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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시대 (開川時代)
조건 왕조가 새 도읍지오 정한 한양의 한 복판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흐르는 하천은 도성민에게 생활용수를 공급하고 하수를 처리하기 위해 반드시필요한 자연물이었다. 또 풍수상으로도 도성 안 공간을 명당(明堂) 으로 만드는명당수이기도 했다.그러나 산으로 둘러싸인 도성 안의 지형과 집중호우가 자주 내리는 기후, 물이 잘 스며드는 모래하천이라는 특징으로 인해 이 하천은 수시로 범람하여 고성민의 생활을 끊임없이 위협했다.
하천을 자연상태로 유지한 채로는 도성을 안정적을 유지할 수 없었다. 1411년 (태종11) 태종은 개거도감 (開渠都監)을 설치하여 자연하천을 정비하고 축대를쌓게 했다. 개거도감은 후에 개천도감 (開川都監)으로 바귀었다. 개천이란 자연하천의 바닥을 파고 물길을 넓히는 일, 또는 그렇게 만들어진 하천을 말한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서 올라온 52,800명이 두 달 남짓 땀을 흘려 자연하천을 개천으로 바꾸었다. 이후개천은 도성민의 일상생활과 깊이 관련 맺으며 600여년간 을 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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