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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평범한 길을 쓸어버리고 새로운 길을 열었다!”
치열하게 독서하고 끊임없이 탐구하며 기록했던
18세기 조선 지식인 이덕무의 삶과 철학을 온전히 만나다!
이덕무는 대표적인 북학파 실학자로 정조 시대 활약한 규장각 사검서 중 하나다. 그동안 ‘책만 읽는 바보(간서치)’로 잘 알려졌으나, 지독한 독서 편력만큼이나 빼어난 문장 실력과 탐구 정신, 그리고 기록에 대한 집착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대단했다. 어린아이의 천진함 같은 ‘동심의 글쓰기’, 조선의 정경을 그대로 담아낸 ‘진경 시’, ‘기궤첨신(奇詭尖新)’이라 평가받은 참신하고 통찰력 가득한 글들을 선보인 그는, 사후 정조의 지시로 유고집까지 간행된 조선 최고 문장가였다.
이덕무의 글에 매료된 고전연구가 한정주는 그가 남긴 시와 산문, 문예비평, 백과사전적 연구서 등 다양한 글들을 여덟 가지 시선으로 재구성해 이덕무의 삶과 철학을 온전히 되살려냈다. 이덕무 평전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개인의 개성과 기호를 중시하고 사회적 틀을 전복시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데 거리낌 없던 이덕무의 호쾌한 문장론과 삶의 자세를 마주하게 한다. 또한 그와 교류했던 당대 지식인들의 문장과 내면세계를 살펴봄으로써 18세기 조선의 지성사를 생생하게 복원해냈을 뿐 아니라 이덕무 삶과 철학에 깃든 시대를 초월한 인문학적 가치와 그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치열하게 독서하고 끊임없이 탐구하며 기록했던
18세기 조선 지식인 이덕무의 삶과 철학을 온전히 만나다!
이덕무는 대표적인 북학파 실학자로 정조 시대 활약한 규장각 사검서 중 하나다. 그동안 ‘책만 읽는 바보(간서치)’로 잘 알려졌으나, 지독한 독서 편력만큼이나 빼어난 문장 실력과 탐구 정신, 그리고 기록에 대한 집착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대단했다. 어린아이의 천진함 같은 ‘동심의 글쓰기’, 조선의 정경을 그대로 담아낸 ‘진경 시’, ‘기궤첨신(奇詭尖新)’이라 평가받은 참신하고 통찰력 가득한 글들을 선보인 그는, 사후 정조의 지시로 유고집까지 간행된 조선 최고 문장가였다.
이덕무의 글에 매료된 고전연구가 한정주는 그가 남긴 시와 산문, 문예비평, 백과사전적 연구서 등 다양한 글들을 여덟 가지 시선으로 재구성해 이덕무의 삶과 철학을 온전히 되살려냈다. 이덕무 평전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개인의 개성과 기호를 중시하고 사회적 틀을 전복시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데 거리낌 없던 이덕무의 호쾌한 문장론과 삶의 자세를 마주하게 한다. 또한 그와 교류했던 당대 지식인들의 문장과 내면세계를 살펴봄으로써 18세기 조선의 지성사를 생생하게 복원해냈을 뿐 아니라 이덕무 삶과 철학에 깃든 시대를 초월한 인문학적 가치와 그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목차
머리말 이덕무를 통해 18세기 조선의 지성사를 읽다
프롤로그 18세기 인문학의 정수 『청장관전서』
제1부 치열하게 읽고 기록하다
제1장 영처의 눈과 마음으로
어린아이의 천진함과 처녀의 순수함 / 야인과 뇌인과 거울과 장님 / 백탑에서 맺은 인연 / 해오라기, 호에 새긴 선비의 얼
제2장 독서하고 기록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책에 미친 바보다!” / 지식 혁명의 시대와 백과전서파의 탄생 / 박물학, 놀이 삼아 학문하다 / 바다를 건넌 독서 편력
제3장 조선의 모습을 담아내다
‘조선의 국풍’ / 진경산수화와 진경 시 / 또 다른 진경, 산문과 소품 / 작고양금과 법고창신
제4장 새로 쓴 동아시아 삼국의 문예 비평사
맑은 기운, 창자에 스미고 / 평어, 한시의 미학 / 한중일 삼국의 문예 경연장
제2부 끊임없는 호기심과 탐구 정신
제5장 조선의 풍속과 문화의 재발견
서해 중북부 풍속과 역사 기행 / 의식주와 고유 명절 / 풍수지리와 민간신앙에서 민담과 설화까지 / 사대부가의 생활문화 / 한양의 속담과 방언
제6장 북학의 높은 뜻을 세우다
오랑캐를 스승 삼는 큰 뜻 / 지식과 정보의 북방 통로 1, 유리창 / 지식과 정보의 북방 통로 2, 천주당 / 조선과 청나라 지식인의 인문학 네트워크
제7장 18세기 일본을 통찰하다
우물 안을 떠나 현실을 바로 보다 / 지식과 정보의 남방 통로, 조선통신사 / 남학과 북학의 완성 청령국지와 북학의 / 일본의 침략을 예견하다
제8장 마지막 호, 아정에 담긴 의미
규장각 사검서 / 검서체와 연암체 그리고 문체반정 / 구중궁궐에서 내린 한 글자의 의미
에필로그 참다운 지식인의 삶이란
프롤로그 18세기 인문학의 정수 『청장관전서』
제1부 치열하게 읽고 기록하다
제1장 영처의 눈과 마음으로
어린아이의 천진함과 처녀의 순수함 / 야인과 뇌인과 거울과 장님 / 백탑에서 맺은 인연 / 해오라기, 호에 새긴 선비의 얼
제2장 독서하고 기록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책에 미친 바보다!” / 지식 혁명의 시대와 백과전서파의 탄생 / 박물학, 놀이 삼아 학문하다 / 바다를 건넌 독서 편력
제3장 조선의 모습을 담아내다
‘조선의 국풍’ / 진경산수화와 진경 시 / 또 다른 진경, 산문과 소품 / 작고양금과 법고창신
제4장 새로 쓴 동아시아 삼국의 문예 비평사
맑은 기운, 창자에 스미고 / 평어, 한시의 미학 / 한중일 삼국의 문예 경연장
제2부 끊임없는 호기심과 탐구 정신
제5장 조선의 풍속과 문화의 재발견
서해 중북부 풍속과 역사 기행 / 의식주와 고유 명절 / 풍수지리와 민간신앙에서 민담과 설화까지 / 사대부가의 생활문화 / 한양의 속담과 방언
제6장 북학의 높은 뜻을 세우다
오랑캐를 스승 삼는 큰 뜻 / 지식과 정보의 북방 통로 1, 유리창 / 지식과 정보의 북방 통로 2, 천주당 / 조선과 청나라 지식인의 인문학 네트워크
제7장 18세기 일본을 통찰하다
우물 안을 떠나 현실을 바로 보다 / 지식과 정보의 남방 통로, 조선통신사 / 남학과 북학의 완성 청령국지와 북학의 / 일본의 침략을 예견하다
제8장 마지막 호, 아정에 담긴 의미
규장각 사검서 / 검서체와 연암체 그리고 문체반정 / 구중궁궐에서 내린 한 글자의 의미
에필로그 참다운 지식인의 삶이란
책 속으로
이덕무는 북학파 또는 백탑파라고 불리는 지식인 그룹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이 그룹에는 연암 박지원, 담헌 홍대용, 초정 박제가, 영재 유득공, 야뇌 백동수 등 여러 학자와 문인 그리고 예술인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었다. 이들은 동서양의 학문을 두루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문물과 제도, 인물과 역사, 문화와 풍속 등 백과사전적 지식을 탐구하고 기록으로 남긴,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폭넓은 활동을 펼쳤다. 평생 성현(聖賢)의 삶만을 모델로 추구했던 성리학적 지식인들에게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개인의 개성과 기호를 중시한 다양한 활동을 선보인 것이다.
--- p.6
이덕무에게 창작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진정성이다. 그것은 많이 배우고 지식을 쌓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힘쓴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거나 명예를 구하기 위해 글을 짓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것이기에, 애써 꾸미거나 잘 쓰려고 억지로 힘쓸 필요도 없다. 그저 자신의 천진하고 순수한, 진실한 감정을 드러내면 될 뿐이다.
--- p.11
장성해서는 온갖 서적을 폭넓게 읽었다. 항상 다른 사람에게 책을 빌려 읽었다. 비록 몰래 감추어둔 책이라고 할지라도 사람들을 빌려주기를 꺼려하지 않으면서, “이 군(이덕무)은 진실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책을 빌려달라고 부탁하기도 전에, 먼저 스스로 빌려주면서 “이 군의 눈을 거치지 않은 책이 있다면, 그 책을 무엇에 쓸 것인가?”라고 말하였다. 평생토록 읽은 책이 거의 2만여 권이 넘고, 직접 베껴 쓴 승두세자(파리머리만 한 작은 글자) 또한 수백 권에 달했다. 자획이 바르고 반듯하고,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속자(俗字)는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 p.92
이덕무의 시문은 새롭고 참신하며 독특하고 개성적인 자신만의 작풍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한객건연집』을 읽은 청나라의 반정균은 “평범한 길을 쓸어버리고 별도로 다른 길을 열었다”고 평했다. 이덕무 역시 이러한 반정균의 평가에 대해 한껏 자신감을 드러내며 자신의 작풍이 중국의 고문(古文)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기도 했다.
--- p.167
세상에서는 이마의 머리카락이 일찍 벗겨지는 대머리를 입신출세하는 상으로 여긴다. 그래서 머리카락이 빨리 벗겨지지 않는 것을 걱정하여 망건을 맬 때 반드시 바짝 졸라매어 빨리 벗겨지기를 소망한다. 심지어 족집게를 사용해 머리카락을 일부러 뽑기까지 한다. 더욱이 늙어서 이마가 벗겨져 머리카락이 없으면 삿갓을 제대로 쓰지 못할까 미리 염려하여 정수리의 머리카락을 깎아둔다. 반드시 늙고 쇠약해졌을 때 사용하려고 대비하는 것이다.
--- p.348
박제가는 사회 개혁서인 『북학의』를 통해 나라가 부강해지고 백성이 부유해지기 위해서는 경제 체제를 상공업 중심으로 바꾸는 한편, 외국과의 해상 무역을 전면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덕무의 『청령국지』는 바로 『북학의』의 일본판인 셈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덕무는 일본이 부강해진 힘의 원천이 상공업을 중시하는 경제 구조와 해상을 통한 외국과의 교역에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비록 그가 박제가처럼 사회 개혁을 직접 요구하는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식견과 혜안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청령국지』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의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 p.485
앞서 우리는 청장관(靑莊館), 그러니까 해오라기가 이덕무의 전서 제목이 될 정도로 대표적인 호였음을 살펴보았다. 실제로 그가 평생 지켰던 자기 삶의 방식과 철학은 마치 다른 새들처럼 먹이에 대한 탐욕에 눈이 어두워 물고기를 뒤쫓아 이리저리 허둥지둥 돌아다니지 않고, 오로지 자기 앞을 지나가는 물고기만을 잡아먹는 해오라기의 습성과 매우 닮아 있다. 그런 점에서 박지원이 남긴 다음의 시 구절은 해오라기처럼 순수함, 진실함, 청결함을 추구했던 이덕무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명구라 하겠다.
“짙푸른 물 청명한 모래 외로운 섬에 / 해오라기 신세 티끌 한 점 없구나”
--- p.6
이덕무에게 창작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진정성이다. 그것은 많이 배우고 지식을 쌓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힘쓴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거나 명예를 구하기 위해 글을 짓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것이기에, 애써 꾸미거나 잘 쓰려고 억지로 힘쓸 필요도 없다. 그저 자신의 천진하고 순수한, 진실한 감정을 드러내면 될 뿐이다.
--- p.11
장성해서는 온갖 서적을 폭넓게 읽었다. 항상 다른 사람에게 책을 빌려 읽었다. 비록 몰래 감추어둔 책이라고 할지라도 사람들을 빌려주기를 꺼려하지 않으면서, “이 군(이덕무)은 진실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책을 빌려달라고 부탁하기도 전에, 먼저 스스로 빌려주면서 “이 군의 눈을 거치지 않은 책이 있다면, 그 책을 무엇에 쓸 것인가?”라고 말하였다. 평생토록 읽은 책이 거의 2만여 권이 넘고, 직접 베껴 쓴 승두세자(파리머리만 한 작은 글자) 또한 수백 권에 달했다. 자획이 바르고 반듯하고,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속자(俗字)는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 p.92
이덕무의 시문은 새롭고 참신하며 독특하고 개성적인 자신만의 작풍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한객건연집』을 읽은 청나라의 반정균은 “평범한 길을 쓸어버리고 별도로 다른 길을 열었다”고 평했다. 이덕무 역시 이러한 반정균의 평가에 대해 한껏 자신감을 드러내며 자신의 작풍이 중국의 고문(古文)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기도 했다.
--- p.167
세상에서는 이마의 머리카락이 일찍 벗겨지는 대머리를 입신출세하는 상으로 여긴다. 그래서 머리카락이 빨리 벗겨지지 않는 것을 걱정하여 망건을 맬 때 반드시 바짝 졸라매어 빨리 벗겨지기를 소망한다. 심지어 족집게를 사용해 머리카락을 일부러 뽑기까지 한다. 더욱이 늙어서 이마가 벗겨져 머리카락이 없으면 삿갓을 제대로 쓰지 못할까 미리 염려하여 정수리의 머리카락을 깎아둔다. 반드시 늙고 쇠약해졌을 때 사용하려고 대비하는 것이다.
--- p.348
박제가는 사회 개혁서인 『북학의』를 통해 나라가 부강해지고 백성이 부유해지기 위해서는 경제 체제를 상공업 중심으로 바꾸는 한편, 외국과의 해상 무역을 전면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덕무의 『청령국지』는 바로 『북학의』의 일본판인 셈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덕무는 일본이 부강해진 힘의 원천이 상공업을 중시하는 경제 구조와 해상을 통한 외국과의 교역에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비록 그가 박제가처럼 사회 개혁을 직접 요구하는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식견과 혜안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청령국지』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의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 p.485
앞서 우리는 청장관(靑莊館), 그러니까 해오라기가 이덕무의 전서 제목이 될 정도로 대표적인 호였음을 살펴보았다. 실제로 그가 평생 지켰던 자기 삶의 방식과 철학은 마치 다른 새들처럼 먹이에 대한 탐욕에 눈이 어두워 물고기를 뒤쫓아 이리저리 허둥지둥 돌아다니지 않고, 오로지 자기 앞을 지나가는 물고기만을 잡아먹는 해오라기의 습성과 매우 닮아 있다. 그런 점에서 박지원이 남긴 다음의 시 구절은 해오라기처럼 순수함, 진실함, 청결함을 추구했던 이덕무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명구라 하겠다.
“짙푸른 물 청명한 모래 외로운 섬에 / 해오라기 신세 티끌 한 점 없구나”
--- p.543~544
출판사 리뷰
시대적 한계를 깨고 새로운 길을 연 선구적 지식인 이덕무,
그의 글들이 들려주는 시대를 초월한 인문 정신!
‘책만 보는 바보(간서치看書癡)’로 유명한 이덕무는 치열한 독서 편력을 지닌 탐서가의 면모 말고도 끊임없는 탐구 정신을 바탕으로 수많은 글을 남긴 조선의 대표 지식인이다. 그는 선배이자 스승 그룹인 홍대용, 박지원, 원중거, 정철조 등과 후배이자 제자 그룹인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등의 중간에서 매개 고리 역할을 한 북학파(백탑파)의 중추적인 인물이었다. 또한 박제가, 유득공, 서이수와 함께 정조 시대 개혁 정치를 상징하는 ‘규장각 사검서’로 활약했으며, 사후 정조에 의해 국가 차원에서 유고집이 간행되었던 대문장가였다. ‘위대한 백 년’이라 일컬어지는 18세기 조선 지식인 사회를 이끈 주요 인물 중 한 명이지만 『의산문답(醫山問答)』의 홍대용, 『열하일기(熱河日記)』의 박지원, 『북학의(北學議)』의 박제가, 『발해고(渤海考)』의 유득공과 달리 대중적으로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고, 그러한 덕분에 지금까지 그의 삶과 사상을 전체적으로 조명한 책은 거의 없었다.
이덕무의 전집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를 오랫동안 탐독해온 고전연구가 한정주는 청장관(靑莊館, 해오라기)이란 호에 걸맞은 이덕무의 글에 온전히 매료되어 그의 삶과 사상을 한 권으로 엮어냈다. 이 책 『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는 ‘이덕무 마니아’ 한정주가 들려주는 ‘이덕무를 읽는 여덟 가지 시선’으로, ‘독서가이자 문장가, 민속학자이자 박물학자, 북학자이자 남학자, 비평가이자 편집자’인 이덕무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개성과 자유라는 시대적 인문 정신을 대표하는 지성인으로서의 이덕무를 우리 앞에 생생히 복원해낸 이 책은 경전에 쓰인 문자를 절대시한 일반적인 성리학적 지식인상을 좇지 않고 개인의 취향과 감정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표현한 이덕무의 개성적인 면모와 더불어 사회적 틀을 전복시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데 거리낌 없던 호쾌한 문장론과 진솔한 삶의 자세를 있는 그대로 들려준다. 또한 이덕무가 교류한 당대 지식인들의 문장과 내면세계도 함께 살펴봄으로써 18세기 조선의 지성사를 재구성해냈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이덕무의 삶과 사상을 있는 그대로 재구성해 들려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덕무를 통해 시대를 초월한 인문 정신이 무엇인지 들려준다는 데 있다. 저자 한정주는 낯설고 익숙지 않은 세계에 대한 열린 마음과 태도를 지닌 이덕무의 ‘개방성’, 자신이 속한 세계를 넘어선 인문학적 호기심과 상상력의 ‘확장성’,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한 ‘불온성’에 주목한다. 이덕무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개방성과 확장성, 불온성을 시대를 막론한 인문학적 가치이자 두 시대를 연결하는 핵심 키워드로 읽어낸 저자는, 우리가 18세기의 인문학자 이덕무의 철학과 삶의 자세를 읽고 배운다는 것이 곧 화석화된 과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생동하는 현재를 읽는 것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여덟 개의 시선으로 읽는 이덕무의 삶과 철학
이덕무의 전집 『청장관전서』에는 『아정유고(雅亭遺稿)』, 『사소절(士小節)』,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청령국지(??國志)』, 「천애지기서(天涯知己書)」,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 등 70편이 넘는 방대한 글이 실려 있다. 이 책 『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는 이들 글을 통해 이덕무의 삶과 사상을 여덟 개의 시선으로 다시 읽어냈다.
제1부 [치열하게 읽고 기록하다]는 독서가, 문장가, 비평가로서의 모습을 들려준다. 여기에서는 독서하며 기록하는 것을 자기 존재 이유로 여겨온 이덕무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평생 2만여 권의 책을 탐독한 독서가이자, 시와 문장에 자신이 삶을 영위하는 공간인 조선의 ‘지금 모습’인 진경(眞景)을 묘사한 문장가, 동아시아 삼국(조선?청?일본)의 한시 비평사에 새로운 지평을 연 비평가의 모습을 담아냈다. 그중 제1장 [영처의 눈과 마음으로]는 이덕무의 문장과 사상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라 해도 과언이 아닌 ‘동심의 철학’을 살폈다. 이덕무를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 꼭 읽어야 글이기도 하다.
제2부 [끊임없는 호기심과 탐구 정신]에서는 민속학자이자 박물학자, 북학 사상가이자 남학(南學, 일본학)의 최고 권위자로서의 이덕무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당대 지식인들에게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대상으로 여겨졌던 조선의 풍속과 문화에 대한 지적 탐구의 여정과 애정 어린 시선을 담은 민속학자의 모습뿐 아니라 조선 바깥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 개방적인 사고를 토대로 중국 지식계와 활발히 교류하며 ‘동아시아 인문학 네트워크’를 활성화한 북학자의 모습,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18세기 일본을 편견 없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통찰해낸 개혁적 지식인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제8장 [마지막 호, 아정에 담긴 의미]에서는 정조 시대 문예부흥에 앞장섰던 서얼 출신 규장각 사검서관(四檢書官)의 선두에 섰던 편집자의 모습을 살필 수 있다. 독자들은 재야 지식인 시절 기궤첨신(奇詭尖新)한 문장과 학풍을 일으키는 데 전력을 다했던 이덕무가, 조정에 발탁된 이후에는 국가 차원의 문예부흥에 온 힘을 쏟았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원문으로 읽는 이덕무와 친구들, 그 깊고 진솔한 이야기
서리 내린 아침에 싸리비를 굵게 묶어 / 행랑살이 마당 쓸며 술 항아리 간수하네 / 겨울을 지내려 시래기 낡은 벽에 매달고 / 액막이로 단풍 가지 가난한 부엌 한편에 꽂네 / 농가의 골동품은 회청색 도자기뿐이요 / 마을 아낙네 몸치장은 빨간 구슬뿐이네 / 무명모자 쓴 두 늙은이 귀에 대고 소곤소곤 / “새로 온 사또는 일처리 공평한지!”
― 『아정유고』 1, 〈농가에서 쓰다〉 중에서
『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의 매력 중 하나는 아름다운 고전 문장들을 직접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한 폭의 민속화를 보는 듯한 시 [농가에서 쓰다]의 경우 당시 조선의 시골 풍경뿐 아니라 새로운 사또의 부임을 맞아 수탈을 걱정하는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이처럼 저자 한정주가 심혈을 기울여 선별해 옮긴 문장들은 날카로운 통찰이 담긴 글과 함께 배치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고전을 읽는 즐거움과 더불어 그 정수를 만끽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이 책은 이덕무라는 개인의 삶과 철학, 그리고 그가 느낀 다양한 감정들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지만, 동시에 그가 살았던 당대 사회의 정경과 그와 뜻을 나눈 벗들의 목소리도 담아내고 있다. 굶주리다 못해 친구인 유득공과 목숨처럼 아끼던 책 『맹자』와 『춘추좌씨전』을 팔아치우고는 “맹자가 손수 밥을 지어 먹이고, 좌구명이 친히 술을 따라 권했다”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서는, 평생 가난을 벗 삼으면서도 해학을 잊지 않았던 고고한 모습과 진솔한 우정을 느낄 수 있다. 이밖에도 곳곳에 등장하는 신분과 국적을 뛰어넘어 희로애락을 함께한 청나라 지식인들과의 진솔한 우정과 지적 교류의 향연은 18세기를 화려하게 꽃피운 지식인들의 세계로 데려다준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영조 17년에 태어나 정조 17년까지 활약한 조선 후기 문장가이자 대표적인 북학파 실학자. 호는 청장관(靑莊館), 형암(炯菴), 아정(雅亭), 선귤헌(蟬橘軒), 영처(?處), 간서치(看書癡) 외 다수가 있다. 서얼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병약하고 가난해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으나 가학과 독서로 학문을 갈고닦았다. 당대 최고 지성인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유득공과 교류하면서 '위대한 백 년'이라 불리는 18세기 조선의 문예 부흥기를 주도했다.
아이 같은 천진하고 순수한 감정을 중시한 독창적인 글쓰기 철학을 바탕으로 조선의 진경을 담아낸 수많은 진경 시와 산문, 동아시아 삼국 시문을 다룬 문예비평서 『청비록(淸脾錄)』, 18세기 일본 사회 제도와 문화를 심층 연구한 『청령국지(??國志)』, 조선 고유의 풍속을 정리한 백과사전적 연구서 『앙엽기(?葉記)』, 그 밖에 『사소절(士小節)』, 「열상방언(冽上方言)」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남겼다.
특히 개성을 강조한 자유로운 문장은 멀리 중국에서까지 인정받았으며, 규장각 검서관으로 발탁된 이후 국왕 정조가 열었던 시 경연에서도 여러 번 장원을 차지했다. 1792년 이덕무와 박지원을 위시한 개성적인 문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조정을 휩쓴 문체반정에 휘말렸음에도, 사후 국가적 차원에서 유고집 『아정유고(雅亭遺稿)』가 간행될 만큼 대문장가로 인정받았다. 아들 이광규가 편집한 전집으로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가 있다. 사회적 틀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데 거리낌 없던 이덕무의 문장론과 철학, 초지일관 소신을 지킨 강직한 삶의 자세는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인문학적 가치가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청장(靑莊)은 해오라기의 별명이다. 이 새는 강이나 호수에 사는데, 먹이를 뒤쫓지 않고 제 앞을 지나가는 물고기만 쪼아 먹는다. 그래서 신천옹(信天翁)이라고도 한다. 이덕무가 청장을 자신의 호로 삼은 것은 이 때문이다.”
―박지원, 『연암집』, 〈형암행장〉 중에서
그의 글들이 들려주는 시대를 초월한 인문 정신!
‘책만 보는 바보(간서치看書癡)’로 유명한 이덕무는 치열한 독서 편력을 지닌 탐서가의 면모 말고도 끊임없는 탐구 정신을 바탕으로 수많은 글을 남긴 조선의 대표 지식인이다. 그는 선배이자 스승 그룹인 홍대용, 박지원, 원중거, 정철조 등과 후배이자 제자 그룹인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등의 중간에서 매개 고리 역할을 한 북학파(백탑파)의 중추적인 인물이었다. 또한 박제가, 유득공, 서이수와 함께 정조 시대 개혁 정치를 상징하는 ‘규장각 사검서’로 활약했으며, 사후 정조에 의해 국가 차원에서 유고집이 간행되었던 대문장가였다. ‘위대한 백 년’이라 일컬어지는 18세기 조선 지식인 사회를 이끈 주요 인물 중 한 명이지만 『의산문답(醫山問答)』의 홍대용, 『열하일기(熱河日記)』의 박지원, 『북학의(北學議)』의 박제가, 『발해고(渤海考)』의 유득공과 달리 대중적으로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고, 그러한 덕분에 지금까지 그의 삶과 사상을 전체적으로 조명한 책은 거의 없었다.
이덕무의 전집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를 오랫동안 탐독해온 고전연구가 한정주는 청장관(靑莊館, 해오라기)이란 호에 걸맞은 이덕무의 글에 온전히 매료되어 그의 삶과 사상을 한 권으로 엮어냈다. 이 책 『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는 ‘이덕무 마니아’ 한정주가 들려주는 ‘이덕무를 읽는 여덟 가지 시선’으로, ‘독서가이자 문장가, 민속학자이자 박물학자, 북학자이자 남학자, 비평가이자 편집자’인 이덕무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개성과 자유라는 시대적 인문 정신을 대표하는 지성인으로서의 이덕무를 우리 앞에 생생히 복원해낸 이 책은 경전에 쓰인 문자를 절대시한 일반적인 성리학적 지식인상을 좇지 않고 개인의 취향과 감정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표현한 이덕무의 개성적인 면모와 더불어 사회적 틀을 전복시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데 거리낌 없던 호쾌한 문장론과 진솔한 삶의 자세를 있는 그대로 들려준다. 또한 이덕무가 교류한 당대 지식인들의 문장과 내면세계도 함께 살펴봄으로써 18세기 조선의 지성사를 재구성해냈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이덕무의 삶과 사상을 있는 그대로 재구성해 들려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덕무를 통해 시대를 초월한 인문 정신이 무엇인지 들려준다는 데 있다. 저자 한정주는 낯설고 익숙지 않은 세계에 대한 열린 마음과 태도를 지닌 이덕무의 ‘개방성’, 자신이 속한 세계를 넘어선 인문학적 호기심과 상상력의 ‘확장성’,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한 ‘불온성’에 주목한다. 이덕무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개방성과 확장성, 불온성을 시대를 막론한 인문학적 가치이자 두 시대를 연결하는 핵심 키워드로 읽어낸 저자는, 우리가 18세기의 인문학자 이덕무의 철학과 삶의 자세를 읽고 배운다는 것이 곧 화석화된 과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생동하는 현재를 읽는 것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여덟 개의 시선으로 읽는 이덕무의 삶과 철학
이덕무의 전집 『청장관전서』에는 『아정유고(雅亭遺稿)』, 『사소절(士小節)』,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청령국지(??國志)』, 「천애지기서(天涯知己書)」,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 등 70편이 넘는 방대한 글이 실려 있다. 이 책 『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는 이들 글을 통해 이덕무의 삶과 사상을 여덟 개의 시선으로 다시 읽어냈다.
제1부 [치열하게 읽고 기록하다]는 독서가, 문장가, 비평가로서의 모습을 들려준다. 여기에서는 독서하며 기록하는 것을 자기 존재 이유로 여겨온 이덕무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평생 2만여 권의 책을 탐독한 독서가이자, 시와 문장에 자신이 삶을 영위하는 공간인 조선의 ‘지금 모습’인 진경(眞景)을 묘사한 문장가, 동아시아 삼국(조선?청?일본)의 한시 비평사에 새로운 지평을 연 비평가의 모습을 담아냈다. 그중 제1장 [영처의 눈과 마음으로]는 이덕무의 문장과 사상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라 해도 과언이 아닌 ‘동심의 철학’을 살폈다. 이덕무를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 꼭 읽어야 글이기도 하다.
제2부 [끊임없는 호기심과 탐구 정신]에서는 민속학자이자 박물학자, 북학 사상가이자 남학(南學, 일본학)의 최고 권위자로서의 이덕무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당대 지식인들에게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대상으로 여겨졌던 조선의 풍속과 문화에 대한 지적 탐구의 여정과 애정 어린 시선을 담은 민속학자의 모습뿐 아니라 조선 바깥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 개방적인 사고를 토대로 중국 지식계와 활발히 교류하며 ‘동아시아 인문학 네트워크’를 활성화한 북학자의 모습,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18세기 일본을 편견 없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통찰해낸 개혁적 지식인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제8장 [마지막 호, 아정에 담긴 의미]에서는 정조 시대 문예부흥에 앞장섰던 서얼 출신 규장각 사검서관(四檢書官)의 선두에 섰던 편집자의 모습을 살필 수 있다. 독자들은 재야 지식인 시절 기궤첨신(奇詭尖新)한 문장과 학풍을 일으키는 데 전력을 다했던 이덕무가, 조정에 발탁된 이후에는 국가 차원의 문예부흥에 온 힘을 쏟았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원문으로 읽는 이덕무와 친구들, 그 깊고 진솔한 이야기
서리 내린 아침에 싸리비를 굵게 묶어 / 행랑살이 마당 쓸며 술 항아리 간수하네 / 겨울을 지내려 시래기 낡은 벽에 매달고 / 액막이로 단풍 가지 가난한 부엌 한편에 꽂네 / 농가의 골동품은 회청색 도자기뿐이요 / 마을 아낙네 몸치장은 빨간 구슬뿐이네 / 무명모자 쓴 두 늙은이 귀에 대고 소곤소곤 / “새로 온 사또는 일처리 공평한지!”
― 『아정유고』 1, 〈농가에서 쓰다〉 중에서
『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의 매력 중 하나는 아름다운 고전 문장들을 직접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한 폭의 민속화를 보는 듯한 시 [농가에서 쓰다]의 경우 당시 조선의 시골 풍경뿐 아니라 새로운 사또의 부임을 맞아 수탈을 걱정하는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이처럼 저자 한정주가 심혈을 기울여 선별해 옮긴 문장들은 날카로운 통찰이 담긴 글과 함께 배치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고전을 읽는 즐거움과 더불어 그 정수를 만끽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이 책은 이덕무라는 개인의 삶과 철학, 그리고 그가 느낀 다양한 감정들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지만, 동시에 그가 살았던 당대 사회의 정경과 그와 뜻을 나눈 벗들의 목소리도 담아내고 있다. 굶주리다 못해 친구인 유득공과 목숨처럼 아끼던 책 『맹자』와 『춘추좌씨전』을 팔아치우고는 “맹자가 손수 밥을 지어 먹이고, 좌구명이 친히 술을 따라 권했다”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서는, 평생 가난을 벗 삼으면서도 해학을 잊지 않았던 고고한 모습과 진솔한 우정을 느낄 수 있다. 이밖에도 곳곳에 등장하는 신분과 국적을 뛰어넘어 희로애락을 함께한 청나라 지식인들과의 진솔한 우정과 지적 교류의 향연은 18세기를 화려하게 꽃피운 지식인들의 세계로 데려다준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영조 17년에 태어나 정조 17년까지 활약한 조선 후기 문장가이자 대표적인 북학파 실학자. 호는 청장관(靑莊館), 형암(炯菴), 아정(雅亭), 선귤헌(蟬橘軒), 영처(?處), 간서치(看書癡) 외 다수가 있다. 서얼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병약하고 가난해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으나 가학과 독서로 학문을 갈고닦았다. 당대 최고 지성인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유득공과 교류하면서 '위대한 백 년'이라 불리는 18세기 조선의 문예 부흥기를 주도했다.
아이 같은 천진하고 순수한 감정을 중시한 독창적인 글쓰기 철학을 바탕으로 조선의 진경을 담아낸 수많은 진경 시와 산문, 동아시아 삼국 시문을 다룬 문예비평서 『청비록(淸脾錄)』, 18세기 일본 사회 제도와 문화를 심층 연구한 『청령국지(??國志)』, 조선 고유의 풍속을 정리한 백과사전적 연구서 『앙엽기(?葉記)』, 그 밖에 『사소절(士小節)』, 「열상방언(冽上方言)」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남겼다.
특히 개성을 강조한 자유로운 문장은 멀리 중국에서까지 인정받았으며, 규장각 검서관으로 발탁된 이후 국왕 정조가 열었던 시 경연에서도 여러 번 장원을 차지했다. 1792년 이덕무와 박지원을 위시한 개성적인 문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조정을 휩쓴 문체반정에 휘말렸음에도, 사후 국가적 차원에서 유고집 『아정유고(雅亭遺稿)』가 간행될 만큼 대문장가로 인정받았다. 아들 이광규가 편집한 전집으로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가 있다. 사회적 틀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데 거리낌 없던 이덕무의 문장론과 철학, 초지일관 소신을 지킨 강직한 삶의 자세는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인문학적 가치가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청장(靑莊)은 해오라기의 별명이다. 이 새는 강이나 호수에 사는데, 먹이를 뒤쫓지 않고 제 앞을 지나가는 물고기만 쪼아 먹는다. 그래서 신천옹(信天翁)이라고도 한다. 이덕무가 청장을 자신의 호로 삼은 것은 이 때문이다.”
―박지원, 『연암집』, 〈형암행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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