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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 관계는 늘 함께 하는 것
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이 늘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어느 한 쪽의 노력이나 인내만으로는 결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친구 사이도 그렇고 부부나 부모자식 사이도 그렇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제관계라고 다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와 가장 가까운 나라인 일본과의 관계는 어떨까? 하루에 2만 명 이상의 양국 국민들이 왕래하며 민간교류가 활발하지만, 정치나 역사 면에서는 감정적 대결이 일상화되었다.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위안부 문제에 이어 북핵 문제가 모두 양국의 첨예한 관심사이자 인식이 완전히 갈리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로서는 당연히 양보할 수 없는 문제들이고, 일본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결국 두 나라는 친구가 아닌 원수가 될 수밖에 없고, 마침내는 전쟁도 불사해야 할까? 모든 문제의 원인을 일본 탓으로 돌린다고 하더라도 이런 결론에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이미 전쟁을 치러본 경험이 있고, 그 결과가 어떤 것이었는지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어떤 경우든 전쟁과 대결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을 선택해야 한다. 한일관계를 둘러싼 이런 근본적인 고민은 오늘날의 정치인이나 학자들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500년 전의 우리 조상들과 일본인 조상들도 똑같은 문제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런 고민과 숙고의 결과로, 혹은 문제해결을 위한 하나의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조선통신사’다
◇ 조선통신사는 믿음과 소통의 상징
500년 전 조선과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지식인 집단이 생각하기에 두 나라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믿음과 소통의 부족’이었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같은 전쟁을 일으키는 일본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일본도 중국과 한통속이 되어 일본을 고립시키고 왕따시키는 조선을 자기네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양국 간에 신뢰가 부족해지면 일본은 어김없이 조선을 침략했고, 그 참화는 조선과 일본 모두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이처럼 한일 양국의 지도자와 국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서로에 대한 믿음 곧 신뢰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두 나라는 신뢰 회복을 기치로 내걸로 서로 소통을 시작했다. 왕래와 소통의 최정점이자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행사가 조선통신사의 일본 방문이었다. 만남과 교류의 가장 큰 목표는 역시 신뢰 회복이었다. 그래서 사절단의 명칭도 ‘믿음을 통한다’는 의미의 통신사였다. 조선통신사에 의한 에도에서의 국서전명식은 조선국왕과 막부쇼군이 대면할 수 없던 시대에 직접 소통하는 방식이었다. 요즈음의 정상 외교나 다름없는 시스템이었다. 조선통신사는 실제로 많은 성과를 남겼다. 왜구에 의한 일방적인 약탈을 교역과 공존 共存 의 관계로 전환시켰고, 임진왜란이라는 침략과 전쟁을 평화平和 와 공생共生의 관계로 만들어 갔다. 양국의 노력으로 통신이 활발할 때는 약탈이나 전쟁은 없었다. 반대로 통신이 끊어지면 대결과 전쟁이 다시 일어났다. 구한말 일제의 조선침략과 병탄도 한두가지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통신과 소통의 부족도 한 요인이 되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 외교는 실리와 명분
필자는 지난 30여 년간 대학에서 한일 양국의 관계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쳐왔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면, 관계가 나쁜 때일수록 더 많은 교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이견이 생기고 감정적 대립이 고조된다고 해서 관계를 단절하고 교류를 줄여서는 안 된다. 지난 2015년은 한일이 국교를 정상화한 지 꼭 50년이 되는 해였다. 그런데 양국은 정상회담 한 번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연말에 느닷없이 위안부 합의라는 것을 내놓았다. 충분한 협의(통신)를 거치지 못한 이 합의에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이후 한일 양국의 관계는 진전이 아니라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관계가 나쁜 때일수록 더 많이 교류해야 한다고 믿는 필자에게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항해와 어떤 문제에 봉착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도 기꺼이 수천 리 통신사의 길을 나섰던 옛 선조들처럼, 오늘의 우리도 신뢰의 회복과 더 많은 통신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일본에 대한 무시와 감정적 배척은 일시적인 만족감을 줄지 모르지만 결코 온당한 길은 아니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훨씬 많을 수 있고, 가장 가까운 이웃을 적으로 돌리는 어리석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한미일과 북중러가 난마처럼 얽힌 동아시아의 외교무대에서 일본과의 관계를 단절한다거나 대결 국면으로 만든다는 상상 자체가 어불성설이기도 하다. 좋든 싫든, 밉든 곱든, 일본은 이미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라이다. 물론 공존을 위해선 역사의식의 공유가 전제되어야 하고 미래에 대한 공생의 비전을 가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과거사의 오해나 왜곡에 대해 제대로 대응해야 함은 당연하다.
◇ UNESCO 세계기록유산의 의미
2017년 10월, 조선통신사 기록물 333점이 ‘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물은 ‘외교·여정·문화교류 기록’으로 구성된 종합자산이다. 조선통신사의 왕래로 두 나라는 증오와 오해를 풀고 상호 이해의 폭를 넓혔다. 외교뿐만 아니라 학술·예술·산업·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교류의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는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물들이 한일 두 나라 사이의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획득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물들은 양국의 역사를 통해 증명된 평화적 외교 노력의 살아 있는 증거물이고, 당대의 동아시아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의 수준을 보여주는 지적 유산이다. 나아가 항구적인 평화공존 체제를 구축하고 이문화異文化 존중을 지향하는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유산이다. 한일 양국의 과거 기록을 넘어 인류 전체의 미래를 위한 가치도 함께 지니고 있다는 얘기다. 필자가 한반도와 일본열도에 남겨진 조선통신사의 옛길을 반복해서걷고 또 걷는 동안에 깨달은 것도 같은 결론이다. 이 책은 그런 지혜와 선인들의 충고를 오늘의 시점에서 어떻게 읽고 받아들이고 해석하여 미래를 위한 자양분으로 삼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집필한 것이다.
◇ 독자들에게
나의 조선통신사 사행로 답사에는 그때그때마다 많은 동료 교수와 제자들이 함께 참여했다. 대학생들을 단체로 인솔하기도 했고, 중고교 역사 선생님들과 팀을 짜서 떠나기도 했으며, 때로는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답사에서 항상 함께했던 인물이 한 사람 있다. 바로 『해유록』을 남긴 신유한이다. 조선통신사의 사행로를 답사할 때마다 나는 그의 『해유록』을 등산화보다 먼저 챙겼다. 그 책을 읽고 또 읽으며, 그가 본 당시의 사행로를 재구성해 그려보고, 그가 느낀 감정과 오늘 내가 느끼는 감정 사이의 간극을 메워보려 노력했다. 그의 고민과 나의 고민을 겹쳐보고, 그의 조언을 오늘의 상황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곱씹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300년 전의 답사기와 오늘날의 답사기를 혼성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신유한의 18세기 답사기와 나 자신의 21세기 답사기를 한 책에 담아낸 셈이다. 독자들이 두 답사기의 장점들을 두루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통신’과 ‘소통’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고, 또 한일 두 나라의 올바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 설정에 조금이라도 기여가 된다면 이보다 큰 기쁨이 없겠다.
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이 늘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어느 한 쪽의 노력이나 인내만으로는 결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친구 사이도 그렇고 부부나 부모자식 사이도 그렇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제관계라고 다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와 가장 가까운 나라인 일본과의 관계는 어떨까? 하루에 2만 명 이상의 양국 국민들이 왕래하며 민간교류가 활발하지만, 정치나 역사 면에서는 감정적 대결이 일상화되었다.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위안부 문제에 이어 북핵 문제가 모두 양국의 첨예한 관심사이자 인식이 완전히 갈리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로서는 당연히 양보할 수 없는 문제들이고, 일본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결국 두 나라는 친구가 아닌 원수가 될 수밖에 없고, 마침내는 전쟁도 불사해야 할까? 모든 문제의 원인을 일본 탓으로 돌린다고 하더라도 이런 결론에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이미 전쟁을 치러본 경험이 있고, 그 결과가 어떤 것이었는지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어떤 경우든 전쟁과 대결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을 선택해야 한다. 한일관계를 둘러싼 이런 근본적인 고민은 오늘날의 정치인이나 학자들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500년 전의 우리 조상들과 일본인 조상들도 똑같은 문제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런 고민과 숙고의 결과로, 혹은 문제해결을 위한 하나의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조선통신사’다
◇ 조선통신사는 믿음과 소통의 상징
500년 전 조선과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지식인 집단이 생각하기에 두 나라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믿음과 소통의 부족’이었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같은 전쟁을 일으키는 일본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일본도 중국과 한통속이 되어 일본을 고립시키고 왕따시키는 조선을 자기네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양국 간에 신뢰가 부족해지면 일본은 어김없이 조선을 침략했고, 그 참화는 조선과 일본 모두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이처럼 한일 양국의 지도자와 국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서로에 대한 믿음 곧 신뢰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두 나라는 신뢰 회복을 기치로 내걸로 서로 소통을 시작했다. 왕래와 소통의 최정점이자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행사가 조선통신사의 일본 방문이었다. 만남과 교류의 가장 큰 목표는 역시 신뢰 회복이었다. 그래서 사절단의 명칭도 ‘믿음을 통한다’는 의미의 통신사였다. 조선통신사에 의한 에도에서의 국서전명식은 조선국왕과 막부쇼군이 대면할 수 없던 시대에 직접 소통하는 방식이었다. 요즈음의 정상 외교나 다름없는 시스템이었다. 조선통신사는 실제로 많은 성과를 남겼다. 왜구에 의한 일방적인 약탈을 교역과 공존 共存 의 관계로 전환시켰고, 임진왜란이라는 침략과 전쟁을 평화平和 와 공생共生의 관계로 만들어 갔다. 양국의 노력으로 통신이 활발할 때는 약탈이나 전쟁은 없었다. 반대로 통신이 끊어지면 대결과 전쟁이 다시 일어났다. 구한말 일제의 조선침략과 병탄도 한두가지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통신과 소통의 부족도 한 요인이 되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 외교는 실리와 명분
필자는 지난 30여 년간 대학에서 한일 양국의 관계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쳐왔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면, 관계가 나쁜 때일수록 더 많은 교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이견이 생기고 감정적 대립이 고조된다고 해서 관계를 단절하고 교류를 줄여서는 안 된다. 지난 2015년은 한일이 국교를 정상화한 지 꼭 50년이 되는 해였다. 그런데 양국은 정상회담 한 번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연말에 느닷없이 위안부 합의라는 것을 내놓았다. 충분한 협의(통신)를 거치지 못한 이 합의에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이후 한일 양국의 관계는 진전이 아니라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관계가 나쁜 때일수록 더 많이 교류해야 한다고 믿는 필자에게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항해와 어떤 문제에 봉착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도 기꺼이 수천 리 통신사의 길을 나섰던 옛 선조들처럼, 오늘의 우리도 신뢰의 회복과 더 많은 통신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일본에 대한 무시와 감정적 배척은 일시적인 만족감을 줄지 모르지만 결코 온당한 길은 아니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훨씬 많을 수 있고, 가장 가까운 이웃을 적으로 돌리는 어리석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한미일과 북중러가 난마처럼 얽힌 동아시아의 외교무대에서 일본과의 관계를 단절한다거나 대결 국면으로 만든다는 상상 자체가 어불성설이기도 하다. 좋든 싫든, 밉든 곱든, 일본은 이미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라이다. 물론 공존을 위해선 역사의식의 공유가 전제되어야 하고 미래에 대한 공생의 비전을 가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과거사의 오해나 왜곡에 대해 제대로 대응해야 함은 당연하다.
◇ UNESCO 세계기록유산의 의미
2017년 10월, 조선통신사 기록물 333점이 ‘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물은 ‘외교·여정·문화교류 기록’으로 구성된 종합자산이다. 조선통신사의 왕래로 두 나라는 증오와 오해를 풀고 상호 이해의 폭를 넓혔다. 외교뿐만 아니라 학술·예술·산업·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교류의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는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물들이 한일 두 나라 사이의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획득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물들은 양국의 역사를 통해 증명된 평화적 외교 노력의 살아 있는 증거물이고, 당대의 동아시아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의 수준을 보여주는 지적 유산이다. 나아가 항구적인 평화공존 체제를 구축하고 이문화異文化 존중을 지향하는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유산이다. 한일 양국의 과거 기록을 넘어 인류 전체의 미래를 위한 가치도 함께 지니고 있다는 얘기다. 필자가 한반도와 일본열도에 남겨진 조선통신사의 옛길을 반복해서걷고 또 걷는 동안에 깨달은 것도 같은 결론이다. 이 책은 그런 지혜와 선인들의 충고를 오늘의 시점에서 어떻게 읽고 받아들이고 해석하여 미래를 위한 자양분으로 삼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집필한 것이다.
◇ 독자들에게
나의 조선통신사 사행로 답사에는 그때그때마다 많은 동료 교수와 제자들이 함께 참여했다. 대학생들을 단체로 인솔하기도 했고, 중고교 역사 선생님들과 팀을 짜서 떠나기도 했으며, 때로는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답사에서 항상 함께했던 인물이 한 사람 있다. 바로 『해유록』을 남긴 신유한이다. 조선통신사의 사행로를 답사할 때마다 나는 그의 『해유록』을 등산화보다 먼저 챙겼다. 그 책을 읽고 또 읽으며, 그가 본 당시의 사행로를 재구성해 그려보고, 그가 느낀 감정과 오늘 내가 느끼는 감정 사이의 간극을 메워보려 노력했다. 그의 고민과 나의 고민을 겹쳐보고, 그의 조언을 오늘의 상황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곱씹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300년 전의 답사기와 오늘날의 답사기를 혼성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신유한의 18세기 답사기와 나 자신의 21세기 답사기를 한 책에 담아낸 셈이다. 독자들이 두 답사기의 장점들을 두루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통신’과 ‘소통’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고, 또 한일 두 나라의 올바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 설정에 조금이라도 기여가 된다면 이보다 큰 기쁨이 없겠다.
목차
책을 내면서
제1부 조선, 일본과 통신을 시작하다
1. 조선통신사는 왜 일본에 갔나?
2. 조선통신사의 구성과 노정
제2부 조선통신사의 옛길에서 미래를 읽다
1. 어명을 받들고 길을 떠나다 (한양 ~ 영천 ~ 부산)
창덕궁 | 통신사강정절목 | 전별연 | 영천에서의 예행연습 | 영가대의 해신제
제1부 조선, 일본과 통신을 시작하다
1. 조선통신사는 왜 일본에 갔나?
2. 조선통신사의 구성과 노정
제2부 조선통신사의 옛길에서 미래를 읽다
1. 어명을 받들고 길을 떠나다 (한양 ~ 영천 ~ 부산)
창덕궁 | 통신사강정절목 | 전별연 | 영천에서의 예행연습 | 영가대의 해신제
2. 불구대천의 원수 나라로 (쓰시마 ~ 이키 ~ 아이노시마)
쓰시마, 왜구의 소굴에 들어가다 | 통교규정을 만들다 | 사스나, 일본 땅을 밟다 | 와니우라의 한국전망대 | 역관사를 파견하다 | 미네, 문화의 십자로 | 엔츠지의 조선종, 아사달과 비류 | 이예의 기념비 | 아소만과 쓰시마의 조선 영토론 | 만제키바시와 러일전쟁 | 쓰시마 도주가 살던 이즈하라 | 오후나에 선착장과 세이잔지 | 국서 위조와 이데이안윤번제 | 아메노모리 호슈와 신유한의 기싸움 | 반쇼인 | 슬픈 덕혜옹주 | 쓰시마 종가문서 | 쵸쥬인 | 슈젠지와 면암 최익현 |“NO KOREA!” | 이키 ~ 아이노시마
3. 전쟁과 평화 (후쿠오카 ~ 아리타 ~ 시모노세키)
중계무역지 후쿠오카 | 소바와 만두 발상지 | 조선 침략기지, 나고야성 | 끌려간 피로인들 | 도자기의 신, 이삼평 | 통신사 상륙지 아카마신궁, 쇼군시대의 개막 | 시모노세키 조약, 조선 침략의 서막
4. 여기가 별천지인가? (히로시마 ~ 시모카마가리 ~ 토모노우라)
원자폭탄과 히로시마 | 시모카마카리의 통신사 접대 | 토모노우라, 일동제일경승 대조루 | 호메이슈
5. 인문학을 소통하다 (오사카)
오사카의 요도가와 | 니시혼간지의 필담창화 | 화원들의 교류 | 오사카성, 히데요시의 몰락 | 봄이 오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 | 최천종 살해사건 | 오사카에 남은 사람들
6. 천황은 위황이다 (교토 ~ 히코네)
후시미성 | 쇼코쿠지와 지쇼인 | 고려미술관 |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귀무덤, 목 대신 귀를 | 천황과 쇼군 | 오미하치만 수로 | 비와코 | 조선인가도 | 소안지의 검은문
7. 진실을 가지고 교제하는 것 (사가 ~ 오가키 ~ 이치노미아 ~ 시즈오카)
아메노모리 호슈 기념관 | 오가키의 『상한의담』 | 기소가와 강의 배다리 | 야망의 세 인물 | 순푸성 | 구노산 도쇼구 | 호타이지 | 통신사 박물관 세이켄지
8. 쇼군의 성, 에도 (에도 ~ 니코)
하코네 세키쇼 | 에도성 | 국서전명식 | 통신사 행렬 | 마상재 공연 | 니코 도쇼구의 유람
9. 잘 가시오, 잘 가시오 (귀국길)
이별 | 금하를 강에 버리고 | 대불사의 연회 거부 | 조선시대의 한류 | 아침까지 단잠을 자다 | 이별의 필담창화 | 흑사탕 한 바구니 | 아듀, 쓰시마 그리고 부산 | 복명, 원컨대 국가에서 일본과의 화친을 잃지
마소서
제3부 부록
1. 1719년 제술관 신유한의 일정표
2. 대학생 신 조선통신사 일정표(9박 10일)
3. 현존하는 조선통신사 사행록
4. 조선통신사 UNESCO 세계기록유산 등재 목록
5. 참고문헌
마소서
제3부 부록
1. 1719년 제술관 신유한의 일정표
2. 대학생 신 조선통신사 일정표(9박 10일)
3. 현존하는 조선통신사 사행록
4. 조선통신사 UNESCO 세계기록유산 등재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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