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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인류 절멸 위기에 놓인 아찔했던 순간, 공포와 속임수로 점철된 '냉전의 실체'
냉전과 6ㆍ25 이후 세대를 위한 필독서
조지 오웰이 『1984』를 쓰던 시점에서 시작하여 냉전에 관한 역사와 세계 현대사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인류 절멸 위기에 놓인 아찔했던 순간, 공포와 속임수로 점철된 '냉전의 실체'가 무엇인지, 냉전사의 수장이라는 평을 받는 저자의 글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연대기 서술보다는 주제별로 접근하여 냉전의 역사를 장편소설처럼 그려낸다
정치적 의도는 목적이고, 전쟁은 그것을 달성하는 수단이라는 전쟁론의 클라우제비츠의 말처럼 전쟁은 정치적 의도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20세기의 중반의 전쟁이 냉전으로 끝난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전면전이 아니라 냉전이라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그나마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으로, 역사 현장과 비사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20세기를 규정지은 냉전 시대의 극한 대립에 대해서 그 역사와 논리를 살펴보고 있으며, 위기 국면에서 이루어졌던 회담과 속임수, 독재자와 권력투쟁, 그리고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냉전과 6ㆍ25 이후 세대를 위한 필독서
조지 오웰이 『1984』를 쓰던 시점에서 시작하여 냉전에 관한 역사와 세계 현대사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인류 절멸 위기에 놓인 아찔했던 순간, 공포와 속임수로 점철된 '냉전의 실체'가 무엇인지, 냉전사의 수장이라는 평을 받는 저자의 글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연대기 서술보다는 주제별로 접근하여 냉전의 역사를 장편소설처럼 그려낸다
정치적 의도는 목적이고, 전쟁은 그것을 달성하는 수단이라는 전쟁론의 클라우제비츠의 말처럼 전쟁은 정치적 의도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20세기의 중반의 전쟁이 냉전으로 끝난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전면전이 아니라 냉전이라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그나마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으로, 역사 현장과 비사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20세기를 규정지은 냉전 시대의 극한 대립에 대해서 그 역사와 논리를 살펴보고 있으며, 위기 국면에서 이루어졌던 회담과 속임수, 독재자와 권력투쟁, 그리고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목차
서문
프롤로그 │ 미래를 내다보다
1장 되살아나는 공포
2장 죽음의 배와 삶의 배
3장 통제 vs 자발성
4장 자율성의 등장
5장 형평 원칙의 회복
6장 등장 배우들
에필로그 │ 지난날을 되돌아보다
옮긴이의 글 │ 긴 평화의 시대, 냉전의 생과 사
사진과 지도 출처
프롤로그 │ 미래를 내다보다
1장 되살아나는 공포
2장 죽음의 배와 삶의 배
3장 통제 vs 자발성
4장 자율성의 등장
5장 형평 원칙의 회복
6장 등장 배우들
에필로그 │ 지난날을 되돌아보다
옮긴이의 글 │ 긴 평화의 시대, 냉전의 생과 사
사진과 지도 출처
출판사 리뷰
인류 절멸 위기에 놓인 아찔했던 순간, 공포와 속임수로 점철된 ‘냉전의 실체’
냉전과 6ㆍ25 이후 세대를 위한 필독서
“전쟁은 단지 그 수단만 다를 뿐 정치 활동의 연장이다. ……정치적 의도는 목적이고, 전쟁은 그것을 달성하는 수단이다. 수단은 결코 목적과 분리된 것으로 볼 수 없다.”- 클라우제비츠
이 책은 말 그대로 냉전에 관한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되 간결하고 읽기 쉽게 틀을 짠 대중서다. 사건을 (‘1945년부터 1991년까지’라는 식으로) 시대순으로 엮은 전형적인 역사서가 아닌 만큼 단순한 연대기 서술은 자제하고 주제별로 접근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 루이스 개디스(John Lewis Gaddis)의 뷰파인더는 동일 사건을 겹쳐서 바라보기도 하고 단번에 다른 공간을 넘나들기도 한다.
조지 오웰이 ≪1984≫를 쓰던 시점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마치 장편소설처럼 전개되는데, 저자가 냉전을 바라보는 시각은 긍정적이다. 전쟁은 정치적 의도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그 목적이 국가의 안보에 있다면 열전보다는 제한전(limited war)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전면전이 아니라 냉전이라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그나마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역사가의 목소리와 함께 역사 현장이 생생하게 전달되며 비사를 가감 없이 첨가함으로써 각 인물들의 성격 묘사도 빼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역사학자의 저작인 만큼 정보 왜곡은 없다. 저자의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정치적인 인물들의 성향, 인간적인 얼굴이 역사를 바꾼다는 사실에 동화될 것이다.(베를린장벽은 크렌츠의 부하 귄터 샤보프스키의 사소한 실수로 붕괴되었다.) 이로써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공포 영화가 허구가 아닌 진실이었음을 알게 된다.
냉전의 역사, 세계 현대사를 한 권으로 훑다
세계는 20세기 후반이라는 반세기 동안 그야말로 ‘냉전(冷戰)과 열전(熱戰)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왔다. 냉전 기간 중에 결정론에서 벗어난 가장 중요한 일탈은 열전과 분명히 관계가 있었다. 1945년 이전에 허다했던 강대국 간 전쟁은 그것이 영원한 양상인 양 굳어지게 했고, 레닌은 이런 전쟁들을 통해 자본주의가 자멸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변수는 핵무기다.
핵전쟁이 시작되면 승전은 고사하고 양쪽 다 생존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점(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폭탄에 대한 공포는 물론이고 1952년 11월 1일에는 미국의 첫 수소폭탄 실험으로 태평양에 있던 섬 하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때문에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면서 정작 전면전을 개시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즉 강대국끼리 붙기만 하면 핵무기가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인류가 절멸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위협이 되어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이 바로 냉전이며, 그렇게 해서 1945년 이후에 벌어진 전쟁들은 초강대국과 약소국 간 전쟁이나 약소국끼리 전쟁으로 제한되었다.
그리고 냉전을 끝낸 것은 “보통 사람들”이었다. 사망한 지 31년이나 된 전 총리 임레 너지의 장례식에 몰려가 가시철조망이 낡았다고 선언한 헝가리 사람들, 자유 노조 솔리다르노시치를 집권시킨 폴란드 사람들. 그리고 헝가리에서 휴가를 지내고, 프라하에 있는 서독 대사관 담벼락에 기어오르고, 열병식에서 호네커에게 창피를 주고, 라이프치히에서는 경찰에게 발포하지 않도록 설득하고, 끝내는 문을 열어 장벽을 허물고 나라를 재통일시킨 독일인들이다.
“냉전은 공포가 되살아나면서 시작됐고 희망이 승리하면서 끝을 맺었다. 이는 거대한 역사적 격변치고는 이례적인 궤도였다”
냉전 전문가 개디스는 냉전 자체를 역사의 무대로 보았을 때 당대를 관통하기 위해 여러 배우들을 등장시킨다. 이 ‘위대한 배우’들이 위대한 배역을 맡을 기회는 미ㆍ소 동맹국을 기반으로 한 구체적인 권력이 세력을 상실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에 찾아왔다. 그들은 극적인 연출로 역사의 진로를 바꾸었으며 용기, 웅변술, 상상력, 결단력, 신념 같은 무형의 지배력을 구사했다. 냉전이라는 극장에서 흥행에 성공한 지도자들은 다음과 같다.
폴란드는 물론 동유럽 국가들과 소련 구석구석까지 정부 당국을 당황하게 한 요한 바오로 2세,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에서는 처음으로 독립 노동조합을 결성한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 여성으로서 최초로 대영제국 수상이 되어 서유럽에서 자본주의의 명성을 되살렸던 마거릿 대처, 철저한 실용주의자였던 덩샤오핑, 실제로 직업 배우로서의 재능을 발휘해 국내에서 신뢰를 재건함과 동시에 소련의 연로한 지도층을 섬뜩하게 만들었던 로널드 레이건, 레이건과 협력해 소련을 변혁시키는 과업을 떠안은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그들이다. 이들은 기존 방식에 도전하고 관중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켜 자신을 따르게 하는 능력이 있?으며 그럼으로써 오랫동안 냉전을 지속시켜온 세력에 대항하고 그들을 무력화시켰다.
마지막 남은 냉전의 모습, 한반도와 한겨레
냉전과 한국전쟁 이후 세대를 위한 필독서
이 책은 20세기를 규정지은 냉전 시대의 극한 대립에 대해서 그 역사와 논리를 파헤친다. 존 루이스 개디스가 이 책을 집필한 동기가 예일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냉전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때마다 제기하는 의문에 응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참고한다면, 이 책이 “냉전을 현재 사건으로 여기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를 위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냉전은 끝났지만, 새로운 냉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08년 8월, 러시아는 그루지야를 공격했고, 미국은 인도적 지원을 명분으로 그루지야를 지원했다. 얼마 전(2010년 2월)에는 프랑스가 러시아에 미스트랄급 수륙양용 전함을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신냉전의 기류는 이처럼 본격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냉전 구도가 남긴 분단국가 한국은 냉전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실증해준다. 개디스의 역사관에 따르면, 과거는 먼 미래에서 망원경으로 볼 때 반드시 다르게 보인다. 마치 남극 관광객이 바다 위에 떠다니는 빙원 위에서 펭귄들이 다투는 광경을 목격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대하고 아찔했던 지나온 순간과 불안한 현재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그 답은 위기 국면에서 이루어졌던 회담과 속임수, 독재자와 권력투쟁, 그리고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은 물론이고 지나간 냉전과 신냉전을 평가하면서 앞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 그 일은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몫일 것이므로. 우리는 살아남았지만 앞으로 어떤 길에 들어서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냉전과 6ㆍ25 이후 세대를 위한 필독서
“전쟁은 단지 그 수단만 다를 뿐 정치 활동의 연장이다. ……정치적 의도는 목적이고, 전쟁은 그것을 달성하는 수단이다. 수단은 결코 목적과 분리된 것으로 볼 수 없다.”- 클라우제비츠
이 책은 말 그대로 냉전에 관한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되 간결하고 읽기 쉽게 틀을 짠 대중서다. 사건을 (‘1945년부터 1991년까지’라는 식으로) 시대순으로 엮은 전형적인 역사서가 아닌 만큼 단순한 연대기 서술은 자제하고 주제별로 접근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 루이스 개디스(John Lewis Gaddis)의 뷰파인더는 동일 사건을 겹쳐서 바라보기도 하고 단번에 다른 공간을 넘나들기도 한다.
조지 오웰이 ≪1984≫를 쓰던 시점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마치 장편소설처럼 전개되는데, 저자가 냉전을 바라보는 시각은 긍정적이다. 전쟁은 정치적 의도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그 목적이 국가의 안보에 있다면 열전보다는 제한전(limited war)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전면전이 아니라 냉전이라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그나마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역사가의 목소리와 함께 역사 현장이 생생하게 전달되며 비사를 가감 없이 첨가함으로써 각 인물들의 성격 묘사도 빼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역사학자의 저작인 만큼 정보 왜곡은 없다. 저자의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정치적인 인물들의 성향, 인간적인 얼굴이 역사를 바꾼다는 사실에 동화될 것이다.(베를린장벽은 크렌츠의 부하 귄터 샤보프스키의 사소한 실수로 붕괴되었다.) 이로써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공포 영화가 허구가 아닌 진실이었음을 알게 된다.
냉전의 역사, 세계 현대사를 한 권으로 훑다
세계는 20세기 후반이라는 반세기 동안 그야말로 ‘냉전(冷戰)과 열전(熱戰)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왔다. 냉전 기간 중에 결정론에서 벗어난 가장 중요한 일탈은 열전과 분명히 관계가 있었다. 1945년 이전에 허다했던 강대국 간 전쟁은 그것이 영원한 양상인 양 굳어지게 했고, 레닌은 이런 전쟁들을 통해 자본주의가 자멸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변수는 핵무기다.
핵전쟁이 시작되면 승전은 고사하고 양쪽 다 생존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점(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폭탄에 대한 공포는 물론이고 1952년 11월 1일에는 미국의 첫 수소폭탄 실험으로 태평양에 있던 섬 하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때문에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면서 정작 전면전을 개시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즉 강대국끼리 붙기만 하면 핵무기가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인류가 절멸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위협이 되어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이 바로 냉전이며, 그렇게 해서 1945년 이후에 벌어진 전쟁들은 초강대국과 약소국 간 전쟁이나 약소국끼리 전쟁으로 제한되었다.
그리고 냉전을 끝낸 것은 “보통 사람들”이었다. 사망한 지 31년이나 된 전 총리 임레 너지의 장례식에 몰려가 가시철조망이 낡았다고 선언한 헝가리 사람들, 자유 노조 솔리다르노시치를 집권시킨 폴란드 사람들. 그리고 헝가리에서 휴가를 지내고, 프라하에 있는 서독 대사관 담벼락에 기어오르고, 열병식에서 호네커에게 창피를 주고, 라이프치히에서는 경찰에게 발포하지 않도록 설득하고, 끝내는 문을 열어 장벽을 허물고 나라를 재통일시킨 독일인들이다.
“냉전은 공포가 되살아나면서 시작됐고 희망이 승리하면서 끝을 맺었다. 이는 거대한 역사적 격변치고는 이례적인 궤도였다”
냉전 전문가 개디스는 냉전 자체를 역사의 무대로 보았을 때 당대를 관통하기 위해 여러 배우들을 등장시킨다. 이 ‘위대한 배우’들이 위대한 배역을 맡을 기회는 미ㆍ소 동맹국을 기반으로 한 구체적인 권력이 세력을 상실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에 찾아왔다. 그들은 극적인 연출로 역사의 진로를 바꾸었으며 용기, 웅변술, 상상력, 결단력, 신념 같은 무형의 지배력을 구사했다. 냉전이라는 극장에서 흥행에 성공한 지도자들은 다음과 같다.
폴란드는 물론 동유럽 국가들과 소련 구석구석까지 정부 당국을 당황하게 한 요한 바오로 2세,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에서는 처음으로 독립 노동조합을 결성한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 여성으로서 최초로 대영제국 수상이 되어 서유럽에서 자본주의의 명성을 되살렸던 마거릿 대처, 철저한 실용주의자였던 덩샤오핑, 실제로 직업 배우로서의 재능을 발휘해 국내에서 신뢰를 재건함과 동시에 소련의 연로한 지도층을 섬뜩하게 만들었던 로널드 레이건, 레이건과 협력해 소련을 변혁시키는 과업을 떠안은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그들이다. 이들은 기존 방식에 도전하고 관중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켜 자신을 따르게 하는 능력이 있?으며 그럼으로써 오랫동안 냉전을 지속시켜온 세력에 대항하고 그들을 무력화시켰다.
마지막 남은 냉전의 모습, 한반도와 한겨레
냉전과 한국전쟁 이후 세대를 위한 필독서
이 책은 20세기를 규정지은 냉전 시대의 극한 대립에 대해서 그 역사와 논리를 파헤친다. 존 루이스 개디스가 이 책을 집필한 동기가 예일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냉전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때마다 제기하는 의문에 응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참고한다면, 이 책이 “냉전을 현재 사건으로 여기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를 위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냉전은 끝났지만, 새로운 냉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08년 8월, 러시아는 그루지야를 공격했고, 미국은 인도적 지원을 명분으로 그루지야를 지원했다. 얼마 전(2010년 2월)에는 프랑스가 러시아에 미스트랄급 수륙양용 전함을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신냉전의 기류는 이처럼 본격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냉전 구도가 남긴 분단국가 한국은 냉전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실증해준다. 개디스의 역사관에 따르면, 과거는 먼 미래에서 망원경으로 볼 때 반드시 다르게 보인다. 마치 남극 관광객이 바다 위에 떠다니는 빙원 위에서 펭귄들이 다투는 광경을 목격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대하고 아찔했던 지나온 순간과 불안한 현재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그 답은 위기 국면에서 이루어졌던 회담과 속임수, 독재자와 권력투쟁, 그리고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은 물론이고 지나간 냉전과 신냉전을 평가하면서 앞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 그 일은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몫일 것이므로. 우리는 살아남았지만 앞으로 어떤 길에 들어서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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