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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 역사에서 ‘정조 사후 63년’을 읽는다는 것은 복잡하고 우울한 심사를 품게 한다. 견제장치 없는 권력구조와 정치보복의 악순환, 각종 정치사회적 부조리와 민란의 도미노 현상, 거듭되는 기근과 질병, 대외관계에서의 실패 등…… 세도정치기에 등장한 이런 현상들은 특히 그 직전의 정조시대와 너무 대조적이어서 일반 독자와 연구자들이 그 복잡한 양상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이 책을 통해 그 시대를 읽는 작업이 좀더 수월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같은 시기를 다룬 기존의 연구들이“부정적이기만 하고 내용이 거의 없는 것” 내지 “세도정치 자체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그 성격 규정에 머물러” 있었던 데 비해, 이 시기 조선의 정세 특히 거의 연구가 되어 있지 않던 당대 대외관계를 다루는 등 다양한 측면을 두루 살폈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의 공백을 메우는 획기적 연구서라고 평할 수 있다.
같은 시기를 다룬 기존의 연구들이“부정적이기만 하고 내용이 거의 없는 것” 내지 “세도정치 자체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그 성격 규정에 머물러” 있었던 데 비해, 이 시기 조선의 정세 특히 거의 연구가 되어 있지 않던 당대 대외관계를 다루는 등 다양한 측면을 두루 살폈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의 공백을 메우는 획기적 연구서라고 평할 수 있다.
목차
서남동양학술총서 간행사Ⅰ21세기에 다시 쓴 간행사
책머리에
제1부 세도정치기 이전의 조선정치
1. 조선왕조의 장기 지속요인과 공론정치
2. 영조시대의 공론정치와 군민(君民)의 소통방식
3. 정조의 능행과 민의 수렴의 정치
4. 정조의 언론개혁과 공론정치의 성격변화
제2부 세도정치기의 정치와 외교
5. 순조시대의 정국운영과 언론
6. 반란의 정치학: 홍경래난과 19세기 조선정치
7. 황사영백서사건과 조선 지식인의 정체성 위기
8. 탕평군주의 기억: 정약용의 정치비전과 개혁론
9. 쇄국(鎖國)의 논리와 대응: 대외관계
제3부 세도정치기 이후의 조선정치
10. 대한제국의 탄생과 경국대전체제의 해체
11. 1898년 만민공동회와 근대적 공론정치의 실험
12. 왕정체제에서 공화정체제로의 전환: 일제시대 이후의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
에필로그
참고문헌
출처
찾아보기
책머리에
제1부 세도정치기 이전의 조선정치
1. 조선왕조의 장기 지속요인과 공론정치
2. 영조시대의 공론정치와 군민(君民)의 소통방식
3. 정조의 능행과 민의 수렴의 정치
4. 정조의 언론개혁과 공론정치의 성격변화
제2부 세도정치기의 정치와 외교
5. 순조시대의 정국운영과 언론
6. 반란의 정치학: 홍경래난과 19세기 조선정치
7. 황사영백서사건과 조선 지식인의 정체성 위기
8. 탕평군주의 기억: 정약용의 정치비전과 개혁론
9. 쇄국(鎖國)의 논리와 대응: 대외관계
제3부 세도정치기 이후의 조선정치
10. 대한제국의 탄생과 경국대전체제의 해체
11. 1898년 만민공동회와 근대적 공론정치의 실험
12. 왕정체제에서 공화정체제로의 전환: 일제시대 이후의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
에필로그
참고문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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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정조 사후 세도정치기의 대내외적 문제를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분석한 [정조 사후 63년: 세도정치기(1800~63)의 국내외 정치 연구]가 출간되었다. 같은 시기를 다룬 기존의 연구들이“부정적이기만 하고 내용이 거의 없는 것” 내지 “세도정치 자체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그 성격 규정에 머물러” 있었던 데 비해, 이 시기 조선의 정세 특히 거의 연구가 되어 있지 않던 당대 대외관계를 다루는 등 다양한 측면을 두루 살폈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의 공백을 메우는 획기적 연구서라고 평할 수 있다.
정조시대와 그 이후를 구획하는 선은 무엇인가
이 책의 제1부 1장은 정조의 개혁조치들이, 조선왕조를 오랫동안 지탱시켜온 메커니즘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장기 지속의 근간이 된 ‘공론정치’의 특징과 구조를 다뤘다. 제2장과 3장에서는 세도정치기의 전사(前史)인 영조와 정조시대의 공론정치의 양상과 국왕들의 대응방식을 살폈다. 영조와 정조의 친민(親民)정치, 즉 국왕이 언관과 신료들을 거치지 않고 직접 백성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그전 시대와 다른 소통방식을 볼 수 있다. 특히 제4장에서는 국왕 정조의 공론에 대한 인식과 언관들의 관료에 대한 탄핵조치를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제2부는 이 책의 중심부로서 세도정치기의 국내외 정치를 다섯 장으로 나누어 살폈다. 먼저 제5장에서는 당시의 핵심 인물이던 국왕, 대왕대비, 외척 세도가의 말을 정치보복과 민생논의의 실종이라는 측면에서 고찰했다. 그리고 침묵과 동원의 널뛰기라는 특징을 보인 그 시기 언론의 탄핵 내용을 통계로 살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정이 부닥친 첫번째 도전은 대규모 반란이었다.
제6장에서는 순조정권의 최대 위기라 할 수 있는 ‘홍경래의 난’이라는 119일간의 반란사건을 다루었다. 조정의 공론정치 메커니즘의 마비와 순조정권의 무능력, 그로 인한 민심의 이반현상 등 순조 정권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사건이었다. 제7장에서는 세도정치기의 언론구조를 경색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황사영백서사건을 다루었다. 제8장에서는 정조시대와 순조시대를 관료이자 지식인으로 살았던 정약용이 진단하는 시대인식과 정치비전을 살폈다.
제3부에서는 세도정치기 이후의 조선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세 개의 글을 실었다. 먼저 제10장에서는 흥선대원군의 집권과 고종의 친정(親政)체제하에서 시도된 공론정치의 복원 시도가 몇가지 국내외적인 사건들을 겪으면서 무산되고, ‘대한제국’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체제가탄생하는 과정과 그 의미를 살폈다. 제11장에서는 1898년의 만민공동회에서 나타난 근대적 공론정치의 양상을 살핀다. 정조시대에 통청(通淸)으로 나타났고, 세도정치기에는 민란(民亂)의 형식으로 표출되었던 백성들의 저항과 목소리가 표출되는 만민공동회는 바로 직전의 철종시대까지와 전혀 다른 역동성과 근대적 공론장의 탄생을 보여준다. 마지막 제12장에서는 조선왕조가 일제에 의해 패망한 이후 등장한 복벽(復?)운동, 다시 왕정체제를 복구하려는 움직임과 그에 맞서 공화정이라는 새로운 정치노선을 걸으려는 세력 사이의 대립과 충돌을 살핀다.
세도정치기의 대외관계, 그 닫힌 빗장을 열다
특히 제9장 ‘쇄국(鎖國)의 논리와 대응: 대외관계’에서는 한국 학계에서 거의 연구되지 않았던 이 시기의 대외관계를 살폈다. 정조시대와 비교해볼 때 순조?헌종?철종기의 대외관계는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 및 일본의 경시, 서양제국의 배척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세도정치기의 대외관계는 그전의 정조시대와 비교해볼 때 다음과 같은 차이점을 갖는다. 첫째,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순조시대까지만 해도 대명(對明)의리론과 대청(對淸)사대외교론이 공존하고 있었으나(이중적 중국관), 헌종시대에 접어들면서 ‘대청사대외교론’이 주류를 이뤄갔다(북벌론에서 북학론으로). 둘째, 일본에 대해서는 종래처럼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서양선박의 잦은 출현에 대해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변방의 걱정을 함께 대응하려 했다. 셋째, 서양제국과의 관계는 순조 초기의 신유사옥 이후 현저히 축소되었다. 특히 서양의 큰 선박을 맞이하려 했던 황사영백서사건 이후 세도정권은 위기감을 느끼고 더욱 철저한 금압정책을 폈던 역사도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우리 역사에서 ‘정조 사후 63년’을 읽는다는 것은 복잡하고 우울한 심사를 품게 한다. 견제장치 없는 권력구조와 정치보복의 악순환, 각종 정치사회적 부조리와 민란의 도미노 현상, 거듭되는 기근과 질병, 대외관계에서의 실패 등…… 세도정치기에 등장한 이런 현상들은 특히 그 직전의 정조시대와 너무 대조적이어서 일반 독자와 연구자들이 그 복잡한 양상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이 책을 통해 그 시대를 읽는 작업이 좀더 수월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정조시대와 그 이후를 구획하는 선은 무엇인가
이 책의 제1부 1장은 정조의 개혁조치들이, 조선왕조를 오랫동안 지탱시켜온 메커니즘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장기 지속의 근간이 된 ‘공론정치’의 특징과 구조를 다뤘다. 제2장과 3장에서는 세도정치기의 전사(前史)인 영조와 정조시대의 공론정치의 양상과 국왕들의 대응방식을 살폈다. 영조와 정조의 친민(親民)정치, 즉 국왕이 언관과 신료들을 거치지 않고 직접 백성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그전 시대와 다른 소통방식을 볼 수 있다. 특히 제4장에서는 국왕 정조의 공론에 대한 인식과 언관들의 관료에 대한 탄핵조치를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제2부는 이 책의 중심부로서 세도정치기의 국내외 정치를 다섯 장으로 나누어 살폈다. 먼저 제5장에서는 당시의 핵심 인물이던 국왕, 대왕대비, 외척 세도가의 말을 정치보복과 민생논의의 실종이라는 측면에서 고찰했다. 그리고 침묵과 동원의 널뛰기라는 특징을 보인 그 시기 언론의 탄핵 내용을 통계로 살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정이 부닥친 첫번째 도전은 대규모 반란이었다.
제6장에서는 순조정권의 최대 위기라 할 수 있는 ‘홍경래의 난’이라는 119일간의 반란사건을 다루었다. 조정의 공론정치 메커니즘의 마비와 순조정권의 무능력, 그로 인한 민심의 이반현상 등 순조 정권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사건이었다. 제7장에서는 세도정치기의 언론구조를 경색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황사영백서사건을 다루었다. 제8장에서는 정조시대와 순조시대를 관료이자 지식인으로 살았던 정약용이 진단하는 시대인식과 정치비전을 살폈다.
제3부에서는 세도정치기 이후의 조선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세 개의 글을 실었다. 먼저 제10장에서는 흥선대원군의 집권과 고종의 친정(親政)체제하에서 시도된 공론정치의 복원 시도가 몇가지 국내외적인 사건들을 겪으면서 무산되고, ‘대한제국’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체제가탄생하는 과정과 그 의미를 살폈다. 제11장에서는 1898년의 만민공동회에서 나타난 근대적 공론정치의 양상을 살핀다. 정조시대에 통청(通淸)으로 나타났고, 세도정치기에는 민란(民亂)의 형식으로 표출되었던 백성들의 저항과 목소리가 표출되는 만민공동회는 바로 직전의 철종시대까지와 전혀 다른 역동성과 근대적 공론장의 탄생을 보여준다. 마지막 제12장에서는 조선왕조가 일제에 의해 패망한 이후 등장한 복벽(復?)운동, 다시 왕정체제를 복구하려는 움직임과 그에 맞서 공화정이라는 새로운 정치노선을 걸으려는 세력 사이의 대립과 충돌을 살핀다.
세도정치기의 대외관계, 그 닫힌 빗장을 열다
특히 제9장 ‘쇄국(鎖國)의 논리와 대응: 대외관계’에서는 한국 학계에서 거의 연구되지 않았던 이 시기의 대외관계를 살폈다. 정조시대와 비교해볼 때 순조?헌종?철종기의 대외관계는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 및 일본의 경시, 서양제국의 배척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세도정치기의 대외관계는 그전의 정조시대와 비교해볼 때 다음과 같은 차이점을 갖는다. 첫째,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순조시대까지만 해도 대명(對明)의리론과 대청(對淸)사대외교론이 공존하고 있었으나(이중적 중국관), 헌종시대에 접어들면서 ‘대청사대외교론’이 주류를 이뤄갔다(북벌론에서 북학론으로). 둘째, 일본에 대해서는 종래처럼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서양선박의 잦은 출현에 대해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변방의 걱정을 함께 대응하려 했다. 셋째, 서양제국과의 관계는 순조 초기의 신유사옥 이후 현저히 축소되었다. 특히 서양의 큰 선박을 맞이하려 했던 황사영백서사건 이후 세도정권은 위기감을 느끼고 더욱 철저한 금압정책을 폈던 역사도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우리 역사에서 ‘정조 사후 63년’을 읽는다는 것은 복잡하고 우울한 심사를 품게 한다. 견제장치 없는 권력구조와 정치보복의 악순환, 각종 정치사회적 부조리와 민란의 도미노 현상, 거듭되는 기근과 질병, 대외관계에서의 실패 등…… 세도정치기에 등장한 이런 현상들은 특히 그 직전의 정조시대와 너무 대조적이어서 일반 독자와 연구자들이 그 복잡한 양상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이 책을 통해 그 시대를 읽는 작업이 좀더 수월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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