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계국가의 이해 (독서)/2.영국이해

대처 스타일

동방박사님 2023. 1. 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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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마거릿 대처, '철의 여인' 뒤에 가려진 고독한 리더의 초상
그럼에도 운명에 맞서 싸운 위대한 리더의 재발견!


슬픈 아일랜드, 일그러진 근대 등 다수의 저작을 집필한 저자 박지향이 중용의 프레임과 여성적 통찰로 섬세하게 포착해 낸 대처의 빛과 그림자를 조명하였다. 적들로 가득 찬 정글 속에서 살아남아 세상을 뒤흔든 수상이 된 아웃사이더, 유로존 붕괴를 날카롭게 통찰한 합리적 보수의 아이콘인 대처의 뿌리 깊은 불안을 경험했던 성장기부터 대표 여성 정치인으로 발돋움하기까지, 영혼을 뒤바꾸려 했던 대처 혁명부터 급작스러운 몰락까지 살펴본다. ‘철의 여인’이라는 박제화 된 이미지에 가려진, 고독하고 불완전하지만 온몸으로 삶에 맞닥뜨려 운명을 개척해 나간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지도자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안내한다.

 

목차

필름, 대처의 삶을 말하다
서문 - 우리는 모두 대처주의자다
기파랑사판 서문 - 내 젊은 시절의 환상에 대한 반성

제1부 아웃사이더

1. 대처는 어떻게 '철의 여인'이 되었는가?
노조와의 투쟁으로 '파업 열병'을 잠재우다!
대처주의가 불러온 변화와 그녀가 넘지 못한 벽
대중 속에서 발견한 '중산층'이라는 광맥
대처, 온몸으로 삶과 맞닥뜨리다

2. 영국사상 최초의 여성총리
합의의 정치가 불러온 파국
'불만의 겨울'이 도래하다
야당의 승리가 아닌 정부의 패배
다우닝 가 10번지 총리 관저로 들어서다
노동자들, 보수당으로의 전향을 선언하다

3. 남다른 어린 시절부터 교육부장관까지
한 번도 소녀였던 적이 없던 소녀
저기 미래의 총리가 간다!
"당신은 처칠만큼 위대해질 겁니다"
마크 엄마, 의원이 되다
노동당 정부에 총격을 가하다
'우유 강도'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부장관으로

4. 보수당을 손 안에 넣다
히스와 윌슨이 벌인 '누가 인기 없나 대회'
아무도 몰랐던 대처의 부상
뉴 라이트 키스 조지프와 세례 요한 이녹 파월
수퍼우먼 혹은 전혀 새로운 토리 지도자
적들로 가득한 광야를 건너다

5. 전쟁을 뚫고 파업을 넘어
대처의 운명을 가른 포클랜드 전쟁
제왕적 위치에 올라서다
내부의 적, 광부 노조와의 투쟁
'아서 왕' 스카길의 네 가지 실수
노동자들, 정치의 무대에서 내려오다

6. 부르주아들의 세상을 만들다
공공의 적 인플레이션을 없애라
친절과 채찍, 누가 더 나은 간호사들인가?
민영화로 사회주의에 대적하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경계를 없애는 전략
대처가 이끈 쁘디 부르주아의 세상

7. 대처주의, 영혼을 바꾸려는 담대한 도전
죄의식의 문화를 거부하다
빅토리아시대의 가치로 돌아가자
"학생들에게 불평등해질 기회를 주시오!"
10년이 아닌 수세기를 위한 대처주의

8. 야망을 좇은 정치가의 뒷모습
"보수당이 미인을 선택했다"
소련 사람들이 준 최고의 선물
눈물 한 방울과 핸드백의 정치
라이벌 여왕들, 대처 vs 엘리자베스 2세
페미니스트들의 도전과 복잡한 심경
대처가 입고 있던 여성성, 대처가 숭배한 남성성

9. 추락
대처, 한계에 부딪히다
영국 엘리트들은 왜 대처를 싫어했을까?
얻은 사람은 고마워하지 않고, 잃은 사람은 분노하다
내 모든 문제는 유럽 대륙에서 비롯되었다
어머니를 살해한 토리 부족들

10. 대처는 누구였는가?
IRA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한 집념
내 사전에 '아마도'라는 말은 없다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정치인
팀플레이어가 되지 못하는 통치자
닮았으면서도 서로 다른 4인의 정치가
인간의 의지로 역사를 바꾼 리더

에필로그 -그녀가 남긴 유산들
참고문헌

 

저자 소개

저 : 박지향 (朴枝香)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명예교수.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뉴욕프랫대학교, 인하대학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고, 도쿄대학교, 케임브리지대학교의 객원교수를 거쳤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장, 영국사학회 회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제국의 품격》 《근대로의 길》 《정당의 생명력: 영국 보수당》 《클래식 영국사》 《대처 스타일》 《슬픈 아일랜드》 《영국적인,...
 

책 속으로

2012년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은 과거와 무척이나 달라 보인다. 국민들은 기존 정치권에 염증을 내고 있고 SNS라는 새로운 소통 체계가 세상을 장악하고 있다. … 대처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무엇보다도 깊은 절망에 빠져 있던 영국사회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있다. 1979년의 영국은 도처에 패배주의가 깊숙이 스며든 절망의 나라였다. “통치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받은 “유럽의 환자”였다. 그런 나라를 다시 일으키고 영국이 다시 위대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심어준 지도자가 바로 대처였다. 국민 과반수가 자신의 삶에서 희망을 보지 못하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지도자가 바로 대처 같은 인물이 아닐까?

로버츠 집안은 일요일을 온종일 교회에 바쳤다. 마거릿은 아침 10시에 일요학교에 갔다가 11시에 본예배를 보고, 2시 30분에 다시 일요학교에 갔다가 잠시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한 다음, 저녁 6시에 다시 교회에 갔다. 감리교는 대단히 엄격한 금욕주의를 바탕으로 했기에 로버츠 집안은 가난하지 않았지만 절대로 사치하지 않았다. 마거릿과 언니는 주말에 다른 아이들처럼 춤추러 가거나 파티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의 허락을 받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여흥을 즐기는 것은 죄악이다. 삶은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할 일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에게 가장 큰 죄악은 게으름과 시간 낭비였다. … 대처는 종종 다음 날 최종 시험을 보기로 되어 있는데 전혀 복습을 하지 못해 공포에 질린 꿈을 꾸었고, 깨어나서 꿈이라는 걸 알았을 때 ‘무척 기뻤다’고 토로했다. 이런 일화는 마거릿의 아동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뿌리 깊은 불안을 드러낸다.

1만 3,000km 밖에서 병사와 정부의 운명이 결정되던 이 극적인 3주 동안 대처의 신경은 온통 곤두서 있었다. 최초의 사상자가 났다는 보고가 들어왔을 때 대처는 내각회의를 주재하던 중이었다. 그녀는 “머리를 떨어뜨리고, 약 1분가량 테이블을 뚫어지게 노려봤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 지금도 영국 정부는 포클랜드 섬의 방위에 매년 3억 1,000만 달러를 쏟아 붓고 있다. 대처는 섬의 경제적 발전이 해결책이라고 언명했지만, 솔직히 포클랜드 전쟁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웅적인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것은 신화를 만들어 냈고, 그 신화는 대처를 끝장내기보다 오히려 오늘날의 대처를 만들어 내었다.

경제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대처는 이제 “경제는 수단입니다. 진정한 목표는 마음과 영혼을 바꾸는 것입니다”라며 궁극적 목표를 향한 노정을 시작했다. 소위 ‘대처주의 혁명’은 빅토리아적 가치를 되살리는 작업이었다. 대처는 19세기 영국 경제가 이 세상을 지배하던 때의 가치관을 회복해야만 20세기 후반 영국의 쇠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대처는 정직·근면·신뢰·검약·노력·책임감 등이 단순히 빅토리아적 가치가 아니라 ‘영원한 진리’라고 주장했다. 그녀의 목표는 자본주의 사회의 미덕을 내세워 영국 사회에 뿌리내린 사회주의와 ‘의존 문화’를 근절하고, 국민에게 스스로 운명을 다스리게 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었다.

대중은 ‘철의 여인’도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을 무척 흥미롭게 생각했다. 대처는 TV 인터뷰에서 두 번 울었는데, 한 번은 아들 마크가 1981년 사하라 사막을 여행하던 중 실종되었을 때였고 다른 한 번은 그녀의 아버지가 그랜섬 시의회에서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밀려났을 때를 회고하면서였다. 이처럼 대처가 전통적인 주부의 상투적인 이미지를 이용하는 태도에 페미니스트들은 분노했다. … 대처의 이미지를 구성한 또 하나의 무기는 핸드백이었다. 그녀는 핸드백을 무기로 각료들을 자신이 가르치고 키우는 학생이나 아이처럼 만들었다. 그녀의 핸드백은 처칠의 시가나 윌슨의 파이프처럼 그녀 이미지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아니, 대처의 핸드백은 그보다 더한 어떤 것이었다. 대처는 보고서건 뭐건 필요한 것은 모두 핸드백에서 꺼내 들어 상대방을 주눅이 들게 했다.

갑자기 대처가 사라졌을 때 보수당 의원들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깜짝 놀랐다. 사람들은 그 사건을 ‘근대 영국 역사에서 가장 잔인한 정치적 배반’, ‘배은망덕’, ‘중세적 만행’, ‘암살’, 나아가 ‘국왕 시해’라고까지 불렀다. 어떤 이는 인류학적 용어를 사용하여 “토리 부족이 어머니 같은 존재를 죽여서 먹어치웠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 11월 13일, 하우는 의회에서 사직의 이유를 밝혔다. 총리에 대한 충성심과 자신이 진정한 국익이라고 믿는 것에 대한 충성심 사이의 갈등을 더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심정을 토캷한 후에 그는 최후의 펀치를 날렸다. “내가 아마도 너무 오랫동안 싸워 온 충성심들 사이의 비극적 갈등에 대해 다른 의원들께서도 나름대로 반응할 때가 되었습니다.” 의도적으로 총리의 등에 칼을 꽂은 그의 발언은 ‘그때까지 하원에서 있었던 모든 발언 가운데 가장 파괴적인’ 것이었다. 게다가 그것이 하우의 발언이기에 더욱 그랬다. 대처의 최측근인 로니 밀러조차 “파괴 작업이 그토록 깔끔하고 예술적으로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라고 평했다.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왜 지금 대처인가?
"유로존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대처의 예언이 맞았다!" 2011년 말 [월스트리트저널]과 [텔레그래프]를 비롯된 서구 언론들은 유럽 정상들이 유로존 붕괴에 대한 해법을 대처 리더십에서 찾고 있다며 유럽 각지에서 일고 있는 대처 노스탤지어 현상에 대해 앞 다투어 보도했다. 2월 26일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메릴 스트립의 호연이 빛나는 영화 [철의 여인]뿐 아니라 대처의 리더십을 분석한 책들이 전 세계적으로 속속 출간되고 있다. 왜 지금 대처인가?
명실상부 20세기 최고의 여성 리더였던 대처의 강력한 리더십을 지금의 정치 지도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도 큰 이유겠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그녀가 권력을 우선시하지 않고 국가 경영의 차원을 넘어 국민의 영혼을 바꾸려 시도했던 정치 지도자였다는 데 있다. 대처는 맑스의 반대편에 서 있었지만 맑스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지로 역사를 바꾸려 한 보기 드문 리더였다.

중용의 프레임과 여성적 통찰로 묘사한 빛과 그림자
최고의 영국학 권위자 박지향 교수는 이 책에서 역사의 프리즘을 통해 마거릿 대처의 빛과 그림자를 극명하게 대비하면서 여성의 입장에서 대처의 정체성을 보여 준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최초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철의 여인'이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은 국민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유족들 한 명 한 명에게 자필로 위로의 편지를 쓰며 마음을 보듬은 모성애는 남성 정치가들이 가질 수 없는 최대 강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은 항상 불안하고 무언가에 쫓기고 있었다. 대처의 가족은 그녀가 주장한 친밀한 가족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딸 캐럴은 어릴 때 이미 "엄마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엄마를 돕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토로했다.
저자는 놀라운 균형 감각을 보여 주면서 대처가 이룬 정치적 성공과 인간적인 한계를 철저하게 구분 짓는다. "여흥은 죄악"이라고 여기는 독실한 감리교도였던 아버지 때문에 어린 시절 대처는 다른 아이들처럼 파티에 놀러갈 수 없었으며 밤에는 시험 보는 꿈을 꾸며 깊은 불안을 경험했다. 대처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노동당의 셜리 윌리엄스 같은 여성 정치인에 대적할 보수당의 대항마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1978~1979년 사이 공공 부문 노조들의 대규모 파업이 벌어졌던 '불만의 겨울'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영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의 가장 커다란 한계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큼 뛰어난 능력을 타고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편 대처는 혁명이라 부를 만한 변혁적 조치를 통해 국민의 영혼을 바꾸려 했다. 근면과 부에 대한 성취가 장려되고 국가에 대한 의존 대신 개인의 자립을 강조하는 빅토리아시대의 가치관으로 사람들을 무장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 혁명은 비록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지만 그녀 이전과 이후의 영국은 본질적으로 달랐다. 그녀가 영국사에 미친 영향은 너무나 지대해서 이후의 어떤 정치인도 영향권을 벗어날 수 없었으며 제3의 길을 천명한 토니 블레어도 '대처의 아들'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리고 대처리즘은 보수당이 아닌 노동당에 의해 계승되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연출되었다.

'철의 여인' 뒤에 가려진 고독한 리더의 초상
대처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무엇보다 절망에 빠져 있던 영국 사회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1979년의 영국은 도처에 패배주의가 스며든 절망의 나라이자 "통치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유럽의 환자"였다. 그런 나라를 다시 일으키고 영국이 다시 위대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심어 준 지도자가 바로 대처였다. 국민이 삶에서 희망을 보지 못하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누구보다 필요한 지도자가 바로 그녀 같은 인물이 아닐까? 이것이 저자가 대처의 정치와 생애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철의 여인'이라는 박제화된 이미지에 가려진, 고독하고 불완전하지만 온몸으로 삶에 맞닥뜨려 운명을 개척해 나간 인간이 모습이 담겨 있는 책이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