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역사이야기 (관심>책소개)/7.독립운동사

여성 독립 운동가 열전

동방박사님 2022. 1. 22.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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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지금 당장 떠오르는 여성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말해 보라고 하면 어떤 이름이 나올까?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 〈항거〉의 유관순, 〈암살〉 속 ‘안옥윤’ 캐릭터의 모티프가 된 남자현 정도가 아닐까? 역사의 창은 들여다볼수록 새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여성독립운동가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았고 더 큰 활약을 했다. 이 책은 여성독립운동가가 그저 남성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편견을 깬다.

『여성독립운동가 열전』은 11인의 한국 여성독립운동가를 통해, 그동안 독립운동사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의 활약을 재조명한다. 11인의 여성독립운동가는 역사의 현장에서 만세를 외쳤고 직접 항일·구국단체를 이끌었다. 사회의 편견을 깨고 직업군에 진출했거나 직접 항일투쟁의 현장에 한가운데 들어가 독립을 외쳤다.

이제 남녀 구분을 넘어 독립운동에 헌신한 독립운동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여성이기에 후순위에 서 있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벗어나, 그들의 삶과 이야기를 진지하게 바라볼 때, 독립운동 역사의 진리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우리의 관심으로 역사의 전면에서 한국 여성의 치열하고도 찬란했던 역사의 순간들을 마주해야 할 시점이다.

목차

발간사
머리말

윤희순, 최초의 여성의병장으로 시대의 경계를 넘다
남자현, 일본 총독 암살을 위해 총을 들다
차미리사, 근대여학교를 설립하다
어윤희, 개성 3.1 만세운동에 앞장서다
이혜련, 도산의 아내, 미주 한인동포의 어머니
김알렉산드라, 코민테른과 독립운동의 다리가 되다
고수선, 고문을 딛고 민의(民醫)가 된 제주 소녀
정정화,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금을 조달하다
권기옥, 중국에서 독립 날개를 펼치다
유관순, 3.1 만세운동의 횃불을 들다
박차정, 만주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 단장으로 활약하다
 

저자 소개 

저 : 심옥주
 
한국정치사상과 통일문제를 전공했다. 한국근현대사를 중심으로 한국정치사상과 독립운동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윤희순 의사’에 관한 연구를 시작으로 미발굴된 여성독립운동가를 연구하며 진정한 민족애와 조국애의 발현을 희망하고 앞으로 연구에 매진할 것이다. 부산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동의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명대학교, 동의대학교, 경성대학교, 동아대학교 강사, 부산대학교 교수, 서일대학교 초빙...

저 : 박영하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에 나오는 시골풍경과 닮은 농촌(충북 제천, 보은, 청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교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사범대학에 진학하여 졸업 후 신반포중학교,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도덕, 윤리 교사로 22년간 학생들과 함께 지냈다. 교단에 있는 동안 시와 노래, 영상을 통한 인성 교육과 그리고 그날그날의 자신의 선한 발자취를 기록하는 『선행록』 작성을 통한 도덕, 윤리 교육에 힘썼다. 인간의 ...

저 : 김형목 (金炯睦)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문학석사, 문학박사(한국근대사 전공) 학위를 취득했다.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사, (사)선인역사문화연구소 연구이사, 한국민족운동사학회장,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공적심사위원, 숭실사학회 편집위원, 동국사학회 편집위원, 독립기념관 책임연구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나혜석학회 연구이사, 육군본부 군사연구소 편집위원, 한국사학회 지역이사, 한국교육사학회 연구이사, 한국여성사학회...
 

책 속으로

윤희순은 나라가 위급한 상황에서 안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먼저 안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가까운 이들을 모아서 여성도 의병 활동에 나서자고 알렸다. 윤희순의 취지는 의병가사와 격문으로 표현되어 알려졌다.
--- p.20

사람들은 남자현을 ‘여자 안중근’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남자현이 안중근 의사처럼 손가락을 잘라 피로써 구국을 맹세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자현은 무려 세 번이나 단지혈서(斷指血書)를 썼다.
--- p.58

그녀가 교육과정에서 중점을 둔 것은 학생들의 사고방식을 개선하고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이었다. […] 근대적인 여성교육은 외적인 모방이 아닌 의식 변화를 통해 교양 있고 능력 있는 여성으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차미리사의 교육은 실제적인 여성의식 교육에 메시지를 던졌다고 볼 수 있다.
--- p.93

특히 개성에서는 남성들이 용기가 없어 망설이고 있을 때 여성의 몸으로 직접 만세 시위를 이끌어낸 전도사 어윤희가 있었다. 그녀는 독립운동사에서 개성 지역의 자존심을 살린 선각자로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한 ‘여걸 중 여걸’이었다.
--- p.104

도산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동안 그의 생활비는 아내가 보내 주었다. 도산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에 돈을 보내지 말라고 하였지만, 혜련은 남편을 위해 100달러를 블라디보스토크로 송금하였다. […] 혜련이 도산에게 보낸 100달러는 현재적 가치로 3,000달러(약 3백만 원) 정도가 된다.
--- p.138

1916년 이혼과 함께 우랄 지역으로 이주한 김알렉산드라는 볼셰비키에 합류하여 사회주의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 이 시기 김알렉산드라는 독립운동가들과 볼셰비키를 이어 주는 중간자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 p.183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던 그 당시 상황을 고려한다면, 고수선을 비롯한 여학생의 도전은 참 놀라운 일이었다. 그들의 도전은 또 다른 기적으로 이어졌다. 고수선은 1926년 3월 22일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의사자격을 취득하고, 제주 여성으로는 최초로 여의사가 되었다.
--- p.210

이후 정정화는 연통제를 활용하여 국내 잠입을 감행하였다. 목숨을 걸고 칠흑 같은 어둠을 틈타 압록강을 건너야 하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무수한 고초를 겪었으나 결코 좌절하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묵묵하게 걸어 나갔을 뿐이다.
--- p.227

졸업은 고사하고 입학마저 어려운 항공학교를 임시정부 요인의 도움으로 추천장을 받아 어렵게 입학할 수 있었다. 입학뿐만 아니라 중국인도 과정을 수료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운남육군항공학교 최초의 여성 조종사라는 점은, 교육환경의 열악함을 고려한다면 권기옥의 도전의식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 p.252

유관순은 학당에서 포용력 있고 밝은 성격으로 늘 솔선수범해서 동료와 선생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매일 텅 빈 기도실에서 늦은 밤이나 새벽에 기도를 하고 학생들과 시국과 사상에 대해서도 활발할 토론을 벌였다.
--- p.295

박차정의 주요 만주 활동은 여성단체조직과 여성부대 조직이다. […] 박차정은 여성독립운동가의 투쟁적 면모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며 지도자적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 p.327
 

출판사 리뷰

조력자, 뒷바라지 역할로 여겨진 여성독립운동사
그러나 최전선에서 한국 독립운동사를 지탱해 온 여성들의 활약
그동안 알려지지 않고 기억되지 않았던 11인의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재조명한다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와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가 공동으로 기획한 이번 책에서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고 기억되지 않았던 여성독립운동가 11인의 삶을 재조명한다. 이번 프로젝트를 이끈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의 심옥주 소장은 오랫동안 여성독립운동가의 삶과 역사를 연구하고 발굴하는 현장에 있었다. 여성독립운동가들이 더 이상 외면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한 집필진은 대중의 인식 속에 있는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인상이 남성독립운동가의 조력자에 그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오히려 남성보다 더 투쟁적이었고, 남들이 일제의 폭압 앞에 두려워 떨 때 총칼 앞으로 먼저 달려 나갔던 한국의 여성들. 여성독립운동사를 관심 있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을 때 비로소 한국 독립운동사의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6명의 집필진이 전하는 여성독립운동가의 삶, 그리고 그들의 삶이 더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간절함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이유다.

일제의 침탈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다
“좋은 말로 달랠 적에 너희 나라로 가거라. 대장놈들아. 우리 조선 안사람이 경고한다.”


윤희순은 평범한 선비의 아내였다. 그러나 일제 침탈이 본격화되고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참지 못하고 「왜놈 대장 보거라」라는 격문을 붙여 일제의 야만적인 행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다수의 의병가사를 지어 항일 의병의 사기를 진작시킨 그녀는 남편과 아들을 잃는 고통 속에서도 의병 활동을 이어 나가 일제에 항거했다.

유관순과 어윤희는 학생의 신분으로 일제의 무단통치에 반발하여 3.1 만세운동 행렬에 앞장섰다. 민족대표와 독립운동가들의 주도로 독립선언서가 제작되고 각 지역에 전달되었으나, 정작 일제에 체포될 것이 두려워 배포되지 못했다. 이때 유관순과 어윤희를 비롯한 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시장과 길거리에서 나눠 주고 직접 그린 태극기를 배부하기도 했다. 두 어린 여학생의 노력으로 전국적인 3.1 만세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다.

직접 무기를 들고 일제와 총칼을 맞대다
“내 손가락을 아끼지 말고, 우리 동포를 아끼고 이 나라의 내일이나 아끼시오.”


영화 〈암살〉의 ‘안옥윤’ 캐릭터의 모티프로도 잘 알려진 남자현은 의병 활동을 하던 남편을 이른 나이에 잃고, 직접 총을 든 독립운동가다. 일제의 침략 요인들을 암살하기 위해 총을 든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남자현은 무려 세 번이나 자기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씀으로써 분열된 한국 독립운동가들을 한데 규합하는 구심점을 만들기도 했다.

권기옥은 한국 여성 최초로 운남육군항공학교를 졸업하여 정식으로 비행기 조종사가 된 인물이다. 그녀는 중일전쟁에서 중국군을 도와 직접 비행기를 몰고 정찰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미군과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던 중 해방을 맞이했고, 이후에는 한국 공군 건설에 기초를 다지는 중책을 맡았다. 박차정은 항일정신을 담은 문학을 창작하던 문학소녀였지만, 점차 본격적인 항일운동에 나서며 ‘근우회’ 활동을 이끌기도 한다. 상하이로 망명한 그녀는 의열단에 들어가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 단장이 되었고, 직접 의용대를 훈련시키고 지휘했다. 박차정 본인과 남편이었던 김원봉 모두 부녀자의 주도적이고 전투적인 면모를 중시했으므로 그녀는 무장투쟁을 이어 나갔다.

자주독립을 위해 여권 신장과 여성교육에 힘쓰다
“내가 하고 있는 독립운동은 학생 신분으로 하기 때문에 잘 먹혀들지가 않더라.
그래서 나는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여, 사회의 훌륭한 사람이 되면 다시 독립운동을 하겠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고수선은 공부에 관심이 많은 소녀였다. 처음엔 반대하던 아버지였지만, 일제에 의해 국권이 박탈당하자 고수선의 공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경성으로 올라와 공부하던 고수선은 만세운동을 비롯한 항일 시위에 참여했지만,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독립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의사가 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우수한 성적으로 의사가 되어 돌아온 고수선은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을 위해 의술을 펼쳤다. 차미리사는 기독교 선교사를 통해 우연히 근대교육을 접하게 되었고, 국가의 자주독립을 위해선 근대교육, 여성교육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험난한 유학 생활을 마친 그녀는 국내로 돌아와 근대여학교인 ‘근화여학교’를 설립하고 한국 여성교육에 여생을 바쳤다.

해외에서 조국의 독립을 지원하다
“무엇인가 내 길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거센 욕구가 일어났다.”


이혜련은 도산 안창호의 부인으로,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미국으로 건너와 미주 한인 동포들을 위로하고, ‘부인회’를 결성하여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역할을 했다. 아들딸도 아버지의 독립 의지를 이어받아, 태평양 전쟁 당시 자원입대하여 항일 전쟁에 앞장섰다. 김알렉산드라는 연해주 신한촌과 모스크바를 연결하여 독립운동에 코민테른의 힘을 빌리고자 했다. 당시 사회주의 혁명운동과 식민지의 독립운동 사이에는 전체주의 국가를 몰아낸다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알렉산드라는 코민테른과 독립운동가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 주었고 실제로 연해주 독립운동에 큰 역할을 했다.

정정화는 임시정부 활동에 앞장섰던 시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본인의 의지로 직접 상하이로 망명했다. 그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금 조달을 위해 조선과 상하이 사이를 오고 가는 역할을 맡았다. 일본 국경수비대의 감시를 피해 칠흑 같은 밤 압록강을 건너는 그녀의 결행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