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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암 쇼 (서위렴 :1890~1967)
윌리엄 쇼 선교사는 우리나라 군목제도 창설에 기여했다. 그는 제1차세계대전 중 유럽에서 군목으로 종군했으며 1921년 아내 아델린 (1919년 결혼)과 함께 미국감리교회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제에 의해 추방 될 때까지 약 20년동안 선교사역을 감당했다. 그들의 일제치하의 평양에서 교사로 활동하면서, 요한학교를 설립하여 기독교 지도자 양성에 힘을썼다
쇼 선교사는 해방직후 1947년 다시 선교사로 들어와 주한미군 군목으로 활동 하면서 한국군에 군목제도 창설을 이끌었다. 이후에는 대전신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목회자 양성하는데 전력하는 한편 미국의 독지가들이 후원한 자금으로 목회자들의 수련과 휴양공간인 복자관과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외아들 해밀튼 쇼 기념예배당을 학교구내에 설립했다.
그의 아들 밀튼은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군으로 참전했으며, 해방된 우리나라와 국군 해안경비대 창설에 기여했다. 이후 그는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하던중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미군에 자원 입대하여 서울 녹번동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했다. 해밀튼 쇼의 아내 주아니타(서화순)도 1956년부터 10여 년 동안 선교사로 일했다.
양화진에는 윌리엄쇼 (1890~1967) - 아델린쇼 선교사 (1895~1971)부부와 한국전쟁당시 전사한 외아들 해밀턴 쇼 (1922~1950)가 안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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