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대한민국명소 (2006~) <여행지>/5.경기권 관광

경기도 (여주-양평) 파사성. 마애불

동방박사님 2022. 2. 8.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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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세월 오직 한강을 지켜온 파사성과 마애불

사적251호인 파사성의 성곽의 둘레는 약 1800m로 낮은 곳은 1.5m, 높은 곳은 6.25m에 달한다. 신라 5대 파사왕때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파사산성은 한강을 차지하는 자가 한국사의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삼국쟁패시대의 군사요충지였다. 강을 끼고 벼랑에 의지한 비슷한 지형이 경남 양산군에 신라와 가야가 다툰 국계 (지금도 그 지명을 쓰는데 문자 그대로 '국가의 경계' 라는 의미다)에도 있다. 임진왜란 때는 승려 의암이 승군을 모아 성을 늘려 쌓았다고 한다.

이곳에는 아주 소박한 그러나 길손의 염원을 담은 마애불상이 대략 100m 높이의 산턱에서 한강을 굽어보고 있다. 창동, 게신리에 이어 한강을 따라 마애불이 계속 나타나는 것은 심청의 인당수와 비슷한 염원일까? 이포나루 상인들의 여정을 지키는 어머니 처럼! 

여주 파사성 驪州 婆娑城 (국가사적 251호)

여주 파사성은 남한강 동쪽에 해발 230.4m의 파사산 꼭대기에 있는 돌로 쌓은 성이다. 이곳은 한강의 수상 교통과 중부 내륙의 육상 교통을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이포대교 주변의 넓은 한강 유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곳이다. 성의 둘레는 1,800m이고 최대 높이는 약 6.5m로 규모가 큰 편이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일부 구간은 최근에 복원 했다. 산등성이로 이어지는 주요 지점에는 *치 와 **포루 터가 있으며, 동문과 남문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 된다. 특히 남문 터에서는 문루의 팔각 주춧돌과 불에 탄 성문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성안에서는 백제, 신라 고려 조산 등 여러시기의 건물터가 확인되어 파사성이 오랜 기간 중요한 역할를 했음을 알 수 있다.

파사성은  신라 파사왕(80~112재위)이 쌓았다고 전해지지만 당시 이 지역은 백제 영역에 속하였으므로 유사한 이름 때문에 잘못 전해지 것으로 보인다. 여러 차례 발굴조사를 한 결과성안에서 발견된 유물이나 성벽으 쌓기 방식, 성문 형태등으로 볼 때 파사성은 6세기 중엽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면서 쌓은 것으로 추정 된다.

파사성은 임진왜란 때 유성룡의 건의에 따라 승군 총섭 의엄이 승군을 동원하여 1592년(선조25) 부터 3년에 걸쳐 옹성과 장대, 군기소까지 갖춘 성으로 전체적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남아 있는 성벽의 대부분은 조선시대에 다시 쌓은 것이며, 처믐 쌓은 성벽은 하단부와 조선 시대 성벽 안쪽에서 일부가 확인된다. 파사성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매우 아름다워 고려 말의 이색과 조선 중기의 유성룡이 시로 남기기도 했다.

* 치: 성을 방어 할수 있도록 성벽 밖에 돌출시켜 타원형으로 쌓은성, 곡성이라고도 한다.

**포루: 성벽 밖에서 각지게 돌출시켜 전쟁할 때 포를 쏘거나 망을 보았던 조선시대의 방어 시설물

 

양평 상자포리 마애여래입상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1호)

양평 상자포리 마애여래 입상* 은 커다란 바위벽에 새긴 불상으로, 바위 앞면을 깍아서 선으로 새겨 조각하였다. 연꽃무늬가 새겨진 대좌** 위에 서 있는 부처의 모습으로, 오른쪽 어개를 드러내고 있다. 사각형의 굳은 얼굴과 길쭉한 돌기둥 형태의 신체, 각이 진 팔 꿈치 표현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유행한 거대 불상과 관련이 깊다. 상자포리 마애여래 입상은 큰 규모에도 알맞은 신체 비레를 가지고 있다. 마애불상 주변에서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예 예전에 사찰이나 암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여래입상 : 마애는 석벽에 글자나 그림, 불상 따위를 새기는 것이다.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 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입상은 서 있는 모습으로 상을 이른다. 

**대좌 : 불상을 올려놓는 대.

 

양평 상자포리 마애여래 입상* 은 커다란 바위벽에 새긴 불상으로, 바위 앞면을 깍아서 선으로 새겨 조각하였다. 연꽃무늬가 새겨진 대좌** 위에 서 있는 부처의 모습으로, 오른쪽 어개를 드러내고 있다. 사각형의 굳은 얼굴과 길쭉한 돌기둥 형태의 신체, 각이 진 팔 꿈치 표현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유행한 거대 불상과 관련이 깊다. 상자포리 마애여래 입상은 큰 규모에도 알맞은 신체 비레를 가지고 있다. 마애불상 주변에서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예 예전에 사찰이나 암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