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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역동적이고 개방적이었던 다원사회 고려,
16명의 인물로 새롭게 읽다!
2018년은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이한 해였다. 한국사의 중세에 해당하는 고려왕조(918~1392)는 약 500년의 역사를 존속하는 동안 다양한 인종과 종교, 문화, 사상이 공존하는 다원사회를 이룩했다. 이를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은 기획전시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2018.12.4. ~ 2019.3.3.)을 진행해 많은 관람객들의 관심을 받았다. 작년 12월 말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도 방문해 2시간가량 전시를 관람했는데, 이때 김 여사는 “고려왕조의 찬란한 문화에 자부심을 느낀다”라며, “역사적 격변기에 다양성을 포용하는 고려의 시대정신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고려왕조의 역사와 문화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역사적 어젠다로서 그 가치가 충분하다. 보수와 진보, 전통과 혁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서양과 동양 등의 대립·갈등을 넘어 진정한 의미의 통합을 지향하는 지금, 고려의 역사 경험은 개방성과 역동성, 공존이라는 주요한 가치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념비적인 해를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관심은 여전히 고대와 조선시대에 편중된 듯하다. 역사 드라마와 영화에서 본 단편적인 장면만으로 고려를 이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는 고려 사회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고 고려 역사를 제대로 알려줄 지식콘텐츠가 드물다는 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동안 ‘고려사의 대중화’에 힘써 온 역사학자 박종기(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준비위원장)는 전작 『새로 쓴 500년 고려사』, 『고려사의 재발견』에 이어 『고려 열전』을 선보인다. 건국 영웅과 명장들부터 귀화인, 하층민, 여성들의 이야기까지…… 『고려 열전』은 인간사로 고려시대의 역사를 재구성했다. 천 년 전 고려시대를 살았던 인간의 삶에 숨을 불어넣고 거대한 제도와 구조에 파묻힌 인간의 역사를 발굴해 생동감 넘치는 고려사를 들려줄 것이다.
16명의 인물로 새롭게 읽다!
2018년은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이한 해였다. 한국사의 중세에 해당하는 고려왕조(918~1392)는 약 500년의 역사를 존속하는 동안 다양한 인종과 종교, 문화, 사상이 공존하는 다원사회를 이룩했다. 이를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은 기획전시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2018.12.4. ~ 2019.3.3.)을 진행해 많은 관람객들의 관심을 받았다. 작년 12월 말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도 방문해 2시간가량 전시를 관람했는데, 이때 김 여사는 “고려왕조의 찬란한 문화에 자부심을 느낀다”라며, “역사적 격변기에 다양성을 포용하는 고려의 시대정신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고려왕조의 역사와 문화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역사적 어젠다로서 그 가치가 충분하다. 보수와 진보, 전통과 혁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서양과 동양 등의 대립·갈등을 넘어 진정한 의미의 통합을 지향하는 지금, 고려의 역사 경험은 개방성과 역동성, 공존이라는 주요한 가치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념비적인 해를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관심은 여전히 고대와 조선시대에 편중된 듯하다. 역사 드라마와 영화에서 본 단편적인 장면만으로 고려를 이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는 고려 사회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고 고려 역사를 제대로 알려줄 지식콘텐츠가 드물다는 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동안 ‘고려사의 대중화’에 힘써 온 역사학자 박종기(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준비위원장)는 전작 『새로 쓴 500년 고려사』, 『고려사의 재발견』에 이어 『고려 열전』을 선보인다. 건국 영웅과 명장들부터 귀화인, 하층민, 여성들의 이야기까지…… 『고려 열전』은 인간사로 고려시대의 역사를 재구성했다. 천 년 전 고려시대를 살았던 인간의 삶에 숨을 불어넣고 거대한 제도와 구조에 파묻힌 인간의 역사를 발굴해 생동감 넘치는 고려사를 들려줄 것이다.
목차
책을 펴내며 인간의 삶으로 엮은 고려왕조의 역사
1부 고려의 영웅
견훤 통합전쟁의 이슈를 선점한 영웅
궁예 새 시대를 갈망한 이상주의자
왕건 민심을 읽고 천하를 통일한 영웅
김경손 고려판 노블레스 오블리주
최영 다원사회의 종말을 재촉한 명장
2부 국경과 신분을 넘나든 경계인
최지몽 관료의 정상에 오른 점성술사
유청신 신분 상승의 사다리에 올라탄 역관
방신우 원 황실에서 고려를 지킨 환관
임백안독고사 왕권을 유린한 환관
3부 고려의 역사가
김부식 역사의 보편성을 추구한 최초의 역사가
이규보 고려 문명에 대한 자부심을 노래한 문인
이승휴 원의 지배 속에서 고려의 정체성을 지킨 역사가
이제현 ‘고려판’ 현대사 연구가
4부 고려의 여성
허씨 부인 자유와 절제, 성속(聖俗)을 넘나든 상류층 여성
김씨 부인 몽골군의 노예로 끌려간 중류층 여성
조씨 부인 하늘만은 외면하지 않은 하류층 여성
본문의 주
이미지 제공 및 소장처
1부 고려의 영웅
견훤 통합전쟁의 이슈를 선점한 영웅
궁예 새 시대를 갈망한 이상주의자
왕건 민심을 읽고 천하를 통일한 영웅
김경손 고려판 노블레스 오블리주
최영 다원사회의 종말을 재촉한 명장
2부 국경과 신분을 넘나든 경계인
최지몽 관료의 정상에 오른 점성술사
유청신 신분 상승의 사다리에 올라탄 역관
방신우 원 황실에서 고려를 지킨 환관
임백안독고사 왕권을 유린한 환관
3부 고려의 역사가
김부식 역사의 보편성을 추구한 최초의 역사가
이규보 고려 문명에 대한 자부심을 노래한 문인
이승휴 원의 지배 속에서 고려의 정체성을 지킨 역사가
이제현 ‘고려판’ 현대사 연구가
4부 고려의 여성
허씨 부인 자유와 절제, 성속(聖俗)을 넘나든 상류층 여성
김씨 부인 몽골군의 노예로 끌려간 중류층 여성
조씨 부인 하늘만은 외면하지 않은 하류층 여성
본문의 주
이미지 제공 및 소장처
출판사 리뷰
인간의 삶과 의식으로 재현한 다원사회 고려의 역사
―고려사에 담긴 인간의 체취를 발견하다
『고려 열전』의 문제의식은 “역사를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 보통 역사는 사건과 인간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균형 있게 서술하지 않는다면 수만 권의 역사서를 읽더라도 ‘왜’, ‘어떻게’라는 물음에 답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역사서는 역사의 주체인 인간보다 사건에 집중해왔다. 역사 속 인물의 삶을 그리더라도 군주나 지배층만 조명했던 것이 사실이다. 사건이라는 큰 그늘에 가려진 인간사는, 대중은 물론 역사가들로부터도 외면당해왔다.
그러나 박종기는 역사 속 인간의 삶과 생각을 시대의 변화와 발전의 주체로 보고 고려사를 재구성했다. 『고려 열전』은 한반도 역사상 가장 역동적이고 개방적이었던 다원사회 고려의 인물을 탐색하면서, 인물사로 당대의 정치적·사회적 쟁점을 폭넓게 접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조선시대에 비해 주목받지 못한 고려시대의 인물들을 상세히 들여다봄으로써 오늘날의 시선으로 고려사를 풀어내고 역사 속 인물들과 소통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인간의 삶과 생각을 중심으로 한 역사서술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마치 정치, 경제, 사회 등 각종 제도의 구조물 속에 갇혀 하루하루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현대의 인간처럼, 역사 속의 인간 역시 거대한 역사의 구조물에 갇혀버린 듯 좀처럼 역사의 전면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현대에서 중세,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인간의 체취가 담긴 역사를 찾기가 더욱 어렵다. (중략) 나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을 역사서술의 중심에 두고 그들의 삶과 생각을 통해 시대와 역사를 읽으려 한다. 고려시대(918~1392)를 살았던 중세의 인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의 속내를 탐색하고자 한다. 잘 알려진 인물은 뒤집어 보기를 통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은 자료 발굴을 통해 땀 흘려 일하고 고뇌했던 그들의 내면세계는 물론이고, 당대와 사회의 모습을 그려내려 했다.
―‘책을 펴내며’ 중에서(6쪽)
영웅·경계인·역사가·여성의 삶으로 재구성한 고려의 파란만장한 역사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건져 올린 인물의 삶을 전면에 내세우다
총 4부로 구성된 『고려 열전』은 새로운 관점으로 시대를 바라본 영웅들의 이야기로 첫 장막을 연다. 고려 건국기의 영웅 중 견훤은 도덕성의 잣대로 난도질당한 실패한 영웅이지만, 시대 인식과 비전 제시라는 면에서 그의 탁월성이 있음을 이 책은 짚고 있다. 혼란한 시기에 민심의 향배를 정확히 읽어 ‘역사 계승의식’이라는 통합전쟁의 이슈를 포착하고 선점한 그의 안목이 이를 증명한다. 그가 아니었으면 궁예와 왕건의 ‘마한-고구려 계승론’만이 유일한 것으로 기록되고, 우리 역사의 폭과 깊이는 그만큼 넓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고려판’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대표적 인물로 대몽항쟁의 영웅 김경손을 들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과 명예를 가진 자일수록 전쟁에 나가는 것은 물론 참전해서도 적극적으로 싸우는 것을 피하기 마련인데, 김경손은 지배층이 가져야 할 도덕적 책무에 충실했다. 이 때문에 그의 명성이 고려에 이어 조선에서까지 드높을 수 있었다.
2부에서는 자신의 재능으로 국경과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배층의 자리에 오른 경계인들을 소개한다. 고려는 해몽과 천문 점성술로, 혹은 유창한 몽골어 실력으로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어 최고위직에 오른 인물들을 여럿 배출했다. 그중 최지몽은 해몽으로 고위직에 올라 6명의 왕을 모신 이로, 한국판 요셉이라 할 만한 인물이다. 이는 고대 제왕학의 지위에 있던 점성술이 고려 건국 무렵에 성행했음을 알려주며, 나아가 불교, 유교, 도교, 풍수지리 등 다양한 사상이 공존한 고려 초기의 통합과 공존의 사회상을 보여준다. 원 간섭기에는 고려 출신 환관이 원에서 득세했는데, 이 책에서 다루는 방신우와 임백안독고사도 그런 인물이다. 이들은 원 황실에서 활동했지만 고려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권세를 악용해 고려 사회를 어지럽히기도 했다. 이들의 삶을 통해 원 간섭기 고려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음은 물론이고, 미천한 신분에서 최고의 권세를 누린 인물들의 인생역정을 돌아보게 된다.
3부에서는 김부식, 이규보, 이승휴, 이제현 등 새로운 역사인식으로 시대를 바라보았던 역사가들의 삶을 들려준다. 그중 이승휴는 중국과 구별되는 우리 역사의 독자성과 시원을 밝히고 강조하면서도 원나라에 대한 적대감을 보이지 않는 역사인식을 드러낸다. 이는 사신단의 일원으로 두 차례 원나라에 방문한 경험이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제왕운기』에는 자주적 측면과 원나라를 향한 사대적 측면의 역사서술과 인식이 공존하고 있으며, 이는 고려의 다원적 역사인식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4부에서는 그동안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다양한 계층의 여성 인물들을 재조명한다. 허씨 부인은 상류층 여성임에도 비구니가 되어 성속(聖俗)을 넘나들었다. 김씨 부인의 이야기에는 오랜 세월 몽골의 포로 생활을 하면서도 가족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전쟁 포로로서의 삶이 담겨 있다. 하류층 여성 조씨 부인은 삼별초 항쟁·일본 정벌 등으로 아버지와 시아버지을 잃고, 뒤이어 만주에서 일어난 합단의 반란으로 남편까지 잃었다. 27세 때부터 77세까지 50년을 과부로 지낸 조씨 부인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의 절개를 강조한 유교사관의 음영과 기나긴 전쟁으로 고단한 삶을 영위한 고려 후기 민초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룬 인물은 16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삶과 고뇌에는 고려 다원사회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고려인의 삶과 의식 속에 흐르는 다양성, 개방성, 역동성을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삶이지만 그 속에는 그 시대와 사회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개인사 자체가 희비와 성패의 굴곡으로 얼룩진 파란만장의 역사인지라 열여섯 인물의 삶이 응축된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뜻에서 한 말이다.
―‘책을 펴내며’ 중에서(8쪽)
하필이면 지금, 왜 고려사인가?
―다원사회 고려왕조가 21세기 대한민국에 전하는 ‘소통’과 ‘공감’, ‘공존’의 가능성
역사학자 박종기는 자료가 풍부하지 않음에도, 고려왕조의 역사를 인물의 삶으로 엮는 작업을 앞으로 계속해나갈 예정이다. 『고려 열전』은 고려 인물사 연구라는 대장정의 첫 삽이다. 그는 그들의 시대와 사회를 탐색함으로써 과거와 현대의 인간이 공감·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뉴스와 신문에 잊을 만하면 떠오르는 키워드 ‘리더십의 부재’는, 민심에 귀를 기울이고 사회 변화를 기민하게 감지하여 새로운 역사 계승의식을 제시한 고려의 영웅들을 떠올리게 한다. 채용 비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점성술사·역관·환관들이 국경과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펼쳐나간 고려 사회를 상상하게 된다. 고려의 역사가들은 어떤가? 책임감을 가지고 당대의 시대정신을 역사서로 구현했던 그들의 삶은 오늘날의 역사학과 역사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고려 후기의 여성들도 마찬가지이다. 끊임없는 전쟁 중에도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인 자세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 했던 장면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다양한 인간과 문화를 포용한 다원사회 고려와 고려인의 삶은 공존과 연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귀중한 존재라고 막연히 느껴왔던 감정을 이 책을 집필하면서 실감했다. 또한 타인의 삶에 대해서도 좀 더 너그러운 시선을 가져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그러한 시선이 지금의 시대를 읽는 데도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책은 인물을 통해 고려왕조의 역사를 새롭게 읽어나가려는 긴 공정의 시작이다. 인물 자료가 풍부하지 않아 앞으로의 작업은 난공사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천리 대장정의 첫 삽을 떴으니 시작이 반이라는 말에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중세와 현대의 인간이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여 우리의 삶을 여유롭고 풍성하게 하는 것이 이 작업이 추구하는 또 다른 목적이다.
―‘책을 펴내며’ 중에서(8쪽)
저자 인터뷰
1 전작 『새로 쓴 500년 고려사』와 『고려사의 재발견』에서 고려의 다양성과 개방성에 주목해 고려의 역사를 들려주셨습니다. 이번에는 ‘다원사회’ 고려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묶어 『고려 열전』을 펴냈는데요, 전작과 달리 고려인의 삶을 들려주고자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역사서술과 역사연구의 궁극적 목표 중 하나는 역사 속 인간의 삶과 생각을 밝히고, 이를 통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생각을 성찰하는 것입니다. 그동안의 작업은 다양성과 개방성 등을 특성으로 하는 고려의 모습을 정치·경제·사회·문화·대외관계 등의 측면에서 탐색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다원주의’라는 관점에서 고려왕조를 새롭게 해석한 점은 성과라 할 수 있지만, 역사연구의 본령에 해당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 즉 고려인의 구체적인 삶과 생각이 드러나 있지 않은 점이 아쉬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출간하는 『고려 열전』은 다원사회를 살아갔던 다양한 계층의 고려인의 삶과 생각을 드러내어 현재 우리들의 삶을 새롭게 성찰하려 했습니다.
2 영웅·경계인·역사가·여성이라는 기준을 두고 궁예, 왕건, 방신우, 임백안독고사, 김부식, 허씨 부인 등 16명의 인물을 소개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익숙한 인물들도 있고, 낯선 이름들도 있는데요, 이러한 인물군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 권의 책에 담을 수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고려 열전』은 최대한 다양한 유형의 인물을 통해 다양성과 개방성의 고려왕조를 살아간 인물들을 조명하고자 했습니다. 견훤과 궁예, 최영, 김부식처럼 잘 알려진 인물은 다른 각도에서 다시 보려 했습니다. 즉,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측면을 드러내려 했던 것이지요. 방신우, 임백안독고사와 같은 경계인과 상류층 여성 허씨 부인이나 몽골군의 노예로 끌려갔음에도 가족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던 김씨 부인 등은 대중들에게 낯선 인물일 겁니다. 이렇듯 역사에 가려진 인물들에 관해서는 자료를 발굴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대와 사회를 탐색하여 고려인의 다양한 삶과 생각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3 이 책의 인물 중 고려의 다양성과 개방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인물을 소개해주세요.
2부 경계인과 4부 여성을 살펴보면 역동적이고 개방적이었던 고려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부곡인 출신 유청신과, 재상 집안의 딸과 부인이며 충선왕비의 언니이기도 했던 상류층 여성 허씨 부인을 들 수 있습니다. 유청신은 몽골어 역관이라는 출세의 사다리를 타고 고려와 원나라 정계의 중심인물로 부상했습니다. 허씨 부인은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전형적인 삶을 살다가, 비구니가 되어 사찰을 건립하고 불경을 간행했습니다. 여성으로서 전국을 유람했던 일화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성속(聖俗)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했던 겁니다. 당대의 상류층 여성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대범하면서도 절제된 삶의 자세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도 드문 경우였지만 조선시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4 『고려 열전』은 인간의 삶과 생각을 엮어서 고려왕조 역사를 읽는 방식을 제안하는 최초의 책입니다. 그런 만큼 집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의 집필을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나요?
‘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역사연구의 시작이자 원초적인 물음입니다.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그 문장이 계속 저의 가슴을 짓누르더군요. 특히 인간의 삶과 생각을 고찰하는 연구나 글은 이러한 근본적인 물음에 최소한 응답하는 형식이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고려 열전』의 집필 자체가 부담이자 어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인물조차 자료를 찬찬히 읽고 사고하다 보면, 새로운 측면이 나타나더군요. 익숙한 인물을 재발견할 때마다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러한 순간들이 원동력이 되어 지루하고 어려운 작업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5 사실 대중의 관심은 조선시대에 편중된 것처럼 보입니다. 역사서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조선시대의 왕과 그 외 다양한 인물이 많이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그에 비해 고려사나 고려왕조를 살아간 인물들에 대한 관심은 적은 편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고려시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날은 국왕이나 관료, 영웅 등 역사 속의 지배자와 같은 인물이 사회를 지배하는 시대는 아니지요. 오히려 21세기 대한민국은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받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리트는 물론, 다양한 계층의 인물이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할 때 시대와 역사가 발전합니다. 조선시대와 같이 특정한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기의 인간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역시나 그런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인물로만 역사서 집필의 범위가 제한되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반면에 다양한 사상과 문화 기반을 가진 고려왕조에서는 생각 이상으로 새로운 사고방식을 지니고 독특한 역할을 하며 삶을 살아간 다채로운 인물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려왕조의 다양성과 개방성은 그 시대를 살아간 고려인의 삶에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따라서 다원사회 고려를 살았던 인간의 삶과 생각을 드러내는 일은 다원화된 우리 시대의 인간상과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6 독자들이 『고려 열전』을 읽고 고려 인물들을 어떻게 바라보았으면 하는지 말씀해주세요.
사람은 누구나 귀중한 존재입니다. 그 사실을 자각하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자존감과 삶의 질을 높이고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 길이지요. 『고려 열전』의 집필을 위해 다양한 고려인의 삶과 생각을 정리하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고려왕조를 살아간 이들 모두가 각자의 삶을 귀중하게 여기며 살아왔다는 것을요. 그런 이유로, 오늘날의 입장과 기준으로 그들의 삶을 판단하고 비난하기보다는, 그들의 이야기와 생각에 공감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는 너그러운 태도가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그 덕분에 집필하는 순간마다 행복을 느꼈습니다. 독자분들도 이러한 점에 주목하면서 『고려 열전』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려사에 담긴 인간의 체취를 발견하다
『고려 열전』의 문제의식은 “역사를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 보통 역사는 사건과 인간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균형 있게 서술하지 않는다면 수만 권의 역사서를 읽더라도 ‘왜’, ‘어떻게’라는 물음에 답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역사서는 역사의 주체인 인간보다 사건에 집중해왔다. 역사 속 인물의 삶을 그리더라도 군주나 지배층만 조명했던 것이 사실이다. 사건이라는 큰 그늘에 가려진 인간사는, 대중은 물론 역사가들로부터도 외면당해왔다.
그러나 박종기는 역사 속 인간의 삶과 생각을 시대의 변화와 발전의 주체로 보고 고려사를 재구성했다. 『고려 열전』은 한반도 역사상 가장 역동적이고 개방적이었던 다원사회 고려의 인물을 탐색하면서, 인물사로 당대의 정치적·사회적 쟁점을 폭넓게 접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조선시대에 비해 주목받지 못한 고려시대의 인물들을 상세히 들여다봄으로써 오늘날의 시선으로 고려사를 풀어내고 역사 속 인물들과 소통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인간의 삶과 생각을 중심으로 한 역사서술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마치 정치, 경제, 사회 등 각종 제도의 구조물 속에 갇혀 하루하루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현대의 인간처럼, 역사 속의 인간 역시 거대한 역사의 구조물에 갇혀버린 듯 좀처럼 역사의 전면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현대에서 중세,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인간의 체취가 담긴 역사를 찾기가 더욱 어렵다. (중략) 나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을 역사서술의 중심에 두고 그들의 삶과 생각을 통해 시대와 역사를 읽으려 한다. 고려시대(918~1392)를 살았던 중세의 인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의 속내를 탐색하고자 한다. 잘 알려진 인물은 뒤집어 보기를 통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은 자료 발굴을 통해 땀 흘려 일하고 고뇌했던 그들의 내면세계는 물론이고, 당대와 사회의 모습을 그려내려 했다.
―‘책을 펴내며’ 중에서(6쪽)
영웅·경계인·역사가·여성의 삶으로 재구성한 고려의 파란만장한 역사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건져 올린 인물의 삶을 전면에 내세우다
총 4부로 구성된 『고려 열전』은 새로운 관점으로 시대를 바라본 영웅들의 이야기로 첫 장막을 연다. 고려 건국기의 영웅 중 견훤은 도덕성의 잣대로 난도질당한 실패한 영웅이지만, 시대 인식과 비전 제시라는 면에서 그의 탁월성이 있음을 이 책은 짚고 있다. 혼란한 시기에 민심의 향배를 정확히 읽어 ‘역사 계승의식’이라는 통합전쟁의 이슈를 포착하고 선점한 그의 안목이 이를 증명한다. 그가 아니었으면 궁예와 왕건의 ‘마한-고구려 계승론’만이 유일한 것으로 기록되고, 우리 역사의 폭과 깊이는 그만큼 넓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고려판’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대표적 인물로 대몽항쟁의 영웅 김경손을 들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과 명예를 가진 자일수록 전쟁에 나가는 것은 물론 참전해서도 적극적으로 싸우는 것을 피하기 마련인데, 김경손은 지배층이 가져야 할 도덕적 책무에 충실했다. 이 때문에 그의 명성이 고려에 이어 조선에서까지 드높을 수 있었다.
2부에서는 자신의 재능으로 국경과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배층의 자리에 오른 경계인들을 소개한다. 고려는 해몽과 천문 점성술로, 혹은 유창한 몽골어 실력으로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어 최고위직에 오른 인물들을 여럿 배출했다. 그중 최지몽은 해몽으로 고위직에 올라 6명의 왕을 모신 이로, 한국판 요셉이라 할 만한 인물이다. 이는 고대 제왕학의 지위에 있던 점성술이 고려 건국 무렵에 성행했음을 알려주며, 나아가 불교, 유교, 도교, 풍수지리 등 다양한 사상이 공존한 고려 초기의 통합과 공존의 사회상을 보여준다. 원 간섭기에는 고려 출신 환관이 원에서 득세했는데, 이 책에서 다루는 방신우와 임백안독고사도 그런 인물이다. 이들은 원 황실에서 활동했지만 고려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권세를 악용해 고려 사회를 어지럽히기도 했다. 이들의 삶을 통해 원 간섭기 고려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음은 물론이고, 미천한 신분에서 최고의 권세를 누린 인물들의 인생역정을 돌아보게 된다.
3부에서는 김부식, 이규보, 이승휴, 이제현 등 새로운 역사인식으로 시대를 바라보았던 역사가들의 삶을 들려준다. 그중 이승휴는 중국과 구별되는 우리 역사의 독자성과 시원을 밝히고 강조하면서도 원나라에 대한 적대감을 보이지 않는 역사인식을 드러낸다. 이는 사신단의 일원으로 두 차례 원나라에 방문한 경험이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제왕운기』에는 자주적 측면과 원나라를 향한 사대적 측면의 역사서술과 인식이 공존하고 있으며, 이는 고려의 다원적 역사인식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4부에서는 그동안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다양한 계층의 여성 인물들을 재조명한다. 허씨 부인은 상류층 여성임에도 비구니가 되어 성속(聖俗)을 넘나들었다. 김씨 부인의 이야기에는 오랜 세월 몽골의 포로 생활을 하면서도 가족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전쟁 포로로서의 삶이 담겨 있다. 하류층 여성 조씨 부인은 삼별초 항쟁·일본 정벌 등으로 아버지와 시아버지을 잃고, 뒤이어 만주에서 일어난 합단의 반란으로 남편까지 잃었다. 27세 때부터 77세까지 50년을 과부로 지낸 조씨 부인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의 절개를 강조한 유교사관의 음영과 기나긴 전쟁으로 고단한 삶을 영위한 고려 후기 민초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룬 인물은 16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삶과 고뇌에는 고려 다원사회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고려인의 삶과 의식 속에 흐르는 다양성, 개방성, 역동성을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삶이지만 그 속에는 그 시대와 사회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개인사 자체가 희비와 성패의 굴곡으로 얼룩진 파란만장의 역사인지라 열여섯 인물의 삶이 응축된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뜻에서 한 말이다.
―‘책을 펴내며’ 중에서(8쪽)
하필이면 지금, 왜 고려사인가?
―다원사회 고려왕조가 21세기 대한민국에 전하는 ‘소통’과 ‘공감’, ‘공존’의 가능성
역사학자 박종기는 자료가 풍부하지 않음에도, 고려왕조의 역사를 인물의 삶으로 엮는 작업을 앞으로 계속해나갈 예정이다. 『고려 열전』은 고려 인물사 연구라는 대장정의 첫 삽이다. 그는 그들의 시대와 사회를 탐색함으로써 과거와 현대의 인간이 공감·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뉴스와 신문에 잊을 만하면 떠오르는 키워드 ‘리더십의 부재’는, 민심에 귀를 기울이고 사회 변화를 기민하게 감지하여 새로운 역사 계승의식을 제시한 고려의 영웅들을 떠올리게 한다. 채용 비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점성술사·역관·환관들이 국경과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펼쳐나간 고려 사회를 상상하게 된다. 고려의 역사가들은 어떤가? 책임감을 가지고 당대의 시대정신을 역사서로 구현했던 그들의 삶은 오늘날의 역사학과 역사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고려 후기의 여성들도 마찬가지이다. 끊임없는 전쟁 중에도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인 자세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 했던 장면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다양한 인간과 문화를 포용한 다원사회 고려와 고려인의 삶은 공존과 연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귀중한 존재라고 막연히 느껴왔던 감정을 이 책을 집필하면서 실감했다. 또한 타인의 삶에 대해서도 좀 더 너그러운 시선을 가져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그러한 시선이 지금의 시대를 읽는 데도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책은 인물을 통해 고려왕조의 역사를 새롭게 읽어나가려는 긴 공정의 시작이다. 인물 자료가 풍부하지 않아 앞으로의 작업은 난공사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천리 대장정의 첫 삽을 떴으니 시작이 반이라는 말에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중세와 현대의 인간이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여 우리의 삶을 여유롭고 풍성하게 하는 것이 이 작업이 추구하는 또 다른 목적이다.
―‘책을 펴내며’ 중에서(8쪽)
저자 인터뷰
1 전작 『새로 쓴 500년 고려사』와 『고려사의 재발견』에서 고려의 다양성과 개방성에 주목해 고려의 역사를 들려주셨습니다. 이번에는 ‘다원사회’ 고려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묶어 『고려 열전』을 펴냈는데요, 전작과 달리 고려인의 삶을 들려주고자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역사서술과 역사연구의 궁극적 목표 중 하나는 역사 속 인간의 삶과 생각을 밝히고, 이를 통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생각을 성찰하는 것입니다. 그동안의 작업은 다양성과 개방성 등을 특성으로 하는 고려의 모습을 정치·경제·사회·문화·대외관계 등의 측면에서 탐색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다원주의’라는 관점에서 고려왕조를 새롭게 해석한 점은 성과라 할 수 있지만, 역사연구의 본령에 해당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 즉 고려인의 구체적인 삶과 생각이 드러나 있지 않은 점이 아쉬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출간하는 『고려 열전』은 다원사회를 살아갔던 다양한 계층의 고려인의 삶과 생각을 드러내어 현재 우리들의 삶을 새롭게 성찰하려 했습니다.
2 영웅·경계인·역사가·여성이라는 기준을 두고 궁예, 왕건, 방신우, 임백안독고사, 김부식, 허씨 부인 등 16명의 인물을 소개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익숙한 인물들도 있고, 낯선 이름들도 있는데요, 이러한 인물군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 권의 책에 담을 수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고려 열전』은 최대한 다양한 유형의 인물을 통해 다양성과 개방성의 고려왕조를 살아간 인물들을 조명하고자 했습니다. 견훤과 궁예, 최영, 김부식처럼 잘 알려진 인물은 다른 각도에서 다시 보려 했습니다. 즉,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측면을 드러내려 했던 것이지요. 방신우, 임백안독고사와 같은 경계인과 상류층 여성 허씨 부인이나 몽골군의 노예로 끌려갔음에도 가족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던 김씨 부인 등은 대중들에게 낯선 인물일 겁니다. 이렇듯 역사에 가려진 인물들에 관해서는 자료를 발굴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대와 사회를 탐색하여 고려인의 다양한 삶과 생각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3 이 책의 인물 중 고려의 다양성과 개방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인물을 소개해주세요.
2부 경계인과 4부 여성을 살펴보면 역동적이고 개방적이었던 고려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부곡인 출신 유청신과, 재상 집안의 딸과 부인이며 충선왕비의 언니이기도 했던 상류층 여성 허씨 부인을 들 수 있습니다. 유청신은 몽골어 역관이라는 출세의 사다리를 타고 고려와 원나라 정계의 중심인물로 부상했습니다. 허씨 부인은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전형적인 삶을 살다가, 비구니가 되어 사찰을 건립하고 불경을 간행했습니다. 여성으로서 전국을 유람했던 일화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성속(聖俗)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했던 겁니다. 당대의 상류층 여성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대범하면서도 절제된 삶의 자세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도 드문 경우였지만 조선시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4 『고려 열전』은 인간의 삶과 생각을 엮어서 고려왕조 역사를 읽는 방식을 제안하는 최초의 책입니다. 그런 만큼 집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의 집필을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나요?
‘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역사연구의 시작이자 원초적인 물음입니다.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그 문장이 계속 저의 가슴을 짓누르더군요. 특히 인간의 삶과 생각을 고찰하는 연구나 글은 이러한 근본적인 물음에 최소한 응답하는 형식이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고려 열전』의 집필 자체가 부담이자 어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인물조차 자료를 찬찬히 읽고 사고하다 보면, 새로운 측면이 나타나더군요. 익숙한 인물을 재발견할 때마다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러한 순간들이 원동력이 되어 지루하고 어려운 작업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5 사실 대중의 관심은 조선시대에 편중된 것처럼 보입니다. 역사서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조선시대의 왕과 그 외 다양한 인물이 많이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그에 비해 고려사나 고려왕조를 살아간 인물들에 대한 관심은 적은 편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고려시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날은 국왕이나 관료, 영웅 등 역사 속의 지배자와 같은 인물이 사회를 지배하는 시대는 아니지요. 오히려 21세기 대한민국은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받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리트는 물론, 다양한 계층의 인물이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할 때 시대와 역사가 발전합니다. 조선시대와 같이 특정한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기의 인간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역시나 그런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인물로만 역사서 집필의 범위가 제한되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반면에 다양한 사상과 문화 기반을 가진 고려왕조에서는 생각 이상으로 새로운 사고방식을 지니고 독특한 역할을 하며 삶을 살아간 다채로운 인물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려왕조의 다양성과 개방성은 그 시대를 살아간 고려인의 삶에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따라서 다원사회 고려를 살았던 인간의 삶과 생각을 드러내는 일은 다원화된 우리 시대의 인간상과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6 독자들이 『고려 열전』을 읽고 고려 인물들을 어떻게 바라보았으면 하는지 말씀해주세요.
사람은 누구나 귀중한 존재입니다. 그 사실을 자각하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자존감과 삶의 질을 높이고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 길이지요. 『고려 열전』의 집필을 위해 다양한 고려인의 삶과 생각을 정리하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고려왕조를 살아간 이들 모두가 각자의 삶을 귀중하게 여기며 살아왔다는 것을요. 그런 이유로, 오늘날의 입장과 기준으로 그들의 삶을 판단하고 비난하기보다는, 그들의 이야기와 생각에 공감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는 너그러운 태도가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그 덕분에 집필하는 순간마다 행복을 느꼈습니다. 독자분들도 이러한 점에 주목하면서 『고려 열전』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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