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본중부.동북.섬(1997~2018) <여행지>/3.대마도

대마도 현해탄 (2012.1.19)

동방박사님 2012. 1. 25.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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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해협

[ Korea Str. , 大韓海峽 ]

한국과 일본 열도의 규슈[九州] 사이에 있는 해협.길이와 너비는 각각 약 200km이나 너비는 최협부가 50km 정도이다. 수심은 대체로 얕으며 최대수심이 210m이다. 중앙에 쓰시마섬[對馬島]이 있으며, 옛날부터 한 ·일 간의 해상연락로로서 이용되어 왔다.

 

쓰시마

[ 對馬島(대마도) ]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에 딸린 섬.

쓰시마섬  

위치 -일본 나가사키현

면적 -695.9㎢

쓰시마는 일본에서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지역으로 섬 전체가 쓰시마시(市)에 속한다.

 

시 아래 6개읍(이즈하라[嚴原町], 미쯔시마[美津島町], 도요타마[豊玉町], 미네[峰町], 가미아가타[上縣町], 가미쯔시마[上對馬町])이 있고, 이즈하라에 쓰시마시청이 있다. 중앙부의 아소만[淺茅灣]과 인공적으로 굴착된 만제키세토[萬關瀨戶:瀨戶는 水路]에 의해 상·하 두 섬으로 나뉜다. 섬 전체가 해발고도 400m 내외의 산지이고, 산지의 계곡들은 곡벽이 험준하다.

 

예로부터 한국과 일본 열도 사이의 중계지로서의 위치를 차지하여 대외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특히 부산에서 약 50km의 거리에 있어 한국과 관계가 깊었다. 고려 말부터 조공을 바치고 쌀·콩 등을 답례로 받는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왜구가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출몰하자, 조선시대에 들어와 회유책·귀화정책 등을 쓰다가 세종 때에는 원정(遠征)에 나선 바 있다. 1274년 1281년 두 차례 몽고군이 상륙했다.

   

 뒤에 쓰시마도주(島主) 소[宗]의 간청으로 조선이 삼포(부산포·염포·제포)를 개항하자, 쓰시마는 에도[江戶]시대 말기까지 대(對)조선무역을 독점했다. 임진왜란 때에는 일본 수군의 중요한 근거지가 되었다.

 

농경지는 총면적의 4%에 불과하고 계단식 밭이 많으며 최근까지 화전 경작을 했다. 산촌에서는 숯 구이와 표고버섯 재배가 주업이었으나 조림이 이루어졌다. 오징어·도미잡이와 전복·소라·성게·천연김 채취를 하고, 아소만에서는 진주조개 양식이 성하다. 쓰시마의 중심지역인 이즈하라는 13세기 중엽 이래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에 이르기까지 쓰시마를 지배해온 소씨[宗氏] 일족의 거성(居城)이 있던 곳으로 성터와 그 시주사 등이 남아 있다.

 

해저지형은 동중국해와 황해로 이어지는 계단 모양의 대륙붕을 이루고 있으나, 한국측은 경사가 완만하고, 쓰시마섬의 북서쪽에는 도랑 모양의 좁고 긴 해부(海釜:원형 ·타원형 또는 초승달 모양을 이루는 해저의 작은 함몰지)가 있으며, 밑바닥에는 모래와 이질(泥質) 퇴적물이 분포되어 있다. 또, 넓은 대륙붕은 저인망 어장으로 이용되며, 제2차 세계대전 후 맥아더라인과 평화선(일본측에서는 李承晩라인이라 호칭)이 설정되었으나, 1965년의 한일어업협정에서 양국의 전관수역(專管水域)과 공동수역이 결정되었다.

 

해협의 양안은 모두 침강에 의한 리아스식 해안으로, 한국에서는 이와 같은 해안지형을 이용하여 김 ·어패류의 양식이 성하다. 또, 부산 ·마산 ·여수 등 천연의 양항에는 항만시설이 구비되었고, 부산과 일본의 시모노세키[下關] 사이에 정기항로가 개설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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