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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슬픈 아일랜드』는 아일랜드의 역사와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대해 살피며,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한 비결과 그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담고 있다. 저자는 서울대에서 서양사를 공부하고 국 뉴욕 주립대에서 철학박사를 받은 아일랜드 전문가로, 이 책은 저자가 2002년 펴낸 『슬픈 아일랜드』의 개정판이다.
아일랜드는 우리와 참 많이 닮았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라 모양, 강대국과 맞닿은 점, 고난의 역사가 낳은 국민적 심성도 그렇다. 못살고 가난하던 과거를 떨쳐 버리고 경제대국의 되었다는 사실도 판박이다. 놀랍게도 한국과 아일랜드 두 민족에게는 한(恨)이라고 부를 만한 정서가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우리와 다르다. 식민본국이던 영국의 GDP와 1인당 국민소득을 뛰어넘었다. 그에 반해 일본은 우리보다 두 배 이상 잘 사는 나라이다. 무척이나 닮은 두 나라가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아일랜드는 더 이상 과거에 사는 나라가 아니며 현재를 받아들이고 미래를 설계하는 나라라고 말한다. 이러한 아일랜드의 변화의 모습을 통해 현재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일랜드는 우리와 참 많이 닮았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라 모양, 강대국과 맞닿은 점, 고난의 역사가 낳은 국민적 심성도 그렇다. 못살고 가난하던 과거를 떨쳐 버리고 경제대국의 되었다는 사실도 판박이다. 놀랍게도 한국과 아일랜드 두 민족에게는 한(恨)이라고 부를 만한 정서가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우리와 다르다. 식민본국이던 영국의 GDP와 1인당 국민소득을 뛰어넘었다. 그에 반해 일본은 우리보다 두 배 이상 잘 사는 나라이다. 무척이나 닮은 두 나라가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아일랜드는 더 이상 과거에 사는 나라가 아니며 현재를 받아들이고 미래를 설계하는 나라라고 말한다. 이러한 아일랜드의 변화의 모습을 통해 현재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목차
개정판 서문
프롤로그
제1부
1장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나라?
2장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만남
3장 두 문명의 전투: 영국계 아일랜드 문화와 게일문화
4장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 문학과 민족주의
5장 신화에서 역사로
제2부
6장 런던으로 간 더블린 작가들
7장 와일드, 쇼, 예이츠: 우정과 갈등
8장 ‘재치의 로빈후드’ 와일드
9장 버나드 쇼의 ‘두 개의 섬’
10장 ‘안티테제적 민족주의자’ 예이츠
에필로그
연표
참고문헌
찾아보기
프롤로그
제1부
1장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나라?
2장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만남
3장 두 문명의 전투: 영국계 아일랜드 문화와 게일문화
4장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 문학과 민족주의
5장 신화에서 역사로
제2부
6장 런던으로 간 더블린 작가들
7장 와일드, 쇼, 예이츠: 우정과 갈등
8장 ‘재치의 로빈후드’ 와일드
9장 버나드 쇼의 ‘두 개의 섬’
10장 ‘안티테제적 민족주의자’ 예이츠
에필로그
연표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리뷰
《슬픈 아일랜드》개정판이 나왔다
우리나라 최고의 아일랜드 전문가 박지향 교수(서울대 서양사학과)의 《슬픈 아일랜드》 개정판이 도서출판 기파랑에서 나왔다. 이전 책에서 1장과 5장을 대폭 수정하고 에필로그와 연표를 새로 첨가하여 독자들이 아일랜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저자는 이 책이 지난 6년간 광범위한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고 심지어 일종의 마니아들이 탄생했다는 사실에 놀란다. 유라시아대륙의 서쪽 끝, 브리튼 제도에 맨 구석에 위치한 섬나라, 한때 지지리도 가난했던 이 나라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한국을 닮은 나라, 아일랜드
아일랜드는 우리와 참 많이 닮았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라 모양부터가 남한 지도를 빼닮았다. 강대국과 해협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닿은 점도 닮았고, 그 때문에 겪은 고난의 역사도, 그런 역사가 낳은 국민적 심성도 그렇다. 민족주의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 못살고 가난하던 과거를 떨쳐 버리고 단숨에 경제대국의 되었다는 사실까지도 판박이다.
무엇보다도, 한국과 아일랜드 두 민족에게는 한(恨)이라고 부를 만한 정서가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다. 도쿄대학 총장을 지낸 야나이하라 다다오(矢內原忠雄)는 한국을 ‘일본의 아일랜드’라고 불렀다.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유럽연합(EU) 15개 회원국 가운데 민족적 자존심이 가장 강한 나라는 아일랜드였다. 그런 자부심이 잉글랜드에 짓눌려 700년간이나 무너져 있었다. 일제가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식민지배의 세월이 35년간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 20배나 되는 세월 동안 아일랜드 민족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두 민족 간의 불협화음은 명백했다. 잉글랜드인이 보기에 아일랜드인은 게으른 술주정뱅이, 구제불능의 ‘하얀 검둥이’였다. 아일랜드인이 눈에 비친 잉글랜드인은 체면치레에 급급한 속물, 무례하게 자기 민족의 운명에 끼어든 이방인이었다. 그렇게 역사적으로나 기질적으로 융합할 수 없는 두 민족이 한 국왕을 모시고 수백 년을 살았다. 둘 사이에 쌓인 오해와 불만의 앙금은 단순히 독립과 분리로 해소될 일이 아니었다. 잉글랜드는 아일랜드의 영원한 타자(他者)였고, 극복해야 할 필연적 과제였다.
잉글랜드를 뛰어넘다
눈을 들면 바다 아니면 감자밭밖에 볼 것 없던 아일랜드. 19세기 중엽 ‘감자마름병’으로 1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굶어죽은(‘감자대기근’) 이 가난한 나라가 IT산업으로 무장한 선진국이 되었다. 1980년대부터 단기간에 이룬 기적적인 성공으로 오늘날 아일랜드의 국내총생산(GDP)은 유럽 국가들 가운데 1, 2위를 다투고, 1인당 국민소득은 진작에 영국을 뛰어넘었다.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가 식민본국인 제국을 능가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건’이다. 우리는 어떤가? 일본은 여전히 우리보다 두 배 이상 잘사는 나라이고, 가까운 시일 내에 일본을 따라잡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일랜드 성공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아일랜드의 성공 비결
1973년 유럽연합에 가입한 이후 아일랜드는 외자 유치에 발벗고 나섰다. 외국 기업이 활동하기에 편리한 기업 환경을 만들어 주어, 실업률을 크게 낮추고 산업의 구조조정을 일궈 냈다. 실용주의가 이데올로기를 대체한 아일랜드에서, ‘더 많은 일자리, 더 많은 부(富)’가 ‘가난뿐인 영광’보다 훨씬 바람직하다는 사실은 이제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오랜 식민지 경험 탓에 ‘자립’을 신성한 절대가치로 믿었고, 외국 자본에 의한 경제 성장을 치욕으로 여겨 온 아일랜드 국민에게 이것은 실로 혁명적인 변화다.
정치적으로도, 전 세계가 놀란 대형 폭력 사건들을 벌여 온 북아일랜드 역시 평화적으로 민주화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 대립보다는 타협이, 투쟁보다는 상생이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길임을 아일랜드인들은 깨달은 것이다.
그래도 슬픈 나라, 아일랜드
이처럼 잘사는 나라가 되었음에도, 아일랜드인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비참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편집증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너무 오랜 세월 지배당한 역사가 이제는 국민성의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저항적인 민족주의에 길들여진 국민정서가 현재의 풍요를 마음껏 향유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일까?
아일랜드 사람들의 뇌리에 깊숙이 자리잡은 이러한 피해의식이 어쩌면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일종의 ‘위안’이 되고, 나아가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난히 비극적이고 참혹한’ 역사를 경험한 민족이 비단 아일랜드인뿐이던가. 도전과 응전으로 점철된 인류의 긴 역사에서 모든 민족은 저마다 처한 상황에 반응하는 방식이 달랐다. 이를 자각하기 시작한 일부 아일랜드 지식인들은, 편협한 역사의식의 미망에서 벗어나 제 나라의 역사를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함을 역설한다. 그런 점에서도 아일랜드는 역시 우리보다 한발 앞서 가고 있는 셈이다.
예이츠, 와일드, 버나드 쇼 ― 분열된 정체성
이 책에서 저자는, 아일랜드 역사에서 민족과 종교가 뒤얽혀 벌어진 마찰고 갈등의 양상부터 훑어본다. 토착 게일인, 잉글랜드로부터 이주한 가톨릭,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로부터 이주한 신교도 등 다양한 집단이 모여 살던 아일랜드에서 19세기에 민족 정통성에 대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찰스 스튜어트 파넬이 이끄는 아일랜드 자치운동, 게일 연맹 창설, 아일랜드 문예부흥 운동, 사회주의 노동운동, 부활절 봉기, 그리고 자유국과 북아일랜드 탄생 등 굵직한 사건들이 어지럽게 펼쳐진다. 이러한 격동기를 중심으로 저자는 아일랜드 근대사를 그토록 복잡하게 만든 민족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을 분석한다.
여기서 주목할 한 부류의 사람들이, 영국인의 후손이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아일랜드의 역사나 문화에서 찾은 문인들이다. 특히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오스카 와일드 그리고 버나드 쇼는 영국계 아일랜드인으로서 이중적 정체성과 분열된 충성심을 운명적으로 체험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신이 태어난 아일랜드에 대한 애정과 애착이 있으면서도 잉글랜드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기에 잉글랜드와의 연결고리를 끊으려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들은 식민지인으로서 ‘기원상의 모국’과 ‘정착지’ 사이를 떠도는 ‘분열된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일랜드 문화의 일부이면서도 동시에 그 문화로부터 떨어져 있는, 즉 잉글랜드성(Englishness)이라는 정서로 인해 아일랜드인의 정체성에서 분리된 존재였다.
“모든 아일랜드인의 희망과 야심은 아일랜드를 벗어날 기회 여하에 달렸다”라는 버나드 쇼의 말 그대로 이들은 모두 더블린을 떠나 런던에 정착했고, 문학적으로 성공하면서 영국 땅에서 ‘앵글로색슨의 어리석음에 대항하는 켈트인의 십자군 전쟁’을 치렀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느 곳에 있든지 더블린과 런던 사이를 방황하는 어중간한 존재에 불과했다.
미래를 사는 아일랜드, 과거에 묶인 한국
아일랜드와 잉글랜드의 관계는 절묘하게 한―일 관계와 중첩되는 것을, 독자는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발견하며 놀라게 된다. 잉글랜드인이 아일랜드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시각과 비슷했다. 잉글랜드인이 아일랜드인을 ‘하얀 검둥이’ ‘하얀 침팬지’라 부르며 켈트족의 신경질적이고 불안정한 기질 때문에 독립은커녕 자치조차 허용할 수 없다고 했던 것처럼, 일본인은 ‘더럽고 게으르고 무지하고, 육체노동에는 적합하지만 복잡한 과제를 수행할 수 없는 복종적인 어린애 같은’ 열등인간 조선인이 자주적으로 통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닮은꼴 역사가 우리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자기폐쇄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시각을 더 먼저 떨쳐버린 지금의 아일랜드는, 여전히 민족주의에 발목이 잡혀 있는 우리에게 좋은 전범이 될 것이다.
아일랜드는 더 이상 과거에 사는 나라가 아니다. 그들은 현재를 받아들이고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우리와 너무도 닮았던 아일랜드가 변화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 것인가?
우리나라 최고의 아일랜드 전문가 박지향 교수(서울대 서양사학과)의 《슬픈 아일랜드》 개정판이 도서출판 기파랑에서 나왔다. 이전 책에서 1장과 5장을 대폭 수정하고 에필로그와 연표를 새로 첨가하여 독자들이 아일랜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저자는 이 책이 지난 6년간 광범위한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고 심지어 일종의 마니아들이 탄생했다는 사실에 놀란다. 유라시아대륙의 서쪽 끝, 브리튼 제도에 맨 구석에 위치한 섬나라, 한때 지지리도 가난했던 이 나라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한국을 닮은 나라, 아일랜드
아일랜드는 우리와 참 많이 닮았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라 모양부터가 남한 지도를 빼닮았다. 강대국과 해협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닿은 점도 닮았고, 그 때문에 겪은 고난의 역사도, 그런 역사가 낳은 국민적 심성도 그렇다. 민족주의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 못살고 가난하던 과거를 떨쳐 버리고 단숨에 경제대국의 되었다는 사실까지도 판박이다.
무엇보다도, 한국과 아일랜드 두 민족에게는 한(恨)이라고 부를 만한 정서가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다. 도쿄대학 총장을 지낸 야나이하라 다다오(矢內原忠雄)는 한국을 ‘일본의 아일랜드’라고 불렀다.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유럽연합(EU) 15개 회원국 가운데 민족적 자존심이 가장 강한 나라는 아일랜드였다. 그런 자부심이 잉글랜드에 짓눌려 700년간이나 무너져 있었다. 일제가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식민지배의 세월이 35년간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 20배나 되는 세월 동안 아일랜드 민족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두 민족 간의 불협화음은 명백했다. 잉글랜드인이 보기에 아일랜드인은 게으른 술주정뱅이, 구제불능의 ‘하얀 검둥이’였다. 아일랜드인이 눈에 비친 잉글랜드인은 체면치레에 급급한 속물, 무례하게 자기 민족의 운명에 끼어든 이방인이었다. 그렇게 역사적으로나 기질적으로 융합할 수 없는 두 민족이 한 국왕을 모시고 수백 년을 살았다. 둘 사이에 쌓인 오해와 불만의 앙금은 단순히 독립과 분리로 해소될 일이 아니었다. 잉글랜드는 아일랜드의 영원한 타자(他者)였고, 극복해야 할 필연적 과제였다.
잉글랜드를 뛰어넘다
눈을 들면 바다 아니면 감자밭밖에 볼 것 없던 아일랜드. 19세기 중엽 ‘감자마름병’으로 1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굶어죽은(‘감자대기근’) 이 가난한 나라가 IT산업으로 무장한 선진국이 되었다. 1980년대부터 단기간에 이룬 기적적인 성공으로 오늘날 아일랜드의 국내총생산(GDP)은 유럽 국가들 가운데 1, 2위를 다투고, 1인당 국민소득은 진작에 영국을 뛰어넘었다.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가 식민본국인 제국을 능가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건’이다. 우리는 어떤가? 일본은 여전히 우리보다 두 배 이상 잘사는 나라이고, 가까운 시일 내에 일본을 따라잡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일랜드 성공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아일랜드의 성공 비결
1973년 유럽연합에 가입한 이후 아일랜드는 외자 유치에 발벗고 나섰다. 외국 기업이 활동하기에 편리한 기업 환경을 만들어 주어, 실업률을 크게 낮추고 산업의 구조조정을 일궈 냈다. 실용주의가 이데올로기를 대체한 아일랜드에서, ‘더 많은 일자리, 더 많은 부(富)’가 ‘가난뿐인 영광’보다 훨씬 바람직하다는 사실은 이제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오랜 식민지 경험 탓에 ‘자립’을 신성한 절대가치로 믿었고, 외국 자본에 의한 경제 성장을 치욕으로 여겨 온 아일랜드 국민에게 이것은 실로 혁명적인 변화다.
정치적으로도, 전 세계가 놀란 대형 폭력 사건들을 벌여 온 북아일랜드 역시 평화적으로 민주화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 대립보다는 타협이, 투쟁보다는 상생이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길임을 아일랜드인들은 깨달은 것이다.
그래도 슬픈 나라, 아일랜드
이처럼 잘사는 나라가 되었음에도, 아일랜드인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비참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편집증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너무 오랜 세월 지배당한 역사가 이제는 국민성의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저항적인 민족주의에 길들여진 국민정서가 현재의 풍요를 마음껏 향유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일까?
아일랜드 사람들의 뇌리에 깊숙이 자리잡은 이러한 피해의식이 어쩌면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일종의 ‘위안’이 되고, 나아가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난히 비극적이고 참혹한’ 역사를 경험한 민족이 비단 아일랜드인뿐이던가. 도전과 응전으로 점철된 인류의 긴 역사에서 모든 민족은 저마다 처한 상황에 반응하는 방식이 달랐다. 이를 자각하기 시작한 일부 아일랜드 지식인들은, 편협한 역사의식의 미망에서 벗어나 제 나라의 역사를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함을 역설한다. 그런 점에서도 아일랜드는 역시 우리보다 한발 앞서 가고 있는 셈이다.
예이츠, 와일드, 버나드 쇼 ― 분열된 정체성
이 책에서 저자는, 아일랜드 역사에서 민족과 종교가 뒤얽혀 벌어진 마찰고 갈등의 양상부터 훑어본다. 토착 게일인, 잉글랜드로부터 이주한 가톨릭,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로부터 이주한 신교도 등 다양한 집단이 모여 살던 아일랜드에서 19세기에 민족 정통성에 대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찰스 스튜어트 파넬이 이끄는 아일랜드 자치운동, 게일 연맹 창설, 아일랜드 문예부흥 운동, 사회주의 노동운동, 부활절 봉기, 그리고 자유국과 북아일랜드 탄생 등 굵직한 사건들이 어지럽게 펼쳐진다. 이러한 격동기를 중심으로 저자는 아일랜드 근대사를 그토록 복잡하게 만든 민족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을 분석한다.
여기서 주목할 한 부류의 사람들이, 영국인의 후손이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아일랜드의 역사나 문화에서 찾은 문인들이다. 특히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오스카 와일드 그리고 버나드 쇼는 영국계 아일랜드인으로서 이중적 정체성과 분열된 충성심을 운명적으로 체험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신이 태어난 아일랜드에 대한 애정과 애착이 있으면서도 잉글랜드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기에 잉글랜드와의 연결고리를 끊으려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들은 식민지인으로서 ‘기원상의 모국’과 ‘정착지’ 사이를 떠도는 ‘분열된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일랜드 문화의 일부이면서도 동시에 그 문화로부터 떨어져 있는, 즉 잉글랜드성(Englishness)이라는 정서로 인해 아일랜드인의 정체성에서 분리된 존재였다.
“모든 아일랜드인의 희망과 야심은 아일랜드를 벗어날 기회 여하에 달렸다”라는 버나드 쇼의 말 그대로 이들은 모두 더블린을 떠나 런던에 정착했고, 문학적으로 성공하면서 영국 땅에서 ‘앵글로색슨의 어리석음에 대항하는 켈트인의 십자군 전쟁’을 치렀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느 곳에 있든지 더블린과 런던 사이를 방황하는 어중간한 존재에 불과했다.
미래를 사는 아일랜드, 과거에 묶인 한국
아일랜드와 잉글랜드의 관계는 절묘하게 한―일 관계와 중첩되는 것을, 독자는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발견하며 놀라게 된다. 잉글랜드인이 아일랜드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시각과 비슷했다. 잉글랜드인이 아일랜드인을 ‘하얀 검둥이’ ‘하얀 침팬지’라 부르며 켈트족의 신경질적이고 불안정한 기질 때문에 독립은커녕 자치조차 허용할 수 없다고 했던 것처럼, 일본인은 ‘더럽고 게으르고 무지하고, 육체노동에는 적합하지만 복잡한 과제를 수행할 수 없는 복종적인 어린애 같은’ 열등인간 조선인이 자주적으로 통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닮은꼴 역사가 우리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자기폐쇄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시각을 더 먼저 떨쳐버린 지금의 아일랜드는, 여전히 민족주의에 발목이 잡혀 있는 우리에게 좋은 전범이 될 것이다.
아일랜드는 더 이상 과거에 사는 나라가 아니다. 그들은 현재를 받아들이고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우리와 너무도 닮았던 아일랜드가 변화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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