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근현대한국사 (2024~) [해설서]/4.근현대사 (인물평전)

[웹북] 함석헌 (1901~1989) 독립운동가.종교인.

동방박사님 2024. 8. 7.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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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咸錫憲 함석헌

기타 ()는 신천(信天), 씨알, 바보새

개인정보

출생 1901313일 / 대한제국 평안북도 용천군 / 사망 198924(87)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노환으로 사망 / 국적 대한민국 / 교파 퀘이커 / 부모 함형택 (), 김형도 () / 배우자 황득순 / 재직 종교인 / 전직 사회운동가, 언론인, 작가, 저술가, 수필가 / 민주통일국민회의 고문 / 씨알의 소리 편집대표위원장 / 신민당 고문 / 학력 도쿄 고등사범학교 역사교육학과 전문학사 / 함석헌(咸錫憲, 1901313~ 198924)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종교인, 언론인, 출판인이며 기독교운동가, 시민사회운동가였다

주요 이력

광복 이후 비폭력 인권 운동을 전개한 인권운동가, 언론인, 재야운동가, 문필가로 활약한 그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호는 신천(信天), 씨알, 바보새이다

19193.1 운동에 참여했다가 퇴학 당한 후, 사무원과 소학교 교사 등을 전전하다가 1928년부터 1938년까지 오산학교의 교사를 역임했다. 이후 교육, 언론 활동 등에 종사하다가 해방 후, 1947년 월남하였다. 이후에는 성서 강해 등을 하다가 1956년부터는 장준하의 사상계에 참여하여 정치, 시사 등에 대한 평론 활동, 신앙 활동, 반독재 민주화운동 등을 하였다

그의 종교는 초기에는 일본 유학 중에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아 무교회주의자였다가 중기에는 기독교였으나 후기에는 장로회로 바꾼것이다

학력

평안북도 용천 덕일소학교 수료

평안북도 용천 양시보통학교 졸업

평안남도 평양고등보통학교 중퇴(1955년 명예 졸업)

평안북도 정주 오산고등보통학교 졸업

일본 도쿄 고등사범학교 역사교육학과 전문학사

생애 / 가족 

부모: 함형택(, 1880-1941), 김형도()

배우자: 황득순(1902-1978)

초기 활동 / 생애 초기

함석헌은 190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당숙 함일형(咸一亨)이 세운 한학 서당인 삼천재(三遷齋)에서 한학을 수학하다가 덕일소학교(德一小學校)에 입학, 1914년에 덕일소학교를 수료하고 그 해에 양시공립소학교에 편입하였다가 1916년 양시공립소학교를 졸업했다

그해 평양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으며 1917년에 황득순과 결혼하고, 1919년 평양 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 중에 숭실학교 교사로 있었던 6촌 형 함석은 등의 영향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3·1 운동에 참가한 후, 3.1운동에 대한 반성문을 쓰면 복학시켜 준다는 일본인 교장의 제의를 거부하고 퇴학되어 2년간 학업을 중단한다. 이 시기에 함석헌은 수리조합 사무원과 소학교 선생 등을 하게 된다

청소년기

 1921년 함석규 목사의 권유로 평안북도 정주(定州)에 있는 오산학교(五山學校) 3학년에 편입하여 수학했으며, 그곳에서 류영모를 만나 평생 스승으로 삼았다. 또한 이때 안창호, 이승훈, 이광수, 조만식 등과도 알게되어 그들로부터 민족주의 사상과 실력 양성론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나 후일 그는 맹목적인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 비판적인 성향으로 돌아서게 된다

1923년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1924년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 문과 1부에 입학하여, 우치무라 간조의 성서 집회에 참가하여 그의 무교회주의를 접했다

동경고등사범학교 재학 중에 일본인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內村鑑三)의 성서연구에 깊이 영향을 받고 김교신(金敎臣), 송두용(宋斗用), 정상훈(鄭相勳), 유석동(柳錫東), 양인성(楊仁性)등과 함께 교회에 다니지 않고도 신앙을 유지하는 무교회주의 신앙클럽을 결성하였다. 1927년 동인지 성서조선 聖書朝鮮창간에 참여하고 논객으로 글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친구이자 동지인 김교신

1928년 동경고등사범학교 졸업(역사과 수석)과 동시에 귀국하여 오산학교에서 역사와 수신을 가르쳤다. 1934~1935년에 동인지 성서조선에서 그의 주저인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연재한다. 1940년 계우회 사건으로 일본 당국에 의해 투옥되어 평양 대동경찰서에서 1년간 구치되었다.

이후 19383월까지 오산학교의 교사로 있다가 사임하였다.   

1940년 평안남도 송산(松山)에서 김혁(金赫)이 운영하는 송산학원의 이사로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계우회 사건(鷄友會事件)에 연루되어 평안남도 대동경찰서에 체포, 유치장에서 1년간 수감 생활을 하다가 1942년 초 풀려났다. 그러나 19425성서조선(聖書朝鮮) 158(폐간호)에 실린, 김교신의 조와(弔蛙)라는 우화로 관련자가 모두 투옥되는 성서조선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성서조선은 폐간되고, 함석헌은 서대문형무소에 미결수로 194341일까지 1년간 복역하였다(수형번호1588). 

1945년 혈맹의 친구였던, 김교신이 흥남에서 장티푸스로 별세하고, 그 해 815일 해방을 맞이한다. 해방이 되자 그는 해방이 도둑같이(아무도 모르게) 왔다고 평하였다.

광복 이후 활동 / 해방 직후

해방 후에는 반공 시위인 신의주 학생시위의 배후로 지목되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당국에 의해 투옥되었다가 소련군에게서 풀려난 후 1947317일 월남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탈출 전 그는 조만식을 만나고 오기도 했다.[4] 

19473월부터 YMCA에서 성서강해를 계속하고, 이후 성서 강해와 신학, 종교적 강연 활동을 하였다. 또한 조만식의 추모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정부 수립 이후 / 장준하

1950년 한국 전쟁 때는 대전을 거쳐 부산으로 피난갔다가 휴전 후 상경하였다. 이후 1956년부터 장준하 등의 천거로 사상계를 통해 논객으로 활약하였다. 1958'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견해를 발표하면서 정부의 정책에 비평을 가하기 시작하였고, 19585월 잡지 <사상계>에 발표한 칼럼 하나는 화제가 되었다.

전쟁이 지나가면 서로 이겼노라 했다. 형제 쌈에 서로 이겼노라니 정말 진 것 아닌가? 어떤 승전축하를 할가? 슬피 울어도 부족한 일인데. 어느 군인도 어느 장교도 주는 훈장 자랑으로 달고 다녔지 '형제를 죽이고 훈장이 무슨 훈장이냐?' 하고 떼어던진 것을 보지 못했다. 로자는 전쟁에 이기면 상례로 처한다 했건만. 허기는 제이국민병 사건을 만들어내고 졸병의 못 밥 깍아서 제 집 짓고 호사하는 군인들께 바래기가 과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라의 울타리인가?

사상계 19585월호

이 일로 그는 우익 인사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그는 또 19596.25 전쟁 관련자들에 대한 훈장 서훈 이야기가 나오자 "형제를 죽이고도 무슨 훈장이냐"라고 비판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다가 풀려났다. "한국전쟁에 대해 비판하고 전쟁하는 국가와 거리를 두어보려는 목사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것이 놀라운 일"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2공화국 시절

1961년 장면이 국토건설단을 창설하고 강사를 초빙할 때, 국토건설요원 정신교육 담당 강사로 초빙되었다. 그러나 5·16 군사 정변으로 제2공화국이 붕괴되자 다시 야인으로 되돌아갔다. 19615·16 군사 정변이 있자 모두가 침묵하고 있는 그해 7월 사상계에 발표한 정치평론인 '5·16을 어떻게 볼까'라는 글을 통해 신랄한 비판을 하여 군정 인사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1962년 미국 국무성내 기독교 신자 정치인들의 특별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방미하였을 때 퀘이커교파(Quaker敎派) 인사들과 만나 친분관계를 형성하고 돌아왔다. 이후 1989년까지 매년 미국 정계의 기독교인사들의 초청을 받고 미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생애 후반 / 좌익 민주화 운동

3공화국 출범 후에는 종교인으로서 한일회담에 반대하는 등 사회운동에 참여했다.

1967년 장준하의 국회의원 총선거 옥중출마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그는 이승만 정권 즉, 자유당 정권 시절부터 좌익 운동에 참여하여 3선 개헌에 반대하였으며 이후 10월 유신 이후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서 수차례 투옥되었다. 1969419일에는 4.19 10주년 기념 강연을 마친 뒤 침묵 시위에 들어가기도 했다.

1970년에는 정치, 시사평론을 실은 월간잡지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였으나 정권의 탄압을 받기도 했다. 이후 씨알의 소리의 발행인, 편집인, 주간 등으로 있으면서, 장준하 등 재야 언론인들을 필진으로 영입하고 19801월 폐간당할 때까지 신진 문인들을 발간하였으며, 글과 강연 등을 통해 민중 계몽운동을 폈다.

19747월 인혁당 사건 관련자에 대한 탄원서에 서명하였다.

10·26 사건 이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 간선제를 고수하자 윤보선 등과 함께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1124YWCA 위장 결혼식에 참석하였다가 사건에 연루되어 윤보선과 함께 재판정에 섰다. 19801YWCA 위장결혼식 사건 선고 공판에 출석하였다. 1980125일 수경사 보통군법회의의 최종상고심에서 윤보선은 징역 2, 함석헌은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나 후에 복권되었다. 1980년 신군부 즉 전두환 정권의 탄압으로 씨알의 소리는 강제 폐간되었다가, 198812월 복간되어 20117월 현재 217호까지 출간되어오고 있다.

5공화국 시절

5공화국을 거치면서도 민주화운동을 계속하다가 1984년에는 민주통일 국민회의 고문을 지냈다. 1985년 민주쟁취 국민운동본부 고문이 되었다.

그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 반대하였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민족통합을 참으로 하려면 우리의 대적이 누군가부터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분열시킨 도둑이 누구입니까? 일본? 미국? 소련? 중공? 아닙니다. 어느 다른 민족이나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닙니다. 국민을 종으로 만드는 국가지상주의 때문입니다. 이제 정치는 옛날처럼 다스림이 아닙니다. 통치가 아닙니다. 군국주의 시대에조차 군림은 하지만 통치는 아니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참 좋은 군주는 그래야 한다 말입니다. 그런데 이 민주주의 시대에, 나라의 주인이 민중이라면서 민중을 다스리려해서 되겠습니까? 분명히 말합니다. 남북을 구별할 것 없이 지금 있는 정권들은 다스리려는 정권이지 주인인 민중의 심부름을 하려는 충실한 정부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이 설혹 통일을 한다해도 그것은 정복이지 통일이 아닙니다. 민중의 불행이 더해질 뿐입니다. 나는 그래서 반대합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국가주의와 민족지상주의는 개인으로 하여금 권리와 자유를 스스로 반납하는 주요한 근거가 된다는 것이 그의 견해였다.

1984년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고문에 위촉됐다. 또한 동아일보로부터 제1회 인촌상을 수여받았다.

말년

성서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각 고전을 섭렵하여 자신의 사상으로 소화하여, 씨알사상이라는 비폭력, 민주, 평화 이념을 제창하였다. 비폭력주의 신조로 말미암아 한국의 간디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사회 평론뿐만 아니라 도덕경등의 각종 동양 고전 주해도 행하였고, 그리고 시를 창작하기도 했다. 1989년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입원, 그해 서울대 병원에서 별세하였다(향년 87).

사후

장지는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간파리의 가족산에 매장되었다가, 2002년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어 건국포장 수훈 이후 묘소가 대전 현충원(애국지사 제3-329 묘역)으로 이장되었다.

일본 유학 시절 우치무라 간조의 제자였던 함석헌은 김교신, 송두용 등과 함께 초창기 한국 무교회주의 기독교 운동을 하였고, 퀘이커 모임(1961년과 1967)을 계기로 퀘이커 신자가 되었다.상훈으로 1987년 제1회 인촌상과 2002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일대기로 내가 본 함석헌, 함석헌 평전이 있다.

사상과 신념 / 무교회주의

그는 김교신 등과 함께 무교회주의 운동을 하기도 했다. 이는 일본 유학 시절, 동경고등사범학교 재학 중에 일본인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성서연구에 깊이 영향을 받고 김교신(金敎臣), 송두용(宋斗用), 정상훈(鄭相勳) 양인성(梁仁性), 유석동(柳錫東)등과 함께 교회에 다니지 않고도 신앙을 유지하는 무교회주의 신앙클럽을 결성하였다.

귀국 후에도 무교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일본인 신학자 우치무라 간조의 성서집회의 영향을 받은 그는 이후 줄곧 무교회주의를 주장하게 되었다.

논란 / 사회진화론 추종자 논란

2010년 함석헌이 사회진화론 추종자인가 아닌가 하는 내용을 두고 관련 학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20093월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인 김영호 인하대 명예교수는 한길사에서 30권으로 발간한 함석헌 저작집에 실은 글 '함석헌 저작집 발간에 부치는 말'에서 그가 사회진화론자라고 주장했다. 당시 함석헌씨알사상연구원장이던 김영호는 함석헌을 사회진화론자로 소개하며, 함석헌 사상에서 거듭 반복되는 일관된 주제 가운데 하나로 사회진화론을 들었다.

반론

이에 대해 함석헌이 창간한 잡지 씨알의 소리편집위원인 김상봉 전남대 교수는 '씨알의 소리' 20101~2월호에 반론인 '함석헌과 사회진화론의 문제'를 실어 함석헌의 철학과 사회진화론은 물과 기름처럼 양립할 수 없는 사상이라고 반박했다.김상봉 교수는 사회진화론은 전쟁으로 열등한 종족이 도태되고 상대적으로 우수한 종족들만이 살아남아 인류가 발전했다는 것이라며 사회진화론자들은 약자가 도태되는 것은 자연적인 필연이므로 이를 인위적으로 막는 것은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만물을 짓고, 만물을 유지하고, 뜻을 이뤄가는 것은 힘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말한 함석헌의 글을 인용하며 함석헌 사상은 힘의 철학이 아니라 '사랑의 철학'이기 때문에 사회진화론과 양립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김상봉은 이어 함석헌이 생명은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는 하나라고 지적하였다. 김상봉은 함석헌이 평소 민족이기주의와 국가지상주의를 비판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함석헌에게) 사회진화론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2010년 김영호는 316일 열린 함석헌학회 창립총회 기념 학술발표에서 함석헌과 사회진화론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김상봉 교수의 주장을 재반박하고 나섰다. 김영호 교수는 함석헌은 사회/전체의 진화를 주장하지 않았는가라는 부제가 달린 이 글을 통해 "김상봉 교수의 주장은 자신이 쓴 '사회 진화론''사회다윈주의(Social Darwinism)'로 오해한 것'이라고 반박하였다. 그에 따르면 사회진화론에는 김상봉 교수가 받아들인 '사회다윈주의' 말고도 여러 가지 다른 일반론이 있다고 하였다.[7] 그는 함석헌이 쓴 지금까지 생각의 주체는 개인이었지만 앞으로는 커뮤니티이다. 그런 역사의 진화단계가 지금이다라는 글을 인용하며 함석헌이 전체사회, 곧 인류공동체로서의 사회의 진화를 통찰했다고 강조하였다.

투사론에 대한 반론

함석헌은 '누가 나처럼 수줍은 놈을 미친놈을 만들어 놓았느냐'라고 하기도 했다.

고려대학교 화학공학과 교수를 역임한 철학자 김용준은 함석헌이 철학자라고 하였다. 그는 "나는 화학 빼고는 다 함선생님한테 배웠다고. 요즘 사람들은 함석헌하면 마치 주먹질만 하는 사람으로 아는데 그것은 넌센스야. 그건 함선생님의 일부분이고 80퍼센트는 도를 찾아 헤맸던 구도자"라고 하였다.

기타

그는 한국 전쟁 직전 전쟁을 예상하였다 한다. 김용준에 의하면 '6.25 바로 일주일 전에 함석헌이 이 백성들이 왜 이러지. 지금 밑에서는 용암이 이글이글 타오르는데 그 위에 살짝 덮힌 암반을 마치 만세반석처럼 여기고 까불고 있으니 이게 언제 터질지 몰라하고 말씀을 하시더라'는 것이다.

1979, 1985년 등 2차례에 걸쳐 미국 퀘이커 세계 봉사회가 함석헌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AFSC1947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이래로, 노벨 평화상 후보추천규정에 따라, 해마다 후보를 추천해오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박노자는 자신의 칼럼 '국가의 살인'에서 "20세기 한반도의 유일하다 싶은 기독교적 평화주의 사상가"로 불렀다.

 

 

책소개

함석헌을 일컫는 수백 개의 수식어, 겨레의 큰 스승, 사상가, 평화운동가 등을 하나로 엮는 ‘혁명을 꿈꾼 낭만주의자’라는 관점

함석헌은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고, 1979년, 1985년 두 차례 노벨평화상 후보로 올랐으며, 시인, 문필가, 역사가, 교육자, 언론인, 민주화 운동가, 평화주의자 그리고 씨알 사상가 등 백 개의 수식어를 붙여도 모자랄 인물이다. 그런 함석헌에 대한 평전이 시대의창에서 새로 나왔다. 지금까지 나온 평전이 함석헌의 출생부터 운명까지의 생애 일대기를 엮은 것이 대부분이었다면, 이 책 《혁명을 꿈꾼 낭만주의자 ― 씨ㅇㆍㄹ 함석헌 평전》은 함석헌 사상의 궤적을 중심에 놓고 생애와 행적을 엮었다는 점이 독특하다. 저자는 함석헌이 스스로를 “인생의 의미를 찾는 자”라고 이른 것에 착목해 씨알 사상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사상투쟁을 ‘혁명을 꿈꾼 낭만주의’와 연결했다.

해방 공간을 전후로 인생의 전반기가 끝나고 삼팔선을 넘으며 씨알이 자라나다

저자는 ‘낭만주의자 함석헌’의 일생을 두 시기로 나눈다. “무한의 전체”를 꿈꾸던 인생의 전반기와 꿈으로부터 시대의 “장터”로 나온 후반기다. 전반기에 함석헌은 스승과 아버지와 어린 자식과 친구를 잃었다. 후반기에는 어머니와 맏아들과 생이별하고 고향의 집과 땅을 빼앗겼다. 우연하게도 두 시기의 경계선은 해방 공간과 일치하는데, 당시 함석헌 자신도 신의주 학생 사건으로 처형과 옥고와 유배의 위기를 겪고 삼팔선을 넘었다.

저자는 전반기를 함석헌이 가장 격렬하게 사상투쟁을 벌인 시기로 본다. “일생의 친구” 김교신과 영국 시인 셸리를 만나고 ‘신앙’을 쌓고 ‘씨알 사상’의 터전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나라 밖에서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함석헌은 평양 송산농사학원을 인수해 김교신 등 《성서조선》 동지들과 함께 혁명을 꿈꾸었다. 물론 정치혁명이 아니라 ‘하나님’과 손잡는 “인간혁명”이다. 함석헌에게 “인생의 등불”이 된 남강 이승훈, 다석 유영모, 우치무라 간조를 만난 것도 이 시기다. 후반기는 한마디로 전반기의 사상투쟁과 여러 인물들과의 인연과 경험이 ‘씨알 사상’으로 구체화된 시기이다.

증언과 함석헌의 글을 통해 함석헌에게 잘못 붙인 이름을 바로잡다

저자는 이 책에서 후학들이 잘못 기록한 내용을 바로잡으려 노력했다. 예를 들면 함석헌이 오산학교를 자퇴한 사연, 신의주 학생 사건으로 투옥되어 풀려나게 된 사건의 재해석,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아 무교회주의를 통해 사회주의 혁명에 관심을 가진 건 사실이지만 퀘이커교도가 아니라는 것 등이다. 저자는 함석헌을 가까이서 모셨거나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을 십여 년간 수소문해 증언을 듣고, 함석헌이 남긴 글과 시, 기록을 읽고 또 읽었다. 와전되었거나 왜곡되었던 진실은 오로지 저자의 온전한 노력을 통해 밝혔다. 이로써 10년 전에 저자가 쓴 《씨ㅇㆍㄹ 함석헌 평전》과는 완전히 다른 책이 나왔다. 전작이 일대기 평전이라면 이 책은 사상 평전이다. 오랫동안 함석헌을 곁에서 지켜보며 많은 글과 시를 되새겨 읽고 연구한 사람이 아니면 탈고하지 못했을 것이다. 책 말미에 실은 ‘덧붙이는 글 ― 씨알을 찾아서’에서 이 책의 주제를 압축해놓았다. 또한 대중에 처음 공개되는 육필 메모를 포함해 책의 이해를 돕도록 40여 컷의 사진과 200자 원고지 92매 분량의 연보를 함께 수록했다.

목차

들어가는 말


제1부 꿈을 꾸다

1장 용천 바닷가에서
감탕물을 먹고
혼자 방을 쓸던 아이
‘나’를 기다리던 길

2장 다섯 뫼 그늘에서
고읍역에 내려서
꿈을 트는 ‘나’

3장 동경에서 생긴 일
‘인생대학’ 입학식
우치무라의 세례
한 편의 영화
사회주의를 거부한 “가슴”

4장 변방에 나타난 목자
남강의 숲
어느 겨울밤의 교실
두 손으로 가린 얼굴
마지막 수업

5장 《성서조선》과 함께
겨울철 성서 모임
‘의’를 구하기
‘루비콘 하河’를 건널 때
‘조선 사람’ 그리기
헌신지교憲臣之交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6장 풀 아래 머리를
셸리와의 해후
서울행을 준비하다가
평양 송산으로
빼앗긴 꿈
서대문형무소로 가면서


제2부 꿈으로부터

7장 반역의 무대
해방의 행진곡을 따라
한 개의 짐을 지고
삼팔선을 넘을 때
한 선
들사람의 사랑
한국 기독교를 향해서
‘씨’와 ‘알’을 말하다
‘생각하는 백성’을 찾아서

8장 서풍의 노래 부르며
무너진 모래탑
혁명의 계절에
세계 여행 길에서
민중을 깨워야 한다
민족을 사랑하는 도리
반드시 해야 하는 싸움
장차 오는 세계를 위해

9장 어머니의 목걸이 찾기
씨알의 소리 내기
저항이 아니라 도전
씨알의 헌법 지키기
씨알 공동체 살리기
전태일 살리기
씨알교육의 터 닦기
한 사람의 힘

10장 꽃 지고 잎 나리어
저녁 나룻가에 서서
사탄의 간첩
민중을 배워야
흙덩이가 돼서라도
변질된 씨, 똥 묻은 명함

11장 높은 봉 구름 위에
그 발길이 올 때
악, 우리가 싸워야 할 것
씨알이 믿지 말아야 할 것
나는 님의 갈대 피리
내 몸을 실험용으로


덧붙이는 글?씨알을 찾아서
찾는 자
씨알 이야기 ‘더 읽기’
낭만주의자의 터전
세상은 밤이더라
엉겅퀴 찔레 밭에서
꿈으로

나오는 말
함석헌 연보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자 : 이치석
프랑스 아미앵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과정(D.E.A.)을 수료했고, 교사로 재직 중 《씨알교육》을 내면서 ‘국민학교’ 명칭 개정 운동을 펼쳤다. 현재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함석헌?씨알사상연구원장으로 있다. 저서로 《전쟁과 학교》(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선정) 등이 있고, 공저로 《세상은 그를 잊으라 했다》와 《일제황민화교육과 국민학교》가 있으며, 서양 중세사 논문으로 〈메로벵 왕조 시대에 골Gaule에서 벌...

책 속으로

그가 걸었던 인생길의 자취를 더듬어보노라면, 무슨 사상이니 철학이니 하는 지식인들의 설명보다 내 가슴에 꽂히는 것은 “내가 너를 만나기만 하면 웃으니 나도 웃음의 사람인 줄 아느냐”라던 그의 심정이다. 이 반문은 시인, 역사가, 교육자, 언론인, 민주화 운동가, 평화주의자 그리고 씨알 사상가 등 세상에 널리 알려진 그의 별칭들의 옷을 벗겨주는 것 같았다. 함석헌 자신도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치고 난 후에 최후의 진술처럼 진정으로 자기 마음을 알고 싶다면 “너는 슬픔을 품고 오너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영원 무한한 세계에서 꿈을 깨듯이 돌아온 자기임”을 밝히기 전부터 푸른 꿈에 실려서 다시 “영원의 나라”로 되돌아가기를 바란 욕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태초의 통일성으로 돌아가려는 도정을 상상한 것이 내가 함석헌을 주저 없이 낭만주의자라고 부르기 시작한 이유였다. --- p.5

“이 땅에서는 불가피적으로 필연적으로 고난의 역사가 나온다고 할 수는 없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일개 자연 현상이지 역사는 아니다.”(〈조선 역사〉 제6장 지리적으로 결정된 조선사의 특질)
함석헌은 결정론적인 역사의식을 부정하였다. 고난의 역사는 ‘조선 사람’에게 예정된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선 사람’이 만들어낸 운명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시작과 끝을 인간 문제로 귀일시킨 그의 “성서적 입장”은 자신의 사명을 먼저 생각하는 낭만주의자의 꿈과 분리되지 않는다. --- p.122

“이 시대는 분명히 불행한 시대다. 그러나 불행함에도 불구하고 교훈은 많이 들어 있는 시대다. 평탄을 잃은 땅이 절경을 낳는 것같이 평온을 빼앗긴 이 시대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진리를 깨닫게 한다.” (〈나의 참회〉) --- p.146

“결혼은 결코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요, 행복이 있을 수도 없습니다. 사람이 젊어서는 꿈을 꾸는 법이요, 꿈 중에서 가장 달콤한 것은 이 행복스러운 이상적 가정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환멸의 비애를 먹는 것 중에 이에서 더 심한 것은 없습니다. … 가정이란 행복스러운 것이 아닌 것은 다 잘 알 일입니다. 짐입니다. 힘 드는 짐입니다. 가다가 때때로 집어 내던지고 활활 자유로워 보자는 생각을 하는 것은 한 사람만이 아니고 두 사람만이 아닙니다. … 사실을 모르는 청춘남녀를 보고 행복의 살림을 하라고 말 쉽게 축사를 내던지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입니까?” (《성서조선》 1938년 12월 호)
이날 딸을 시집보내는 김교신이 가정은 “환멸의 비애를 먹는 것”이라는 함석헌의 주례사를 듣고 과연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궁금해진다. --- p.150~151

“사람이란 무엇인가 사람 잡아 먹는 짐승
크게 먹어 큰 사람 적게 먹어 적은 사람
안 먹는 사람이라면 짐승 대접 하더라” [사람] --- p.182

앞뒤 정황을 살펴보면 함석헌이 철창에서 나온 것은 1946년 1월 11일이다. 그의 출옥은 사실 의문투성이다. 그 또한 공산당과 소련군정이 왜 그들에게 반역한 자신을 풀어주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단지 “갑자기 나가라는 바람에” 나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김일선 씨 말대로 김일성이 그때 바로 나서려 하는 때이므로 민심을 얻기 위해 정치적으로 해서 된 일인지 알 수 없으나, 하여간 다시 나오려니 생각은 하지도 못했는데 꼭 50일을 지나가 갑자기 나가라는 바람에 나왔다.” (〈내가 겪은 신의주 학생 사건〉) --- p.184

이 논쟁으로 《사상계》는 1만 부 판매를 돌파한 지 1년 만에 3만 부를 넘어섰다. 사실 함석헌이 《사상계》를 통해 한국 기독교를 비판한 내용 자체는 새삼스러울 게 없었다. 진작부터 교회 제도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오랫동안 무교회 모임을 꾸려왔고, 그 신앙 때문에 일제 치하에서 《성서조선》 사건을 치렀을 만큼 한국 기독교사의 첫 세대에서 결코 배제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앙을 《성서조선》에 발표할 때부터 《사상계》에서 윤형중과 충돌할 때까지 함석헌은 30년 가까이 성경과 역사를 연구하면서 교회에 대한 비판을 중단한 적이 없었다. 특히 교회가 강조하는 신성한 규범을 부정하는 것이 그의 양심이 체험한 고유한 “성서적 입장”이었다. --- p.220

“이런 때, 정치가 온갖 사회 발전을 방해하고 있는 때에 입을 닫고 중립을 한다는 것은 결국 정치 한패입니다. 도둑이 왔어도 ‘도둑이야!’ 소리 아니하는 놈은 도둑의 한패 아닙니까? … 친구들조차도 ‘왜 가만있지 않느냐’ 하지만 답답합니다. 글쎄 도둑이 분명한데 도둑이야 소리를 하지 말란 말입니까? 또 내가 하는 것이 무슨 다른 욕심이 있어서 합니까? 도둑보고 도둑이야 했다가 얻을 것이 칼밖에 없는 것을 모르리만큼 내가 바보입니까? 그러면 네가 정말 바보라고 할런지 모르나 바보거든 바보대로 두십시오.” --- p.315~316

함석헌은 《씨알의 소리》를 내면서 두 가지 목적을 내세웠다. 하나는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입노릇을 하라”며 죽은 예수를 본받아 “한 사람이 죽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그에 따르는 “유기적인 생활 공동체”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특히 두 번째 목적을 더 중요하게 여겼는데, 그것은 나라를 건질 “새 중심 세력”을 길러내기 위해 우리가 하나라는 느낌에 이르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이른바 씨알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씨알의 소리》를 낸다는 것이었다. (중략)
“이제 우리는 저항이 아니라 도전을 해야 합니다.” --- p.318

“정치란 게 무엇이냐? ‘씨알은 짐승이다’ 하는 소리니라. 다스린다는 말부터가 건방지다. 누가 누굴 다스리느냐? … 잘살기를 목적하는 정치와 종교, 우리 씨알과는 상관이 없더라.”
함석헌은 씨알 속에 내장된 영원한 “하늘나라”를 꿈꾸면서 민民을 주인으로 여기는 민주주의를 보다 적극적이고 미래적으로 파악했다. 인간은 인간으로 출발해서 끝내 인간 이상以上의 존재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인간 “전체”의 운명과 조건은 원천적으로 다수결 정치에 의해 좌우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p.362~363

“‘찾으라, 그러면 만난다’ 했습니다. 퀘이커들은 하나의 조직적인 운동이 있기 전에 맨 첨부터 누가 지어준 것 없이 스스로 자기네를 ‘찾는 자’라고 불렀답니다마는 나도 퀘이커의 일을 알기 전 나 스스로를 역시 찾는 자라고 했습니다.” --- p.429~430
--- p.429~430

출처: https://japan114.tistory.com/13538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since 2010):티스토리]

책소개

아나키즘(anarchism). 이제부터는 ‘무정부주의’라고 치부된 오역으로 단순하게 지나칠 일이 아닙니다. ‘절대 자유’를 추구하는 이들은 모두가 아나키스트입니다. 모든 억압과 강제, 부자연스러운 체제나 제도조차도 거부할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물론 아나키즘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전통을 고수하려는 분들까지도 존중을 합니다. 다만 인간의 선천적인 절대자유에 대해서 한 번쯤은 숙고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느 것에도 종속되지 않는 인간 그 자체를 지향하는 삶을 추구한다면 말입니다. 그것을 위해 [함석헌평화연구소]에서는 ‘아나키즘과 함석헌’의 낯선 조합을 통해서 현실적인 가능성을 고찰했습니다. 함석헌은 인간 존중과 개별적인 씨ㅇㆍㄹ의 깨우침을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더불어 자본주의의 무한경쟁이 아니라 ‘같이살기운동’을 통해서 전체가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기를 바랐습니다. 아나키스트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相互扶助)와 맞닿아 있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통해서 인간의 순수한 아르케(arche)의 자유로운 삶과 조화로운 삶[協和]을 지향하는 아나키즘과 함석헌의 철학을 진지하게 만나볼 일입니다.

목차

권두언 | 참살이 책을 펴내면서

‘아나키즘 오해’에 대한 역사적 고찰

》 황보윤식
들이는 말-아나키즘의 발현
1. 아나키즘, ‘절대 자유’의 발견
2. 아나키즘무정부주의 곡해의 역사적 배경
3. 아나키즘, 테러리스트 오해의 역사과정
마무리말-아나키즘의 영성

아나키즘 역사와 현대 사회

》 강종권
1. 들말: 국가주의와 아나키즘
2. 아나키즘의 기원
3. 동아시아의 아나키즘
4. 현대 사회와 아나키즘
5. 날말: 인간존엄의 자유를 찾기 위해

함석헌학과 아나키즘-원자적 자아를 정초하다

》 김대식
1. 함석헌의 학문과 사상의 체계적 특수성
2. 원자적 자아 확립을 위한 ‘공부’
3. 수양적 유토피아니스트 함석헌과 원자적 자아의 획득을 위한 ‘수양’
4. 함석헌학의 시론: 세계민중정신의 발현으로서의 3·1혁명과 혁명의 주체로서의 민중

한국의 종교와 언어적 아나키즘

》 이소흔
1. 언어와 종교
2. 종교에 나타난 언어적 아나키즘
3. 한국어와 종교의 상관관계
4. 성서의 한국어 번역 양상
5. 한글에 깃든 아나키즘 정신

함석헌과 아나키즘의 메타적 성 담론

》 김대식
1. ‘무정부주의’ 번역의 문제와 함석헌의아나키즘 175
2. 함석헌과 그의 성 인식 및 성적 실천에 대한 아나키즘적 해석 180
3. 함석헌의 성 관념에 비판적 평가를 위한 아나키즘적 방향성 186

영국의 종교/켈트/철학적 전통 안에서 에코아나키즘을 그려보다

》 김대식
1. 어우러짐/어울림의 실패: 신학적 담론을 다시-생각하기-제1테제: 후기범재신론으로 다시 정초해야 한다!
2. 경험의 편견을 판단중지하기: 베이컨의 경험론에 대한 성찰-제2테제: 생태적 우상을 타파해야 한다!
3. 평화와 행복을 다시-생각하기: 버트런드 러셀을 통한 생태철학-제3테제: 더불어 행복해야 한다!
4. 어우러짐/어울림의 가능성: 켈틱 영성과 함석헌의 협화주의적 에코아나키즘-제4테제: 어울림의 영성을 지향해야 한다!

Religion at the Barricades: Ham Sok Hon’s Liberation Theology바리케이드에 선 종교: 함석헌의 해방신학

》 Songok Han Thornton(한송옥)
Abstract
1. Gandhism, Hamism and the Ethics of Resistance
2. The Death of Minjung Resistance
3. Hope for a Post-Globalist Hamism
4. The Resurrection of Mary Magdalene
5. All Dove and No Serpent

필진 약력
 

저자 소개

 
역사학(중국송대사회경제사)을 공부하였고 다년간에 걸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지금은 함석헌평화연구소 소장, 영주민본주의실천연대 민본사상연구소 소장, 반딧불이서당 춘학구[訓長]로 있다. 더불어 소백산 아래에서 농사(農士, 취래원)를 지으면서 인간의 참세상살이를 위하여 묵자, 노자를 통한 아나키즘과 민본주의를 연구하고 있다. 젊은 시절,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박정희와 전두환독재권력 때는 ...

저 : 김대식

김대식은 1967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났다. 종교학과 철학으로 각각 박사학위를 받은 후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서울신학대학교, 성공회대학교 등에서 시간강사를 역임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숭실대학교, 원광디지털대학교 등에 출강하면서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종교연합(URI-Korea) 지도위원, 함석헌평화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했다. 현재 함석헌평화연구소 부소장, (사)기독교미래교육연구소 ...

저 : 이소흔

문학박사(국어학).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비전임교수.

출처: https://japan114.tistory.com/10328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since 2010):티스토리]

책소개

세상사람 누구나 갈구하는 보편적 가치로서의 평화를 찾고 구현하는 길을 모색하기 위하여, 함석헌의 언어론, 국가론, 종교론, 인간론, 역사론의 각각의 사고 영역에서 시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평화의 철학과 실천 강령을 읽어내는 책이다.

목차

들어가는 말: 순수한 평화의 시원을 찾아서

제1장 함석헌의 언어평화론: 탈언어적 평화
1. 함석헌의 언어 모호성과 자유로운 사유 확장
2. 언어의 보편성과 타자 인식 범주로서의 ‘바탈’
3. 언어의 탈지배적 비판 기능[지체성]을 통한 평화

제2장 함석헌의 절대자유평화론: 탈국가주의적 평화
1. 민주주의, 과연 평화주의인가?
2. 탈영토적 국가와 탈민족주의
3. 중립적 국가 평화론

제3장 함석헌의 종교평화론: 탈종교적 평화
1. 궁극의 무종교적 세계
2. 상대세계에 대한 저항
3. 무교회주의와 무(無)에 대한 해석학적 평화

제4장 함석헌의 생태평화론: 탈인종적·탈인간중심적 평화
1. 자연, 그 둘러-있음의-세계와 평화
2. 생태적 평화를 위한 상호관찰자로서의 자연과 정신
3. 몸으로서의 전체인 우주의 평화

제5장 함석헌의 역사평화론: 탈역사적 평화
1. 뜻의 보편성과 역사
2. 타자의 시간 체험의 인정과 뜻으로서의 현상학적 역사론
3. 생각, 시간과 역사의 평화를 위한 근본 토대

제6장 비폭력주의와 협화주의
1. 비폭력의 실천철학자로서의 함석헌
2. 폭력의 무화와 삶의 형식으로서의 평-화
3. 평화의 영성을 위한 예수의 비폭력 투쟁과 퀘이커 사상
4. 비폭력의 미학과 함석헌의 아나키즘적 평화의 감성
5. 폭력이라는 언어와 실재에 대한 저항을 넘어 협화의 정신을 향하여

나오는 말: 상보적 주체성과 상부적 주체성

보론: 왜 평화는 아나키여야만 할까?
 

저자 소개 (1명)

저 : 김대식
 
김대식은 1967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났다. 종교학과 철학으로 각각 박사학위를 받은 후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서울신학대학교, 성공회대학교 등에서 시간강사를 역임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숭실대학교, 원광디지털대학교 등에 출강하면서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종교연합(URI-Korea) 지도위원, 함석헌평화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했다. 현재 함석헌평화연구소 부소장, (사)기독교미래교육연구소 부소장, 함석헌기념사업회 (부설) 씨알사상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함석헌의 평화론』,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예수와 신앙 언어』, 『함석헌과 이성의 해방』, 『그리스도교 감성학』, 『켜켜이 쌓인 시간을 풀어주는 사람』 , 『치명적 자유의 향연: 아나키즘과 함석헌』(공저) 등이 있다. 주요 관심분야는 아나키즘을 기반으로 한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회주의 해석, 현상학적 인식론과 존재론, 환경철학과 정치미학, 해체구성적 종교이다.

출처: https://japan114.tistory.com/5874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since 2010):티스토리]

 

고난의 역사, 역사는 첫머리에서 나중 끝까지 고난인가, 역사가 고난이요 고난이 역사인가? 속만 아니라 겉까지도, 뜻만 아니라 그 나타내는 말까지도 고난이어야 하는 것인가? 대체 고난의 역사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함석헌 선생이 1933년 12월 31일부터 1934년 1월 4일까지 우리 역사에 대해 강연했던 것을 잡지 『성서조선』에 실었던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젊은 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어려운 용어와 한문문장을 풀이했으며 관련되는그림과 사진도 150컷을 실어 이해를 돕고 있다. 고전은 항상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바램을 따라 우리 역사를 철학의 입장에서 풀어가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고난의 역사가 애당초 어째서 나타나게 되었는지 그 기원과 까닭을 설명하고 있다. 더불어 함석헌 선생의 사상까지 접할 수 있다.

출처: https://japan114.tistory.com/5519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since 2010):티스토리]

책소개

함석헌을 세계적 철학사상가들의 반열에 올려 놓고, 그들과 비교함으로써 함석헌 해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고 있는 저자가 함석헌의 마음과 생각을 ‘저항의식’과 ‘평화사상’과 ‘인간중심’ ‘생태환경’ ‘아나키즘’이라는 창을 통해서 읽고 함께 이야기하는 책이다.

목차

제1부 함석헌의 초월론적 세계와 정치·종교 수사학
함석헌의 정치 인식과 철학
1. 씨의 융합(정치)철학
2. 혁명적 인간, 혁명하는 인간
3. 3월의 민족정신, 삼일정신
4. 전쟁 미화 비판과 비폭력적인 평화
5. 평화적인 아나키즘의 상상력

함석헌의 생태이성과 정치이성
1. 정치적 존재의 삶과 바르게 사는 인간
2. 정치의 또 다른 이름, ‘백성의 자연’을 부르는 자
3. 원자력의 기호(sign)와 자기 테크놀로지
4. 국가 정신의 해체와 인간 정신의 퇴락
5. 흔적뿐인 목자, 곤혹스러운 정치
6. 프로이트와 공백, 그리고 침묵 소리의 뜻하지 않은 방문

함석헌의 시선으로 바라본 생철학적 의미의 이질성
1. 생각에 대한 ‘생각’을 근원적으로 묻다
2. 몸적 주체성의 회복을 위해 생각-함
3. 이념(논쟁)보다 생을 앞세우라!
4. 돈, 동그랗지만 날카로움으로 감
5. 다문화에 이중적 잣대는 안 된다!

함석헌의 종교 해석과 의식의 옹호
1. 함석헌의 진리 인식과 초월자에로의 기투
2. 근사적 진리로는 종교 행복이 있을 수 없다!
3. 근원적인 문자를 찾기 위한 해석학
4. 시원적 의식의 해석학, 지중해와 그리스도인의 정신세계
5. 종교적 인간, 부처로 인해 숨을 쉬다!
6. 예수, 납세 문제에 답하다!

함석헌의 종교적 신념과 실존
1. 거룩의 현상학: 부정(不淨)한 것은 거룩의 선택을 빼앗는다!
2. 뜻에 대한 인식과 인간의 종교적 지향성
3. 초월자의 발화와 종교인의 이성적 신앙
4. 종교적 인간과 성(性/聖)스러운 인간
5. 다 없는 사랑을 하는 인간

함석헌의 비판적 종교사유
1. 교회 공동체의 제도적 속박과 민주적인 신앙 공동체
2. 함석헌의 종교다원주의
3. 면도한 원숭이들의 논쟁
4. 함석헌의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입장

종교평화지수 제정의 기초 작업을 위한 철학적 성찰
1. 막스 베버의 종교사회학과 갈등 실재론에 대한 이해
2. 종교 간 갈등(종교적 스트레스)의 지수화 작업
3. 갈등에서 평화로--종교평화지수 제정에 대한 철학적 함의
4. 함석헌의 종교문화 비판과 종교평화

사르트르의 관점에서 본 함석헌의 종교적 에크리튀르와 아나키즘
1. 종교 비판가로서의 함석헌
2. 참여적 종교 작가로서의 함석헌
3. 무교회(주의)적 담론에 대한 종교적 아나키즘의 해석학

종교 간 고통에 대한 해석학적 성찰과 유동적 종교
1. 유동적(liquid) 종교를 위한 함석헌의 사유 방식
2. 종교 간 고통의 해석학적 의미와 종교의 아스퍼거 증후군
3. 현대 종교에서의 신 죽음의 현상
4. 탈형이상학의 형이상학과 종교 평화를 위한 편애의 현상학

제2부 함석헌의 환경세계 인식과 실천
왕양명과 함석헌의 둘러-있음의-세계 현재화와 존재인식 207
1. 둘러-있음의-세계를 생각하며: 왕양명과 함석헌의 철학적 만남
2. 첫 번째 관심: 왕양명의 인간학과 생태적 사유의 해석학적 단초
3. 두 번째 관심: 함석헌의 세계관 철학에서 인간과 자연
4. 세 번째 관심: 왕양명과 함석헌을 통한 반데카르트주의 자연 인식의 가능성
5. 다시 근원적인 물음과 해답으로: 존재의 거리와 생명 평화적 공존을 위한 길

자연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 사람들과 환경사목의 공리
1. 신자 생활의 뼛속까지 환경적이어야 한다!
2. 모든 그리스도인은 환경 청지기여야 한다!
3. 모든 사목자는 근본적으로 환경사목자여야 한다!

본당 사목자의 환경 인식과 생태적 리더십의 요청
1. 대지의 아픔을 직시하라!
2. 피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라!
3. 생태적 리더십을 발휘하라!

물의 생명성과 생명평화를 구현하는 본당 공동체
1. 상처 입은 물과 불안한 인간
2. 인간의 자연 소유와 앓고 계신 하느님
3. 우주적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는 본당 공동체

쇠진하는 생명의 빛과 생태 공동체로서의 본당
1. 빛으로서의 교회와 생태적 악덕의 번영
2. 정처 잃은 하느님의 생명언어와 생태적 휴머니즘
3. 전 지구적인 생태적 운동과 생태적 기초 공동체로서의 본당

본당공동체와 우주공동체-내에서의-거룩한 바람[성령]의 동일현존
1. 거룩한 바람의 신음과 생태적 파국을 극복하기 위한 생명의 영
2. 하느님의 소외와 샬롬 공동체인 본당
3. 인간의 생태적 몽유병 상태에서의 해방

종교를 더 근원적으로 실용화하고 환경을 더 근원에서 사유하기
1. 종교를 좀 더 근본적으로 묻는 종교실용주의
2. 불가능한 가능성인 놀이로서의 환경 사목
3. 기계적 시간을 멈추는 사목

에필로그: 의식의 사물화와 참을 수 없는 삶의 가벼움
 

저자 소개

저자 : 김대식
저자 김대식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전헌호 신부의 지도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성공회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등에서 강사를 역임했고, 지금은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원광디지털대학교 등에 출강하면서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종교연합(URI-...

책 속으로

신이 되려고 애를 쓰기보다 참 인간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종교의 지향성, 즉 신과 같이 되기 위해서는 참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다 보면 가 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를 갖고 신을 믿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행복은 종교의 행복에서 기원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종교의 행복은 신자를 많이 확보하고 성장한다고 해서 누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믿는 인간이 신에 의해서 그려지는 깨달음, 즉 신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치는 사람, 참 인간의 바탈을 보는 사람이 많아지면 된다. 신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믿는 가시적 복보다 더 무게를 두어야 할 것은 신이 내 안에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내 안을 비추고 있는가, 경전의 빛이 어떻게 나를 조명하는가, 내가 믿는 신만으로 즐거워할 줄 아는가를 자문해 보는 것이다. 그것이 신을 믿는 사람의 글속(건전한 종교 인식 능력, 종교적 자율성, 종교 행복의 이해) 수준이 아닐까? (본문 91쪽)

모든 종교 혹은 모든 사람이 신의 실재 안에서 하나로 통(通)한다. 동시에 또 다른 차원의 하나로 통(統)한다는 것 혹은 본줄기로서 하나가 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사랑만이 마치 하나인 듯이 살 수가 있고, 하나인 것처럼 공존할 수가 있다. 실상은 모두가 개별자이지만 그 개별자를 하나로 이을 수 있는 것은 신의 존재 안에서 신의 사랑으로 물들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종교 가능의 조건이자 인간 가능의 조건이다. 존재자의 가능 조건은 최소한 윤리적 종교에 부합하는 사랑-안에-있음이다. 윤리적 종교는 신과 인간의 관계적 행위, 인간과 인간의 관계적 태도나 습관(mores)으로 일관하는 통일성을 부여한다. 이것이 없다면 종교의 생명력은 자신의 존립 기반 자체를 상실하고 말 것이다. (본문 161쪽)

왕양명과 함석헌으로부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의식 밖의 세계가 인간 자신과 전혀 동떨어진 대상이 아니라 마음 혹은 생각(정신)과 일체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 둘러-있음의-세계는 인간 자신이 있는 자리가 곧 인간의 자리일 뿐만 아니라 둘러-있음의-세계로서 주체적 자연의 자리라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철학자의 반 데카르트적 사유반 데카르트적 사유를 발견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교황이 다녀가셨지만, 마치 바다 위를 지나간 뱃자리가 빠르게 지워지듯, 그 여운과 여파는 급속도로 잦아들고 말았다. 핵심 과업이었던 시복식은 종단 내적인 문제로 치부한다고 해도, 교황은 한국에 머무는 동안 내내 구석진 곳,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무던히 애를 쓴 것 같은데, ‘한국이라는 바다’는 어느덧 늘 그대로 의연히(?)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그제서야, 교황이 오신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한 것 자체가 잘못된 전제였다는 생각이 되살아난다. 철없는 종교인이 아니라면, 신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고 믿는 신앙인도 없을 것이요,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일을 ‘그분’이 대신해 줄 수 있으리라 믿는 것도 연목구어(緣木求魚)의 기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다. 다시 함석헌을 떠올리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함석헌을 다시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당면한 시대의 정치, 경제, 종교, 생명, 교육 등의 무사유적(無思惟的) 상황 때문이다.
정신과 생각이 자라지 못한 시대를 늘 비판했던 함석헌. 그의 철학과 사상이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좌표를 제시해 줄 것이라는 믿음 역시 그를 다시 불러낸 까닭이기도 하다. 늘 당면한 현실에 대한 문제를 잘 간파하고 그 징후를 포착하였던 함석헌은 시종일관 인간의 정신과 생각을 깨우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간이 유한한 물질적 세계에 경도되어 있지만 그 자신의 바탈은 반드시 정신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 책에 담긴 생각들은 삶의 세계가 처한 고민들을 저자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서 진지하게 풀어 가려고 노력한 흔적이다. 또한 함석헌의 사상이 구태의연하며 구시대적인 언어와 사유로 인식될 수 있으나 저자는 다양한 학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그를 우리의 삶 속에서 새롭게 살려 내려고 한다. 삶이 달라지면 거기에 대응해서 정신도 진보해야 한다. 정신과 생각도 동시에 생성되는 것이다.
이제 시대에 걸맞은 사유와 행동을 위해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하고자 하는 존재들은 주저 말고 죽어 있는 문자가 아닌 살아 있는 정신으로 함석헌을 맞대면하라. 다시 정신! 다시 생각이다! 그가 절박하게 외치는 소리를 마음으로 듣는 한 지성인을 위한 초대를 외면하지 마라.

추천평

함석헌의 글은 언제 읽어도 말로 그치는 게 아니라 행동할 것을 자극한다. 심장을 떨리게 하는 언어는 역사의 현장에 투신하도록 독자의 의지를 북돋아 준다. 마르쿠제(H. Marcuse)는 현존재(Dasein)란 역사적 행동을 하는 존재라 했다. 마찬가지로 함석헌이 말하는 현존재로서의 씨?은 시대의 문제를 방관하지 않고 역사 앞에서 행동해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 이처럼 역사는 민중의 의식과 행동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민중이 깨어나고 살아 있기 위해서는 함석헌과 같은 인물의 사상적 계도가 필요하다. 민중 스스로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계를 바라보는 의식과 본질을 추구하는 역사철학, 나아가 자기시대를 고민하는 역사의식을 분명하게 가져야만 한다. 그래서 함석헌은 민중의 주체적인 ‘생각’을 강조했고, 바탈이 곧 행동으로 이어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한 인간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이 시점에 저자의 글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저자는 함석헌의 어록을 자신의 관점으로 참신하게 해석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조명함으로써 오늘날 민중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잘 짚어주고 있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지향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민중이 있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이만열 함석헌학회 회장,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김대식 박사는 함석헌의 귀함을 이 시대의 중요성에 비추어 들어냄과 동시에, 특히 함석헌을 세계적인 철학자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함석헌을 연구하는 다른 연구자들은 함석헌을 세계적인 사상가, 철학자로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김대식 박사는 함석헌을 세계적인 철학자로 재탄생시켰습니다. 그것은 함석헌의 말과 글을 유럽의 저명한 철학자의 말과 글에 대입하여 사람(씨)에 토대를 둔 함석헌의 행동철학(몸-짓)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함석헌의 이러한 사상의 토대를 저자는 왕양명 사상의 지행합일(知行合一)에서 찾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 책을 통하여 함석헌의 철학세계는 물론, 동서양의 철학세계까지 모두 섭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한 권의 책을 가지고도 세계철학자들의 사유세계를 요약해 읽는 동시에 함석헌의 사상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자 김대식 박사에 의하여 함석헌은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황보윤식_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 함석헌사상연구소 소장, 함석헌학회 총무이사

출처: https://japan114.tistory.com/7010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since 2010):티스토리]

책소개

한국사회에서 일반적 사람(흔히 말해지는 민주주의의 민중)들은 민주주의/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법치와 사회질서가 무너지면 대혼란이 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지금 법치(法治)라는 명제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탈을 쓰고 개인의 절대 자유를 최대로 통제하고 규제하는 제도라는 것을 안다면 그런 생각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게 되리라 본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엘리트 중심의 권력구조가 반(反)권력적, 반(反)통제적으로 존재한다면, 국가=권력 울타리라는 존재는 ‘나라=삶의 울타리’라는 존재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통제성을 갖는 국가의 속성과 자율성을 갖는 인간의 본질은 서로 상치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정의로운 인간에게 자율과 자치를 보장하는 합의된 나라(자율공동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기대하기가 어렵다. 여기서 함석헌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의 자유를 규제/통제하는 ‘국가주의’를 거부(부정이 아닌)하는 아나키즘이 나오게 된다. 함석헌은 엘리트 중심의 ‘국가’가 아닌, 씨ㅇㆍㄹ(=민인)중심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글쓴이는 민본(民本)아나키즘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글쓴이는 아나키즘을 천부적(天賦的)이고 본능적인 자연적 인식체계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에 입각하여 역사인식을 하고 있다. 곧 엘리트 권력자들이 말하는 농민반란을 민중기의(民衆起義)로 표현하고 있다. 또 3.1운동/민중기의의 외적동인에 대하여서도 새롭게 보고 있다. 나아가 민본아나키즘 입장에서 우리 영토의 분단함정과 고착음모가 어디에 있는지를 분석해 보인다. 특히 글 중에 노인인문학은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어디 있는지를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독자제현들은 이 책을 통하여 세상을 바르게 보고/읽는 공부(역사인식)를 하게 되리라 본다.

목차

지은이의 말

책을 열면서: 글쓴이의 삶

제1부 민본주의와 민본아나키즘

국민과 민주주의, 그 역사기원
민주주의의 결함을 민본주의에서 찾는다
민본주의 시대로 가야 하는 까닭은?
아나키즘, 그리고 ‘민본아나키즘’의 영성
‘민본아나키즘’으로 재조명해 보는 개념인식
민인, 역사무대 주인이 되다
함석헌이 말하는 씨ㅇㆍㄹ은 누구를 말함인가

제2부 3·1민중기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동인론

3·1민중기의와 민족주의 문제
3·1민중기의의 동인론 문제
‘그리스도교민족주의’와 3·1민중기의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 3·1민중기의
러시아 사회주의혁명과 3·1민중기의
함석헌의 3·1민중기의 경험담

제3부 우리 영토/민족의 평화와 통일문제

우리 영토/민족 분단의 함정과 음모
우리 영토/민족의 분단함정을 캔다
미국의 핵무기 개발과 원폭투하, 그리고 분단함정
일제가 판 함정, 패전 이후의 태도
분단의 함정, 국내 분단세력의 권력욕
우리 영토의 분단고착화 음모와 함정
우리 영토의 평화와 민족통일의 장애물
우리 영토/민족의 통일은 가능한가-먼저 민족동질성을 회복하자

제4부 민본아나키즘으로 세상보기

3·1절에 생각한다-아베와 일베
박정희에 대한 바른 깨달음을 바란다
‘노인인문학’-한국사회 노인의 역사인식과 사회의식
누가 ‘귀태’일까?
감옥소에 간 박근혜 님에게 『토황소서』 일독을 권한다
촉견폐일 백락일고우리 사회를 능력사회에서 인격사회로 바꾸자
평화운동을 일으킬 정치인을 만들어내자
때가 오고 있다. 나라를 더이상 더럽히지 말자
일본의 영토/경제침략에 대비하자 -수구 세력/언론의 ‘ 낡은 우상낡은 우상’을 비판하며

글을 마치면서

● 참고문헌
● 찾아보기

저자 소개

 
역사학(중국송대사회경제사)을 공부하였고 다년간에 걸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지금은 함석헌평화연구소 소장, 영주민본주의실천연대 민본사상연구소 소장, 반딧불이서당 춘학구[訓長]로 있다. 더불어 소백산 아래에서 농사(農士, 취래원)를 지으면서 인간의 참세상살이를 위하여 묵자, 노자를 통한 아나키즘과 민본주의를 연구하고 있다. 젊은 시절,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박정희와 전두환독재권력 때는 영어생활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참씨ㅇㆍㄹ’로 살기 위해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을 열고 있다. 이외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 “민본주의사상연구소”, “자유와 평화운동-아나코 평화주의”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외에 공저로 『치명적 자유의 향연-아나키즘과 함석헌』, 『함석헌과 민본아나키스트』 등이 있다. 연고주의와 지역주의를 반대하여 관계 내용을 적지 않았다.

출처: https://japan114.tistory.com/7009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since 2010):티스토리]

책소개

종교사상가이자 문필가요 민권운동가인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을 저자의 철학적·종교적 사유를 통하여 해석, 함석헌의 사유 세계를 조명한 글이다. 저자는 함석헌이 갖고 있는 글의 힘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대중들과 나눔으로써 그의 종교와 철학적 사상이 인간의 삶을 좀 더 행복하고 가치 있게 만들 수 있음을 확신하며 함석헌 사상의 핵심을 ‘종교’라는 키워드를 통해 짚어냈다.

목차

제1장 종교에 대한 함석헌의 철학적 이해
1. 생활 세계의 정신적 바탈과 사랑의 철학2. 예수 인식론, 비약
3. 의지처-없음의 종교4. 뿌리 찾는 종교
5. 참얼과 되어-감의 종교

제2장 함석헌의 종교에 대한 근본적 비판
1. 자기의 본래 자리를 묻는 종교2. 맛의 종말을 맞이한 종교와 인간의 정신적 침체
3. 화폐권력의 종교와 시대를 비판하는 종교4. 이성과 조화를 이루는 종교
5. 종교의 존재 인식과 시원을 찾으려는 종교6. 종교인이 종교를 배워야 하는 이유

제3장 함석헌의 언어철학과 생태철학
1. 함석헌의 월경하는 언어(말-법)2. 함석헌의 종교언어와 살림의 언어
3. 함석헌의 생태적 언어와 자연환경4. 함석헌의 언어이성비판과 감성사회
5. 가난한 에너지 비극의 탄생과 생태적 종교의 요청

제4장 함석헌의 노장철학과 생태사상
1. 노장의 도와 함석헌의 말값2. 노장(의 도와 씨의 아프리오리
3. 노자의 물과 함석헌의 생명[삶숨] 사상4. 노장사상에 대한 함석헌의 선험철학적 해석
5. 함석헌의 생태철학적 자연 인식6. 도의 우주적 생명놀이
7. 자연에 대한 타심통8. 자연에 대한 혼의 소리, 양심
9. 우주적 씨?의 맘-결을 가루는 회통의 종교

제5장 간디와 함석헌의 메타-호도스와 메타-에콜로지, 그리고 메타-담론
1. 간디와 함석헌의 길을 그리워하고 규정함2. 생태미학적 감성으로 되돌아가 자연을 감싸 안음
3. 모든 존재자들의 기반인 삶-숨의 길(의지)로 이행함
4. 간디와 함석헌의 길을 주시하고 숙고함

제6장 영역(자리)의 철학과 종교학
1. 함석헌과 종교 영역(자리)의 위기2. ‘뜻’자리 찾는 종교
3. 함석헌의 얼굴 현상학과 인간(다움)의 자리(영역) 4. 함석헌의 ‘그 사람’과 인간성의 자리
5. 다시 인간의 영역을 넘어 자연의 자리를 위한 염려, 고려 그리고 배려

제7장 함석헌의 해체적 사유
1. 종교를 탈구축하자!2. 정신을 탈구축하자!
3. 예수 성탄은 있는가? 성탄을 탈구축하자!4.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을 탈구축하자!

제8장 함석헌의 혁명철학
1. 4·19혁명의 후예들이여, 자신의 정신을 혁명하라!2. 인간 정신을 혁명하라!
3. 종교 정신을 혁명하라!

제9장 인간의 세계 경험과 인식의 성찰, 그리고 아나키스트 함석헌의 생태철학
1. 세계에 대한 생태 아나키즘의 문제의식2. 함석헌의 아나키스트적 생태 언어
3. 삶의 세계에 대한 생태 아나키스트 함석헌의 새로운 시선

제10장 씨? 함석헌의 인간학
1. 평화를 추구하는 인간2. 전체적 인간과 이성적 존재
3. 종교적 인간, 마음을 씻으십시오! 4. 심미적 인간, 아름다운 맘을 찾습니다!
5. 생태적 인간, 자연은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제11장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철학과 타자, 그리고 함석헌
1. 타자화된 인간의 노동과 타자화된 자연
2. 소외된 삶의 양식과 타자가 되어 버린 인간(성)을 바꾸기

저자 소개

저자 : 김대식
1967년생으로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를 졸업(B.A.)했다.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석사학위(M.A.)를 받은 뒤,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전헌호 신부의 지도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지금은 대구가톨릭대학교 가톨릭사상연구소 연구원이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등 여러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

책 속으로

오늘날 종교 속에 ‘놀라움’[비약]이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져 보게 된다. 삶을 뛰어오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도약하는 종교, 혹은 초월적 삶을 살려고 하는 종교를 만나고 싶은 것이다. 인간의 삶을 한 단계 올라서게 하는 종교의 모습, 그것을 우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함석헌은“예수는 비약”이라고 말했다. 예수라는 인물은 새 시대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새 시대에 걸맞은 종교를 탄생시킨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종교는 예수처럼 비약하려 하지 않는다. 날아 보려고 애를 쓰는, 올라 보려고 애를 쓰는 몸부림이 약해 보인다. 앨버트 로스처럼 긴 호흡을 가지고 비상하는 정신이 메말라 가고 있다. --- p.22

인간의 삶이 복잡해지면서 언어 또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첨단 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인간의 언어가 단순화되고 일원화되는 것 같지만 반면에 소통은 더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세대만 건너뛰어도 언어가 소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어가 소통되지 않는다는 것은 상호간의 삶의 의미를 주고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서로 전달되지 않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사회와 세계를 새롭게 창조해 내지 못하는 상황들이 전개되는 것이다. 심지어 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 p.60

간디는 인도의 종교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에 대해서도 박학다식 했던 수도자 혹은 였다. 태생과 후생의 종교적 관념들을 잘 조합시켜 사상과 실천의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고 그것을 몸으로 산 인물이다. 함석헌은 어떤가? 그는 한동안 다석 유영모의 문하생으로 머물렀지만, 종교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사상들을 통합하여 날카로운 시대적 비판을 만들어 낸 인물이 아니던가. 둘은 시대가 만든 새로운 세상을 꿈꾼 사람들, 시대를 고민한 명민한 사람들이었다. --- p.96

인간의 사유는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이미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사유란 어느 공간과 시간을 넘어서 그것을 기억하고 기획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일찍이 하이데거의 연인이었으며 야스퍼스의 제자였던 한나 아렌트(H. Arendt)는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 사유하고, 사유를 인식과 행위의 도구로 사용하기보다 이 능력을 통해 더 많은 것을 행하려는 성향과 필요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더 나아가서 “사유하는 나는 거처를 갖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 p.137

“인간이란 무엇인가?” 진부한 물음 같지만 사실 영원히 해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이다. 한자어를 있는 그대로 풀면 ‘사람 사이’를 말하는 것이고, 영어로 풀면 human being이니 ‘흙에서 비롯된 존재(있음)’, ‘흙에서 나와서 있음’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세계 내에 ‘있음’으로 존재하는 인간은 사람이 서로 엇기대어사이사이에(사이좋게) 관계를 맺고 사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홀로-있음이 아니라 이미-관계-속에-있는-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함석헌은 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관계-속에-있어야-함을 이렇게 말한다. --- p.171

근본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그 근본의 잣대는 무엇이며, 근본이라 주장할 수 있는 전거는 어디에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근본의 근본을 먼저 물어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종교적 근본주의는 자신의 주장의 근거가 되는 것을 경전 혹은 전통이라 할 것이고, 정치적 근본주의는 정치적 계보와 정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문화적 근본주의-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는 그 문화의 뿌리가 되는 지리, 역사, 사회, 언어 등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물어야 하는 주체인 인간은 근본을 묻는 순간 자신의 지식과 판단, 그리고 상황이 이미 변하고 있으며, 일정한 시공간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서 가변적 시공간 안에서 묻는다는 것은 근본주의를 정의내리고 개념화하는 것이 늘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 p.221
 

출판사 리뷰

함석헌은 누구인가; 함석헌은 거짓과 비겁에 저항하는 시대의 양심이었다

함석헌은 종교·역사·사회·정치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전통과 새로운 지식의 조화를 추구한 사상가이자, 그가 신앙으로 삼은 기독교의 진리와 정신을 동양적·한국적인 의미로 해석하여 토착화한 독창적인 기독교 사상을 이룩한 종교사상가이다. 또한 그는 추상적인 탁상공론을 일삼은 학자가 아니라 실천하는 자로서, 한국현대사의 고비마다 수난을 당하며 항일·반독재에 저항하였으며 비폭력·평화세계를 지향한 사회개혁가였다.

시대정신을 깨우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바로 함석헌의 ‘큰 정신’이다

함석헌의 사상은 사랑의 철학이다. 사랑이 생명진화의 동력이고, 약함과 모름에서 생명과 정신은 발전하고 완성된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씨알 속에, 씨알과 함께 계시다고 함으로써 씨알을 역사와 우주의 중심과 주체로 세웠다. 사랑으로 전체의 자리에 섬으로써 상생과 공존의 비폭력 평화사상을 내세운 사람이 바로 함석헌이다. 오늘날의 풍족함과 안락함, 눈과 귀가 즐거운 사회를 사는 대중들에게 시대의 목소리를 들으라 하기엔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또한 ‘정신적 가치’에 대한 말이 고리타분한 설교로 들리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비판적 언어가 필요한 시기, 상생과 공존의 평화사상이 필요한 시기이다. 함석헌이 그렇게도 강조했던 ‘깊이 생각함’과 ‘스스로 함’과 편견 없이 생각할 줄 아는 ‘큰 정신’이 우리 시대에 필요한 시대정신이라 생각된다.

추천평

함석헌의 현실 비판은 눈앞에서 전개되는 정치와 사회의 현상을 바로 보고 분석하는 것을 위주로 하지만 거기에만 그치지 않고 나아가 전반적인 문명비판에까지 이른다. 비판의 잣대는 종교적 가치관이다. 종교는 그에게 궁극적인 가치를 대표한다. 그와 같은 사회개혁가였던 간디나 톨스토이에게처럼 종교를 빼고 함석헌을 이야기할 수 없다. 그에게 있어 종교는 기존의 제도종교나 교리가 아니고 경전을 중심으로 한 원래의 순수한 가르침과 말씀이다. 종교적 진리는 또한 보통사람(씨알)의 내면에 심어져 있다. 그의 말글은 대개 자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영감과 계시 같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내면에 감응되어 스파크를 일으킨다. 이 책의 글들이 종교를 주제로 한 것은 그래서 더 큰 의의를 갖는다. 함석헌 사상의 핵심을 짚어 내고 있는 셈이 된다. 이 글들은 그의 종교적 현실관을 시의에 맞게 재해석하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함석헌 당대의 현실과 오늘의 현실에 큰 차이는 없지만 오늘은 오늘대로 새로운 언어로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더구나 변화의 속도는 정보기술의 혁명과 더불어 더 빨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 사이를 이어주는 새로운 해석학적 도구와 문법이 필요한데, 종교와 철학을 넘나들며 폭넓은 훈련을 쌓아온 저자가 누구보다 그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할 것이다. 함석헌도 말했지만, 동양인에게는 종교와 철학은 한 둥치에서 나온 것이다.‘철학’의 지혜(sophia)는 종교적 깨달음과 지혜이다.

김영호 (인하대 철학과 명예교수)

출처: https://japan114.tistory.com/7008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since 2010):티스토리]

책소개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은 함석헌의 사상을 집대성한 것이다.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하였는지 지난 40여 년간 함석헌을 연구한 저자가 생동감 있고 깊이 있게 풀어냈다.

목차

여는 글 | 만남과 배움
제1장 | 주체와 종합의 사상
제2장 | 생명사상
제3장 | 민주정신
제4장 | 문화사상
제5장 | 평화사상
제6장 | 종교사상
제7장 | 기독교의 개혁과 진리정신
마치는 글 | 참의 바통

저자 소개

저자 : 박재순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신대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신학연구소 번역실장, 한신대 연구교수, 성공회대 겸임교수,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씨알사상연구회 회장을 지냈고, 재단법인 씨알 상임이사, 씨알사상연구소 소장, 다석학회 이사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씨알사상』(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다석 유영모』(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

책 속으로

신적 초월과 맞닿은 ‘나’를 중심에 놓음으로써 함석헌은 지금 여기의 삶에 집중한다. 지난 역사의 전통에 매이지 않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나 불안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지금 여기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오늘과 무관한 어제도 없고 오늘을 떠난 내일도 없다. 과거는 오늘의 삶과 관련될 때에만 산 과거가 되고, 미래는 오늘의 삶과 이어질 때에만 의미를 지닌다. 역사의 의미는 과거와 오늘과 미래가 이어질 때에만 찾을 수 있다. 오늘의 삶과 무관한 과거를 말하는 것은 한가한 짓이고, 오늘의 삶을 내일로 미루는 것은 게으른 짓이다. 참으로 있는 것은 지금 여기의 삶뿐이다. (50쪽)

함석헌은 생명을 자유로운 주체(정신)의 관점에서 보면서도 ‘스스로 함’을 방임적인 자유로 보지는 않았다. 주체로서 개별적 생명체는 우주 전체의 신적 생명으로부터 생의 명령과 의무를 지고 있다고 보았다. 생명(生命)이란 말 그대로 ‘살라는 명령(生-命)’이다. 생은 생과 사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전체 생명으로부터 “살아라” 하는 절대의 명령을 받고 사는 존재다. 또한 생명은 물질적 조건과 제약을 초월하는 존재이면서 전체 생명과 뗄 수 없는 깊은 결속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생은 절대 자유이면서 절대 의무다. (77쪽)

문화로 표현되는 삶의 바탈은 하나이고 전체이나, 바탈을 문화로 드러내는 이성의 빛은 상대이고 유한하다. 이성은 인간의 바탈인 얼, 즉 ‘한’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 바탈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고 상대적이고 유한한 형태로 인식하고 표현한다. 문화와 문화인은 문화적으로 표현된 상대적이고 유한한 형태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이고 전체인 바탈과 이성에 의해 밝혀진 문화는 긴장과 대립 속에 있다. 인간 역사는 늘 이 긴장과 대립 속에 있다. 이 대립이 가장 근본적인 대립이다. 이 대립에 의해 문화가 생성하고 소멸한다. 역사는 문화와 바탈, 다시 말해 문(文)과 야(野), 문인과 야인의 싸움이다. (148쪽)

함석헌의 비폭력 투쟁은 적의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일 뿐 아니라 자아의 탐욕과 편견, 폭력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함석헌이 추구하는 혁명은 일반적인 정치혁명이 아니라 인간혁명, 자아혁명에서 시작하는 전체혁명이다. 나와 우리를 선한 편으로 보고 상대를 악한 편으로 보고서 상대를 제압하는 혁명은 폭력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제까지 역사 속에서 반복된 폭력의 악순환을 벗어나는 길은 비폭력 혁명뿐이다. 그리고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너와 나, 전체를 살리는 비폭력 혁명은 자아에서 해방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188쪽)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 세계 사이에 서서 하나님에 대해서는 세계를 지고 세계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역사적·사회적 실천의 자유로운 주체가 될 뿐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의 구원의 주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명의 기본 원리가 ‘스스로 함’에 있듯이 내 안에 절대적 존재가 있으므로 구원도 ‘스스로 얻는 것’이다. ‘나 스스로 고난의 짐을 짐으로써’ 나와 세상이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 함석헌 종교사상의 핵심을 이룬다. (240~241쪽)

그러면 함석헌이 말한 ‘참의 바통’은 어떻게 전하는가? 물질과 조직의 힘에 근거한 제도나 기관을 통해서는 전할 수 없다. 오직 사람을 통해서, 즉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만 전해진다. 왜냐하면 참의 바통은 인간의 껍데기에 속하는 사회제도나 관계에 있지 않고,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인간성, 사람의 속알맹이, 씨알맹이에 있기 때문이다. 제도나 기관의 전형은 국가주의다.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국가주의에 빠지면 사람은 자신의 속알맹이, 인간성, 정신을 빼앗긴다. 사람의 속알맹이는 정신, 영혼, 사랑이다. 따라서 참의 바통은 정신에서 정신으로, 영혼에서 영혼으로, 사랑에서 사랑으로 전해진다.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왜 민중은 주체로서 구실을 하지 못하는가? 인간의 본질이 크게 고장 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격이 모순과 분열 속에 있다. …… 자기 속에서 자기를 찾고 발견해 ‘스스로 하는 존재(主體)’가 되려면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생각하는 씨?이라야 산다”고 했다.”

민족사의 격랑 속에서 곧은 양심을 지키며 독창적 사유를 펼친
‘겨레의 스승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을 집대성하다!

20세기의 벽두에 태어나 민족사의 격랑 속에서 겨레의 고난을 함께한 함석헌. 그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20여 년이 지났다. 그러나 함석헌을 흘러간 과거의 사람으로 치부해버리기에는 그가 남긴 울림이 여전히 깊고 크다. 함석헌이 남긴 말과 글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주고 있다.

대중에게 함석헌은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함석헌은 ≪사상계≫와 ≪씨?의 소리≫를 통해 독재정권을 규탄하며 민주화운동의 선봉에서 구심점과 사표가 된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함석헌이라는 인물의 일면에 불과하다. 함석헌이 한국사상과 동양사상을 바탕으로 서양사상을 받아들여 주체적이고 종합적인 사상을 정립한 큰 사상가라는 점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서양 제국주의 문명이 총칼을 앞세워 동양을 침탈하던 시기, 민족사상가를 자처한 사람들 대부분은 서양사상을 모방하고 배우는 데에 급급했다. 이러한 때에, 함석헌은 동서를 아우르고 회통하는 사상을 창출해냈다. 함석헌에게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는 현실의 고난에서 도피하는 안식처가 아니었다. 함석헌은 식민지 백성의 처지에서 겪는 고난을 기독교의 예수가 겪은 십자가 고난과 연결하여 우리 민족에게 세계를 구원할 사명이 주어졌다고 본다. 이것은 오늘의 삶을 중시하는, 주체적이고 일원론적인 동양적 사고가 반영된 것이다. 또한 민중이라는 존재에 주목하여, 이들에게 참된 역사와 문화가 있다고 주장하며 씨?이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그리고 씨?이 깨어나서 나와 내 시대를 구원하는 주체가 되려면 스스로 생각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함석헌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고 말한다.

그동안 함석헌에 관한 책은 여러 권이 나왔지만, 인간적인 면모에만 주목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아쉬움이 컸다. 게다가 함석헌이 직접 쓴 글들은 명쾌하고 이해하기 쉽지만, 그 양이 워낙 방대하여 읽을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이 책은 함석헌을 알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여준다.


“살림의 주체는 나이고, 나를 찾고 세우는 일은 생각에 있다”

“씨은 외롭지 않다”라고 말하며 민중 속으로 들어가 민중의 아픔을 함께한 함석헌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큰 감동을 준다. 이 책은 그러한 함석헌의 사상을 집대성한 것이다.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하였는지 지난 40여 년간 함석헌을 연구한 저자가 생동감 있고 깊이 있게 풀어냈다.

출처: https://japan114.tistory.com/7007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since 2010):티스토리]

 

책소개

함석헌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독재와 군사 정권으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의 어두운 시기 내내 ‘씨?’이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끊임없이 실천하는 지성인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한자와 외래어 문체를 거부하고 우리의 정신이 깃든 특유의 구어체 문장들을 사용한 ‘씨?의 언어’를 통해 드러난 ‘씨?의 사상’은 시대를 뛰어넘어 현재의 우리에게까지 같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목차

異端者가 되기까지
씨알의 설움
들사람 얼(野人精神)
젊은 女性에게 주고 싶은 말
5·16을 어떻게 볼까
저항의 철학
내가 겪은 關東 大震災
나의 어머니(그건 사람이 아니냐)
씨?의 소리 씨?의 思想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저자 소개 

저 : 함석헌 (咸錫憲)
 
1958년 「사상계」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를 써서 당시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켜 사상가이자 사회운동의 지도자로 널리 알려지게 된 인물이다. 그는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나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인 오산학교에서 역사와 수신을 가르치면서 동인지 '성서조선'에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연재하는 등의 저술활동을 펼쳤으며 1979년, 1985년 두차례에 걸쳐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다. ...
 
편자 : 남승원
문학 평론가다. 경희대학교에서 「한국 근대시의 물신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대학에서 문학과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2010년 ≪서울신문≫으로 등단, 문학 계간지 ≪시인동네≫의 편집위원을 지냈다. 현재 ≪포지션≫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책 속으로

어느 늦어 가는 가을날 궁금한 생각에 채마밭에 들어가니 다 늙어 가는 넝쿨 밑에 오이가 하나 달렸는데 아직 어려서 먹을 나위가 없었습니다. 그래 며칠 기다렸다 따 먹으리라 하고 보아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럴 만한 날이 되어서 가보니 없습니다. 우리 집에 불문율로 당연히 내 차지인 것을 감히 누가 먹었을까? 알아보니 내 바로 밑의 여동생이 따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 여동생은 우리 5남매 중에서도 좀 못난 편이어서 모든 것에 남한테 뒤지기를 싫어하시는 어머니가 그 때문에 속도 적잖이 썩혔습니다.
물론 내가 언제 내 것이다 선언한 일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나의 특권 의식에서 나온 횡포였습니다. 그래서 그 불쌍한 것을 나는 구박을 했습니다. 나는 어머니도 당연 내 편을 들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어머니는 부드럽고 미는 듯하면서도 단연한 목소리로 “얘 그건 사람이 아니냐?” 했습니다.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지금도 그때 그 어머니의 모습을 나는 못 잊습니다.
“그건 사람이 아니냐?” 그 음성은 늘 살아 있어 내 속에 몇 번을 부르짖어졌는지 모릅니다. 나는 이제 자유와 평등사상을 내놓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나는 씨알 사상을 부르짖고, 스스로 타고난 민주주의자라 하기도 합니다마는 나는 그 밑바닥의 반석은 어머니가 놓아 주셨다고 합니다.
---「나의 어머니(그건 사람이 아니냐)」중에서

출판사 리뷰

‘한국수필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수필을 대표하는 주요 수필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함석헌의 저작 활동을 한 편의 글로 개괄해 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1983년 생전 한길사에서 발간된 전집이 이미 20권에 이르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우선 그가 남긴 글들의 분량이 방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우리를 난감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글에 역사, 종교, 철학을 비롯해서 중국 고전이나 힌두교 경전에까지 이르는 사상적·학문적 넓이와 깊이가 담겨 있다는 점이다. 실제 그의 글들을 읽어 보지 못한 사람들조차 함석헌을 민족 운동가, 역사가, 종교 사상가, 평화·인권 운동가 그리고 언론인 등 다방면에 걸쳐 활동한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에 평생을 헌신하면서 살아온 행동하는 지성인이기도 했다. 따라서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함석헌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입체적 인물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온전히 이해되지 못한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떤 글은 동시대에 강한 파급력을 보여 주고 그 운명을 다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글은 시대를 뛰어넘는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기도 한다. 월남한 이후 여러 모임과 강연을 지속하면서 신앙 잡지들에 글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아직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함석헌은 『사상계』에 발표한 이 글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며 단숨에 한국 지성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부각된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다시 읽어 보아도 그가 지적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단면들에 대한 지적은 마치 최근에 쓴 글처럼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그것은 어찌 보면 반성과 변화가 더딘 우리 사회의 불행한 단면일 수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그의 관점이 지난 시간들이 무색할 만큼 항상 사회 이면의 본질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출처: https://japan114.tistory.com/7005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since 2010):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