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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5천여 년 전 중국 상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갑골문에는 만든 이의 생각이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갑골문을 만든 사람들은 남자들이었고, 그 남자들은 여(女) 자를 모든 부정적인 개념을 표현하는 데 사용했다. 왜 그랬을까?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 저자의 집념이 마침내 고대사회에서 여자는 존재 자체가 낙인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시대정신을 담은 글자, 그 속에서 울고 있는 여자들. 수천 년을 이어온 여자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과 여자의 위상은 현대에 들어서며 획기적으로 달라졌지만 여자를 낙인으로 취급했던 고대사회의 시각이 과연 현대인의 의식에서 완전히 지워졌을까?
저자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친근한 말투와 흥미로운 예화들을 통해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되짚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상호보완적인 존재임을 역설한다.
시대정신을 담은 글자, 그 속에서 울고 있는 여자들. 수천 년을 이어온 여자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과 여자의 위상은 현대에 들어서며 획기적으로 달라졌지만 여자를 낙인으로 취급했던 고대사회의 시각이 과연 현대인의 의식에서 완전히 지워졌을까?
저자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친근한 말투와 흥미로운 예화들을 통해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되짚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상호보완적인 존재임을 역설한다.
목차
들어가기에 앞서
머리말
1. 여자
어머니와 딸
아내와 며느리
무녀
2. 여자의 위상
왕의 여자
첩
노예, 첫 번째 이야기
노예, 두 번째 이야기
노예, 세 번째 이야기
봄을 파는 여자
죽으라면 죽는 여자
3. 여자의 성정
여자는 유혹한다
여자는 질투한다
여자는 교활하다
여자는 음란하다
여자는 간사하다
4. 여자의 조건
작아야 한다
약해야 한다
허리가 가늘어야 한다
단정해야 한다
가꿔야 한다
5. 여자는 아름답다
미의 역사
아름다운 여자
6. 여자는 추하다
중국의 4대 추녀
더러운 여자
추한 본성
맺는말
머리말
1. 여자
어머니와 딸
아내와 며느리
무녀
2. 여자의 위상
왕의 여자
첩
노예, 첫 번째 이야기
노예, 두 번째 이야기
노예, 세 번째 이야기
봄을 파는 여자
죽으라면 죽는 여자
3. 여자의 성정
여자는 유혹한다
여자는 질투한다
여자는 교활하다
여자는 음란하다
여자는 간사하다
4. 여자의 조건
작아야 한다
약해야 한다
허리가 가늘어야 한다
단정해야 한다
가꿔야 한다
5. 여자는 아름답다
미의 역사
아름다운 여자
6. 여자는 추하다
중국의 4대 추녀
더러운 여자
추한 본성
맺는말
책 속으로
남자가 여자에게 갖는 일차적인 인식은 종족 번식을 위해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여자는 성적 대상이 됩니다. 여기에서 유일하게 제외되는 존재가 바로 어머니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모든 여자는 어머니이거나 장차 누군가의 어머니가 될 존재지만 남자에게 어머니는 오로지 자신의 어머니만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남의 어머니는 어머니가 아닙니다. 여자일 뿐입니다. 남자는 인간을 남자와 여자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로 구분합니다. 이렇게 남자들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어머니는 어떤 존재일까요? 선악의 판단 대상이 아닙니다. 지고지순한 존재입니다. 신성불가침입니다.
--- p.25
며느리 부(?)
여자 옆에 負(부)가 붙어 있습니다. 이 글자가 시집보내는 여자 쪽 입장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負(부)는 ‘짐을 지다, 떠맡다, 빚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입니다. ‘어떤 일이나 의무를 떠맡다’는 뜻으로 쓰이는 부담(負擔)이 대표적인 단어입니다. 즉, ‘며느리 부(?)’는 시집보내는 딸은 신랑 집에 떠맡기는 짐이니 딸 보내는 집으로서는 신랑 집에 빚을 지는 일임을 시사한 것입니다. 왜 이런 글자가 만들어졌을까요? 입에 풀칠하는 것이 매일매일의 과제였던 시절, 남의 집 여자가 식구(食口, 밥 먹는 입)로 들어와 양식을 축내니 신랑 집에서 보면 짐이요, 딸 집에서 보면 빚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글자가 시(?)입니다. 이 글자는 시(媤)와 같은 자로 역시 ‘시집 시’라고 읽습니다. 하지만 이 글자에는 다른 의미가 있으니 여(女) 자 옆에 붙은 사(司)의 가장 대표되는 뜻이 ‘맡다’라는 것입니다. 즉 남자 집에서 며느리를 들인다는 것은 남의 집 여자를 맡아 보살핀다는 의미였던 것입니다. 당연히 여자 집 입장에서는 자신의 딸을 의탁하는 모양새였습니다. 딸 가진 죄인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며느리는 이렇게 남의 집에 의탁된 여자였으니 얻어먹는 대신 시댁 일을 죽자고 안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만들어진 그림들이 ‘며느리 부(婦)’ ‘며느리 사(?)’ ‘며느리 식(?)’입니다.
--- p.42
아첨할 축(?)
남자들도 아첨을 싫어합니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아첨하는 남자라고 부른다면 그 남자는 낙인찍힌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최악의 경멸 대상입니다. 짐승이나 다름없습니다. 아첨하니 짐승이나 다름없는 인간. 그런 개념으로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아첨할 축(?)’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아니라 여자가 들어 있습니다. 여자는 가축과 동렬이었기에 이런 글자를 만들고도 남자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 p.25
며느리 부(?)
여자 옆에 負(부)가 붙어 있습니다. 이 글자가 시집보내는 여자 쪽 입장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負(부)는 ‘짐을 지다, 떠맡다, 빚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입니다. ‘어떤 일이나 의무를 떠맡다’는 뜻으로 쓰이는 부담(負擔)이 대표적인 단어입니다. 즉, ‘며느리 부(?)’는 시집보내는 딸은 신랑 집에 떠맡기는 짐이니 딸 보내는 집으로서는 신랑 집에 빚을 지는 일임을 시사한 것입니다. 왜 이런 글자가 만들어졌을까요? 입에 풀칠하는 것이 매일매일의 과제였던 시절, 남의 집 여자가 식구(食口, 밥 먹는 입)로 들어와 양식을 축내니 신랑 집에서 보면 짐이요, 딸 집에서 보면 빚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글자가 시(?)입니다. 이 글자는 시(媤)와 같은 자로 역시 ‘시집 시’라고 읽습니다. 하지만 이 글자에는 다른 의미가 있으니 여(女) 자 옆에 붙은 사(司)의 가장 대표되는 뜻이 ‘맡다’라는 것입니다. 즉 남자 집에서 며느리를 들인다는 것은 남의 집 여자를 맡아 보살핀다는 의미였던 것입니다. 당연히 여자 집 입장에서는 자신의 딸을 의탁하는 모양새였습니다. 딸 가진 죄인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며느리는 이렇게 남의 집에 의탁된 여자였으니 얻어먹는 대신 시댁 일을 죽자고 안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만들어진 그림들이 ‘며느리 부(婦)’ ‘며느리 사(?)’ ‘며느리 식(?)’입니다.
--- p.42
아첨할 축(?)
남자들도 아첨을 싫어합니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아첨하는 남자라고 부른다면 그 남자는 낙인찍힌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최악의 경멸 대상입니다. 짐승이나 다름없습니다. 아첨하니 짐승이나 다름없는 인간. 그런 개념으로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아첨할 축(?)’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아니라 여자가 들어 있습니다. 여자는 가축과 동렬이었기에 이런 글자를 만들고도 남자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 p.225
출판사 리뷰
갑골문이 보여주는 여자에 대한 남자의 인식
남자들은 여자를 어떤 존재로 보고 있을까? 여성이 참정권을 얻게 된 것은 불과 100여 년 전 일이고, 그 이전에는 시민 취급도 받지 못했다.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이후로도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존재라고 인식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러니 100여 년 전의 세상, 그리고 훨씬 더 오래전의 세상에서 여자들의 위상은 말할 것도 없다. 역사상 남자는 늘 여자보다 우월한 존재로 군림했기에,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를 지배하거나 아껴주거나 이용만 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갑골문이다.
한국어에는 한자어의 비율이 50퍼센트를 넘는다. 그만큼 우리가 쓰는 언어에 한자의 영향이 크다는 얘기다. 저자는 그 많은 한자어들 속에서 ‘여(女)’ 자에 주목한다. 십 년 전 ‘독 독(毒)’ 자를 보다가 이 글자에 ‘어미 모(母)’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었고, 그 이후 ‘여(女)’ 자가 들어간 한자에 좋은 의미가 하나도 없음을 깨닫고는 수많은 자료와 책들과 인터넷을 뒤지며 연구를 계속한 끝에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언어는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그리고 지구상 거의 대부분의 언어처럼 한자를 만든 사람들도 남자다. 한자의 기원이 되는 갑골문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그림문자였던 갑골문이 그 글자를 만든 남자들의 생각을 표출하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타(妥)’라는 한자의 뜻은 ‘온당하다’라는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이 글자를 만든 연유를 알면 ‘온당하다’는 의미에 담긴 남자의 시각을 꿰뚫어볼 수 있다. ‘妥’의 갑골문과 금문, 초계간백에는 여자[女] 위의 ‘손톱 조(?)’가 여자의 머리채를 끌고 가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전쟁터에서 포로로 잡혀가는 여자, 노예 삼을 여자를 포로로 잡아가는 일이 온당하다고 말하는 글자인 것이다.
저자가 밝힌 것처럼 갑골문에서 사용된 여(女)라는 글자들은 여자의 존재 자체를 낙인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 시절 여자에 대한 남자의 인식은 그렇게 머물러 있었고, 언어는 면면히 이어지며 갑골문 이후 5천 년이 지난 현재에도 우리의 무의식에 알게 모르게 쌓여 있는지도 모른다.
남녀 갈등, 언어의 시간을 넘어
몇 년 전부터 한국 사회에서는 남녀 갈등이 화두로 떠올랐다. 일부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심지어 혐오감을 드러내기까지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남자들은 자신을 역차별의 희생양이라 하고, 여자들은 여성 차별이 여전한 현실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평등하다는 보편적인 명제와 함께 전통적인 성 역할이 사라지는 지금, 우리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무장해야 할 역사의 기로에 서 있다.
모든 역사는 갈등과 투쟁, 양보와 포용을 통해 발전해나간다. 남자와 여자가 각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소리를 높이는 것도 앞으로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진통의 과정이다.
사람들의 인식이 흔들리고 변해가는 이 과도기를 슬기롭게 잘 통과하기만 한다면 남녀 모두 서로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갑골문에 낙인으로 박제되어 오랜 시간을 견뎌왔던 여자들. 이제 낙인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야 할 때이다. 그러고 난 후에야 우리 모두 자유로워질 테니 말이다.
남자들은 여자를 어떤 존재로 보고 있을까? 여성이 참정권을 얻게 된 것은 불과 100여 년 전 일이고, 그 이전에는 시민 취급도 받지 못했다.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이후로도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존재라고 인식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러니 100여 년 전의 세상, 그리고 훨씬 더 오래전의 세상에서 여자들의 위상은 말할 것도 없다. 역사상 남자는 늘 여자보다 우월한 존재로 군림했기에,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를 지배하거나 아껴주거나 이용만 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갑골문이다.
한국어에는 한자어의 비율이 50퍼센트를 넘는다. 그만큼 우리가 쓰는 언어에 한자의 영향이 크다는 얘기다. 저자는 그 많은 한자어들 속에서 ‘여(女)’ 자에 주목한다. 십 년 전 ‘독 독(毒)’ 자를 보다가 이 글자에 ‘어미 모(母)’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었고, 그 이후 ‘여(女)’ 자가 들어간 한자에 좋은 의미가 하나도 없음을 깨닫고는 수많은 자료와 책들과 인터넷을 뒤지며 연구를 계속한 끝에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언어는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그리고 지구상 거의 대부분의 언어처럼 한자를 만든 사람들도 남자다. 한자의 기원이 되는 갑골문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그림문자였던 갑골문이 그 글자를 만든 남자들의 생각을 표출하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타(妥)’라는 한자의 뜻은 ‘온당하다’라는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이 글자를 만든 연유를 알면 ‘온당하다’는 의미에 담긴 남자의 시각을 꿰뚫어볼 수 있다. ‘妥’의 갑골문과 금문, 초계간백에는 여자[女] 위의 ‘손톱 조(?)’가 여자의 머리채를 끌고 가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전쟁터에서 포로로 잡혀가는 여자, 노예 삼을 여자를 포로로 잡아가는 일이 온당하다고 말하는 글자인 것이다.
저자가 밝힌 것처럼 갑골문에서 사용된 여(女)라는 글자들은 여자의 존재 자체를 낙인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 시절 여자에 대한 남자의 인식은 그렇게 머물러 있었고, 언어는 면면히 이어지며 갑골문 이후 5천 년이 지난 현재에도 우리의 무의식에 알게 모르게 쌓여 있는지도 모른다.
남녀 갈등, 언어의 시간을 넘어
몇 년 전부터 한국 사회에서는 남녀 갈등이 화두로 떠올랐다. 일부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심지어 혐오감을 드러내기까지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남자들은 자신을 역차별의 희생양이라 하고, 여자들은 여성 차별이 여전한 현실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평등하다는 보편적인 명제와 함께 전통적인 성 역할이 사라지는 지금, 우리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무장해야 할 역사의 기로에 서 있다.
모든 역사는 갈등과 투쟁, 양보와 포용을 통해 발전해나간다. 남자와 여자가 각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소리를 높이는 것도 앞으로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진통의 과정이다.
사람들의 인식이 흔들리고 변해가는 이 과도기를 슬기롭게 잘 통과하기만 한다면 남녀 모두 서로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갑골문에 낙인으로 박제되어 오랜 시간을 견뎌왔던 여자들. 이제 낙인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야 할 때이다. 그러고 난 후에야 우리 모두 자유로워질 테니 말이다.
'31.사회학 연구 (독서>책소개) > 2.여성젠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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