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기독교 문화유산 (2016~) <답사지>/13.천주교성지

순교자들의 행적 증거자 박순집 베드로

동방박사님 2021. 7. 1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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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집 베드로 묘

박순집 베드로 (1830~1911)

갑곶순교성지에서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시는 일에 일생을 바친 '신앙의 증거자, 박순집(베드로)의 묘가 모셔져 있다. 비록 참수 치명자는 아니나 그의 생에는 어으 순교자 못지않은 삶이었다. 새남터와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수 많은 순교자들의 유해를 목숨을 걸고 찿아 안장했으며, 후에 선교자들의 행적을 증언해 유해발굴과 시복시성에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1890년 인천제물포로 이주해 숙골( 현 도화동)에서 선종할 때 까지 전교활동에 힘쓰며 인천교구의 발전에 초석이 되었다.

 

박순집 베드로는1830년 10월 9일 서울 남문 밖 (전생서:현 용산구 후암동) 에서 순교자 박 바오로와 김아가다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부모의 신앙을 이어 받으면서 성장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때, 새남텅에서 순교하신 주교와 신부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안장한 부친 박 바오로는 아들인 박 베드로에게 이 사실을 알려 준다. 그리고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아버지 박 바오로의 뜻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박순지(요한) 등 몇몇 신자들과 함께, 제4대 조선교구장이었던 베르뇌외 많은 순교자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이장하였다. 그리고 3월7일과 9일에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박종삼(요한)과 최형(베드로) 시신도 신자들과 함께 찿아내어 안전한 곳에 안장 하는 등, 순교자들의 시신을 수습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이는 죽음을 각오한 순교자적 고귀한 희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그는 우리나라 순교 역사의  순교자가 된다. 그로인해 밝혀진 순교자의 행적은 150명이 넘어, 그 순교자들의 유해를 우리가 직접 보고 조배를 드릴 수 있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제공하셨다.  그후 인천교구의 복음화를 위해 애쓰다가, 1911년 6월 27일 82세의 나이로 "예수 마리아 요셉"을 부르며 선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