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조선시대사 이해 (독서>책소개)/4.조선역사문화

조선의 명가 안동 김씨

동방박사님 2022. 7. 1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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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5명의 정승, 35명의 판서, 6명의 대제학, 3명의 왕비를 배출한 화려한 명문가이자 왕의 총애를 등에 업고 절대 권력을 휘두른 안동김씨. 왕실의 막후에서 천하를 주물렀던 조선 정치의 실세를 누린 이 가문의 저력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보여주고 있다. 조선 최고 명문가의 흥망성쇠로 재구성한 조선왕조 오백년사의 비밀이 밝혀낸다.

목차

여는 글 |그들의 시대가 열리다

하나의 성씨 두 개의 가문
떠오르는 명문가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다
위풍당당한 세도가
조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닫는 글 |조선 명문가란?

저자 소개

저자 : 김병기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대한독립운동총사편찬위원회 위원장,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의 전문위원으로 있다. 함께 지은 책으로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3』『한국사의 천재들』『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등이 있다. 증조부 김승학 선생은 <독립신문> 사장과 육군주만참의부 참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이자 『한국독립사(1965)』를 유고...
 

책 속으로

강화도 함락의 순간, 김상용은 자신의 죽음을 준비했다. 그의 나이는 이미 77세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에 대한 집착이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째서 도망가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대신이니 다만 죽음이 있을 뿐이다. 어찌 구차스럽게 살려고 하겠는가.”
훗날을 기약하기 위해서라며 달아나거나 도망쳐서 목숨을 부지한 대신들은 많았다. 하지만 김상용은 남은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옷을 벗어 하인에게 주었다. 만약 ‘네가 살아난다면 이 옷을 내 자식들에게 주어 허장이나 하라’고 한 뒤 떠났다. 김상용이 죽을 장소로 정한 곳은 강화도 남문에 있는 화약고였다. 화약을 가득 담은 궤에 걸터앉은 채, 김상용은 시자를 불렀다.
“가슴이 답답하여 담배가 피우고 싶구나. 불을 가져오너라.”
설령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배치라 해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게다가 평소 김상용은 담배를 피우지도 않았다. 하지만 김상용은 끝내 담뱃불을 얻어냈고, 곁에 있던 사람들에게 손짓을 했다. 어서 이 자리를 떠나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다가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 p.56
그렇다고 김조순이 명가의 자손답게 모든 점에서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의외로 엇나가는 면이 있었다. 정조 당시 성리학의 권위는 도전받았으며,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것을 주도한 쪽이 박지원으로 대표되는 경화학계, 곧 김조순의 스승들이었다. 그리고 중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학문들이 전파되면서 조선의 학계는 새로운 글과 학문이 유행하게 되었는데 그래서인지 김조순도 이런 세파에 휩쓸리게 된다.
『정조실록』16년 10월 24일에는 재미있는 기록이 있는데 김조순과 이상황 등 예문관에서 숙직하던 사람들이 당송시대의 소설 『평산냉연(平山冷燕)』 등을 돌려보다가 마침 정조가 보냈던 사람에게 딱 걸린 일이 있었다.
『평산냉연』이란 청나라 초기의 소설인데, 주요 등장인물의 성이 각각 평, 산, 냉, 연이라서 붙여진 제목이다. 대략적인 내용은 시와 재기를 겨루던 남자 두 사람과 여자 두 사람, 도합 네 명이 결국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는 내용이다. 전혀 유학적인 내용은 찾아보기 힘든, 굳이 말한다면 연애소설쯤이 될 것이다. 혼자도 아니고 두 사람 이상이 읽다가 발각된 것이니, 숙직으로 따분한 밤 시간을 보내던 중에 누군가가 구해온 소설을 놓고 여럿이 모여 앉아 돌려가며 읽었던 게 아니었을까. 나름 인간적인 대목이다. 물론 유학자나 관리도 사람이니 때로 머리를 식히기 위해 가벼운 소설을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가 정조라는 것이 문제였다.
--- p.127
김병연은 누구인지 몰라도 김삿갓이라고 하면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평생을 걸쳐 전국을 떠돌며 해학과 풍자가 가득 담긴 시와 재미있는 일화를 남겼던 그 역시 안동김씨 출신이었다.
머리가 영특하고 시재가 뛰어났던 김병연은 고금의 시서를 섭렵하여 모르는 글이 없었다. 20세가 되던 해 김병연은 영월관아에서 벌어진 백일장에 참가했다. 집안을 다시 일으키는 길은 과거에 급제하는 방법이었기에 공부를 열심히 하여 나름대로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의 시제가 홍경래의 난 당시 반군과 싸우다 죽은 가산군수 정시의 공을 칭찬하고, 항복한 선천부사 김익순을 통박하라는 것이었다. 김병연은 일필휘지로 김익순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이러한 김병연의 글은 장원에 뽑혔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이 사실을 자랑했을 때, 어머니는 가슴을 치며 가문의 내력을 들려주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할아버지를 욕하게 된 김병연은 조상을 욕한 자신의 잘못을 한탄하며 하늘이 부끄럽다 하여 삿갓을 쓴 채 유랑길에 나서게 되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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