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조선시대사 이해 (독서>책소개)/4.조선역사문화

1만 1천권의 조선

동방박사님 2022. 9. 12.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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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은 몸으로 온다.
나는 그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전설로 남은 이방인의 책들을 유랑하며
소설가 김인숙이 마주한 역사, 문화 그리고 사람


소설가 김인숙이 한국에 관한 서양 고서 마흔여섯 권에 대해 쓴 산문이다. ‘Korea’, ‘Corea’, ‘조선’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나라와 관련된 한 글자만 들어 있어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 명지-LG한국학자료관.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1만 1천여 권의 한국학 자료들이 소장된 이 도서관에 초대되어 수많은 서양 고서들을 만났고 약 3년간 이곳의 다양한 고서들을 연구하며 이 책을 준비했다. 키르허의 『중국도설』, 하멜의 『하멜 표류기』, 샬의 『중국포교사』, 키스의 『오래된 조선』, 카를레티의 『항해록』, 프로이스의 『일본사』, 쿠랑의 『한국서지』 등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스웨덴어와 같이 다양한 서구의 언어들로 기록된 이 고서들은 17~19세기 한국학 연구에 있어 중요한 사료들로 손꼽히지만 정작 대중들에게는 낯설다.

그런데 이 고서들 속 조선에 대한 기록은 정작 허점투성이에 오류가 난무한다. 우리나라가 등장하는 부분이 단 한 줄 혹은 몇 문장에 그치는 경우도 많고, 그마저도 자신들의 고정관념과 이해관계가 덧씌워진 채 왜곡되기 일쑤다. 막연한 동경이나 미화 혹은 무의식적인 혐오와 폄하의 틀을 벗어던지지 못해 마주하기 불편한 기록들도 적지 않다. 저자는 이 모든 구부러지고 빗겨나간 정보들을 있는 그대로 소개한다. 당시 서구인들의 시선에 비친 우리의 모습, 그 책을 만들어낸 인물들과 그들이 살았던 시대 그리고 그 주변부의 이야기까지 역사 속 사실들을 섬세하고 명민한 시선과 작가적 상상력으로 포착해낸다.

또 한 가지 저자가 공을 들여 소개하는 부분은 이 서양 고서들이 가진 물성 그 자체다. 실제로 이 책에는 120여 장에 가까운 고서 사진들을 직접 촬영하여 수록함으로써 쉽게 접하기 힘든 고서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수백 년의 세월을 품은 채 낡아가는 표지, 펼치기만 해도 바스러져 가루가 되어 떨어지는 책장들, 종이 위 번진 세월의 얼룩과 멋스럽게 기울여 쓴 활자체와 정성껏 박을 입히고 공들여 엮은 장정,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하기 위해 면지에 적어둔 손글씨와 책장 사이에 끼워진 명함과 사진…. 저자는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아름다운 몸이라고 찬탄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에서 담고자 했던 바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기에 있으나 거기에 없는 책들,
희귀한데도 희귀본이지 않고, 고서가 아닌데도 몇백 년씩이나 오래되었고,
외국어 책인데 우리나라 얘기를 담고 있는,
그런 책들 중 어떤 책이 아니라 그런 책들 모두에 대해서.
그 책들이 담고 있는 공간과 공간 사이,
시간과 시간 사이의 ‘이야기’에 대해서.”

 

목차

들어가는 말 / 타인의 시선이 담긴 몸

1장 오해와 편견의 역사

오래된 책, 유명한 책, 한 줄의 책 - 키르허의 『중국도설』
오해와 편견의 역사 - 마르티니의 『타르타르의 전쟁』
생생하게 실재하는 야만의 나라 - 하멜의 『하멜 표류기』
시선의 방향 - 로티의 『자두부인』, 뒤크로의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
거짓말쟁이와 허풍꾼의 책 - 핀투의 『핀투 여행기』, 폴로의 『동방견문록』
희한하고 씁쓸한, 좀 이상한 책들 - 맥레오드의 『조선과 사라진 열 지파』, 미케위치의 『한국인은 백인이다』
한 번 보아서는 보이지 않는 것 - 비숍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그렙스트의 『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 전 한국을 걷다』

2장 오래된 책, 아름다운 몸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아름다워지는 책 - 피카르의 『종교에 관하여』
책 속에 남겨진 손글씨의 온기 - 알렌의 『조선견문기』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책 - 크랜의 『조선의 꽃들과 민담』
애정으로 포착해낸 표정 - 키스의 『오래된 조선』, 메이의 『계피나무 정원에서 온 풀잎』
가장 비싼 책의 조건 - 지볼트의 『일본』
낭만과 절망을 담은 지도 - 미국성서공회의 『선교 안내 목록』
다즐레섬, 판링타오 그리고 찬찬타오 - 라페루즈의 『항해기』

3장 역사의 지문

소현세자, 비운의 코레아 왕 - 샬의 『중국포교사』
기울어진 역사를 관통한 소년, 안토니오 코레아 - 카를레티의 『항해록』
민간인의 눈으로 기록한 전쟁의 참상 - 앨런의 『영국 선원 앨런의 청일전쟁 비망록』
한 줄의 문장이 엮어내는 역사의 지문 - 팀콥스키의 『몽골을 거쳐 베이징까지의 여행』
1890년대 조선의 일상 저장고 - 올링거의 「코리언 리포지터리」, 헐버트의 「코리아 리뷰」
유럽 최초로 한국 문학작품을 소개한 암살범 - 홍종우의 『다시 꽃 핀 마른 나무』
조선의 오징어 게임 - 컬린의 『조선의 게임』

4장 미지의 땅, 최초의 기억

흰옷, 이상한 모자, 일하지 않는 남자 - 앤드루스의 『세계의 끝』
세계의 변방에 관한 최초의 기록 - 카르피니의 『몽골의 역사』, 루브룩의 『몽골 제국 기행』
막내 왕자의 울음을 멈춘 움직이는 요술 상자 - 홈스의 『트래블로그』
조선의 지식사회를 뒤흔든 서구 문물 - 로드리게스의 『일본교회사』
이양선을 타고 온 탐사자들 - 브로튼의 『북태평양 발견 항해기』
미지의 땅, 세계의 끝과 시작 - 볼테르의 『중국 고아』
섬세하지만 겁 많고 유약한 조선인 - 런던의 『신이 웃을 때』

5장 기록하는 책, 기록하는 사람

쓰지 않은 책의 저자가 되어버린 저자 - 트리고·리치의 『중국 선교사』
포르투갈 선교사의 기록으로 남은 임진왜란 - 프로이스의 『일본사』, 『감바쿠 도노의 죽음』
시대를 앞서간 책, 말모이의 시대를 연 학자 - 언더우드의 『한영자전』
황실을 지킨 서양인들 - 크뢰벨의 『나는 어떻게 조선 황실에 오게 되었나』
모든 것이 반대인 나라를 사랑했던 선교사 - 홀의 『닥터 홀의 조선 회상』, 노블의 『노블 일지』
침략의 기록, 문제적 인물 - 쥐베르의 『조선 원정기』, 오페르트의 『금단의 나라 조선 탐험기』
조선의 책, 책 속의 조선을 발견한 남자 - 쿠랑의 『한국서지』

나가는 말 / 「함녕전 시첩」 속 동감지의

 

저자 소개

저 : 김인숙 (金仁淑)
 
1963년 서울 출생. 연세대 신방과를 졸업했다. 1983년 조선일보에 「상실의 계절」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함께 걷는 길』 『칼날과 사랑』 『유리 구두』 『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 『그 여자의 자서전』 『안녕, 엘레나』 『단 하루의 영원한 밤』, 장편소설 『핏줄』 『불꽃』 『79-80 겨울에서 봄 사이』 『긴 밤, 짧게 다가온 아침』 『그래서 너를 안는다』 『시드니 그 푸른 바다에 서다』 『...
 

책 속으로

책은 몸이다. 이야기를 담은 몸이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때로는 지루하고 끔찍한 이야기들을 담은, 그러나 한결같이 아름다운 몸. 그 몸에 묻은 얼룩, 문신같이 새겨진 낙서, 찢기고 갈라진 흉터, 그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질 때 책은 몸과 정신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빛이 난다. 은은히 빛나다가 마침내 찬란히.
---「들어가는 말_타인의 시선이 담긴 몸」중에서

조선에 대한 몇 부분 오류 섞인 정보와 해석에도 불구하고, 마르티니의 저술은 우리에게 매우 특별한데, 그에 이르러 조선의 역사가매우 유의미하게 확장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조선에 대한 기술은 일본 선교사들에 의한 것이 많았고, 그 기술은 임진왜란을 통한 접촉이 기본을 이루었다. 일본보다 뒤늦게 진출하기는 했지만, 중국 선교사들의 조선에 대한 기록 역시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마테오 리치의 기록이 대표적인데, 그에게 있어 임진왜란은 일본과 조선의 전쟁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전쟁이었다. 임진왜란이 끝났을 때, 마테오 리치에게 그것은 중국의 승리였다. 그야말로 조선은 ‘타자의 타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르티니에 이르면 이제 조선의 전쟁은 임진왜란이 아니다. 그것은 청나라와 조선의 전쟁이다.
---「오해와 편견의 역사_마르티니의 『타르타르의 역사』」중에서

책의 경우는 종이가 살아 남았다고 해서 그 존재가 이어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 책이 책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와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활자, 그리고 인쇄와 제책과 보급까지. 여기까지 오면 다 온 것 같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이 아직 더 남아 있다. 책에 체온을 입히는 독자들. 낡은 표지, 변색된 내지, 누군가의 낙서, 얼룩, 그리고 문득 페이지 사이에서 발견되는 수신인을 알 수 없는 편지…. 이런 것들로 흔적을 남기는 독자들의 세월. 더 많은 예를 들 수도 있다. 장서표, 도서관의 인장, 폐기 처분된 책임을 알리는 ‘discard’ 표시. 뒤표지에 붙어 있는 대출기록표. 그 기록표를 빼곡히 채운 이름들, 마른 나뭇잎, 그 나뭇잎이 말라가면서 남긴 흔적…. 그런 것들. 아름다운 책은 이처럼 세월을 말한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내용뿐만 아니라 그 책을 거쳐 간 독자들의 세월을 또한 말한다.그래서 책은 다시, 또 다른 이야기를 품는 책이 된다. 이것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오래된 책들의 비밀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아름다워지는 책_피카르의 『종교에 관하여』」중에서

홍종우는 『춘향전』이 출판되자마자 곧바로 『심청전』 번역을 시작한다. 이번에는 프랑스인의 조력자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직접 번역했고,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도 했다. 『다시 꽃 핀 마른 나무』라는 제목으로. 1895년이었다. 그런데 이 『심청전』 역시, 심청전이 아니다. 『춘향전』보다 더 심하다. 『춘향전』은 살짝살짝 달랐는데, 『심청전』은 더 요령부득, 더 오리무중이다.

내용을 간단히 보자. 덕이 높기로 소문난 양반 청이 아버지가 음모에 의해 유배를 가게 된다. 거기에서 청이를 낳는다. 그리고 청이 아버지가 봉사가 된다. 청이는 300석 쌀을 받고 배에 제물이 되기를 자청한다. 여기까지는 크게 문제가 없는 내용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스토리가 전개된다. 청이 아버지의 친구가 등장하고, 나라에서는 반란이 일어나고, 어린 왕이 유배를 가고, 그 왕이 거북이를 쫓아 바다에서 나온 청이와 결혼을 하고…. 어쨌든 그러다가 청이 부녀가 상봉을 하고, 심 봉사는 다시 재상이 되고…. 이 개작이 얼마나 심했는지 프랑스 사람이며 동시에 한국학 학자 이기도 했던 모리스 쿠랑은 『한국서지』에 이 책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홍종우에 의해 번역되었다기보다 모방된 한국 소설.” 프랑스 사람 로니도 아닌 홍종우는 왜 『심청전』을 이런 식으로 개작했을까?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이 작품은 사실 우리나라의 고소설의 온갖 모티브를 차용한 것으로, 『조웅전』, 『백학전』, 『숙향전』, 『토끼전』 기타 등등의 내용이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아마도 홍종우는 우리나라 문학작품을 하나라도 더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심청전』도 알리고, 다른 것도 알리고, 할 수 있는 만큼 다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자랑스러웠으니까. 너희들 잘난 체하지 마,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훌륭한 문학이 있어, 말하고 싶었을 테니까.
---「유럽 최초로 한국 문학작품을 소개한 암살범 홍종우의 『다시 꽃 핀 마른 나무』」중에서

로드리게스는 『일본교회사』라는 책을 썼다. 제목은 『일본교회사』이지만 일본과 중국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그 두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같이 다룬 것이 주 내용이다. 그 두 나라와 조선과의 관계도 다루었다. 유럽인들에게 극동을 소개한 17세기의 많은 책들이 대부분 정치적·사회적 현상을 다루는 것에 국한되었던 반면 로드리게스의 이 책은 거의 유일하다시피 동양 3국의 문화적 전통을 언급했다. 그러나 빛을 보지는 못했다. 그의 필사본은 20세기 중엽까지 사장되어 있다가 1932년에야 발굴되었다. 그나마 전본이 아니었다. […]

그런데 이 책에 대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이 책이 임나일본부설을 최초로 소개한 서구 서적이라는 점이다. 일본이 백제와 신라, 가야 지방을 지배했다고 주장하는 이 설은 이후 일본의 조선 침공을 정당화하는 이론이 된다. 로드리게스가 아무리 오래 극동 지방의 선교를 했고, 또 역사를 공부했다고는 해도, 결국 한계는 있었다. 그가 참고했던 자료들은 일본에서 얻은 것들이었다.
---「조선의 지식사회를 뒤흔든 서구 문물 로드리게스의 『일본교회사』」중에서

연암문고에서 소장하고 있는 쓸쓸한 기록,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지 않을 수 없는, 쓸쓸하고도 귀한 서적이 바로 위에서 소개한 「함녕전 시첩」이다. 시첩은 쓸쓸한 것 중에서도 더 쓸쓸하고, 귀한 것 중에서도 더 귀해 감히 만지지도 못하고 그냥 들여다보기만 했다. 서구 사람들이 본 조선에 관한 이야기가 마치 종착점에 모이듯 그 시첩으로 모두 모여드는 것 같았다. 그 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한마디라도 보태고 싶어서 이 책을 시작한 건 아니다.

나는 다만 그 시첩을, 그리고 그 시첩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책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특별하고 아름다운 도서관이 누구나들어갈 수 없는 도서관이라는 것이 안타까웠다. 안타깝다 못해 속상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만 권의 책’이라고 붙이고 싶기도 했다. 연암문고에서 소장하고 있는 1만 1,000권의 책을 다 보여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지 못해 겨우겨우 일부만 추렸다. 욕심만 갖고 시작한 일이라 힘에 부치지 않는 일이 없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것이 이 책에 소개할 목록을 추려내는 일이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책 하나 사연 없는 책이없고 귀하지 않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소개된 책들이 다른 책들에 비해 가장 먼저 소개되어야 하는 책들은 아니다. 서가를 거닐다가 손 닿는 대로 꺼내본 책들이라고 해두자. 그런데도 이렇게 귀했다고 해두자.
---「나가는 말_「함녕전 시첩」속 동감지의」중에서
 

출판사 리뷰

희한하고 희귀한, 이 황홀한 책들!
전설이 되어 남은 1만 1천 권 고서들의 세계를 탐닉하다


우리나라에 대해 서구인들이 남긴 기록, 특히 개항기 전후의 조선을 소개하는 책들은 국내에도 상당수 번역·출간되었다. 그러나 ‘페이지 수가 너무 많아서’, ‘우리나라에 대한 이야기는 단 몇 줄에 불과해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소개되지 못한 책들도 여전히 많다. 명지-LG한국학자료관은 바로 그러한 서양의 고서들과 관련 자료들을 차곡차곡 그러모은 곳으로 장서와 자료의 수가 약 1만 1천 종에 달한다. 소설가 김인숙은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이 숨은 자료관의 서가 구석구석을 탐색하며 오랜 책들에 관한 이야기, 책을 집필한 인물과 그 시대의 이야기 그리고 책과 책 사이에 숨겨진, 미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 속 이야기와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들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오해와 편견, 무지와 미지가 교차하는 서구인들의 시선 속
우리도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 속 조선의 모습


‘솔랑가’, ‘칼렘플루이’, ‘코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우리나라(신라, 고려, 조선)는 한마디로 세계의 끝이자, 일체 알려진 바가 없는 미지의 나라였다. 모른다는 것은 곧 판타지. 알 수 없는 이 막연한 나라에 대한 환상은 ‘금과 은이 풍부한 나라’(핀투의 『핀투 여행기』), ‘자유연애를 하고 부모의 허락 없이 결혼할 수 있는 나라’(마르티니의 『타르타르의 전쟁』), ‘모세의 후손으로 이스라엘의 사라진 열 지파 중 하나’(맥레오드의 『조선과 사라진 열 지파』), ‘칭기즈 칸이 침공한 베이징의 황손을 보호해준 나라’(볼테르의 『중국 고아』), ‘들어가기만 하면 몇 살이 되었든 나이를 먹지 않는 나라’(루브룩의 『몽골 제국 기행』)와 같이 허무맹랑한 내용들로 구체화되었다. 이후 19세기 말 서구의 문물이 물밀 듯 들어오기 시작하는 개항기에 이르러서는 ‘겁 많고 게으르며 비능률적인 민족’(런던의 『신이 웃을 때』), ‘달콤하고 정겹지만 결코 서구인을 넘어서지는 못할 착한 미개인’(뒤크로의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와 같이 서구중심주의에 물든 시선 혹은 ‘묘지 같은 집에 사는 야만인’(피에르 로티)과 같은 혐오로 기록되기도 한다.

책과 책 사이, 기록되지 못한 채 사라진 역사의 숨결
소설가적 창조력으로 건져 올린 생생한 이야기


저자는 역사책에는 잘 소개되지 않는, 책과 책 사이의 이야기, 책 속 기록 이면의 이야기들도 소개한다. 최초로 유럽 땅을 밟은 조선인으로 알려진 안토니오 코레아의 실체, 고종의 초청으로 조선을 방문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천덕꾸러기 딸 앨리스 루스벨트와 그녀를 대접하기 위한 화려한 연회 메뉴, 도포와 갓 차림으로 당당하게 파리 거리를 활보하며 『심청전』과 『춘향전』을 프랑스어로 번역·출간한 조선 최초의 서양 유학생 홍종우가 왜 김옥균의 암살범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조선의 개항을 돕겠다는 명분으로 남연군 묘를 도굴하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자 조선에 관한 책까지 집필한 문제적 인물 오페르트, 이양선을 타고 강화도를 침략하는 와중에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강화도의 풍경을 찬탄했던 프랑스 군인 쥐베르의 기록에 관한 이야기 등도 담겨 있다.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책이기도 한 서양 고서들
낡고 바랜 종이와 장정, 그 안에 담긴 역사


저자의 시선은 이러한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이를 담고 있는 책의 외형에도 머무른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습기를 머금어 얼룩이 생기고 울룩불룩해진 종이, 기울여 씀으로써 종이의 여백을 최대한 아름답게 살리고자 한 글씨체인 이탤릭체, 책의 인쇄를 주문하는 출판사나 단체 혹은 가문에 따라 다양한 판형과 표지를 가진 책들, 그림 하나하나마다 기름종이를 덧댄 정성스러운 가공, 금박과 가죽으로 고급스럽게 엮어낸 장정은 오늘날의 책들에서는 쉬 느끼기 힘든 기품 그리고 귀중품으로서의 책의 가치를 느끼게 해준다.

이뿐만 아니라 한때 이 책을 소유했던 누군가의 흔적, 선물하면서 남긴 편지와 사진, 명함, 도서관 장서임을 증명하는 표식들과 도장에 이르기까지 고서는 자신의 몸을 스쳐 지나간 갖가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몸이자 역사가 된다.

「함녕전 시첩」 속 고종의 글씨
망국의 한, 아픈 시대의 기록 속 우리가 바라본 우리의 모습


이 책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작품은 「함녕전 시첩」이다.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 등이 1909년 덕수궁 함녕전에서 고종의 운에 맞춰 지은 칠언절구를 긴 두루마리 형태로 만든 것으로, 이 시첩에는 후에 고종의 낙관이 찍힌 친필이 들어 있는 것으로 밝혀져 그 가치가 재평가되기도 했다. 저자는 「함녕전 시첩」으로 책을 마무리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18세기, 19세기 서구인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남긴 기록은 그 관점이 어떠하든 간에 결국은 망해가는 한 나라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므로 그 기록의 끝에 이르러 ‘우리는 우리 눈으로 우리를’ 한 번은 들여다봐야 한다.

외세의 격랑 속 조선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던 그 시기에 이완용은 「함녕전 시첩」에서 “두 땅(조선과 일본)이 한 집을 이루어 천하에 봄이 왔네”라고 했다. 그리고 고종은 여기에 ‘동감지의(同感之意)’라는 말을 남겼다. 대체 무엇을 동감한다는 것인가. 왜 고종은 그런 말을 남긴 것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다른 이야기가 있다. 「함녕전 시첩」의 칠언절구에서 고종이 띄운 운, ‘인(人), 신(新), 춘(春)’ 자는 춘추전국시대, 적왕 초나라 문왕에게 애첩으로 끌려가 아들 셋을 나을 때까지 일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한 식나라 왕비 도화부인을 기린 두목의 시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사실이다. 망해가는 나라의 왕이었고, 침략자를 위한 연회에서도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고종은 ‘인, 신 춘’ 석 자로 도화부인을 떠올렸고, 이에 씁쓸하고도 쓸쓸하게 ‘동감지의(同感之意)’라는 글자로 무언의 저항을 한 것이다.

어린아이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할아버지의 책장을 들여다보듯 시작했던 이 책은 이처럼 한 시대의 쓸쓸함을 담은 시첩으로 끝을 맺는다. 조선 사람을 바라보았던 서구인들의 시선은 결국 스스로 바라본 우리의 모습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서양의 고서를 통해 우리의 뿌리를 되돌아보고 이를 바탕으로 지금 우리의 모습도 비추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