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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조선의 부자들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주지하다시피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다. 성리학적 도덕 질서 속에서 부의 축적을 군자의 도리로 용납하지 않거나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칭송하는 문화가 생겨났지만 그렇다고 조선 시대를 통틀어 언제나 부의 축적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를 얻었다면 그것이 의로운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한 공자의 말처럼 정당하고 의로움 속에서 부귀를 누리거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유교의 도덕과 가치 속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조선 시대의 부자와 그들의 부를 다룬 책들이 새롭게 등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조선 초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한 세상을 풍미했던 부자 스물세 명을 다룬다.
이 책은 오랜 선입견과 편견을 넘어서 조선의 부자들의 진면목을 밝히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움직였는지, 어떠한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부를 축적했는지, 그리고 그 부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그들을 어떠한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이 책에선 단지 “의로운 이익을”을 추구했던 선한 부자들 이야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부정부패를 저지르거나 심지어는 나라를 팔아먹으며 치부했던 사람들 이야기도 소개된다.
그들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도덕적이거나 불법적인 행동도 마다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말로가 늘 권선징악적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상세히 소개된다고 해서 그들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대다수 부자들이 그들의 시대 속에서 사회와 조화하며 그들이 가진 배짱과 뚝심, 절박함과 집요함, 존중과 배려, 혁신과 도전, 신용과 도덕, 글로벌 역량과 마케팅 전략, 베풂과 나눔 등을 맘껏 펼치며 쌓은 부의 정당성과 품격이다.
이러한 집필 의도가 조선 시대 전체를 망라한 구체적인 인물들이 벌인 경제 행위 속에 생생히 녹아들어 있다.
목차
서문 · 5
1부 조선의 양반·상인·역관·중인 부자들
재물을 나누지 않으면 악취가 풍긴다 | 경주 최부잣집 · 13
함께 행복해야 나도 잘산다 | 윤선도 · 21
순환농법을 통한 효율성 제고 | 장석보 가문 · 29
살을 내어주고 뼈를 지키다 | 김만일 · 37
작은 이익도 놓치지 않는다 | 황수신 · 45
지역적 특성을 활용하다 | 김만덕 · 51
자신을 낮추어라 | 김근행 · 59
신뢰 자본이 힘이다 | 한순계 · 67
담대하게 승부해라 | 임상옥 · 75
위기는 기회다 | 김세만 · 83
적을 줄여라 | 변승업 가문 · 91
강점을 악용하다 | 김자명 · 99
2부 구한말과 일제시대의 부자들
폭넓은 안목과 이익의 극대화 | 김요협 · 107
세상의 변화를 읽어라 | 김기덕 · 115
집념이 만들어낸 행운 | 최창학 · 123
욕망을 사로잡는 마케팅 | 이경봉 · 131
악착같이 모아 품격 있게 쓰다 | 백선행 · 139
정보를 가지고 빠르게 움직여라 | 이용익 · 147
조국을 위해 모든 걸 바치다 | 이석영 · 155
전략적 제휴로 몸집을 키우다 | 이승훈 · 165
기성관념에 도전하다 | 최남 · 173
기부가 면죄부는 아니다 | 민영휘 · 181
권력과 결탁한 토지 투기 | 김갑순 · 189
그 밖의 인물들 · 197
저자 소개
저 : 김준태
성균관대학교에서 한국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쳐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현장과 학계를 오가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현대경제연구원 CreativeTV의 강의를 비롯해 다수의 기업에서 강연을 한 바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논문으로는 「포저 조익의 성리학설과 경세론...
책 속으로
흔히 부자는 삼대를 가지 못한다고 한다. 부를 일구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 10대가 넘도록 큰 부자였던 집안이 있다.
마지막 대에 이르러서도 몰락한 것이 아니라 대규모의 사회 환원을 통해 스스로 부를 해체했다. 교동법주로도 유명한 경주 최부잣집 이야기다.
--- p.14
최씨 집안이 ‘부잣집’의 면모를 갖춘 것은 최진립의 손자인 최국선崔國璿(1631~1682)에 이르러서인데, 그는 적극적인 농업 경영을 통해 부를 축적하면서도 “재물은 거름과 같아서 농작물을 잘 자라게 하지만, 쓰지 않고 쌓아두면 악취를 풍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 p.15
그런데 간척사업을 한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간석지에 긴 해언海堰(둑)을 쌓고 물을 빼내려면 막대한 노동력과 정밀한 기술이 필요하다.
더욱이 간척지를 개척해 전답으로 가꾸고 그곳에서 이익을 얻어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수입이 전혀 생기지 않는데 지출만 계속되는 상황을 견뎌야 한다. 그런데도 이 사업이 매력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땅을 새로 만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 p.23
물론 이 같은 방식에는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형제 중 누구도 욕심을 부리거나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 거라는 신뢰가 필요하다.
공동의 사업을 위해 각자가 최선을 다할 거라고 믿어야 한다.
함께 농사짓기로 한 논밭에서는 대충 일하면서 자기만 따로 돈 벌궁리를 했다면, 이들 형제의 순환농법 전략은 실패했을 것이다.
--- p.35
김만일은 말 목장을 대규모로 경영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는데,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당시에는 명나라 영락제가 조선이 진상한 제주마를 ‘천마天馬’라고 불렀을 정도로 제주마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툭하면 조정에서 말을 징발해갔기 때문이다.
--- p.38
이같이 부정과 탈법을 자행하며 재산을 축적한 덕분에 황수신은 일약 거부로 떠올랐다.
비슷한 시기에 ‘4대 부자’로 불리던 정인지 · 박종우 · 윤사로 · 윤사균에 필적하는 수준이었다. 이들 네 사람은 왕실의 인척이고 집안 대대로 돈이 많았음을 고려한다면, 황수신의 치부 실력이 더 뛰어났다고 볼 수 있다.
--- p.47
만덕이 한양에 올라오자 정조는 이렇게 지시한다. “만덕이 비록 천인賤人이나 의로운 기상은 옛날 정의로운 협객에 못지 않다.
지금은 겨울이니 봄이 올 때까지 양식을 주고, 곧바로 내의원 차비대령差備待令 행수의녀行首醫女로 충원하여 수의首醫에 소속시켜 각별히 돌봐주도록 하라.
그리고 금강산을 구경하고 제주도로 돌아갈 때 거쳐 가는 고을의 수령들에게 분부하여 양식과 경비를 넉넉히 주게 하라.”
--- p.53
김근행이 많은 재산을 모으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자기가 먼저 돈을 벌려고 나서지는 않았다. 워낙 실력이 뛰어나고 인품도 훌륭하다 보니 자연스레 일본 정계의 실력자들과 친분을 맺게 되었는데, 특히 대마도주와 교분이 두터웠다.
--- p.60
김근행은 처세에 각별하게 신경을 썼다. 당상관이었지만 질이 낮은 관자貫子와 갓을 착용했고, 관복이나 의복도 값싼 재질로 만들어 입었다.
사용하는 용품들도 모두 평범한 것이었는데,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 p.64
조선 선조 때의 대학자 소재 노수신과 율곡 이이, 우계 성혼이 자주 찾아가 날이 저물도록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 있다.
화담 서경덕이 함께 공부하자고 권유했던 이가 있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로부터 시장에 숨어 사는 현인이라는 뜻에서 ‘시은市隱 선생’이라 불리며 존경받던 인물, 조선 중기의 유기鍮器 상인 한순계韓舜繼(1530~1588)다.
--- p.68
임상옥은 공공사업이나 구휼을 위해 써달라며 재산을 계속 기부했다. 선의에 의한 행동이었지만, 자기를 지키려는 계산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막대한 기부가 그를 지켜주는 든든한 보호막이 되었음은 분명하니 말이다. 정리하면, 담대한 승부와 아낌없는 기부가 거상 임상옥을 만든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할 수 있다.
--- p.81
어차피 헐값에 넘겨야 하므로, 용매진에서 간절히 필요로 하는 쌀을 쾌척함으로써 관의 환심을 사고 민심도 얻은 것이다.
많은 비용이 들긴 했지만 ‘김세만’이라는 브랜드의 파워를 높였으니, 장기적으로 손해 보는 일은 아니었다. 아니, 이 사실이 중앙 정부에 알려져 당상관 품계까지 받았으므로 오히려 남는 장사였는지도 모른다.
--- p.85
두 아들이 한학(중국어) 역관, 다른 두 아들이 몽학(몽골어) 역관, 또 다른 두 아들이 왜학(일본어) 역관이 되었다. 역관 가문으로서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조선이 교류하는 모든 외국과 무역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진 것이다. 형제끼리 협력하면 중개무역도 가능하고 말이다.
실제로 변씨 가문은 청나라의 비단을 가져다 일본에 풀고, 일본의 은銀을 청나라로 가져가는 등 청-일본 중개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 p.94
변씨 가문의 사례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교훈을 준다. 첫째, 돈은 사람이 벌어다 주는 것이다.
좋은 인재를 발견했다면 과감하게 투자할 필요가 있다. 둘째, 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부 리스크를 잘 관리해야 한다.
--- p.98
조선 인조에서 효종 대에 이르기까지 한양의 상계를 좌지우지하던 인물이 있다.
시각장애인이자 점쟁이였던 김자명金自鳴이다. 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냐면, 한양의 시장 상인 중 김자명의 돈을 빌리지 않은 이가 없고, 그가 돈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도성 안의 물가가 널뛰었다고 한다.
--- p.100
이제 김요협이 어떻게 재산을 불렸느냐는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그는 폭넓은 안목으로 개발이 유력시되는 토지에 장기적으로 투자했다. 부를 지키고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정치권력을 이용하고 냉혹하게 결정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성향은 자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 p.112
그런데 김기덕이 ‘벼락부자 중에서도 최고의 벼락부자’라 불릴 정도로 막대한 재력을 갖게 된 것은 이들 사업 때문이 아니었다. 김기덕은 사업을 통해 얻은 이익의 대부분을 나진과 웅기 지역의 토지를 매입하는 데 투자했다.
--- p.118
김기덕에 대해, 앞에서 소개한 잡지 『삼천리』는 “미지수의, 무한대의 금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반도를 들썩이게 하는 분으로” “만주국이 성립하고 관북의 나진항이 극동의 중요한 국제무역항이자 군항이 되면서 거부로 떠올랐다”,
“광막한 인생의 벌판에 빈주먹만 들고 나서서, 앞날을 내다보는 밝은 안목과 남보다 뛰어난 지략과 여기에 천재일우의 기회가 한데 뭉쳐서 일약 백만장자 소리를 듣게 되었다”라고 극찬했다.
--- p.121
민영휘와 김성수는 질시와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만, 최창학에 대해서는 “세상 사람들이 그의 재물을 부러워할지언정 결코 그것을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않았”는데,
“자연을 착취한 재물은 사람을 착취한 재물처럼 불순하거나 잔인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 p.129
이경봉은 직접 판매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멋진 양복에 세련된 구두를 신고 고급 가죽가방을 든 채 그즈음 개통된 경인선 기차에 올랐다.
그리고 서양 의학 지식을 동원해 기차 승객들에게 약을 세일즈했다. 양복과 기차는 개화改化, 즉 근대화를 상징한다. 청심보명단에 ‘개화’의 이미지를 입힌 것으로, 경인선 기차를 타고 청심보명단을 사는 것을 ‘개화’와 동일시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한다.
덕분에 내가 개화된 사람임을 내세우기 위해서라도 청심보명단을 구매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버렸다.
--- p.137
그런데 이렇게 돈을 번 것만으로는 ‘거부’라는 이름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근검절약해서 수억, 수십억을 모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수백억, 수천억 자산가가 되기란 불가능하다. 대규모로 사업을 하든 투자를 하든 큰돈을 벌 수 있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백선행의 계기는 부동산이었다. 사들인 땅을 무려 열 배나 비싸게 판 것이다.
--- p.142
1925년 셋째 이철영이 빈곤과 풍토병에 시달리다가 눈을 감았고, 1931년 막내 이호영이 실종되었으며, 1932년 넷째 이회영이 다롄 감옥에서 일제의 모진 고문 끝에 순국했다.
그리고 이석영은 1934년 빈민가에서 굶어 죽고 만다. 첫째 이건영도 1940년 병으로 사망했고, 다섯째 이시영만 살아서 해방을 맞이했다.
--- p.161
“당장은 상황이 이래서 어르신께 빌린 돈을 갚을 형편이 못 됩니다. 지금 제가 이렇게 재기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추가로 자금을 빌려주신다면 꼭 성공해 보이겠습니다.
” 다른 채무자들은 전쟁을 핑계로 도망가고 연락을 끊어버린 그때, 최악의 상황에서도 신용을 지키겠다며 찾아온 이승훈을 보고 오희순은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 p.169
최남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승부수를 던졌다.
조선인들에게는 아직 낯설었던 정찰제를 도입한 것이다. 이는 좋은 상품을 최적의 가격에 팔고 있다는 자신감에 기인한 것으로,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 p.175
민영휘는 보통의 친일 귀족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매국의 대가로 얻은 부귀영화를 누리며 한량 같은 삶을 살던 이들과 달리, 금융인이자 기업가로 변신한다.
--- p.184
윤치호 집안과 사돈을 맺은 김갑순金甲淳(1872~1961)은 공주를 중심으로 충청남도 일대를 아울렀던 자본가다. 윤치호의 일기에는 김갑순을 설명하는 두 가지 키워드가 모두 들어 있다.
‘유능한 화폐 제조기’와 ‘당국자들의 환심’이 그것이다.
--- p.190
임준원은 의로운 일을 좋아하고 베풀기를 즐겼다고 한다. 형편이 어려운 이웃이나 친구가 있으면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가난해서 혼인하지 못하거나 상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생면부지라도 반드시 도와주었다.
--- p.205
출판사 리뷰
조선의 부자들은 누구이며, 어떤 성격과 강점을 지녔는가?
이 책이 가진 구체적인 장점 중의 하나는 예나 지금이나 유효한 그들만의 가치 판단과 성공 전략을 간결하고 굵직하게 소개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집념과 끈기가 있었고, 국제적인 감각이 있었고, 시대의 흐름에 누구보다 예민했으며 시대를 앞서 보는 눈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정보 수집과 의사소통 능력이 탁월했고, 자신을 한없이 낮출 줄도 알았고 어려운 사람에게 아낌없이 베풀 줄도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단 한 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과감하게 쏟아부을 줄도 알았다.
먼저 1부에서는, 10대 400년을 이어가며 농업 경영을 통해 쌓아올린 부를 “재물을 나누지 않으면 악취가 난다”며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에 거리낌 없이 사용한 경주 최부잣집,
수년간의 수입 없는 지출을 하며 정교한 기술과 집약적 노동을 효과적으로 통제해야만 하는 대규모 간척 사업에 매진하여 존재하지 않았던 땅을 만든 윤선도,
형제간의 우애와 신뢰를 지키고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여 치부하고 이를 바탕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한 장석보 가문, 빼앗기기 전에 스스로 먼저 나서 국가에 기부함으로써 사업권을 지킨 목장 주인 김만일,
누가 뭐라건 눈앞의 이익을 위해선 무슨 일에서나 집요함을 보인 황수신,
제주도라는 지역적 특성을 이용하여 거상으로 성장하고 아낌없이 나눠준 김만덕,
탁월한 외교 감각과 타고난 통역 능력으로 중개무역에서 대성공을 이루고 자신을 낮추고 신중하게 행동한 역관 김근행,
정직과 성실을 바탕으로 양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하며 신뢰를 쌓아간 유기 장인 한순계,
담대한 승부와 아낌없는 기부로 유명한 조선판 치킨게임의 대가 거상 임상옥,
바다에 빠진 쌀을 흔쾌히 기부하여 자신의 가치를 높일 줄 알았던 여객주인 김세만,
허생전의 실제 모델이며 청과 일본을 오가는 중개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역관 변승업 가문,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꿔 뭇사람들의 심리를 좌지우지한 점쟁이 김자명 등의 사례가 실렸다.
2부에서는, 개발이 유력시되는 토지에 장기적인 투자, 정액소작제의 도입, 관직으로 진출로 부를 일군 김요협과 교육, 상공업, 언론을 아우르는 거대 기업 집단을 구축하여 한국형 재벌의 시초라 불리는 김성수 · 김연수 형제,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읽고 외국어(일본어) 공부와 나진 · 선봉 일대의 토지 매입을 감행하여 일거에 거부로 일어선 김기덕,
금맥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첩첩산중을 헤매고 자연을 상대로 부를 일군 최창학,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과감하고 혁신적인 마케팅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유혹한 이경봉,
근대화에 따른 시멘트 산업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토지를 사들여 거부의 반열에 오르고 자신의 부를 자선사업과 교육에 남김없이 사용한 백선행,
사리사욕보다는 고종과 대한제국의 부흥을 위해 애쓴 이용익, 조국을 위해 모든 걸 바쳐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대명사가 된 이석영 집안,
건실함과 정직함으로 신용을 지키며 조선인의 상업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이승훈,
조선 최초로 백화점(동아백화점)을 세우고 정찰제와 십전균일점(十錢均一店)을 실험한 최남,
윤치호가 러일전쟁의 원흉이라며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자”로 지탄한 민영휘,
“화폐 제조기”로 유명한 공주 제일의 갑부 김갑순 등의 이야기가 실렸다.
현 시대의 거울인 옛 부자들
조선 시대의 유명한 부자들에는 대체로 공통점이 있는데, 성공을 이루기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요함,
물자의 흐름을 통제하는 국제 중개 무역, 탁월한 외국어 능력과 외국 인사와의 교류, 토지에 대한 집착, 아낌없는 기부와 적선, 적을 만들지 않는 줄타기, 부를 과시하지 않기 등이다.
구한말(대한제국 시기)에서 일제강점기에 두각을 나타낸 부자들 또한 비슷한 면모를 보이는데, 달리 보면 이는 근대 시기에 등장한 부자들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조선 시대로부터 상인의 감각이 면면히 이어져 온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조선 시대에 거부 · 거상이 있었고 그들이 조선의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었기에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인(한국인) 거부 · 거상이 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 책의 숨은 메시지이다.
이 책은 조선 시대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활약한 거부의 생생한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진득하다.
또한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위해서라면 비도덕적이거나 불법적인 행동도 마다지 않고 막대한 돈을 투기하여 성실한 사회 전체의 신뢰를 뒤흔들기까지 하는 현 세태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끔 하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준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조선 시대를 좀 더 역동적으로 이해하고자 하거나, 새 사업을 시작하며 방향을 설정하거나, 이제 막 사회에 나아가려는 독자에게 맞춤한 책이 될 것이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39572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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