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동양철학의 이해 (독서>책소개)/2.한국철학사상

성학십도 : 모든 사람이 자신 안에 있는 하늘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실현 하는가를 실현하는가를 설명하는 책이다.

동방박사님 2021. 12. 22. 08:35
728x90

책소개

조선시대 대표 유학자 퇴계 이황
그 평생의 삶과 학문이 응축된 대표작 『성학십도』


『성학십도』는 1568년, 68세의 노학자 퇴계가 17세의 소년왕 선조에게 바친 소책자이다. 퇴계는 무진육조소 3조에서 ‘성학을 두터이 하여 정치의 근본을 세우라’고 하여 성학이 정치의 근본임을 설파하고, 역대의 현인들이 쓴 글과 도표 가운데서 ‘도에 들어가는 문’과 ‘덕을 세우는 기초’가 될 만한 것을 정선하여 『성학십도』를 썼다.

퇴계는 이 책자를 올리며 ‘내가 나라에 보답한 것은 이 도뿐이다’라고 했다. 선조와 마지막 만남의 자리에서도 ‘소신이 충성하기를 바라고 가르침을 드리고자 하는 정성에서 바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정성을 다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이 책을 지어 바친 것이다. 작은 책자이지만 퇴계의 평생의 삶과 학문의 정수가 응축되어 있다.

목차

『성학십도』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성학십도』를 개정판을 펴내며
『성학십도』를 펴내며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올리는 차(箚)와 도(圖)

제 1 태극도 /「태극도설」(太極圖說)
제 2 서명도 /「서명」(西銘)
제 3 소학도 /「소학제사」(小學題辭)
제 4 대학도 /「대학경문」(大學經文)
제 5 백록동규도 /「동규후서」(洞規後敍)
제 6 심통성정도 /「심통성정도설」(心統性情圖說)
제 7 인설도 /「인설」(仁說)
제 8 심학도 / 심학도설(心學圖說)
제 9 경재잠도 / 「경재잠」(敬齋箴)
제10 숙흥야매잠도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논문] 이퇴계의『성학십도』연구
[원문]『聖學十圖』
 

저자 소개

저 : 퇴계 이황 (退溪 李滉 (1501-1570))
 
등으로 합격, 32세에 문과 초시 2등으로 합격하고 다음 해인 33세(1533)에 반궁(泮宮)에 유학하며 경상도 향시에 합격한다. 34세에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와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36세에 선무랑과 성균관전적을 거쳐 9월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다. 37세에 선교랑, 승훈랑, 승의랑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 박씨의 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난다.

39세에 3년 상을 마치고 홍문관부수찬을 거쳐 수찬지제교로 승진해 40세에는 사간원정언, 승문원교검,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교리에 임명되었고 42세에는 홍문관부교리, 충청도·강원도어사로 순찰했으나, 43세에 병을 이유로 관직을 사임했다. 이후 종친부전첨, 세자시강원필선, 사간원사간, 성균관사성 등에 여러 차례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44세 10월에 상경한 후 중종이 승하하자 부고와 시장을 집필했다. 47세 7월에 안동부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임했다. 홍문관응교에 제수되어 상경해 사퇴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48세에 외직을 자청해 단양군수로 취임했다. 10월에 풍기군수로 전임했다. 49세에 소수 서원을 개칭해 사액 서원의 효시가 되었다. 9월에 신병으로 사임해 귀향했다. 그러나 신병을 이유로 세 번이나 사직원을 제출한 후 회답을 기다리지 않고 퇴계로 돌아와 임소를 이탈했다는 죄목으로 직첩을 박탈당했다. 50세에 예안 하명동에 한서암(寒棲庵)을 짓고 학문에 전념한다. 53세 4월에 성균관대사성에 제수되었으나 사퇴한다.

54세에 형조·병조참의,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고 경복궁에 새로 지은 여러 전각의 편액을 썼으나 이듬해 병으로 모든 관직을 사임하고 귀향한다. 56세에 도산에서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편찬 완성하고 다음 해인 57세에 도산 서당을 지을 터를 마련하고 『계몽전의(啓蒙傳疑)』를 저술했다. 58세에 대사성에 임명되자 사직을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하고 공조참판에 임명되었다. 59세에 휴가를 얻어 귀향한 후 관직을 사임하고 『송계원명리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을 저술했다.

60세에 고봉 기대승(奇大升)과 편지로 사단칠정론(四端七情)을 변론했다. 도산서당(陶山書院)이 완공된다. 61세에 「도산기(陶山記)」를 저술했다. 64세 2월에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의 발문을 썼으며 65세에 『경현록(景賢錄)』, 『역학계몽(易學啓蒙)』, 『명당실어(名堂室語)』 등을 저술했다. 66세에 공조판서와 홍문관·예문관대제학에 제수되었고, 다음 해인 67세에 다시 예조판서, 경연춘추관사로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8월에 귀향, 역동 서원(易東書院)을 새로 건축했다.

68세에 선조 원년 의정부우찬성과 판중추부사에 제수되자 6월에 소명을 어기지 못해 상경해 양관의 대제학을 겸임했다. 재임 중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저술했다. 69세(1569)에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귀향했다. 70세 7월 역동 서원에 가서 『심경(心經)』을 강의하고, 8월 역동 서원의 낙성식에 참여했다. 11월 격물치지설(格物致知說)을 개정하다 병이 심상치 않자 12월 봉화현감으로 재직 중이던 큰아들을 사직, 귀가하게 해 장례 준비를 갖추도록 했다.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는 명문(銘文)과 자명(自銘)을 몸소 짓고, 임종 직적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과 함께 한서암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영의정에 추서되었다. 저서로는 『계몽전의』, 『송계원명이학통론』, 『퇴계집』 등이 있다.

역 : 이광호 (李光虎)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서양과 동양의 철학을 익혔다. 민족문화추진회 부설 국역연수원과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문과 유학의 경전을 익혔다. 한림대학교와 연세대학교 철학과에서 유학과 동양철학을 가르쳤다. 고전을 익히며 인격을 완성하는 가운데 진리를 체험하는 유학을,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문학으로 정립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근사록집해』, 『국역 심경 주해 총람』, 『성학십도』, 『이자수어』 등을 번역하고,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를 편역하여 출간했다. 한국동양철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2008년 주자학상과 2013년 퇴계학 학술상을 수상했다. 현재 국제퇴계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책 속으로

후세의 임금들은 천명을 받아 천위(天位)에 오른 만큼 그 책임이 지극히 무겁고 지극히 큼이 어느 정도이겠습니까마는, 이처럼 엄하게 자신을 다스리는 도구는 하나도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 왕공(王公)이라는 높은 자리, 억조 백성들이 떠받드는 자리에서 편안히 스스로 성인인 체하고 오만하게 스스로 방종하니, 마침내 어지럽게 되어 멸망하게 되는 것 또한 어찌 이상하게 여길 만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런 때에 신하된 사람으로서 임금을 도에 맞도록 인도하려는 자는 진실로 그 마음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 p. 29

오직 옛 현인·군자가 성학을 밝히고 심법을 얻어서 그림을 그리고 도설을 지어 도에 들어가는 문과 덕을 쌓는 기초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것이 세상에 전해져 해와 별같이 환하므로, 감히 이것을 임금님께 올려 옛 제왕들의 공송(工誦)·기명(器銘)의 유의에 대신하고저 하오니, 혹 옛날의 중요한 것을 빌려 장래에 유익함이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 p.31

옛날에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며, 그 집을 가지런히 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몸을 닦고, 그 몸을 닦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며,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뜻을 진실되게 하고, 그 뜻을 진실되게 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앎을 극진하게 하였으니, 앎을 극진하게 함은 사물을 궁리함에 달려 있다.
--- p.74

닭이 울 때 깨어나면 생각이 차츰 달리기 시작하니, 어찌 그 사이에 마음을 고요히 하여 생각을 정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혹 지나간 허물을 살피고 혹 새로 얻은 것의 실마리를 찾으면, 순서와 조리를 묵묵한 가운데 또렷하게 알게 될 것이다. 근본[마음]이 이미 확립되거든 이른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 빗고 의관을 차리고 단정히 앉아 몸을 단속하여라. 이 마음을 수습하면 떠오르는 태양처럼 환하고, 몸을 엄숙하게 정돈하여 가지런하게 하면 마음이 텅 비고 밝고 고요하여 전일하게 될 것이다.
--- p.119

유학에서는 성학을 통하여 진리를 인식하고 실천할 수 있는 자가 행하는 성인의 정치를 이상적인 정치라고 생각한다. 퇴계는 『성학십도』를 통하여 선조에게 유학의 이상을 펼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유학의 진리관과 정치관을 억만세에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 p.132

과학이 전통적 동양철학, 특히 수기의 학인 성학과의 만남을 통하여 존재는 내면과 외면으로부터 동시에 이해될 수 있다고 믿는다. 존재의 온전한 모습이 이해됨과 동시에 현대문화는 새로운 장을 열게 될 것이다. 『성학십도』는 존재를 내면으로부터 이해하려는 사람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p.173
 

출판사 리뷰

모든 사람이 자신 안에 있는 하늘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실현하는가를 설명하는 책


『성학십도』에서는 하늘을 태극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하늘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때 어느 곳에도 없는 곳 없는 때가 없다고 한다. 이 하늘은 모든 생명의 주인이며 가장 가깝게 나의 주인이다. 모든 생명은 하늘을 동심원으로 하는 하늘 가족이라고 한다.

퇴계 이황은 유학적 진리관과 학문관의 정립에 평생의 삶을 바쳤다. 이는 과학과는 구별되는 도학적 진리관으로서 인문학적 진리관에 가까우므로, 인문학적 진리관의 정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퇴계의 학문에 반드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유학을 이해하게 되고, 유학을 통하여 인간과 자연을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