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 - 바울이 부활을 전한
그들이 압비볼라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 지라 (행 17;1)
데살로니가는 이전에 터마라고 불렸다고 스트라보로 말하고 잇다. 데살로니가는 그리스 살로니카만에 위치한 옛 마케도니아의 중요한 항구로 현재 데살로니가 도시이다. 살로니카로 알려진 마케도니아의 중요한 도시인 이곳은 칼시더시반도 서쪽에 있는데르마이 만에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고향인 데살로니가는 알렉산더 사후 치열한 권력 쟁탈전에서 카산더 장군이 승리한 후 잃은인심을 수습하기위해 세운 도시이다. (BC 326~315년경). 그리고 자기처의 이름을 따라 데살로니가로 지었다. 이 곳에 정착한 새로운 주민들은 카산더가 멸망시킨 26개 지역에서 온 사람들 이었다.
BC167년 마케도니아가 4개지역으로 분할 되었을 때 이곳은 스트림몬 강에서 악시우스 강까지 경계를 이루는
둘째 구역에 속해 있었으며 그 지역이 수도였다. BC148년에는 로마행정부 소재지의 중심도시로 번영과 명성을 누렸다. 이때 데살로니가는 자유도시로 선포 되었으며, 스트라보에 의하면 당시 마게도니아 지역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 이었다.
이후 고르디아3세의 통치때 (AD238~244년) 에는 최고의 제사 의식이 행해지는 신전을 빠뜨렸다는 것을 가리키느 말인 네오코로스라는 명칭이 주어졌다. 그리고250년경 데시우스 때에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비잔틴시대에는 콘스탄티노플과 같은 명성을 가졌다. 바울은 디모데와 실라와 함께 한 제2차 전도 여행 때
빌리보에서 암비볼라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이곳 데살로니가에 왔다. 아볼라니아에서 데살로니가 항구까지
60km 정도 되며, 당시 로마길인 에그나티아 길을 따라 오면 빌립보에서 160km 정도의 거리가 된다. 이곳 에서의 전도는 사회적으로 저명한 추종자들과 많은 교인이 생기는 반면 핍박도 일어 났다.
바울 일행에게 숙소를 제공했던 야손 일가는 큰 변을 당했고, 기독교인들은 로마황제를 에배하지 않고 "예수라는 다른왕"을 섬기는 자들이라고 고발 당하였다. 그리하여 교인들은 바울과 실라의 신변을 걱정한 나머지 밤중에 다른 곳으로 피신 시켰다. (행17:1~10) 바울은 이곳에서의 복음 전도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후에 그의 추종자들에게 신세를 지지 않았으며 (빌 4;6 이하, 살전 2:9) 그가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이곳에 두개의 편지를 보내면서 관심을 나타내었다. (살전 2;1~12) 데살로니가 유물들은 주로 동쪽과 서쪽에 있으며 이곳 살로니가에 대한 고고학적인 발굴 조사 결과로 이 대광장은 적어도 가로 100m 세로 64m나 되었고 이 그린 벽화가 있는 방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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