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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최남선, 그는 우리 근대와 민족주의가 담겨 있는 판도라의 상자 같은 존재
일본 유학을 거친 후 『소년』을 창간하며 신지식층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던 계몽운동가, 당대 최고의 지식 아카데미였던 조선광문회를 주도하며 조선사 연구에 매진했던 역사학자, 「기미독립선언서」를 집필하며 당당히 3·1운동의 최전선에 섰던 민족운동가. 이러한 최남선을 우리 근현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의 반열에 올리는 것은 분명 타당할 것이다. 그를 거치지 않고서는 한국 근현대 지성사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최남선은 당대를 대표하는 지성이자 신문화의 선구자였다.
그러나 그는 민족주의자에서 친일파로 변절한, 우리 근현대사의 아물지 않은 흉터이기도 하다. 일본의 관변 단체인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면서 최남선은 변절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내고 만주 건국대학 교수를 거쳐 일제의 침략 전쟁을 지지하는 강연을 하는 등 최남선은 돌이키기 힘든 선택을 했다. 그러나 이처럼 굴곡 있는 그의 행보는 우리 근현대사가 경유했던 극단적 스펙트럼을 되짚어보는 데 그 무엇보다 유효한 지표이기도 하다. 문제적 인간 최남선의 삶을 통해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거쳐온 우리 근대와 민족주의의 실체를 들여다보자.
일본 유학을 거친 후 『소년』을 창간하며 신지식층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던 계몽운동가, 당대 최고의 지식 아카데미였던 조선광문회를 주도하며 조선사 연구에 매진했던 역사학자, 「기미독립선언서」를 집필하며 당당히 3·1운동의 최전선에 섰던 민족운동가. 이러한 최남선을 우리 근현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의 반열에 올리는 것은 분명 타당할 것이다. 그를 거치지 않고서는 한국 근현대 지성사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최남선은 당대를 대표하는 지성이자 신문화의 선구자였다.
그러나 그는 민족주의자에서 친일파로 변절한, 우리 근현대사의 아물지 않은 흉터이기도 하다. 일본의 관변 단체인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면서 최남선은 변절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내고 만주 건국대학 교수를 거쳐 일제의 침략 전쟁을 지지하는 강연을 하는 등 최남선은 돌이키기 힘든 선택을 했다. 그러나 이처럼 굴곡 있는 그의 행보는 우리 근현대사가 경유했던 극단적 스펙트럼을 되짚어보는 데 그 무엇보다 유효한 지표이기도 하다. 문제적 인간 최남선의 삶을 통해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거쳐온 우리 근대와 민족주의의 실체를 들여다보자.
목차
발간의 글 _‘한겨레역사인물평전’을 기획하며 (정출헌|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점필재연구소 소장)
머리말 _우리 근대와 민족주의가 담긴 판도라의 상자
1부 근대화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다
1장 유복한 중인 집안에서의 어린 시절
2장 일본 유학, 근대 학문의 세례를 받다
3장 신문관 설립, 계몽을 향한 포부를 드러내다
4장 한일병합, 그리고 신문화운동의 전개
5장 당대 최고의 지식 아카데미, 조선광문회 활동
2부 민족운동의 한가운데에서
1장 3·1운동을 통해 민족 대표로 자리매김하다
2장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합일점을 찾아서
3장 조선학의 제창, 우리 고유의 것을 찾아서
4장 단군은 곧 조선, 우리의 기원을 찾아서
3부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1장 민족성, 긍정할 것인가 개조할 것인가
2장 우리 역사에 민족 관념을 투영하다
3장 조선의 국토, 계몽과 각성의 장이 되다
4장 조선학 연구의 새로운 가설, 불함문화론
4부 반일에서 친일로 돌아서다
1장 일본의 관변 단체,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다
2장 만주 건국대학 재직 시절
3장 조선의 독자성 논의에서 벗어나 동북아 문화권 논리로
4장 일본의 침략 전쟁을 지지하며
5부 해방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1장 8·15 해방, 그리고 반민특위에 검거되기까지
2장 해방 이후의 한국학 연구
3장 한국 근현대사와 최남선
주석|주요 저술 및 참고도서 목록|연보|찾아보기
머리말 _우리 근대와 민족주의가 담긴 판도라의 상자
1부 근대화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다
1장 유복한 중인 집안에서의 어린 시절
2장 일본 유학, 근대 학문의 세례를 받다
3장 신문관 설립, 계몽을 향한 포부를 드러내다
4장 한일병합, 그리고 신문화운동의 전개
5장 당대 최고의 지식 아카데미, 조선광문회 활동
2부 민족운동의 한가운데에서
1장 3·1운동을 통해 민족 대표로 자리매김하다
2장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합일점을 찾아서
3장 조선학의 제창, 우리 고유의 것을 찾아서
4장 단군은 곧 조선, 우리의 기원을 찾아서
3부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1장 민족성, 긍정할 것인가 개조할 것인가
2장 우리 역사에 민족 관념을 투영하다
3장 조선의 국토, 계몽과 각성의 장이 되다
4장 조선학 연구의 새로운 가설, 불함문화론
4부 반일에서 친일로 돌아서다
1장 일본의 관변 단체,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다
2장 만주 건국대학 재직 시절
3장 조선의 독자성 논의에서 벗어나 동북아 문화권 논리로
4장 일본의 침략 전쟁을 지지하며
5부 해방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1장 8·15 해방, 그리고 반민특위에 검거되기까지
2장 해방 이후의 한국학 연구
3장 한국 근현대사와 최남선
주석|주요 저술 및 참고도서 목록|연보|찾아보기
책 속으로
“최남선은 한국 근현대 지성사의 지도 그리기에 없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근대와 계몽을 기준으로 본다면 그는 신문화의 선구자였고,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민족주의자에서 친일파로 변절한 인물이다. 물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반민특위에서 제기했고, 최근에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서 규명했던 그의 친일 활동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에 이르는 복잡한 시대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수행해온 다양한 작업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pp.12~13
“1920년대까지 최남선은 문화적인 측면에서 일제와 대결하면서 보편적으로 간주된 서구 문명을 적극 수용했고,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면서 ‘조선적인 것’을 발견하고 강조했다. 하지만 1930년대 들어서면서 보편의 지향점을 서구에서 일본으로 바꾸었고, 우리 민족의 독자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일본 제국 내에서 조선 민족과 문화를 지역화시켰다. 나아가 조선 독립에 대한 전망의 부재로 서구 문명을 비판하고 일본의 침략 전쟁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후 해방이 되자 최남선은 일본의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민족주의를 강조함으로써 조선 민족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구성하려 했다. 이처럼 최남선은 우리 근대와 민족주의가 담겨 있는 판도라의 상자 같은 존재이다. 그는 한말, 일제강점기, 해방 후의 격변기를 거치는 동안 세계적인 보편성과 조선적인 특수성 사이에서 동요, 긴장 혹은 타협의 경계에 서 있었다. 최남선이라는 프리즘은 우리가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걸어온 근현대사를 되짚어보고 향후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보는 데 주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1920년대까지 최남선은 문화적인 측면에서 일제와 대결하면서 보편적으로 간주된 서구 문명을 적극 수용했고,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면서 ‘조선적인 것’을 발견하고 강조했다. 하지만 1930년대 들어서면서 보편의 지향점을 서구에서 일본으로 바꾸었고, 우리 민족의 독자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일본 제국 내에서 조선 민족과 문화를 지역화시켰다. 나아가 조선 독립에 대한 전망의 부재로 서구 문명을 비판하고 일본의 침략 전쟁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후 해방이 되자 최남선은 일본의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민족주의를 강조함으로써 조선 민족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구성하려 했다. 이처럼 최남선은 우리 근대와 민족주의가 담겨 있는 판도라의 상자 같은 존재이다. 그는 한말, 일제강점기, 해방 후의 격변기를 거치는 동안 세계적인 보편성과 조선적인 특수성 사이에서 동요, 긴장 혹은 타협의 경계에 서 있었다. 최남선이라는 프리즘은 우리가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걸어온 근현대사를 되짚어보고 향후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보는 데 주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 pp.13~14
출판사 리뷰
과거와 단절하고 민족을 계몽하려 했던 신지식인, 최남선
근대화와 우리의 전통을 고민한 당대의 지성
우리 근현대기의 대표적인 지식인 중 하나인 최남선의 이력을 살펴보다 보면, 우선 그의 어린 시절에 눈길이 간다. 유복한 중인 집안에서 성장한 그는 1904년 그의 나이 열다섯 살 때 동경으로 유학을 간다. 황실에서 파견하는 특파 유학생으로 선발된 최남선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어린 나이에 외국으로 조기 유학을 떠난 셈이다. 이광수, 홍명희, 최남선 등 일명 ‘동경삼재(東京三才, 동경의 3대 천재)’가 교유를 시작한 것이 최남선의 나이 열일곱 살 때이니, 이들은 청소년기에 이국 타향에서 비교적 허물없이 생각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최남선은 약관에도 이르지 못한 열아홉 살에 조선 사회의 주목받는 인물로 부상한다. 그는 일본에서 출판용 기계들을 매입해 들여와 1908년 신문관이라는 출판사를 설립했는데, 여기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잡지인 『소년』이 발행되었다. 또한 그는 일본에서 조선의 희귀 고서가 발간된 데 충격을 받고서 조선광문회를 설립한다. 이 단체는 자주·근대·과학을 기준 삼아 조선의 고전을 발간했는데, 일제의 무단통치로 인해 정치적 결집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다양한 성장 배경 및 학습 과정을 거친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모이는 집합소로 기능하기도 했다.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당대의 주목을 받으며 조선 사회에 문제제기를 해온 최남선이었기에 서른 살에 민족 대표로 「기미독립선언서」를 집필하고,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3·1운동을 조직화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었다. 그가 조선 지성계의 중심에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출중한 능력 탓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포함한 신지식층이 앞 세대와 단절 의식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앞 세대의 역할을 부정하면서 자신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며 시대를 선도해 계몽에 앞장선다는 자의식의 표현이기도 했는데, 이러한 최남선에 대해 이광수는 그가 청년 시절을 잃어버렸으며 시대의 선구자이면서도 희생자라고 평했다.
3·1운동으로 수감 생활을 거친 후 출옥한 최남선은 1920년대에 자신이 발간한 잡지 『동명』을 통해 사회주의운동, 물산장려운동 등을 적극 소개했다. 또한 조선광문회 시절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조선 전통에 대한 문제의식을 심화시켜 나갔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최남선은 서구의 근대를 긍정적으로 전파하려 했던 계몽주의자에서 조선의 전통을 고민하는 역사학자로 변모한다. 그는 1922년 본격적으로 ‘조선학’을 천명하는데, 민족 단위의 독자성을 확인하기 위해 단군을 연구했고 중국과 일본, 조선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규정한 후 이 가운데 조선 문화를 가장 우월한 것으로 바라보는 불함문화론을 설파했다. 이러한 연구들은 중국 및 일본과 구별되는 고유하고 독자적인 ‘조선적인 것’의 발견을 통해 일본에 대항하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1928년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면서 ‘변절’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조선사편수회는 한일병합 이후 조선총독부의 ‘반도사’ 편찬을 위해 설립된 조직으로 조선사를 왜곡하는 일본의 관변 단체였다. 192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조선사편수회에서 활동하던 일본 관변 학자들을 비판했던 그는 이 단체에 발들이면서 별다른 입장을 밝힌 바 없다. 다만 해방 후 “제 마음이 약하기 때문이었지요”라고 회고한 적이 있을 따름이다.
반일에서 친일로의 변절, 그리고 해방 이후 다시 돌아선 최남선
우리 근현대사의 아물지 않은 상처
1931년 만주사변 발발 이후 일본의 침략 전쟁은 점차 확대되었고, 1937년 중일전쟁이 벌어지면서 일본은 본격적인 전시 체제에 들어갔다. 식민지 지식인들의 전쟁 협력이 강요되는 상황에서, 최남선은 이전에 주장했던 논리의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한다. 우선 그는 조선 문화의 독자성을 부정하고 조선 문화를 일본 제국 내의 문화로 지역화시킨다. 이는 그가 1920년대에 주장했던 불함문화론과는 상반된 것이었다. 또한 그는 일본의 괴뢰국으로 설립된 만주국으로 건너가 만주 건국대학에 교수로 재직했는데, 당시에 그는 조선인을 일본인의 하위 동반자로 보면서 일본을 중심으로 조선이 참여하여 만주에 진출할 것을 주장했다. 중국 입장에서 보자면 일본의 손아귀에 있는 조선인이 중국 침략과 수탈의 첨병으로 보일 수도 있는 논리였다.
한편 1943년경부터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의 반격이 이뤄지자 일본은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최남선은 학병 지원 연설 및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인종론을 기반으로 한 앵글로색슨 문명 비판과 함께 일본을 맹주로 한 동양 문화의 우월성을 강변한다. 그에게 태평양전쟁은 서구에 대한 동양의 승리를 역사적으로 재현하는 제국의 ‘성전’이었다. 결국 일본이 패전하고 조선이 해방되자 최남선은 다시금 일제 말기에 자신이 펼쳤던 논리를 바꾸어야 했다. 해방 후 그는 해방된 조선을 ‘늠름 여장부’로, 패전한 일본을 ‘골방 속 색시’로 묘사하였고, 새로운 국가 수립에 걸맞은 역사관을 피력한다. 또한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와 연동하는 위치로 자리매김한다. 이처럼 입장 변화를 거듭해온 최남선을 온전히 용납할 순 없지만, 그의 변전(變轉) 어린 삶이야말로 우리 근현대가 거쳐온 다사다난한 현실을 극명하게 규명해볼 수 있는 프리즘이 아닐까.
한반도 역사의 색인, 시대를 가로지른 인간 탐구
한겨레역사인물평전
평전을 쓰고 읽는다는 것은 앞서 살아간 옛사람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의 마음과 시대를 헤아려보는 여정일 겁니다. 우리는 그런 여정에서 나 자신이 옛사람이 되어 헤아려보기도 하고, 옛사람이 내 귀에 속내를 속삭여주는 경이로운 체험을 맛보기도 할 것입니다. 때론 앞길을 설계하는 지침이 되기도 하겠지요. 퇴계 이황은 그런 경지를 이렇게 읊었습니다.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을 못 뵈어, 고인을 못 뵈어도 가던 길 앞에 있네, 가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가고 어찌할까”라고.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옛사람이 맞닥뜨린 갈등과 옛사람이 고민했던 선택을 헤아리며 그의 길을 따라 걸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세월의 간극을 훌쩍 뛰어넘는 그런 가슴 벅찬 공명이 가능한 까닭은 그도 나도 시대를 벗어나서는 잠시도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란 이유 때문이겠지요. 그것이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우리 시대에 굳이 평전이 필요한 까닭일 것입니다. _한겨레역사인물평전 ‘발간의 글’ 중에서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와 한겨레출판이 공동 기획한 ‘한겨레역사인물평전’을 선보입니다. 한겨레역사인물평전은 현재 우리의 삶이 과거와 유리되어 있지 않다는 전제하에 우리 과거사 인물들을 현재의 시각으로 조명해보려는 야심찬 시리즈입니다. 우선 인물 선정에서는, 고대부터 근대를 아우르는 시간 동안 우리 역사에 다채로운 무늬를 아로새긴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 그간 주목받았던 인물을 비롯하여 최근 학계에 새로이 소개된 인물까지 골고루 포함하였습니다. 또한 그간 평전에서 주목받았던 정치 관련 인물뿐만 아니라 종교, 사상, 예술 등 다방면에서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을 선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시리즈는 각 권마다 단독의 인물을 평하되 여러 권을 근사(近似)한 주제별로 묶어 선보임으로써 여러 인물들을 통해 공통의 시대, 환경, 기타 조건을 고민할 수 있게 할 예정입니다.
총 100권의 평전 발간을 목표로 하고 있는 한겨레역사인물평전은, 그 첫걸음으로 ‘근대를 바라보는 3인의 스펙트럼’이라는 기치 아래 세 권의 평전을 선보입니다. 동양의 평화를 위해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을 겨누었던 독립운동가 안중근, 민족을 대표할 만한 지성으로 주목받았으나 결국 변절의 길을 걸었던 육당 최남선, 그간 ‘매국노’로 낙인찍혀 거의 실체를 조명받지 못했던 이완용이 이번에 선보이는 세 인물입니다. 특히 이들 세 권의 평전은 신진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모아 출간한 것으로, 참신한 필자들의 새로운 시각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점필재연구소와 한겨레출판은 그간 기획 의도, 인물 선정, 필자 선정, 집필 방향 등을 함께 논의하며 평전 출간 작업에 임했습니다. 특히 점필재연구소는 필자의 논지를 학술적으로 보완하는 작업을 통해 더욱 엄밀한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한겨레출판은 대중성을 갖춘 평전을 집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작업을 조율했습니다. 이러한 공동 작업이 학계와 출판계가 서로 힘을 모으는 새로운 풍토를 마련하는 데도 적잖이 기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차후에 한겨레역사인물평전에서 다룰 인물과 필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향후 출간될 평전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근대 인물: 신채호(박노자), 고종(강상규), 명성황후(서영희), 정인보(심경호), 유길준(안외순),
김옥균(이희환)
* 조선 인물: 윤선도(고미숙), 조광조(신병주), 남효온(정출헌), 서거정(김풍기), 김인후(이종범),
남곤(김범), 유자광(김용철), 박팽년(김종서), 김종직(정경주), 김택영(김승룡)
* 여성 인물: 지소태후(김선주), 이매창(김준형), 황진이(박애경), 신소당(홍인숙), 최송설당(백순철)
근대화와 우리의 전통을 고민한 당대의 지성
우리 근현대기의 대표적인 지식인 중 하나인 최남선의 이력을 살펴보다 보면, 우선 그의 어린 시절에 눈길이 간다. 유복한 중인 집안에서 성장한 그는 1904년 그의 나이 열다섯 살 때 동경으로 유학을 간다. 황실에서 파견하는 특파 유학생으로 선발된 최남선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어린 나이에 외국으로 조기 유학을 떠난 셈이다. 이광수, 홍명희, 최남선 등 일명 ‘동경삼재(東京三才, 동경의 3대 천재)’가 교유를 시작한 것이 최남선의 나이 열일곱 살 때이니, 이들은 청소년기에 이국 타향에서 비교적 허물없이 생각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최남선은 약관에도 이르지 못한 열아홉 살에 조선 사회의 주목받는 인물로 부상한다. 그는 일본에서 출판용 기계들을 매입해 들여와 1908년 신문관이라는 출판사를 설립했는데, 여기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잡지인 『소년』이 발행되었다. 또한 그는 일본에서 조선의 희귀 고서가 발간된 데 충격을 받고서 조선광문회를 설립한다. 이 단체는 자주·근대·과학을 기준 삼아 조선의 고전을 발간했는데, 일제의 무단통치로 인해 정치적 결집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다양한 성장 배경 및 학습 과정을 거친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모이는 집합소로 기능하기도 했다.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당대의 주목을 받으며 조선 사회에 문제제기를 해온 최남선이었기에 서른 살에 민족 대표로 「기미독립선언서」를 집필하고,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3·1운동을 조직화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었다. 그가 조선 지성계의 중심에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출중한 능력 탓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포함한 신지식층이 앞 세대와 단절 의식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앞 세대의 역할을 부정하면서 자신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며 시대를 선도해 계몽에 앞장선다는 자의식의 표현이기도 했는데, 이러한 최남선에 대해 이광수는 그가 청년 시절을 잃어버렸으며 시대의 선구자이면서도 희생자라고 평했다.
3·1운동으로 수감 생활을 거친 후 출옥한 최남선은 1920년대에 자신이 발간한 잡지 『동명』을 통해 사회주의운동, 물산장려운동 등을 적극 소개했다. 또한 조선광문회 시절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조선 전통에 대한 문제의식을 심화시켜 나갔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최남선은 서구의 근대를 긍정적으로 전파하려 했던 계몽주의자에서 조선의 전통을 고민하는 역사학자로 변모한다. 그는 1922년 본격적으로 ‘조선학’을 천명하는데, 민족 단위의 독자성을 확인하기 위해 단군을 연구했고 중국과 일본, 조선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규정한 후 이 가운데 조선 문화를 가장 우월한 것으로 바라보는 불함문화론을 설파했다. 이러한 연구들은 중국 및 일본과 구별되는 고유하고 독자적인 ‘조선적인 것’의 발견을 통해 일본에 대항하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1928년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면서 ‘변절’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조선사편수회는 한일병합 이후 조선총독부의 ‘반도사’ 편찬을 위해 설립된 조직으로 조선사를 왜곡하는 일본의 관변 단체였다. 192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조선사편수회에서 활동하던 일본 관변 학자들을 비판했던 그는 이 단체에 발들이면서 별다른 입장을 밝힌 바 없다. 다만 해방 후 “제 마음이 약하기 때문이었지요”라고 회고한 적이 있을 따름이다.
반일에서 친일로의 변절, 그리고 해방 이후 다시 돌아선 최남선
우리 근현대사의 아물지 않은 상처
1931년 만주사변 발발 이후 일본의 침략 전쟁은 점차 확대되었고, 1937년 중일전쟁이 벌어지면서 일본은 본격적인 전시 체제에 들어갔다. 식민지 지식인들의 전쟁 협력이 강요되는 상황에서, 최남선은 이전에 주장했던 논리의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한다. 우선 그는 조선 문화의 독자성을 부정하고 조선 문화를 일본 제국 내의 문화로 지역화시킨다. 이는 그가 1920년대에 주장했던 불함문화론과는 상반된 것이었다. 또한 그는 일본의 괴뢰국으로 설립된 만주국으로 건너가 만주 건국대학에 교수로 재직했는데, 당시에 그는 조선인을 일본인의 하위 동반자로 보면서 일본을 중심으로 조선이 참여하여 만주에 진출할 것을 주장했다. 중국 입장에서 보자면 일본의 손아귀에 있는 조선인이 중국 침략과 수탈의 첨병으로 보일 수도 있는 논리였다.
한편 1943년경부터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의 반격이 이뤄지자 일본은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최남선은 학병 지원 연설 및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인종론을 기반으로 한 앵글로색슨 문명 비판과 함께 일본을 맹주로 한 동양 문화의 우월성을 강변한다. 그에게 태평양전쟁은 서구에 대한 동양의 승리를 역사적으로 재현하는 제국의 ‘성전’이었다. 결국 일본이 패전하고 조선이 해방되자 최남선은 다시금 일제 말기에 자신이 펼쳤던 논리를 바꾸어야 했다. 해방 후 그는 해방된 조선을 ‘늠름 여장부’로, 패전한 일본을 ‘골방 속 색시’로 묘사하였고, 새로운 국가 수립에 걸맞은 역사관을 피력한다. 또한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와 연동하는 위치로 자리매김한다. 이처럼 입장 변화를 거듭해온 최남선을 온전히 용납할 순 없지만, 그의 변전(變轉) 어린 삶이야말로 우리 근현대가 거쳐온 다사다난한 현실을 극명하게 규명해볼 수 있는 프리즘이 아닐까.
한반도 역사의 색인, 시대를 가로지른 인간 탐구
한겨레역사인물평전
평전을 쓰고 읽는다는 것은 앞서 살아간 옛사람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의 마음과 시대를 헤아려보는 여정일 겁니다. 우리는 그런 여정에서 나 자신이 옛사람이 되어 헤아려보기도 하고, 옛사람이 내 귀에 속내를 속삭여주는 경이로운 체험을 맛보기도 할 것입니다. 때론 앞길을 설계하는 지침이 되기도 하겠지요. 퇴계 이황은 그런 경지를 이렇게 읊었습니다.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을 못 뵈어, 고인을 못 뵈어도 가던 길 앞에 있네, 가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가고 어찌할까”라고.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옛사람이 맞닥뜨린 갈등과 옛사람이 고민했던 선택을 헤아리며 그의 길을 따라 걸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세월의 간극을 훌쩍 뛰어넘는 그런 가슴 벅찬 공명이 가능한 까닭은 그도 나도 시대를 벗어나서는 잠시도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란 이유 때문이겠지요. 그것이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우리 시대에 굳이 평전이 필요한 까닭일 것입니다. _한겨레역사인물평전 ‘발간의 글’ 중에서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와 한겨레출판이 공동 기획한 ‘한겨레역사인물평전’을 선보입니다. 한겨레역사인물평전은 현재 우리의 삶이 과거와 유리되어 있지 않다는 전제하에 우리 과거사 인물들을 현재의 시각으로 조명해보려는 야심찬 시리즈입니다. 우선 인물 선정에서는, 고대부터 근대를 아우르는 시간 동안 우리 역사에 다채로운 무늬를 아로새긴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 그간 주목받았던 인물을 비롯하여 최근 학계에 새로이 소개된 인물까지 골고루 포함하였습니다. 또한 그간 평전에서 주목받았던 정치 관련 인물뿐만 아니라 종교, 사상, 예술 등 다방면에서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을 선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시리즈는 각 권마다 단독의 인물을 평하되 여러 권을 근사(近似)한 주제별로 묶어 선보임으로써 여러 인물들을 통해 공통의 시대, 환경, 기타 조건을 고민할 수 있게 할 예정입니다.
총 100권의 평전 발간을 목표로 하고 있는 한겨레역사인물평전은, 그 첫걸음으로 ‘근대를 바라보는 3인의 스펙트럼’이라는 기치 아래 세 권의 평전을 선보입니다. 동양의 평화를 위해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을 겨누었던 독립운동가 안중근, 민족을 대표할 만한 지성으로 주목받았으나 결국 변절의 길을 걸었던 육당 최남선, 그간 ‘매국노’로 낙인찍혀 거의 실체를 조명받지 못했던 이완용이 이번에 선보이는 세 인물입니다. 특히 이들 세 권의 평전은 신진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모아 출간한 것으로, 참신한 필자들의 새로운 시각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점필재연구소와 한겨레출판은 그간 기획 의도, 인물 선정, 필자 선정, 집필 방향 등을 함께 논의하며 평전 출간 작업에 임했습니다. 특히 점필재연구소는 필자의 논지를 학술적으로 보완하는 작업을 통해 더욱 엄밀한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한겨레출판은 대중성을 갖춘 평전을 집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작업을 조율했습니다. 이러한 공동 작업이 학계와 출판계가 서로 힘을 모으는 새로운 풍토를 마련하는 데도 적잖이 기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차후에 한겨레역사인물평전에서 다룰 인물과 필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향후 출간될 평전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근대 인물: 신채호(박노자), 고종(강상규), 명성황후(서영희), 정인보(심경호), 유길준(안외순),
김옥균(이희환)
* 조선 인물: 윤선도(고미숙), 조광조(신병주), 남효온(정출헌), 서거정(김풍기), 김인후(이종범),
남곤(김범), 유자광(김용철), 박팽년(김종서), 김종직(정경주), 김택영(김승룡)
* 여성 인물: 지소태후(김선주), 이매창(김준형), 황진이(박애경), 신소당(홍인숙), 최송설당(백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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