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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의 정치는 소통을 거부하면서 상대방을 물어뜯으려고만 하는 ‘좀비 정치’다. 좀비는 머리가 텅텅 비어 생각 자체를 못하고 움직이기만 하는 존재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을 물어뜯어 자신처럼 만들려는 본능을 발휘할 때에는 전혀 무기력하지 않다. 놀라울 정도로 공격적이고 날렵하기까지 하다. 이들은 상대편을 무조건 악마로 규정한다. 이런 ‘극단의 네거티브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음모론을 구사한다. 음모론은 공포심을 부추겨 적에 대한 ‘증오 정치’를 정당화하며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순수성이라는 ‘도덕적 면허’를 앞세워 정치적 반대파에게 법과 윤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호전적인 공격성을 보인다.
이들은 정치적 신념을 종교화한 사람들이기에 정치에 적극 참여한다. 이들에게는 증오가 필수다. 반대편에 대한 증오 없이는 신도들을 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편 가르기는 ‘이권 쟁탈전’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편 가르기에는 진영 논리가 따라붙는다. 진영 논리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진영 논리의 독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강성 지지층의 저주는 정치를 반정치로 만드는 원동력이다. 승자 독식 전쟁에서 이성과 양심은 독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정치는 말로 싸우는 격투기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어쩌면 이 모든 게 ‘승자 독식의 정치’와 ‘제왕적 대통령제’의 종언을 향해서 나아가는 마지막 길목을 장식하는 거대 이벤트일 수도 있다.
강준만은 『좀비 정치』에서 한국의 ‘좀비 정치’를 비판한다. ‘너를 물어뜯어야만 내가 산다’, ‘그들을 물어뜯어야만 우리가 산다’는 반정치가 정치를 타락시켰다고 말한다. 내로남불은 여야를 막론하고 저질러지며,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그러면서 “특정 정치적 신념이나 노선을 내세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증오하면서 욕설과 악플로 공격하는 정치적 광신도들의 의식과 행태”는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증오를 선동하는 ‘좀비 정치’의 메커니즘만 존재할 뿐이다.
이들은 정치적 신념을 종교화한 사람들이기에 정치에 적극 참여한다. 이들에게는 증오가 필수다. 반대편에 대한 증오 없이는 신도들을 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편 가르기는 ‘이권 쟁탈전’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편 가르기에는 진영 논리가 따라붙는다. 진영 논리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진영 논리의 독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강성 지지층의 저주는 정치를 반정치로 만드는 원동력이다. 승자 독식 전쟁에서 이성과 양심은 독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정치는 말로 싸우는 격투기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어쩌면 이 모든 게 ‘승자 독식의 정치’와 ‘제왕적 대통령제’의 종언을 향해서 나아가는 마지막 길목을 장식하는 거대 이벤트일 수도 있다.
강준만은 『좀비 정치』에서 한국의 ‘좀비 정치’를 비판한다. ‘너를 물어뜯어야만 내가 산다’, ‘그들을 물어뜯어야만 우리가 산다’는 반정치가 정치를 타락시켰다고 말한다. 내로남불은 여야를 막론하고 저질러지며,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그러면서 “특정 정치적 신념이나 노선을 내세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증오하면서 욕설과 악플로 공격하는 정치적 광신도들의 의식과 행태”는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증오를 선동하는 ‘좀비 정치’의 메커니즘만 존재할 뿐이다.
목차
머리말 : ‘좀비 정치’의 시대 · 4
제1장 이재명의 만독불침 투쟁사
윤석열도 부러워한 이재명의 ‘깡’ · 15
이재명 캠프의 ‘가난 마케팅’ · 22
정치 팬덤은 증오를 먹고산다 · 29
이재명의 ‘균형발전 내로남불’인가? · 43
이재명 지지자들의 세 가지 유형 · 53
제2장 윤석열의 리더십
윤석열은 ‘법조 공화국’을 완성하려는가? · 67
윤석열의 ‘검찰정권’에 대한 분노와 공포 · 73
윤석열이 ‘반노동적 노동관’을 벗어나려면 · 79
이준석의 영악한 ‘치킨 게임’ · 90
‘갈라파고스 정당’이 만든 ‘김종인 현상’ · 102
제3장 문재인의 오만과 비극
문재인의 착한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 · 115
왜 이낙연은 혼자 소리내어 울었을까? · 130
문재인이 촉진한 공무원의 ‘복지부동’ · 135
문재인 정권의 집요한 ‘통계 조작’ · 140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된 비극 · 150
제4장 너는 어느 편이냐?
유시민, 제2의 ‘어용 지식인’ 선언인가? · 161
왜 정청래는 ‘인간 이재명’을 흐느끼며 읽었을까? · 166
김원웅은 ‘토착왜구 정당’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까? · 173
왜 박노자의 눈엔 ‘극우’만 보이는 걸까? · 181
조은산,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지 마라 · 188
제5장 진영 논리와 반정치
부족주의 진영 논리가 반정치를 키운다 · 195
‘강성 지지층의 저주’와 싸우는 진중권 · 199
‘진영 논리의 독재’에 도전한 김동연 · 205
이건희, 정관용, 장강명의 ‘회색 예찬론’ · 209
소설가 김훈은 ‘꽉 막힌 꼰대’인가? · 213
제6장 승자 독식과 증오 정치
‘증오 정치’를 키우는 ‘승자 독식’ · 219
윤희숙, 내로남불은 반민주적 악행이다 · 223
한국 정치판의 ‘꼴통’을 배격한 정두언 · 227
‘혐오 산업’이 된 정치를 구하려는 박용진 · 231
‘허경영 현상’과 ‘경마 엔터테인먼트’ · 235
제7장 정치가 사적 보복의 도구인가?
2년 넘게 매일 ‘쿠데타’를 외치는 나라 · 243
김의겸, 왜 ‘피 맛’ 운운하며 흥분하는 걸까? · 248
권경애, 우리가 꿈꿨던 세상이 이거였는가? · 260
검찰 개혁은 ‘원한을 갚기 위한 보복 수단’이었는가? · 265
언론도 ‘원한’의 대상인가? · 269
제8장 부동산 약탈과 지방 소멸
삼호어묵이 김현미 자리에 앉았더라면 · 279
김수현은 ‘부동산 약탈’의 책임이 없는가? · 285
마강래, 집값 폭등은 ‘서울 공화국’의 저주다 · 290
‘1당 독재’에 죽어가는 ‘풀뿌리 민주주의’ · 295
‘지잡대’라며 누워서 침 뱉는 못난 사람들 · 299
맺는말 : ‘좀비 정치’를 넘어서 · 305
주 · 310
제1장 이재명의 만독불침 투쟁사
윤석열도 부러워한 이재명의 ‘깡’ · 15
이재명 캠프의 ‘가난 마케팅’ · 22
정치 팬덤은 증오를 먹고산다 · 29
이재명의 ‘균형발전 내로남불’인가? · 43
이재명 지지자들의 세 가지 유형 · 53
제2장 윤석열의 리더십
윤석열은 ‘법조 공화국’을 완성하려는가? · 67
윤석열의 ‘검찰정권’에 대한 분노와 공포 · 73
윤석열이 ‘반노동적 노동관’을 벗어나려면 · 79
이준석의 영악한 ‘치킨 게임’ · 90
‘갈라파고스 정당’이 만든 ‘김종인 현상’ · 102
제3장 문재인의 오만과 비극
문재인의 착한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 · 115
왜 이낙연은 혼자 소리내어 울었을까? · 130
문재인이 촉진한 공무원의 ‘복지부동’ · 135
문재인 정권의 집요한 ‘통계 조작’ · 140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된 비극 · 150
제4장 너는 어느 편이냐?
유시민, 제2의 ‘어용 지식인’ 선언인가? · 161
왜 정청래는 ‘인간 이재명’을 흐느끼며 읽었을까? · 166
김원웅은 ‘토착왜구 정당’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까? · 173
왜 박노자의 눈엔 ‘극우’만 보이는 걸까? · 181
조은산,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지 마라 · 188
제5장 진영 논리와 반정치
부족주의 진영 논리가 반정치를 키운다 · 195
‘강성 지지층의 저주’와 싸우는 진중권 · 199
‘진영 논리의 독재’에 도전한 김동연 · 205
이건희, 정관용, 장강명의 ‘회색 예찬론’ · 209
소설가 김훈은 ‘꽉 막힌 꼰대’인가? · 213
제6장 승자 독식과 증오 정치
‘증오 정치’를 키우는 ‘승자 독식’ · 219
윤희숙, 내로남불은 반민주적 악행이다 · 223
한국 정치판의 ‘꼴통’을 배격한 정두언 · 227
‘혐오 산업’이 된 정치를 구하려는 박용진 · 231
‘허경영 현상’과 ‘경마 엔터테인먼트’ · 235
제7장 정치가 사적 보복의 도구인가?
2년 넘게 매일 ‘쿠데타’를 외치는 나라 · 243
김의겸, 왜 ‘피 맛’ 운운하며 흥분하는 걸까? · 248
권경애, 우리가 꿈꿨던 세상이 이거였는가? · 260
검찰 개혁은 ‘원한을 갚기 위한 보복 수단’이었는가? · 265
언론도 ‘원한’의 대상인가? · 269
제8장 부동산 약탈과 지방 소멸
삼호어묵이 김현미 자리에 앉았더라면 · 279
김수현은 ‘부동산 약탈’의 책임이 없는가? · 285
마강래, 집값 폭등은 ‘서울 공화국’의 저주다 · 290
‘1당 독재’에 죽어가는 ‘풀뿌리 민주주의’ · 295
‘지잡대’라며 누워서 침 뱉는 못난 사람들 · 299
맺는말 : ‘좀비 정치’를 넘어서 · 305
주 · 310
책 속으로
내가 ‘아프리카 발언’에 집착해 그의 진정성을 의심한 나머지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프리카 발언’을 가벼운 실언으로 넘기긴 어렵다. 이 발언을 “독불장군식 매표 행위”라고 비판했던 김두관은 지금 이재명 캠프의 균형발전 총책을 맡고 있는데, “독불장군식 매표 행위”는 자신의 오해였다고 생각한 걸까?
이재명이 다른 기회에 자신의 ‘아프리카 발언’에 대해 말해주면 좋겠다. 그가 즐겨 쓰는 어법처럼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도 똑같이 말했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잘못된 생각이었다며 후회하는지, 솔직한 말을 듣고 싶다. 대통령이 되어서 수도권의 잘나가는 지자체의 장들이 ‘아프리카’ 운운하면서 균형발전에 역행할 때에 잘하는 일이라고 박수를 칠 것인지, 아니면 감사권과 수사권을 동원해 ‘보복성 조치’를 취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제3의 방책이 있는 것인지 그것도 알고 싶다.
---「이재명의 ‘균형발전 내로남불’인가?」중에서
최저임금위원회를 내세워 정권이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쇼를 해놓고 그로 인한 문제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이런저런 압력을 통해 1.5퍼센트(2021년)라는 최저점을 찍도록 한 게 아닌가? “어려운 사람을 돕고 살자는 명분이 아름다우니 일단 저질러놓고 보자. 문제 생기면 그때 가서 땜질 하면 될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재인 정권의 기본적인 국정 운영 자세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윤석열에게 그럴 생각과 역량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정작 제기했어야 했던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친노동적 노동관, 선진적 노동관’으로 통용되는 것이 철저하게 ‘정규직 중심주의’에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걸 공격하고 나서는 게 그가 ‘반노동적 노동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윤석열이 ‘반노동적 노동관’을 벗어나려면」중에서
문재인의 대선 공약이었던 ‘5대 인사 원칙’, 집권 이후 내세운 ‘7대 인사 원칙’을 지켰는데도 야당이 반대했다는 건가? 약속을 했던 그때와 지금이 어떻게 다른지 성실하게 설명하는 시도라도 하면서 그런 말씀을 하셔야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야당과 언론이 문재인의 이전 약속을 지적하면서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하리라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단 말인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수십 번 반복된 패턴이다. 대통령을 비롯해 정권 고위 인사들의 예전 발언과 나중에 180도 달라진 발언을 비교하면서 비판하는 패턴이 4년 내내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그러거나 말거나’ 태도로 일관하고 있으니 세상에 이런 ‘강심장’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된 비극」중에서
나는 김원웅이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중 어떤 길을 걸었을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별 관심도 없다. 하지만 김원웅이 그 긴 세월 동안 공화당·민정당·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토착왜구 정당’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지 그건 궁금하다. 매일 엄청난 고통을 느끼면서 죽지 못해 살았을까? 이 의문과 관련된 그의 ‘처절한 서사’를 듣고 싶다.
내가 큰 관심을 갖는 건 ‘비판의 자격’이다. 개과천선한 사람이라도 지켜야 할 선은 있는 법이다.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정의를 위한 전사로 새로 태어났더라도 자신이 뒤늦게 갖게 된 정의감을 다른 사람들을 거칠게 공격하는 무기나 완장으로 쓰는 건 곤란하다. 최소한의 겸허함은 보여야 한다. 내가 김원웅을 ‘강심장’이라고 한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김원웅은 ‘토착왜구 정당’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까?」중에서
일방적인 반정치 비판은 본의 아니게 현실과 동떨어진 엘리트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다. 유권자들의 정치 불신과 혐오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형성된 것이다. 예컨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광풍 속에서 정부 여당을 믿었다가 날벼락을 맞은 무주택자가 정치를 혐오하면서 “여당이나 야당이나 다 똑같은 놈들”이라고 외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반정치를 옹호하는 것인가?
그게 아니다. 반정치보다 위험하고 무서운 게 있다는 걸 말하려는 것이다. 그건 바로 ‘부족주의 진영 논리’다. 이성을 억누르고 감성의 폭풍을 일으키면서 온 사회를 진영 간 전쟁터로 몰아가는 건 부족주의 진영 논리이지 반정치가 아니다.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부족주의 진영 논리가 오히려 반정치를 키우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부족주의 진영 논리가 반정치를 키운다」중에서
전부는 아닐망정 선악(善惡) 이분법에 중독되어 있는 많은 유권자도 사실상 공범으로 가세하고 있다. 자신이 선과 정의의 편이라고 믿으면서 상대편을 ‘적폐’로 보게 되면 내로남불은 악덕이 아니라 미덕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유권자들을 무작정 나무랄 수는 없으니 윤희숙이 했던 것처럼 유권자들에게 끊임없이 호소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파시즘을 원한다고 그런다면 그건 별도로 논의해볼 문제겠지만, 그게 아니라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답은 이미 나와 있지 않은가? 내로남불은 반(反)민주적 악행이다! 우리 인간의 기억력은 의외로 부실한 만큼 얼마든지 내로남불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런 실수는 곧장 바로잡으면 된다. 문제는 내로남불임을 알면서도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내로남불이다.
---「윤희숙, 내로남불은 반민주적 악행이다」중에서
‘노코멘트’ 할 일이 아니다. 공개적으로 사과를 해야 마땅한 일이다. 김의겸의 각색된 전언을 바탕으로 많은 ‘소설’이 쓰이지 않았던가? 예컨대, 추미애는 김건희가 “청와대 권력이 현실화된다는 자신감을 비치며 으르고 달래고 겁주는 태도를 드러낸 것”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는데, 김의겸은 김건희를 과대평가하는 헛발질을 한 추미애에게도 사과해야 마땅하다.
올곧고 의로운 언론인이었던 김의겸이 어쩌자고 이렇게까지 ‘타락’했는지 보기에 정말 딱하다. 검찰 개혁을 위한 충정과 그에 따른 윤석열에 대한 증오 때문인가? 김의겸은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그런 ‘탐사 정치’를 하는지는 몰라도 자신은 기자 시절에 그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검찰 개혁 강경파가 아니었다는 걸 상기해보는 게 좋겠다.
---「김의겸, 왜 ‘피 맛’ 운운하며 흥분하는 걸까?」중에서
이 정도면 운이 없는 게 아니라 무능했던 거다. 그리고 그 무능의 정체가 운동권 대학생 수준의 ‘도그마’에 사로잡힌 오만한 고집이었기 때문에 더욱 비판받아 마땅하다. 총체적 분석을 제시하고자 했던 마강래의 선의는 믿어 의심치 않지만, 이 책의 다른 두 군데에서도 문재인 정권이 “지지리도 운이 없다”는 식의 말씀을 하셔서 ‘옥의 티’로 거론한 것임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문재인 정권의 책임을 묻는 것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이다. 집값 폭등은 ‘서울 공화국’의 저주라는 걸 밝히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문재인 정권은 ‘서울 공화국’을 넘어서기 위한 이렇다 할 비전이나 정책을 제시하거나 실천하지 않은 정권이 아니었던가? 바로 이 점에 대한 철저한 성찰이 있어야 집값 폭등이라는 비극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이재명이 다른 기회에 자신의 ‘아프리카 발언’에 대해 말해주면 좋겠다. 그가 즐겨 쓰는 어법처럼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도 똑같이 말했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잘못된 생각이었다며 후회하는지, 솔직한 말을 듣고 싶다. 대통령이 되어서 수도권의 잘나가는 지자체의 장들이 ‘아프리카’ 운운하면서 균형발전에 역행할 때에 잘하는 일이라고 박수를 칠 것인지, 아니면 감사권과 수사권을 동원해 ‘보복성 조치’를 취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제3의 방책이 있는 것인지 그것도 알고 싶다.
---「이재명의 ‘균형발전 내로남불’인가?」중에서
최저임금위원회를 내세워 정권이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쇼를 해놓고 그로 인한 문제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이런저런 압력을 통해 1.5퍼센트(2021년)라는 최저점을 찍도록 한 게 아닌가? “어려운 사람을 돕고 살자는 명분이 아름다우니 일단 저질러놓고 보자. 문제 생기면 그때 가서 땜질 하면 될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재인 정권의 기본적인 국정 운영 자세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윤석열에게 그럴 생각과 역량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정작 제기했어야 했던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친노동적 노동관, 선진적 노동관’으로 통용되는 것이 철저하게 ‘정규직 중심주의’에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걸 공격하고 나서는 게 그가 ‘반노동적 노동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윤석열이 ‘반노동적 노동관’을 벗어나려면」중에서
문재인의 대선 공약이었던 ‘5대 인사 원칙’, 집권 이후 내세운 ‘7대 인사 원칙’을 지켰는데도 야당이 반대했다는 건가? 약속을 했던 그때와 지금이 어떻게 다른지 성실하게 설명하는 시도라도 하면서 그런 말씀을 하셔야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야당과 언론이 문재인의 이전 약속을 지적하면서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하리라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단 말인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수십 번 반복된 패턴이다. 대통령을 비롯해 정권 고위 인사들의 예전 발언과 나중에 180도 달라진 발언을 비교하면서 비판하는 패턴이 4년 내내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그러거나 말거나’ 태도로 일관하고 있으니 세상에 이런 ‘강심장’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된 비극」중에서
나는 김원웅이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중 어떤 길을 걸었을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별 관심도 없다. 하지만 김원웅이 그 긴 세월 동안 공화당·민정당·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토착왜구 정당’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지 그건 궁금하다. 매일 엄청난 고통을 느끼면서 죽지 못해 살았을까? 이 의문과 관련된 그의 ‘처절한 서사’를 듣고 싶다.
내가 큰 관심을 갖는 건 ‘비판의 자격’이다. 개과천선한 사람이라도 지켜야 할 선은 있는 법이다.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정의를 위한 전사로 새로 태어났더라도 자신이 뒤늦게 갖게 된 정의감을 다른 사람들을 거칠게 공격하는 무기나 완장으로 쓰는 건 곤란하다. 최소한의 겸허함은 보여야 한다. 내가 김원웅을 ‘강심장’이라고 한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김원웅은 ‘토착왜구 정당’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까?」중에서
일방적인 반정치 비판은 본의 아니게 현실과 동떨어진 엘리트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다. 유권자들의 정치 불신과 혐오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형성된 것이다. 예컨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광풍 속에서 정부 여당을 믿었다가 날벼락을 맞은 무주택자가 정치를 혐오하면서 “여당이나 야당이나 다 똑같은 놈들”이라고 외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반정치를 옹호하는 것인가?
그게 아니다. 반정치보다 위험하고 무서운 게 있다는 걸 말하려는 것이다. 그건 바로 ‘부족주의 진영 논리’다. 이성을 억누르고 감성의 폭풍을 일으키면서 온 사회를 진영 간 전쟁터로 몰아가는 건 부족주의 진영 논리이지 반정치가 아니다.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부족주의 진영 논리가 오히려 반정치를 키우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부족주의 진영 논리가 반정치를 키운다」중에서
전부는 아닐망정 선악(善惡) 이분법에 중독되어 있는 많은 유권자도 사실상 공범으로 가세하고 있다. 자신이 선과 정의의 편이라고 믿으면서 상대편을 ‘적폐’로 보게 되면 내로남불은 악덕이 아니라 미덕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유권자들을 무작정 나무랄 수는 없으니 윤희숙이 했던 것처럼 유권자들에게 끊임없이 호소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파시즘을 원한다고 그런다면 그건 별도로 논의해볼 문제겠지만, 그게 아니라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답은 이미 나와 있지 않은가? 내로남불은 반(反)민주적 악행이다! 우리 인간의 기억력은 의외로 부실한 만큼 얼마든지 내로남불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런 실수는 곧장 바로잡으면 된다. 문제는 내로남불임을 알면서도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내로남불이다.
---「윤희숙, 내로남불은 반민주적 악행이다」중에서
‘노코멘트’ 할 일이 아니다. 공개적으로 사과를 해야 마땅한 일이다. 김의겸의 각색된 전언을 바탕으로 많은 ‘소설’이 쓰이지 않았던가? 예컨대, 추미애는 김건희가 “청와대 권력이 현실화된다는 자신감을 비치며 으르고 달래고 겁주는 태도를 드러낸 것”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는데, 김의겸은 김건희를 과대평가하는 헛발질을 한 추미애에게도 사과해야 마땅하다.
올곧고 의로운 언론인이었던 김의겸이 어쩌자고 이렇게까지 ‘타락’했는지 보기에 정말 딱하다. 검찰 개혁을 위한 충정과 그에 따른 윤석열에 대한 증오 때문인가? 김의겸은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그런 ‘탐사 정치’를 하는지는 몰라도 자신은 기자 시절에 그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검찰 개혁 강경파가 아니었다는 걸 상기해보는 게 좋겠다.
---「김의겸, 왜 ‘피 맛’ 운운하며 흥분하는 걸까?」중에서
이 정도면 운이 없는 게 아니라 무능했던 거다. 그리고 그 무능의 정체가 운동권 대학생 수준의 ‘도그마’에 사로잡힌 오만한 고집이었기 때문에 더욱 비판받아 마땅하다. 총체적 분석을 제시하고자 했던 마강래의 선의는 믿어 의심치 않지만, 이 책의 다른 두 군데에서도 문재인 정권이 “지지리도 운이 없다”는 식의 말씀을 하셔서 ‘옥의 티’로 거론한 것임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문재인 정권의 책임을 묻는 것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이다. 집값 폭등은 ‘서울 공화국’의 저주라는 걸 밝히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문재인 정권은 ‘서울 공화국’을 넘어서기 위한 이렇다 할 비전이나 정책을 제시하거나 실천하지 않은 정권이 아니었던가? 바로 이 점에 대한 철저한 성찰이 있어야 집값 폭등이라는 비극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마강래, 집값 폭등은 ‘서울 공화국’의 저주다」중에서
출판사 리뷰
좀비 정치에 감염된 사람들
“좀비 정치는 증오 정치, 반정치, 진영 논리, 승자 독식을 먹고산다!”
한국의 정치는 소통을 거부하면서 상대방을 물어뜯으려고만 하는 ‘좀비 정치’다. 좀비는 머리가 텅텅 비어 생각 자체를 못하고 움직이기만 하는 존재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을 물어뜯어 자신처럼 만들려는 본능을 발휘할 때에는 전혀 무기력하지 않다. 놀라울 정도로 공격적이고 날렵하기까지 하다. 이들은 상대편을 무조건 악마로 규정한다.
이런 ‘극단의 네거티브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음모론을 구사한다. 음모론은 공포심을 부추겨 적에 대한 ‘증오 정치’를 정당화하며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순수성이라는 ‘도덕적 면허’를 앞세워 정치적 반대파에게 법과 윤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호전적인 공격성을 보인다.
이들은 정치적 신념을 종교화한 사람들이기에 정치에 적극 참여한다. 이들에게는 증오가 필수다. 반대편에 대한 증오 없이는 신도들을 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편 가르기는 ‘이권 쟁탈전’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편 가르기에는 진영 논리가 따라붙는다. 진영 논리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진영 논리의 독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강성 지지층의 저주는 정치를 반정치로 만드는 원동력이다. 승자 독식 전쟁에서 이성과 양심은 독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정치는 말로 싸우는 격투기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어쩌면 이 모든 게 ‘승자 독식의 정치’와 ‘제왕적 대통령제’의 종언을 향해서 나아가는 마지막 길목을 장식하는 거대 이벤트일 수도 있다.
강준만은 『좀비 정치』에서 한국의 ‘좀비 정치’를 비판한다. ‘너를 물어뜯어야만 내가 산다’, ‘그들을 물어뜯어야만 우리가 산다’는 반정치가 정치를 타락시켰다고 말한다. 내로남불은 여야를 막론하고 저질러지며,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그러면서 “특정 정치적 신념이나 노선을 내세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증오하면서 욕설과 악플로 공격하는 정치적 광신도들의 의식과 행태”는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증오를 선동하는 ‘좀비 정치’의 메커니즘만 존재할 뿐이다.
강준만의 『좀비 정치』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슈를 다룬다. 제1장은 이재명의 만독불침 투쟁사다. 이재명은 자신이 “적진에서 날아온 탄환과 포탄을 모아 부자가 되고 이긴 사람”이라며 “‘만독불침’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호언했다. 그러나 이재명의 만독불침은 국가적 차원에서 발휘될 때에는 이상하고 무모한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제2장은 윤석열의 리더십이다. 최근 국민의힘의 내홍과 윤석열의 말실수 논란은 윤석열 리더십의 부재 또는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당대표 이준석은 ‘치킨 게임’을 하며 과도한 자기중심주의 정치를 하고 있다. 제3장은 문재인 혹은 문재인 정권의 무능과 오만을 다룬다. 이제 내로남불은 문재인 정권의 상징이자 속성처럼 되어버렸다.
제4장은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유시민, 정청래, 김원웅, 박노자, 조은산을 다룬다. 제5장은 진영 논리와 반정치가 정치를 어떻게 무너뜨리고 있으며, ‘강성 지지층의 저주’와 싸우는 진중권과 ‘진영 논리의 독재’에 도전한 김동연을 다룬다. 제6장은 승자 독식과 증오 정치가 어떻게 정치 혐오를 불러오는지, 좀비 정치에 도전한 윤희숙?정두언?박용진을 다룬다. 제7장은 정치가 과연 사적 보복의 도구인지,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 김의겸은 왜 ‘피 맛’ 운운하며 흥분하는지, 권경애가 꿈꿨던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다룬다. 제8장은 부동산 약탈과 지방 소멸에 과연 해법이 있는지, ‘서울 공화국’의 문제와 ‘1당 독재’의 폐해를 다룬다.
이재명을 믿을 수 있을까?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에게는 수많은 사건과 의혹이 있지만, 그는 무협지에나 나오는 만독불침을 현실 세계에서 구현해 보인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박수를 보낼 만한 일이지만, 공적 차원에서는 이런 의문이 든다. 깡과 ‘긍정과 희망’이 무조건 다다익선은 아닐진대, 과유불급의 문제는 없을까? 이재명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너무 쉽게 말하는 건 아닐까?
다시 말해 이재명의 개인적인 깡은 긍정 평가하면서도 그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발휘될 때에는 좀 이상하고 무모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화려하고 추상적인 언어의 성찬’에만 주력하고 있는데,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대선 후보라면 철학과 열정과 진정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어떤 일을 하는 데 미치광이처럼 그 일에 미쳐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지지자들은 불광불급의 상태가 가져올 수 있는 추진력과 파괴력을 사랑하면서, 이재명의 그런 화끈한 비타협주의와 상대 진영에 대한 냉혹함을 사랑한다. 여기에 아프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은 사람들이 갖는 ‘아픔의 연대 의식’에도 공감한다.
그러나 이재명은 “재난지원금을 30만 원씩 50번, 100번 지급해도 서구 선진국의 국가부채비율에 도달하지 않는다”거나 ‘전두환에 대한 평가’가 상황에 따라 달라지거나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를 아프리카’에 비유하거나 ‘내가 하면 균형발전이고 네가 하면 지방자치 탄압’이라고 하는 이재명의 말은 좀 어지럽다. 어쩌면 이재명은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이라고 할 ‘증오 정치’의 한복판에 선 대표적 전사(戰士)라는 생각이 든다.
윤석열이 ‘반노동적 노동관’을 벗어나려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은 자신의 ‘26년간 검사’ 경력을 내세우면서 “당선 즉시 흉악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겠다”고 했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뜻으로 한 말이라지만, 너무 낡은 생각이다. 게다가 ‘검찰주의자·검찰 공화국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할 말도 아니다. 아예 눈치조차 없는 건가? 하긴 눈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니까 문재인 정권이 펄펄 뛸 ‘조국 수사’도 밀어붙였겠지만 말이다.
윤석열의 ‘주52시간제 철폐’ 발언은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이 쏟아졌다. 왜 윤석열은 스스로 반노동적이고 후진적인 노동관을 계속 쏟아내는 걸까? 윤석열은 기업들의 고충과 일부 노동자들의 불만을 지적하려는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120시간이라도’라거나 ‘개선’ 대신 ‘철폐’라는 과격한 말을 쓸 필요는 없었다. 그로 인한 거센 반발이 나온 직후에 보이는 친노동 행보는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아니면 그 어떤 반대와 비난이 있더라도 ‘마이웨이’를 달리겠다는 걸까?
윤석열은 늘 보기에 딱하다.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을 모른다. 공개되지 않는 사랑방 잡담회 수준의 언어를 언론 앞에서도 그대로 구사함으로써 자주 화를 자초한다. 평소 말을 신중하게 하지 못하는 윤석열의 한계와 결함은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이거니와 비판받아 마땅하다. 더구나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과 윤석열 사이에서 벌어진 치킨 게임은 “윤석열 후보의 부재한 정치철학과 무능한 리더십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할 만하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의 정치력을 높게 평가한다는 긍정 평가가 우세한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윤석열이 ‘백기 투항’을 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누가 잘했건 잘못했건, 책임의 비중을 어떻게 나누건, 최종 책임은 윤석열에게 있다. 윤석열 리더십의 부재 또는 한계, 이 한마디로 총평을 내려도 무방할 것 같다.
문재인 정권의 무능과 오만
문재인 정권이 노무현 정권의 실패에서 아무런 배움이나 교훈도 얻지 못한 것은 바로 ‘증오의 무책임 메커니즘’ 때문이다. 문재인 팬덤은 늘 문재인의 뜻에 따르면서 문재인의 성공을 위한 일편단심으로 사는가? 문재인의 성공을 위해 문재인의 뜻을 거스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문재인의 뜻에 따르건 따르지 않건 그들이 오히려 문재인의 실패를 위해 애쓰는 경우도 가능하다.
더구나 증오를 먹고사는 정치인 팬덤은 책임을 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사전에 ‘책임’이라는 단어는 없다. 그들이 밀어붙인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그것은 자기들의 문제가 아니라 반대편의 음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권의 상징이자 속성처럼 되어버린 ‘내로남불’만 해도 그렇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내로남불의 덫을 어느 정도나마 피해갈 수 있음에도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문재인은 2017년 대선 때 뇌물, 알선수재, 알선수뢰, 배임, 횡령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와 반(反)시장 범죄를 저지른 기업인 등에 대한 사면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그런데 2021년 12월 박근혜의 사면에 전 총리 한명숙의 복권을 끼워 넣었다. 더구나 야당에서는 이번에 이명박 사면을 뺀 것은 나중에 문재인의 최측근 김경수 사면을 끼워 넣기 위해 남겨둔 카드라는 말이 나온다.
문재인의 대선 공약이었던 ‘5대 인사 원칙’, 집권 이후 내세운 ‘7대 인사 원칙’을 약속했지만, 그것을 지켰는가? 문재인은 야당 동의 없이 임명한 장관급 인사가 30명을 넘는다. 노무현 정권 3명, 이명박 정권 17명, 박근혜 정권 10명 등 도합 30명을 넘어선 기록이다. 또 문재인 정부는 공무원의 ‘복종 의무’를 강조하는 동시에 공무원의 영혼을 강력히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명실상부한 ‘청와대 정부’가 되고 말았다. 남은 짧은 기간이나마 문재인이 ‘책임 회피형’ 대통령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좀비 정치에 도전한 사람들
‘진영 논리의 독재’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자기 진영 금기 깨기’다. 기존 ‘대결의 정치’를 새로운 ‘타협의 정치’로 만들어야 한다. ‘자기 진영 금기 깨기’의 최대 장벽이 바로 강성 지지자들의 거센 반발이다. 그렇게 해서 나타나는 ‘진영 논리의 독재’를 타도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다.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음지에서 어떤 식으로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양지로 나와야 한다. 이런 ‘부족주의 진영 논리’는 이성을 억누르고 감성의 폭풍을 일으키면서 온 사회를 진영 간 전쟁터로 몰아간다.
전 국회의원 정두언은 “우리 정치의 가장 큰 잘못 중 하나가 국민을 편 가르기 하고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 이를 이용한 것이다”고 개탄했다. 정두언은 이른바 ‘진영 논리’에서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다른 의견을 경청하고 인정하는 정치인이었다. “좌면 어떻고 우면 어떻다는 것인가?”라는 말로 대변되는 그의 실용주의 개혁 노선이 이를 증명해준다.
전 국회의원 윤희숙은 여권뿐만 아니라 야권을 향해서도 내로남불을 중단하자고 호소한다. 왜 윤희숙은 이런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을까? 정책 전문가로서 정치에 입문한 후 “정치가 안 바뀌면 정책도 의미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윤희숙처럼 ‘진영 논리와 내로남불의 정치’를 바로잡으려는 정치인은 드물다.
국회의원 박용진은 ‘혐오 산업’이 된 정치를 구하려고 한 정치인이다. 4년 전 ‘유치원 3법’으로 그의 활약상을 보았고, 최근에는 국민연금 개혁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정치가 욕하면서도 즐겨 찾는 혐오 산업이 된 상황에서 박용진과 같은 정치인들의 도전과 용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변호사 권경애는 서울과 경기도에서 노동운동을 하느라 대학을 입학한 지 12년 만에 졸업했다. ‘조국 사태’가 일어난 후 문재인 정권의 정략적인 검찰 개혁에 비판적인 논조의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러자 문재인 정권의 운동권 출신 인사들은 압박과 회유를 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진보적 운동을 했고 지금도 진보적 활동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면 타도하거나 상종하지 말아야 할 ‘적’이 되고 만다. 그 과정에서 ‘진보’는 이권 집단의 위장용 브랜드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역사는 때로 후퇴하거나 지그재그로 오락가락하면서 진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좀비 정치는 증오 정치, 반정치, 진영 논리, 승자 독식을 먹고산다!”
한국의 정치는 소통을 거부하면서 상대방을 물어뜯으려고만 하는 ‘좀비 정치’다. 좀비는 머리가 텅텅 비어 생각 자체를 못하고 움직이기만 하는 존재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을 물어뜯어 자신처럼 만들려는 본능을 발휘할 때에는 전혀 무기력하지 않다. 놀라울 정도로 공격적이고 날렵하기까지 하다. 이들은 상대편을 무조건 악마로 규정한다.
이런 ‘극단의 네거티브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음모론을 구사한다. 음모론은 공포심을 부추겨 적에 대한 ‘증오 정치’를 정당화하며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순수성이라는 ‘도덕적 면허’를 앞세워 정치적 반대파에게 법과 윤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호전적인 공격성을 보인다.
이들은 정치적 신념을 종교화한 사람들이기에 정치에 적극 참여한다. 이들에게는 증오가 필수다. 반대편에 대한 증오 없이는 신도들을 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편 가르기는 ‘이권 쟁탈전’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편 가르기에는 진영 논리가 따라붙는다. 진영 논리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진영 논리의 독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강성 지지층의 저주는 정치를 반정치로 만드는 원동력이다. 승자 독식 전쟁에서 이성과 양심은 독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정치는 말로 싸우는 격투기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어쩌면 이 모든 게 ‘승자 독식의 정치’와 ‘제왕적 대통령제’의 종언을 향해서 나아가는 마지막 길목을 장식하는 거대 이벤트일 수도 있다.
강준만은 『좀비 정치』에서 한국의 ‘좀비 정치’를 비판한다. ‘너를 물어뜯어야만 내가 산다’, ‘그들을 물어뜯어야만 우리가 산다’는 반정치가 정치를 타락시켰다고 말한다. 내로남불은 여야를 막론하고 저질러지며,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그러면서 “특정 정치적 신념이나 노선을 내세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증오하면서 욕설과 악플로 공격하는 정치적 광신도들의 의식과 행태”는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증오를 선동하는 ‘좀비 정치’의 메커니즘만 존재할 뿐이다.
강준만의 『좀비 정치』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슈를 다룬다. 제1장은 이재명의 만독불침 투쟁사다. 이재명은 자신이 “적진에서 날아온 탄환과 포탄을 모아 부자가 되고 이긴 사람”이라며 “‘만독불침’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호언했다. 그러나 이재명의 만독불침은 국가적 차원에서 발휘될 때에는 이상하고 무모한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제2장은 윤석열의 리더십이다. 최근 국민의힘의 내홍과 윤석열의 말실수 논란은 윤석열 리더십의 부재 또는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당대표 이준석은 ‘치킨 게임’을 하며 과도한 자기중심주의 정치를 하고 있다. 제3장은 문재인 혹은 문재인 정권의 무능과 오만을 다룬다. 이제 내로남불은 문재인 정권의 상징이자 속성처럼 되어버렸다.
제4장은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유시민, 정청래, 김원웅, 박노자, 조은산을 다룬다. 제5장은 진영 논리와 반정치가 정치를 어떻게 무너뜨리고 있으며, ‘강성 지지층의 저주’와 싸우는 진중권과 ‘진영 논리의 독재’에 도전한 김동연을 다룬다. 제6장은 승자 독식과 증오 정치가 어떻게 정치 혐오를 불러오는지, 좀비 정치에 도전한 윤희숙?정두언?박용진을 다룬다. 제7장은 정치가 과연 사적 보복의 도구인지,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 김의겸은 왜 ‘피 맛’ 운운하며 흥분하는지, 권경애가 꿈꿨던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다룬다. 제8장은 부동산 약탈과 지방 소멸에 과연 해법이 있는지, ‘서울 공화국’의 문제와 ‘1당 독재’의 폐해를 다룬다.
이재명을 믿을 수 있을까?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에게는 수많은 사건과 의혹이 있지만, 그는 무협지에나 나오는 만독불침을 현실 세계에서 구현해 보인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박수를 보낼 만한 일이지만, 공적 차원에서는 이런 의문이 든다. 깡과 ‘긍정과 희망’이 무조건 다다익선은 아닐진대, 과유불급의 문제는 없을까? 이재명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너무 쉽게 말하는 건 아닐까?
다시 말해 이재명의 개인적인 깡은 긍정 평가하면서도 그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발휘될 때에는 좀 이상하고 무모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화려하고 추상적인 언어의 성찬’에만 주력하고 있는데,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대선 후보라면 철학과 열정과 진정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어떤 일을 하는 데 미치광이처럼 그 일에 미쳐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지지자들은 불광불급의 상태가 가져올 수 있는 추진력과 파괴력을 사랑하면서, 이재명의 그런 화끈한 비타협주의와 상대 진영에 대한 냉혹함을 사랑한다. 여기에 아프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은 사람들이 갖는 ‘아픔의 연대 의식’에도 공감한다.
그러나 이재명은 “재난지원금을 30만 원씩 50번, 100번 지급해도 서구 선진국의 국가부채비율에 도달하지 않는다”거나 ‘전두환에 대한 평가’가 상황에 따라 달라지거나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를 아프리카’에 비유하거나 ‘내가 하면 균형발전이고 네가 하면 지방자치 탄압’이라고 하는 이재명의 말은 좀 어지럽다. 어쩌면 이재명은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이라고 할 ‘증오 정치’의 한복판에 선 대표적 전사(戰士)라는 생각이 든다.
윤석열이 ‘반노동적 노동관’을 벗어나려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은 자신의 ‘26년간 검사’ 경력을 내세우면서 “당선 즉시 흉악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겠다”고 했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뜻으로 한 말이라지만, 너무 낡은 생각이다. 게다가 ‘검찰주의자·검찰 공화국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할 말도 아니다. 아예 눈치조차 없는 건가? 하긴 눈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니까 문재인 정권이 펄펄 뛸 ‘조국 수사’도 밀어붙였겠지만 말이다.
윤석열의 ‘주52시간제 철폐’ 발언은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이 쏟아졌다. 왜 윤석열은 스스로 반노동적이고 후진적인 노동관을 계속 쏟아내는 걸까? 윤석열은 기업들의 고충과 일부 노동자들의 불만을 지적하려는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120시간이라도’라거나 ‘개선’ 대신 ‘철폐’라는 과격한 말을 쓸 필요는 없었다. 그로 인한 거센 반발이 나온 직후에 보이는 친노동 행보는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아니면 그 어떤 반대와 비난이 있더라도 ‘마이웨이’를 달리겠다는 걸까?
윤석열은 늘 보기에 딱하다.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을 모른다. 공개되지 않는 사랑방 잡담회 수준의 언어를 언론 앞에서도 그대로 구사함으로써 자주 화를 자초한다. 평소 말을 신중하게 하지 못하는 윤석열의 한계와 결함은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이거니와 비판받아 마땅하다. 더구나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과 윤석열 사이에서 벌어진 치킨 게임은 “윤석열 후보의 부재한 정치철학과 무능한 리더십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할 만하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의 정치력을 높게 평가한다는 긍정 평가가 우세한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윤석열이 ‘백기 투항’을 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누가 잘했건 잘못했건, 책임의 비중을 어떻게 나누건, 최종 책임은 윤석열에게 있다. 윤석열 리더십의 부재 또는 한계, 이 한마디로 총평을 내려도 무방할 것 같다.
문재인 정권의 무능과 오만
문재인 정권이 노무현 정권의 실패에서 아무런 배움이나 교훈도 얻지 못한 것은 바로 ‘증오의 무책임 메커니즘’ 때문이다. 문재인 팬덤은 늘 문재인의 뜻에 따르면서 문재인의 성공을 위한 일편단심으로 사는가? 문재인의 성공을 위해 문재인의 뜻을 거스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문재인의 뜻에 따르건 따르지 않건 그들이 오히려 문재인의 실패를 위해 애쓰는 경우도 가능하다.
더구나 증오를 먹고사는 정치인 팬덤은 책임을 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사전에 ‘책임’이라는 단어는 없다. 그들이 밀어붙인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그것은 자기들의 문제가 아니라 반대편의 음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권의 상징이자 속성처럼 되어버린 ‘내로남불’만 해도 그렇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내로남불의 덫을 어느 정도나마 피해갈 수 있음에도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문재인은 2017년 대선 때 뇌물, 알선수재, 알선수뢰, 배임, 횡령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와 반(反)시장 범죄를 저지른 기업인 등에 대한 사면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그런데 2021년 12월 박근혜의 사면에 전 총리 한명숙의 복권을 끼워 넣었다. 더구나 야당에서는 이번에 이명박 사면을 뺀 것은 나중에 문재인의 최측근 김경수 사면을 끼워 넣기 위해 남겨둔 카드라는 말이 나온다.
문재인의 대선 공약이었던 ‘5대 인사 원칙’, 집권 이후 내세운 ‘7대 인사 원칙’을 약속했지만, 그것을 지켰는가? 문재인은 야당 동의 없이 임명한 장관급 인사가 30명을 넘는다. 노무현 정권 3명, 이명박 정권 17명, 박근혜 정권 10명 등 도합 30명을 넘어선 기록이다. 또 문재인 정부는 공무원의 ‘복종 의무’를 강조하는 동시에 공무원의 영혼을 강력히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명실상부한 ‘청와대 정부’가 되고 말았다. 남은 짧은 기간이나마 문재인이 ‘책임 회피형’ 대통령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좀비 정치에 도전한 사람들
‘진영 논리의 독재’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자기 진영 금기 깨기’다. 기존 ‘대결의 정치’를 새로운 ‘타협의 정치’로 만들어야 한다. ‘자기 진영 금기 깨기’의 최대 장벽이 바로 강성 지지자들의 거센 반발이다. 그렇게 해서 나타나는 ‘진영 논리의 독재’를 타도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다.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음지에서 어떤 식으로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양지로 나와야 한다. 이런 ‘부족주의 진영 논리’는 이성을 억누르고 감성의 폭풍을 일으키면서 온 사회를 진영 간 전쟁터로 몰아간다.
전 국회의원 정두언은 “우리 정치의 가장 큰 잘못 중 하나가 국민을 편 가르기 하고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 이를 이용한 것이다”고 개탄했다. 정두언은 이른바 ‘진영 논리’에서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다른 의견을 경청하고 인정하는 정치인이었다. “좌면 어떻고 우면 어떻다는 것인가?”라는 말로 대변되는 그의 실용주의 개혁 노선이 이를 증명해준다.
전 국회의원 윤희숙은 여권뿐만 아니라 야권을 향해서도 내로남불을 중단하자고 호소한다. 왜 윤희숙은 이런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을까? 정책 전문가로서 정치에 입문한 후 “정치가 안 바뀌면 정책도 의미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윤희숙처럼 ‘진영 논리와 내로남불의 정치’를 바로잡으려는 정치인은 드물다.
국회의원 박용진은 ‘혐오 산업’이 된 정치를 구하려고 한 정치인이다. 4년 전 ‘유치원 3법’으로 그의 활약상을 보았고, 최근에는 국민연금 개혁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정치가 욕하면서도 즐겨 찾는 혐오 산업이 된 상황에서 박용진과 같은 정치인들의 도전과 용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변호사 권경애는 서울과 경기도에서 노동운동을 하느라 대학을 입학한 지 12년 만에 졸업했다. ‘조국 사태’가 일어난 후 문재인 정권의 정략적인 검찰 개혁에 비판적인 논조의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러자 문재인 정권의 운동권 출신 인사들은 압박과 회유를 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진보적 운동을 했고 지금도 진보적 활동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면 타도하거나 상종하지 말아야 할 ‘적’이 되고 만다. 그 과정에서 ‘진보’는 이권 집단의 위장용 브랜드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역사는 때로 후퇴하거나 지그재그로 오락가락하면서 진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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