를 지향했다고 할 수 있다.
--- p.217 「제4장 “민족과 자아정체성”」 중에서
이들 대부분이 당시의 기준에서는 매우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황애덕이 39살, 장선희가 34살, 김메리가 30살, 복혜숙이 31살 등 30살이 넘은 4명의 사례를 포함하여 평균 결혼 연령은 26.5년으로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당시 평균 결혼 연령인 16.6~20.5살과 비교하더라도 대부분이 매우 늦은 나이에 결혼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긴 교육과정, 그리고 이어지는 직업과 사회 활동에 더하여 신여성 일반이 부딪히고 있었던 결혼할 수 있는 적정 연령 남성 배우자의 결핍 등이 복합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 pp.261-262 「제5장 “사랑과 결혼”」 중에서
물론 식사를 포함한 손님 접대의 일은 신애균의 몫이었다. 어느 날 저녁 집안 형편은 돌보지 않으면서 손님 대접이 소홀하다는 남편의 말에 “돈이나 많았으면 이것저것 차려 놓”았을 것이라는 한탄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애균은 “바람 소리가 나게 볼따귀에 손이 오”는 것을 느꼈다. “천만뜻밖에 따귀를 맞은 아픔”보다도 신애균은 윗방의 “손님이 들었을까 염려되어 입을 꼭 다물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다.
--- pp.276-278 「제6장 “가족과 모성”」 중에서
나아가서 그것은 긍정의 의미에서든 부정의 의미에서든 일종의 아비투스(habitus)로서 서구풍의 가치와 취향과 문화를 체험하는 장이 되었다. 그것은 독특한 향기와 체취, 개방과 즐거움과 같이 막연한 추상성을 띠기도 했지만, 건포도와 사탕, 빵, 커피, 레이션 박스, 파티나 크리스마스와 산타클로스와 같이 물질의 형태로 형상화되어 오랜 동안 기억을 통해 살아남았다. 황애덕과 손인실, 그리고 복혜숙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들에게 미국의 문화와 가치에 대한 몰입은 이들의 정신에 신체화되어 일종의 아비투스로서 일상을 통해 실천되었다.
--- p.23 「제1장 “주체로서 여성의 글쓰기」 중에서
모국임에도 불구하고 “적지에 잠입해 들어왔다가 탈출해 나가는 기분”으로 돌아온 정정화의 이 ‘작은 모험’은 “상해 망명 사회에서 제법 화제가 되었고, 나중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듬해인 1921년 늦은 봄 두 번째로 본국에 ‘밀파’된 그녀의 여정은 이후 1931년 초에 이르기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이어졌다.
--- p.89 「제2장 “근대 여성의 시대상”」 중에서
나중에 필여가 필례로, 총각이 은희로, 삼식이 메리로, 그리고 길네가 기옥으로 되었듯이 여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제대로 불리지도 못했다. 신애균의 경우도 어릴 적에 ‘쌍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차호여학교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이름을 얻었다. 이름이 없기는 신애균만이 아니라 다른 여자아이들도 마찬가지여서 남학교에서 와서 가르치던 교사가 신입생들의 이름을 모두 새로 지어주면서 신애균도 오빠들 이름의 끝 자를 따라 ‘아주 쉽게’ 애균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그녀는 “50명가량 학생의 이름은 재미난 것도 있고 우스꽝스러운 것도 많았다”고 회고한다. 어린아이가 보기에도 재미나거나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표현할 만큼 여성의 이름은 하찮게 여겨지고 무시되어 온 것이다.
--- pp.121-122 「제3장 “여성의식과 젠더”」 중에서
최승희는 일제 강점기의 전시 동원과 전후 냉전 체제가 공고화되기 이전의 시점에서 한국과 일본, 중국, 북한의 여러 나라에 걸치는 초국적 생활을 영위했다. 이러한 점에서 그녀는 친일과 항일, 반공과 친공이 교차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예술을 매개로 그러한 구분을 넘나들면서 때로는 그것을 넘어서는 삶을 살았다. 이러한 점에서 최승희는 단순한 민족주의의 차원을 넘어서서 초민족주의 혹은 세계주의를 지향했다고 할 수 있다.
--- p.217 「제4장 “민족과 자아정체성”」 중에서
이들 대부분이 당시의 기준에서는 매우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황애덕이 39살, 장선희가 34살, 김메리가 30살, 복혜숙이 31살 등 30살이 넘은 4명의 사례를 포함하여 평균 결혼 연령은 26.5년으로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당시 평균 결혼 연령인 16.6~20.5살과 비교하더라도 대부분이 매우 늦은 나이에 결혼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긴 교육과정, 그리고 이어지는 직업과 사회 활동에 더하여 신여성 일반이 부딪히고 있었던 결혼할 수 있는 적정 연령 남성 배우자의 결핍 등이 복합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 pp.261-262 「제5장 “사랑과 결혼”」 중에서
물론 식사를 포함한 손님 접대의 일은 신애균의 몫이었다. 어느 날 저녁 집안 형편은 돌보지 않으면서 손님 대접이 소홀하다는 남편의 말에 “돈이나 많았으면 이것저것 차려 놓”았을 것이라는 한탄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애균은 “바람 소리가 나게 볼따귀에 손이 오”는 것을 느꼈다. “천만뜻밖에 따귀를 맞은 아픔”보다도 신애균은 윗방의 “손님이 들었을까 염려되어 입을 꼭 다물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다.
--- pp.276-278 「제6장 “가족과 모성”」 중에서
나아가서 그것은 긍정의 의미에서든 부정의 의미에서든 일종의 아비투스(habitus)로서 서구풍의 가치와 취향과 문화를 체험하는 장이 되었다. 그것은 독특한 향기와 체취, 개방과 즐거움과 같이 막연한 추상성을 띠기도 했지만, 건포도와 사탕, 빵, 커피, 레이션 박스, 파티나 크리스마스와 산타클로스와 같이 물질의 형태로 형상화되어 오랜 동안 기억을 통해 살아남았다. 황애덕과 손인실, 그리고 복혜숙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들에게 미국의 문화와 가치에 대한 몰입은 이들의 정신에 신체화되어 일종의 아비투스로서 일상을 통해 실천되었다.
--- p.312 「제7장 “맺음말”」 중에서
출판사 리뷰
한국 근대 사회의 형성과 여성의 변화를 주제로 한 이 책은 근대 개화기에서 일제 강점기 초반에 태어나 1920~3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내고 해방 이후까지 한국 근대 여성사의 한 획을 그은 12인의 여성들의 개인적 기록(자서전, 전기, 일기, 편지, 인터뷰 등)을 연구 대상으로 한다. 이들 여성들은 교육과 종교, 언론, 독립운동, 여성운동, 사회사업과 예술 활동 등 다방면에 걸쳐 사회적 성취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다수 동시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제나 현모양처와 같은 근대적 제약하에서 딸이자 아내, 어머니라는 여성으로서의 삶에 순응 또는 저항함으로써 격동의 근대 한국 사회를 헤쳐 나왔다.
여성에게 근대란 어떤 시대였나
그들의 사회적 성취 이면에 가려진 여성으로서의 삶과 의식
근대 여성들은 구한말의 애국계몽기에서 식민 지배가 시작하는 시기에 태어나서 일제 강점기, 이른바 문화정치의 한가운데에 걸쳐 생애의 가장 젊은 시기를 보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신여성을 대표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살아간 삶의 궤적은 한국 근대 여성사의 일정한 단면을 정형화하여 보인다.
이들은 생애 주기에서 교육이 중요한 주제를 차지한다거나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민족 이산과 초민족주의의 일정한 형태에 대한 경험을 했다. 이들 대부분이 생애의 주요한 계기에서 과감하거나 때로는 비장한 결단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주도해 나간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 여성의 삶의 행로에서 주요한 비중을 차지한 두 주제는 젠더와 민족이었다. 여성의 사회화 과정에서 차별의 근대 형식으로서의 젠더와 민족은 여성의 자기의식과 자아정체성이 형성되고 결정화되는 데 주요한 변수로서 작동해 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 대부분이 자유주의 계열에 속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사랑과 성, 그리고 결혼의 주제에서 일정한 공통점을 공유한다. 비록 자신의 의지와 사랑에 따른 결혼을 했다고는 하더라도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들의 인식과 반응은 복합의 성격을 띠었다. 한편으로 이들은 자신의 의사에 따른 연애결혼이라는 근대의 방식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전통에 저항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다수 동시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제나 현모양처와 같은 전통의 일정한 계승자이기도 했다.
말하는 여성, 기록하는 여성
필여, 총각, 삼식, 길네, 갈네로 불린 그녀들의 이야기
서론과 결론에 해당하는 제1장과 제7장을 제외하면 이 책의 구성은 제2장의 시대적 배경을 포함하여 5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이 시대의 배경에 해당하는 내용으로는 교육과 기독교의 문제가 있다. 이 시기 근대 여성 교육의 좌절은 전통의 가부장제에 못지않게 식민지의 수탈과 착취에 따른 가족의 몰락과 가난에 의해 야기되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의 다수가 자유주의 계열에 속한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영향도 이들의 삶에서 중요한 배경 조건으로 작용했다. 근대 문명의 일환으로서 기독교와 선교사는 가장 중요하게는 여성 교육에, 그리고 나아가서 세속의 생활과 서구풍의 가치와 취향과 문화로서 이들의 삶에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책의 주인공의 대부분은 한국과 만주, 중국과 몽골, 일본 등의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 등지의 글로벌한 영역에서 자신들의 삶을 영위했다. 제국주의와 식민지·반식민지 시대의 도래에 의해 조성된 탈영토의 이러한 초국적 상황은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정한 지역 안에서 평생을 보낸 대부분의 중하층 여성이나 이어지는 시대에 오게 될 공간의 제약과는 현저한 대조를 이루었다. 또한 인간이라면 살아가면서 누구나 부딪히는 특정한 결단의 순간에 이들은 식민지와 여성이라는 억압의 교차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방식과 비전으로 자신의 고유한 삶을 선택하고 만들어 나갔다.
제3장에서는 여성의식과 젠더의 쟁점을 다룬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1890년대부터 1910년대에 걸친 30여 년 사이에 태어났다. 남성 중심 가부장의 전통 이데올로기가 강고하게 지배하던 시대였다. 이 시기 여성의 출생은 그 자체로 축복이나 기쁨이라기보다는 그 반대로 표현되는 어떤 것이었으며, 비록 이들 대부분이 한국 여성사에서 일정한 발자취를 남겼다고 하더라도 여성으로서 출생의 차별과 설움의 운명은 이들이라고 해서 비껴가지는 않았다. 식민자/피식민자, 일본인/조선인의 경계를 뛰어넘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배제는 진보/보수, 민족주의/사회주의의 구분에도 무차별로 적용되었으며, 이러한 점에서 이들 여성은 사회의 구속과 억압, 차별과 좌절에 직면해야 했다.
제4장에서는 민족 인식의 다양한 차이와 편차를 고려하여 자아정체성의 유형을 4개의 범주로 분류했다. 신념형과 생활형, 일상형, 그리고 경계형 혹은 세계인의 유형이 그것이다. 여기에서는 특히 첫 번째의 신념형과 마지막의 경계형의 범주에 주목했다. 민족 관념의 형성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공통으로 언급하는 신념형의 여성들은 근대 민족주의에 내재하는 남성중심주의를 배경으로 ‘여자다움’으로서 여성의 고유한 속성에 대한 강조와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계몽의 기획은 찾아볼 수 있을지언정 여성의 자기의식이나 개체로서의 자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나아가서 민족주의에 대한 헌신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서 스스로 표방하는 바로서의 민족에 대한 헌신과 대의에 일정한 균열을 찾아 볼 수 있는 것도 주목된다. 최승희로 대표되는 경계형은 민족 정체성과 관련하여 모순에 찬 복합의 자기의식의 역설을 경험한 사례이다. 친일과 항일, 반공과 친공이 교차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예술을 매개로 그러한 구분을 넘나들면서 때로는 그것을 넘어서는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이 유형은 단순한 민족주의의 차원을 넘어서서 초민족주의 혹은 세계주의를 지향했다.
제5장은 사랑과 결혼의 주제를 다룬다. 대부분이 자유주의 계열에 속하는 이 책의 등장 여성들의 사랑과 결혼에는 일정한 공통점이 있었다. 중매결혼이 시대의 대세였던 것과 달리 이들은 연애결혼을 했다. 아버지가 정한 배우자를 거부하거나 부모의 반대에 맞서서 부모에게 알리지 않는다거나 멀리 떨어진 장소로 도피하여 결혼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의 결혼은 전통의 가부장 지배에 대한 일종의 부정과 비판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가부장제나 현모양처와 같은 전통의 요구를 비판하거나 부정하지는 않았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들의 인식과 반응에는 복합과 때로는 모순으로 불리는 일정한 특징이 있었다. 이들 중의 적지 않은 수는 이른바 미혼의 남녀가 결혼하는 통상의 방식이 아닌 결혼을 택했다. 또한 이들은 당대의 다른 여성에 비해 매우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상대적으로 긴 교육 과정, 직업과 사회 활동에서 나아가서 결혼할 수 있는 적정 연령 남성 배우자의 결핍 등이 복합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제6장은 가족과 모성을 주제로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대부분은 자신의 개성이나 자아의 실현보다는 가족의 전통과 가치를 중시하면서 그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가족의 이념에서는 자유주의에 속하면서도 가족과 모성의 영역에서는 보수주의의 지향을 보이기도 한다. 즉 가족과 모성이라는 주제에 관한 한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보수주의에서 자유주의에 걸친 성향을 보이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직업과 사회 활동과 같은 가족 바깥의 영역에서는 이른바 근대 여성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이들의 삶에서 나라와 민족이라는 공공의 의제가 우세하면서도 가족과 자녀라는 개인의 문제와 부딪히는 경우 후자가 압도하는 양상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나라와 민족, 사회 대 가정과 개인 사이에서 결코 화해할 수 없었던 이들의 마음의 기저에는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짙은 회의와 궁극의 절망, 그리고 때때로 깊숙이 빠져들곤 했던 자기 연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여성에게 근대란 어떤 시대였나
그들의 사회적 성취 이면에 가려진 여성으로서의 삶과 의식
근대 여성들은 구한말의 애국계몽기에서 식민 지배가 시작하는 시기에 태어나서 일제 강점기, 이른바 문화정치의 한가운데에 걸쳐 생애의 가장 젊은 시기를 보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신여성을 대표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살아간 삶의 궤적은 한국 근대 여성사의 일정한 단면을 정형화하여 보인다.
이들은 생애 주기에서 교육이 중요한 주제를 차지한다거나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민족 이산과 초민족주의의 일정한 형태에 대한 경험을 했다. 이들 대부분이 생애의 주요한 계기에서 과감하거나 때로는 비장한 결단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주도해 나간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 여성의 삶의 행로에서 주요한 비중을 차지한 두 주제는 젠더와 민족이었다. 여성의 사회화 과정에서 차별의 근대 형식으로서의 젠더와 민족은 여성의 자기의식과 자아정체성이 형성되고 결정화되는 데 주요한 변수로서 작동해 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 대부분이 자유주의 계열에 속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사랑과 성, 그리고 결혼의 주제에서 일정한 공통점을 공유한다. 비록 자신의 의지와 사랑에 따른 결혼을 했다고는 하더라도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들의 인식과 반응은 복합의 성격을 띠었다. 한편으로 이들은 자신의 의사에 따른 연애결혼이라는 근대의 방식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전통에 저항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다수 동시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제나 현모양처와 같은 전통의 일정한 계승자이기도 했다.
말하는 여성, 기록하는 여성
필여, 총각, 삼식, 길네, 갈네로 불린 그녀들의 이야기
서론과 결론에 해당하는 제1장과 제7장을 제외하면 이 책의 구성은 제2장의 시대적 배경을 포함하여 5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이 시대의 배경에 해당하는 내용으로는 교육과 기독교의 문제가 있다. 이 시기 근대 여성 교육의 좌절은 전통의 가부장제에 못지않게 식민지의 수탈과 착취에 따른 가족의 몰락과 가난에 의해 야기되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의 다수가 자유주의 계열에 속한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영향도 이들의 삶에서 중요한 배경 조건으로 작용했다. 근대 문명의 일환으로서 기독교와 선교사는 가장 중요하게는 여성 교육에, 그리고 나아가서 세속의 생활과 서구풍의 가치와 취향과 문화로서 이들의 삶에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책의 주인공의 대부분은 한국과 만주, 중국과 몽골, 일본 등의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 등지의 글로벌한 영역에서 자신들의 삶을 영위했다. 제국주의와 식민지·반식민지 시대의 도래에 의해 조성된 탈영토의 이러한 초국적 상황은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정한 지역 안에서 평생을 보낸 대부분의 중하층 여성이나 이어지는 시대에 오게 될 공간의 제약과는 현저한 대조를 이루었다. 또한 인간이라면 살아가면서 누구나 부딪히는 특정한 결단의 순간에 이들은 식민지와 여성이라는 억압의 교차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방식과 비전으로 자신의 고유한 삶을 선택하고 만들어 나갔다.
제3장에서는 여성의식과 젠더의 쟁점을 다룬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1890년대부터 1910년대에 걸친 30여 년 사이에 태어났다. 남성 중심 가부장의 전통 이데올로기가 강고하게 지배하던 시대였다. 이 시기 여성의 출생은 그 자체로 축복이나 기쁨이라기보다는 그 반대로 표현되는 어떤 것이었으며, 비록 이들 대부분이 한국 여성사에서 일정한 발자취를 남겼다고 하더라도 여성으로서 출생의 차별과 설움의 운명은 이들이라고 해서 비껴가지는 않았다. 식민자/피식민자, 일본인/조선인의 경계를 뛰어넘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배제는 진보/보수, 민족주의/사회주의의 구분에도 무차별로 적용되었으며, 이러한 점에서 이들 여성은 사회의 구속과 억압, 차별과 좌절에 직면해야 했다.
제4장에서는 민족 인식의 다양한 차이와 편차를 고려하여 자아정체성의 유형을 4개의 범주로 분류했다. 신념형과 생활형, 일상형, 그리고 경계형 혹은 세계인의 유형이 그것이다. 여기에서는 특히 첫 번째의 신념형과 마지막의 경계형의 범주에 주목했다. 민족 관념의 형성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공통으로 언급하는 신념형의 여성들은 근대 민족주의에 내재하는 남성중심주의를 배경으로 ‘여자다움’으로서 여성의 고유한 속성에 대한 강조와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계몽의 기획은 찾아볼 수 있을지언정 여성의 자기의식이나 개체로서의 자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나아가서 민족주의에 대한 헌신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서 스스로 표방하는 바로서의 민족에 대한 헌신과 대의에 일정한 균열을 찾아 볼 수 있는 것도 주목된다. 최승희로 대표되는 경계형은 민족 정체성과 관련하여 모순에 찬 복합의 자기의식의 역설을 경험한 사례이다. 친일과 항일, 반공과 친공이 교차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예술을 매개로 그러한 구분을 넘나들면서 때로는 그것을 넘어서는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이 유형은 단순한 민족주의의 차원을 넘어서서 초민족주의 혹은 세계주의를 지향했다.
제5장은 사랑과 결혼의 주제를 다룬다. 대부분이 자유주의 계열에 속하는 이 책의 등장 여성들의 사랑과 결혼에는 일정한 공통점이 있었다. 중매결혼이 시대의 대세였던 것과 달리 이들은 연애결혼을 했다. 아버지가 정한 배우자를 거부하거나 부모의 반대에 맞서서 부모에게 알리지 않는다거나 멀리 떨어진 장소로 도피하여 결혼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의 결혼은 전통의 가부장 지배에 대한 일종의 부정과 비판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가부장제나 현모양처와 같은 전통의 요구를 비판하거나 부정하지는 않았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들의 인식과 반응에는 복합과 때로는 모순으로 불리는 일정한 특징이 있었다. 이들 중의 적지 않은 수는 이른바 미혼의 남녀가 결혼하는 통상의 방식이 아닌 결혼을 택했다. 또한 이들은 당대의 다른 여성에 비해 매우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상대적으로 긴 교육 과정, 직업과 사회 활동에서 나아가서 결혼할 수 있는 적정 연령 남성 배우자의 결핍 등이 복합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제6장은 가족과 모성을 주제로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대부분은 자신의 개성이나 자아의 실현보다는 가족의 전통과 가치를 중시하면서 그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가족의 이념에서는 자유주의에 속하면서도 가족과 모성의 영역에서는 보수주의의 지향을 보이기도 한다. 즉 가족과 모성이라는 주제에 관한 한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보수주의에서 자유주의에 걸친 성향을 보이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직업과 사회 활동과 같은 가족 바깥의 영역에서는 이른바 근대 여성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이들의 삶에서 나라와 민족이라는 공공의 의제가 우세하면서도 가족과 자녀라는 개인의 문제와 부딪히는 경우 후자가 압도하는 양상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나라와 민족, 사회 대 가정과 개인 사이에서 결코 화해할 수 없었던 이들의 마음의 기저에는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짙은 회의와 궁극의 절망, 그리고 때때로 깊숙이 빠져들곤 했던 자기 연민이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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